웅산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 입력 2009년 3월 17일 16시 20분


3년 전쯤이었던가. 웅산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20년 된 낡은 스피커를 통해 비어져 나오는 웅산의 목소리는 뭐라 말하기 힘든 미묘한 감성으로 얽혀 있었다. 거칠거칠한 질감 위로 융단을 살짝 얹어놓은 느낌. 부연 담배연기 사이로 그녀의 붉은 립스틱이 시선에 들어온다. 섹시하면서도 퇴폐적이고, 그런 가운데 뭉글뭉글 솟아오르는 청순함. 그것을 마력이라 부르지 않으면 달리 무어라 칭해야 할까.

스포츠동아 스튜디오에서 만난 웅산은 자신의 음반 재킷으로부터 방금 튀어나온 듯 싱싱한 모습이었다. 트레이드마크인 강렬한 메이크업도 그대로. 그녀와의 인터뷰는 마냥 즐거웠다. 그녀의 말은 노래처럼 들렸다.

- 각성이라고 해야 할지 … ‘내가 노래를 잘 하는구나’하고 처음 생각했던 때는 언제일까요?

“하하! 각성은 무슨.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을 했어요. 합창, 중창, 브라스밴드(트럼펫을 불었다)에 대학에서는 그룹사운드. 안 해 본 게 없죠. 그런데 노래는 그냥 그랬어요. 합창단 내에서도 한 번도 순위 안에 못 들었거든요.”

언젠가 아버지가 TV에서 딸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영감, 우리 딸 어때요?”하니 아버지는 시큰둥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단다. “잘 하는 노래는 아니지. 10명 중 7번째 정도.” 이 말을 하며 웅산이 많이 웃었다. “노래를 잘 한다기보다는 저만의 색깔을 잘 표현할 줄 안다는 정도겠죠.”

- 색깔이라면 무슨 색일까요?

“몇 가지 색이겠죠. 제가 원래 록을 했잖아요. 처음 재즈신에 등장했을 땐 너무 파워풀했고, 2집 나오고 나서는 지나치게 블루지한 해석이라고도 했고, 3집 나오니까 ‘어? 웅산이 속삭이는 노래도 하네?’했죠. 그래도 노래를 들었을 때 ‘이건 웅산 스타일이야’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스타일로서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나마 생각하고 있죠.”

- 스스로 생각하기에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웅산의 강점은 어떤 걸까요?

“음악을 보는 눈이 한 가지 해석이 아니라 여러 음악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 제가 원하는 색깔을 낼 수도 있고, 작곡자 의도대로 노래할 수도 있고. 음악을 크게 볼 수 있다는 거겠죠.”

- 재즈보컬이 각별히 매력적인 이유라면?

“저는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 감사해요. 록을 할 땐 그것만 보였죠. 갇혀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재즈는 모든 것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음악이죠. 저는 국악과 협연하기도 하고, 클래식 쪽에 가서 노래해 보기도 하고, 힙합을 하거나 드라마 음악도 하죠. 그때마다 발성이 달라요. 최근에는 영화 그림자살인의 엔딩 테마곡을 불렀어요. 스페인어로 했죠. 다른 장르의 음악을 접할 때마다 두려움이 아닌 도전정신이 생겨요. 그게 재즈의 힘이겠죠. 재즈란 음악이 본래 즉흥적이잖아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언제 누구랑 만나서도 커뮤니케이션이 되니까요. 재즈란 음악 자체가 두려움이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이런 노래 불러주세요’하면 ‘한 번 해보지 뭐’하는 마음이 생기죠. 그러다 안 되면요? 안 되면 말고죠 뭐. 하하하!”

- 전설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할리데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빌리의 음악을 듣고 너무 큰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도 꼭 저런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고 재즈에 입문했죠. 물론 그녀의 인생은 너무도 비참했고 슬프죠. 그렇게 살거나 닮고 싶지는 않아요. 20대 초반에 나는 록커였죠. 밤이나 낮이나 디스토션의 징징거리는 사운드 속에 묻혀 살았어요. 빌리는 아무 것도 없이 그저 피아노 한 대 덩그러니 놓고 노래만 툭 던지는데, 그게 그렇게 가슴에 꽂히더라고요.”

재즈를 하겠다고 결심한 웅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남대문 시장에 달려가서 까만 벨벳 드레스를 산 것이었다. “재즈를 하려면 그런 옷을 꼭 입어야 하는 줄 알았죠. 하하!”

- 록, 재즈, 블루스. 다양한 장르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공통점이 있어 보입니다. 웅산의 음악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흐름은 무엇일까요?

“역시 블루스인 것 같아요. 나름 담백하게 불렀다고 생각해도 블루지한 색채가 낀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웅산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녀는 록 그룹사운드의 보컬 출신이다. 그냥 록도 아니고 헤비메탈, 심지어 록 중에서도 가장 거칠고 무겁다는 데스메탈까지 넘나들었다. 한창 때는 매일 새벽까지 소리를 질러대며 샤우팅 창법을 연습했다. 웅산을 음반을 통해서만 대한 이들, 특히 4집처럼 나긋나긋 속삭이는 노래만 들은 사람은 막상 라이브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산의 엄청난 에너지에 하얗게 질리고 만다. 심지어 “저게 그 웅산 맞냐”고 물을 정도다.

- ‘공연은 나의 힘’이라고 할 만큼 공연을 많이 하시더군요. 1년에 몇 회 정도 하시나요?

“세어 보진 않았는데 … 공식적으로 나와 있는 스케줄 많고도 꽤 되거든요.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더 많고요. 심할 땐 한 달에 28일 노래한 적도 있어요.”

- 연습시간보다 공연시간이 더 많겠군요.

“정말 많고도 다양한 무대에 서봤어요. 그게 제 강점이라면 강점이겠죠. 그래도 여전히 무대에 서면 떨려요.”

- 아직도 떨리십니까?

“그럼요. 긴 드레스를 발로 쳐 나가면서 무대에 올라갈 때, 조명이 들어올 때가 가장 긴장되죠. 처음 2~3곡까지는 그 긴장감이 살아 있어요. 물론 하다 보면 떨리진 않죠. 마냥 좋아요. 노래를 하다 보면.”

어느 인터뷰 기사에선가 이런 에피소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웅산은 무대에 오르면 제일 먼저 관객석을 바라본다. 그 중 어딘지 힘들어 보이는 사람, 외로워 보이는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오늘은 저 사람을 위해 노래해야지’하고 마음먹는다.

- 사실입니까?

“큰 공연장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클럽처럼 작은 무대에서는 그래요. 일본의 경우 20~30석 되는 작은 무대가 많아요. 그럴 땐 미리 정해놓은 곡이 있어도 그런 사람을 위해 노래해 주고 싶을 때가 있죠. 내 노래로 저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 … 이런 거죠. 아시다시피 전 한때 비구니가 되려고 했었잖아요. 재즈란 음악이 제게는 수행인 거죠.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싶어요. 노래해 주고 싶어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 일본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죠. 일본과 우리나라 재즈보컬의 차이가 있을까요?

“일단 한국 가수들이 노래를 잘 해요. 이건 일본사람들도 100퍼센트 인정하는 부분이고요. 개중에는 ‘한국사람은 성대 자체가 다른 것 아니냐’고까지 해요, 하하! 일본 보컬들은 예쁘고 단정하게 부르죠. 그런 점에서 한국 가수들은 뭔가 스트레이트로 뿜어내는, 한과 같은 소리가 있잖아요. 거기에 환호하는 거죠.”

웅산이 비구니 출신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자란 여고생 김은영은 어느 날 무작정 충북 단양의 구인사를 찾아가 비구니가 되겠다고 했다. ‘웅산’은 비구니 시절의 법명이다. 그녀가 참선 도중 죽비를 맞고 얻은 것은 법열의 깨달음이 아닌 노래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 지금도 구인사 스님들과는 연락을 하고 지내시나요?

“그럼요. 다녀오기도 하고.” - 가수가 된 웅산을 보면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무지 좋아하시던데요? 그런데 노래가 영어라 어렵다고 하시면서 우리말로 된 것 좀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 아티스트들은 제각기 음악을 통해 뭔가를 추구하는 존재들이죠. 웅산이 추구하는 바는 어떤 것인가요? “소박해요. 제 음악을 듣고 따뜻한 뭔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면 …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원해요. 내 음악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기를. 그래서 늘 노력하고, 공부하고, 정직해지려 하죠.”

- 정직이요?

“예를 들어 곡을 쓰잖아요. 저 같은 경우 곡을 일부러 만들려고 하면 한 번도 완성해본 적이 없어요. ‘예스터데이’, ‘콜미’처럼 제가 만든 대부분의 곡들은 앉은 순간에 써내려간 것들이에요.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에 솔직하고 싶어요. 음악을 들으면 사람들이 그 얘기가 진심인지 아닌지 금방 느끼는 것 같아요. 기교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죠. 거짓된 감정이라면, 나 자신이 곡을 끝낼 수 없어요.”

웅산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 상당한 테크니션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번, 세 번 듣다보면 테크닉이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화장하는 건 좋아하지만(웃음), 노래는 담백하게 부르려고 해요. 테크닉을 많이 쓰지 않죠.”

그런 경지였던가. 기교를 애써 부리지 않지만, 기교가 느껴진다. 기교가 느껴질라 치면, 어느새 연기처럼 흩뿌려지고 순수한 정음(淨音)만이 남는다. 음조차 사라지고 나면 향기가 남고, 결국 마지막에 가선 온기만이 웅산의 흔적을 말할 뿐이다.

- 기억에 남는 팬이 있겠지요?

“팬이라 … 변하지 않는 팬들.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20명 남짓 들어가는 클럽에서 노래할 때부터 지금껏 보고 들어주시는 분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계세요. 이 분들은 한국 공연에도 오시죠. 사인회를 할 때도 뒤편에서 지켜보시기만 해요. 십 수 년 동안 그 자리에 그렇게 서 계시는 분들이세요.”

- 일본팬들이 한국공연에도 오신단 말씀이신가요?

“다른 색깔을 보고 싶어 하시는 거죠. 일본에 가면 일본 밴드, 한국에서는 한국밴드와 공연을 하니까. 공연도 좀 달라요. 일본에서는 약간 쿨하고 섬세한 쪽. 한국은 다이내믹하고 깊게 가죠. 일본이나 한국이나 저와 거의 10년씩들 된 친구들이에요. 가족같은 밴드죠.”

- 한일 멤버들 간 경쟁의식도 있겠는데요?

“있지 않을까요? 4집 때는 한국밴드와 일본밴드가 각각 절반씩 연주했어요. 서로 긴장들 했겠죠. 뮤지션들한테는 늘 끊임없는 긴장이 필요한 것 같아요.”

- 20년 뒤에도 웅산은 재즈를 노래하고 있을까요?

“왜요? 아닐 것 같으세요? 사실 제가 절에 찾아갔을 때도 무슨 계획같은 것을 짜서 간 건 아니었어요. ‘가서 스님이 되고 싶다’해서 갔고, ‘음악을 해야겠다’해서 나왔죠. 나와서는 록을 몇 년이고 주야장창 불렀고, 그러다가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를 듣고는 그야말로 뒤도 안 돌아보고 재즈로 왔어요. 올해가 13년째인데, 아직도 제게는 이 음악(재즈)이 충분히 좋고 매력적이거든요. 앞으로는? 모르죠 뭐. 한 세상 안 태어난 셈치고 다시 산사로 들어갈지도.”

- 처음에 재즈를 한다고 하니 동료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싫어했죠. 처음에 신관웅 선생님과 홍대 클럽에서 재즈 공연을 시작했거든요. 동료들이 와서 보고는 너무 실망을 한 거에요. 지금까지 우리들은 기타 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폼나게 했는데, 어쿠스틱 피아노 한 대 놓고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너무 안 멋있다고 생각한 거죠. 처음에는 저도 재즈 무대에 서는 게 얼마나 부끄러웠는데요. 사운드가 텅 비어있으니까. 그 큰 빈 공간을 혼자 채워야 하니까. 얼굴에 경련이 날 것 같았죠. 지금은요? 동료들이 너무 좋아하죠. 너무 근사하다고 해요.”

- 이번에 공연이 있죠? ‘윈디 스프링’. 타이틀을 봐서는 뭔가 산뜻하고 발랄한 공연이 될 것 같은데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시리즈죠. 매년 하고 싶어요. 이번엔 콘셉트가 ‘올드 앤 뉴’에요. 옛날 빅밴드스타일, 딕시랜드 느낌부터 스윙, 펑키, 최근의 재즈까지. 이날 공연 꼭 오세요. 재즈 히스토리를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 일종의 ‘모듬’이로군요?

“모듬이요? 하하하하!”

- 언젠가 꼭 같이 음악을 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요?

“굳이 재즈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스팅이요. 너무 멋있지 않나요? 옛날부터 스팅만 보면 ‘어쩜 저렇게 멋있을까’했죠. 아무 것도 안 꾸미고 노래하는데 정말 멋있잖아요. 꿈은 크게 갖고 봐야죠. 그래야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지니까.”

1집 ‘러브레터’를 녹음할 때 이야기. 미국에서 녹음하기 전 제작자가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일본에서 현재 함께하고 있는 밴드와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아티스트들, 그리고 세계적인 아티스트들 중 어느 팀과 녹음을 하겠냐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하고 있던 밴드와 하면 편할 것이고, 일본에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라면 일본시장에서 음반판매가 수월할 것이고,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하면 제 수준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란 얘기였죠.” 웅산의 선택은 세 번째였다. 이유는 ‘꿈은 크고 봐야 한다’였다.

긴 인터뷰를 마친 뒤 웅산은 “꼭 공연 보러 오세요”했다. 벌써 세 번째 초청이다. 첫 번째는 인사치례로, 두 번째는 습관적으로 들렸지만 세 번째는 진심으로 닿았다. 꼭 가서 제일 크게 박수를 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나저나 의문이 들었다. 20년 전 비구니가 되어 산사에서 수행을 하던 웅산과 오늘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웅산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결국 그녀에게 있어 재즈란 진리에 다다르기 위한 수행의 한 방편이 아니었던가. 우문이다. 마치 그녀에게 ‘웅산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 묻는 것과 같다.

웅산의 ‘윈디 스프링 공연’ 3월 24일(화) 8시|LG아트센터 문의 영앤잎섬 02-720-3933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화보]미묘한 감성을 풀어내는 목소리의 소유자 웅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