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곡식 한 알갱이 떨어져 있으면/그것은 새들의 차지/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목이 메이게 척박했던 시절/그래도 나누어 먹고 살았는데’(‘까치 설’에서)
원로 작가 박경리(82) 씨가 최근 나온 월간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 설’ 등 시 3편을 발표했다. 1999년 9월 ‘현대문학’에 시 5편을 싣고 이듬해 시집 ‘우리들의 시간’을 출간한 뒤 8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시편들이다.
그는 소설 ‘토지’의 작가로 잘 알려졌지만,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 거주하는 박 씨는 28일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발표하지 않았다 뿐이지 써놓은 시가 60, 70편에 이른다”며 “그중 개인적인 사연이 담긴 세 편을 골라 이번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까치 설’은 박 씨가 일관되게 말해온 자연과 환경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다.
‘옛날의 그 집’은 소설 ‘토지’를 탈고한 원주 단구동 옛 집을 회고하며 쓴 작품이다. 이 가운데 ‘까치 설’은 박 씨가 원고지에 쓴 육필 그대로 ‘현대문학’에 실었다.
“세 편 모두 지난해 가을에 쓴 시인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지만, 어머니한테는 유명한 딸보다 옆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게 효도인데, 나는 불효막심했지요. 부모는 자식한테 봉사해도 자식은 부모한테 봉사 못해요. 그게 그렇게 마음에 오더군요. 3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란 시를 썼습니다.”
박 씨는 이런 심정을 ‘꿈에서 깨면/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는 구절에 담았다.
박 씨는 현대문학에 연재하다 중단한 장편 ‘나비야 청산가자’를 지난해 미완인 채로 책으로 냈다.
“욕심을 갖고 시작했는데 집필 중 혈압이 200까지 올라가며 체력이 받쳐주지 않더라”며 아쉬워했다. 박 씨는 “최근 식중독으로 한참 고생했다”며 “몸이 좀 가라앉으면 그동안 쓴 시를 정리해 시집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