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그래도 진화의 춤은 계속된다”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진화하는 진화론/스티브 존스 지음·김혜원 옮김/648쪽·2만3000원·김영사

세계적 유전학자가 업데이트한 다윈의 ‘종의 기원’

과학 혁명.

토머스 쿤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과학은 때때로 ‘혁명’을 맞이한다. 갈릴레이나 뉴턴, 그리고 아인슈타인. 기존 학문은 물론 시대의 사상까지 뒤집는 진보. 그중에서도 찰스 다윈은 저자가 꼽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아이디어”를 도출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859년 11월 영국의 존 머리 출판사에서 간행된 ‘종의 기원’. “명백한 진리이자 진화의 경전”임에도 지금도 도전받는다. 미국인 절반 이상이 창조과학을 믿는다는 지적설계론은 논외로 치더라도 다윈주의자마저 ‘종의 기원’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종의 기원’을 읽은 생물학과 학부생을 만난 적 없다. 내용을 잘 이해한다는 과학자들조차 맞는 내용보다 틀린 게 많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인문학 학생들은 이 책을 철학이나 영문학 과정, 문학으로 읽는다. 불행히도 생물학의 바이블이 과학보다 형이상학적 작품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의 유전학 교수인 저자는 독특한 시도를 한다. 다윈이 살아있다면 6판(1872년)에서 끝난 종의 기원 21세기 판을 내놓지 않을까.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도 머리를 숙이는 ‘경전’을 재구성한다. 다윈 시대에 없었던 ‘유전학’이라는 비검을 장착한 채. ‘뉴 버전’ 종의 기원은 쾌도난마다. 소제목은 물론 인용이나 언급도 없이 원전을 그대로 갖다 쓴다. 오류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지적도 거침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다윈주의의 힘은 여전하다. “진화의 사실은 살아남았다. 참여하는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시간이라는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이기에.”

그 춤은 간단하다. 완만하지만 분명한, 자연 선택의 메커니즘을 따라 생물은 진화했다. 100% 명확한 복제가 불가능하기에 변이와 진화도 이뤄진다. 그러나 형질유전은 개체 번식이 이어지면 특성이 옅어지는 게 아닐까. 다윈은 골머리를 썩였지만 현대 유전학에선 깔끔하다. DNA는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언어니까. 유전자 내에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다.

다윈이 진화를 살펴보는 최적 코스로 선택한 ‘사육 변이’를 보자. 원전에는 비둘기 육종을 대상으로 했지만 저자는 현대인에게 친숙한 개로 설명한다. 분류학자 칼 린네가 ‘카니스 파밀리아리스’라 이름 지은 개는 진화론의 명확한 사례다. 숱한 교접과 변이로 개는 유일한 조상인 늑대와 별개 종이 됐다. 자연선택 행위가 축적되며 본질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길들었든 야생이든 모든 생물에게 일단 진화가 작동되면 정체성의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유전학으로 풀어본 진화 메커니즘은 바이러스에도 적용된다. 다윈의 수생 곰 사례처럼 저자는 모든 범주에 적용할 단서로 에이즈(AIDS)를 들여다본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현존하는 어떤 생물보다 오래된 콩고 킨샤사 화석에서 발견됐다. 1980년대 지중해 돌고래 수천 마리를 떼죽음시킨 건 에이즈 바이러스의 먼 친척이었다.

“HIV의 짧은 역사 속엔 ‘종의 기원’의 전체적 논의가 담겨 있다. 변이와 생존경쟁, 머지않아 새로운 생명 유형을 만들어내는 자연선택이 그것이다. 그 유전자들은 오래전에 조상을 공유했던 먼 친척들을 연결해준다. 그것들은 계통체계를 드러내는데, 이는 점점 더 먼 과거로 올라가는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유전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진화하는…’의 원제는 ‘Almost like a whale’(2007). “호수에서 헤엄치며 곤충을 입으로 잡아먹는 곰이 ‘거의 고래 같은’ 동물로 진화할 수도 있다”고 한 다윈의 문장에서 따왔다. 이는 당대는 물론 지금도 많은 비판적 학자들이 표적으로 삼는 문구다. ‘곰이 어떻게 고래로 바뀌느냐’고 비웃으면서.

그러나 최근 분자계통학을 보자. 과학자들은 고래의 레트로바이러스에서 하마와 사슴, 기린과의 공통 요소를 발견해냈다. 분자시계에 따르면 최초의 화석 고래 ‘히말라야세투스’ 직전인 5500만 년 전쯤 고래와 하마에게는 공통 조상이 있었다. 곰은 아니래도 최소한 하마가 고래로 바뀐 건 알아낸 셈이다. 반(反)다윈주의자들이 웃고 떠들 때 과학자들은 ‘증거’를 찾아냈다. 이제는, 반대로 그들이 답할 차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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