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도도한 인문학, 세상과 호흡하라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인문학의 즐거움/커트 스펠마이어 지음·정연희 옮김/500쪽·2만5000원·Human & Books

이제는 너무 낯익은 말, ‘인문학의 위기’. 이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도 지난 30년간 대학 인문학과의 입학률이 계속 떨어졌다. 저자가 재직하고 있는 럿거스대 인문학 전공자의 수도 매년 줄어들었고 철학 역사학 문학 등 인문학 전공 교수들의 권위와 영향력도 약해졌다. 인문학이 차지했던 자리엔 부(富)와 쾌락에 대한 열광이 들어섰다.

인문학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저자는 “예술을 향유하는 기쁨, 과거에 대한 흥미, 살아 있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하지 않게 된다”고 답한다.

인문학의 쇠퇴는 인간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책 첫머리에 분명히 밝힌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스스로 사회와 삶으로부터 고립된 탓”이라고.

많은 인문학자는 인문학만이 고차원적 문제를 다룬다고 말해 왔다. 대중문화와 과학 기술은 인문학보다 저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 지식이 분업화 전문화되면서 전문화된 엘리트 지식인 집단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들 전문 지식인은 자신의 분야에만 집착한 나머지 시민사회와 멀어졌을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지식과도 분리됐다.

저자는 “이제 인문학이 사람들에게 실제 삶 너머를 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신 “인문학 스스로 사회와 ‘공명(共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인문학의 체계를 송두리째 바꾸자고 제안한다. 지금 역사가들은 역사만 다루고 비평가들은 문학 텍스트만 다루고 미술사학자는 미술만 다룬다. 이런 전문화는 다른 지식에 있어서, 실제 삶에 있어서 ‘멍청한’ 지식인을 낳는다. 저자는 이를 의학 인문학, 법 인문학, 경제 인문학, 미디어 인문학 등 현실세계의 영역에 따른 전문화로 대체하자고 말한다. 의학 인문학자는 의술뿐 아니라 의학제도의 역사, 질병의 비교문화적 인식, 의학 관련 문학 텍스트 등을 모두 아우른 사람이다.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창작의 주체로서 예술이다. 저자는 미술사학자들이 조각을 가르치는 교수와 좀처럼 접촉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는 문학 비평을 가르치기 전에 차라리 소설을 쓰게 하고, 미술사를 가르치기 전에 조각을 가르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그래야 인문학의 비현실성과 상투성을 극복해 창조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책에 등장하는 미국 이론가, 사상가들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런 역사를 시시콜콜 다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록 미국 인문학의 이야기이지만 이 책이 던지는 시사점은 한국 인문학에 그대로 적용해도 좋을 만큼 현실적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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