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음악 본능… 진화의 최고 히트상품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1분


◇뇌의 왈츠/대니얼 J 레비틴 지음·장호연 옮김/400쪽·2만2000원·마티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귓가에 익은 멜로디. 자신도 모르게 따라 흥얼거린다. 십수 년 만인데 또렷한 가사. 어느새 발장단까지. 문득 떠오르는 옛 시절…. 그리고 그 사람.

음악은 신비롭다. 저자 말대로 “음악을 들을 때 뇌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희로애락, 삼라만상이 모두 들어 있는 듯하다. 음악과 과학을 사랑하는 저자가 “둘을 섞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할 만하다.

과학적 견지에서 뇌와 음악을 설명하는 데 저자만 한 이도 드물다.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 심리학과 교수로 세계적 신경과학자인 그는 탁월한 음악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스티비 원더의 음반 프로듀싱을 도왔으며 ‘산타나’와 ‘그레이트풀 데드’의 앨범 엔지니어링을 맡기도 했다.

이 때문에 ‘뇌의 왈츠’는 과학자가 인간이 음악을 처리하는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전체 9장 가운데 첫 2장은 화성학에서나 볼 법한 전문영역 설명에 치중한다. 음높이 음색 음량 등 음악의 구성 요소를 구체적으로 일러 준다. 예를 들어 ‘리듬’은 음의 길이를, ‘템포’는 음악 작품의 보폭을 나타낸다. ‘박자’는 발을 세게 또는 약하게 구르는 식의 패턴이 한 단위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음악을 인간의 뇌가 소화하는 과정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뇌의 일부만 쓰는 일반 정보 처리와 달리 음악은 거의 뇌 전체를 움직인다. 병렬적으로 연결된 뇌가 동시에 활동을 시작한다.

“음악 청취는 달팽이관을 타고 들어와 뇌간 소뇌에서 시작한 다음 양측반구의 청각 피질로 올라간다. 들어 봤거나 익숙한 스타일의 음악이면 기억 중추인 해마와 하전두 피질이 추가로 활성화된다. 이때 실제로든 마음속으로든 박자를 맞추면 소뇌의 타이밍 회로가 가동된다.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 지휘 같은 활동엔 전두엽과 감각 피질 등이 가동된다.”

음악의 정서적 감응 역시 뇌의 활동이다. 뇌는 음악을 받아들일 때 ‘기대감’ 처리에 관여한다. 인간은 그간의 경험을 축적해 음악을 범주화하는 시스템을 머릿속에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음악을 접하면 자동으로 예상을 한다. 이때 기대감을 충족하거나 예상을 뒤엎으면서 음악은 인간의 심리를 자극한다. 또 뇌의 ‘중격의지핵’이 도파민을 분비해 기분과 감정을 조절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음악을 한낱 진화의 ‘덤’으로 보는 과학의 일부 경향을 경계한다. 특히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쓴 당대의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가 “음악은 언어의 등 뒤에 올라탄 진화적 부산물로, 뇌를 흥미롭게 자극하는 ‘청각적 치즈케이크’”라고 평가 절하한 것에 반대한다. 오히려 음악 본능은 ‘진화의 최고 히트 상품’이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저자가 보기에 음악은 언어의 곁가지가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음악이 언어보다 오래됐다는 증거는 많다. 게다가 음악은 인간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성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록스타에게 수많은 여성 팬이 따르는 것처럼 능력과 여유를 과시하는 메타포가 됐다. 음악은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작용도 한다. 이를 신경과학에선 ‘이중 해리(double dissociation)’라 부른다. 유아 음악 교육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의 인지 발달도 촉진시킨다. 음악은 진화의 필요에 의해 이어진 것이다.

뇌의 왈츠는 방대하다. 음악과 뇌에 관련한 모든 것을 훑는다. 클래식과 최신 팝을 넘나드는 해박한 음악 지식부터 뇌과학, 인지과학 심지어 사회학까지 두루 섭렵할 기회를 제공한다. 스티비 원더의 ‘슈퍼스티션(superstition)’에 대한 분석은 기가 막힐 정도다.

하지만 너무 세세해 읽는 이의 기가 질리게 하는 건 아쉽다. 쉽게 넘어가는 페이지가 드물다. 아무리 맛좋아도 과식은 소화불량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두고두고 천천히 먹을 수밖에. 뇌의 왈츠는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원제 ‘This is your brain on music’(2006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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