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화가 추연근 화백 작품 인기몰이

  • 입력 2007년 11월 7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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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는 국방부 정훈국 소속 종군 화가로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고, 전란의 와중에도 대구 미문화원에서 한국전 종군기록화전을 열었던 원로화가 추연근(86) 화백 개인초대전이 11월 3일부터 20일까지 포털아트(www.porart.com) 2층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포털아트는 국내 최대 규모(건평1천평) 전시실을 운영하는 국내최다 미술품 판매 온라인 경매사로,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을 관람객이 경매를 요청하면 인터넷 경매를 통하여 판매한다.

추연근 화백 작품은 11월 4일부터 하루에 매일 2점씩 경매가 진행되어 11월 6일 현재 1천만원 이상에 2점이 낙찰되는 등 6점의 작품이 판매됐다.

포털아트 김범훈 대표는 “한 화가의 작품을 하루 2점 이상 경매를 진행 할 수 없는데, 관람객이 경매를 요청한(서면입찰한) 작품 수가 11점이나 밀려 있다. 즉, 경매 수량보다 경매요청 수량이 더 많다.”며 “이런 상태라면 이달 중에 추연근 화백의 작품은 전량 매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추 화백의 연세로 보아 한 달에 창작할 수 있는 작품수가 적기 때문에 품귀현상은 계속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40년전 흑태양 작품을 발표한 후 40년간 흑태양 작품들을 창작하면서 정치 상황에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팔리는 그림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우리의 현실과 희망을 담은 흑태양을 창작하여 온, 86세 원로화가를 우리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미술품 애호가들도 이런 작가 정신의 산 증인인 추 화백 작품에 환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연근 화백 소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만큼이나 굴곡이 심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추 화백은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5년제 대구 계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 나라현 천리 외국어전문학교에 다니던 중 일본군에 징집됐고, 해방 후 고국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서울대 미대 1회 입학생. 그러나 민주화를 부르짖다 동맹휴학한 뒤 복학 과정에서 주동 학생으로 몰려 중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전쟁 때는 국방부 정훈국 소속 종군화가로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고, 전란의 와중에 대구 미문화원에서 한국전 종군기록화전을 열었다. 그것이 추 화백의 제1회 개인전이었다.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50년대 초반. 1953년 작곡가 금수현 씨가 교장으로 있던 경남여중에서 오현명 씨는 음악선생으로, 자신은 미술선생으로 교편을 시작했다.

그런 한편 김영덕 하인두 등과 함께 미술동인 '청맥'을 창립하는 열정을 보였다. 부산의 서양화단에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었다.

부산일보 기획위원과 편집국장, 서울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신문사에 있을 때인 1965년 국전의 고질화에 반기를 들고 미술계의 등용문으로 민전을 창립했고, 대한국민미술전람회 사무국장과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그 해에 부산시문화상(미술창작 부문)도 받았다.

그러나 역시 그에게 던져진 화두는 '그림'이었다. 경성대 미대 교수, 예술대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후학 작가를 길러냈다. 지금까지 개인전만 26차례를 열었다.

그는 1973년 'Who' who in the world 2002'라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현존 인물에 관한 인명사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등재됐다. 2000년 벽두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미로미술관 초대로 그의 화력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원로화가 전혁림 씨 등과 함께 초대를 받아 이 해 5월 19일부터 한 달간 '한국 빛깔의 신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던 것이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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