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수 이사장 “의결연기 의견 철회해달라”

  • 입력 2007년 9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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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가 TV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한 7월 9일 이사회 속기록을 보면 KBS가 수년 전부터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줄기차게 제기한 ‘공정성 제고’와 ‘방만 경영 개선’ 요구에 얼마나 무신경한지 엿볼 수 있다.

특히 일부 이사들은 이번 정기국회가 ‘(수신료 인상안 처리의) 적당한 (정치적) 조건이 되고 있다’며 인상안 의결 강행을 주장했다. 프로그램 공정성 확보 등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보다는 정치적 환경 조성 여부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KBS 이사회가 KBS 사측의 ‘거수기’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BS가 수신료 인상 방침을 밝힌 뒤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공동대표 유재천 한림대 특임교수), ‘KBS 수신료 인상 저지 국민행동’(공동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 등의 시민단체는 프로그램의 불공정성, 방만 경영 등을 이유로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면 인상안 의결 말아야”

일부 이사들은 이사회 초반 KBS의 문제점을 우선 해결하거나 이를 위한 의지를 천명한 뒤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 이사는 “수신료 문제는 공영방송 KBS의 진로를 좌우하는 아주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불거져 나온 것”이라며 “이사회도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면 수신료 문제를 의결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 이사는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려면) 적어도 사장 등 집행부만이라도 임금을 동결하는 조치가 필요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라며 “경영 효율화라는 안은 이사회나 회사 집행부의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일 뿐이지 그것이 집행된다는 보장도 없는 것 아니냐”고 가세했다.

C 이사는 “공영방송으로서 공정성 문제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방만한 경영이다. ‘루즈 머니(loose money·눈 먼 돈)’가 많다. 그런 것 때문에 지금의 돈(수신료)도 내기 싫다는 시청자들이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KBS에 우호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D 이사는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한다고 해서) 절대 졸속이 아니다. 인상안을 정기국회에 상정하려면 오늘 의결해도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탈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승인을 얻기 위해 적정한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고 인상안 의결을 주장했다.

이에 김금수 이사장은 “인상안 의결에 찬성하는 이사가 많다”며 “며칠 뒤로 의결을 연기하자는 세 분(이사)이 의견을 철회해 주면 어떻겠느냐. 양보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A 이사 등은 “못 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고 결국 표결 끝에 이날 인상안을 의결키로 결정했다.

○찬반 여부를 묻지 않은 채 가결된 수신료 인상안

2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상안 의결 찬반 논쟁 끝에 이사회는 인상안 가결 또는 반대를 논의키로 했다.

그러나 돌연 E 이사는 “그냥 표결 없이 (의견을) 통일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표결 없는 처리를 제안했고 F 이사도 “정연주 사장 선임 과정에서 표결을 해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지 않았느냐”며 찬성했다.

이에 김 이사장은 당시까지 회의에서 논의된 각종 논쟁을 스스로 정리한 뒤 수신료 인상안을 KBS가 제안한 원안대로 가구당 월 2500원에서 4000원으로 내년 1월부터 인상키로 의결했다.

이에 일부 이사들은 의결 절차를 문제 삼으며 ‘졸속 처리’를 강력히 비판했다.

A 이사는 “나중에 법적 하자가 생기면 어떻게 될지 알아서 하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항의했고 B 이사도 “다음 회의로 의결을 연기하자고 한 이사들이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알 수가 있겠느냐. 왜 법적 하자가 없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KBS에 우호적인 것으로 보이는 다른 이사들은 김 이사장에게 속히 이사회를 폐회하자고 종용했고 김 이사장도 “의사봉을 치기 전에 왜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유재천 공동대표는 “10년 넘게 KBS 이사회의 독립성 문제가 제기된 이유를 이사회 스스로 보여준 것”이라며 “앞으로 수신료 인상안 처리 과정을 둘러싼 법적 효력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KBS의 수신료 인상은 좀 더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KBS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방송위원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3년이며 이사장은 이사 중 호선을 통해 선출된다. 그러나 방송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등이 나눠 추천하기 때문에 KBS 이사 선임 때도 이런 정치적 배경이 반영되는 게 보통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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