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별]음악평론가 임진모의 멘터 이어령

  • 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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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활인’의 글맛… 대붕의 상상력은 어떠한가, 그저 감복할 뿐

아침에 출근하는 지하철과 버스 속의 한국 사람들을 보고 외국인들은 ‘마치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방긋 인사하는 그들의 생활문화 잣대로는 웃거나 상냥하지 않은 우리들이 무표정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랜 세월 축적된 우리만의 표현문화를 알지 못한다. 표면적으로는 무뚝뚝하고 온기 없는 듯한 얼굴, 그것을 과연 ‘표정’이나 ‘안색’이란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써야 할지 꽤나 오래전부터 고민했던 것 같다. 우리들의 얼굴이 가진 느낌이 뭔지 감은 오는데 적절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고민을 1993년이었던가, 동아일보에 장기 연재된 이어령 선생의 칼럼 ‘말’로 깨끗이 해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선생은 ‘낯빛’이란 말로 이 상황을 설명했다. 표정이 밖으로 내보이는 감정이라면, 낯빛은 오히려 감정을 안으로 숨기려 할 때 생겨나는 것, 즉 표정이 외색(外色)이면 낯빛은 우리 고유의 내색(內色)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한국인은 낯빛 속에서 천 가지 만 가지 섬세한 감정의 굴곡과 변화를 읽어낸다는 것이다.

이 낯빛의 예가 말해주듯 내게 아버지 세대인 이어령 선생의 언어와 문체는 한마디로 놀라움이다. 결코 복잡한 수식과 고매한 언어를 동원하지 않으면서 술술 풀어내는 수사학은 감탄을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다반사로 경기(驚氣)를 일으키게 한다. 당연히 선생의 글에는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다.

잠깐 거쳤던 기자 생활 때나 이후 1991년 음악평론을 시작했을 때나 어떻게든 글을 잘 쓰고 싶었다. 평론의 기본 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글쓰기다. 그러나 천부적 글 재능이 부재한 나로서는 표본이나 역할 모델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민 고민하다가 선배들에게 충고를 구하니 다들 말하는 것이었다. ‘간결하고 쉬운 글이 쓰기 어렵다. 이어령 선생의 글을 참고하라. 거기에 단문의 미학과 지혜가 있다!’

실제로 그의 글에는 ‘언어 인플레’가 없다. 불필요한 장식과 기교를 극도로 자제한다. 근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말과 글이 증명해 주듯 언어가 긴장과 재생산 없이 마구 소비되기만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언어는 더욱 짜릿하게 다가온다. 그도 이렇게 썼다. “이 언어 인플레를 막는 길은 ‘장미는 장미라고 부르지 않아도 향기롭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가슴에 새겨두는 일이다.”

부지런히 그의 명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와 ‘축소 지향의 일본인’ ‘신한국인’ 등을 구입해서 읽었다. 지금은 구체적인 내용들을 거의 잊어버렸지만 감탄 아니,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흉내를 낼 수가 없는 글이라는 사실에 깊이 좌절한 것만은 기억난다. 끝이 없는 것 같은 기막힌 언어적 상상력에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이런 글을 어떻게 써? 그냥 외워서 써먹는 게 낫겠다!’

하지만 아무리 저작권이 희미했던 시절이라고 해도 양심상 ‘표절’은 할 수 없지 않은가. 밑줄 친 것을 공책으로 옮겨 적은 게 서너 권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고 또 보곤 했다. 그러면서 글은 오랜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상상력을 쌓아 풀어내는 자연적 결과물, 심도 있는 공력의 산물임을 깨쳤다.

지향과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이어령 선생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섬세한 감정의 굴곡과 변화를 굴착해 오셨다. 이것이 그분의 평생 작업 가운데 하나였던 것처럼 섬세한 감정의 굴곡과 변화, 바로 이것이 그의 언어 전개에 담긴 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좋은 글은 완급이 조절되고, 소탈한 동시에 민감하며, 상승했다가도 원점으로 회귀하고, 온도만이 아니라 습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글이 글로 끝나지 않고 읽는 동시에 삶과 기(氣)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라야 한다. 리듬과 멜로디를 글로 풀어내기 어려운 음악 평론에 있어서 이런 능력은 필수적이다. 어떤 음악을 평론할 때 이미 글에 그 음악의 외형이 그려져야 한다.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음악인데 평론을 읽고 어떤 느낌의 음악인지 알 수 있다면, 글에 음악이 들린다면 그게 최고의 글 아닐까. 물론 나로서는 아직 턱도 없다.

이어령 선생은 또한 글만이 아니라 언변도 탁월한 분이다. 저작 아닌 말씀에도 우리는 무한감동을 준비해야 한다. 그간 여러 분야의 거장들을 만나봤지만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두 가지 능력을 겸비한 사람은 이어령 선생이 거의 유일한 분이었던 것 같다. 초대 문화부 장관 시절,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듣고 유연함과 날카로움이 공재하는 천상의 화술에 얼이 빠져버렸던 일이 생각난다. 하긴 연설을 시작하기 전 한 참석자도 “오늘은 글 아닌 말씀에 감동하는 날이네!”라고 했다.

연전에 어느 지면에 연재한 ‘디지로그’가 증명하듯 지긋한 나이에도 여전히 시대 그리고 세대와 소통하는 글을 써내시는 것도 부럽다. 민감성이 도드라진 말씀도 변함이 없다. 솔직히 이어령 선생처럼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하고 싶다. 그게 아무나 할 성질의 것이 아님은 안다. 지난 20년 동안 그저 따라 해보고 흉내 내본 것에 만족할 뿐이다.

임 진 모 음악평론가

■“평론가는욕을먹고사는직업인데…”

갚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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