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침대-식탁 만드는 데 1년…그래도 행복해요

  • 입력 2007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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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50년 동안 살았던 집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집을 지을 때 인부들의 밥을 해내느라 고생했지요. 그래서 그 집에 더욱 애착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의 인생과 함께했던 그 집이 올해 헐렸습니다.

부모님은 더 좋은 옆집으로 이사했지만 허전해하셨지요.

서운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 드리고 싶어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등받이에 격자 문양이 있는 소파를 만들다가 입을 뗀 강호석(44) 씨가 들려준 사연이다.

그는 헐린 집의 기둥과 보를 가져와 소파를 만드는 중이었다. 부모님의 새 집 거실에 들일 요량이다.

원목 가구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공방이 경기 포천시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다.

군내면에 있는 심재록 공방은 제대로 된 간판도 없었다.

원목 가구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은 시골 구석까지 찾아와 가구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 원목가구의 매력

강 씨의 소파에는 지름 5mm 정도 되는 검은색 구멍이 곳곳에 나 있었다.

“못이 박혔던 자리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자국을 메우려고 하겠지만 그냥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옛날 집의 추억을 되살리는 계기도 되고….”

50년 동안 집을 떠받쳤던 소나무였지만 전혀 오래돼 보이지 않았다. 밝은 노란색과 갈색의 나이테는 잘 어우러져 호피(虎皮) 무늬를 연출했다.

강 씨가 이 공방에 다닌 지는 1년이 좀 넘었다. 처음 와서 만든 가구는 가장 어렵다는 장롱. 주인 심재록 씨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의 새 집에 들여놓았다. 지금은 2개월째 주말을 꼬박 투자해 똑같은 소파 2개를 만드는 중이다. 그는 시골의 조용한 공방에서 자신이 몰입되는 느낌을 가졌다.

“소파의 높이는 얼마로 하는 것이 더 편할까, 등받이의 격자 간격은 어느 정도로 해야 덜 지겨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무를 자르고 홈을 팠습니다. 내 나무들이 헐겁지 않고 꽉 들어맞았을 때 희열을 느끼지요.”

소파 2개는 모양은 똑같았지만 확연히 다르다. 원목 무늬를 그대로 살리기 때문에 다른 분위기가 난다. 색깔이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고 결의 방향과 옹이의 위치도 제각각이다. 치수가 같으면 똑같은 분위기가 날 수 밖에 없는 일반 가구와 다른 점이다.

○ 나만의 가치

원목가구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수강료는 3개월에 15만 원이다. 1개월에 30만 원 안팎을 받는 서울 시내 공방과 비해 공방 운영비만 받는 수준이다. 수강생들은 3개월에 10만 원씩을 내다 자진해서 올렸다.

수강비가 싸다고는 하지만 서울과 거리가 멀어 원목 가구에 심취하지 않으면 찾기가 쉽지 않다.

10개월 된 딸을 둔 김지석(33) 씨의 집에는 장롱이 없다. 결혼할 때는 침대도 식탁도 없었다. 매트리스 위에서 자면서 주말마다 공방을 다녔다. 대학에서 공업환경학을 전공하면서 나무를 가공하려면 많은 화학물질이 첨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화학물질로 코팅된 나무는 그에게 나무가 아니었다. 1년여의 노력 끝에 침대와 식탁은 완성했지만 장롱 만들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식탁과 침대에서 화학약품 냄새 대신 소나무의 은은한 향이 납니다. 아이에게 해로운 냄새를 쏘이지 않아 무엇보다 기뻐요.”

나무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비용은 많이 든다. 아는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 심 씨가 만드는 책상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200만 원이 훨씬 넘는다. 직접 만들면 비용이 덜 들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목돈이다.

김 씨는 “한꺼번에 많은 돈이 드는 것은 맞다. 그런데 내가 쓰던 침대를 딸이 시집가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구에 담길 ‘추억’에 얼마의 가치를 매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방 수강생 중에는 새로 짓는 전원주택에 쓰일 가구와 문짝을 직접 만들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손자와 손녀가 그 가구를 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구에 담고 있었다.

○ 귀한 재료

공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먼지를 덮어쓴 판자였다. 두께가 5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두꺼운 것부터 얇은 것, 긴 것과 짧은 것 등 모양이 다양했다. 공방을 운영 중인 심 씨가 전국에서 끌어다 모은 나무들이다. 소나무를 비롯해 참죽, 은행, 아까시, 밤, 편백, 뽕, 대추, 먹감, 자작, 단풍 등의 나무가 제각각 자리를 차지했다.

“원목은 잘 뒤틀리기 때문에 최소 5년은 말려야 한다. 어떤 용도로 쓸지 결정한 다음에 말린다.”

예상했던 대로 국산 원목은 구하기 쉽지 않았다. 산중에 있는 큰 나무가 홍수나 벼락 등 재해로 쓰러져야 구해 올 수 있다. 국산 원목을 구하는 또 다른 통로는 ‘재활용’이다. 옛날 집이나 서원을 보수할 때 나오는 나무가 있으면 전국을 마다하지 않고 구해 온다.

강 씨가 소파를 만들기 위해 재활용한 50년 된 소나무는 오래된 축에 끼지 못한다. 200년이 넘는 동안 서원을 떠받쳤던 상서로운 나무도 있다. 옛날 집에 쓰였던 나무가 주인을 잘 만나면 이처럼 새롭게 태어난다.

원목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심 씨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맞춤공법으로 가구를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수강료가 싼 것은 가구 만드는 재미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는 심 씨의 소박한 꿈 때문이다.

‘원목 가구’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와 달리 실제로 가구를 만드는 작업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다. 시끄러운 회전톱 소리와 톱밥 먼지를 각오해야 한다.

나무와 함께 되살려야 할 추억이 있거나 원목 속에 추억을 담고 싶은 사람들은 그런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었다.

포천=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기계힘 빌려 가구 제작…동호인 중 여성도 많아▼

가구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다면 집 주변 목공방을 찾으면 된다.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가 되면서 목공방이 도심에 많아졌다.

공방에서는 자동화된 기계를 갖춰 놓고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가구를 만들려면 긴 나무를 자르고 나무의 겉면을 다듬는 작업이 많은데 이런 일은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자주 쓰게 되는 것은 기계톱. 기계톱으로 나무를 잘라 보면 자르는 느낌이 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잘린다. 그만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반턱맞춤으로 나무를 교차시킬 때는 교차시킬 양쪽 나무를 두께의 절반 정도씩 파내야 하는 데 이때는 자동 회전톱이 유용하다. 회전 톱날의 높이를 나무 두께의 절반 정도만 잘리도록 조정한 뒤 10∼20회씩 반복하면 잘리는 부분을 넓혀 가며 두꺼운 홈을 낼 수 있다. 톱 두께가 2mm라면 20회를 반복해 40mm 폭의 홈을 만드는 식이다. 맞춤공법으로 가구를 만들려면 작은 홈을 파야 하는 일이 많은 데 이런 작업을 해 주는 기계도 따로 있다. 나무의 겉면을 깎아낼 때는 자동 대패를 이용하기도 한다.

기계의 힘을 빌리면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가구를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가구 만들기를 좋아하는 동호인에는 여성도 많다. 강의는 책상이나 식탁, 침대 등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강생들은 첫 작품부터 ‘완성’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카페 ‘바른나무 DIY 가구 만들기’(cafe.daum.net/barunnamu)에서 가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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