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찰, 6세기 백제인들도 사용”

  • 입력 2007년 1월 10일 02시 54분


코멘트
2002년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8차 조사에서 발견된 목간. 사진 제공 김영욱 교수
2002년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8차 조사에서 발견된 목간. 사진 제공 김영욱 교수
6세기 백제인들도 한자의 새김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는 향찰 표기법을 사용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향가를 토대로 8세기 이후 신라인이 향찰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김영욱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0일 열리는 한국목간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고대 한국 목간에 보이는 석독표기(釋讀表記)’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김 교수는 이 논문에서 2002년 충남 부여군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6세기 백제 사면목간(四面木簡)의 왼쪽 옆면에서 향찰 표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주목한 부분은 ‘소리저이기신자여흑야(小吏猪耳其身者如黑也)’. 이를 김 교수는 “작은 관리(小吏) 저이(猪耳)는 몸(색깔)이(其身者) 까무잡잡하다(如黑也)”로 풀이했다.

이 중 김 교수가 향찰로 지목한 글자는 ‘저이(猪耳)’. ‘저’는 석독자(釋讀字·한자의 뜻을 따온 단어)로 돼지를 뜻하는 ‘돝’을, ‘이’는 주격조사 ‘ㅣ’를 뜻한다는 것. 따라서 ‘저이’는 ‘돝’+‘이’로 ‘도치’라고 읽혔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는 실제로 몇몇 지방에서는 여전히 돼지를 ‘도치’로 읽기도 한다는 점과 고슴도치의 ‘도치’가 여기에서 파생됐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김 교수는 “이로써 향찰 표기의 기원은 8세기 신라가 아닌 6세기 백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향가를 신라인이 창안했다는 기존의 학설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자료 해석을 미루어 볼 때 이번 연구는 매우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향찰

한자의 새김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한 표기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