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판타지 소설 ‘프레스티지’

  • 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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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레스티지’ 사진 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프레스티지’ 사진 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널 이기려다 나 자신을 속였다”… 당대 최고의 마술사들 목숨 건 한판

소설이나 영화에서 각광받는 호모 슈퍼리얼(homosuperial) 캐릭터는 크게 ‘…맨류’와 ‘…사류’로 나뉜다. 다시 시작하는 배트맨(Batman Begins), 돌아온 슈퍼맨(Superman Returns) 등 몸에 딱 맞는 레오타드를 입고 미래를 활보하는 ‘맨류’가 있는가 하면, 연금술사 마법사 등 넓은 망토를 휘두르며 과거를 파헤치는 ‘사류’가 있다.

그중에서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프레스티지(The Prestige)’(북@북스)는 마술사에 관한 판타지 소설이다. 앤드루 웨스틀리는 마녀 집회, 자연 연소, 크롭 서클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취재하는 기자이다.

어느 날 그는 ‘마술 비법’이라는 책을 소포로 받고, 제보자인 캐서린 앤지어를 만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증조부가 전설적인 마술사 앨프리드 보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캐서린 앤지어의 증조부인 루퍼트 앤지어도 보든과 쌍벽을 이루는 마술사였다.

이야기는 세기를 거슬러 19세기 마술계의 양대 산맥인 보든과 앤지어의 맞대결로 이어진다. 맞수 간 대결만큼 흥미진진한 모티브도 없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성공한 이유가 살리에르에 있듯, 드라마 ‘대장금’에는 금영이가 필요하다. 앤지어와 보든도 한 세기 내내 명예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심지어 ‘서로의 비밀 공개하지 않기’라는 마술사 간의 직업윤리마저 깨버린다.

먼저 보든이 ‘신(新)순간이동’이라는 전설적인 마술을 선보인다. 신순간이동은 1초 남짓한 동안에 30m 이상을 이동하는 묘기이다. 앤지어는 오로지 보든을 이기기 위해서 테슬라라는 전기 발명가에게서 기묘한 발명품을 사들인다.

‘섬광’이라 불리는 앤지어의 마술은 전압 2000만 V 이상의 전기장을 이용해 순간 이동을 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마술은 속임수이다. 그러나 보든의 ‘순간이동’과 앤지어의 ‘섬광’에서는 어떤 속임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비법은 무엇일까.

보든과 앤지어는 목숨을 걸고 저마다의 비법을 지킨다. 보통 마술사가 자신의 비법을 지키려 애쓰는 이유는, 그것이 천지개벽할 만큼 엄청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다. 비밀은 알려지기 전까지는 대단해 보이지만 일단 밝혀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관객들은 마술의 이면에 속임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순간 현실의 물리법칙을 깨뜨리는 마술의 환각에 빠져들고 싶어 한다. 관객을 가장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마술사는 끊임없이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연습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마술사의 역설이다.

그러나 ‘프레스티지’의 보든과 앤지어는 서로를 지나치게 증오한 나머지, 관객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는 아이러니를 범하고 만다.

‘프레스티지’란 마술의 트릭을 일컫는 동시에 신의 경지에 도달한 마술의 최고 단계를 뜻한다. 이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의 원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원래 ‘월드 판타지 어워드’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프라이즈’를 받은 판타지계의 수작이다.

영화에서는 엑스맨인 휴 잭맨과 배트맨인 크리스천 베일이 각각 앤지어와 보든 역을 맡았다. 미래형 ‘맨류’ 배역의 배우를 과거형 ‘사류’로 캐스팅한 놀란 감독의 재치가 엿보인다. 소설의 반전과 영화의 반전을 비교한다면? 자고로 프레스티지, 즉 비법은 알려주지 않는 법이다. 직접 책을 펼쳐 영화와는 또 다른 겹겹의 반전을 확인하시길.한국과학기술원 대우교수

한혜원 KAIST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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