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2년 ‘국기에 대한 맹세’ 전국 시행

  • 입력 2006년 8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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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빼놓지 않고 열리던 ‘애국조회’에서 학생들은 입을 맞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했다.

이 맹세문은 1968년 충청남도 교육위원회가 자발적으로 만들어 보급한 것이 시초다. 이후 당시 문교부가 1972년 8월 9일부터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시행하도록 했다.

1980년에는 국무총리 지시로 국기에 대한 경례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병행 실시하도록 했고, 1984년 2월에는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정할 정도로 강화됐다.

그러나 이 규정은 시대 변화에 따라 1996년 개정돼 국기 강하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를 연주할 경우 맹세문 낭송은 생략하도록 했다.

미국 공립학교 학생들도 매일 수업 시작 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맹세를 일제히 암송한다.

‘나는 미합중국 국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래 하나의 나라이며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의 나라입니다.’

이 충성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는 침례교 목사인 프랜시스 벨러미에 의해 1892년 처음 제정돼 1942년 법률로 공식 승인됐다. ‘하느님 아래’라는 구절은 원래 없었지만 1954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요청으로 의회 결의에 따라 삽입됐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 충성맹세가 법률로 공식 승인된 이듬해인 1943년 ‘아동에게 충성맹세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이 판결이 대부분 무시됐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 거주하는 무신론자인 마이클 A 뉴다우 씨가 엘크그로브 학교에 다니는 딸이 충성맹세를 하도록 강요받는 데 반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2002년 6월 샌프란시스코 소재 제9순회항소법원은 미 충성맹세가 “하느님 아래라는 구절이 들어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년 후 미 연방대법원은 충성맹세의 위헌 여부를 가리지 않은 채 동거하던 부인과 딸의 양육권 문제로 소송 중이던 뉴다우 씨의 경우 딸의 교육에 관한 결정권을 부인이 갖고 있어 딸을 대변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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