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86년 모차르트‘피가로의 결혼’ 초연

  • 입력 2006년 5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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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공연시간이 3시간이 넘는 대작(大作)이다.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앞에 낯익은 모습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오, 당신은 모차르트. 안 그래도 궁금한 게 많아요. 피가로의 결혼이 처음 무대에 올려진 게 1786년 5월 1일이니 오늘로 꼭 220년이 됐군요. 첫날 반응이 굉장했다죠?

그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본다. 20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잠시 후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정말 대단했지. 빈의 부르크 극장이었는데 관객들이 아리아와 듀엣마다 앙코르를 외쳐대는 바람에 예정된 공연시간의 2배가 걸렸다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3년 전이었죠. 주인공 피가로는 멋진 인물이에요. 초야권(初夜權)이 있던 시절 약혼녀를 빼앗으려는 주인에게 맞서 결국 사랑을 지켜 내죠. ‘시민계급의 상징’으로 불릴 만해요.

“원작자 피에르 보마르셰(1732∼1799)가 상당히 비판적인 인물이야. 오페라에도 계급과 사회 모순을 풍자하는 여러 장면이 나온다네.”

―피가로의 아리아 가운데 특히 ‘백작께서 춤추시겠다면 기타 반주를 해 드리지요’라는 대목이 그렇죠. 계급에 대한 도전과 분노에 비아냥거림까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프랑스 왕 루이 16세가 ‘이건 혐오스럽기 짝이 없어. 무대에 올릴 수 없어’라며 희곡을 집어던진 것은 유명하지. 원작을 연극무대에 올릴 때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은 상당히 잘라냈다네. 기득권층은 이 작품이 풍기는 혁명의 냄새를 견디기 어려웠을 거야.”

―피가로라는 인물엔 당신의 모습도 투영된 게 아닌가요.

줄곧 밝은 톤으로 빠르게 얘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순간 잦아들었다.

“출신은 평민, 생활의 기반은 궁정…. 나는 양쪽에 발을 담그고 있었지. 밥벌이를 위해선 궁정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네. 후대의 베토벤만 해도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기가 쉬웠지. 음악을 이해하는 부르주아 계급이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을 때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피가로와는 달리 실제 당신의 사랑은 실패한 게 아닌가요? 부인 콘스탄체는 원래 맘에 두던 여인의 동생이었는데….

“삶이 원래 그런 것이지. 사랑이 어디 맘처럼 되던가. 내 나이 서른다섯. 사랑을 완성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지금도 후회는 없다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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