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8년 고교-대학 군사훈련 결정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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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마당 한쪽에서 젊은이들이 소총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오리걸음을 하며 얼차려를 받는다. 한쪽에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총검술 훈련을 하느라 젊은이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우중충한 얼룩무늬 제복을 입고 허리엔 요대, 발목엔 각반까지 차고 있다. 그러나 이 젊은이들에게 110.3cm에 4.37kg이나 되는 M1 소총은 너무 크고 무거워 보인다.

군대 연병장이 아니다. 정정(政情)이 불안한 어느 후진국의 반군 캠프도 아니다. 바로 1970, 80년대 대한민국 고교 운동장의 모습이다. 전국 어느 고교에서든 쉽게 볼 수 있던 ‘교련’ 교육의 현장이다.

1968년 4월 5일 국방부는 고교와 대학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1968년은 1·21사태가 일어난 해다. 한반도에 위기가 감돌았다.

이에 정부는 유비무환을 내세워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주당 3시간짜리 ‘비중 있는’ 교과를 새로 만든 것이다. 1969년부터 고교생이든 대학생이든 모든 남학생은 제식, 총검술, 각개전투 등 군사훈련을 3년 동안 공통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했다.

훈련은 플라스틱 모의총으로 했지만 ‘진품’도 일부 지급됐다. 학교에 ‘무기’를 보관할 무기고까지 생겼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처럼 군복 입은 예비역 장교들이 교련 교사로서 ‘진주(進駐)’했다. 학생회장은 연대장, 대대장으로 불렸다. 학교가 ‘병영(兵營)’과 다를 바 없었다.

1971년엔 여고생들에게도 확대했다. 여고생들은 주로 제식, 응급처치 등을 훈련했다. 1976년부터는 대학생들을 문무대로 소집하는 병영집체교육을 추가했다. 문무대에선 유격훈련도 했다.

학생들은 교련에 반대했다. 안보를 핑계 삼아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길들이려는 술수라고 봤다. 대학생들의 시위에서 교련 폐지는 주된 요구 사항이었다. 시위는 교련 거부로 이어지곤 했다. 학생들은 집체교육 불응 및 퇴소로 맞서기도 했다. 정부는 교련을 거부하면 즉각 징집하는 한편 3년간 이수하면 현역 복무기간을 단축해 주는 당근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1981년부터 2학년까지로 단축했다가 1989년엔 결국 폐지했다.

교련의 명줄은 고교에서 훨씬 질겼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6년에야 교육 내용에서 총검술, 각개전투 같은 군사훈련을 뺐다. 2003년엔 비로소 일반선택교과로 바꿨다. ‘강요’되던 과목의 운명이 이제 학생들의 ‘선택’에 맡겨졌다. 학생들의 선택은? ‘선택하지 않음’이다.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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