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96주기…비류코프家, 安의사와 代이은 인연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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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이(안중근)의 행위를 살인행위라고 매도하기보다는 독립을 회복하려는 정당방위라고 보아야 옳다.”

26일 서거 96주년을 맞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자 당시 러시아의 한 외교관이 비난을 쏟아내던 자국 정부와는 달리 끝까지 안 의사를 외롭게 옹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외교관은 당시 원산 주재 러시아 영사였던 니콜라이 비류코프(1861∼1916). 모스크바대 역사학부 박종효(朴鍾涍) 객원교수가 최근 모스크바의 러시아국립군사문서보관소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냈다.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군 첩보원이었던 비류코프 영사는 사건 직후 하얼빈으로 급파돼 조사를 벌인 후 10월 31일 러시아군 총사령부에 보고서를 보냈다.

이 보고서는 당시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안 의사를 ‘폭도’ 혹은 ‘살인자’로 규정했다. 사건 직후 러시아의 표트르 스톨리핀 총리가 “러-일 간의 평화 수립을 위해 노력한 위대한 인물이 ‘야수적인 음모’에 희생됐다”고 일본 정부에 조문했을 정도였다.

비류코프 영사의 증손녀인 옐레나 비류코바(사진) 씨는 “할아버지는 물론 조국인 러시아를 위해 일했지만 한국에서 20여 년을 근무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고 말했다. 언론인 출신인 비류코바 씨는 비류코프 영사의 한국 내 활동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포병 대위로 극동에서 근무 중이던 비류코프 영사는 1897년 고종이 서울에 러시아어학교를 세우자 교사로 부임해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조선에서 첩보활동도 했다.

비류코프 영사는 10여 명의 한국인 제자들의 러시아 유학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는 1916년 공교롭게도 안 의사의 거사 장소였던 하얼빈에서 병사해 그곳에 묻혔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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