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세잔의 산을 찾아서

  • 입력 2006년 1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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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그림 ‘생빅투아르 산’(1888∼1890년). 그림 속의 산을 오르면서 페터 한트케는 치열한 예술정신을 깨닫는다. 사진 제공 아트북스
폴 세잔의 그림 ‘생빅투아르 산’(1888∼1890년). 그림 속의 산을 오르면서 페터 한트케는 치열한 예술정신을 깨닫는다. 사진 제공 아트북스
◇세잔의 산을 찾아서/페터 한트케 지음·이중수 옮김/216쪽·1만9000원·아트북스

페터 한트케(64)는 일찍이 폴 세잔(1839∼1906)에게 매혹됐다. 그는 1979년 세잔의 그림 ‘팔짱을 낀 남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 ‘때늦은 귀환’을 썼다. 세잔의 ‘생빅투아르 산’ 연작에 푹 빠진 그는 소설을 출간한 뒤 이듬해 그림 속의 산을 직접 찾아 나섰다.

‘세잔의 산을 찾아서’는 그때의 기행문이다.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한트케와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의 정신적 교감이기도 하다. ‘관객모독’(1966년)으로 커다란 충격을 던진 한트케. 생빅투아르 산을 오를 즈음 그는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던’ 때를 맞았다. 문학적인 전환이 요구됐던 시기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에 자리한 닭 볏 모양의 하얀 석회암 산. ‘단 한번도 뭔가에 끌려 본 적이 없었던’ 한트케를 너무도 쉽게 허물어뜨린 생빅투아르 산이다. 산을 오르면서 한트케는 세잔의 삶을 추억하고 화가의 작품세계를 성찰한다. 산에 오르자 하나의 산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색감을 발견한 세잔의 시선과 눈을 맞추게 된다.

산행 초기 실제 산의 모습과 화가가 그린 산의 모습이 다르다는 데 의문을 가졌던 한트케는, 산을 오르면서 ‘실제 산을 달리 그린 것이 아니라 더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상상력의 힘임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은 한트케의 고민을 풀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쓴 글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는지,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이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고심하던 그에게 산이 답을 줬다. ‘상상력’이었다.

책이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한 줄 한 줄이 단단한 사색으로 짜였다. 독일어로 쓰인 많은 작품이 그렇듯 내용이 무겁고 깊다. 책의 향기는 공들여 여러 번 읽음으로써 맡아진다. 화가와 작가의 창조물은 다르지만 예술의 정신은 같다. 한트케가 세잔에게서 발견한 것은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었다.

작가는 산을 내려오면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치열해짐으로써 내가 생각한 바를 타인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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