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인, 그들도 한국인입니다]<上>여전한 차별과 냉대

  • 입력 2006년 1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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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또 그렇게 살렵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처럼 살기 힘든 혼혈인이 우리 사회에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배기철 국제가족한국총연합 회장(가운데)과 안성자(오른쪽) 씨 부부, 역시 혼혈인인 오죠디 씨는 지금까지 받아 온 멸시 때문에 더는 울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훈구 기자
“밝고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또 그렇게 살렵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처럼 살기 힘든 혼혈인이 우리 사회에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배기철 국제가족한국총연합 회장(가운데)과 안성자(오른쪽) 씨 부부, 역시 혼혈인인 오죠디 씨는 지금까지 받아 온 멸시 때문에 더는 울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훈구 기자
《오죠디(42) 씨는 길에서 경찰관의 검문을 받으면 일부러 한국말을 어설프게 하면서 간단한 영어 몇 마디를 섞는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면 경찰관이 혼혈인인 것을 눈치 채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이것저것 묻는 게 많기 때문이다. 영어를 쓰면 미국인으로 여기고 깍듯이 경례까지 하면서 그냥 보내 주는 경찰관도 있다.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백인계 혼혈인인 오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한국인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20세가 되자 여러 공장에 취업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쓴잔을 마셔야 했다.》

오 씨는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은 제2국민역에 편입한다’는 병역법 조항에 따라 직업 군인이 될 수도 없었다. 또 군대를 갈 수 없었지만 병역 의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오 씨는 현재 유흥업소 디스크자키(DJ)로 일하고 있다.

나이트클럽 가수로 활동 중인 이제임스(44) 씨. 그의 두 팔은 온통 담뱃불로 지진 흉터투성이이다. 술 취한 손님들이 ‘튀기’(혈종이 다른 종족 간에 태어난 아이라는 뜻)라고 놀리며 시비를 걸어올 때마다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 자해를 했기 때문.

이 씨는 요즘도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어린이들을 자주 만난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계 혼혈인인 그도 역시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 곳곳에선 혼혈인에 대한 차별과 냉대가 여전하다.

백인계 혼혈인 박근식(朴根植·54) 씨는 “대부분의 공장은 한국 국적을 가진 혼혈인을 외국인 산업연수생처럼 취급하며 월급을 한국인 직원보다 적게 주려한다”면서 “혼혈인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자이기 때문에 취업 할당제를 실시해 장애인처럼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1990년대 중반부터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여성들과 결혼하는 한국인 남성이 늘면서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코리안 아시안)’도 또래 아이들의 차별 대우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주연(가명·10·충북 제천시) 양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서 “너는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니까 필리핀으로 가서 살라”는 놀림을 자주 받는다. 김 양은 놀림을 받은 뒤 울면서 귀가할 때가 종종 있다.

코시안 나진희(가명·8·전북 부안군) 양은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놀리는 친구들과 싸워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돼 귀가하는 일이 잦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9월 현재 국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는 6052명.

1999년 이후 결혼한 11만5000여 쌍의 국제결혼 부부의 자녀는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지 않았다. 이들이 커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교육 현장에서 혼혈인에 대한 ‘왕따’ 문제가 커다란 사회 이슈로 부상할 우려가 크다.

교육부 초중등교육정책과 오석규(吳錫奎) 연구관은 “앞으로 10년 뒤에는 일부 농어촌 지역학교 재학생 가운데 코시안이 4분의 1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에 대한 따돌림이나 차별 예방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申光榮)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단일민족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피부색이나 외국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多)문화 교육이 부족하다”며 “혼혈인 문제가 사회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경험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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