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독창회 연 운동권출신 늦깎이 테너 임정현씨

  • 입력 2004년 11월 9일 19시 12분


코멘트
문화운동을 하다 뒤늦게 ‘본업’으로 돌아가 유학을 다녀온 테너 임정현씨는 현실을 반영한 창작 오페라를 만드는 게 꿈이다. 전영한기자
문화운동을 하다 뒤늦게 ‘본업’으로 돌아가 유학을 다녀온 테너 임정현씨는 현실을 반영한 창작 오페라를 만드는 게 꿈이다. 전영한기자
지난달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는 한 ‘늦깎이’ 테너의 귀국 독창회가 열렸다. 불혹의 나이에 첫 독창회를 연 테너 임정현(林貞鉉)씨.

이른바 ‘386세대’인 그의 삶의 궤적은 여느 성악도와는 다르다. 부산 출신인 그는 서울예고를 거쳐 1983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노래를 잘해서, 노래가 좋아서 성악도의 길을 지망했지만, 정작 음대 입학 후에는 ‘노래를 포기했다’.

“그때는 ‘노래로 얼마만큼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을까’가 저의 화두였죠. 그런데 클래식은 마치 저 높은 구름 위에서 세상 현실을 피해 가는 것 같아 싫었지요.”

그 대신 그는 현실을 노래하는 노래패를 찾았다. 이때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이 김민기 현 학전 대표,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 ‘그날이 오면’ 등을 작곡한 문성현씨, 대중문화 평론가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등이다. 임씨는 이들과 함께 1984년 음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에 참여했다. 김민기씨가 주축이었고, 당시 무명이던 김광석은 세션을 맡았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노찾사의 실질적 모태였던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음악분과’의 노래패 ‘새벽’에 몸담으며 울산 현대중공업, 서울지하철 노조 등의 문화 활동을 지원했다.

1991년 서울 모네트 합창단에 들어가 단원 겸 기획실장을 맡았다. 생활인으로서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지만, 막상 성악을 다시 시작하고 보니 ‘그동안 내 본업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남보고만 잘하라고 했던 게 자기기만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떠난 유학길.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7년이 흘렀다. “젊은 시절엔 혈기가 뜨거웠죠. 돌이켜보면 편협한 생각도 많았고요. 음악도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음악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현실을 반영한 창작 오페라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