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돌 넘긴 '성 라자로' 마을 원장 김화태 신부

  • 입력 2002년 2월 9일 15시 57분


김화태 신부
김화태 신부
설날을 맞아 9일 ‘저 낮은 곳’에서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돌보고 있는 성직자 한분을 찾아갔다.

경기 의왕시 오전동 모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천주교 ‘성 라자로’ 마을 원장 김화태 신부(51). 그는 20년간 성 라자로 마을을 이끌던 이경재 신부가 98년 선종(타계)해 갑작스럽게 원장의 중책을 맡았다.

“무의탁 한센병(나병) 환자 치료와 자활터전인 라자로 마을 원장에 취임한 지 3년6개월이 됐습니다. 아직도 마치 내 ‘옷’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버겁고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성 라자로 마을은 초대원장인 고 이경재신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는 곳. 그는 “이경재 신부님은 특별한 분”이라며 “원장 직을 맡아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분이 어깨에 진 짐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이었는가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김 신부가 새 원장으로 취임했을 무렵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터졌다. 이경재 신부 재임 당시 3만5000여명이던 후원자가 절반으로 줄었다. 마을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

“IMF 사태로 위기를 맞으면서 모든 게 내 책임으로만 느껴졌습니다.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원장을 맡아 환우(患友)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가 라는 회의도 있었습니다. 신부란 소명은 고독하고 외롭다고 하죠. 하지만 이때만큼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고, 절실하게 기도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를 잃어 깊은 슬픔에 잠긴 라자로 마을은 김 신부와 공동체의 노력으로 차츰 안정을 찾았다. 새로운 후원자도 늘고 있고 지난해 6월 3일에는 라자로 마을 설립 5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음력 5월 2일생인 그의 생일이었다.

“98년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 원장직을 고사했지만 마을을 둘러보다 비문에 있는 설립일이 50년 6월 2일이서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제 50돌을 넘긴 라자로 마을이 갈 길은 그동안 받은 사랑을 쪼개고 나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국내의 다른 시설과 중국, 베트남의 한센병 환자 돕기 등 경제적 여건이 더 어려운 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9월 결성된 ‘유럽지역 라자로 돕기회’가 모으는 후원금과 자선음악회의 수익금은 해외 환우를 돕는 데 사용할 예정입니다. 사랑은 넉넉할 때만 돕는 것은 아니죠. 어려울 때 서로 나누어야죠. 라자로 마을의 환우들도 작은 정성을 보탤 생각입니다.”

인터뷰중 수줍고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그는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화제가 이르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해 중국 옌지(延吉)의 나환자촌을 방문한 뒤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족과 조선족 환우들이 있었는 데 밖에는 한글로 ‘문둥병 환자촌’이라고 쓰여 있어요. 하지만 치료가 되면 몇 개월 뒤 다시 직장으로 복귀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경제는 좀 낫다고 하지만 한센병에 관한 사회적 인식에서는 우리가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신부는 “치료를 마쳐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능력이 없는 한센병 환자들이 가족과 생이별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며 “20여년간 한센병 환우를 돌보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원봉사와 함께 TV에 나가 사회의 편견과 무지를 바로잡고 싶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라자로 마을을 위한 자선음악회는 5월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10월에는 성악가 조수미씨를 초청해 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후원회 가입문의는 인터넷 홈페이지 www.lazarus.or.kr과 전화 031-452-5655 등을 통해 하면 된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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