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게임 오버' 세기의 아이디어 주인은 못챙겨

  • 입력 2000년 9월 1일 18시 43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먹기도 한다. 길 닦아 놓았더니 뭐부터 지나가기도 한다. 애쓴 사람은 따로, 덕 보는 사람 따로.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종종 삶을 속인다.

이 책은 바로 ‘재주 부린 곰’과 ‘열심히 길 닦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다른 사람들만 부자로 만든 이들을 저자는 ‘페히포겔(Pechvogel·불운아)’이라 부른다. “21세기에 인류에게 결코 없어선 안 될 창작물을 만들었으나, 마땅히 누려야 할 부와 명예는 다른 사람의 몫인 불우한 이들”이다. 순전히 자신의 판단착오, 근시안적인 안목, 사소한 실수로 자초한 일이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사소한 실수로 돈-명예 허공에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인 롤링 스톤스에겐 이런 일화가 있다. 무명시절에 리더 믹 재거 등 멤버들은 카를로 리틀이라는 연주자에게 드러머를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너희에겐 미래가 없다’면서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롤링 스톤스는 전설적인 밴드가 되어 지금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반면, 카를로 리틀은 요즘 조그마한 핫도그 가게를 운영하며 힘들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순간의 실수가 평생을 고단하게 만든 것이다.

승리의 상징으로 세계 신발시장을 석권한 나이키의 심볼을 만든 그래픽 전문가 캐롤린도 비슷하다. 단돈 35달러에 갈고리 모양의 나이키 심볼을 창업자인 친구에게 팔아 버렸다. 지금 그 가치를 따지자면 가히 천문학적인 가격이 되겠지만.

러시아에도 애석한 사람이 있었으니, ‘보드카 이후 최대의 발명품’이라는 컴퓨터 게임 ‘테트리스’를 발명한 바딤 게라시모프다. 그는 16세에 개발한 이 게임이 후에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친구가 내민 권리 포기 서류에 덥썩 서명해 버렸다. 지금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컴퓨터를 배우는 유학생으로 사는 그의 심정은 어떨까.

‘제록스 복사기’를 만들고도 복사기의 대중화를 예상하지 못한채 회사를 떠나버린 오토 코르네르나, 헤밍웨이나 스티븐 킹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를 문전박대한 출판사들도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어이없이 부와 명예를 날려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안타까우면서도 교훈적이다. 아마 많은 사업가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거나 가슴이 뜨끔해 질 것이다.

◇타이밍 선택-인내가 성공 좌우

사실 비슷한 경우가 외국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성장한 자동차 분야에 그런 이가 있다. 1950년대말부터 정비공장 수준에서 자동차 조립을 시작한 하동환이라는 사람이다. 1960년대 초반에는 ‘하동환 자동차’(쌍용자동차 전신)라는 자동차 전업사를 만들어 자체 기술로 중고품을 조립한 버스까지 만드는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국내 수요가 없는 가운데 너무 빨리 자동차 산업을 시작한 탓에 결국 남의 손에 회사를 넘겨야 했다.

본인은 다소 서운하게 들을지 몰라도 ‘한글과 컴퓨터’를 세운 ‘컴퓨터 천재’ 이찬진 사장도 애석한 경우다.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주가 폭등으로 떼돈을 벌었을 때는 자신의 지분을 대부분 남에게 넘겨준 뒤였다. 또 냉각캔 기술로 한때 큰 주식 이득을 본 것은 발명자가 아니라 그 특허를 싼 값에 사들였던 회사였다.

사업을 해 보면 사업가의 안목이 갖는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돈이란 다 때가 있다는 말도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사업가에게서 성공이란 결국 안목과 때를 가릴 줄 아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매사를 서둘러서 결정하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젊은 벤쳐기업 종사자들에게 좋은 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다. 전재민·이미옥 옮김, 320쪽 9700원.

엄길청(경기대 교수·씽크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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