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책꽂이]'곤충의 행성'

  • 입력 2000년 1월 28일 19시 01분


▼'곤충의 행성' 하워드 E. 에번스 지음/사계절 펴냄▼

가장 IQ가 높았던 생물학자로 흔히 전설적인 영국의 진화유전학자 홀데인(J B S Haldane)을 꼽는다. 홀데인은 그가 발표했던 많은 중요한 학술논문들로도 유명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즐겨 찾았던 대학 앞 술집에서 남긴 것으로 구전되는 몇 마디의 말들로 더욱 유명하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홀데인을 둘러싼 학자들과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에게 “당신은 진화학을 공부하는 생물학자로서 조물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또 진화냐 창조냐 하는 식의 진부한 토론을 하자는 것이냐는 표정으로 “조물주께서는 딱정벌레를 병적으로 좋아하신 괴벽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전해온다.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윌슨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줄잡아 100만종 넘게 알려진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 중 가장 종수가 많은 것은 단연 딱정벌레들이다. 거의 30만 종 가까이 알려졌는데, 이는 전체 곤충 종수의 3분의 1에 달하고 전체 동물 종수의 4분의 1을 웃도는 엄청난 숫자다.

그러나 이 책 ‘곤충의 행성’의 저자 하워드 에번스의 계산은 다르다. 그는 언젠가 다른 동물들의 몸 속에 알을 낳아 애벌레들로 하여금 살아 있는 동물의 몸을 갉아먹으며 성장한 후 성충으로 부화하여 날아 나오도록 하는 그 많은 작은 기생벌들이 모두 기재되는 날이면 모든 개미들과 벌들을 총망라하는 벌목(目)이 딱정벌레목보다 더 다양한 동물군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행성의 삶’이라는 원제를 지닌 이 책에는 수적인 면에서 명실공히 지구의 주인인 곤충들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기 새끼들로 하여금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싱싱한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잔인한 기생벌들이 사실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준다는 내용으로부터 나비, 잠자리, 귀뚜라미, 반딧불이는 물론 파리, 빈대, 바퀴벌레에 이르기까지 진기한 곤충들의 이야기들이 쉽게 상식을 뒤엎는다. 스스로 지구의 주인인양 착각하는 인간들에게 현대판 파브르의 곤충기인 이 책을 권한다.

최재천(서울대 생물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