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양일모/키케로 통해 본 로마-라틴의 전통

  • 입력 1999년 12월 17일 19시 23분


▼'키케로-유럽의 지적 전통' 다카다 야스나리 지음/ 이와나미 서점▼

근대 일본의 지적 풍토가 지니는 특징 중의 하나는 서양 사상에 대한 철저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지식인은 백년 남짓한 기간동안 유럽 문화가 생산해낸 거의 모든 작품을 열심히 일본어로 번역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학계에 아직도 저술이 번역되지 않은 서양사상가가 있다.

바로 올해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키케로선집’(전14권)의 주인공 키케로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공화정 시기 케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던 격동의 시기를 살다간 비운의 정치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은 키케로의 그러한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 철학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남긴 편지 수사학(修辭學)법정변론 철학저술 중에서 대표적인 한두 편을 소개하고 있다. 서술 방식은 저술에 대한 평면적 설명을 넘어서, 유럽에서 키케로의 작품이 시대적 요청에 따라 재발견되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재평가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입체적 설명이다.

즉 르네상스, 계몽시기에 키케로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도달했다가 그 이후 고전적 교양이 쇠퇴함에 따라 점차 관심이 식어 가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유럽의 집단적 문화적 무의식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라틴적인 전통을 키케로에서 찾고자 한다.

키케로를 유럽 사상의 역사적 변화 속에서 보고자 하는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왜 일본에서 키케로 연구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일본의 유럽 연구는 지금까지 유럽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개별 국가별로 나누어 연구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고전학 연구에서도 로마보다는 그리스를 중시하는 경향이 우세했기 때문에 유럽의 지적 전통의 저류인 라틴적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일본의 서양 연구가 이처럼 왜곡된 이유로 저자는 메이지 일본이 추구했던 부국강병과 실용주의 노선을 들고 있다. 즉 유럽을 관찰하면서도 부국강병에 성공한 열강만이 지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을 뿐 라틴문명의 본원지인 이탈리아는 후진국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외적 이유로는 메이지 일본이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던 19세기의 독일 사상계를 거론하고 있다. 당시의 독일이야말로 문화적 열등의식을 떨쳐버리고자 그리스 본원주의를 이상으로 삼고, 서구문화의 공통기반인 라틴적 전통을 아류로 취급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일본의 새로운 서양연구가 연구가 그리스적 전통과 로마·라틴적 전통을 함께 파악해야 할 것을 역설하면서, 일본 학계의 서양학이 지닌 편견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야심작이다.

양일모<일본 도쿄대 상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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