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817>君子는 義以爲質이요 禮以行之하며 孫以出之하며…
고전에서 말하는 군자란 어떠한 존재인가. 그 대답이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 담겨 있다. 義는 聲訓(성훈)의 풀이에 따르면 마땅할 宜(의)다. 주자는 마음을 제어하여 일의 마땅함에 부합시키는 것이 義라고 설명했다. 義以爲質은 以義爲質과 같다. 質은 質
- 201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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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말하는 군자란 어떠한 존재인가. 그 대답이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 담겨 있다. 義는 聲訓(성훈)의 풀이에 따르면 마땅할 宜(의)다. 주자는 마음을 제어하여 일의 마땅함에 부합시키는 것이 義라고 설명했다. 義以爲質은 以義爲質과 같다. 質은 質
조선의 정조대왕은 젊은 관료가 모이기만 하면 천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개탄했다. 그래서 규장각 신하들을 질책하여 명망가의 출신으로 요직에 오른 젊은 관료들이 자기 몸을 단속하지 않고 그저 익살 부리는 것이나 좋아해서 몸은 모범이 될 만한 행실을 쌓지
如之何, 如之何는 ‘어찌할까, 어찌할까’인데, 나의 덕을 어떻게 해야 향상시키며 나의 공부를 어떻게 해야 닦을 수 있을까 하고 深思熟考(심사숙고)하느라 마음 아파하고 조바심 태우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한다면 공자는 자신도 그를 어찌할 수
宋나라 학자 呂祖謙(여조겸)은 젊어서 기질이 거칠어서 밥상이 맘에 들지 않으면 그릇을 부수고는 했다. 뒷날 병을 앓으면서 ‘논어’를 읽게 되었는데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을 읽고는 문득 깨달아 거칠게 성내는 기질을 버렸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昭儀(소의) 張
한국일본학회는 2월 5, 6일 오후 3시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과 동아시아’(5일)와 ‘동아시아의 일본어교육과 일본연구’(6일)를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연다. 02-568-4662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장)에서 공자는 臧文仲 개인을 평가한 말 속에 보편 이념을 담았다. 其∼與는 감탄과 추정의 어조를 드러낸다. 不與立은 더불어 서지 않았다는 말로, 함께 조정에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문중은 魯(노)나라 대부로 성은 臧孫(장손)
‘논어’에는 같은 말이 다른 편에 재차 기록된 예가 간혹 있다. ‘衛靈公(위령공)’에서 공자는 ‘덕을 좋아하기를 여색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탄식했는데 이 말은 이미 ‘子罕(자한)’에도 나왔다. ‘공자세가’와 ‘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57
우리가 목전의 안일에 익숙해서 장래의 일을 숙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논어’ ‘衛靈公(위령공)’에서 공자는 장래를 숙고하지 않으면 발밑에서 憂患(우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장래의 일만 생각하고 발밑의 작은 일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서 공자는 先王의 禮樂(예악)을 참작해 萬世의 道를 세우는 것이 천하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顔淵이 천하 다스리는 도는 묻지 않고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겸손하게 물었다. 夏之時는 夏나라 冊曆(책력)으로 날이 갓 어두
‘논어’ ‘衛靈公(위령공)’에서 子貢이 仁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공자는 현명한 대부를 섬기고 어진 선비를 벗 삼아 切磋(절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問爲仁은 仁의 실천 방법을 물은 것이니, 仁의 본질을 물은 것이 아니다. 단, 일본의 오규 소라이(
殺身成仁(살신성인)이라는 유명한 성어가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서 나왔다. 志士는 道에 뜻을 둔 선비, 仁人은 어진 마음을 지닌 자다. 곧 志士는 仁을 體得(체득)하려고 뜻을 둔 선비, 仁人은 仁을 이미 체득한 사람이다. 仁은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 덕목
우리는 남과의 관계에서 失人이나 失言을 말아야 한다. 失人이란 흉금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만났는데도 그와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아 사람을 놓치는 것을 뜻한다. 失言이란 타이르면 改過遷善(개과천선)할 텐데도 잘못을 말해주지 않아서 그 사람이 죄악에 빠지거나, 타
근대 이전의 지식인은 현실 상황에 따라 벼슬을 살거나 벼슬에서 물러나서 時中(시중)을 얻고자 했다. ‘논어’ ‘衛靈公(위령공)’에서 공자는 史魚(사어)가 화살같이 곧았다고 칭찬한 뒤, 사어보다는 거伯玉(거백옥)이야말로 時中을 얻었다고 칭송했다. 거백옥은 衛(위)
“한일강제병합은 불법조약” 국제 공인 원년 될까 2010년 한국 지식 사회의 이슈는 ‘근현대사의 성찰에서 찾는 미래’로 요약할 수 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그 중심에 있다. 우리 현대사의 변곡점인 6·25전쟁이 발발 60년을 맞고, 4·19혁명 50년, 5·18민주화운
신라 진평왕은 사냥 때문에 정사를 소홀히 해서 병부령 金后稷(김후직)이 간해도 듣지 않았다. 김후직은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신하로서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왕이 사냥 다니는 길목에 묻으라고 세 아들에게 유언했다. 그 후 진평왕이 사냥을 나가는
參前倚衡(참전의형)이라 하면 忠信과 篤敬을 항상 생각한다는 뜻이다. ‘논어’ ‘衛靈公(위령공)’에서 나왔다. 子張(자장)이 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말이 忠信하고 행실이 篤敬하여야 한다’고 대답했다. 行은 남의 인정을 받아 떳떳하게 행세함을
‘논어’ ‘衛靈公(위령공)’을 보면 子張(자장)이 어떻게 해야 行할 수 있느냐고 묻자 공자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子張은 공자보다 48세나 어린 제자였다. 이보다 앞서 ‘顔淵(안연)’에서 子張은 어떻게 해야 達할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行은 達과 같되, 行은 行
성스러운 천자인 순임금은 無爲而治를 했다고 한다.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서 공자가 밝힌 말이다. 無爲의 다스림은 정치적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만 무리 없이 실행하고 작은 계교를 일절 부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혹은 聖人의 성대한 德에 백성
由는 子路의 이름이다. 공자는 자로에게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논어’ ‘衛靈公(위령공)’에 실려 있는 공자의 이 말에서는 비탄의 감정이 배어나온다.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던 중에 陳(진)과 蔡(채) 사이에서 곤경에 처했다. 그때 子路는 “군자도 이토록 곤
공자는 학문지식이나 도덕행위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체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아 一以貫之를 중시했다. 줄여서 一貫이라 한다.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서 공자는 학문지식과 관련해서 一貫을 강조했다. 한편 ‘里仁(이인)’에서는 도덕행위가 忠恕(충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