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121>武丁이 朝諸侯, 有天下호되…
맹자는 자신이 제나라의 국정을 맡아본다면 제나라로 하여금 천하에 왕 노릇 하게 만들리라고 했다. 제자 公孫丑(공손추)는 文王도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한 데 불과했던 사실을 들어 의문을 제기했다. 맹자는 문왕이 이미 천하의 王者(왕자)가 될 수 있었지만 殷(은)나라의
-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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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자신이 제나라의 국정을 맡아본다면 제나라로 하여금 천하에 왕 노릇 하게 만들리라고 했다. 제자 公孫丑(공손추)는 文王도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한 데 불과했던 사실을 들어 의문을 제기했다. 맹자는 문왕이 이미 천하의 王者(왕자)가 될 수 있었지만 殷(은)나라의
《앙드레 지드,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 마르셀 프루스트, 앙드레 말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프랑스 문학사를 수놓은 쟁쟁한 이 작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갈리마르 출판사
사서(四書) 중의 하나로 전통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애독서였던 ‘중용(中庸)’이란 책에는 ‘하늘이 덮고 있고, 땅이 싣고 있는 곳(천지소복, 지지소재·天之所覆, 地之所載)’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곳은 바로 하늘과 땅 사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맹자는 자신이 齊(제)나라의 當路者(당로자·국정을 담당하는 지위나 직분에 있는 사람)가 되어 仁義(인의)의 정치를 실행한다면 제나라로 하여금 천하의 王者(왕자)로 만들기를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제자 公孫丑(공손추)는 文王조차도 은나라
公孫丑(공손추)가 자신에게 제나라 정치를 담당하면 管仲(관중)과 晏子(안자)처럼 업적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묻자 맹자는 대국 제나라가 仁義(인의)의 정치를 행한다면 천하의 王者가 되기가 무척 쉽거늘 관중과 안자는 제나라로 하여금 바른 정치를 실행하게 하지 못했다
맹자는 혹자가 曾西를 管仲(관중)과 비교하자 증서가 ‘너는 어째서 나를 관중에게 견주는가?’라고 책망한 일을 들어, 자신이 관중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럼으로써 제자 公孫丑(공손추)가 자신에게 제나라 정치를 담당하면 관중과 晏子(안자)처럼 업적
전국시대는 仁義(인의)의 이념을 내세우는 王道보다는 부국강병을 통해 자국을 번영케 하는 (패,백)術(패술)이 선호되던 시대였다. 그렇기에 맹자의 제자 公孫丑(공손추)조차도 스승께서 제나라의 정치를 담당한다면 管仲(관중)과 晏子(안자)처럼 업적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公孫丑(공손추)가 스승께서 제나라에서 정치를 담당한다면 管仲(관중)과 晏子(안자)가 그랬듯이 (패,백)業(패업)을 이룰 수 있느냐고 묻자 맹자는 그의 편협한 관점을 꾸짖었다. 그러면서 曾西(증서)와 어떤 사람의 대화를 인용해 자신의 속내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혹자
“끝 끝없는 바람/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아! 자유의 바람/저 언덕 너머 물결같이 춤추던 님/무명무실 무감한 님/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지녀 볼래 지녀 볼래.” 한대수☆(63)의 노래, ‘바람과 나’의 일부분이다. 30, 40대에게는 아마 비명에 간 가수 김광
‘공손추·상’의 제1장에서 公孫丑(공손추)가 스승께서 만일 제나라에서 정치를 담당한다면 管仲(관중)과 晏子(안자)가 그랬듯이 (패,백)業(패업)을 이루게 할 수 있느냐고 묻자, 맹자는 공손추가 일국의 지역주의 관점만 취한다고 꾸짖었다. 그러면서 맹자는 曾子(증자)
‘공손추·상’의 제1장에서 맹자의 제자로서 제나라 사람인 公孫丑(공손추)는, 스승께서 만일 제나라에서 정치를 담당한다면 管仲(관중)과 晏子(안자)가 그랬듯이 당시의 제나라로 하여금 패권을 쥐게 할 수가 있겠느냐고 여쭈었다. 이에 대해 맹자는 공손추가 제나라 사람
公孫丑(공손추)는 맹자의 제자로, 齊(제)나라 사람이다. 그는 스승께서 만일 제나라에서 정치를 담당한다면, 저 춘추시대의 管仲(관중)과 晏子(안자)가 제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제나라로 하여금 (패,백)業(패업·제후의 으뜸이 되는 사업)을 이루게 만들었듯이, 당시의 제
魯(노)나라 군주 平公이 嬖人(폐인) 臧倉(장창)의 저지로 맹자를 끝내 만나지 못하자, 그 접견을 주선했던 맹자의 제자 樂正子(악정자)는 평공을 알현하여 장창의 모함을 반박했다. 그리고서 궁궐을 나와 맹자를 뵙고 장창 때문에 평공과의 접견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애
魯(노)나라 군주 平公이 맹자를 만나려 하자 嬖人(폐인) 臧倉(장창)은 맹자는 어진 인물이 아니라고 강변하여 그 면회를 막았다. 맹자의 제자 樂正子(악정자)는 평공이 맹자를 만나려다가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평공을 알현하여 이유를 물었다. 평공은 맹자가 後喪을
어제는 대학에서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전처럼 밝았지만 조금 그늘도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등록금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학교를 다녀서 무엇하냐”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힘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좋은 일
魯(노)나라 군주 平公이 관리에게 갈 곳을 알리지 않은 채 수레를 준비시키고는 맹자를 만나러 가려고 했을 때 嬖人(폐인) 臧倉(장창)은 맹자가 모친의 喪禮(상례)를 치른 것이 그보다 앞서 부친을 여의고 상례를 치를 때보다 훨씬 성대했다는 사실을 들어 맹자는 예의를 아
魯(노)나라의 군주 平公이 관리에게 갈 곳을 알리지 않은 채 수레를 준비시키고는 맹자를 만나러 가려고 했다. 이때 嬖人(폐인) 臧倉(장창)이 이상하게 여겨 혹시 맹자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는, 평공에게 대체 누구를 만나러 가시느냐고 물었다. 평공이 맹자
‘양혜왕·하’의 마지막 장인 제16장의 시작이다. 이 장에는 맹자 이외에 魯(노)나라의 군주 평공, 평공의 총애를 받는 臧倉(장창)이란 가신, 맹자의 제자로서 노나라 정치에 참여하고 있던 樂正子(악정자) 등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노나라 평공이 해당 관리에게 갈 곳을
맹자는 등文公(등문공)에게, 약소국이 외적의 침략을 받았을 때 대처하는 또 다른 방도로 社稷(사직)을 떠나서는 안 되므로 사직과 함께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고서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영토를 내어주고 이주하는 방안과 사직을 끝까지 지키
젊은 학자 마흔두 명이 8년째 계속해온 조선시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번역사업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임원경제지’의 가치를 아는 학자와 지인 20여 명이 ‘임원경제지 번역출판 후원회’까지 결성했지만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