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삼성전자 상대 前 임원 특허소송에 美법원 “혐오스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6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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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직하고 불공정하며 기만적이고 법치주의에 반하는 혐오스러운(repugnant) 행위다.”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회사를 상대로 낸 특허 침해 소송에서 최근 미국 법원이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기각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원고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재판을 맡은 미 텍사스 동부지법은 ‘특허권자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원고 승소율이 높은 곳이다. 여기에서 이렇게까지 판단한 것을 보면 원고의 행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안승호 전 삼성전자 IP센터장(부사장)이 설립한 특허관리전문회사(NPE) 시너지IP와 미국 이어폰·음향기기 업체인 스테이턴 테키야 LLC는 2021년 11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갤럭시 S’ 시리즈와 이어폰 ‘갤럭시 버즈’ 등에서 테키야의 무선이어폰과 음성 인식 관련 특허를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부사장은 2010∼2019년 삼성전자에서 지식재산권(IP) 업무를 총괄했다. 이번 소송 대상인 음성 인식 관련 특허 전략 등도 짰다. 그래놓고는 퇴사 후 2020년 시너지IP를 설립하고 친정을 상대로 칼을 겨눈 것이다.

▷미국 법원은 특허 침해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소송 자체가 불법적으로 제기됐다고 판단했다. 안 전 부사장이 부하 직원들과 공모해 회사 내부 기밀 정보를 빼돌린 뒤 이를 활용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삼성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안 전 부사장이 삼성전자 재직 당시 회사 지원을 받아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점도 지적했다. 안 전 부사장은 국내에서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NPE들은 기술적 가치는 높지 않지만 권리 범위는 넓은 특허를 싸게 사들인 뒤 소송을 제기해 거액의 합의금을 노린다.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 등 다양한 제품군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은 좋은 먹잇감이다. 삼성전자는 2019∼2023년 미국에서만 NPE들로부터 9일에 1번꼴인 208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특허를 사들인 뒤 이를 무기로 한국 기업에 거꾸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NPE를 흔히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고 부른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은 동굴 등에 숨어 살면서 심한 장난을 걸거나 사람들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온라인에서 고의로 도발하는 것을 ‘트롤링’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특허 소송이 남발되면 기업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산업 전체에도 부담을 준다. 더 이상 악의적인 ‘트롤링’에 억울하게 당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삼성전자#특허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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