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위고비는 덴마크의 리스크?[조은아의 유로노믹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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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몸매 관리 비법을 묻는 질문에 올라온 사진.  에바 맥밀런 X 캡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몸매 관리 비법을 묻는 질문에 올라온 사진. 에바 맥밀런 X 캡처
“당신은 멋지고 건강해보여요. 비결이 무엇인가요?”

몇 년 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이런 질문이 올라오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두 단어로 답했다. ‘단식’, 그리고 ‘위고비’.

머스크 덕분에 더욱 유명세를 탄 위고비는 체중 감량 효과를 낳는 비만치료제다.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어 아직 국내 소비자에겐 낯설다. 국내에선 아직 미지의 세계이지만, 해외에선 치료 효과가 쏠쏠한 것으로 알려지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매출이 치솟아 위고비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덴마크 기업 노보노디스크는 유럽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우뚝 섰다.

● 미국에서 180만 원대에 판매

위고비 약품 이미지. 노보노디스크 제공
위고비 약품 이미지. 노보노디스크 제공
유럽연합(EU) 의약청에 따르면 위고비는 체중 감량을 돕는 약품으로 비만, 과체중, 당뇨 및 고혈압 등의 문제가 있는 성인에게 사용된다. 일주일에 한 번 투약하면 1년 만에 체중이 최대 17%가량 감소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중 감량 효과와 관련해 최근 주목을 끈 연구 결과가 나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노보노디스크는 1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유럽 비만학회에서 위고비를 접종한 환자들이 치료 4년 뒤에도 평균 10%의 체중 감소를 유지했다고 발표했다.

위고비는 체중 감소 효과와 함께 부작용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스꺼움, 구토, 설사, 복통, 현기증과 함께 알려지진 않은 장기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사용을 중단한 사람들도 많다. 네이처 뉴스에 따르면 2021년 위고비 사용을 시작한 환자의 약 3분의 2는 1년 이내에 약물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체중 감소 효과가 워낙 귀하다 보니 환호하는 이들이 많다.

위고비는 현재 미국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영국 아이슬란드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위고비를 승인한 만큼 출시가 점쳐지고 있다.

비싼 가격은 항상 비판을 받고 있다. 위고비의 판매정가는 미국의 경우 1349달러(약 180만 원)나 된다. 영국 판매가의 약 14배 수준이다. 경쟁업체들이 악착같이 뒤쫓아 비만치료제를 개발하며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긴 하다. 카르스텐 문크 크누드센 노보노디스크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이달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제약사인 일라이릴리 등과의 경쟁이 심해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 증대에 나서며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 기업가치, 덴마크 GDP를 넘어서

노보노디스크의 창립자  아우구스트 크로그 부부. 노보노디스크 인스타그램 캡처
노보노디스크의 창립자 아우구스트 크로그 부부. 노보노디스크 인스타그램 캡처
위고비의 두드러진 매출 증대로 노보노디스크는 시가총액이 5700억 달러(약 770조 원)를 넘게 됐다. 이는 2022년 기준으로 4002억 달러(약 540조 원)인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훌쩍 넘어선다. 이 기업의 대주주인 노보노디스크 재단의 규모는 게이츠 재단의 두 배에 달하며 세계 최대 규모가 됐다.

덴마크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에서도 이 기업은 시가총액 1위가 됐다. 세계적인 명품 대기업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의 시총을 지난해 이미 훌쩍 넘어섰다. 이어 올해 3월엔 미국 테슬라의 시총까지 추월했다.

위고비가 세계적 스타처럼 급부상하다 보니 노보노디스크가 신생 혁신기업처럼 보일 법하지만 사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덴마크에서 1923년 노벨상 수상자 아우구스트 크로그가 동료 과학자이자 당뇨병 환자였던 부인과 함께 설립한 회사다.

부부는 캐나다를 여행하다가 황소 췌장에서 추출된 인슐린 제제(製劑)를 구입해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당뇨병 치료 효과를 실험하게 됐다. 이 제제를 구입할 당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구입하게 돼 약품의 수익금을 의료 연구 전용 기금으로 축적했다. 이 기금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보노디스크 재단으로 발전했다.

노보노디스크의 성공 비결로는 공동체적이고 인간적인 덴마크의 직장 문화와 수십 년간 당뇨병에만 집중한 집념이 꼽힌다. 이 두 요소가 단기 연구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줬다.

● 제2의 노키아 리스크 부르나

노보노디스크의 성공은 덴마크 경제에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회사의 성공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가의 경제가 불어났지만 국가 경제가 지나치게 노보노디스크에 의존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노키아 리스크’가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핀란드의 통신 대기업 노키아가 2000년대 초반 붕괴하며 핀란드 경제를 위축시킨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버지니아대의 허먼 마크 슈워츠 교수는 블룸버그통신에 “노보노디스크가 덴마크 경제 성장을 계속 주도한다면 노보노디스크의 이익이 줄어들 때 덴마크에도 문제가 발생한다”며 “그리고 이익은 줄어들긴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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