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재개발 현장을 가다]①지지부진한 사업 현주소

  • 입력 2002년 9월 27일 17시 36분


북한산 자락 구릉지에 낡고 작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대문구 홍은2동 홍은8구역 일대. - 권주훈기자
북한산 자락 구릉지에 낡고 작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대문구 홍은2동 홍은8구역 일대. - 권주훈기자
서울의 강남과열 현상이 심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강북 재개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강북의 재개발지구를 몇 개씩 묶고 시에서 도로와 인프라 등을 지원해 ‘구시가지 내 신시가지’ 형태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현재 민간에 맡겨진 채 내팽개쳐진 강북지역의 주택재개발사업에 시가 개입해 박차를 가하겠다는 복안이다. 서울시의 복안은 현실성이 있을까. 강북지역 주택재개발의 현주소와 앞으로 개발 방향, 외국의 사례 등을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알아본다.

“이 동네 사람 아니면 집도 못찾아요.”

27일 찾아본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홍은 8구역. 북한산 자락 고지대에 30년 이상 된 낡은 집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는 이곳은 주민들이 7년째 재개발지구 지정을 ‘추진 중’이다.

▽지지부진한 강북 재개발 실태〓홍제천이 있는 곳에서부터 6m 소방도로를 따라 50여m 올라가다 보면 좌우로 폭 1m도 안 되는 계단길이 미로처럼 형성돼 있다.

이 길을 따라 작은 집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다. 수십 가구가 ‘홍은2동 산1번지’라는 주소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나저제나 재개발 소식만을 기다린다는 주민 나창순(羅昌順·47)씨는 “비만 오면 물이 새고 집이 너무 낡아 지붕에 올라가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건설교통부가 도시재개발법 시행령에 따라 98년 확정한 서울시 주택재개발기본계획에 따르면 이 지역은 2001년까지 재개발추진계획을 수립토록 돼 있다. ㏊(약 3000평)당 80호 이상의 주택이 있으며 그 중 불량주택이 3분의 2이상, 4m 이상 도로에 접한 주택이 30% 미만에 이르는 재개발 요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

그러나 이 지역의 재개발지구 지정은 요원해 보인다. 자연환경 및 도시경관보호지역이라 용적률 제한을 받는 데다 ‘산중턱에 고층아파트를 지으면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구 도시계획위원회 단계에서부터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있기 때문.

이곳을 재개발해 18∼20층의 아파트단지를 짓겠다던 주민들의 당초 계획은 최근 7∼12층 규모로까지 낮아졌다.

북한산 안산 백련산 등 작은 산과 구릉지가 많은 서대문구의 경우 27개 구역 73㏊(약 21만9000평)가 재개발 기본계획구역으로 잡혀 있으나 지리적 여건 때문에 실제 재개발이 가능한 곳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대상 지역이 산자락 이곳저곳에 산재한 탓에 통합 개발도 불가능하다.

구청 담당자는 “주민들의 재개발 요구와 각종 규제와 원칙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돼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사업성 부족과 주민들간 이해 상충〓84년 11월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 창신동 창신6구역도 지금까지 재개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재개발구역 지정 신청을 하려면 지역주민 66.7%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부터 막혀 있는 것.

특히 청계고가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란히 서 있는 삼일아파트 문제까지 겹쳐 사업 추진은 더디기만 하다. 삼일아파트의 경우 부지는 시유지이고 건물은 개인소유, 거주자들은 모두 세입자이다.

시에서는 이 아파트에 대해 ‘보상 후 철거’ 원칙을 세워놓고 있지만 건물주들은 보상비가 턱없이 낮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명박(李明博) 시장이 추진 중인 청계천 복원 문제까지 얹어져 당분간 재개발은 ‘물건너 간’ 상황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종로구 관내 5개의 재개발대상구역 중 실제 조합이라도 만들어진 곳은 숭인4구역 단 한군데뿐”이라고 밝힌다.

73년 12월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서울 성동구 금호1가 금호 1-7지구의 경우는 사업성이 없어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경우.

두 개의 고층아파트단지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7770㎡(약 2350평)에 55가구가 살고 있는 이곳은 70% 이상이 빈집이다. 시유지를 깔고 앉은 이 지역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절반가량은 임대아파트로 지어야 하고 도로부지로 일정부분을 내놓아야 하는 등 사업성이 없기 때문.

주민들은 이미 재개발을 포기했지만 공원으로 만들거나 주거환경개선지구로 고치자는 등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 재개발 현황〓현재 서울에서 주택재개발 사업이 시행 중인 곳은 78군데, 지정은 되었으나 사업이 시행되지 않는 곳은 38곳. 2011년까지 재개발구역 대상으로 정해진 곳은 352군데, 319만평에 달한다. 이중 약 82%가 강북지역에 몰려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개발이 안 되는 까닭은 지역 주민, 특히 세입자 반대와 사업성 부족, 최초사업을 시작할 재원부족 등 다양하다”고 말한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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