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 의무화 신문간여 의도"

  • 입력 2002년 2월 14일 18시 27분


민주당 심재권(沈載權) 의원 등 여야 의원 27명이 소속 정당과의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정간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학계와 언론계 내부에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 조항이 많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일부 조항은 뉴미디어 시대에 역행하는 전근대적 ‘개악(改惡)’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개정안 중 문제가 되는 조항을 짚어 본다.

▽편집위원회 구성, 편집 규약 제정〓개정안은 회사와 근로자 대표로 구성되는 편집위원회에서 편집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양심에 반하는 취재 거부권을 포함하는 편집규약을 제정해 공표하도록 했다.

언론학자들은 이에 대해 “언론사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항을 정부가 법을 통해 명백히 간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오택섭(吳澤燮) 교수는 “개정안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법을 통해 정부가 본격적으로 언론사의 편집 방향에 간여하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며 “한국적 상황에서 편집위원회와 편집 규약은 입법 사항이 아닌 자율 규제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유재천(劉載天) 교수는 “편집위원회 제도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스웨덴 등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며 “미국 등 대다수의 서구 언론에서는 편집권을 법으로 규제하지 않고 언론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 자료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신고〓재무제표 광고료 영업보고서 등 경영 자료를 언론 주무 부처인 문화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한 것은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다. 언론사들이 여느 기업처럼 세무 당국에 결산서를 제출하고 있는데도 문화부 장관에게 모든 경영 자료 제출을 강제한 개정안은 언론 통제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언론주무부처(공보처)에 경영 자료를 제출토록 해 언론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김우룡(金寓龍) 교수는 “독일에서는 정치 중립적인 통계청에서 정기간행물의 경영 자료를 파악한다”면서 “이에 반해 언론 담당 부처가 직접 언론사의 경영 정보를 받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오택섭 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문화부 장관에게 경영 자료를 신고하도록 규정한 것은 도무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조치”라며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1000만원 벌금을 내도록 해 강제성을 띤 것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사 겸영 사실상 금지〓일간신문 통신 지상파방송사의 지분 33% 이상 소유자는 다른 일간신문과 통신의 지분 33% 이상을 초과해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단일 콘텐츠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급하는 뉴미디어의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제도라는 것이 중론.

유재천 교수는 “해당 의원들이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라는 정보화 시대의 추세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 언론의 비판적 보도와 국제적 경쟁력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가지 배포 금지〓신문고시에서도 유가지의 20% 이내로 허용한 무가지 배포를 전면금지한것도탁상공론이라는지적이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김영석(金永錫) 교수는 “발행부수공사제도(ABC)가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무가지 규제를 통해 신문업계의 발행 부수를 문제삼는 것은 ‘사공이 많다’는 지적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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