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 2002 /4 ]외국인이 본 한국사회

  • 입력 2002년 1월 4일 18시 38분


5년 전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켈리 맥러플린(30·경희대 국제교류센터 팀장)은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한 할머니가 지하철에 올라 건너편에 서 있는데도 앞에 앉은 젊은이들 중 누구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일부러 눈을 감고 자는 척하거나 열심히 책을 읽는 시늉을 하는 젊은이도 있었다. 보다 못해 자신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맥러플린씨는 “미국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건 시민생활의 기본”이라며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한국에 오자마자 말로 듣던 것과는 달리 사회적 약자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데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가 지금껏 한국에서 살면서 목격하거나 경험한 언페어플레이 사례는 이것말고도 많이 있다. 그는 차가 있지만 출퇴근 때는 거의 예외 없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곡예운전이 다반사인 한국의 차량들 틈에서 사고를 당할까봐 겁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룰’을 외면한 각종 ‘반칙 행위’는 너무나 자주 보는 일이라 이젠 새롭지가 않다. 아무데서나 침을 뱉는 일, 지하철과 버스 택시를 탈 때의 새치기, 술 먹고 길거리를 휘저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 사람이 다녀야 할 길에 버젓이 차를 세우는 일, 외국인이면 무조건 바가지를 씌우려드는 일….

그는 연일 신문과 TV를 장식하는 각종 부패 사건도 빼놓을 수 없는 반칙 행위라고 지적한다. “법이나 규칙 대신 돈과 권력을 앞세우는 것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건전한 사회를 좀먹는 해악으로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맥러플린씨는 한국에서 이처럼 규칙을 지키지 않는 행위가 다반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릇된 개인주의가 주원인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한국에 와서 직접 엄청난 발전 속도를 확인하고 매우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일부 그릇된 개인주의가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참사 등도 어찌 보면 규칙을 지키지 않은데서 비롯된 게 아닌가 여겨진다”며 “한국이 일류국가로 도약하려면 무엇보다 사회 각 분야에서 규칙을 잘 지켜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국은 전통과 현대가 멋들어지게 조화된 나라이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무한한 발전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새해에는 좀더 많은 한국인이 ‘룰’을 지키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당연히 동참할 거고요.”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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