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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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용관 논설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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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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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대통령 뒤에 숨은 前 국방장관

    해병대원 채 상병 특검 재의결을 앞두고 야권에서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탄핵 열차 시동” “탄핵 마일리지” “T익스프레스(탄핵 급행열차)” 등의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채 상병 사건 처리 문제가 탄핵 사유가 되는지, 또 현실성이 있는 얘기인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선 특검을 탄핵의 징검다리로 삼으려는 음험한 시도에 찜찜함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권의 4·10총선 참패 직후 칼럼에서 필자는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국방장관의 결재 번복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장 잘 아는 당사자는 대통령 자신일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그날의 진실을 선제적으로 솔직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썼다. 지난해 7월 31일 용산 회의에서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의 진실이다. 대통령 기자회견까지 거쳤으나 지금까지도 어떤 내용의 격노, 혹은 질책이 있었는지 추측만 무성하다. 국민은 ‘사망 사고 처리’에 대한 질책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데, 대통령은 ‘사망 사고 자체’에 대한 질책만 언급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도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대응과는 별개로 분명히 따지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처신이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지만 재난 대응 같은 평시의 군 업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장관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의 경찰 이첩 보고서에 결재를 한 당사자도 국방장관이다. 애초 수사단의 보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보완을 지시하고 결재를 미뤘으면 될 일이다. “해외 출국(우즈베키스탄 출장) 준비에 바빠서…”라는 게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진짜 그랬다면 무능함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까지의 정황을 볼 때 갑작스러운 해병대 수사단의 브리핑 취소, 자료 이첩 보류 지시 등은 용산의 개입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이 전 장관의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회의에서 격노했는지, 언성을 높였는지, 장관과 직접 통화를 했는지, 어떤 구체적인 지시까지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설령 대통령의 질책이 있었다 해도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오롯이 ‘장관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이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즉자적 의견을 내놓는 게 적절하냐의 문제는 논외로 치자. 대통령이 야단을 쳤다 해도 “이미 결재까지 한 사안이니 이를 번복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끝까지 잘 관리하겠으니 맡겨 주십시오”라고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흐르진 않았을 것이다. 번복 사유를 수사단장에게 납득시키지도 못하고, 항명 논란까지 벌어졌으니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한 책임 역시 이 전 장관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당사자에겐 얼마나 서슬 퍼렇게 다가올지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러면 누가 사단장 할 수 있겠느냐”는 말에 뒤늦게 “아차”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위가 어찌 됐든 자기 판단으로 결재를 해놓고 하루 만에 뒤집은 장본인이 이 전 장관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가 원래 순응형 인물인지, 말 못할 고뇌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공수처가 해병대 사령관의 휴대전화에서 ‘VIP 격노설’이 언급된 녹취파일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 전 장관 측은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또한 말장난 같다. 그럼 차분한 지시는 있었다는 건지, 용산의 누군가와 통화를 한 사실은 있는지 여전히 모호하다. 이러니 대통령을 보호하는 척하며 실은 그 뒤로 숨는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것이다. 채 상병 사건이 이렇게 커진 건 대통령 질책 자체보다는 권력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가진 쪽에서 먼저 큰 틀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게 채 상병 사건의 꼬인 매듭을 푸는 첫 단추다. 어느 선에서 이첩 자료 회수 등의 조치가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세세한 사실관계, 그에 따른 책임 소재와 법리적 다툼은 그다음 일이다. 이번 사건의 권한과 책임은 애초 국방장관의 몫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국민이 정부에 기대하는 ‘책임의 수준’이란 게 있다. 그 점에서 이 전 장관의 그간 행보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제라도 한때 국방 수장으로서 온전히 책임질 건 책임지겠다는 용기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게 여의도에서 슬슬 불거지기 시작한 탄핵의 위험한 정치 곡예를 막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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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김 여사 특검’과 ‘채 상병 특검’ 중 하나만 받으라면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중 꼭 하나는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특검법을 받을까 하는 얘기를 사석에서 나눠봤다. “부인을 그렇게 끔찍이 여기는데…” 하는 즉자적 반응이 많았다. 법리를 떠나 ‘부인 특검법’은 절대 받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순애보인지 자존심인지 알 수 없으나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굳어져 있는 듯했다. 필자도 얼핏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본인 문제와 부인 문제 중 하나를 택하라면 차라리 본인 문제를 감당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물론 이들 특검법의 타당성을 법리적으로 따지자면 논쟁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다. 다만 “국가 차원에서 볼 때 두 사안의 무게는 다르다”는 어느 원로 학자의 말을 되새겨 본다. 김 여사 리스크는 엄밀히 말하면 ‘사인(私人)’의 문제이지만 채 상병 사건은 군의 명령을 이행하던 한 젊은이의 죽음, 초기 조사 및 경찰 이첩 과정에서의 국가 권력 개입 의혹, 멀쩡하던 해병대 대령의 항명죄 기소 등이 얽힌 공적(公的)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중대하다는 것이다. 용산 참모들은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사망 사건에 대해선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 권한이 없는 만큼 ‘수사 외압’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공수처가 수사 중인 만큼 그 결과를 보고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형식 논리적으론 맞는 말 같지만 일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공수처 수사 역량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른바 ‘VIP의 격노’로 인해 사건 기록 회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퍼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그날의 진실에 대해 속 시원히 듣기를 기대했다. 대통령은 “순직한 사고 소식을 듣고 국방장관을 질책했다”고만 했다. 야당이 대통령의 직권남용 사법방해 운운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동문서답한 걸로 보긴 어렵다. 사고 질책은 있었을 테니 거짓은 아니겠지만 이첩 및 회수 과정에서의 격노설 의문은 그대로 남았다. 의도적인 답변 회피로 비쳤고 당당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대통령이 틈을 보이고 수비에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더 공세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참에 ‘쌍특검’ 앞에서 머뭇대고 있는 용산을 탄핵 직전까지 몰아붙일 태세다. 마치 사법리스크의 공수(攻守)가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면 이 대표도 마음이 급하다. 사법 리스크의 현실화 시간이 하나하나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찐명’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교통 정리 등 일련의 흐름을 보면 이 대표는 정교한 로드맵을 갖고 움직이는 것 같다. 채 상병 특검에 이어 김건희 특검을 몰아칠 개연성이 농후하다. 탄핵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내심 개헌론으로 대통령 임기 단축을 꾀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법 리스크의 시간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데, 용산의 대응은 굼뜨기 짝이 없다. 위기감을 갖고는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통령이 탄 배는 3년은 더 항해해야 하는데 물은 얕아졌고 암초는 널렸다. 국민의힘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려 그토록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사방이 적이라고 여길 공산이 크다. 혹시 그 연장선에서 이 대표와의 회담을 앞두고 ‘함성득-임혁백’ 비선 라인을 가동한 것일까. “이 대표와 경쟁할 인사는 대통령실 인선에서 배제하겠다” “부부 동반 모임도 갖고 골프도 하자” 등의 말을 전했다는데, 실체가 있는 얘기인지 꾸며낸 얘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용산은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여태까지 법적 대응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갖가지 억측만 난무한다. 함 교수는 보도 확인 요청에 “윤 대통령의 큰 정치를 향한 진정성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큰 정치’를 위해 이 대표에게 무슨 거래(去來)를 타진한 것이라면 황당한 일이다. 윤 대통령의 불안감과 이 대표의 조급함이 부딪치는 지점이 쌍특검이다. 윤 대통령이 여기서 안일하게 대응하거나 오버하면 나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만에 하나 서로의 리스크를 덜기 위한 물밑 큰 거래를 도모할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진정한 큰 정치는 국민 앞에 솔직한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쌍특검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채 상병 사건의 ‘질책의 진실’을 밝히는 것부터 하나하나 꼬인 매듭을 풀어가다 보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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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완충지대 없는 상극의 정치, 답은 뭔가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관계는 두말할 것 없이 ‘상극(相剋)’이다. 한쪽은 그토록 만나자 만나자 했고 다른 쪽은 사실상 범죄자 취급하며 미루고 미뤘다. 그러다 집권 2년이 다 돼서야 마침내 오늘 만난다. 드라마틱한 반전이지만 단막극이 될지 연속극이 될지 예단은 쉽지 않다. 각각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을 쥔 둘은 삐끗하면 파멸에 직면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 대표가 “다 접고 만나자”고 한 데는 ‘이러다 회동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깔렸을 것이다. 사실 총선 승리에도 이 대표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은 변함없는 사법 리스크 때문만은 아니다. 예상보단 크지 않았던 전국 지역구 득표율 차이, 호남과 세종에서 조국혁신당에 밀린 비례 득표율 등 찜찜함이 남아 있다. 그 점에서 이번 회동은 재판 중인 이 대표로선 남는 장사다. 무엇보다 야당 리더로 공식 대우를 받는 그림이 검찰과 법원에 주는 무언의 메시지를 기대할 것이다. 총선을 거치며 존재감을 키운 조국 대표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홈그라운드 이점은 있지만 윤 대통령의 심사도 복잡하다. 야권의 채 상병 특검, 김건희 특검 등 자신과 부인을 향한 공세는 껄끄러움 차원을 넘어서는 법적 이슈다. 실제 도입된다면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한 ‘제2의 윤석열’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특검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서로의 급소를 쥐고 비수를 품은 채 나누는 둘의 대화 장면은 어색하면서도 긴장감이 흐를 듯하다. 이번 만남에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또 있다. 둘 다 큰 포석을 두는 경세가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어서다. 둘은 중앙 정치 경험이 많지 않고 지지 기반도 그리 단단하지 않은 ‘취약한 오너형’이라는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각자 할 말만 쏟아내는, 개딸이 됐든 태극기가 됐든 서로의 극렬 지지층의 기류에만 응답하는 만남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이다. 총선 후 국민 불안의 요체는 “이러다 나라 망할라” 하는 것이다. “3년은 너무 길다”고 외쳐대는 상황, 공공연히 탄핵이나 하야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이제 나라는 어디로 가느냐는 걱정이다. 그러잖아도 허약해진 공직 시스템은 아예 작동하지 않는 지경이지만 용산은 벌써 이들을 닦달할 힘도 빠졌다. ‘용산 권부(權府)’는 거칠게 표현하면 5년간 활동하고 해체될 운명의 ‘유랑 극단’이다. 윤 정권뿐 아니라 문재인,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도 마찬가지였다. 정권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어김없이 엉성함이 드러나는 이유는 캠프 관료 등 구성원 출신이 제각각인 한시적 권력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힘까지 빠졌으니 나라 꼴은 어찌 되나. 그 점에서 이번 회동의 핵심 의제는 협치의 틀을 어떻게 짤 것인지가 돼야 한다고 본다. 뭘 주고 뭘 받았네 하는 현재 ‘이슈’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여소야대 3년의 국정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체계’를 잡는 게 훨씬 본질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치=협치’를 의미한다면 협치의 구체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실질적 협치를 이뤄내려면 네거티브 이슈를 놓고 티격태격할 게 아니라 시급한 경제 안보 복지 등의 공통분모를 찾고, 이를 실행할 주체로서 ‘협치 총리’를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정치사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총리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러나 여야가 함께 양해할 수 있는 인사를 총리로 지명하고, 용산은 실질적인 ‘책임 총리’의 권한을 부여하면 여소야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점에서 최근 용산 비선 라인이 박영선 등 야권 인사들을 언론에 흘린 것도 어이없고, 친명계가 일제히 TK 주호영 의원을 띄운 것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만하다. 협치의 핵심 고리로 총리 후보를 고심하는 게 아니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이 앞선 것 아닌가. 이제라도 야권 추천을 받아 야당 인사를 총리로 세우는 방안을 상상해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다. 야권 인사는 누가 되든 양측 지지층의 동의를 얻기도 어렵고, 국정 방향과 소속 정당의 이익이 충돌할 수도 있다. 이를 뛰어넘을 정치력을 가진 이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특정 정파에 속한 적이 없으면서 행정 장악 능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인물을 물색하는 방안은 어떤가. 분명한 건 상극의 시대, 협치 총리라는 완충지대가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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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국정 3대 족쇄부터 尹 스스로 풀라

    ‘범야권 200석 안팎, 국민의힘 100석 안팎’으로 예측했던 방송 3사 총선 출구조사는 결과적으로 살짝 빗나가긴 했지만 총선 민심에 상당히 근접했었다고 본다. “이번엔 윤석열 대통령을 혼내야겠다”며 투표를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보수층의 다급한 결집이 없었다면 ‘국민의힘 100석 이하’가 현실화될 수 있었을 정도로 윤(尹) 심판론이 총선을 지배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지 않은 여권 지지층이 실망감, 우울감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157만여 표)에 불과한데, 민주당은 161석이나 얻고 국민의힘은 90석밖에 못 얻은 것은 억울하다는 식의 일부 극우 인사들 논리는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주장이다. 지난 대선 0.73%포인트, 24만 여표 차 승리로 국가 권력을 장악한 게 국민의힘이다. 이번 총선에 대한 숱한 진단이 나와 있고 해법도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 참모들과 내각 인적 쇄신, 대통령 탈당과 중립내각 얘기도 나온다. 그럴 때마다 등장하는 키워드는 소통과 협치다. 다 좋은 말들이고, 또 깊이 검토돼야 할 의제들이지만 공허함을 지울 수 없는 건 격화소양 느낌이 들어서다. 문제의 본질은 제쳐두고 아무리 인적 쇄신을 말해봐야 변화의 진심이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윤 대통령이 “겸허한 수용” “국정 쇄신”의 뜻을 밝혔지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란 반응이 적지 않다. 이런 냉소적 기류는 오만과 아집의 이미지가 일반인들에게 강하게 박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감정적 판단과는 별개로 좀 더 근원적인 우려는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느냐의 문제다. 다원적 사회, 특히 국정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만천하에 공개되는 민주공화정의 리더는 과거 로마 시대의 집정관과는 역할이 질적으로 다르다. 권력자의 오만은 옳고 그름에 대한 독점 의식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이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내가 손해 보더라도 할 일은 한다”고 구체적 소신을 밝히는 것은 정책 결정의 경직성을 초래할 수 있다. ‘의대 증원 2000명’을 못 박는 발언을 대통령이 직접 내놓으면 참모건 장관이건 이를 뒷받침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의대 증원은 정책 이슈지만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이나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에 대해 대통령이 방어적으로 나온 것도 군과 검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큰 원인이 됐다. 자기 잘못이나 실책을 인정하는 순간 법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검사 출신으로서의 ‘직업적 두려움’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연루된 문제에 대한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이 이번 주 총선 패배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고 한다. 인적 쇄신도 중요하고 경제 민생 안정도 중요하고, 협치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분명한 건 윤 대통령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3개의 족쇄를 스스로 풀어내는 용기를 보이지 않고는 국민 마음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우선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족쇄다.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 국방장관의 결재 번복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가장 잘 아는 당사자는 대통령 자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그날의 진실을 선제적으로 솔직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실제 대통령의 전화 질책이 있었는지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다만 해병대 사령관이 “말하지 못하는 고뇌만이 가득하다”는 지휘 서신을 장병들에게 보내는 현실 그 자체가 해병대 명예와 위상과 관련된 문제임은 분명하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문제, 디올백 논란도 방어벽만 칠 게 아니라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에 나설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상대 대선후보 부인의 밥값 10만 원짜리 수사를 23개월 끌다가 공소시효 만료 하루 남겨 두고 기소한 것과 비교해 형평성 논란이 이는 건 당연하다. 나아가 의대 증원 2000명 족쇄도 풀고 전문가 위원회에 합리적 방안을 찾으라고 해야 한다. 야권의 압승은 또 다른 오만의 씨앗을 품고 있다. 심판은 돌고 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윤의 시간’이다. 보여주기 식 협치의 제스처가 아니라 ‘제2의 취임사’를 쓰듯 국정의 족쇄를 풀고 남은 3년 어떻게 국정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새출발의 다짐을 내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수밖에 없을 텐데, 과연 윤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자칫 더 큰 논란과 혼란을 부르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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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조국 현상’이 잉태한 혼돈의 씨앗

    ‘조국 현상’이 반짝하다 끝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견고할 줄은 몰랐다. 여론조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10명 중 2명은 4·10총선 비례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찍겠다고 한다. 호남에선 민주당의 위성정당 지지율을 앞질렀다고 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20%에 근접한 지지 의향을 보이는 곳이 많다. 실제 투표로 이어질지는 결과를 봐야겠지만 심상치 않은 여론 흐름이다.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는 범죄자를 왜 지지하는지 알 수 없다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고, 법정 구속을 하지 않은 판사의 비겁함을 탓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멸문지화 운운하며 연민의식을 가진 이들도 있고, 어느 정도 죗값을 치른 만큼 방탄 프레임에 갇힌 이재명보다 더 선명한 정권 심판에 나설 수 있다는 야권 지지층도 있다. 어느 쪽이든 조국 현상의 토양은 윤석열 정권이 만들어줬다는 진단엔 별 이의가 없을 듯하다. 흥행적 요소도 있다. 학창 시절 읽었던 무협지나 요즘 유행하는 웹툰 등에서 볼 수 있는 복수와 반전의 권력 게임 요소가 충분하다. 잘생긴 외모와 언변으로 한때 문재인 정권의 황태자, 진보의 우상으로 떠올랐지만 자녀 입시 비리, 위선과 내로남불로 추락했다가 이젠 자신을 파멸시킨 시퍼런 권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하니 정당성은 차치하고 그 혈투 자체가 흥미진진한 것이다. 이재명에 실망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등 ‘비조지민’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겠지만 그걸 정치공학적으로 세세히 분석하는 건 이 칼럼의 주제가 아니다. 그보단 단지 흥밋거리로만 볼 수 없는 어떤 불안감의 엄습을 말하고자 함이다. 이는 어느 개인이 ‘비법률적 명예회복’을 이뤄낼지 여부, 그를 앞세운 일부 인사들이 비례 배지를 몇 개 달지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공공연히 합법적으로 선출된 최고 권력을 중단시키겠다는 세력, 그들이 원내에 진입하고 탄핵을 외치는 상황, 그에 따른 국정 시스템의 비정상적 작동… . 한마디로 더 큰 국가 혼돈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것 아닌지 하는 우려다. 조국도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3년은 너무 길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으로 만들겠다” 등 윤석열 정권의 조기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법률적으로 가능하다면 탄핵이 궁극의 목표라는 전투의지다. 개인적으론 자기 인생을 되살리려는 복수극이지만, 본질적으론 선거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선출 권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다. 진정 소수 강경파인 볼셰비키가 온건파인 멘셰비키를 누르고 권력을 쟁취한 것처럼 가장 선명한 노선의 ‘탄핵 전위대’로 나서려는 건가. 조국 지지자들에게 곧 감방 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조국이 금배지를 단 것 자체로 개인적 명예회복에 감사하며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지려 할까. 이재명을 위협할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최종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을 압박하는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가 연일 서초동 일대를 장악하는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소득이 월 10만 원 줄면 먹을 것부터 줄여야 하는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동네 슈퍼에 가면 달걀 30알 한 판을 평소보다 1000원 싼 4900원에 사려고 문 열기 전부터 길게 줄 선 서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물가에 지친 민심을 어루만지는 모습보다는 권력의 오만과 불통이 더 부각됐다는 게 총선을 앞둔 여권 위기의 본질이다. 고발된 피의자를 호주대사로 임명하는 건 잘못이고 징역형을 받거나 재판 중인 피고인은 국회의원이 돼도 괜찮은 것이냐는 항변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왜 자신들과 그 가족에 대해선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느냐, 왜 국가 권력을 멋대로 쓰느냐는 주장이 더 먹히는 형국이다. 조국은 어쩌면 그런 분노를 자양분 삼아 제2의 촛불혁명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법부 영역과 입법부 영역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법률적 유죄를 정치적 면죄부로 덮으려는 시도 자체가 국가 질서를 뒤흔드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사법 체계가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선출 권력의 정당성도 훼손되기 때문이다. 정권의 오만한 권력 행사가 조국의 비윤리적 행태를 희석시켰고 그 틈을 타 조국은 교만의 정치에 나섰다. 오만과 교만의 대결, 권력 쟁투 속에 사법부 권위도, 입법부의 견제 기능도, 행정부의 집행 기능도 제 길을 잃을 수 있다. 누구의 책임인가. 그 조국은 이렇게 살아날지 모르지만 내 ‘조국’은 어찌 될까. 이 모든 게 헛된 걱정이길 바랄 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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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부르면 귀국” 아니라 “당장 귀국”이 답이다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은 신성모 주일대사 임명과 판박이 같다.” 얼마 전 한 원로 법조인의 문자를 받고 이승만 대통령이 그리 총애했다는 신성모 전 국방장관의 주일대사 임명 과정을 찾아봤다. 영국 상선 선장 출신의 민간인 국방장관으로, 이 대통령이 ‘캡틴 신’이라 불렀다는 그의 문제적 삶은 제쳐두자. 6·25 발발 전 “명령만 내리면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 등의 호언장담을 늘어놨다는 그는 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거창 양민학살사건, 국민방위군 간부들의 부정 착복 사건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런 그를 이 대통령은 얼마 되지도 않아 주일 대표부 대사로 내보내겠다며 국무회의에 안건을 올렸다. 신성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던 터. 안건은 부결됐다. 이 대통령은 “임명은 내가 하는 것”이라며 강행했고, 신성모는 그해 7월 일본 대표부 대사로 부임했다. 신성모 주일대사 임명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책임의 크기, 정치 상황 등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신성모는 군비 착복 등의 중대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휘하 간부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된 상황이었다. 이 대통령이 부결을 가결로 뒤집는 무리수까지 둔 이유를 놓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자의식이 강한’ 완고한 리더십의 대표적 사례라는 점엔 이의를 달기 힘들 것이다. 35년간 군복을 입고 문재인 정부에서 중장까지 진급한 이 전 장관은 미국 테네시주립대에서 한미동맹을 주제로 외교안보학 박사를 받은 정책통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인물이란 게 군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미 동맹 강화,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부활 등 장관 재임 시절 성과도 적지 않다.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의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발되기 전까지는 지금 같은 처지를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의 호주행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민감한 시점에 정치적 이슈의 한복판에 섰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본질은 왜 야권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민감한 사건의 핵심 피의자를 서둘러 해외로 내보내려 한 건지, 일선 부처의 1급 실장 인사를 놓고도 한두 달씩 검증을 하는 판에 출금 여부조차 알아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혹시라도 기소되면 외교적 망신의 뒷감당은 어찌하려 했는지 하는 점이다. 국방차관, 국가안보실 2차장 등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지휘 선상에 있던 이들이 단수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는 것과 맞물려 “입막음용” 등 온갖 억측이 나돌게 된 배경이다. ‘런종섭’ ‘도주대사’ 등은 망외의 호재를 만난 야권의 자극적 공세, 프레임 씌우기 성격이 짙다. 공수처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거나 도피할 의도를 갖고 출국했다면 모르겠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장군 출신인 그가 그런 짓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 전 장관의 호주행은 개운치 않다. 누군가 전임 대사가 작년 말 정년이라는 보고를 했을 것이고, 그 자리에 이 전 장관을 보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걸로 짐작할 뿐이다. 굳이 왜 그랬을까. 공수처의 핵심 피의자라는 ‘리스크’는 간과한 건지 무시했는지도 알 수 없다. 대사 임명은 국무회의 심의 의결 사항인데 아무런 논의 절차 없이 무사통과된 건지도 궁금하다.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요소들이 하나둘이 아닌 것이다. 결국 “나는 옳다”는 신념에 찬 ‘1인’ 중심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근본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73년 전엔 각료들이 반대의 결기라도 보였는데, 지금은 참모들이나 장관들이 그저 정해진 결정의 집행자나 들러리 역할밖엔 못 하는 것 아닌지…. 그 점에서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고 있다” “수사 정보를 유출하고 있다” “호주와의 국방 협력 적임자다” 등의 반박과 해명은 왜 자신들에겐 그리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느냐의 본질적 의문에 대한 답변으론 미흡하다. 지금은 논쟁의 시기가 아니다. 실질적 합리성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까지 복잡하게 얽힌 사안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 운운하지 않더라도 내로남불 공세의 덫에서 속히 빠져나올 방도를 찾는 게 급선무다. “공수처가 부르면 언제든 들어와 조사를 받을 것”이란 대응으론 이미 번진 불길을 잡기 어렵다. 속히 귀국해 적극적으로 수사를 받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게 불필요한 의혹을 불식시키는 길이다. 선거 유불리 문제를 넘어 공적(公的) 권위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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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이재명의 ‘존명(存命) 정치’, 그 끝은

    1월 초 흉기 습격을 당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복귀 일성은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검찰과 언론을 살인미수 혐의자와 같은 선상으로 취급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 대표 의식 저변에 깔린 “죽지 않는다”는 강한 생존 의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존명(存命)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 목숨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여러 소설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숱한 개인들의 존명 스토리가 등장한다. 사선(死線)을 넘고 고난을 딛고 살아남아 가족, 또 사회를 일으켜 세운 이들의 삶은 감동적이다. 존명에는 자기희생도 따른다. 그러나 이웃이나 조직, 사회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존명은 대의나 명분이 결여된 생존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정치인들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 이 대표의 정치 행보나 스타일을 하나의 단어로 꿸 수 있다면 그런 의미의 ‘존명’, 즉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까 한다. 여기엔 언제든 내쳐질 수도 있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만의 설움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대장동 의혹 등에 대해 이 대표가 “검찰 주장대로라면 징역 50년을 받을 것”이라고 했던 게 단적인 예다. 수십 년 감방 살 일을 왜 했겠느냐는 항변이었겠지만, “검찰 주장이 법원에서 먹히면…” 하는 불안감도 잠복해 있다고 본다. 그러니 어떻게든 정치적 방어벽을 쌓아야 하는데, 성곽 안에 반란 세력이 도사리고 있으니 우환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보며 더 뼈저리게 절감했을 듯하다. 대선 패배 직후 당 일각에서 이재명 축출 움직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 대표 도전으로 정면 돌파했지만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비명 반명 쳐내기는 이 대표로선 ‘합리적’ 선택이다. 면전에서 “피칠갑” 비난을 퍼부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천 탈락 중진들의 반발과 탈당에도 “입당도 탈당도 자유”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한 태도다. 사활적 이익(利)이 걸려 있는데, 아무리 포용과 통합 등 명분(理)을 외쳐본들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친문 등 비명 진영은 속절없이 당하고 있지만 억울할 것도 없다. 자업자득이다. 대부분 수십 년간 86 운동권 엘리트로서 기득권을 누려왔다. 중도 진보의 울타리를 굳건히 세우고 전문가 그룹을 당의 중심 세력으로 키우기는커녕 각자 계파에 안주하고 친노 친문 등으로 말을 갈아타며 국회의원 배지 달기에 급급해 왔던 것 아닌가. 반면 이 대표는 더 절박하고 집요했다. 2월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아가 포옹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명문 정당’ 운운한 것은 친문 진영의 집단행동과 원심력을 적시에 차단시킨, 돌이켜보면 탁월한 기만전술이었다. 그 결과는 지금껏 본 대로다. 용광로 공천을 기대했던 임종석을 비롯한 친문 핵심들의 처지만 서글프게 됐다. 이 대표는 내심 1996년 DJ의 모델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당시 야당인 통합민주당 내에서 DJ의 정계 복귀, 대권 4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DJ는 야권 분열 비난에도 아예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79석밖에 얻지 못했지만 확실한 자기 당을 만들고 이듬해 DJP 연대로 대권까지 거머쥔다. 이 대표는 DJ가 아니고 그때와 지금은 정치 상황도 다르지만, 1당이든 2당이든 뚜렷한 적수 없이 사실상 대선 후보 자리가 보장된 정당을 갖는다는 것은 이 대표로선 절체절명의 과제일 수 있다. 문제는 당장 이재명의 민주당에 총선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공천 내전은 곧 일단락될 것이고 본선(本選)의 시간이 오면 정권심판론이 다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지지율 하락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야당 지지층도 느끼고 있다. 이 대표는 의미 있는 총선 성과를 내고, 방탄의 성곽을 더 튼튼히 하고, 대권까지 갈 수 있을까. 과반이나 1당은커녕 참패 성적표를 받아들면 어찌 될까. 차기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2년 전과 같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을까. 손가락혁명군에 이은 개딸, ‘종북’ 통진당 후신의 진보당…. 이들이 이 대표를 끝까지 호위할 방탄 세력일 수는 있겠다. 문제는 극성 팬덤의 정치 놀이터, 우리 사회 맨 왼쪽 세력의 숙주 노릇을 하려는 민주당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이다. 이재명의 존명의 길이 민주당의 존망(存亡)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이번 총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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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한동훈과 이재명의 ‘리더십 무게’ 어디로 기울까

    윤석열 대통령의 KBS 대담은 “많이 아쉽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지만 여권 총선 전략에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의 후광은 없다”며 공천 불관여를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긴가민가했는데, 현재까지 국민의힘 공천 과정을 보면 윤심(尹心) 논란이 뚜렷이 부각된 건 없다. 용산 출신들이 박대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대를 받는 분위기도 아니다. 아직 공천 초반이고, 갈 길이 멀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게 맞느냐를 놓고 속사정은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2016년 옥새 파동의 한쪽 당사자였던 김무성 전 대표가 “시스템 공천 정착”을 평가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박(眞朴) 감별 논란 같은, 대통령 주변 세력이 분탕질을 하는 최악의 공천 파동은 피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역설적으로 명품백 효과가 아닐까 싶다. 국정 지지율이 낮은 윤 대통령이 명품백의 늪에서 제때 효과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당에 대한 장악력도 약해진 것이다. 일각에선 ‘사랑의 힘’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한 위원장이 총선 공천의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쥘 수 있는 상황적 요인이 됐다는 점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득실 계산이 복잡하게 됐다. 물론 명품백의 덫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시 불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보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실제로 야권의 관심은 2개월 이상 두문불출하고 있는 김건희 여사가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에 쏠려 있는 듯하다. 영어 표현에 ‘눈에 띄는 부재(conspicuous absence)’라는 말도 있는데 ‘보이지 않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여권으로선 명품백은 점수를 까먹을 대로 까먹은 감성적 이슈지만 공천은 총선 판도를 결정하는 실질적 이슈다. 몇몇 단수공천을 놓고 적절성 논란이 있지만 큰 틀에서의 용산발 파국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민주당 사정은 딱하다. “한동훈은 윤석열 아바타”라는 공세는 잘 먹히지 않는다. 용산의 사퇴 요구 및 반격을 거치며 한 위원장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총선 전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또 충돌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양쪽 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선을 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권 내홍과 김 여사 이슈만 물고 늘어진다. 누구 말대로 여권 실책만 기대하는 ‘감나무 전략’에 감흥이 있을 리 없다. 민주당 총선 전략 부재의 중심엔 이재명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반윤 연합 세력의 총사령관을 자임하고 있지만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라는 ‘생존’ 리더십 탓에 행보가 꼬이는 것이다. 민주당을 친명 주류 체제로 만들려 하지만 친문 적자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생존 대 생존의 투쟁이다. 총선 후 당권까지 염두에 둔 싸움이다 보니 ‘공천 내전’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이던 2016년 총선 폭망 위기에 처하자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통한 ‘차도살인’으로 위기에서 탈출했지만 이 대표는 자신이 직접 칼자루를 쥐려 하니 자기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형국이기도 하다. 당 밖 세력들과의 비례의석, 지역구 조정 문제까지 첩첩산중이다. 현재로선 한 위원장보다 야권 통합까지 이뤄내야 하는 이 대표가 더 힘든 처지에 봉착해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한동훈 대 이재명의 대결로 전환되면서 겉으론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선 연장전, 혹은 정권심판론이 다소 희미해진 듯 보이지만 착시일 수 있다.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태로 총선까지 갈지, 극적 봉합의 길을 찾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결국 한 위원장과 이 대표의 리더십 대결이다. 한 위원장은 정계 데뷔 후 50여 일 동안 여론의 주목을 끌고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는 데는 성공한 걸로 보인다. 다만 정치 초보 단계의 자신감이 지나치면 본선에서 어떤 실책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좀 더 진중한 리더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 대표가 극렬 지지층에 기댈수록 민주당의 중도 확장은 난망이다. 자기희생 없이 장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총선은 50일 남짓 남았다. 역대 총선은 한 달 앞두고도 분위기가 확 바뀌곤 했다. 누가 국민 앞에 더 겸허하고 덜 오만하고, 또 유능하고 비전이 있을까. 누가 사리(私利) 대신 대의(大義)를 부여잡고 줏대 있게 밀고 나갈 것인가. 그 과정에서 둘의 정치 그릇의 크기도 적나라하게 비교될 것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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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이재명의 ‘주판알 정치’에 휘둘리는 47석 비례제

    우리나라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창안자는 사실상 박정희였다. 5·16 이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앞으로의 선거 제도엔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1963년 6대 총선 때 정당정치 강화를 명분으로 무소속 출마는 아예 봉쇄되고 비례제가 처음 도입되는 계기였다. 비례 의석은 44석이었는데, 지역구 1당에 ‘2분의 1’ 이상을 보장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한국적 비례제’는 태어날 때부터 기형적이었다. 다만 5·16 세력은 제1야당도 ‘3분의 1’은 챙길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윤보선의 민정당은 지역구 26석에 그쳤는데도 비례 14석을 챙겼다. 그러자 7대 총선에선 ‘2분의 1’ ‘3분의 1’ 특례가 다 폐지됐다. 이후 1970년대 유정회 암흑기를 거쳤고, 전두환 시절 비례제가 부활했지만 지역구 1당에 통 크게 비례 ‘3분의 2’를 몰아줬다. 그러다 1985년 신민당 돌풍을 계기로 여당이 무조건 지역구 1당이 될 것이란 확신이 없어지자 ‘3분의 2’는 ‘2분의 1’로 바뀌었고, 민주화를 거치며 1당 특례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훨씬 더 복잡하고 숨은 스토리가 많지만 권위주의 정권 시절 우리 비례대표 역사는 한마디로 집권 여당에 대한 ‘보너스 의석’을 어느 규모로 할 것이냐의 게임이었다. 87년 체제 이후 비례제 배분 방식은 ‘지역구 의석수’ ‘지역구 득표율’ ‘정당 득표율’ 등 한발 한발 진화(進化)의 길을 걸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제외한 채 ‘준연동형 비례제’로 게임의 룰을 일방적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준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비례 의석은 손해 보는 구조다. 그런 혁명적 방안을 제1야당과의 합의도 없이 강행했으니 선거법 협상에서 물먹은 현재의 국민의힘 측이 위성정당을 만든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문제는 민주당까지 위성정당을 따라 만드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문턱을 낮춰 다당제를 구현한다는 ‘아름다운 이상’은 온데간데없고 전대미문의 위성정당, 떴다방 정치 같은 ‘추악한 퇴행’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올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준연동형을 폐기하고 지역구 의석에 연동되지 않는 ‘권역별 병립형’을 도입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며 몇 달째 여론 눈치를 살피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다당제를 위한 선거 개혁, 비례제 강화는 평생의 꿈” 등의 말을 쏟아내며 위성정당을 금지하는 준연동형을 공약해 놓고 이를 뒤집으려니 논리가 군색한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 대표의 병립형 회귀를 위한 전 당원 투표 움직임에 대해 준연동형을 지지하는 측은 무신불립(無信不立) 소탐대실(小貪大失)을 지적한다. 맞는 말이나 이 대표 머릿속에선 전혀 다른 차원의 셈법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범야권 내 주도권 다툼이다. ‘준연동형파’는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승부를 펼치고, 비례는 위성정당이 됐든 자매정당이 됐든 이른바 범진보비례연합 플랫폼으로 치르자는 거다. 조국과 유시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 대표는 왜 병립형 쪽으로 기우는 걸까. 사법 리스크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 밖의, 통제 밖의 범진보 연합 세력은 언제든 우군이 아니라 적군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 아닐까. 어차피 욕먹을 거 대놓고 위성정당을 만드는 방안도 있지만 누구를 대리인으로 내세울지, 2020년 총선 때 당시 야당에서 있었던 ‘한선교의 반란’ 같은 사태는 없을지도 고민일 것 같다. 그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이 직접 공천까지 통제할 수 있는 ‘직할당’으로 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물론 제3지대 신당 견제라는 목적은 국민의힘과 이심전심일 것이란 생각도 하고 있을 듯하다. 현재로선 이 대표가 소수 정당 배려 조항 가미 등의 명분을 붙이는 방식으로 권역별 병립형을 택할 공산이 크다. 개인적으론 위성정당, 떴다방 정당 난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권역별 병립형만 제대로 운용해도 지역 구도 해소 등 정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고 한국적 비례제는 또 한발 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분명한 건 47석 비례 의원 선출 방식이란 공적(公的) 제도가 이 대표의 사적(私的) 이익에 좌우되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이란 점이다. 바로 그때문에 이 대표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실기했다고 본다. 멋지게 지는 길도, 추하게 이기는 길도…. 비례제의 방식이나 복잡한 계산 방식까진 몰라도 이 대표의 주판알 정치에 장기간 휘둘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국민도 똑똑히 보고 있을 테니.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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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함정 몰카’ 맞지만 그 얘길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조국흑서’의 공동 저자인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만큼 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은 드물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는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진 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으로 이 비극적 인물을 조명한다. 온갖 악덕, 타락, 사치, 방탕…. 그녀는 증오의 표적이었다. 물론 작가는 그녀의 경박하고 어리석은 짓에 대한 역사적 죄과도 분명히 지적했다. 사람들을 믿게 만든 ‘거짓의 탑’은 그냥 쌓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권당의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제3자 논평하듯 느닷없이 비극적 인물을 공개 소환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의 두 여성을 오버랩시켜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이 감성의 문제라는 지적 자체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용산은 이 사건의 본질은 함정 몰카, 정치 공작이라고 한다. 최근엔 문제의 목사가 김 여사 부친과의 친분을 내세워 접근했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총선용 공작 냄새는 풀풀 난다. 그게 아니라면 왜 몰카 영상을 찍은 뒤 1년 이상 쥐고 있다가 총선 몇 개월도 안 남긴 시점에 ‘김건희 특검법’ 처리를 앞두고 폭로했겠나. 문제는 교묘하고 음험한 총선용 공작이라 해서 “근데 그걸 왜 받았느냐”는 일반인들의 의문이 해소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과거 대통령 전용기 타고 인도 타지마할에 간 것과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타지마할 전용기에 혀를 끌끌 찬 이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디올 백 문제가 희석되진 않는다. 디올 백 사건은 엎질러진 물이다. 여야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일반인들은 대통령 부부가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닦아낼지를 눈여겨봐 왔다. 용산은 처음엔 아무런 대응을 안 보이다 백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대통령실 선물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새해 초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 때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뿐이었다. 제2부속실 설치 등은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여전히 격화소양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작 사건의 당사자가 한 달 이상 관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그게 함정 몰카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자괴감 때문인지, 또 다른 건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사과를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야권은 “대통령 물러나라”고 공세를 이어갈 것이므로 절대 사과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어느 쪽이든 명품백 이슈를 만든 이른바 작전세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듯하다. 여권이 우왕좌왕하다 지나치게 방어에만 급급하며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꼴이란 얘기다. 조부, 증조부의 족보까지 파헤치고 낯 뜨거운 야담(野談)까지 끄집어내는 게 선거의 생리다.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필자에겐 부차적인 이슈다. 최고 권력자 부부의 공적 처신과 책무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란 얘기다. 영부인의 사적(私的) 행동이 촉발한 사건에 공적(公的) 역량이 얼마나 헛되이 소진되느냐의 문제다. 총선을 앞두고 가다듬을 정책, 국민에게 물어봐야 할 국가적 의제가 얼마나 많은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 마지막 편에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비 사망 배후 의혹에 대해 수사관의 직접 신문을 받고 불편한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성격은 다르지만 명품백 문제에도 그런 식의 원칙과 법의 잣대를 적용할 순 없나. 당사자가 육성으로 정직하게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당한 처분을 받겠다고 하면 될 일 아닌가. 명품백 사건은 통치의 문제도 아니고 대통령 배우자의 사려 깊지 못한 행위, 보좌 기능 마비의 문제다. 이 단순한 문제 하나 풀지 못하고 ‘국민 걱정’을 언급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용산이 정면충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총선에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되느냐는 식의 접근은 여의도 문법일 뿐 일반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경구가 새삼 떠오른다. 나아가 국가의 최고 리더는 팩트 못지않게 좋든 싫든 ‘국민 시선’에도 응대하고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게 국민 신뢰를 얻고 국정의 힘을 확보하는 길이다. 공작에 당했다는 억울한 점이 있다 해도 자기 주변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모습, 국민은 그런 ‘의연한 태도’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리 어려운 건가.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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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이재명 피습… 늘 지나침은 역풍을 부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흉기 피습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은 18년 전 박근혜 커터칼 테러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엔 별로 부각되지 않았던 일화 한 토막이 최근 회자됐다. 박 전 대통령이 60바늘을 꿰매는 대수술 끝에 내놓은 첫마디가 흔히 기억하는 “대전은요?”가 아니라 “오버하지 마세요”였다는 것이다. 직접 들은 사람이 몇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발언들의 진위를 일일이 따질 일은 아니지만 “오버 말라”는 언급 자체는 이 대표 사건과 맞물려 흥미를 끌게 한다. 맥락은 다를 수 있지만 이 대표 사건 직후 여야 지도부가 “과잉 대응 말자”며 절제된 모습을 보이려 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피의자의) 당적 여부가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한 민주당 원내대표 발언은 의미 있게 들렸다. 범인이 민주당 당원이라면 민주당의 자작극, 국민의힘 당원이라면 국민의힘 배후설 같은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도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피습당한 것처럼 생각해 달라”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는 여야 모두 섣불리 문제적 발언을 내놓았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양 진영에서 각종 음모론과 배후설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야 지도층이 지지자들을 향해 강력하고 묵직한 제어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고 있다. 여든 야든 짐짓 점잖은 척하며 내심 여론 지형이 유리하게 흐르길 기대하는 눈치 아닌가.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전원(轉院) 논란도 그중 하나다. 부산대병원이 국내 최고의 권역외상센터라는 사실, 119 헬기 이용 적절성, 5시간 만의 수술 등을 놓고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 의사회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있다. 의사들의 이런 반응에 무슨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환자가 위중했다면 당연히 부산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 편으로 이동했어야 했다” 등의 의료계 측 논리 역시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래도 이는 의료계 차원에서 ‘짚고 넘어갈’ 문제이지 정치적 소재로 삼는 걸 지켜보는 것은 불편하다. 목 부위는 급소 중의 급소다. 백주에 자신의 목 부위를 괴한의 칼에 기습적으로 찔렸다고 상상해 보라. 생사의 문제다. 응급환자였던 만큼 부산대병원의 1차 판단에 맡겼어야 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총탄을 맞고 수술대에 올라 의사들에게 “당신들이 공화당원이길 바란다”는 조크를 건넸다는 에피소드도 떠오른다. 결과론적 얘기다. 급박했던 순간 전원 결정은 이 대표만 할 수 있었고, 담대하지 못했느니 하는 세간의 평가도 이 대표의 몫일 게다. 서울대병원 전원을 두고 ‘충청도 핫바지론’처럼 부산 민심이 출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에선 총선 전 1심이 나올 것으로 전망됐던 ‘검사사칭 위증교사’ 사건의 재판이 미뤄지며 이 대표에겐 호재라는 분석도 있다. 이 대표의 처신이 적절했는지, 내로남불인지 등을 떠나 현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어느 쪽에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될지 정치공학 차원에서 주판알을 두드리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저 총선 시계가 잠시 멈췄을 뿐이고 곧 재개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피의자의 당적도 아니고 서울대병원 전원도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저주의 언어가 판을 치고, 그 사이 자신만의 허구에 빠져 살의(殺意)까지 품게 된 어느 외로운 늑대의 문제다. 토론과 비판은 실종되고 폭력까지 써가며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갈수록 극단화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문제다. 공통체의 가치를 결집하는 논의의 품격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 대표 측도 경찰도 병원도 훨씬 투명할 필요가 있다. 수사 상황, 치료 상황에 대한 비밀주의는 제2, 제3의 음모론만 부추길 뿐이다. 머지않아 퇴원할 이 대표가 무슨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궁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테러는 민주주의 적(敵)”이라고 했다. 국가 질서 유지자로서 좀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메시지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대표는 피해자로서 총선 득실을 염두에 둔 메시지를 내놓을까, 자기 성찰이 담긴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내놓을까. 정치권이든 유권자든 ‘지나침’을 경계해야 할 때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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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혁신 무풍’ 민주당… ‘강서 압승’이 毒이 되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강서 압승’의 축배를 들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어깨가 축 처진 느낌이다. 통상 6개월 이상 이어진다는 단식 후유증 탓만은 아닌 것 같다. TV 영상을 통해 비치는 표정을 보면 우선 지쳐 보인다. 주 2, 3회 법정에 직접 출석하는 본인 재판은 물론이고 측근들의 재판 진행 상황까지 챙겨야 하니 정신적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사법 리스크 대응에 소진되고 있을 것이다. 혁신과 통합을 요구하는 당내 비주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대응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낙연 전 총리는 “DJ도 2선 후퇴 여러 번 했다. 사법 문제가 없어도 그랬다”고 했다. DJ는 사법 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2선 후퇴가 가능했던 것이고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 때문에 2선 후퇴가 어려운 것 아닐까. 이 대표 스스로도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50년 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가 무리하단 항변이지만, 방탄 철갑이 뚫리면 천 길 나락이 현실화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러니 수비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개딸들로 방어벽을 치고 공천권으로 단일대오를 유지하며 잔뜩 웅크린 자세다. 비례대표 방식을 놓고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란 말에도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는 판에 원칙과 명분 내세울 때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여권의 헛발질, 명품 백 같은 영부인 리스크 등 상대방의 자책골이 이어지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대안세력으로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사이익만 기대하는 정치가 공감을 얻을 순 없다. 강서 승리 이후 친명 측의 당권 굳히기 시도, 이에 대한 비주류의 반발 뉴스만 들릴 뿐 이 대표나 민주당이 정국을 긍정적으로 주도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180석이네 200석이네 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 “암컷들이 설치고…” 등의 막말이 횡행했을 뿐이다. 이쯤이면 강서 압승은 결국 야당에 독(毒)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등판이란 변수가 발생했다. 야권 안팎에선 정청래류의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 주장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의 엄습을 경계하는 기류도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긴 이르지만, 분명한 건 내년 총선이 ‘윤석열 대 이재명’의 구도가 아닌 ‘한동훈 대 이재명’의 구도로 재편되는 양상이란 점이다. 내년 대통령 초청 신년인사회 때 언론의 투샷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아니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과 이 대표에게 집중될 것이다. 정치 경험이 없는 X세대, 술을 안 마시는 초엘리트 검사 출신, 검은 안경테에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 그에 비해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는 아홉 살 위의 이 대표. 영상으로 보여지는 둘의 이미지, 호감도를 비교 평가하려는 건 아니다. 한 전 장관은 난전도 마다 않는 ‘공격형’의 면모를 보일 것이고, 이 대표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지만 그 또한 그들의 게임이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이 대표가 지난 1년 이상 민주당을 자신의 서바이벌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제1야당은 공화제의 바탕이 되는 국가 시스템의 중요한 축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권도 문제지만 공당(公黨)의 역할을 혼동하고 존재 가치를 훼손한 이 대표의 책임도 크다. 이러니 민주당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으로 1년 넘게 38%를 넘지 못하고, 정권견제론이 정권안정론보다 훨씬 높지만 민주당을 찍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달 전 칼럼에서 여권을 향해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또 ‘윤석열 대 이재명의 싸움’으로 가야 하나…. ‘윤석열 당’이 아닌 미래 대권 주자들이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각축을 벌이는 ‘오픈 정당’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대통령은 뒤로 한발 물러서란 얘기였는데 한동훈 ‘원톱’으로 귀결됐다. 선택도 결과도 현 여권의 몫이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이재명 당’, 개딸 당, 색이 바랠 대로 바랜 86 운동권 당이 아닌, 미국 민주당 정도의 가치와 비전을 추구하는 ‘오픈 정당’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 대표가 보신(保身) 리더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민주당이 상식적인 중도 진보의 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 진정한 여야 혁신 경쟁으로 내년 총선이 의회정치 복원의 변곡점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이 대표가 총선 후 당 대표 선거에 또 나설 것이란 얘기까지 들리니…. 난망한 일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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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용산,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망가졌다

    국물 맛은 한두 술만 떠먹어 보면 아는 법이다. 국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드러난 몇몇 사안을 보면 권부(權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후 처음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던 부산 엑스포 유치전 오판, 대통령이 “진작 상황을 알려주지 그랬느냐”고 했다는 강서구청장 보선 판세 오판 등이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걸까. 누가 어떻게 요리를 하기에 한번 왔던 손님도 발길을 돌리게 하는 맵고 짠 국물을 만드는가. 주방장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란 식당의 주방장은 대통령비서실장이다. 헌법상 국무총리가 내각을 총괄하도록 돼 있지만 엄연한 대통령제하에서 실질적 국정 2인자는 따로 있다. 장관을 포함한 주요 인사, 정책 조율 등이 대통령실에서 이뤄진다. 물론 현 정부에선 누가 ‘V2’인지를 놓고 세간의 평가가 다르긴 하지만….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직 군주’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비서실장은 거칠게 말하면 왕명 출납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다. 그러나 단순히 대통령의 뜻만 전달하는 심부름꾼이 아니다. 승지이자 왕사(王師)이고, 국정의 막후 조율자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정확한 정보와 냉철한 조언으로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비서실장을 ‘게이트키퍼(The Gatekeeper)’라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윤 대통령은 자기 확신이 강한 직진 스타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오랜 검사 경험 때문인 듯 선악의 이분법적 가치관도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정(情)에 약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보좌하기 힘든 리더 유형이란 평가가 적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가 처한 작금의 상황은 “비서실장도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눙치고 넘어갈 단계를 넘었다. 오판은 또 다른 오판을 부른다. 그래서 궁금하다. 대통령의 재계 총수 떡볶이 먹방 이벤트는 누가 기획한 건가. 생사의 전쟁을 치르는 재벌 총수들을 해외 순방 때마다 수행하게 하고, 엑스포 유치 지원에 투입하는 것을 두고 관폐 논란이 일고 있음을 진짜 몰랐던 건지, 알고도 뭉갠 건지…. “지금 떡볶이 이벤트 할 때 아니다”라는 고언을 아무도 하지 않은 건지, 안 된다고 했는데도 밀어붙인 건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의 술자리를 좋아하고, 흥이 나면 나이 어린 재벌 총수에겐 존칭 없이 편하게 대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누가 이런 자리를 주선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인사도 이어지고 있다. 어느 대사는 외교부 차관으로 승진한 지 4개월여 만에 경제 부처 장관에 발탁됐다. 대통령이 형으로 불렀다는 선배 검사는 국민권익위원장 반년 만에 업무 연관 경력이 없는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지명됐다. 소년가장, 섞박지 얘기까지 곁들여서. 장관으로 옮긴 지 석 달도 채 안 된 사람을 총선에 내보내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심과 동떨어진 여러 일들이 반복되는 걸 보면 국정 게이트키핑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게이트키퍼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수도 있고, 활짝 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종 인사, 정책 조율, 메시지 관리 등이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몇 년 전 칼럼에서 비서실장의 덕목으로 의회를 전략적으로 다룰 능력, 대통령에게 사실을 가감 없이 보고하고 때론 ‘노’를 할 수 있는 정직함,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 등이라고 쓴 적이 있다. 지금 세 가지 덕목 중에서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세이 노(NO)’라고 본다. 말은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모르진 않는다. 김대기 실장은 스스로에게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내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어떤 성적표를 얻을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가의 역량이 쇠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제 집권 3분의 1도 안 지났는데 일류 인재들이 국정 참여를 꺼리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벌써 인재난을 걱정한다는 건 심각한 징후다. 국정의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교육 개혁, 노동 개혁, 연금 개혁, R&D 개혁 등 거창하게 선언은 했는데 실제 이뤄진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국민이 늘 옳다”며 변화의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더니 결국 용산도 당도 달라진 것이 없다. 변할것 같지 않은 수직적 리더십, 심기경호에 바쁜 참모들. 이러다 게도 구럭도 다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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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한동훈 등판이 혁신은 아니다

    이준석 신당 관련 뉴스가 좀 시들해진 느낌이다. 병력도 실탄도 없이 입으로만 ‘반윤(反尹) 신당’의 깃발을 휘날리기엔 힘에 부치는 듯하다. 여기에 한동훈 법무장관의 ‘시의적절(?)’한 정치 행보가 신당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인요한 혁신위가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의 강력한 저항으로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한 장관의 행보가 더 부각된 측면도 있다. 사실 현직 장관, 다른 곳도 아닌 검찰을 포함한 국가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법무부의 수장이 이런 식으로 ‘대중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정부 출범 1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임명직 장관이 팬덤까지 형성하며 대선주자급 행보를 보이는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역린을 거스르려 작정한 게 아니라면 최고 권력자의 묵인, 혹은 독려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늘 “법무장관 본분에 충실하겠다”고 하지만 한 장관의 정치 커밍아웃은 점점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가 보수층 일각에서 차기 주자로 본격 회자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 강연인 것 같다. ‘법무부 장관이 말하는 경제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 ‘법무부TV’에 40분 분량의 동영상으로 올라 있는 이 강연은 현재 121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70년 전 이승만 정부가 단행한 농지개혁이 한국의 빠른 경제발전에 디딤돌이 됐다는 점을 남미와 비교해 설명한 뒤 우리나라가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인구 문제를 꼽고, 출산율 회복 정책만으로는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으며, 이민 정책에 해답이 있다는 논리 전개였다. 이 강연을 들은 한 보수 원로는 “칼 잘 쓰는 검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식견이 생각보다 깊더라”고 했다. 제주포럼 강연이나 야당의 공격을 받아치는 언변, 기자들과의 단편적인 문답 정도로 그의 정치 그릇을 가늠하긴 어렵다. 농지개혁에 상응하는 이민정책 개혁이 시급하다는 제주포럼 강연 내용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법무장관으로서 자신의 영역과 관련된 의제를 과하게 꿰맞추려 한 것 아닌가 싶다. 아무튼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훨씬 예민한 정치 이슈, 복잡한 국가 현안에 대해 보다 긴 답을 내놔야 할 때가 많게 된다. 그걸 통해 정치인 한동훈의 함량(含量)이 드러날 것이다. 한 장관이 이준석류와는 다른 ‘스마트 우파’의 아이콘으로 우뚝 설지, 그저 그런 인물 중의 하나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야당은 ‘윤석열 아바타’로 규정하고 정권심판론 프레임으로 엮으려 할 것이 뻔한 만큼 이를 어떻게 넘어설지, 윤 대통령과 어떻게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분명한 건 한 장관의 정치비전, 정치력은 누구 말대로 ‘긁지 않은 복권’이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 장관의 진로는 여당 혁신 문제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보수 일각에선 이미 한동훈 띄우기가 한창이지만 한 장관의 총선 투입 시기, 총선 지휘 여부 등에 혁신 논의가 파묻히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여당이 용산 출장소 비아냥을 듣게 된 것은 ‘당정대 혼연일체’의 도그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를 허물고 다양성을 복원하는 게 여당 혁신의 큰 줄기가 돼야 한다. 자칫 어느 의원 지적대로 ‘태자당’ 논란에 휩싸이면 여당 혁신 논의는 산으로 갈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긍정 30∼35%, 부정 55∼60%로 거의 굳어진 형국이다. 1년 반 가까이 이어져온 이 흐름이 몇 달 만에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또 ‘윤석열 대 이재명의 싸움’으로 가야 하나. 대통령의 국정 기조와 리더십이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이를 구현할 엄청난 비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길이다. 대통령이 당에 대한 그립을 풀고, 자율권을 줘 차기 대권 주자들이 다 같이 뛰게 하는 것이다. ‘윤석열 당’이 아닌 미래 대권 주자들이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각축을 벌이는 ‘오픈 정당’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한 장관이나 원희룡 장관 등 내각 인사뿐 아니라 안철수 유승민 등 다른 대권 주자들도 다 뛸 수 있는 큰 울타리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정에만 전념하면 된다. 용산 비서실 개편, 그리고 당 리더십 전환이 담대하게 이뤄져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누구 험지 출마 정도의 ‘애드 혹(Ad-hoc)’ 해법만으론 판을 바꿀 수 없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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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이준석의 복수, 윤석열의 해원

    이준석 신당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말만 무성하고 실체는 희미한데도 언론의 큰 관심을 끄는 현상 자체가 기이할 정도다. 이준석 신당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주장에서부터 실제 창당에 나설 경우 여권에 의미 있는 타격을 입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관측이 분분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그런 예측을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창당 가능성 55%” 운운하며 12월 27일을 결심의 날로 정했다지만 실제 창당에 나설지조차 분명치 않다. 아마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참 특이한, 기존 정치 문법으론 잘 해독이 안 되는 정치인이다. 26세 때 비대위원을 했고, 최고위원을 거쳐 당 대표까지 지냈으면서도 정작 지역구에선 3번 출마해 3번 낙선한 ‘가분수’ 경력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12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치밀한 언론 플레이, 결코 지지 않으려는 자극적인 언사 등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권력게임에 능할 뿐 무슨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지, 무슨 가치를 지향하는지 알 수 없다. 늘 “내가 옳다”는 식이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말은 들은 기억도 없다. 그럼에도 메시지 전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띄우는 신당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지향하는 가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신당은 둘 다 빈약하다. 최근 그를 만난 정치권의 한 인사가 “국민의힘에 대한 복수 정당의 성격이 강했다”고 했다. 딱 맞는 진단이다. 복수(復讐) 심리로 누구를 망하게 하겠다는 식의 정당 깃발이 제대로 휘날릴 수 있겠나.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노회찬 정신의 정의당 등등 함께할 수 있는 대상을 툭툭 던졌지만 다들 선을 긋는다. 물론 이 전 대표의 최대 무기는 나이다. 실패해도 또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도 곧 40대에 접어든다. 그 점에서 문제의 본질은 이준석 신당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목소리가 주목을 받는 현재의 정치 지형이다. 정권견제론이 정권안정론을 10%포인트 안팎 상회하는 상황이 거의 굳어진 형국이다. 연원을 따져 보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한 뒤 잠시나마 50%를 넘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한 것은 지난해 7월 초다. 인사 잡음 등 다른 요인도 많지만 이 전 대표를 쫓아낸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섣부른 당권 장악 시도로 스스로 무덤을 판 탓도 있지만 ‘이준석 제거’는 1차로 그가 대변했던 20, 30대 남성의 이반으로 이어졌다. 당정 혼연일체론과 윤핵관 등 신실세의 부상은 ‘배제의 정치’로 읽히며 우군 이탈을 낳았다. 10·11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후 한 달이 지났다. 그나마 인요한 효과로 참패 직후의 초상집 분위기에선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 변화는 아니다. 외과 수술은 이뤄진 게 없다. 그 사이 용산 참모진 개편 하마평에서 보듯 “이러다 폭망”의 위기감은 슬슬 사그라지고 정책 이슈 등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안일함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수석을 비롯한 용산 참모들 상당수가 인 위원장이 말하는 ‘험지 도전’의 자세는커녕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 낙점을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다. 당의 호가호위 세력들은 불똥이 튈라 바짝 엎드려 있는 형국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본질 대 본질’의 싸움이 곧 다가온다. 담대한 중도 보수 진영 재편과 결집을 이뤄내지 못하고 집토끼에만 매달리다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윤 대통령에겐 어떤 쓰나미가 몰려올지 알 수 없다. 만일 100석 이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현 정권이 아무 개혁 성과도 내지 못하고 5년 임기를 허송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현 여권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인적 청산, 청년 정치인 대거 당선 안정권 투입 등 일반 국민의 상상을 뛰어넘는 국정 대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 연장선에서 이 전 대표를 향한 해원(解寃)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미스터 린턴’ 설화에도 궤변으로 넘어가려는 태도까지 겹치며 “이젠 손절하라”는 보수 내 여론도 거세다. 그럼에도 ‘썩은 사과’ 취급하며 도려내는 게 능사일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선 지지층 복원과 관련된 이슈이기 때문이다. 역대 총선을 보면 이질적인 당 안팎의 세력을 어떻게 한데 묶어내느냐가 승패를 가르곤 했다. 회군의 명분과 조건은 만들기 나름일 텐데…. 물론 그쪽으로 갈 가능성이 낮다는 게 문제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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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與 혁신은 ‘양떼 정당’ 반성부터

    보수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세운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현실 정치인이기도 했다. 1774년 무역항 브리스틀에서 어느 급진주의자에 이어 2위로 하원의원에 선출된 그의 당선 연설이 잘 알려진 ‘브리스틀의 유권자에게 드리는 말씀’이다. “의회는 나라 전체의 이익을 심사숙고하는 모임이다. … 유권자 여러분은 의원을 선택한다. 그러나 일단 여러분이 의원을 뽑고 나면 그 의원은 브리스틀 소속이 아니라 의회 소속이다.” 무려 250년 전의 연설인데도 울림이 크다. 탁월한 버크 평전으로 꼽히는 ‘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제시 노먼)에는 이 밖에도 자존심 강하고 때로 독선적인, 어쩌면 매버릭(maverick) 정치인으로 볼 수도 있는 숱한 일화가 나온다. 6년 임기 중 브리스틀 지역구를 겨우 2번밖에 찾지 않았다니 요즘으로선 상상조차 어렵다. 당수의 뜻대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정치적 양떼’가 되길 거부하려 했던 버크의 정치 생애를 짧게나마 거론하는 이유는 집권 여당의 혁신 논의를 보면서 드는 공허함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낙동강 하류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가 있고, 김기현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게 들린다. 정계 개편이니 한동훈 차출이니 하는 시나리오도 난무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총선 전술(戰術) 차원의 진단과 해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내년 총선은 ‘정권 심판론’ 대 ‘거야 심판론’의 대결이란 측면이 강하지만, 또 다른 한 축은 ‘국회 심판론’이 될 것으로 본다. 국익보다는 당리당략, 지역구에만 목매는 4류 정치에 대한 심판이다. 각종 민생 법안은 물론이고 이태원 참사 1년이 되도록 ‘주최자 없는 자발적 행사’에 적용할 인파 사고 예방 매뉴얼조차 여야 정쟁 탓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해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심판이다. 그럼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 대우,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가성비 최악 집단이란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문득 75년 전 제헌의회 때 세비나 대우는 어땠을까 궁금했다. 한 제헌의원 회고다. “영국에선 의원 봉급이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 부처 사무관 봉급 수준이라고 해서 그 정도로 했다.” 제헌의회 속기록을 찾아보니 의원들 살림살이 문제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었다. “민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때 (국회의원) 후생부 설치를 논하는 게…” “지금 굶어서 배를 쥐고 지내는 동포가 있으니 만치, 한 푼이라도 경제해서 샐 틈 없이…” “사무원들도 될 수 있는 대로 줄여서 이틀에 할 일을 하루에 하도록 수요를 줄이고…” 등등. 요즘 국회의원은 연봉 1억5000여만 원에 의정활동 지원비로 1억1200여만 원을 추가로 받는다. 그 밖의 지원도 숱하다. 제헌의원들이 하늘에서 본다면 까무러칠 지경이다. 그렇다고 국가 미래에 대한 보편적 이익에 충실한가. 그렇게 누리면서 하는 일은 점점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다를 게 없다. 국립 의대 유치전에서 보듯 지역구 이해가 걸린 현안이라면 삭발도 마다하지 않는다. 버크 얘기도, 세비 얘기도 고리타분할 순 있지만 왜 국회가 불신의 온상이 됐는지 되새길 시점이다. 버크가 강조했듯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을 대표해 국가의 이익을 심사숙고해 제안하고, 대통령은 이를 집행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기업으로 치면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 국민은 주주(株主), 국회는 주주를 대신한 정책 제언자이자 감시자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대선보다 총선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지금쯤 이상적이긴 하나 버크의 정신을 되새길 필요는 있지 않을까. 국민의힘은 최고 권력자의 눈치만 살피는 ‘양떼 정당’이 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존재론적 반성문을 쓰는 것에서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국가의 보편적 이익을 고민하고 추구하거나, 적어도 국익과 지역구 이해관계의 조화를 모색할 정도의 자세는 돼 있는 인물을 어떻게 얼마나 공천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먼저 나와야 한다. 영남권 다선 의원들의 험지 출마나 용퇴 요구 등은 그다음 수순의 얘기다. 그게 용산 권력자와의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의 가장 큰 덕목은 ‘공익(公益)’에 대한 판단력과 실행 의지이지 정쟁에 앞장서는 전사(戰士)가 아니다. 내년 총선은 승패를 넘어 입법부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느냐가 판가름 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선제적으로 특권 혁파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밥값 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뚜렷한 방향 없이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수준의 혁신 시늉으론 국민 마음을 얻기 힘들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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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이재명의 지팡이에 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지팡이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승패를 가른 상징적 소품이었다. 선거 이틀 전 지원 유세에서 염색하지 않은 헤어스타일로 단상에 오른 이 대표는 지팡이를 짚은 채 “마음은 똑바로 서 있는데 몸이 못 버텨 죄송하다”고 했다. 추석 전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는 지팡이를 짚고 휘청대는 모습도 보였다. 참 지능적인 동정 유발 연출이란 평이 나왔다. 반면 ‘빨간 점퍼’ 차림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힘 있는 여당 후보, 대통령과 핫라인이 있는 후보”를 외쳤다. 결과는 17%포인트 차의 여당 참패. 이 대표의 약자 코스프레가 먹혔고 윤석열 마케팅은 통하지 않았다. 선거 패인을 놓고 중도층 이반, 높은 정권견제론 등 여러 진단이 나온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은 ‘오만한 강자’보다 ‘모자란 약자’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 약자의 문제점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변덕스러운 인간의 속성이다. 민주당은 사실 약자가 아니다. 윤 정부는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거대 야당의 벽에 부딪혀 사사건건 휘둘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권력의 반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절대 다수의 국회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약자, 여권은 강자처럼 비치고 있다. 이는 프레임 싸움에서 밀린 탓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이 대표의 ‘지팡이 전략’이 뻔하게 보이면서도 일부 중도층까지 잠식할 수 있었던 건 그 대척점에 ‘군림’ 이미지의 통치자가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비겁함을 싫어하는 성정이라고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면서도 남들이 이루지 못한 성공의 역사를 써 왔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승부사적 기질이란 측면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른 건 ‘말(言)’이다. 설득과 공감보다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스타일. 이게 인사나 정책 추진에서 하나둘 쌓이며 정치가 아닌 통치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보선 열세에 대해 “왜 진작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실이라면 의아하다. 보궐선거 귀책 사유자 사면 복권으로 사실상 공천을 하라는 지침을 준 것도, 당정일체의 직할 체제를 만든 것도 용산 아닌가. 그런 점에서 “강서가 원래 험지” “선거 방식의 문제” 등의 패인 분석은 맞지도 않고 곁가지일 뿐이다. 진단이 정치공학적 차원이면 교훈과 해법도 그 수준을 맴돌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이번 선거의 함의를 큰 눈으로 인식하고 변화의 계기로 삼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차분함’에 방점이 있는 건지, ‘변화’에 방점이 있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결국 여권은 ‘차분한 수습’의 길을 택한 듯하다. 일각에선 비대위 전환, 나아가 연말 신당 추진 등 해법과 로드맵을 내놓고 있지만 다들 조심스러운 눈치다. 총선 공천장이 급한 당내 인사들이 김기현 체제의 결단을 대놓고 입에 올리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결국 ‘창조적 전환’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창조적 전환은 당의 문제만일 수 없다. 이번 선거의 ‘교훈’을 지엽적인 선거 전략 분석, 패인 분석에만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다. 용산의 성찰이 핵심이다. 왜 설득과 소통이 부족한 강자로 비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코피 터져가며 국정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의 대부분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대통령의 개인기와 지시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수많은 약자들이 쏟아졌다. 이들은 새 대통령이 자신들의 삶을 보살펴주길 기대했다. 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며 민생 대신 ‘이념’을 내세우는 듯한 대통령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대통령 메시지에서 민심을 받들겠다는 얘기를 듣기 힘들다. 검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 뉴스만 쏟아진다. 바로 그 틈을 이 대표의 지팡이가 파고든 것이다. 내년 총선,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중 누가 더 절박하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절박함은 국민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다. 승리의 열기도 있지만 ‘패배의 분기(憤氣)’도 있다. 패배의 분기는 그냥 사그라들 수도 있고, 판세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될 수도 있다. 저자세와 낮은 자세는 다르다. 저자세는 굴욕이지만 낮은 자세는 국민과 진심으로 교감하는 길이다. 오동잎은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더 처절하게 낮은 자세로 내년 봄을 준비할까. 역사의 미소는 공짜가 아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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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김부겸 대안론’ 잠재운 李, 공천 옥새 쥐고 총선까지 가려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 돌입을 앞두고 한때 ‘양평거사’ 김부겸 대안론이 심심찮게 회자됐다. 호사가들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 대표 측으로선 가벼이 흘려들을 수 없는 기류였다. 김 전 국무총리는 정치활동을 자제해 왔지만 호남에선 광주 출마론이 제기된 적도 있다. 물론 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잘랐는데 활동 재개에 대한 여지까지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자칫 호랑이를 키울 수도 있는 김부겸 대안론, 이번 단식으로 일단 잦아들었다. 첫 일주일, 느닷없는 단식 카드에 비명 측은 허를 찔린 듯 당황했다. 2주 차 때부터는 당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고 한다. 비명 핵심 몇몇을 제외하곤 상당수 의원과 총선 공천을 노리는 예비 후보들의 ‘알현(?)’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회복식을 만들어주겠다”며 눈물을 흘린 모습은 19일째로 접어든 단식 과정을 통틀어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대선 때 ‘이대남’에 맞설 ‘이대녀’의 선봉장으로 영입됐다가 반명으로 돌아서고 개딸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27세의 젊은 정치인이 단식 12일 차 되던 날 이 대표를 찾을 때의 번민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 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장의 옥새를 쥐는 건가, 하는 판단 말이다. 이 대표가 당내 반대파를 제압했다고 단정하긴 이르나 ‘방탄 단식’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기사회생의 발판은 마련한 것 같다. 언제 어떻게 무슨 명분으로 끝낼 것이냐는 출구 전략이 뭔 의미가 있겠나. 19일 서울에 올라올 수 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단식장을 찾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친문으로선 이 대표 단식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걸로 비칠까 우려하지 않을까. 윤석열 대 이재명의 싸움으로 끌고 가야 하는 이 대표도 최근 부쩍 정치 현안에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훈수 정치’에 기대려 할까.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명분 없는 부결’의 딜레마에 빠진 민주당 의원들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20일 가까이 굶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가결을 주장하기도 어렵게 됐다. 부결 당론을 하네, 체포동의안 보이콧을 하네 하는 등의 말들이 오가는 이유다. 보이콧이든, 부결 당론이든 이 대표가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장면은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럴 거면 단식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다. 아마 이 대표 측은 일단 구속 리스크를 면하고 당을 급속히 총선 체제로 재편하는 로드맵을 구상 중이지 않을까. 10월 중순이면 총선 D-6개월이니 당 대표가 맡는 인재영입위를 띄우고, 총선기획단을 꾸리고, 현역 의원 평가 작업도 시작하고…. 그러다 공천 살생부 논란이 터지고 탈당 분당 등의 내홍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 체제로 총선을 치른다면 쇄신과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못해 국민의힘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사정도 도긴개긴이니 현재로선 그런 분석은 별 의미가 없다. 이 대표가 지금 떼밀려 물러나진 않으나 내년 총선 한두 달을 앞두고 좀 더 주도적인 위치에서 비대위 전환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 역시 시나리오일 뿐이다. 이 대표는 일단 자신이 살기 위한 생명 연장의 수(手)를 뒀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 대통령 직선제 요구, 지방자치제 도입 등 큰 명분을 내세우고 단식을 감행했던 YS, DJ의 단식과는 달리 이 대표의 단식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한 게 사실이다. 단식의 목적, 즉 국가적 의제 없이 셀프 구명의 사적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단식으로 죽은 정치인은 없다고 한다. 단식을 직접 해 본 적도 없고, 그 힘듦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사골 국물’식의 조롱엔 동의하진 않는다. 다만 “무엇을 위한 단식이었느냐”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주요 8개국(G8) 진입 운운하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단식이란 후진적 행태를 봐야 하는 정국 상황이 답답하다. 정치는 비정하고 갈수록 더 막장이다. 이 대목에서 ‘단식 그 후’를 상상해본다. 만일 이 대표가 단식 종료와 함께 체포동의안을 당론으로 가결시켜 달라고 공개 호소한다면? 그토록 “증거가 하나도 없다”며 검찰 조작이라고 반발했으니 당당히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면? 영장 발부 여부를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제3의 명분을 찾을 수 있진 않을까. 이번 단식이 ‘신의 한 수’가 될지 ‘신의 꼼수’가 될지, 그 선택은 오로지 이 대표의 몫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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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조소앙의 ‘홍범도 평전’으로 돌아가라

    ‘삼균주의’ 조소앙 선생이 남긴 문집 중에 ‘유방집’이 있다. 독립운동가 82명에 대한 평전을 모은 책으로 1933년 중국 난징에서 펴냈다. ‘유방(遺芳)’은 꽃다운 이름을 후대에 남긴다는 의미다. 선생 자신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록을 남겨 놓지 않으면 자칫 잊혀질까 염려해 썼다고 한다. 일제에 분연히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거나 자결한 분들을 고루 다뤘는데, 그중에 ‘홍범도전(傳)’이 있다. 대부분 ‘죽은 열사’인데 이례적으로 생존자인 홍 장군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체구가 장대하고 기개가 높았으며, 글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성품은 의협심이 강해 어려운 사람 돕는 걸 급선무로 여겨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1907년 공(公)은 북청 후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의 장교 미야베가 이끄는 중대를 섬멸하였다.” “1920년 의용단장이 되어 (봉오동 전투 때) 공이 군대에 명하여 숲속에서 발포하도록 하고 군호(軍號)를 보내니, 마침내 하늘에서 빗발치듯 총알이 쏟아졌다. 우리 군이 추격하여 크게 격파하였으니 이때 적군의 사상자는 138명이었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이었지만 요즘으로 치면 국가정보원장 역할도 겸했다. 당시는 ‘밀정의 시대’였다. 정확한 정세 판단을 위한 정보 유통과 수집의 사령탑 역할까지 한 셈이다. 1921년 벌어진 자유시 참변은 독립군 세력을 약화시킨 최악의 흑역사로 임정이 몰랐을 리 없는 사건이다. 일단 선생이 쓴 홍범도전에는 자유시 참변 얘기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홍범도란 이름은 유방집의 ‘김좌진전’에서도 언급된다. “백야(김좌진의 호)는 5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홍범도 장군과 함께 청산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유방집 말고도 선생이 소련 타스통신 주중 특파원에게 서신을 보낸 자료가 남아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현재 정치적으로 귀국의 의사와 맞지 않아서 구금되어 있는 한국 혁명가로 하단에 기록된 인원들이 있으므로 우리 한국의 임시정부가 그들을 인수하여 우리 해방투쟁의 전선으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57명이 적힌 ‘석방 촉구’ 명단을 첨부했는데, 홍범도가 세 번째로 적혀 있다. 선생은 ‘대한민국’ 국호를 정하는 데도 기여한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임정의 기록자였다. 선생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판단하긴 어렵지만 독립운동사의 귀중한 기초 자료임에 틀림없다. 박정희 정부가 1962년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을 때 공적 내용을 보면 ‘1907년 북청에서 일본군 1개 중대 섬멸’ ‘1920년 만주 간도에서 일병 섬멸’ 등 소앙 선생의 ‘홍범도전’에 근거했음을 알 수 있다. 홍범도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건 문재인 정부다. 문 대통령은 6·25전쟁 때 김일성 정권에서 훈장을 받은 김원봉까지 국군의 뿌리로 내세우려다 반발이 일자 그에 대체되는 상징적 인물로 홍범도 띄우기에 나섰다. 육사 내 흉상 설치, 공군 전투기 6대가 호위한 유해 봉환, 추가 서훈이 착착 진행됐다.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문 정부에서 폄훼된 것과 대조됐다. “봉오동 전투의 성과가 과장됐다” “공산당에 가입했다” 등의 주장과 자료가 우파 일각에서 본격 제기된 것도 그 무렵이다. 윤석열 정부가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조명하고 육사 흉상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뿌리 깊은 정체성 대결, 역사전쟁의 연장선에 있음은 물론이다. 자유시 참변 당시 홍범도의 역할을 놓고는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해 상세히 옮기기 힘들 정도다. 레닌의 권총을 선물로 받고 말년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건 사실이나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긴 어려운 국제적 시대적 상황이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건 북한 김일성 정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됐고 1943년 75세로 사망했다. 문 정부의 홍범도 띄우기는 과했다. 그렇다 해도 현 정부의 홍범도 지우기 방식도 자연스럽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권력에 의한 역사의 이념화, 진영화는 위험하다. 홍범도 문제는 6·25전쟁 당시 북한 군가였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멈춤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홍 장군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 더불어 일제에 무력으로 맞서 싸운 1세대, 백선엽 장군 등은 북한 공산세력에 맞서 싸운 2세대로 함께 인정할 순 없나. 소앙 선생이 혼을 담아 전하려 했던 ‘유방의 뜻’이 후대에서 갈가리 찢기고 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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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관 칼럼]이승만도 김구도 獨立과 建國의 아버지들이다

    8·15를 기해 올해도 ‘건국’ 논쟁이 벌어졌다. 광화문 사거리엔 ‘8·15 대한민국 건국절’이란 어느 우파 군소 정당의 플래카드가 지금도 걸려 있다. 일부 우파 종교인도 “8월 15일 건국절로 정해 국가 정통성을 세우자”고 촉구하고 나섰다. “도둑같이 온 45년 해방보다 48년의 건국이 훨씬 값지다”는 어느 교수의 글에 이종찬 광복회장이 “해방은 도둑처럼 오지 않았다. 1945년 8·15와 1948년 8·15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은 옳지 않다”고 반박하는 일도 있었다. 광복 78주년, 건국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역사는 알면 알수록 뭐라 정의하기가 어렵다. 해방 공간의 복잡한 역사는 더더욱 그렇다. 특정 사관으로, 특정 사건이나 인물만 내세우면 자칫 ‘외눈박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쓰기도 무척 조심스럽지만 건국 논쟁, 아니 건국 ‘시점’ 논쟁의 쟁점 정리 차원에서 몇 가지 역사적 기록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제헌 헌법 전문(前文)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돼 있지만, 주목할 것은 유진오 초안에는 ‘기미 혁명의 정신을 계승’으로만 돼 있었다는 점이다. 독회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선포’라는 표현을 넣자고 처음 제의한 사람은 국회의장이던 이승만이었다. 그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선출한 한성정부를 말하는 건지, 초대 대통령이었지만 탄핵을 당한 대한임정인지 명기되지 않아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김구 세력과의 역학관계가 반영된 게 아닐까 한다. 그러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표현이 전문에 들어간 것은 40년 가까이 지난 1987년 개헌 때다. 당시 여당 측 헌법개정 대표위원이던 이종찬 의원(현 광복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호를 둘러싼 논란도 간단치 않다.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다. 정부의 관보 1호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로 돼 있다. 1919년을 기점으로 본 것이다. 이를 근거로 광복회장은 “올해는 대한민국 105년”이라고 한다. 이승만이 대한민국 연호를 쓰려 했던 건 북한과의 체제 경쟁, 역사적 정통성 경쟁을 염두에 둔 정치적 맥락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당시 기록을 보면 제헌국회는 단기를 사용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쓰는 연호가 달랐던 것이다. 이는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민족정기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헌국회는 표결을 거쳐 단기로 쓰기로 결정했다. 현재의 서기로 통일된 건 5·16 이후다. 한정된 지면에 해방 3년의 정치적 혼란이 정리돼 가는 과정을 담아내긴 어렵다. 분명한 건 공산세력에 맞설 민주공화정 수립에 앞장선 이승만과 “빨갱이든 김일성이든 다 우리와 같은 조상의 피와 뼈를 가졌다”는 이른바 ‘단군자손론’을 앞세운 김구의 길은 달랐지만 둘 다 박헌영 여운형 등 좌파와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는 사실이다. 소련의 야욕을 꿰뚫어 보았던 이승만은 물론이고 김구도 강력한 반탁 운동을 통해 남한의 공산화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다. 그러나 3·1운동을 통해 왕정으로의 복귀가 아닌 ‘민국(民國)’으로의 전환을 선포한 정신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그 정신을 토대로 광복을 이루고 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해방 후 혼란을 딛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근대국가를 세우고 세계적인 중추국가로 성장해 나가는 중대한 시발점이 1948년 정부 수립이라는 사실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1919년 ‘선언적 건국’으로 시작해 1948년 ‘실효적 건국’으로 이어진 긴 흐름으로 볼 필요가 있다. ‘광복절 대 건국절’ ‘김구 대 이승만’의 역사 내전을 벌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절하된 상황에서 ‘1948년 건국론’이 나온 것이나, 이에 맞서 ‘1919년 건국론’이 제기된 과정을 새삼 장황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역사의 정치화’다. 어느 정권은 ‘건국 60주년’을, 어느 정권은 ‘건국 100년’을 내세운다. 정권이나 통치자가 정치적 목적을 갖고 역사를 재단하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승만만 추앙(推仰)할 것도, 김구만 존숭(尊崇)할 일도 아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평가하면서 큰 물줄기로 이승만과 김구를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로 묶어내야 한다. 역사는 모노레일이 아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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