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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정청래 의원이 “이재명이 정청래이고 정청래가 이재명”이라고 했다. 그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장을 했던 인물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원내대표를 했던 또 다른 친명 박찬대 의원도 오늘쯤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고 한다. 당원들이 ‘청래파’와 ‘찬대파’로 분화돼 티격태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흔한 말로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다는데 각각 4선, 3선의 선수까지 쌓았으니 어떤 영역에선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출한 역량을 갖고 있겠지만 일반인들 중엔 이들이 거대 여당을 이끌 ‘정치 리더’인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한때 “이재명 경기지사, 그냥 싫다”고 했다는 정 의원은 2021년 이재명 자서전을 읽었다며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아니 흐느끼며 읽었다”고 정치적 고해성사를 한 뒤 시종 친명을 자처해 왔다.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던 박 의원이 원내대표로 추대돼 170명의 의원을 통솔하는 지위에 올랐을 땐 “누구지?” 하는 반응도 나왔다. 요컨대 둘은 정치적 배경도 성향도 다르지만 이재명 일극 체제에서 남다른 충성심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 이번 경선도 결국 이 대통령의 의중, 즉 ‘명심(明心)’ 잡기 경쟁이 될 공산이 크다. 이들이 “이재명 대통령과 한 몸”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원팀’ 민주당” 등을 주창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다만 정권 초반이니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외치는 게 당연하겠지만, 친명 중심의 ‘당정일체론’에서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윤석열 정권 이듬해인 2023년 3·8 전당대회 때 친윤계 후보들이 띄운 게 바로 ‘당정일체론’이었다. 당시 필자가 쓴 칼럼의 한 대목이다. “당정일체, 명예 당대표 추대 얘기에 이어 대통령실과 당의 ‘혼연일체’ 주장까지 들고나온 건 지나치다. 혼연일체란 생각과 의지, 행동이 합쳐져 완전히 하나가 되자는 건데, 무슨 검사동일체 원칙의 여의도 확장 버전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원론적으로 정당은 이념과 가치의 정치 결사체로서 영속적이어야 하고 대통령은 그 당이 배출한 한시적 존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대통령 스타일에 따라 당의 위상도, 당내 권력 서열도 춤을 춘다. 대통령과 당이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은 이런 긴장 관계가 깨지며 파멸로 치달은 극단적인 예다. 정당 정치에 대한 기본 소양도 없이 권좌에 올라 “당은 내 말을 따르라” 했던 대통령, 그 나이브한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 일단의 세력들에 의해 당은 망조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보편적 이익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정치적 영혼은 없고 개인적 탐욕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엔 국민의힘과는 질적으로 다른 측면에서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110만 명에 달한다는 권리당원들의 파워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른바 당심을 극단적이거나 인기 영합적인 몇몇 유튜버들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유튜버나 권리당원들이 실질적 당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눈 밖에 나면 ‘왕수박’으로 찍히기 일쑤다. 그러니 말 그대로 이들에게 영혼을 맡기고 영합하지 않으면 당 대표 같은 자리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이쯤이면 누가 리더이고 누가 추종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물론 국민의힘 쪽도 욕하면서 따라 배우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거대 여당의 당론 집약 구조는 소수 야당 문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국민주권, 시민주권, 당원주권, 직접 민주주의 등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조직화된 소수’의 뜻이 마치 전체의 뜻인 양 왜곡되거나 그대로 국정에도 반영되고 나아가 ‘침묵하는 다수’를 지배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면 그게 변형된 과두제 아니고 뭐겠나. 이 대통령은 이런 구조하에서 당내 경선에선 90% 가까운 득표율로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본선에선 절반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 차이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대선의 강을 건넜으니 이젠 ‘국정’이라는 높은 고지(高地)를 향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까지 보듬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려면 당이든 내각이든 ‘침묵하는 다수’의 상식을 판단 근거로 삼는 ‘영혼 있는 정치인’이 훨씬 더 많아지고 그들이 주류가 돼야 한다. 과연 그게 될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 중 귀에 쏙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다.” 돌이켜 보면 넬슨 만델라의 “잊지 않지만 용서한다”는 원칙을 본받아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을 용서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 개편을 위해 대연정까지 모색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성공했든 실패했든 통합에 진심이었다고 본다. 다만 이들이 그토록 통합을 추구한 이유는 정치적 신념 외에도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적 한계, 비주류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던 그들에게 통합은 절박한 과제였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어떤가. 입법 권력까지 아우른 막강 대통령이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역시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권력이기도 하다. 역대 최다 득표이지만 과반은 허용 않은 득표율 배분에서 보듯 민심은 늘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절묘한 균형을 찾는다. 이 대통령이 대선 전부터 국민을 크게 통합한다는 ‘대통(大統)’을 역설한 것도 이런 팽팽한 민심의 실체, 반대층의 비토 심리를 꿰뚫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지혜로운 통합의 길을 찾을 것인가. 먼저 국민의힘이 “정치 보복”이라 주장하는 ‘3대 특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초보적 정의를 포기해선 안 된다” “통합과 봉합은 다르다”고 했다. 민주주의 복원이 통합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사실 3대 특검 동시 진행은 모두 윤 전 대통령과 그의 힘에 눌려 제 기능을 못 한 검찰 등이 자초한 업보다. 또 이른바 ‘내란 특검’은 국민적 공감대하에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역사적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김건희 특검’은 나라를 망가뜨린 농단과 비리의 실체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적당히 묻고 넘어갈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우려되는 건 3대 특검 수사가 방만하고 산만하게 진행되면서 통합의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앞의 두 사건과는 성격이 다른 채 상병 사건은 특검이 아니라 공수처에 그대로 수사를 맡기는 ‘역발상’을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한다. 이른바 격노의 진실과 수사 외압의 실체를 밝히는 채 상병 사건은 사안이 비교적 단순하고 검찰과 달리 공수처는 수사의 정당성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에 대해 거부권 행사라는 고도의 결단을 내리고 다른 두 개의 특검은 중립적이고 신망 있는 법조인을 골라 ‘투명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린다는 메시지를 준다면 이것이 주는 정치적 함의는 클 수 있다. 권력의 절제로 ‘적폐 청산 시즌2’라는 반대 진영의 우려를 불식하고 정치 복원의 작은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국민의힘이 여전히 자중지란 지리멸렬 상태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실용적 통합’ 메시지를 한둘 쌓아가며 장차 영수회담의 정례화, 여야 동수의 정책협의체 운영 등 실질적 협치의 제도화로 이어가는 것은 어떤가. 다수가 동의하는 목표를 얻기 위한 지난한 ‘과정’ 자체가 통합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의 통합은 때로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 속성을 띠고 있다. 갈 길 바쁜데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 지지층은 “내란 정당, 계엄 정당과 무슨 협치냐”는 기류가 팽배하다. 변방의 리더였던 이 대통령 역시 “즉시 성과”로 자신의 ‘유능함’을 과시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그러다 자칫 통합과 협치는 말뿐이고 조급함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자신이 성남시장 시절부터 겪어본 사람이나 대선 도전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 편하게 쓸 수 있는 사람 위주로 중용하는 협소한 인맥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초기 인선에서 그런 조짐이 보인다. 지금 국민의 근원적 갈증과 두려움은 “전 국민 25만 원 지원” 같은 심폐소생술 정도로 해소되지 않는다. 양극화 해소, 핵심 산업 경쟁력 제고, 정부 혁신 등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국가적 핵심 의제가 뭔지, 이를 어떻게 정치 영역에서 ‘함께’ 구현해 낼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미중 충돌 와중에서 어떻게 외교적 좌표를 설정할지, 트럼프 측과의 외교채널을 어떻게 탄탄하게 구축할지 등은 말 그대로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야 할 협치의 영역이다. “통합은 유능함의 지표”라는 근사한 말이 식언(食言)이 되지 않으려면 더욱 열린 자세와 임팩트 있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팔장 낀 채 보고 있는 절반의 국민 중 5% 정도의 마음만 더 잡아도 성공 아니겠나.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6·3 대선이 임박했다. 그사이 또 뭔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김문수-이준석 후보의 단일화 여부인 것 같다. 사전투표 전날인 28일쯤 가부간 결판이 날 것이다. 10% 문턱을 살짝 넘은 이 후보 지지율이 좀 더 올라 15%에 근접하면 이 후보가 칼자루를 쥐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3석 다윗이 107석 골리앗 어깨에 올라타는 식의 역발상 단일화는 냉정하게 말해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후보가 최대한 몸값을 키워 ‘통 큰 베팅’에 나서는 시나리오는 어떨까. 이 후보가 최종 득표율 15%를 넘긴다고 해도 당장 손에 남는 건 수십억 원의 선거비용 보전뿐이고, 3석 정당의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다는 점에서다. 견제용 의도가 다분하겠지만 민주당 쪽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존재감과 잠재력을 밑천으로 ‘큰 집’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물론 이 후보로선 자신의 지지층만 형해화한 채 안철수의 토사구팽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점을 우려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불확실한 길이니 고심이 깊을 듯하다. 단일화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이번 대선의 큰 흐름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왜 치러지게 됐나. 12·3 불법계엄과 헌법재판소의 8 대 0 파면 결정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선거다. 그러니 이번 대선을 죽 관통해 온 본류(本流)는 계엄과 탄핵에 대한 국민적 평가일 것이다. 정권 심판론이 융기했고, 그 융기된 지형의 맨 꼭대기에 이재명 후보가 올라탄 셈이다. 너무 충격적인 뒤틀림 끝에 단박에 솟아오른 언덕은 지금도 단단하다. 이 후보가 그간 압도적 1위를 달려온 이유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만들어 헌납한 것이니 그 또한 이 후보의 운(運)이다. 그런데 선거가 본격화하며 역류(逆流)도 만만찮게 일고 있다. 이재명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보수 진영과 중도 일각의 두려움이다. 90%에 육박한 지지율로 선출된 대선 후보로 역대 민주당 계열 정치인 중 가장 강력한 당 장악력을 보여 온 그가 입법 권력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손에 넣고, 국민의 뜻을 내세워 사법 권력까지 통제하며 독주하면 누가 견제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결국 작금의 대선 지형은 이미 ‘저질러진 독재’에 대한 철저한 단죄냐, 앞으로 ‘올 수도 있는 독재’에 대한 견제냐의 본류와 역류가 뒤엉킨 형국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하지만 아직 그 경륜과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만 40세 정치인도 틈새를 비집고 역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본류와 역류가 부딪히면 와류(渦流), 즉 소용돌이가 일게 된다. 본류는 강력하고 두 갈래로 나뉜 역류는 힘에 부친다. 성격이 다른 두 역류가 힘을 합칠지, 우여곡절 끝에 합쳐봤자 본류에 삼켜지고 말지, 본류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을지 등이 앞으로 남은 며칠 동안 벌어질 수도 있는 일들이다. 여기서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또 다른 잣대가 있다는 점이다. 누가 위기의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인물’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요즘 “훗날 12·3 계엄이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나락으로 빠져드는 시발점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심각하게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언제는 위기 아닌 적이 있었냐고 할 수 있지만 이전의 위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새삼 열거할 필요도 없지만, 문제는 0%대로 진입할지도 모른다는 잠재 성장률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 아파트 가격 차이가 많게는 수십 배에 달하는 서울 부동산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등 굵직한 국가 의제에 대한 변별력은 보이지 않고 두루뭉술한 국익 공방이나 잡화점식 각론만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유권자 분포는 왼쪽과 오른쪽에 큰 봉우리가 있고, 그 중간에도 봉우리가 있는 ‘삼봉형’이다. 결국 가운데 봉우리에 속한 유권자들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의 싸움이다. 계엄 단죄 여론이 여전히 높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좀 희석된 듯하다. ‘단죄론’ ‘가짜론’은 지지층 결집엔 도움이 될지언정 ‘플러스알파’로 이어지진 않는다. “누구를 뽑을지 모르겠다” 등의 얘기가 적지 않게 들려오지만, 이젠 누가 더 절제할 줄 알고 덜 오만하고 통합형 인물인지를 판별하는 시간인 듯하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국민의힘이 새벽에 김문수 대선 후보 지위를 박탈하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새 후보로 내세우려는 시도를 감행했다는 소식에 평소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한 지인이 연락을 해 왔다. 그는 대뜸 “다른 건 모르겠고” 하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가 반장 자리 빼앗긴 것이랑 뭐가 다르냐고 했다. 극 중에서 어린 애순이는 반장 선거에서 1등을 했지만 2등을 한 부잣집 아들에게 반장 자리를 내줘야 했다. 담임 선생이 그리 하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 가난 때문에 반장 자리 빼앗긴 애순이나 힘이 없어 후보 자리 빼앗기게 된 김 후보나 본질적으론 다를 게 없다는 얘기였다. 정치에서 가장 무서운 민심이 ‘동정심’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만 하루도 안 돼 한 전 총리로의 후보 교체안이 국민의힘 전 당원 조사에서 부결된 것은 이런 세간의 바닥 민심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기본(基本)도 지키지 않은 채 새벽에 날치기하듯 멀쩡한 후보를 끌어내리고 한 전 총리를 대신 후보로 세우려 음습한 공작을 펼친 데 대한 ‘정서적 분노’가 컸던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의힘은 기득권 세력의 정당, 엘리트주의 정당임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온 힘을 쏟아 간신히 본선 무대에 올랐는데, 대의명분이니 선당후사니 하며 “네가 양보하라”고 거칠게 요구한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선발전엔 참여하지 못했지만 평소 공부도 많이 했고 유학도 했고 외국어도 잘하고 실력도 좋은 사람이 대신 나가면 좀 더 승산이 있을 수도 있는데 왜 고집을 부리느냐는 식이다. 당사자가 얼마나 억울해할 것인지에 대해선 둔감하다. 자신은 그런 무시험 전형에 올라탈 만한 예외적 인물이라고 스스로 여긴 듯한 한 전 총리의 자기중심적 우월주의도 일반 정서와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그가 과도기 국정을 잘 이끌 수 있는 경륜과 역량을 갖춘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건 사후 평가의 영역이다. 후보 선출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취약한데도 오히려 채권자인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쌍권’은 왜 초현실적인 무리수까지 두며 한 전 총리를 대선 후보로 밀어붙이려 했을까. “을지문덕” “김덕수” 운운했던 김 후보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맞다. 다만 그와 별개로 단순한 상호 불신이나 감정싸움으로만 볼 수는 없는, 우리 정당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사실상의 ‘심야 쿠데타’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기획자이고 실행자인지, 드러나지 않은 배후가 있었던 건지의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 전 총리가 단일화 확답도 없이 50년 공직 끝무렵에 불확실한 대선에 뛰어들 리는 없다. 필자는 4주 전 ‘한덕수 출마론…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반(反)이회창’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언급했다. … 한 대행은 자의든 타의든 ‘대선 경기장’ 옆까지는 온 듯 보인다.” 그 칼럼을 쓰기 전 ‘정치권 인사’들에게 들은 얘기는 이낙연 전 총리까지 포괄하는 훨씬 구체적인 반명 연대 구상이었다. 용산의 핵심 인사에 이어 나중엔 대통령 직속 위원회 핵심 인사들, 특정고 인맥이 관여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런 흐름의 배후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는지는 모호하다. 그렇다는 얘기도 있고 아니란 얘기도 있지만, 솔직히 윤 전 대통령이 ‘중심 권력’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60여 명의 의원들이 ‘후보 교체’ 무리수에 동의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설령 지더라도 당권 욕심이 없는 한 전 총리가 가장 무난한 대안이라는 데 이심전심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지금 갖고 있는 기득권이라도 지키고 혹시 모를 사법 우려를 막기 위해 일단 뭉쳐야 한다는 집단 보호 본능이 작동한 것은 아닐까. 정권 교체 후 닥칠 수도 있는 사정 정국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이런 공포감이 ‘최초의 호남 후보’ ‘통상 전문가’ 등 이재명 후보에 대한 비교 우위 기대와 맞물려 한 전 총리로의 단일화에 대한 막연한 집단 희망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19세기 궁정에서나 벌어질 법한 초현실적 사건이 토요일 새벽 벌어졌다. 국민의힘 수준이자 실력이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당원들의 집단 지성이 발휘된 게 다행이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정당 민주주의의 치명적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이라도 얻길 바란다. 국민의힘의 대들보와 서까래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이번 사태의 책임자들은 알고는 있는지….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최근 신뢰도를 인정받는 어느 여론조사기관 대표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2주 전쯤 자체 보유 중인 온라인 패널 1000명을 대상으로 ①계엄 선포가 적법했다는 주장 ②계엄 해제를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동참한 것 ③2024년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 ④탄핵 인용 여부 등 4개 이슈에 대한 태도를 참고용으로 조사해 봤다는 것이다. 응답자들은 계엄은 불법이고(76%),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동참은 잘한 것이며(64%), 부정선거는 없었으며(62%), 탄핵은 인용돼야 한다(64%)고 답했다고 한다. 이를 메트릭스에 넣어 보니 ‘적법+잘못+있다+기각’에 동의한 응답은 9.6%에 그쳤다는 것이다. 보수 성향 응답자만 놓고 보면 31%가 ‘적법+잘못+있다+기각’에 동의하는 걸로 나타났다고 한다. 즉 전체 국민의 10명 중 1명, 보수의 10명 중 3명 정도만 이른바 ‘계몽령’에 적극 공감하더란 설명이다. 이 조사 결과가 주는 시사점은 계몽령에 공감하지 않는 보수층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샤이 보수’가 아니라 현 상황을 부끄러워하는 ‘셰임(shame) 보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들의 상처받은 정치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윤 정권과는 다르게 해볼 테니 다시 힘을 달라고 읍소하는 겸허한 태도와 의지를 보여주는 게 국민의힘의 도리일 것이다. 적어도 ‘친윤 폐족’들은 좀 뒤로 물러나거나 책임지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탄핵 인용 후 그저 한덕수 차출, 그와의 단일화 이벤트 등 ‘택틱(tactics)’이 사실상 대선 전략의 전부가 돼 버렸다. 필자는 2주 전 ‘한덕수 출마론…얼마나 설득력 있을지’ 칼럼에서 한 권한대행이 경륜 등 장점이 많지만 탄핵 정부의 2인자인 그가 대선 관리, 국정 관리 책무를 뒤로하고 대선에 나서는 게 ‘상식’에 맞는 건지 의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요즘 그의 주변에선 “이젠 안 나간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자신을 위기의 나라를 구할 적임자로 확신하고 있을 것” 등의 얘기가 들린다. 한 대행이 “좌도 우도 아닌, 위로 앞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소임’이라며 대선에 나설지는 곧 명확해지겠지만 최종 결심은 여전히 두고 볼 일이다. 보수 일각에선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희망하고 있다는데, 사정도 조건도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국민통합21이라는 정몽준 신당의 실체가 있었고, 한때 지지율이 30%를 넘는 등 제3지대에 일정한 지지 세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명확히 ‘이종(異種) 세력’ 간의 플러스 단일화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난주 갤럽에 따르면 한 대행 지지율은 ‘뚜렷한 차별점’을 보이지 않았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독자적으로 제3지대 세력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이는 2000년 이후 정몽준, 안철수 정도다. 둘 다 재력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 대행은 국민의힘 우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와 원샷 단일화를 시도하고 만약 최종 후보가 된다면 후보 등록 마감(5월 11일) 전에 입당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일주일 안에 이 모든 걸 뚝딱 해치울 수 있을까. 사퇴 직후 바로 입당해 국민의힘 후보와 재경선하는 방안도 거론된다는데 이런 식의 후보 선출 절차가 가당(可當)한 건지 법적 정치적 시비가 불거질 수도 있다. 한 대행과의 단일화가 이뤄진다 해도 이준석 후보와의 단일화라는 또 다른 관문이 남아 있다. 대선에는 ‘10%의 룰’이 있다. 총선 때는 투표를 안 해도 대선 투표엔 참여하는 차상위 정치 무관심층이 전체 유권자의 10%는 된다는 것이다. 일대일 접전일 경우 이들의 향배가 박빙 승부를 가르는 변수가 된다. 특히 지난 대선 때가 그랬다. 그러나 이번엔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 내기도 힘들 뿐 아니라 설령 만들어 낸다 해도 폭발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여론 지형이 정권 교체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반이재명 연대’만으로 전통적 지지층을 투표장에 끌어내 오긴 쉽지 않다. 요즘 보수층에서 이재명 대세론에 체념한 듯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윤 어게인’ 운운하는 상황에서도 ‘윤의 그림자’를 걷어내려 몸부림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드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대로면 2007년 당시 투표율 저조와 정동영 후보의 수백만 표 참패 모델이 더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닌지…. 길 잃은 셰임 보수들에게서 ‘셰임’을 어떻게 걷어낼 것이냐가 문제의 본질인데 자꾸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둘로 압축되면 달라지려나. 대선 시간표는 쏜살같이 흐른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전후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소재로 한 칼럼을 연이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필자는 탄핵 선고 닷새 전 “이러다 韓 대행이 尹 임기 다 채우겠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의 법의 잣대에 따른 ‘지혜로운 결정’이 속히 나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헌재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은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의 확인이었다. 한 대행은 대통령 파면 직후 잘 준비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굳건한 안보태세 유지” “통상전쟁 등 당면한 현안 대처에 만전”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 정치권과 국회를 향해 국가 미래를 위해 차이를 접어두고 힘과 지혜를 모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건조하지만 50년 공직 생활의 내공이 담긴 담화문이었다. 그런데…. 며칠도 안 돼 ‘한덕수발(發)’ 파문이 일었다.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후보자 2명 지명에 이어 대선 후보 출마설이 급부상한 것이다.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필자의 정치적 상상력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를 넘었느니 안 넘었느니 하는 법적 논란을 떠나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을 상실한 대통령의 권한대행이 그 대통령을 대신해 고유의 인사권을 행사할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6년 임기’의 재판관을 ‘60일 권한대행’이 정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것이고, 이는 누가 당선이 되든 후임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명 중 1명인 이완규 법제처장은 계엄 사태 전부터 윤 전 대통령이 일찌감치 헌재 소장으로 염두에 뒀다는 소문이 법조계에 파다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평소 무리하지 않는 스타일의 한 대행이 왜 이런 정치색 짙은 인사를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다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취재를 해보니 한 대행도 처음엔 이 처장 등의 재판관 지명을 내켜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정권이 넘어가면 입법 행정 사법에다 헌재까지 진보가 다 장악한다”는 ‘누군가’의 강력한 설득이 있었다는 얘기 등이 들리지만 결국 실행 여부는 본인의 몫이다. 한 대행은 무슨 의도였을까. 공교롭게도 재판관 지명 사고(?)를 친 8일은 ‘한덕수의 날’이었다. 그날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8분 통화가 이뤄졌고, 곧이어 미국 CNN과의 ‘영어’ 인터뷰 내용이 공개됐다. 그리고 이틀 뒤 국내 한 언론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 대행에게 대선 출마 의사를 물었고 한 대행이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는 단독 보도가 나오더니 이에 맞춰 국민의힘에서 한덕수 차출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우연인지, 뭔가 잘 짜인 기획하에 큰 그림이 하나둘 그려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대행의 긴 침묵은 예사롭지 않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2002년 ‘반(反)이회창’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언급했다. ‘반이재명’ 연대의 한 축으로 한 대행을 활용하려는 흐름이 있고, 한 대행도 이 흐름에 발을 살짝 담갔다는 것이다. 즉, 한 대행을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국민 후보로 나서게 한 뒤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컨벤션 효과를 노린다는 구상이다. 2002년엔 정 후보가 결과적으로 불쏘시개 역할을 한 셈이 됐지만 이번엔 한 대행이 최종 후보가 되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시나리오 같지만 얼마나 현실성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 대행이 거대 야당에 각을 세우며 맷집이 세진 듯하지만 위험한 도박에 다걸기를 할 정치적 뱃심을 갖고 있을지엔 “글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가 자존심이 아주 강하고 권력 야심(野心)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공직 경험, 안정감, 통상 전문성, 출신 지역 등은 장점이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3년 가까이 한배를 탔던 탄핵 정부의 2인자라는 점은 ‘본질적’ 한계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권력을 유지하려는 친윤 주류의 도구로 이용되고 말 것이란 관측도 부담이다. 한 대행은 자의든 타의든 ‘대선 경기장’ 옆까지는 온 듯 보인다. 실제 선수로 뛸지는 본인의 판단이다. 아직 본격 무대에 오르지 않은 만큼 어느 정도 잠재력이 있는지 예측하긴 쉽지 않다. 다만 그의 출마 여부는 한 개인이나 특정 정파의 정치적 성패나 득실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본질적 책무를 중립적 대선 관리와 국정 위기관리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대행 앞에 놓인 가장 높은 장애물은 돌고 돌아 민주공화정의 ‘상식’일 터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이러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다 채우는 것 아냐?” 8인 체제의 헌법재판소가 ‘5(인용) 대 3(기각 혹은 각하)’의 데드록(교착 상태)에 걸렸다는 관측과 함께 이런 얘기까지 나온다. ‘인용파’로 분류되는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기각될 가능성을 우려해 평결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고, 자신과 이미선 재판관의 임기 만료일인 4월 18일 이후로 미룬 채 퇴임할 수 있으며, 후임 재판관 공백 속에 윤 대통령 탄핵심판은 ‘장기 미제’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상하기도 힘든 시나리오지만 만약 ‘5 대 3’ 구도가 사실이라면, 문 대행도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일 수는 있다. 이는 단지 인용이냐 기각이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차라리 헌재 재판관들의 의견이 ‘4 대 4’로 나뉘고 있다면 기각이 되더라도 결정 자체엔 흠이 없다. 이 경우는 마은혁 후보자가 임명이 되든 안 되든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5 대 3은 심각한 ‘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마 후보자가 임명됐다면 6 대 3으로 인용될 수 있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별명이 ‘마르크스’였다는 마 후보자가 헌재 재판관에 적합한 인물인지의 논란은 차치하고 어쨌든 그는 국회 추천 의결을 거쳤고 헌재는 두 차례나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정부 측이 임명을 안 하는 바람에 기각이 됐다면 탄핵 찬성파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마은혁 극한 대치가 큰 화근(禍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드는 이유다. 물론 ‘5 대 3’은 세간의 관측일 뿐 헌재 기류는 전혀 다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비상계엄 선포 요건과 절차가 헌법에 부합했는지, 국가비상사태가 맞는지, 계엄군을 국회와 선관위에 보낸 게 위헌 위법했는지 등 큰 줄기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지만 ‘내란죄 삭제’ 등 세부 쟁점에 대한 소수 의견 문제를 어느 선까지 어떻게 담을지를 놓고 조율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확인된 팩트는 없고 각자 기대감, 또는 불안감이 반영된 ‘가설’에 가깝다고 보는 게 더 객관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아전인수 해석이 난무하고 국가적 혼란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은 헌재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초시계까지 등장시킨 변론 과정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지나치게 속도전을 펼치다 엉뚱하게 절차 시비의 수렁에 빠진 형국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장기화할 경우 벌어질 혼란과 폐해는 상상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일 터이지만, 더 답답한 것은 여든 야든 당면한 위기 상황을 국익 차원에서 해결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만 더 관심을 쏟는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헌재 선고가 ‘4·18 이후’로 미뤄지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재 선고가 이재명 2심 이후로 나와야 한다더니 2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멘붕에 빠져 이젠 5 대 3이면 즉각 기각, 그게 아니라면 아예 선고를 늦추자며 끝없이 희망회로를 돌린다. 대법원이 이 대표에 대해 ‘파기자판(직접 판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기 전에 탄핵심판을 끝내고 속히 조기 대선 국면으로 가는 것에만 연연했을 뿐이다. 헌재 선고가 하염없이 늦어진다면 그 책임은 대권 잿밥에만 눈이 어두웠던 이 대표와 민주당에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탄핵이 곧 이재명 지지는 아니라는, 단지 국가의 정상화를 기대하는 합리적 민심이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그래 놓고 여야 할 것 없이 헌재 재판관들의 이념이나 개인 성향을 따지며 압박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 특히나 국가 시스템의 안정, 대한민국 정통성의 유지 발전이란 보수의 가치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헌정 질서를 흔드는 듯한 ‘우파 포퓰리즘’은 ‘좌파 포퓰리즘’ 못지않게 심각해 보인다. 여권의 차기 주자들 지지율을 다 합쳐 봐야 20%밖에 안 되는 것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벌써 4월인데 여권 모습을 보면 마치 금세 녹을 눈덩이만 굴리고 있는 것 같아 하는 얘기다. 어쨌든 한 대행이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이제 ‘8인의 시간’이다. ‘5 대 3’ 데드록에 걸렸든, 최종 결정만 남았든 헌재는 ‘4·18’ 전에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8인 모두 ‘이념의 잣대’가 아닌 ‘법의 잣대’에 따라 역사에 남을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것이라 믿고 기다릴 뿐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어릴 적 동네 축구에선 심판이 없어도 별 탈 없이 경기를 잘 치렀다. 어설펐지만 나름의 게임 규칙이 작동했다. 그런데 서로 반칙이네 아니네 떼를 쓰고 우기기 시작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는 동네 축구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정치의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여든 야든 법조인 출신이 많아진 탓인지 정치로 해결할 문제를 ‘법대로’ 하자며 외부 심판을 찾기 일쑤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환호하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비난한다. 시민사회와 연계해 광장에서 세 대결을 펼치고 ‘정치 훌리건(hooligan)’이 판을 치는 지경까지 왔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언제 어떻게 날지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자 이런 ‘무(無)정치’ 상황은 더욱 첨예화하고 국민의 ‘불안 지수’도 상승하고 있다. 누구는 “대통령이 다시 용산에 복귀하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불안해하고, 누구는 “헌재마저 불복 세력에 침탈되면 어쩌나”라고 불안해한다. 어떤 사람은 “일단 각하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시한을 정해놓고 물러나면 좋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럴 사람이면 이런 사태가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12·3 계엄 선포 후 100일이 훌쩍 넘는 동안 우리의 민주적 복원 능력에 심각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물리적 대치와 법원 난동 등 전례 없는 사건이 이어진 것도 불안불안한데 “탄핵심판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42%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헌재에 대한 신뢰도가 타 기관에 비해 여전히 높지만 우려되는 수치다. 헌재의 미숙함도 있었지만 극단 유튜버 등의 의도적인 불신 조장은 아주 위험한 짓이다.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제시한 통찰이 떠오르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헌재의 모든 결정이 곧 진리(眞理)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의 결정이 권위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국체(國體) 유지를 위한 헌법적 사회계약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민주 국가에서 선거 결과를 부정하면 대의제가 유지될 수 없듯이, 헌재 결정을 부정하면 헌정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은 홉스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무정부 상태로 가자는 말밖엔 되지 않는다. 헌재 변론 과정을 거치며 숱한 논란과 공방이 있었다. 내란죄를 뺀 탄핵소추안 변경이 정당한지 아닌지 등 그 논란의 과정과 내용을 다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내란 혐의로 기소된 현직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초유의 상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헌재가 이런저런 시비를 자초한 점들도 있다. 이 또한 백서에 남겨야 할 것이다. 다만 언제까지 불확실한 혼란 상황을 지속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이번 계엄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1조 1항을 본질적으로 훼손했는지에 대한 헌재 재판관들의 판단이 곧 나올 것이다. 국민도 그 결과를 존중해야 대한민국 주권자(1조 2항)로서의 자격이 있다. 이게 허물어지면 그 자체로 공화정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극단적 지지층, 팬덤을 넘어 훌리건 행태까지 보이는 일부 전위대의 행태는 실로 우려스럽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편향된 유튜브 알고리즘에 갇힌 군중을 향한 정치권의 무책임한 선동이다. 윤 대통령 측은 반국가 세력과의 전쟁, 악의 우두머리 척결 등 내전 심리를 부추긴다. 줄탄핵, 입법 폭주, 예산 일방 처리 등 작금의 헌정 위기 사태에 책임이 적지 않은 민주당도 수구 반동 세력과의 전쟁을 외친다. 이러니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중도층에서 일관되게 탄핵 찬성 여론이 높지만 야당 지지를 유보하는 흐름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스스로 무대에서 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조기 대선이 실시되더라도 순탄하게 선거가 관리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두 사람의 문제가 뒤엉켜 온 나라가 오도 가도 못 하는 정치적 그리드록(gridlock)에 걸린 것 같다. 그러나 꽉 막힌 교착상태일수록 탄핵은 탄핵대로, 재판은 재판대로 순리대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국가적 위기가 클수록 우리 국민은 사태 해결의 궁극적 심판자로서 집단지성을 발휘해 왔다. 위태로운 헌정을 바로 세울 세력이 어느 쪽인지 다수의 국민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광기의 시간’이 지나면 윤 대통령도, 이 대표도 각각의 이유로 ‘정치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란 얘기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고백하자면, 12·3 계엄 당시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에 진입했다는 소식에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치르려고 했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라는 얘기를 듣고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후 전개된 상황이었다. 어느 좌파 유튜버의 ‘K값 이론’, 배춧잎 투표지 논란 등 부정선거 음모론 역사는 길지만 계엄 전까지만 해도 일부 확신자나 극단 유튜버들의 주장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탄핵 국면을 거치며 부정선거 ‘음모론’은 부정선거 ‘의혹’ 수준으로 격상된 듯한 양상이다. 1월 말에서 2월 중순 여론조사들만 보더라도 부정선거 주장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36∼38%, 보수 응답자 중에선 65∼68%에 달했다. 이쯤이면 보수의 주류 견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몇 해 전 한 원로 교수의 부정선거론을 사석에서 들은 적이 있다. 참석자들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자 이 교수가 “나는 의심한다. 국가가 왜 나의 의심할 자유를 억압하느냐”고 열변을 토했던 일이 기억난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지만 ‘의심의 자유’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다. 학자에게 의심은 중요한 덕목이다. 10가지든 100가지든 의심 가는 요소를 다 올려놓고 논박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틀이 넓어지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긍정적인 일이다. 요즘 상황은 순수한 의미의 ‘의심’ 차원이 아니라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금은 ‘팩트 체크’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돼 버렸다. 개표 분류기는 은행에서 돈을 세는 기계처럼 외부와 차단돼 있어 해킹이 불가능하다, 개표 분류한 뒤 수검표로 대조하는 과정도 거친다, 참관인들이 다 보고 있고 이중삼중의 봉인과 보안 장치가 있어서 사전투표수 부풀리기도 불가능하다…. 선관위가 신뢰를 잃은 탓인지 아무리 조직적 부정은 상상할 수 없다 해도 귀를 닫는다. 오히려 부정선거 음모론의 서사(敍事)는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육필 원고를 통해 국내 정치세력과 국제적 연대의 협력에 의한 총체적 부정선거 시스템 가동 운운하면서다. 이 주장은 2030세대의 막연한 ‘차이나 포비아’와 맞물려 증폭되면서 혐중 정서로 확산됐다. 계엄 합리화를 위한 국가 비상사태로 부정선거를 내세우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낸 셈이다.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이고,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에 비유하면 ‘선거는 피눈물을 흘리는 전쟁’이다. 그만큼 승패의 결과가 가혹하다. 이런저런 꼬투리로 자신의 잘못을 감싸고 다른 이유를 찾고 싶은 심리가 생기는 건 어쩌면 본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 선거로 당선됐고 선거 관리에 궁극적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앞장서 여당의 총선 참패가 이상하다며 국가의 선거 시스템 자체를 부정한다면, 이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보수는 계엄과 탄핵에 대한 지지와 반대에다 부정선거에 대한 입장까지 3중 분열로 갈가리 찢긴 상태다. 부정선거론은 대통령 개인의 위기 모면을 위한 전략의 일환일지는 모르지만 보수 비극의 씨앗이 될 공산이 크다. 서로 극우 음모론자, 방관자라고 삿대질하는 사람들이 ‘반(反)이재명’만으로 화학적 결합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중도층도 공감 않는다는 여론이 60∼70%에 달한다. 민주공화정의 존립 근거, 권력의 정통성에 직결되는 우리의 선거제도가 부정선거가 횡행하는 남미나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들 수준이라는 건지 답답하다. 단언컨대 부정선거는 의혹이 아니고 음모론이다. 그렇다고 국민 10명 중 3, 4명이 어떤 이유로든 부정선거 의심을 갖는다니 그냥 묵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사전투표에 대해선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사전투표가 어느 쪽에 유리한 제도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의 룰은 단순하고 명확해야 하는데 ‘투표 편의’만 따지다 너무 복잡해져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100% 완벽한 제도는 없다. 무슨 논의 기구라도 만들어 선거제도 불신을 해소하는 정치적 지혜를 발휘하면 좋겠다. 선관위도 부정선거 가능성은 없다고 소극적, 방어적 대응만 할 게 아니라 몇 번이고 “모든 걸 검증해 달라”고 자청할 일이다. ‘부정선거 도그마’는 보수뿐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 자체에 치명적 독(毒)이다. 야당도 부정선거를 둘러싼 보수의 내홍을 즐기기만 할 때가 아니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주저앉았다. 직접 싸우려 하지 않는 장수 옆에 군사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는지, 원래 성정(性情) 자체가 다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윤 대통령은 싸움의 길을 택했다. “야당은 반국가 세력” “광란의 칼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란 작년 12월 12일 대국민 담화는 사실상 ‘내전(內戰) 선포’나 다름없었다. 그 뒤 2개월여 벌어진 과정은 지켜본 대로다.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윤 대통령으로선 계엄 실패 직후의 ‘2 대 8’도 안 되는 불리한 정치 구도를 ‘4 대 6’ 안팎의 구도로까지 바꾼 듯 보인다. 보수 저변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이나 두려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무능, 헌재의 정치화 논란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적어도 대통령 자신이 싸울 의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차가운 감방에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복귀의 희망’이다. 여권과 지지층을 향해 “당이 자유 수호 운동을 뒷받침해야 한다” “모래알이 돼서는 안 된다” 등 연일 여론전을 독려하는 옥중 메시지를 내놓는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헌재 재판관 8명 중 보수 성향 누구의 판단에 따라 최종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둥 이런저런 예상이 난무하지만 그건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다만 탄핵 심판은 일반 재판과는 다른 정치적 속성을 띠지만 그렇다고 ‘여론 재판’도 아니라고 본다. 헌재는 헌정 수호라는 준거에 따라 엄정한 사법적 결론을 내릴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좌우 이념에 따라 갈려선 안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머리 위엔 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그의 운명도 운명이지만, 나라가 찬탄 반탄이란 두 개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황 자체가 우려스럽다. 마치 나라 전체가 거대한 콜로세움의 흥분한 군중처럼 피를 보고 쓰러져야만 끝나는 검투사 게임에 몰입해 들어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좀 시끄럽다가 조기 대선 국면으로 넘어갈 것인가. 아마 그럴 공산이 크지만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보수 일각의 바람대로 ‘5 대 3’으로 기각되면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체포되고 감방까지 갔던 대통령이 최고 권력자로 복귀하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후유증의 질과 크기는 다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 파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 와중에 최근엔 어느 보수 원로가 윤 대통령의 하야 가능성을 공개 언급한 걸 계기로 하야 논쟁이 제기됐다. 이른바 체제 전쟁을 벌이며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윤 대통령이 자진 사퇴할 가능성은 ‘제로’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여권에서도 “끝까지 버티다 산화(散華)하는 게 대선에 더 도움 될 것” “탄핵의 멍에는 벗는 게 나을 것” 등 득실 계산이 엇갈리는 듯하다. 야권에선 탄핵 심판 중인 윤 대통령에겐 ‘하야의 권한’이 없다고 선을 긋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으로선 하야 옵션은 남는 장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끝까지 가야 일말의 활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란 혐의나 명태균 문제 등의 ‘법적 봉인’을 보장받을 길도 없다. 탄핵 반대 강성 지지층들로부터 비겁하다는 힐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정파의 득실이나 정략적 셈법을 떠나 하야는 윤 대통령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선택지라는 생각은 든다. 여론이 그나마 호전된 지금이라도 자신의 오판으로 빚어진 국가적 혼란에 대해 스스로 최고 수준의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결자해지의 모습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닉슨의 하야 성명서를 다시 찾아봤다. “지금도 임기 만료 전 떠나는 것에 내 본능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부통령 애그뉴가 비리 혐의로 사임한 것과 관련해 닉슨이 자신의 탄핵을 막기 위해 애그뉴를 먼저 ‘속죄양’ 삼은 것이란 평가도 있다. 그렇게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 닉슨은 본능을 억눌렀다. 윤 대통령은 곧 최후 진술의 시간을 맞는다. 역사에 남을 중요한 순간이다. 최고의 공복(公僕)다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적어도 “탄핵 심리 과정은 유감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전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저를 지지했던 모든 분들도 100% 존중해 달라”는 명확한 메시지라도 나왔으면 한다. ‘그래도 대통령’임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뒤죽박죽이다. 설 연휴도 지났건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나 재판 절차가 제대로 진행될지, 조기 대선이 치러진들 지금과 같은 극단적 대립 속에 나라는 더욱 혼돈에 빠져드는 건 아닌지…. 이런 답답함은 필자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정권교체 여론, 탄핵 여론, 대선후보 지지율 등이 복잡하게 뒤엉킨 설 기간 여러 조사에서도 드러나듯 많은 국민들도 헷갈리는 모양이다. 이를 놓고 이런저런 분석이 나오지만 본질적으론 ‘넥스트 비전’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한다.‘윤석열의 변란’을 거치며 많은 이들이 탄핵 이후 나라는 제대로 굴러갈지, 그 난세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는 어떤 덕목과 경륜을 갖춰야 할지 등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국난의 위기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을 제대로 실현할 리더를 고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 문제도 아니고, 누가 정권을 잡느냐의 차원도 아니다. 그 점에서 유력한 대선주자이면서도 탄핵 찬성과 정권교체 여론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가능성과 한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 대표는 최근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니냐”며 ‘탈이념 실용주의’와 ‘성장론’을 내세우고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사회도 내려놨다. 확실히 달라진 중도(中道) 행보다. 정치인, 특히 유력 대선주자가 중도층 공략을 위해 우클릭 행보를 보이는 걸 나무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탈(脫)이재명 전략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다.물론 입법 권력을 쥐고 있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적어도 다음 총선까지 3년간 민주당은 견제 불능의 ‘황금기’를 누릴 것이란 공포심이 보수 진영에 팽배한 게 사실이다. “한국이 중국에 먹힐 것”이란 반중(反中) 정서까지 엮은 극우 프로파간다가 2030 남성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긴 하다.문제는 이 대표가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자신이 대통령 되는 데 유리하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평상시 대선 국면 같으면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현직 대통령이 반헌법적 계엄과 내란 혐의로 감방에 갇혀 있는 ‘역사적 순간’이다. 대통령 파면을 주도하는 거대 야당 대표로서의 ‘책임 윤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인데도 오직 대권에만 관심이 가 있는 것처럼 비치면 뭘 해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더욱이 정권의 탄압을 받는 소수 야당이라면 단일대오가 중요하겠지만 민주당은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자 잠재적 집권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당이 다양성 확보는커녕 “이재명으로의 정권교체”만 부르짖고 대선에 걸림돌이 될 만한 변수는 모조리 제거하는 데 급급하다. 지지율 정체 혹은 하락은 이재명 악마화 탓, 거짓 선동의 탓, 검찰 정권의 범죄자 프레임 탓으로 돌린다. 무슨 민주파출소를 만들고 여론조사검증특위를 만들고 은행장들 집합까지 한다.필자는 이 대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누구랑 골프를 쳤네 안 쳤네, 국토부 협박이 있었네 없었네 등의 허위사실 유포 문제로 유력한 대선주자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법은 법이다. 요리조리 피할 방법만 궁리하지 말고 당당할 수는 없나.현재로선 차기 대선은 이재명이냐 아니냐의 싸움으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현재의 이재명이 과거의 이재명과 싸워서 미래의 이재명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내놔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자신에겐 불리할 수 있지만 난국 수습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과감히 결단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자신의 사법 문제를 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건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최소한의 도리다. 권력구조 개편 등 개헌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만 대하면 선두 주자의 기득권 유지로 비칠 뿐이다. 대선 후보 졸속 경선 의구심도 떨쳐내야 한다. 여야정 협의체에 조건 없이 참여해 경제와 외교 등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희생적 자세’ 없는 대선용 중도노선 외침이 얼마나 공허한가.온갖 곡절을 겪더라도 ‘탄핵의 겨울’이 지나면 ‘대선의 봄’이 올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는 ‘리더의 무게’ 저울에 오른 셈이다. 평소 정치색을 잘 드러내지 않던 오랜 민주당 지지자의 일갈이 연휴 내내 귓전을 맴돌았다. “이 역사적 순간에 이재명은 뭘 걸 것인가. 그게 안 보이는 게 문제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 구속이라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아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른바 ‘내란 특검’ 문제다. 필자는 한동안 12·3 불법 계엄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선 여야 합의 특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권위 있는 ‘진상 규명’ 체제” “계엄 수사의 일원화” 등의 이유였다. 무엇보다 국체 위기 상황에서 헌정 질서 위협의 실체를 밝히고 역사적 매듭을 짓는 막중한 책무를 현재의 검찰이나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짊어질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있었다.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던 건 물론이다. ‘검사 정권’의 검찰이 내란 행위 수사를 주도하는 게 맞나, 제대로 수사를 하긴 할까, 무슨 장난이라도 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자기 조직의 서열 1, 2위 수뇌부가 모두 계엄의 주요 임무 종사자로 연루된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내란죄 수사권 유무 논란을 떠나,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역량도 미흡해 보이는 공수처가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못 미더움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과 일단의 경호 세력이 관저를 요새화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식으로 버티고 나온 건 상식 밖이었지만,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공수처와 경찰도 불안불안했다. 여야 합의 특검이 가동되면 대통령 측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내란죄 수사권 논란도, 대통령 신병을 둘러싼 물리력 대치와 불안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했던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질적으로 국면이 달라지는 양상이다. 전 국방장관, 군과 경찰의 고위 관련자들이 모두 구속 기소돼 재판이 시작된 데 이어 불법 계엄 내란 행위의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까지 구속됐다. 온갖 혼란과 난맥 속에서도 계엄 수사는 9분 능선을 넘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에 대한 기소 여부 결정 시한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빨라야 한 달이나 걸리는 특검 도입을 놓고 정치 공방을 벌이는 게 무슨 실익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혈세 낭비 얘기는 지엽적인 문제다.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특검 무용론’과는 맥락이 다르다. 특검 이슈가 오히려 신속한 사법 절차를 방해하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검찰이 대통령 기소 절차를 중단한다면 모를까. 그럴 리는 만무하다. 외국과의 ‘통모’를 전제로 한 외환 혐의도 합참의장의 일침 등 여러 논란을 의식한 듯 통째로 뺐다. 그러니 검찰이 대통령을 기소하고 나면 특검이 할 일은 직권남용 수사, 부화뇌동자 등 잔불 정리, 이미 검찰 등에 의해 기소된 피의자들 공소 유지밖엔 없게 될 수 있다. 과유불급 아닌가. 차라리 공수처 수사의 흠결을 주장해 온 국민의힘이 특검을 하자고 하면 논리적 타당성은 있겠지만 그럴 의지는 없고, 민주당은 신속한 수사와 기소를 주장하며 특검도 하자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민주당이 상황이 변했어도 특검은 무조건 해야만 한다는 게 어떤 관성이나 도그마에 갇힌 탓인지, 검찰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트라우마 때문인지, 대선용 여론몰이이자 특검의 ‘인지 사건’ 수사를 통한 여당 궤멸 노림수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내란의 중요임무 종사자들이 이미 구속 기소된 데 이어 윤 대통령까지 구속된 만큼 공수처와 검찰의 내란죄 수사권 시비는 일단락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큰 줄기에 대한 수사 마무리와 기소, 공소 유지가 중요하고 차근차근 법원의 심판을 받는 시간으로 넘어가야 할 때다. 유무죄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이른바 부회뇌동자 등 잔가지 수사는 그리 급한 게 아니니 추후 보완해 가면 될 일이다. 이를 통해 계엄이란 예외적 상황을 통상의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사법 복원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금의 특검 공방은 다시 법의 문제를 정치 문제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다. 특검을 하네 마네,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네 마네 하는 동안 정점 직전의 수사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자칫 특검 활동과 재판이 마구 뒤섞이면서 지금까지 내달려온 수사가 뒤죽박죽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국가 안위의 문제인 만큼 정치 논리나 셈법은 제거돼야 한다. 무엇보다 ‘신속히’ 법적 판단의 궤도에 올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규명해야 할 의혹이 많다면 그때 다시 특검을 논의해도 된다. ‘대선 잔머리’를 굴리다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탄핵 심판과 수사는 국체의 문제이고 헌정(憲政)의 문제다. 민주공화정의 정체성 및 헌정 질서의 훼손과 관련된 국가적 사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등 사법리스크는 유력한 대선주자의 형사(刑事) 문제이자 출마 자격 문제다. 그런데 헌정 문제와 한 개인의 형사 문제가 한데 꼬였다. 급(級)이 다른 두 문제가 뒤엉킨 것은 물론이고 탄핵 선고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그 실질적 수혜자가 이 대표가 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헌 문란이란 본질은 사라지고 탄핵 심판 속도전이네, 재판 지연이네 하며 대선 유불리에 따른 아전인수 격 ‘시간표 싸움’이 벌어지는 게 한심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윤 대통령 탄핵은 탄핵대로, 이 대표 재판은 재판대로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각각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미래 권력의 향배는 탄핵 심판 못지않게 그 자체로 중대한 일이다. 탄핵 심리는 속히 진행되는데 이 대표 재판은 한없이 늦어지면 정치적으로 형평성 논란이 벌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필자가 지난해 말 ‘대선 시간표에만 매달리다간 심판의 문에 들어설 것’이라는 칼럼을 쓴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권력은 진공(眞空)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 미래 권력이 누구의 몫인지는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국가 혼란 해소와 뒤엉키면 나라 전체가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 불행히도 그 뒤 전개된 상황은 예견됐던 대로다. 미증유의 국가 혼란은 수습의 길을 걷기는커녕 2차 내전(內戰)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탄핵이든 재판이든 각각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사법 판단 절차를 존중할 생각은 않고 다들 권력 유지, 혹은 탈환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집권 세력의 책임이 훨씬 더 무겁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점에서 윤 대통령 측이 이 대표와 조국, 윤미향 등의 재판 지연 사례를 거론하며 “방어권 제약” 운운하는 것은 옹색한 논리다. “비상계엄은 헌법적 결단” 운운하더니 그런 형사사건들과 비교하며 탄핵 심판을 끌려 하나. 4월 헌법재판관 2명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심산인지는 모르겠으나 좀스럽게 비칠 뿐이다. 어느 보수 논객의 힐난대로 ‘군대 안 간 군 통수권자의 병정놀이’가 아닌 ‘헌법적 결단’이라면 자기 입장을 당당히 밝히고 속히 판단을 받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 대표가 탄핵 뒤에 숨어 떨어지는 과일만 받아먹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 또한 그 자신의 권력 쟁취 성공 여부를 떠나 공동체를 생각한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 대표는 여러 신년 여론조사에서 보듯 현시점에서 미래 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이다. 대선 출마 자격 문제를 온전히 정리하지 않은 채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것은 국민에게 또 다른 정치적 불확실성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숱한 사법의 위기를 겪으며 끈질긴 생존력, 생명력을 입증해 왔지만 비토론도 상당하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다움’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어서가 아닐까 한다. 국난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사적 이익만 모색한다면 중간 지대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이참에 자신의 출마 자격 문제를 조속히 판단해 달라고 공개 요청하고 이를 위해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재판을 받겠다고 밝히는 건 어떤가. 2심에서 둘 다 무죄면 대선에 도전하고, 그게 아니라면 대선에 나서지 않을 각오가 돼 있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대권을 잡으려는 게 자신의 권력욕 실현 때문이 아니라 공적(公的) 사명감 때문이라면 말이다. 과연 그런 용기가 있을까.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년사에서 두 대목이 눈길을 끈다. “국가 기관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 “사법부의 본질적인 사명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재판관 임명 문제로 정치에 농락당한 8인의 헌법재판관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야만의 정치’에 그 어느 때보다 추상같은 사법의 시간이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 누구든 법의 판단을 정치적 꼼수로 요리조리 피하거나 멋대로 재단하려 했다간 진짜 ‘벼락 맞은 고목’ 신세가 될 수 있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고건 전 국무총리가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스스로 ‘고난(苦難) 대행’이라고 칭한 적이 있지만 요즘 한덕수 권한대행의 처지는 그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고난(高難) 곡예’를 펼쳐야 하는 형국이다. 한 대행 체제는 극히 취약해 보인다. 무엇보다 국정 1인자의 반헌법적 계엄 망동을 몸으로라도 저지하지 못한 국정 2인자로서의 ‘정치적 원죄’가 있음을 부인할 순 없다. 이를 고리로 “내란 공범” “선제적 탄핵” 등 엄포를 쏟아내며 김건희-내란 특검 수용 등을 압박하는 민주당이 일견 칼자루를 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주요 10개국(G10) 국가에서 대통령에 이어 그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는 일이 벌어지면 아마 기네스북에 오를 신기록이 될 것이다. 미국은 한덕수 체제를 “지지하고 신뢰한다”고 공식화했다. 한 대행은 일본 총리와도 긴밀한 협력 유지를 확인했다. 수권 정당을 지향한다는 민주당으로선 국제 여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가 3분의 2가 맞느니 재적 과반이 맞느니 하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계엄 해제 과정에서의 침착한 리더십이 돋보였던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의 총대를 메려 할까 싶기도 하다. 권한대행 탄핵은 정부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권한대행의 대행’ ‘그 대행의 대행’으로 이어지는 혼란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정생존자는 드라마나 영화 속 설정일 뿐이다. 그렇다고 한 대행이 진퇴양난의 외줄타기 신세에 놓인 게 아니란 건 아니다. 어렵지만 헌법상 국정의 고삐는 여전히 한 대행이 쥐고 있다는 얘기다. 한 대행은 대통령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않는다. 특정 정당에 속한 정치인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전례 없는 과도기적 혼란기다. 역설적으로 한 대행은 한시적이나마 대통령 못지않은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여야정(與野政)을 두루 챙겨야 하는 독자적 지위를 갖고 있는 셈이다. 헌법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해선 아무런 규정이 없다. 선출 권력이 아닌 만큼 ‘현상 유지’만 가능하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다수 견해라고 한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창설적 권한까지 행사할 수는 없으며 소극적 권한 행사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그런 ‘법적 이론’에는 공감하지만 ‘정치적 실제’는 다르다고 본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헌법에 권한 범위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 궐위 등이 어떤 경위로 발생할지, 그에 따른 안보상 위기 등 국가적 혼란이 어떤 양태를 띨지 예견할 수 없으니 그 시대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권한을 행사하라는 뜻이 깔려 있는 것 아닐까. 김건희 특검과 내란 특검 문제도 그 연장선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극단적 ‘현상 유지’ 논리라면 모든 법이든 특검이든 다 거부해야 하고 헌재 재판관도 국회 몫이든 뭐든 무조건 임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그런 환원 논리로 작금의 혼란을 감당할 순 없다. 지금은 ‘국체(國體)’의 위기 상황이다. 그동안 어렵게 쌓은 민주공화정 시스템이 흔들리는 혼돈의 순간이란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지를 놓고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김 여사 문제가 5할 이상이라고 본다. 명태균 게이트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할 즈음 계엄령이 선포된 걸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대통령 배우자의 국정 개입, 이에 따른 국체 훼손이 급기야 45년 만의 계엄 사태로 이어졌다. 입법 권력 무력화를 위한 친위 쿠데타, ‘위헌적 변란(變亂) 시도’였다. 이 또한 국체와 직결된 사안이다. 김 여사 문제로 시작한 계엄 사태를 ‘현상 유지’ 논리로 덮을 수 있나. 검찰 경찰 공수처가 자신의 임명권자에 대한 수사 경쟁을 벌여 온 걸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가 공수처 설립 취지에 맞는지, 그럴 역량은 되는지도 의문이다. 계엄 수사의 일원화를 위해선 특검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헌정 질서 위협의 실체를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초석을 놓으려면 권위 있는 수사 주체가 필수적이다. 본래 현재 권력을 겨냥한 특검은 ‘야(野)의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 공세가 아니라 진상 규명이 목적이라면 야당도 특검 추천 방식 등에서 흠결이 없도록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한 대행은 더는 대통령의 명(命)을 받는 국무총리가 아니다. 자신을 임명해 준 ‘윤석열 대행’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대행’이다. 도의적 인간적 문제를 따질 때가 아니다. 차기 권력의 향배를 떠나 ‘국체’의 안정적 유지와 전환이 걸린 문제다. 여야정협의체에서 해법을 찾아내든 특검 수용의 길을 택하든 한 대행이 보일 ‘정치 곡예’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5석 부족한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한남동 관저의 대통령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렸을지 모르나 ‘지옥의 문’은 아직 열리지도 않았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자 궁극의 권한이지만 화석(化石)화된 유물인 줄 알았다. 40여 년 전 봉인된 칼을 꺼낸 대가는 엄청날 것이다. ‘장님 무사’라는 표현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탄핵이 되든 안 되든 이번 사태로 윤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을 잃었다. 권력의 레지티머시(Legitimacy·정당성)가 실질적으로 소멸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제2의 계엄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대통령 의지(意志)의 영역도 아니다. 국방부와 군 수뇌부가 “요구 있어도 절대 수용 안 한다”고 공개 경고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군통수권자의 영(令)은 바닥에 떨어졌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하고 이동 상황을 직접 체크하고 선관위에 계엄군을 보냈으면서 “야당 경고용”이라고 한다. 그 말을 누가 믿을 수 있을지, 향후 내란죄 혐의를 피해 가기 위한 변명은 아닌지 의문이다. 권력은 진공(眞空)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공백을 누가 어떻게 채울 것인지의 물밑 쟁투는 이미 시작됐다. 권좌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권력자는 없다. 윤 대통령은 짐짓 ‘2선 후퇴’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고도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한 야당은 정국 수습 과정에서도 배제하겠다는 생각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의 임기와 정국 안정 방안을 ‘국회’가 아닌 ‘우리 당’에 맡긴다고 밝힌 게 이를 방증한다. 이 대목에서 계엄 국면 초기 잠시 정치적 존재감을 보이는 듯하던 한동훈 대표의 행보가 흥미롭다. “조속한 직무정지”를 주장하더니 “조기 퇴진”으로 슬쩍 말을 바꿨다. 조속한 직무정지의 길은 탄핵밖엔 없는데, 한남동 관저를 다녀온 뒤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으로 전환한 것이다. “당에 일임”이란 대통령 말에 넘어간 건지, 이참에 자신이 정국을 리드할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국정 공동 책임자를 자처하고 나섰는데 어찌 될지 지켜볼 일이다. 탄핵안 1차 표결은 긴 권력 투쟁의 예고편이다. 향후 대권은 시간표와의 싸움이다. 윤 대통령의 처지는 큰 변수가 되진 못할 것이다. 탄핵이든 하야든 물러나되, 언제 어떻게 물러나느냐의 문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즉각 퇴진, 아니면 탄핵” 주장도, 한 대표의 “조기 퇴진” 주장도 결국 언제 대선을 치르는 게 유리한지의 수싸움 성격이 짙다. 국민의힘이 수모를 감수하고 탄핵 보이콧에 나선 것도, 민주당의 이 대표와 친명 지도부가 속전속결로 탄핵을 밀어붙이려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민주당은 매주 탄핵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젖은 연탄’이었던 탄핵 여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필 태세다. 국민의힘을 ‘계엄 옹호’ 정당으로 몰아붙일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권 활주로는 안 된다”며 맞선다. 계엄의 불법성과 반민주성은 사라지고 정쟁으로 귀결되려 하고 있다. 우려되는 건 그런 대치가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달리 양측을 지지하는 시위대 간 ‘거리의 충돌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계엄 사태를 겪으며 공권력의 통제 기능도 약화됐다. 한국은 어쩌다 이런 나라가 됐나. 난데없이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해 전 세계 언론의 1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6시간 만에 이를 저지하는 복원력을 보여주는 듯하더니 사후 수습을 놓고 다시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주요 10개국(G10) 국가에 걸맞은 민주공화제 복원은 뒷전이고 차기 권력 향배를 둘러싼 노림수만 번득인다. 외신에 비친 2024년 한국 정치의 현주소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미래 권력이 누구의 몫인지는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국가 혼란 해소와 뒤엉키면 나라 전체가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 어떤 방안이 국가적 혼란을 줄이는 길이고 차기 대선을 공정하게 치르는 길인지 최소한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여야 대표 간 고도의 정치적 대화가 필요하다. 야당의 공명(共鳴) 없는 정부여당 주도의 ‘질서 있는 퇴진론’은 공허하다. 국정조사를 실시하든, 계엄 특검을 도입하든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진상 규명’ 체제부터 갖추는 게 우선돼야 한다. 이런 민주주의 복원 절차를 통해 누가 진정한 국가 지도자감인지 자연히 드러날 수도 있다. 대선 시간표에만 매달리다간 또 다른 ‘심판의 문’에 들어설지 모른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그나마 낮은 줄 알았던 첫 번째 허들에서의 예상 밖 중형에 휘청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장외 집회 메시지는 “펄펄하게 살아서 인사드린다.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1월 초 흉기 습격을 당했을 때의 복귀 일성도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총선 전 ‘이재명의 존명(存命) 정치, 그 끝은’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이 대표에게 늘 정치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전장이고, 그 속에서 ‘나 이재명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런 끈질긴 생명력으로 대선에서 지고도 170석 원내 1당을 완벽한 자신의 아성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불의의 일격을 받았다. 이번 판결을 놓고 “이재명은 죽었네, 아니네” 등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정파적 관점을 넘어 ‘사법의 탈(脫)정치화’ 시도라고 해석한다. 정치가 사법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고 판결에도 영향을 끼치려 한 것에 대해 사법부가 강한 경종을 울린 것이란 얘기다. 사법이 정치에 우롱당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이번 판결 직전에도 “법관 출신 주제” 운운하다 검찰 예산은 깎고 대법원 예산은 올려주는 식의 때리고 어르는 행태로 사법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정치가 세지만 사법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존재감은 확실히 보여준 것 같다. 이 대표의 “골프, 사진은 조작” “국토부 협박” 등의 발언에 대한 재판부의 유죄 판단에 대해 별 이의는 없다. 거짓인 듯 아닌 듯한 이 대표의 말재주가 자승자박이 된 꼴이다. 다만 필자 주변의 식자층 일각에선 “0.73%포인트 차 대선 패자에 대한 과한 처분 아니냐” “유권자를 우롱했지만 대선 출마까지 봉쇄하는 게 비례 원칙에 부합하는지 의문” 등의 반응도 꽤 들려 온다. 물론 ‘여의도 대통령’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해 온 이 대표가 과연 ‘패자’가 맞느냐는 반론도 있다. 결국 2심 재판부가 ‘법 논리’에 충실할지, ‘정치적 고려’도 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짜 분수령은 오늘 나올 위증교사 1심 재판 결과다. 보수 진영에선 더 센 징역형을 확신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첫 재판부가 징역형의 길을 열었으니 두 번째 재판부는 부담이 덜할 것이란 주장이다. 앞의 판결이 뒤의 판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식의 논리는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유죄든 무죄든, 징역형이든 벌금형이든 위증교사 재판부는 그들대로 독립적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이 대표로선 내심 위증교사 1심에서라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징역형을 면하고 선거법 2심에서의 반전을 꾀하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겠지만 이 또한 두고 볼 일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여러 정치공학적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이 대표는 지난 총선 때 8석만 더 얻었으면 하고 땅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임기 단축 개헌이든 뭐든 운신의 폭이 더 넓어졌을 것이다. ‘포스트 이재명’ 얘기도 많지만 아직은 섣부른 얘기다. 설사 이 대표가 낙마하더라도 친명들은 더욱 똘똘 뭉쳐 친명 내에서 대안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들 또한 대선보다 대선 1년 뒤 치러질 총선 공천에서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국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이 대표의 ‘존명 정치’는 시즌2를 맞고 있다. 이대로 종영의 길을 걸을지, 극적 회생의 길을 찾을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절체절명의 위기임은 분명하다. 이는 그의 업보(業報)이기도 하다. 숨진 김문기 씨 모친의 오열, 총선 공천 때 속절없이 목이 잘린 비명계의 원한, 170석 의원들과 ‘개딸’ 강성 당원들을 자신의 사법 방패로 삼으려 했던 공적 의식의 결여…. 허나, 이 대표는 자신의 아성인 민주당에서 나와 홀로 광야에 설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70년 전통의 민주당도 한 개인의 ‘존명 정치’ 굴레에 얽매인 셈이다. 국가 위기의 경고음은 점점 커지는데 꽃피는 내년 봄까지도 자기 생존밖에 모르는 ‘이재명의 업보’와 자기 확신밖에 모르는 ‘윤석열의 업보’가 맞물려 나라는 점점 더 골병 들어 갈 것이란 암울한 예감이 든다. 누가 살고 죽는지는 그들의 문제지만 둘의 업보는 나라의 업보가 돼 가고 있다. 정치에서 절대적 배제, 절대적 옹호의 내전은 국가적 자해의 길인데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다. 그래도 판결은 판결이다. 어떤 경우든 최소한의 정치는 작동하길 바랄 뿐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참 서글픈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기자회견에 대한 어느 원로 법조인의 한탄이 지금도 귓전을 맴돈다. 세계 10대 강국에 속한다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자기 부인 문제를 놓고 TV 앞에 나와 2시간 넘게 “어찌됐든 사과”한다면서도 “아내 사랑 차원 아냐…” “순진한 면 있어” “앞으로 부부싸움 많이 해야” 등의 발언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 ‘채신없음’에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부인을 대놓고 손가락질하고 낯 뜨거운 온갖 패설을 쏟아내는 것에 분개하고 어떻게든 보호하겠다는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건 인지상정일 수 있다. 하지만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젊은 기자들과 끝장토론을 하듯 언쟁하며 사사로운 심리를 드러내는 모습에서 발언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진솔했는지 어땠는지를 떠나 씁쓸했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최고의 공적 기관인 대통령에 대해 우리 국민이 기대하는 ‘격(格)’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이번 회견은 나름대로 깊은 검토를 거쳐 전략적 계산에 따라 이뤄진 것 아닌가 싶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나 논란은 두루뭉술하게 눙치고 넘어가면서 활동 중단이든 뭐든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여사 특검’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것 자체가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고 했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 대통령이다. 야당 단독 추천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사실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 발언은 ‘여당’을 겨냥한 것이라고 본다.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을 향해 ‘특검 반대’의 메시지를 강하게 던졌다는 얘기다. 낭떠러지 끝의 위태로운 형국에 처한 상황에서 야권의 공세에 밀려 한 발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이판사판 저지의 길을 택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한 대표 측 대응이다. 한 대표 역시 특별감찰관만 내세울 뿐 여사 특검 얘기는 일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특검 정국이 어떤 정치적 결말로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칫 정권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을 경우 한 대표의 정치 생명은 그 길로 끝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윤-한’ 두 사람은 특검 문제에선 같은 운명에 처한 셈이다. 반면 민주당의 특검 공세의 칼끝은 바로 이 지점을 노리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 탄핵, 임기 단축 개헌 등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지만 이재명 대표의 ‘11월 위기’를 넘기기 위한 방탄 여론 조성용이라는 걸 상식적인 국민이 모르지 않는다. 아직은 불 붙지 않는 ‘젖은 연탄’에 매달리기보다는 특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정국은 기약 없이 1년이고 2년이고 도돌이표처럼 특검 재발의, 거부권 등이 반복되는 양상이 지속될 공산이 크다. 이 대표의 신상에 결정적 변화가 오지 않는 한 이런 대치는 지속될 것이고, 나라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럼 언제까지 나라가 ‘특검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나. 여권은 “특검은 곧 탄핵”이란 위기감이 크다고 한다. 태블릿PC 차원을 넘는 육성 녹취가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모르고 결국 탄핵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의도 시각으론 맞는 말이지만 국민 눈높이와는 차이가 있다. 대외활동 중단,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 등은 사후 조치다. 그거라도 잘하면 좋겠지만, 이미 불거진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않은 채 어떻게 ‘정치적 크레디트(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까. 결국 핵심은 대통령 부부가 떳떳하냐는 것이다. 일반인들로선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의 ‘청와대 야당 노릇’까지 거론하며 당당함을 보여줬는데 왜 특검은 극구 피하는 건지 하는 의아함이 일 수도 있다. 특검 수용만이 정쟁의 악순환을 끊고 난국을 타개할 궁극의 해법인지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위헌 시비” “인권 유린” 운운하며 옹색한 법 논리로 방어벽을 치고 나선 건 공감을 얻기 어렵다. 명태균 사건서 보듯 여사와의 친분을 내세워 호가호위하는 인물들이 한둘이 아닐 거란 의혹이 상당히 퍼져 있다. 약한 리더는 여론에 떨고 어리석은 리더는 여론을 무시하지만 현명한 리더는 여론을 판단하고 대책을 세운다. 대통령은 작금의 여론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가. 국민 불신을 해소하고 특검의 늪, 특검의 강을 어찌 건널 것인지 용기와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 항우를 빗댄 고사성어 ‘필부지용(匹夫之勇)’이 자꾸 떠오르는 요즘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세계적 전기(傳記)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통찰에 따르면 비극적 인물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나폴레옹 같은 비범한 운명을 좇는 비범한 인물이다. 이들은 타고난 영웅적 본성에 따라 불의 시련까지도 기꺼이 감당한다. 반면 평범하거나 나약한 천성의 인물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도 비극은 발생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다. 단적으로 김 여사는 비범한 인물도, 평범하거나 나약한 천성의 인물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옥죄거나 간섭하는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독특한 제3의 유형인 듯하다. 봉건제도 아닌 민주공화정에서 아내 이상의 역할을 추구하는 대통령 부인은 필연적으로 비극적 요소를 안고 있다. 그 결과가 국정 에너지 고갈로 이어지고 있음은 잇단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0%로 6주 만에 다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하는 대구·경북(TK)에서도 30% 선이 무너졌다. 보수층에서도 국정 수행 긍정 평가가 국민의힘 지지율을 밑돈 지 오래다. 부정 평가 이유로 ‘김 여사 문제’가 처음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도 의미심장하다. 일주일 전 조사에선 김 여사 특검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63%, 김 여사가 공개 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응답은 67%에 달하기도 했다. 이쯤이면 여론의 판단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김 여사 문제에 대한 국민 여론은 좀 거창하게 말하면 장자크 루소의 ‘일반 의지(general will)’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용산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부터 “(특검은) 의원들이 야당 편에 서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할 테면 해보라는 건지 될 대로 되라는 건지 진의를 알 수 없을 정도다. 압권은 “업보로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는 발언이다. 뭐가 업보라는 건지, 누가 돌을 던진다는 건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좌고우면하며 여론을 살펴도 시원찮을 판에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니, 대체 무슨 소리인지…. 사실 독대 요구나 면담 의제를 미리 흘리며 여론 정치를 하는 듯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정치 스타일이 마뜩하진 않다. 부적절한 활동 자제 요구도 아니고 아예 활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게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한 대표의 요구가 국민 지지를 얻는 이유는 김 여사가 그간 쌓아 온 국정 개입 그림자가 그만큼 짙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업보라면 업보일 것이다. 곧 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이다. 지난 2년 반의 성적은 20% 지지율이 보여주듯 낙제점이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민이 불러낸 대통령’이라면서 국민 목소리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돌 던지면 맞고 간다”는 말 자체엔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김 여사 라인 정리하랬더니 구체적으로 잘못을 적어내라고 하고, 여러 시중 의혹에 대해선 혐의가 입증된 게 없다는 식이다. 법이 만능도 아니고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건 일반 국민도 안다. 그런데도 형식적 법논리만 따질 뿐 겸허하게 머리를 숙이는 태도는 볼 수 없다. 아직 2년 반이나 남았는데, 뾰족한 국정 반전책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대통령이 바뀌어야 하는데 다들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심기일전과 김 여사 라인 정리를 포함한 과감한 인적 쇄신을 거듭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임기 후반부엔 무슨 엄청난 성과를 내려 일을 벌이기보다는 ‘기본 역할(minimum requirement)’에 보다 충실하길 바란다. 급변하는 경제 안보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 대표의 정치 역량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새로운 보수의 가치, 보수의 플랫폼을 만들어 낼지에 그의 정치적 미래도 달려 있다. 위기에 놓일 때마다 외부에서 사람을 찾는 땜빵식 해법으론 보수의 미래가 없다. 이젠 당을 새롭게 정비하고 훼손된 보수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그 안에서 인물을 키우는 길을 가야 한다. 용산이든 여당이든 통절한 반성문이 절실한 때다. 그런데 윤-한은 서로 눈앞의 싸움에만 연연하니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비극의 싹’은 점점 커져만 가는 듯하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얼마 전 한 기업인이 연락해 와 불쑥 한덕수 국무총리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질문 의도를 몰라 우물쭈물했더니 한 총리의 내공(內功)이 궁금하단 것이었다. 말인즉슨 혹시라도 탄핵 국면이 오더라도 큰 혼란 없도록 국정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권한대행’ 역량을 갖췄느냐는 질문이었다. 쪼그라든 경제를 걱정하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국무조정실장이었다는 등 두서없이 답변을 하는 한편으로 “큰돈 들여 기업을 하는 분들은 이런 걱정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돈은 권력의 향배에 그토록 민감하다. 필자는 다만 대통령 탄핵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실망을 넘어 절망”이란 보수층이 늘고 있지만, 아직 박근혜 탄핵 때와 같은 국정농단 물증은 딱히 없다. ‘윤-한 갈등’이란 뇌관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지만 이번에 당선된 108명은 비례 의원을 포함해 대부분 지역구가 안정적인 여당 텃밭 출신들이다. 정치생명을 걸고 그 위험한 ‘탄핵의 강’에 몸을 던질 이들은 현재로선 장담컨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최근 “징치(懲治·징계해 다스림)해도 안 되면 끌어내려야 한다”면서도 “탄핵 얘기를 한 적 없다”고 발을 빼는 것도 이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섣불리 가속 페달을 밟다간 불확실한 게임에 휘말리다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1심 판결 등 ‘운명의 11월’이 다가오고 있어 내심 초조하고 갑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지층의 탄핵 분위기는 부추기면서도 직접 발은 담그지 않으려는 고도의 줄타기인 셈이다.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으론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선택도 같이 탄핵되는 것이다. 그만큼 엄격한 근거에 따라야 한다.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보편적 이익에 부합할 때라야 가능하단 얘기다. ‘방탄용’ 탄핵은 그래서 위험하고 야권 내 지지를 얻기도 힘들다. 한데 요즘 용산 돌아가는 걸 보면 윤 대통령과 측근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큰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탄핵 공세의 칼끝은 주지하다시피 김건희 여사를 정조준하고 있다. 탄핵은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할 사안이지만, 대통령도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불안 요소들을 해소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 때와는 다를 것이란 믿음 때문인지, 11월이 지나면 전세가 역전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지, 극우 유튜버들의 정권 옹호 논리에 취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시중의 끌끌 차는 목소리엔 귀를 차단한 듯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용산은 김 여사 방어망이 뚫리면 마치 정권도 무너질 수 있다는 듯 전전긍긍하고 야당은 그런 여권의 난맥상을 즐기는 양상이 집권 전반기 내내 이어지고 있다. 김 여사는 그 숱한 논란에도 ‘언터처블’이다. 급기야 검찰이 명품백에 이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곧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검에 대한 여권 균열은 물론 촛불 결집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땐 뭔 사과를 한들 일반 사람들은 코웃음 칠 것이다. 게다가 웬 음습한 정치 기술자인지 협잡꾼인지 하는 사람과 대선 이후까지 소통을 이어온 흔적까지 나왔다. 만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기소된다면 대통령 부부는 물론 국민도 참담하고 치욕스럽긴 마찬가지다.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최고 권력자에겐 남다른 사생관이 요구된다. 검찰 출신 대통령인 만큼 더 무거운 책임감과 엄정한 잣대 적용이 필요했다. 이제라도 여론재판이 아닌 사법재판을 받도록 하는 게 ‘대통령 부하’로 전락한 검찰 신뢰를 회복하고 당사자들도 후환을 더는 길이다. 시중에서 “간신” “여사라인” 등 권력의 무게추에 의문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김 여사의 활동을 제어하고 온전히 국정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용산은 어떤 길을 갈까. 극적 반전이 이뤄질 수 있을까. 대부분 아닐 거라고 한다. 권력의 레지티머시(Legitimacy·정당성)는 선출 과정의 합법적 정당성뿐 아니라 권력 행사 과정의 실질적 정당성까지 포함한다. 어쩌면 실질적 정당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 실질적 정당성이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다. 나라 경제는 점점 껍데기가 되고 있다는 우려와 한탄이 쏟아진다. 김 여사 장벽을 넘지 않고는 만사휴의(萬事休矣)다. 정치에선 할 말이 없으면 지는 법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얼마 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심우정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환담장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한마디도 공개되지 않았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괜히 허튼소리 나올까 무척 조심했다”고 한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만 오갔다는 후문이다. 5년여 전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식이 문득 떠올랐다. 많은 참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 총장을 낙점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며 ‘당부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사모님께 축하 말씀을 드린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두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한 번은 임명장을 받는 위치에서, 한 번은 임명장을 주는 위치에 선 윤 대통령의 심정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상상해 본다. 자신이 선택한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그 흔한 ‘정치 중립’ ‘엄정 수사’ 얘기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말조심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으니…. 계량화해 설명하긴 어렵지만 우리 국민 의식 저변엔 ‘권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강하게 깔려 있다고 본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힘을 동원해 방벽을 치고 서로 보호하려 한다는 선입견이다. 이는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다. 최고 권력자는 옳든 그르든 그런 의심의 실체를 존중해야 한다. 자신이나 주변 문제에 대해선 내용이든 절차든 훨씬 더 엄중하게 접근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얘기다. 그게 정치의 영역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은 실패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를 새삼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겠지만, 심우정 검찰 체제가 막 출범한 시점이니 꼭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문제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 민심 이반의 핵심 고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2020년 추미애 법무장관이 라임펀드 사기 사건과 함께 도이치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는 지휘권을 발동하자 “검찰청법에 어긋나는 위법”이라고 반발했다.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란 말도 그때 나왔다. 검찰청법 위반이든 아니든 적어도 도이치 사건의 경우엔 총장의 부인이나 장모가 연루된 사건인 만큼 이해충돌 여지가 있긴 했다. 당시 윤 총장이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수사지휘권 박탈을 어쩔 수 없이 수용했던 이유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위법이 확실하다”고 했던 수사지휘권 배제를 원상 회복시키지 않고 2년 이상 끌어 왔다. 만약 집권 후 바로 도이치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이 원상 회복됐으면 어땠을까. 검찰총장 지휘하에 김건희 여사 수사에 속도를 내고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명품백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국민 앞에서 자신이 했던 말과 대통령이 된 뒤의 행동이 다르진 않았다는 당당함은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요리조리 뭉개 온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나 박성재 법무장관도 ‘방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원석 전 총장은 ‘법불아귀(法不阿貴)’ 운운하다 퇴임 직전인 7월에야 구두로 박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복원을 요청했다는 레코드만 남겼다. 권력과 여론 사이에서 눈치를 본 건지, 말 못 할 고뇌를 한 건지 알 수 없지만 후임 총장에게 부담만 넘긴 꼴이 됐다. 이제 심 총장의 시간이다. 수사지휘권 박탈 무효를 선언하든, 지휘권 복원을 공개 요구하든 결국 애초에 꼬인 매듭을 상식에 맞게 풀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다. 총장을 패싱한 채 휴대폰까지 맡기고 경호처 부속 건물에서 방문 조사를 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최근 항소심에서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유죄를 받은 또 다른 ‘쩐주’ 손모 씨와 김 여사는 구체적 실체가 다르다며 아무리 그럴듯한 법적 논리를 들이대며 방어벽을 쳐봐야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검찰이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권력은 해석의 힘’이다. 신권 국가에선 신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하는 이들이, 법치국가에선 법률적 해석의 권한을 쥔 이들이 권력을 쥔다. 그 ‘해석 잣대’가 정권마다 제각각이니 공화정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총장의 수사지휘권 박탈 파동 때 라임펀드 사건을 담당했던 한 검사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 조직을 떠났다. 그때와 지금은 뭐가 다른가. 새 총장이 얼마나 뱃심 있는 인물인지 모르겠다. 특검 여론이 60%를 넘는 현실을 직시하길 바랄 뿐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