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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첫 날인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황당한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전북 한교원이 전반 7분 ‘보복 폭력’을 휘둘러 퇴장 당한 것이다. 몸싸움을 하다 인천 박대한의 손에 얼굴을 맞은 한교원이 박대한의 어깨를 툭 쳤는데 제대로 맞지 않자 쫓아가서 얼굴을 다시 때렸다. 전북 팬들도 놀랐다. 경기는 이겼지만 구단 홈페이지에는 ‘한교원이 그럴 줄 몰랐다. 해서 될 일과 안 되는 일이 있다’며 비판의 글이 줄을 이었다. 전북 관계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상 보복 폭력에 대해서는 최소 5경기에서 최대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릴 수 있다. 전북은 24일 2000만 원의 벌금과 80시간의 사회봉사라는 자체 징계를 내리며 한교원이 자필로 작성한 사과문까지 언론사에 배포했다. 전북은 어린이날 TV 중계가 프로야구에 치우친 것을 비판한 이동국의 발언으로 야구팬들의 비난을 받는 홍역을 치른 뒤였다. 전북은 이번 폭력이 프로축구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전북은 최근 K리그 클래식을 리드하고 있는 명문 구단임을 자부하고 있어 한교원의 폭력이 주는 파장이 크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한교원의 초반 퇴장이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놨다. 홈 팬들이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앞으로 교육을 철저히 시키도록 하겠다”고 아쉬워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는 유소년을 키우며 ‘축구선수가 아닌 인간을 키운다’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 ‘축구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뜻이다. 1군인 A팀에서 활약하는 대부분의 선수들도 인성 교육을 먼저 받는다. ‘한국판 맨유(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표방한 전북도 배워야 할 점이다. 한교원의 폭력이 구단이 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하며 선수들을 압박해서 나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박대한에게 사과한 뒤 반성하고 있는 한교원에게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충고해야 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지난해 K리그 클래식 챔피언 전북의 상승세가 거세다. 전북은 24일까지 12경기를 치러 승점 31(10승 1무 1패)로 1경기를 덜 치른 2위 수원(승점 20)을 11점차로 따돌렸다. 일찌감치 선두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전북의 초반 상승세는 예상외라는 평가다. 최강희 전북 감독도 “우리가 잘한 것도 있지만 상대팀이 너무 못했다”고 말했다. 전북은 K리그 클래식이 개막한 3월부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32강 조별리그를 함께 치렀다. 5월초까지 홈 앤드 어웨이 6경기를 치르는 일정이다. 시즌 시작 전 34세의 노장 외국인 선수 에닝요와 에두 등을 보강해 ‘1.5군’까지 마련했지만 K리그 클래식과 ACL을 동시에 치르기는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최 감독은 “상반기에 3위 정도만 하면 후반기에 따라 잡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전북은 특히 이번 시즌 강팀이라고 평가되는 팀을 모두 꺾었다. 3월 14일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2-1로 이겼고 4월 4일 포항을 안방으로 불러 1-0으로 잡았다. 2일엔 수원도 안방에서 2-0으로 완파했다. 울산(2-1)과 제주(1-0) 등 전문가들이 강호로 꼽은 팀을 상대로 승점 3점씩을 챙겼다. 23일 인천과의 안방경기에선 한교원이 전반 7분 퇴장당해 10명이 싸운 가운데 1-0 승리를 거뒀다. 안방에서 열린 ACL 16강 1차전에서 1-1로 비긴 전북은 26일 원정 2차전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는 ‘오렌지 머리 팬 서비스’를 했던 조성환 감독의 제주가 전남에 3-2로 승리했다. 부산은 24일 열린 광주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44분 터진 유지노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기고 2연패에서 탈출했다. 부산은 승점 11로 광주(승점 13)에 이어 11위가 됐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태권도 남자 최경량급 김태훈(21·동아대)이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를 이루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전망을 밝게 했다. 또 여고생 임금별(17·전남체고)은 생애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역대 최연소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태훈은 16일(현지 시간) 러시아 첼랴빈스크의 트락토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5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남자 54kg급 결승에서 개최국 러시아의 스타니슬라프 데니소프를 14-7로 꺾었다. 이로써 김태훈은 2013년 멕시코 푸에블라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김태훈은 키가 183cm로 남자 54kg급에서는 그보다 더 큰 선수를 찾기 어렵다. 하체가 긴 데다 기술까지 겸비해 전자호구시스템을 적용하는 태권도 경기에서는 적수를 찾아 보기 어려운 세계 최강이다. 김태훈의 다음 목표는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지난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치러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인천 아시아경기에서도 정상에 오른 김태훈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추가하면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대표팀 막내이자 유일한 고교생인 임금별은 여자 53kg급 결승에서 황윈원(대만)을 10-5로 꺾었다. 1998년 6월생으로 다음 달에 만 17세가 되는 임금별은 한국 선수 중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이전까지는 2011년 5월 경주 대회에서 우승한 1994년 1월생 김소희가 17세 4개월로 이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하민아(20·경희대)가 14일(현지시간) 러시아 첼랴빈스크의 트락토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5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여자 49kg 결승에서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리스트인 우징위(28·중국)를 연장 접전 끝에 4-3으로 제압하고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2012년 이집트 세계주니어선수권 챔피언 하민아는 시니어 무대 국가대표 데뷔 경기에서 우징위를 잡으며 한국 여자태권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제주에는 최근 하나의 전통이 생겼다. 안방이든 원정이든 이기면 라커룸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 모두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다. 주전으로 뛴 선수나 벤치를 지킨 선수나 모두가 하나 되는 장이다. 조성환 제주 감독(45·사진)이 만들었다. 조 감독은 “팀을 맡은 뒤 처음 이겼을 때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찍었다. 처음엔 엉겁결에 했는데 의미가 있었다. 승리는 주전만이 이룬 게 아니라 팀 전체가 함께 한 것이다. 그래서 이길 때마다 라커룸에서 모두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고 말했다. 장석수 사장(55)은 물론 구단 관계자 대부분이 사진에 찍혔다. 선수들이 팔을 잡아당기며 “사장님과 다른 분들은 우리 팀이 아닌가요”라며 끌고 갔다고 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제주가 전북(승점 25)과 수원(승점 17)에 이어 3위(승점 15)를 달리고 있는 원동력에는 ‘하나’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조 감독은 “90분간 뛴 선수도 있지만 그 옆에서 지켜보는 선수와 팀 관계자들도 승리를 원했다. 주전만이 승리를 만든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승리를 위해 하나가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시즌 프로 사령탑에 데뷔한 조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팀 관계자는 “인자함과 배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더라도 정과 의리는 있어야 한다. 서로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선수가 있더라도 그 재능을 제대로 빼낼 수가 없다”고 답했다. 조 감독은 ‘소통’을 최우선으로 한다. 선수들과 일대일 대화는 기본. 하지만 감독과 선수가 일대일로 만나는 데 선수들이 거부감을 느끼자 공격수와 수비수, 고참과 후배들로 그룹을 나눠 따로따로 회식 자리를 마련하면서까지 선수들과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조 감독은 23일 전남과의 안방경기 때 ‘오렌지색’ 머리로 팬들을 맞는다. 안방 관중이 2만 명을 넘을 경우 머리를 팀 유니폼 색깔과 같은 오렌지색으로 염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주는 5일 울산과의 안방경기 때(2-1 제주 승) 실관중 집계(2012년) 이후 처음으로 2만 관중(2만13명)을 넘었다. 조 감독은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팬들을 위해서라면 머리가 무슨 문제인가. 팬들이 즐겁다면 뭐든 다 하겠다”며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서울이 힘겹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티켓을 거머쥐었다. 서울은 5일 열린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와의 H조 마지막 방문경기에서 몰리나의 결승골 덕택에 3-2로 이겼다. 이로써 서울은 승점 9를 기록해 이날 이미 1위를 확정한 광저우 헝다(승점 10·중국)를 1-0으로 꺾은 웨스턴 시드니(승점 8·호주)를 제치고 2위가 돼 조 2위까지 주어지는 16강 티켓을 획득했다. 극적인 16강행이었다. 전후반 90분까지 2-2로 비기고 있었다. 반면 광저우에선 시드니가 1-0으로 이기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면 서울은 승점 7이라 시드니가 승점 8로 16강에 진출하는 상황. 그때 몰리나의 골이 터졌다. 후반 추가시간 1분이 지났을 때였다. 한편 수원은 베이징 궈안(중국)과의 G조 마지막 안방경기에서 1-1로 비기고 궈안과 승점 11로 동률을 이뤘지만 승자승 원칙에 따라 2위가 됐다. 수원은 궈안과의 방문경기에서 0-1로 졌다. 16강에서 E조 1위 가시와 레이솔(일본)을 만나는 수원은 19일 홈에서, 26일 방문경기를 치른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1982년 미스터코리아 출신인 창용찬 대한피트니스아카데미 회장은 몸을 바꾸기 위해 5가지 수칙을 지키라고 조언한다. 첫째, 보디빌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지도자에게서 배워야 한다. 처음이 중요하다. 근육을 만들 수 있는 기본 프로그램을 알아야 한다. 잘못 배우면 근육을 다칠 수 있다. 둘째, 시간을 정해두고 낮은 강도부터 천천히 운동한다. 밥도 급하게 먹으면 탈이 나듯 운동도 마찬가지다. 운동의 효과는 서서히 나타난다. 또 너무 무리하면 쉽게 싫증이 난다. 오랫동안 운동하려면 낮은 강도로 짧은 시간 동안 하면서 서서히 강도를 높여야 한다. 운동하는 요일과 시간대도 정해서 꼭 지키는 게 중요하다. 셋째, 식습관을 바꾸자. 짜고 매운 음식을 피하고 지방과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다. 근육은 단백질이 만든다. 선수들처럼 할 필요는 없지만 단백질을 40%로 늘리고 탄수화물을 50%, 지방을 10%로 줄이는 게 도움이 된다. 넷째, 3개월간은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운동하자. 습관을 잘 들이는 게 중요하다. 운동을 시작해 3개월 안에 몸이 가장 많이 바뀐다. 이후 서서히 바뀌는데 이때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 하다 보면 근육통이 오는데 부상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계속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자신이 원하는 몸매를 가진 유명인의 사진을 책상이나 냉장고 등에 붙여 놓고 바라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좋다. 다섯째, 파트너를 만들어 함께하라. 운동은 함께할 때 더 효과적이다. 운동을 빼먹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고 경쟁도 한다. 창 회장은 “운동을 시작한 뒤 한 달 동안을 지속하는 사람은 10명 중 7명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는 점점 줄어 석 달간 계속 운동하는 사람은 3명에 불과하다.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끈기와 지구력만 있으면 몸을 바꿀 수 있다”고 조언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 없듯 매년 먹는 나이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 공상 만화나 소설에서 볼 법한 ‘회춘 약’이 개발된다면야 모를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외관 나이’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요즘 여자 보디빌딩계에서 떠오르는 ‘유망주’ 오영 씨(58)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전형적인 가정주부였던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약 1년 3개월 만에 보디빌딩계의 화제 인물이 됐다. 그는 20일 충남 논산에서 열린 2015년 아시아보디빌딩&피트니스선수권 대표선발대회 여자 163cm 이하 피지크 부문에서 우승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 ‘태극마크’를 단 것이다. 보디빌딩 하면 우람하고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매가 연상된다. 남자라면 봐 줄만 하지만 여자가 남자 같은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떻게 여자가 저런 근육을 키울 수 있을까’라고 놀랄 수도 있지만 다소 기괴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보디빌딩연맹(IFBB)은 이런 세간의 ‘우려’를 반영해 2002년부터 보디빌딩 여자 부문의 심사기준을 여성미를 강조하는 식으로 바꿨다. 요즘 여성 보디빌딩은 근육질 몸매보다는 팔과 다리, 허리, 엉덩이, 가슴 등 부분별 근육을 통해 여성미를 더 부각시킬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에 따라 경쟁 부문도 세분했다. 전반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근육질을 가장 강조하는 부문이 피지크이고 그 다음이 피트니스, 보디피트니스, 비키니피트니스 등의 순이다. 보디피트니스와 비키니피트니스는 피지크와 피트니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육질을 덜 강조한다. 그러나 근육과 여성성의 조화를 중시하는 점은 같다. 국내에선 피트니스를 빼고 3개 부문에서 경쟁한다. 부문별 경쟁 기준도 몸무게가 아닌 키로 정했다. FIBB는 158cm 이하, 163cm 이하, 168cm 이하, 168cm 이상급으로 나누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초창기라 163cm 미만과 이상으로 구분해 대회를 열고 있다. IFBB는 올해부터 과거의 근육형 여성 보디빌딩 선발대회를 전면 금지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콘테스트를 하도록 각국 연맹에 공문을 보냈다. 보디피트니스를 통해 몸매를 가꾼 모델 이연 씨(30)와 유승옥 씨(25) 등 멋진 몸매를 가진 여성들이 최근 방송과 인터넷에서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근육질 여성과는 다른 여성미를 갖춘 건강미인이기 때문이다. 보디피트니스 등 새로운 여성 보디빌딩 방식 덕분에 국내에서도 최근 4, 5년 전부터 여성 보디빌딩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근육보다는 균형 잡힌 몸매를 가꾸려는 여성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오 씨가 보디빌딩을 시작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갱년기도 오고 살도 찌고 나른해진 삶에 뭔가 활력소를 주기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12년부터 헬스클럽에 등록해 운동을 시작했다. 웨이트트레이닝 기구를 들어봤지만 몸이 변하지 않았다. 재미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보디빌딩 지도자들을 키우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대로 배우면 좀 다를까’ 하며 2013년 말 서울 중구 충무로의 (사)대한피트니스아카데미를 찾았다. 6주간의 보디빌딩 지도자 강의를 듣고 전문적으로 운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망설여지기도 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무모한 도전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 나이에 정말 내 몸매가 바뀔 수 있을까’란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무료한 삶을 바꿔보고 싶었다. “역시 운동은 알고 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하는 것보다 퍼스널 트레이너(PT)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념해보기로 했다.” 문제가 생겼다. 대전 집에 있는 남편 홍종승 씨(65)가 반대하고 나섰다. 6주간의 지도자 강습과정 땐 서울행을 용인해줬는데 합숙까지 하며 보디빌딩이라는 운동을 전문적으로 시작한다고 하니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인생 최대의 변화를 추구하는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주 1회는 집에 간다는 조건으로 서울에서 본격적인 ‘보디빌더’의 삶을 시작했다. 오 씨는 서울에서 합숙하며 주 5일 하루 1시간 30분씩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한 달 정도 됐을까. 저를 지도하는 하용인 교수님이 대회에 한번 나가볼 생각이 있느냐고 했다. 대회에 나가면 구체적인 목표도 생기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훈련 3개월 만에 조그만 대회에 출전했는데 3위를 했다. 너무 기뻤다.” 보디빌딩은 훈련도 잘해야 하지만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음식에 소금간을 하지 않아야 하고 매운 것도 피해야 한다. 한마디로 무미건조한 식사를 해야 한다. “솔직히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의외로 쉬웠다. 조금만 조심하면 됐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퍽퍽하다고 하는 닭 가슴살을 많이 먹지만 색깔별 야채와 과일 등을 섞어 먹으니 큰 문제는 안 됐다. 무엇보다 보디빌더들이 먹는 음식이 건강식이었다. 고기나 생선 등을 구워 먹는 게 없고 삶거나 쪄 먹는다. 야채도 볶더라도 기름기 없이 살짝 볶아서 먹는다. 이런 보양식이 따로 없다.” 오 씨는 보디빌딩을 시작한 뒤 몸도 좋아졌지만 피부도 매끄러워졌다. 건강식을 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면서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도 피했다. 전문가들은 보디빌딩으로 몸을 제대로 만들려면 음식으로 몸에 자극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게 짜고 매운 음식 먹지 않기.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기본. 창용찬 대한피트니스아카데미 회장(60)은 “하얀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몸도 운동할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근육도 잘 만들어진다. 술을 마시는 등 주의를 하지 않으면 다시 몸을 만들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오 씨의 몸이 달라지자 가족들도 변했다. 남편은 “진짜 열심히 하는 것 같다”며 응원을 해줬고 딸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단다. 남편과 딸도 운동을 시작했다. 요즘 남편은 오 씨가 집에 오면 ‘헬스클럽에 가서 나 좀 지도해줘’라는 요청까지 한다고. 주변 사람들도 오 씨의 변화된 모습에 부러워하며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장기적으론 남편 딸과 함께 보디빌딩 콘테스트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다. “솔직히 요즘이 내 인생의 황금기다. 내 몸이 이렇게 바뀔지 몰랐다. 운동을 열심히 한 만큼 몸의 변화로 나타나니 너무 즐겁다. 내가 이룬 조그만 성과지만 내 인생에서 얻었던 그 어떤 결과보다 소중하다.” 오 씨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키 162cm, 체중 65kg의 축 처진 몸매였지만 지금은 58kg의 탄탄한 몸매를 지니게 됐다. 근육을 키우면 노화가 방지된다. 칼로리 소비도 잘돼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그가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그는 요즘 ‘운동 전도사’로 불린다. 자신이 변한 것처럼 누구나 변할 수 있다며 운동을 권유하고 있다. 오 씨는 “운동을 하다 보면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참고 해야 한다. 시작해서 100일 정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운동을 빼먹지 말아야 한다. 그럼 몸이 운동하는 것을 습관으로 받아들인다. 그때부터는 몸이 알아서 운동하자고 움직인다”고 조언했다. 오 씨가 운동하면서 변한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여유로운 마음. 음식 등 많은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보디빌딩은 다소 민감한 운동이지만 몸이 변하니 마음이 느긋해졌다. “주위에 대한 불만도 없어졌고 그냥 하루하루가 고맙고 행복하다”고 했다. 오 씨는 6월 5일부터 8일까지 일본 기타큐슈에서 열리는 아시아보디빌딩&피트니스 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선다는 즐거움에 강훈련을 소화하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오 씨와 함께 아시아보디빌딩&피트니스 선수권대회 보디피트니스 163cm 이상급에 출전하는 이진원 씨(28·위 사진)는 벨리댄스를 하다 보디빌더로 전향한 케이스다. 전문 벨리댄서로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고관절이 아파서 고민하던 때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헬스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육을 만들면서 보디피트니스에 빠지게 됐다. 그는 “보디피트니스는 내 몸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예술작가가 조각을 하듯 내 몸을 만드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2011년 보디피트니스를 만난 그는 벨리댄스를 한 늘씬한 몸매 덕택에 바로 두각을 나타내 이듬해 국내 보디피트니스대회에서 1위를 했다. 2013년엔 아시아보디빌딩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도 땄다. 이 씨는 “보디피트니스는 좀 외로운 운동이다. 내 몸을 잘 만드는 재미는 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 맛있는 것 못 먹고 사람 만나는 것도 줄여야 한다. 하지만 멋진 몸으로 바뀌면 기분이 무척 좋다. 그 맛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왕 시작한 만큼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몸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창 회장은 “모든 운동이 그렇듯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 오영 씨는 몸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했다. 솔직히 몸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오영 씨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박태환(26)에게 금지약물 네비도(NEBIDO)를 투약해 ‘업무상 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T병원의 김모 원장은 21일 “금지약물 여부를 확인하도록 박태환에게 투약 약물 리스트를 사전에 줬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의 변호인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노화방지와 건강관리 전문 의사인 김 원장은 스포츠의학 관련 전문 지식이 전혀 없었다. 도핑금지약물에 대해 박태환 측이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고 생각해 투약 리스트를 만들어 줬다. 그 리스트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박태환 측이 리스트를 보고도 도핑금지약물에 대한 언급 없이 주사를 놓아줄 것을 요청해 아무런 의심 없이 주사했다”고 말했다. 진료기록 부실에 대해서도 김 원장의 변호인은 “진료기록을 기재하지 않은 것은 숨기려고 의도했기 때문이 아니다. 일일보고나 간호사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는 당시 진료상황이 나온다. 간호사가 기록하지 못한 단순 실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태환의 아버지 박인호 씨는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비타민 리스트는 받았지만 성 호르몬이 포함된 약물 리스트는 받아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박 씨는 “금지약물에 대해 사전에 의사와 협의하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모른다면 말이 되느냐. 제대로 된 의사라면 직접 공부를 해서 투약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박태환과 박태환의 매니저 등 4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에 따라 박태환은 6월 4일 열리는 다음 재판에 출석해 검찰과 변호인의 신문을 받게 됐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30세의 노장 남유선(광주광역시체육회·사진)이 10년 만에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남유선은 20일 울산 문수수영장에서 열린 제87회 동아수영대회 마지막 날 여자 일반부 개인혼영 400m 결선에서 4분46초67을 기록해 대한수영연맹(KSF)이 정한 세계수영선수권 출전 기준기록(4분47초18)을 통과했다. 지난해 김서영(경북도청)이 세운 대회기록(4분50초01)을 3초 넘게 경신한 남유선은 2005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회 이후 10년 만에 세계선수권 출전 티켓을 따냈다. 서울 가원중 3학년이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남유선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 400m에서 한국 수영사상 처음으로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남유선을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를 통해 7월 카잔(러시아)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할 대표팀도 여자 8명, 남자 1명으로 확정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신기록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린보이’ 박태환의 뒤를 이을 남녀 유망주가 등장했다. ‘제2의 박태환’ 이호준(14·서울대사범대부설중)은 남자 중등부 자유형 200m에서 1분52초09를 기록해 박태환의 중2 때 기록(1분57초76)을 크게 넘어섰다. 이호준에 이어 1분56초54로 2위를 차지한 최지혁(14·서울체중)과 1분56초70으로 3위를 한 박재훈(15·부산체중) 등이 경쟁 구도를 형성한 것도 기록 경쟁에 불을 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여자 고등부에서는 이의섭(15·미국 타우슨 하이스쿨)이 ‘여자 박태환’으로 떠올랐다. 한국 나이로 중학교 3학년인 이의섭은 여자 고등부 자유형 200m 결선에서 2분0초65를 기록해 여자 일반부에서 1위를 차지한 김수연(20·전북체육회)의 기록(2분2초56)보다 앞섰다. 2009년 김정혜가 세운 한국기록(1분59초93)에는 0.72초 차로 다가섰다. 대회신기록이 56개 쏟아진 이번 대회 최우수선수(MVP)에는 대회신기록 6개를 세운 이유연(15·신성중)이 선정됐다. 이유연은 남중부 자유형 50m와 100m, 개인혼영 200m에서 대회기록을 갈아 치웠다. 여대부 차현희(19·경성대)는 대회 최다인 8관왕에 올랐다.울산=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30세의 노장 남유선(광주광역시체육회)이 10년 만에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남유선은 20일 울산 문수수영장에서 열린 제87회 동아수영대회 마지막 날 여자 일반부 개인혼영 400m 결선에서 4분46초67을 기록해 대한수영연맹(KSF)이 정한 세계수영선수권 출전 기준기록(4분47초18)을 통과했다. 지난해 김서영(경북도청)이 세운 대회기록(4분50초01)을 3초 넘게 경신한 남유선은 2005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회 이후 10년 만에 세계선수권에 출전 티켓을 따냈다. 서울 가원중 3학년이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남유선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 400m에서 한국 수영사상 처음으로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남유선을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를 통해 7월 카잔(러시아)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할 대표팀도 여자 8명, 남자 1명으로 확정됐다. 이번대회에서는 한국신기록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린보이’ 박태환의 뒤를 이을 남녀 유망주가 등장했다. 제2의 박태환‘ 이호준(14·서울대사범대부설중)은 남자 중등부 자유형 200m에서 1분52초09를 기록해 박태환의 중2 때 기록(1분57초76)을 크게 넘어섰다. 이호준에 이어 1분56초54로 2위를 차지한 최지혁(14·서울체중)과 1분56초70으로 3위를 한 박재훈(15·부산체중) 등이 경쟁 구도를 형성한 것도 기록 경쟁에 불을 붙일 전망이다. 여자 고등부에서는 이의섭(15·미국 타우슨 하이스쿨)이 ’여자 박태환‘으로 떠올랐다. 한국 나이로 중학교 3학년인 이의섭은 여자 고등부 자유형 200m 결선에서 2분0초65를 기록해 여자 일반부에서 1위를 차지한 김수연(20·전북체육회)의 기록(2분2초56)보다 앞섰다. 2009년 김정혜가 세운 한국기록(1분59초93)에는 0.72초차로 다가섰다. 대회신기록이 56개 쏟아진 이번 대회 최우수선수(MVP)에는 대회신기록 6개를 세운 이유연(15·신성중)이 선정됐다. 이유연은 남중부 자유형 50m와 100m, 개인혼영 200m에서 대회기록을 갈아 치웠다. 여대부 차현희(19·경성대)는 대회 최다인 8관왕에 올랐다. 울산=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박한별(18·부산체고·사진)이 ‘제2의 최윤희’로 성장하고 있다. 박한별은 19일 울산 문수수영장에서 열린 제87회 동아수영대회 여자 고등부 배영 50m에서 7월에 열리는 카잔(러시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박한별은 예선에서 28초39를 기록해 지난해 자신이 세웠던 대회기록(28초86)을 갈아 치우며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 기준기록(28초60)을 통과했다. 박한별은 결선에서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4위를 하며 세웠던 자신의 한국기록(28초32) 경신에 도전했지만 28초67로 금메달을 거는 데 만족해야 했다. 부산 남항초교 3학년 때 수영을 시작한 박한별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 3관왕(배영 100m, 200m, 개인혼영 200m)에 이어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2관왕(배영 100m, 200m)을 한 ‘배영 여왕’ 최윤희의 뒤를 이을 기대주다. 김민석 대표팀 코치(36)는 “한별이는 배영으로 물을 타는 능력이 탁월하다. 순발력도 좋다. 물을 잡아끌어 당기는 기술과 체력을 더 키우면 기록 단축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별은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여자 최초로 A파이널(8명)에 드는 게 목표다. 2013년 바르셀로나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배영 50m A파이널에서 8등이 28초33이었으니 내 기록만 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오늘 목표가 27초대에 드는 것이었다. 여자 배영 50m 세계기록이 27초06이니 한별이가 27초대에 진입하면 충분히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평영 선수 출신인 박한별의 언니 박하늘 씨(23)는 현재 부산체고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박한별은 “진천선수촌에 있어 언니는 잘 못 본다. 그래도 늘 전화해서 격려해 준다”며 웃었다. 박진영(18·작전여고)은 여고부 접영 200m에서 2분7초86의 대회신기록(종전 2분10초12)을 세우며 FINA 기준기록(2분11초14)을 가볍게 통과했다. 이 종목에서 2위(2분10초06)를 차지한 박수진(16·창덕여고)도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땄다. 종목별 기준기록 통과자는 국가당 2명까지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다. ‘남자 배영 1인자’ 박선관(24·고양시청)은 남자 일반부 배영 50m 예선에서 25초70을 기록해 대한수영연맹(KSF) 세계선수권 기준기록(25초78)을 넘겼다. 한편 강원체고는 남고부 수구 결승에서 전남 목상고를 9-8로 꺾고 2010년 이후 5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울산=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동아수영기록실 swimming.sports.or.kr}

박한별(18·부산체고)이 ‘제2의 최윤희’로 성장하고 있다. 박한별은 19일 울산 문수수영장에서 열린 제87회 동아수영대회 여자 고등부 배영 50m에서 7월 열리는 카잔(러시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박한별은 예선에서 28초39를 기록해 지난해 자신이 세웠던 대회기록(28초86)을 갈아 치우며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 기준기록(28초60)을 통과했다. 박한별은 결선에서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4위를 하며 세웠던 자신의 한국기록(28초32) 경신에 도전했지만 28초67로 금메달을 거는데 만족해야 했다. 부산 남항초교 3학년 때 수영을 시작한 박한별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 3관왕(배영 100m, 200m, 개인혼영 200m)에 이어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2관왕(배영 100m, 200m)을 한 ‘배영 여왕’ 최윤희의 뒤를 이을 기대주다. 김민석 대표팀 코치(36)는 “한별이는 배영으로 물을 타는 능력이 탁월하다. 순발력도 좋다. 물을 잡아끌어 당기는 기술과 체력을 더 키우면 기록 단축 속도가 더 빨라 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별은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여자 최초로 A파이널(8명)에 드는 게 목표다. 2013년 바르셀로나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배영 50m A파이널에서 8등이 28초33이었느니 내 기록만 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오늘 목표가 27초대에 드는 것이었다. 여자 배영 50m 세계기록이 27초06이니 한별이가 27초대에 진입하면 충분히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평형 선수 출신인 박한별의 언니 하늘 씨(23)는 현재 부산체고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박한별은 ”진천선수촌에 있어 언니는 잘 못 본다. 그래도 늘 전화해서 격려해 준다“며 웃었다. 박진영(18·작전여고)은 여고부 접영 200m에서 2분7초86의 대회신기록(종전 2분10초12)을 세우며 FINA 기준기록(2분11초14)을 가볍게 통과했다. 이 종목에서 2위(2분10초06)를 차지한 박수진(16·창덕여고)도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땄다. 종목별 기준기록 통과자는 국가 당 2명까지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다. ’남자 배영 1인자‘ 박선관(24·고양시청)은 남자 일반부 배영 50m 예선에서 25초70을 기록해 대한수영연맹(KSF) 세계선수권 기준기록(25초78)을 넘겼다. 한편 강원체고는 남고부 수구 결승에서 전남 목상고를 9-8로 꺾고 2010년 이후 5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동아수영기록실 swimming.sports.or.kr울산=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한국 수영의 기대주가 됐다. 제87회 동아수영대회 여자 고등부 자유형 200m에서 2분0초65로 여자 일반부까지 통틀어 가장 좋은 기록을 내며 ‘여자 박태환’으로 떠오른 이의섭(15·타우슨 하이스쿨).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했다. 어려서 너무 물을 무서워하자 6세 때 서울 강남구 서초동 코오롱스포츠센터 수영 교실에 등록시킨 것이다. “첫 3일은 너무 무서웠어요. 울고 싶었지만 남들 앞에서 울 순 없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수영이 너무 재밌어졌어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았어요.” 이의섭은 6개월 만에 코오롱스포츠센터 주최 수영대회에서 연령대 2위를 할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계성초교 3학년 때 노민상 전 대표팀 감독 밑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수영선수를 시작했다. 소년체전에서도 수많은 금메달을 땄다. 원래 접영과 배영, 평영이 주 종목이었는데 노 감독을 만나면서 자유형도 함께 했다. 지금은 자유형과 접영이 주 종목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주니어대회에 출전해 자유형 400m에서 4분12초65를 기록해 조현주(대현중)의 한국기록(4분13초20)보다 0.55초가 더 빨랐지만 당시는 대한수영연맹에 등록된 선수가 아니어서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의섭은 이번 대회에서 자유형 200m와 400m, 접영 200m 등에서 세계선수권 기준기록 통과를 노렸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이의섭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듯 실패할 때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아직 모자란 게 많아요. 체력과 기술은 물론 정신력까지 더 보강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의섭은 지난해 아버지 이주한 교수(서울시립대 물리학과)가 미국 메릴랜드 주 타우슨대 교환교수로 가면서 따라갔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너무 좋단다. 한국에 있을 때 라이벌의 어머니가 “의섭이는 공부를 잘하니 수영을 조만간 그만 둘 거야”라고까지 할 정도로 이의섭은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수영도 좋아한다. “미국에선 오후 2시 12분이면 학교의 모든 일과가 끝나요. 그럼 3시부터 수영을 시작해 체력훈련까지 마치면 6시에요. 그 때부터 공부하면 되니 공부와 수영을 병행하는데 전혀 문제없어요. 한국에선 수영을 마치면 오후 8시가 돼 피곤해서 공부하기 힘들었어요.” 이의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서 한국수영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마린보이’ 박태환처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하지만 수영은 대학까지만 할 계획이다. 이의섭은 “전 최종적으론 공부를 할 거에요. 책보는 게 재밌거든요. 또 수영은 나이 들면 못 하잖아요”라며 웃었다.울산=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들이 옛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화합을 위해 축구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관중이 2만5000명이 넘었어요. 국가대표 경기 뺨칠 정도의 인파였죠. 당시 정치권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축구를 통해 서로 화합하려는 노력도 했죠. 이젠 그런 낭만이 없네요.” 신중식 전 국회의원(75)은 이른바 ‘3선 개헌’ 직후인 1970년 여야 국회의원들이 축구 경기를 했을 때를 회고했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 야당인 신민당을 출입하고 있던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3선을 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자 야당은 그것을 저지하려고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거세게 싸우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싸우고 나면 저녁에 술 한잔 하면서 풀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여야가 합의해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김택수 민주공화당 원내총무가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신민당 원내총무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최형우 의원은 신민당 주장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승패는 의미가 없었고 경기 후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인근 술집으로 향해 거나하게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3선을 한 뒤 1972년 유신 체제로 들어가면서 여야 간의 골은 더 깊어졌다. 신 전 의원은 “여야 축구경기가 한 번으로 끝나 아쉬웠다. 정례화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여야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갔다. 어쨌든 땀 흘리며 몸을 부대끼는 축구는 화합의 도구로서는 최고였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1972년 제1회 신문·방송·통신 기자축구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그해 말레이시아 메르데카컵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신 전 의원은 대한축구협회 후원으로 축구단 명예대표로 함께 가 현장에서 KBS 해설까지 했다. 이를 인연으로 신 전 의원은 1975년부터 1988년까지 축구협회에서 국제이사와 부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한국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한국은 14일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 추첨에서 쿠웨이트, 레바논, 미얀마, 라오스와 함께 G조에 편성됐다. 태극전사들은 6월부터 ‘꿈의 무대’인 월드컵을 향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국민들이 열광할 ‘축구의 계절’이 다가온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올해 초에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취미 문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다. 이 조사는 지난해 10월 전국 만 13세 이상 17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응답자의 18%가 축구를 꼽아 1위에 올랐다. 2위는 등산(13%), 3위는 야구(10%), 4위는 수영(8%), 5위는 걷기(7%)가 차지했다. 사실 요즘 프로스포츠에선 야구의 인기가 축구를 앞서고 있다. 스포츠 전문 채널 시청률에서 프로야구는 1% 안팎을 오르내리지만 프로축구는 0.4% 안팎이다. 야구가 두 배 이상이다. 포털 사이트 문자 중계에서는 야구에 접속하는 팬의 수가 축구보다 5∼10배 많다. 그런데 국민들은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한단다. 왜 그럴까. 축구는 야구보다 손쉽게 경기를 할 수 있다. 야구처럼 많은 장비 없이도 공 하나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게 축구다. 이런 점이 축구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으로 꼽힌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에는 축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 鬪 “일본엔 져선 안돼”… 식민지 설움 축구로 달래 ▼1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를 돌이켜보면 축구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국민은 열광했다. 국민들은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때 대표팀의 무기력한 플레이를 보고 혹독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상대를 몰아붙이자 브라질 월드컵 때의 비난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팬들의 열광적인 박수가 쏟아졌다. 반응은 극과 극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축구대표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있었다. 그동안 한국대표팀을 맡았던 외국인 감독들은 한국인들이 축구대표팀에 보이는 열정에 대해 “놀랍다”거나 “특이하다”고 했다. 아시안컵에서 한국팀을 이끈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엄청나다”고 표현했다. 평생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온 이들의 눈에도 한국축구대표팀에 쏟아지는 열정은 너무도 뜨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 국가대표팀 간 축구 경기는 절대로 가볍게 치를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국민적인 ‘축구 영웅’도 몇 번의 패배로 ‘역적’이 된다. 축구에 대한 한국민의 감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대한민국 국민의 축구 유전자(DNA)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1954년 3월 한국에서는 스위스 월드컵 최종 예선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한국은 일본과 홈 앤드 어웨이로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을 치러야 했는데 당시 한국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 놈들이 한국 땅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일전의 국내 개최를 불허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에 가서 패하면 나라 망신”이라며 방문경기도 못하게 했다. 하지만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꿈꾸던 축구인들로서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두 경기를 다 하겠다고 했다. 정상희 한국대표팀 단장과 이유형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 23명은 “만약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는 약속을 한 뒤 서약서까지 쓰며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했다. 이 대통령도 축구인들의 이 같은 투혼에 방문경기까지 막진 않았다. 한국은 1차전에서 5-1, 2차전에서 2-2로 1승 1무를 기록해 사상 첫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에 일본은 져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이런 감정의 뿌리는 일제강점기로 올라간다. 1935년 일본축구협회는 이듬해 열리는 베를린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대표팀 강화의 일환으로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이때 조선 팀의 참가를 처음으로 허용했다. 1921년 창설된 이 대회는 일본 최고 권위의 축구대회로 지금도 일본의 FA(축구협회)컵 대회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축구협회는 선수를 선발해 조선축구단을 파견했다.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15회 대회에서 조선축구단은 일본 팀을 차례로 제압한 뒤 준결승에서 나고야를 6-0, 결승에서 일본문리대 팀을 6-1로 대파하고 우승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 내 교포는 물론이고 국내의 조선인들이 열광했다. 같은 해 열린 메이지신궁대회에서는 경성축구단이 결승에서 게이오대를 2-0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이후 메이지신궁대회에서는 1939년 함흥축구단이 게이오대를 3-0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에도 후용구락부를 6-0으로 제압하고 2연속 우승하는 등 조선 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조선인들은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1936년 이후 1942년까지 7년 동안 일제의 극심한 조선인 차별 속에서도 38명이 일본축구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일제강점기 조선 선수들이 이렇게 활약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경평축구’가 있다. 조선의 대표적인 도시인 경성(서울)과 평양엔 많은 축구단(‘구락부’)이 있었다. 구단끼리 치르는 친선경기엔 수많은 조선인이 몰려 열광적인 응원전을 펼쳤다. 양 도시는 서로 조선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강했고 축구에서도 라이벌 의식이 대단했다. 1929년 10월 휘문고보에서 열렸던 경평축구는 다양한 형식으로 1935년 4월까지 이어졌다. 경평축구는 두 지역 간의 라이벌 의식이 작용해 우리나라 축구 발전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경평축구를 통해 축구 실력은 물론이고 조선인의 다른 역량까지 높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축구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후 일본인과의 각종 축구 경기에서 물러설 수 없는 투혼을 발휘하게 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김정남 대한OB축구협회 회장(72)은 “한국 축구 발전의 원동력은 한일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의 숙적 일본은 꼭 이겨야 할 존재였다. 일본에 지면 국민들은 선수들을 심하게 비난했고 선수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고 회고했다. 40승 22무 14패. 역대 한일전에서 한국은 절대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한일전에서 어떤 각오로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대 한일전 중 손꼽히는 3경기가 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최종예선과 1985년 열린 1986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 그리고 1993년 열린 1994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이다. 1985년 홈 앤드 어웨이로 열린 한일전은 한국이나 일본에 더없이 중요한 일전이었다.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다시 월드컵 본선에 도전하고 있었고 일본은 사상 첫 월드컵 본선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 선수로 활약했던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실장의 회고다. “역대 한일전 중에서도 그렇게 관심을 모은 경기가 없었다. 한일 정기전을 해왔지만 그것은 그저 평가전 성격이었다. 월드컵이란 대사를 앞두고 열린 1985년의 한일전은 한국과 일본 국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관심사였다. 선수들도 총만 들지 않았지 전쟁과 다름없는 경기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한일전을 5차례 이상 치렀지만 그때처럼 간절하게 승리를 원한 적은 없었다.” 한국은 방문경기에서 2-1로 이기고 안방에서 1-0으로 이겨 32년 만의 월드컵 진출이란 쾌거를 이뤘다.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은 한국에는 ‘도하의 기적’, 일본에는 ‘도하의 비극’으로 끝났다. 당시 최종예선에 나선 한국 일본 북한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 팀 중 2팀이 본선에 진출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에 0-1로 지면서 한국은 1승 2무 1패를 기록해 자력 진출이 힘든 상황이 됐다. 한국은 마지막 북한과의 경기에서 2골 차 이상으로 이기고, 일본이 이라크와 비기거나 패해야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 마지막 경기인 한국과 북한, 일본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경기가 1993년 10월 28일 각각의 경기장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한국은 북한을 3-0으로 꺾었지만 아무도 승리의 환호성을 터뜨리지 못했다. 이겼으되 이긴 게 아닌 경기였다. 최종 성적 2승 2무 1패. 어깨를 늘어뜨린 채 선수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일본이 이라크에 2-1로 앞서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경기 종료 10초 전 이라크의 오만 자파르가 동점골을 기록한 것이다. 이로써 사우디아라비아가 조 1위, 한국이 조 2위로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 한국을 꺾으면서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기정사실로 여겼던 일본으로선 결국 4년 뒤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야 처음 월드컵 본선을 경험하게 됐다. 한국과 일본의 경쟁의식은 일본 축구 발전에도 기여했다. 일본은 한국에 계속 패하자 1972년부터 한일 정기전을 열자는 제안을 해왔다. 1991년까지 15차례의 정기전을 치렀다. 이를 통해 일본 축구계도 다양한 발전방향을 모색했다. 한동안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하던 한국이 1983년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시킨 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오르자 일본도 1993년 프로축구 J리그를 출범시켰다. 한국에 10년이나 뒤졌다. 하지만 일본은 체계적으로 J리그를 준비했고 꾸준히 축구 수준을 성장시켰다. 일본은 1992년 돌연 한일 정기전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자신들은 세계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에 머물지 않겠다는 게 한일 정기전 취소의 이유였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저력을 인정한 때문인지 일본은 최근 다시 한일 정기전을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한국은 한일 정기전 부활의 여러 측면을 고려 중이며 아직 구체적인 답을 주지 않고 있다. ▼ 魂 막오른 러 월드컵 2차예선… 서서히 뛰는 가슴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의 이면에는 일본에 질 수 없다는 한국의 의지가 들어 있다. 일본이 일찌감치 월드컵 개최를 선언하고 국제무대에서 유치 활동을 벌이자 당시 대한체육회 고문이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일본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것 없지”라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주앙 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일본을 전폭적으로 밀었지만 한국이 펼치는 열정적인 유치 노력 속에 결국 한일 공동 개최로 결론이 났다. FIFA가 내세운 공식적인 공동개최의 의미는 ‘영원한 라이벌 간의 화해’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한국과 일본 축구의 경쟁의식이 숨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고 결국 일본이 16강에서 탈락할 때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을 무너뜨리며 꿈같은 ‘4강 신화’를 창출했다. 한일전은 숱한 스타와 비난의 대상을 동시에 만들었다. ‘차붐’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은 1975년 말레이시아 메르데카컵에서 최초로 한일전 해트트릭을 기록해 영웅으로 떠올랐다. 1985년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 방문경기에서 골을 터뜨려 2-1 승리를 주도한 정용환과 이태호, 안방에서 결승골을 터뜨려 1-0 승리를 견인한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도 한일전이 낳은 스타였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 8강에서 2골을 터뜨려 3-2 승리를 이끈 ‘황새’ 황선홍, 1997년 ‘도쿄대첩’ 결승골을 넣은 이민성, 2010년 일본을 상대로 골을 넣고 보란 듯이 유유하게 상대팀 응원석 앞을 거닐었던 ‘산책 세리머니’의 박지성, 2003년 도쿄에서 웃옷을 벗어 문신을 보여주는 세리머니를 한 안정환도 한일전 스타로 꼽힌다. 함흥철 전 대표팀 감독은 1978년 메르데카컵과 킹스컵, 방콕 아시아경기 3관왕을 이끌었지만 이듬해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기전에서 1-2로 패해 일순간 사령탑에서 물러나야 했다.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일본에 0-1로 진 김호 전 대표팀 감독도 비난의 표적이었다. ‘도하의 기적’이 없었다면 김 감독은 그대로 경질됐을 분위기였다.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은 2012년 8월 일본 삿포로에서 0-3으로 완패한 게 빌미가 돼 결국 사령탑에서 쫓겨났다. 한일전을 통해 싹이 튼 ‘축구 DNA’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다른 국제 축구대회에도 관심을 갖게 했다. 한일전만큼은 아니지만 1970, 1980년대 메르데카컵과 킹스컵도 대한민국 국민을 열광하게 한 대회다. 이 대회들은 나중에 한국이 만든 박스컵과 함께 국내에서 ‘아시아 3대 축구 이벤트’로 여겨졌다. 우승하면 김포공항에서 선수단 환영식을 한 뒤 카퍼레이드까지 했다. 청와대 방문으로도 이어졌다. 이런 국제 축구대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세계 최고의 축구무대인 월드컵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열망은 종종 분노로 뒤바뀌어 나타나기도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이 네덜란드에 0-5로 참패하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차범근 대표팀 감독이 대회 도중 현장에서 경질됐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감독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극심한 비난의 표적이 됐다. 프랭클린 포어는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2004년)라는 책에서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욕망과 야만의 전쟁터”라고 말했다. 이글거리는 눈과 사나운 태클, 땀과 피가 튀는 몸싸움이 축구의 매력이지만 이런 모습 자체가 인간세상의 소름 끼치는 본질이라는 얘기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본거지로 하는 셀틱과 레인저스 구단의 팬들은 경기장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의 노래를 외친다. 여기에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 갈등에 오랜 지역감정이 중첩돼 있다. 도시국가였던 이탈리아에서 축구장은 그 자체가 싸움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격렬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맞붙는 ‘엘 클라시코’는 카탈루냐와 카스티야 지역의 대리전쟁이라고까지 불린다. 월드컵 축구가 지구촌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스포츠 이벤트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국 국민들은 자국 팀을 응원하며 한껏 내셔널리즘(민족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인생 및 세상사의 각축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사가 투영되고 있는 축구에는 이렇듯 지역별 문화별로 다양한 의미와 현상이 얽혀 있다. 오랫동안 상관관계 속에 놓인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서도 축구는 ‘축구’일 수만은 없었다. 이는 비단 한일전에서뿐 아니라 남북 축구 대결에서도 그랬다. 더 나아가 축구대표팀의 많은 경기에서 한국 팬들은 축구 이상의 것을 보아온 것은 아닐까.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6월부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시작한다. 팬들의 가슴도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다.양종구 yjongk@donga.com·이승건 기자}

스포츠는 라이벌을 통해 성장한다. 스포츠에서의 라이벌 구도는 흔히 지역성을 토대로 한다. 강준호 서울대 교수(스포츠경영)와 이용재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 김유겸 플로리다주립대 교수는 2009년 ‘지역사회 정체성과 상대적 박탈감이 스포츠팀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서 특정 지역의 주민이 다른 지역 주민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면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스포츠 팀을 더 응원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국내 프로야구는 1982년 충청 연고의 OB 베어스(두산), 서울 연고의 MBC 청룡(LG), 호남의 해태 타이거즈, 대구 경북의 삼성 라이온즈, 인천 경기 강원의 삼미 슈퍼스타즈, 부산 경남의 롯데 자이언츠로 출범했다. 당시 지역 야구 명문인 부산고와 경남고 출신들은 롯데로, 광주일고와 군산상고 출신은 해태, 경북고는 삼성, 경기고와 서울고 휘문고 출신들은 MBC 청룡에 입단했다. 각 지역 출신들이 팀의 주축이 되면서 팀별로 자연스럽게 지역색을 갖추었다.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호남지역 사람들은 당시 잘나가던 해태에 열광했다. 영남 사람들은 해태를 시기하며 롯데나 삼성에 더 집착하게 됐다. 이런 지역감정은 소속 지역 팀에 대한 충성도를 높였고 오늘의 프로야구 인기의 토대가 되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83년 프로 2팀(유공, 할렐루야)과 실업 3팀(대우, 포항제철, 국민은행)으로 시작한 프로축구도 지역연고제 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각 구단이 자주 연고지를 옮겨 축구팬들의 연고지 의식이 희박해졌다. 또 구단들이 일정한 지역에서 꾸준하게 경기를 치르지 못한 것도 축구에서의 지역연고제 실패 원인이다. 초창기 프로축구단들은 자신의 연고지 내 경기장 사정으로 다른 대도시에 가서 경기를 치르기 일쑤였다. 1995년 전북 다이노스와 전남 드래곤즈 창단 이전까지는 호남을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팀도 없었다. 전북과 전남의 창단을 계기로 프로축구도 본격적인 지역대결 구도를 갖추었지만 이미 각 지역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프로야구의 인기를 따라갈 수 없었다. 1996년부터 가장 큰 프로 스포츠 시장인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이 없게 한 것도 프로축구 발전에 저해 요인이 됐다. 전용 구장을 짓는 구단에 서울 연고 우선권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구단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을 더이상 비워 두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결국 이전 서울 연고팀이었던 LG가 2004년 안양에서 다시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할 때까지 서울은 ‘프로축구 팀 없는 수도’로 남아 있었다. 가장 큰 시장인 서울을 8년간이나 비워 둔 것이다. 야구와 축구의 종목 특성이 팬들을 야구장으로 몰리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 야구는 이닝과 투수 교체 등으로 쉬는 시간이 많다. 잠깐 한눈을 팔아도 경기의 맥을 금방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치맥’(치킨과 맥주)과 피자 등을 여유 있게 먹으며 즐길 수도 있다. 반면 축구는 중간에 15분만 쉴 뿐 전후반 45분씩 90분을 집중해야 한다. 잠깐 딴짓하다 골 넣는 순간을 놓치면 끝이다. 최근 축구에서도 ‘치맥석’이 늘고 있지만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치맥을 제대로 즐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종목 특성은 방송 중계의 호불호(好不好)로도 이어진다. 야구는 쉬는 시간이 많아 광고할 시간이 많다. 반면 축구는 광고할 시간이 적다. 수익을 추구하는 방송사들로서는 축구보다 야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일단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다. 하지만 방송사 입장에서는 축구 중계보다는 야구 중계가 광고 수익을 올리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일본에 있으면서도 선배들의 활약을 지켜봤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그 선배들이 날 무서워하지 않을까?” 윤정환 감독(42)이 울산을 맡은 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그 선배들은 황선홍 포항 감독(47)과 서정원 수원 감독(45), 최용수 서울 감독(42)이었다. 현역시절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선배들과 어떤 경쟁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황 감독은 2013년 K리그와 FA컵의 더블 우승을 달성했고 최 감독은 2012년 K리그를 평정했다. 윤 감독은 지난달 8일 서울과의 개막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며 최 감독에게 어퍼컷을 한방 날렸다. 일주일 뒤엔 포항을 4-2로 꺾으며 황 감독에게도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 윤 감독이 이끄는 울산은 3승 2무(승점 11)의 무패행진을 달리며 전북(승점 13)에 이어 K리그 클래식 2위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윤 감독은 15일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또 다른 선배 서 감독을 만난다. 서 감독은 시즌 개막전에선 1패를 안았지만 이후 3승 1무의 상승세를 달리고 있어 둘의 맞대결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황선홍 감독도 노상래 전남 감독과 K리그 클래식에서 첫 맞대결을 펼친다. 8위 포항은 2승 3패로 갈 길이 바쁘고 5위 전남도 1승 5무로 승리가 절실하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축구를 좋아하는 의사들이 만든 아마추어 축구단 ‘FC 메디컬’ 고문인 안용진 원장(57)은 ‘축구선수’로 불릴 정도로 축구에 빠져 산다. 안 원장은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2006년부터는 국내 의사들과 함께 ‘의사월드컵’에도 출전하고 있다. N 안데르센과 B 월드는 1992년 ‘부모와 친구들이 청소년기 아이들의 신체활동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유럽 10개국 4만 명을 조사한 결과 부모와 형제, 친구들과 스포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도 스포츠를 계속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학)는 “스포츠산업이 발전하려면 스포츠 소비자를 많이 양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맘껏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도 최근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학생들의 체력을 기르고 학생들이 건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스포츠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리그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학교스포츠클럽 전국대회에는 초중고교 1573개 팀에서 1만9000여 명이 출전했다. 10월부터 두 달 동안 축구 농구 배구 등 19개 종목의 결승리그가 전국에서 열렸다. 3월부터 시작된 지역 예선 리그에는 19만4000여 개 팀 42만여 명이 참가했다. 2013년보다 참가자가 10만 명이 늘었지만 참여율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626만 명의 초중고교생 중 7% 정도만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과 게임 등에 스포츠가 밀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중고교와 대학을 다닌 김원섭 2015프레지던츠컵 총괄기획 담당은 “미국이 스포츠 강국인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국민이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즐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방과후 동아리나 클럽을 통한 스포츠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스포츠 팀에서 활동한 경력은 상급 학교 진학 때 중요한 평가자료가 된다”고 덧붙였다. 스포츠를 통해 리더십과 협동심, 희생정신, 철저한 시간관리 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윤양수 문체부 스포츠산업과 과장은 “스포츠산업 정책의 핵심은 스포츠 소비자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을 활성화시켜 스포츠 참여자와 프로 스포츠 관람자를 많이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서 탁구를 즐기고 늘품건강체조를 배운 뒤 “학생들의 건강 증진은 물론이고 의료비와 복지비를 낮추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즐기는 선순환적인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스포츠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할 역할은 막힌 곳을 뚫어주고 지원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다.”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54)은 스포츠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솔직히 스포츠산업은 지금 씨를 뿌리는 단계이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닻을 올린 뒤 30년이 지났지만 스포츠를 산업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정부는 스포츠산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사람으로 치면 동맥경화에 걸린 몸의 혈관을 잘 풀어 피가 곳곳으로 잘 돌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양대 예술체육대학장이었던 김 차관은 2013년 10월 문체부 차관이 된 뒤 “스포츠산업이 신성장동력이다”며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웨스턴일리노이대에서 스포츠경영학 석사학위를, 뉴멕시코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문체부 내에 스포츠산업과를 부활시켰다. 지난해 12월에는 5년 동안 총 2740억 원을 투자하는 ‘스포츠산업 중장기 발전계획’도 발표했다. 2014년 195억 원이었던 스포츠산업 예산이 올해 6000억 원으로 늘어난 것도 김 차관이 노력한 결과다. “문체부는 최근 5년간 매년 3300억 원 이상을 콘텐츠산업에 투자했다. 그 결과 2008년 63조7000억 원이던 관련 매출액이 2013년 91조5000억 원으로 늘었다. 관광산업에도 매년 2800억 원 이상을 투입한 결과 2013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1200만 명(2008년 689만 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스포츠산업에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 김 차관은 “스포츠는 산업으로서의 파급 효과가 아주 크다. 그동안 산뜻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찾으면 좋은 사업 아이템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어렸을 때부터 평생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교에서의 스포츠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학생들의 스포츠클럽 활동을 입시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학교에서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포츠클럽을 장려하는 학교에 라커룸과 샤워시설을 지어주는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