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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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2-24~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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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79명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쉽고 친절한 전시 광주비엔날레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의 힘에 관심 있는 작가를 한 자리에 모으고 싶었습니다.”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의 예술 감독을 맡은 이숙경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54)는 5일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7일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는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에서 차용한 주제로 전 세계 79명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이 감독은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영국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제 경험과 관점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적을 떠나 예술가 개개인 예술세계의 가치를 조명하는 테이트 미술관의 연구 기관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을 이끌었던 경험이 전시에 녹아들어 있었다. ● 광주에서 보는 테이트 큐레이팅이숙경 감독의 광주비엔날레는 쉽고 친절하되, 원하는 사람에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테이트 미술관의 큐레이팅을 연상케 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작품으로 압도하는 통상의 비엔날레와 달리 작품 수를 줄이고 가벽도 최소화해 넓은 동선을 확보했다.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보이는 전시 안내문도 큼직한 활자와 짧은 분량이 눈에 띄었다. 큐레이터의 의도를 눌러 담은 빼곡한 줄글이 아니라 간결하게 필요한 내용만 담았다. 전시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관객은 상세한 설명을 담은 포켓북인 ‘가이드북’을, 심층적인 분석은 도록을 참조하면 된다.자유롭게 보고 싶다면 텍스트의 방해 없이 즐기되, 궁금한 사람에게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테이트 미술관은 벽면의 작품 설명 캡션과 월텍스트(전시소개글)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시각적으로 유사성이 있는 작품을 가까이 배치해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도 테이트 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은은한 광륜’ 전시장에서 말레이시아 작가 그룹 팡록 술랍의 목판화는 한국의 대표적 판화 작가 오윤(1946~1986)의 작품이 앞뒤로 전시됐고, 여성들의 일상 공간을 다룬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출신 작가 파라 알 카시미와 한국의 주거 공간과 재개발을 다룬 유지원의 설치 작품이 함께 전시됐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유와 연대로전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였다. 전시 구성도 지역적 주제인 광주 정신(은은한 광륜)에서 탈근대주의(조상의 목소리), 탈식민주의(일시적 주권), 생태·환경(행성의 시간들) 등 큰 주제로 점차 확장된다.이 감독은 “모든 것은 구체적 이야기에서 시작되며, 그러한 목소리가 더 진정성이 있고 멀리 퍼질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각자가 처한 개별적인 상황을 깊이 파고들면, 그것이 사회의 중요한 문제나 지구적 이슈까지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광주 놀이패 ‘신명’과 협업한 알리자 니센바움의 회화, 시각 장애 학생과 함께한 엄정순 작가의 설치 작품 ‘코없는 코끼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할머니에게 배운 벽화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막가보 헬렌 세비디의 회화 등은 소소한 주변에 관심을 갖고 치유와 연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전시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 아트폴리곤, 무각사, 예술공간 집 등 총 5개의 장소에서 펼쳐진다. 7월 9일까지. 5000~1만6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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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우환, 12년만에 개인전

    이우환 작가(87)가 4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 K2에서 12년 만의 국내 개인전 ‘Lee Ufan’을 열고 신작을 공개했다. 이우환의 작품은 2015년 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꾸준히 전시돼 왔지만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2011년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가는 신작 ‘관계항―키스’를 포함해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선보인다. ‘관계항―키스’는 돌과 철 등 단순한 재료를 시적으로 배치하는 전형적인 이우환 스타일의 설치 작품이다. 2개의 돌이 포개어져 접점을 만들고, ‘키스’라는 부제를 붙여 마치 두 돌이 사람인 듯한 의미도 부여했다. 돌 주변을 쇠사슬이 둘러싸 강하게 연결시키려는 듯한 분위기도 자아낸다. 이우환 작가는 최근 “가상현실은 실체나 외부가 없는 닫힌 세계”라며 “그러한 세계를 넘으려면 만남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어, 이런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려는 듯하다. 1996년 작품을 새롭게 만든 ‘관계항―사운드 실린더’는 강철로 만든 원통에 자연석이 살포시 기댄 형태를 하고 있다. 원통에 뚫린 5개의 구멍에서 자연의 소리와 에밀레종 종소리가 공명하듯 흘러나온다. ‘관계항’ 연작은 이우환이 일본에서 전위적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주도했던 1968년부터 꾸준히 이어온 대표작이다. 국제갤러리 K2, K3관에서는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1898∼1976)의 개인전도 동시에 열린다. 1940∼1970년대 콜더가 만든 모빌 조각과 구아슈(물감의 일종)로 그린 종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변화하는 날씨가 자아내는 감각을 표현한 ‘록스버리 프런트’(1965년), 콜더가 인도를 여행했을 때 만든 작품 ‘구아바’(1955년) 등 비교적 큰 모빌 작품도 볼 수 있다. 구아슈 회화 작품들은 콜더의 자유로운 면모를 느끼게 해준다. 4일 전시장에서 만난 콜더의 외손자 알렉산더 로어 콜더재단 대표는 “에너지를 압축하는 조각 작업을 할 때와 달리 회화 작업에서 콜더는 에너지를 발산했다”며 “조각을 하다 지쳤을 때 회화에서 여유와 자유를 찾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전시 모두 5월 28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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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적 바흐-드뷔시에 빠진 사카모토… 여러 장르 융합한 독창적 음악 만들어

    아시아인 최초로 영화 ‘마지막 황제’(1987년)로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지난달 28일 71세로 별세한 그가 세계에 이름을 알린 건 ‘마지막 황제’를 비롯해 ‘마지막 사랑’(1990년), ‘리틀 부다’(1993년) 등 영화음악을 통해서다.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남한산성’(2017년)의 음악도 그가 맡았다. 도쿄예술대 작곡과를 나온 그는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3인조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전자음악에 클래식과 현대음악 요소를 가미하며 일본 팝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YMO의 대표곡 ‘Behind the Mask’는 마이클 잭슨과 에릭 클랩턴이 리메이크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작가 음악평론가는 “사카모토는 여러 음악적 요소를 통합하고 재해석하며 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사카모토와 자주 협업했던 음악가 카스텐 니콜라이는 “사카모토는 여러 장르를 융합한 독창적 스타일이 음악의 미래임을 알았다”며 “그를 이끈 것은 호기심”이라고 2021년 인터뷰에서 밝혔다. 도쿄에서 태어난 사카모토는 3세부터 피아노를 치며 작곡을 시작했다. 바흐와 드뷔시의 음악에 심취했고, 11세에는 존 케이지의 실험 음악에 빠졌다. 연주 시간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케이지의 곡 ‘4분33초’를 좋아해 스스로를 “4분33초가 작곡된 해(1952년)에 태어났다”고 말하곤 했다. 사카모토의 또 다른 대표곡은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년)의 주제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다.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출연을 제안받은 사카모토는 영화음악도 함께 맡는 조건으로 연기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Back to basics’ 등 솔로 앨범을 내며 클래식에 바탕을 둔 음악으로 돌아갔다. 이때 발표한 ‘에너지 플로’는 연주곡으로는 처음으로 1999년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를 겪는 일본의 ‘잃어버린 시대’를 위로한 피아노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구인두암 진단을 받았고 2020년 암이 재발했지만 음악을 만들고, 설치미술과 결합한 오페라 ‘TIME’도 제작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2021, 2022년 제작한 앨범 ‘12’는 소리와 여백이 교차하는 미니멀리즘한 음악을 담았다. 유작이 된 앨범을 발표하며 그는 말했다. “음은 더 적게, 공명은 더 많게 하고 싶었다. 여백은 침묵이 아니라 소리가 이어지는 공간이다. 소리로 샤워를 하고 싶었다. 나의 지친 육신과 영혼에 작은 치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음악이 들리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바흐가 좋겠다. 거의 평생 들어왔으니까.” 한편 그의 별세 소식에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머나먼 여행 평안하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배철수도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추모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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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 바랐던 20세기 미국과 에드워드 호퍼[영감 한 스푼]

    미술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중 이달 20일부터 열리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국내 첫 개인전을 기다리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 사진 몇 장을 미리 공개해 그중 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이 작품은 1914년 미국 작가 호퍼가 서른두 살의 나이에 프랑스에서 그린 것입니다. 한글 제목은 ‘푸른 저녁’인데, 원제목은 ‘Soir Bleu’, 프랑스어입니다. 어두운 옷차림을 한 남성들 가운데 분칠을 한 피에로와 여성이 눈길을 사로잡죠. 이 그림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주목받지 못한 그림이 그림은 제목만 독특한 것이 아닙니다. 크기도 높이 91.8cm에 폭 182.7cm로 젊은 작가인 호퍼가 당시 그렸던 것 중 가장 큰 축에 속합니다. 그가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그림임을 알 수 있죠. 이 무렵 호퍼는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앞서가는 미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온 뒤였습니다. 호퍼가 여행지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프랑스의 사순절 축제인 ‘미카렘’에서 피에로와 얼굴을 하얗게 칠한 여자들을 봤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즉, 이 그림은 그때 본 풍경을 담은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호퍼는 이 그림을 1915년 그룹전에 출품한 뒤 평생 다시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때 함께 전시한 소품 ‘뉴욕 코너’가 오히려 미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야심작인 ‘푸른 저녁’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 19세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의 영향이 짙게 보이는 ‘푸른 저녁’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의 아류로 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호퍼는 이 그림에 한 가지 특징은 남겨둡니다. 이 그림에는 호퍼의 그림답지 않게 무려 7명의 사람이 등장하죠. 그런데 누구도 서로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바로 도시 속 사람들이 각자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입니다.익숙한 일상을 그리다‘푸른 저녁’을 그릴 무렵 호퍼는 수년 동안 그림을 팔지 못해 일러스트와 포스터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주로 뉴욕의 거리 풍경을 묘사한 판화나 영화 포스터, 광고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포스터를 그려 상을 받기도 합니다. 호퍼가 프랑스어 제목을 붙인 ‘푸른 저녁’이 유럽에 대한 선망이나 동경을 담았다면, 그 후부터 호퍼의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인 일상에 더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유명한 호퍼의 그림인 ‘밤의 사람들(Nighthawks)’은 물론이고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년) 같은 작품도 미국인들이 사는 평범한 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호퍼는 이렇게 미국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1931년에는 휘트니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그의 작품을 수천 달러를 주고 구매하기 시작했고, 1933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성공 가도에 오르게 됩니다. 40대부터 주목받고 그 후로도 미국 미술관의 사랑을 받았으니, 호퍼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산 예술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지극히 미국적인 고독사실 호퍼가 활발하게 작업을 했던 1930년대 유럽 예술가들은 다다이즘에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초현실주의 예술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현실 풍경을 빛의 효과에 집중해 그리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 인상파 작가들이 너무나도 잘 보여준 것이었죠. 이 무렵 회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추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호퍼는 프랑스를 방문한 소감에 대해 “피카소에 대해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고, 렘브란트가 좋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호퍼가 파리에 머물 때 이미 피카소는 입체파 예술로 세계 미술계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퍼는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호퍼는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을 꼽곤 했습니다. 모든 개인이 내면의 소리에 충실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에머슨의 저서 ‘자기 신뢰’는 미국의 사상적 뿌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유럽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꿈꾸었던 미국의 상황과 맞아떨어졌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내면을 소중히 여기는 에머슨의 사상은 호퍼의 그림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호퍼 역시 주변 도시의 풍경 속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사람들을 그렸기 때문이죠. 이런 점에서 보면 호퍼는 미국 미술사의 중요한 작가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인들이 원했던 바를 그림에 충실하게 담고 있으니까요.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국의 박수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의 ‘푸른 저녁’이 다시 빛을 보지 못했던 이유. 미국이 제1·2차 세계대전 등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며 조금씩 유럽에 대한 동경을 거둬들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국제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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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워드 호퍼의 피에로, 왜 한 번만 전시됐을까?[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미술을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 중 4월 있을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기다리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 사진 몇 장을 미리 공개해 그중 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이 작품은 1914년,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32살일 때 프랑스에서 그린 것입니다.한글 제목은 ‘푸른 저녁’인데, 원제목은 ‘Soir Bleu’,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입니다.어두운 옷차림을 한 남성들 가운데 분칠을 한 피에로와 여성이 눈길을 사로잡죠. 이 그림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주목받지 못한 그림이 그림은 제목만 독특한 것이 아닙니다. 사이즈도 높이 91.8cm에 폭 182.7cm로 젊은 작가인 호퍼가 이 시기 그렸던 것 중 가장 큰 축에 속합니다.그가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그림임을 알 수 있죠.이 무렵 호퍼는 당시 예술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앞서가는 미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온 뒤였습니다.여행에서 호퍼는 프랑스의 사순절 축제인 ‘미카렘’에서 피에로와 얼굴을 하얗게 칠한 여자들을 봤다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씁니다. 즉 이 그림은 그때 본 풍경을 담은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그런데 호퍼는 이 그림을 1915년 그룹전에 출품한 뒤 평생 다시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함께 전시한 소품 ‘뉴욕 코너’가 오히려 미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야심작인 ‘푸른 저녁’은 별 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19세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영향이 짙게 보이는 ‘푸른 저녁’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의 아류로 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호퍼는 이 그림에서 한 가지 특징은 남겨둡니다.이 그림에는 호퍼 그림답지 않게 무려 7명의 사람이 등장하죠. 그런데 누구도 서로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바로 도시 속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입니다.익숙한 일상을 그리다‘푸른 저녁’을 그릴 무렵 호퍼는 수년 동안 그림을 팔지 못해 일러스트와 포스터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특히 뉴욕의 거리 풍경을 묘사한 판화나 영화 포스터, 광고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포스터를 그려 상을 받기도 합니다.호퍼가 프랑스어 제목을 붙인 ‘푸른 저녁’이 유럽에 대한 선망이나 동경을 담았다면, 그 후부터 호퍼의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인 일상에 더 집중하기 시작합니다.가장 유명한 호퍼의 그림인 ‘밤의 사람들’(Nighthakws)은 물론,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같은 작품도 미국인들이 사는 평범한 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호퍼는 이렇게 미국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인정받기 시작합니다.1931년에는 휘트니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그의 작품을 수천 달러를 주고 구매하기 시작했고, 1933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성공 가도에 오르게 됩니다.40대부터 주목을 받고 그 후로도 미국 미술관의 사랑을 받았으니, 호퍼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산 예술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지극히 미국적인 고독사실 호퍼가 활발하게 작업을 했던 1930년대 유럽 예술가들은 다다이즘에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초현실주의 예술에 심취해 있었습니다.현실의 풍경을 빛의 효과로 집중해 그리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 인상파 작가들이 너무나도 잘 보여준 것이었죠. 이 무렵 회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추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그런데 호퍼는 프랑스를 방문한 소감에 대해 “피카소에 대해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고, 램브란트가 좋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호퍼가 파리에 머물 때 이미 피카소는 입체파 예술로 세계 미술계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퍼는 이러한 흐름의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한편 호퍼는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을 꼽곤 했습니다.에머슨은 모든 개인이 내면의 소리에 충실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저서 ‘자기신뢰’로 미국의 사상적 뿌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유럽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꿈꾸었던 미국의 상황과 맞아떨어졌죠.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내면을 소중히 여기는 에머슨의 사상은 호퍼의 그림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호퍼 역시 주변 도시의 풍경 속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사람들을 그렸기 때문이죠.이런 점에서 보면 호퍼는 미국 미술사의 중요한 작가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인들이 원했던 바를 그림이 충실하게 담고 있으니까요.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국의 박수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그의 ‘푸른 저녁’이 다시 빛을 보지 못했던 이유. 미국이 제1·2차 세계대전 등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며 조금씩 유럽에 대한 동경을 거둬들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구독자 의견(지난주 원계홍 회고전에 관한 의견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작가였다면 선입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세상과 고립되었던 작가의 작품들인데도 순수하게 작품 그 자체에 끌리고 감동한 분들이 있다는 게 놀랍고도 고무적입니다. 그분들이 작품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신 것도 특별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온갖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따뜻하고, 예술이 서로 모르는 분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소통하게 했네요. 말을 걸어오는 그림들입니다.◇ 정말 디지털 시대 이전, 기업들의 달력…. 우리 생활에 얼마나 문화 수준을 올려준 매개체였는지 몰라요. 크라운제과에서 원계홍 작가의 작품이 실렸었다니, 그 시대 기획자의 남다른 안목과 결단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어릴 때만 해도 한독약품 명화 달력처럼 소중한 갤러리도 없었거니와 삼성 달력만큼 한국의 미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제작하는 곳도 없었는데, 요즘은 통 접하기가 어렵네요! 요즘 집에 달력 건 집 거의 없잖아요? ㅎㅎ◇ 무명 화가의 그림을 통해 두 사람이 엮이게 되고 그 이야기가 저에게까지 닿은 것이 영화 줄거리 같아 흥미롭습니다. 그림이 조용하고 어딘가 쓸쓸해서 좋네요.◇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살아생전에 그렇게 인정받고 위로받았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많은 예술가들의 때는 그렇게 일찍 찾아오지 않더라구요. 그나마 두 분 덕에 뒤늦게라도 빛을 보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 이 전시를 다녀오고 나서 한참 마음이 애잔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올바른 예술의 길을 걸어온 분이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기하학적인 구도 뛰어난 색감, 거기에 역사성까지 가미되어 있는 작품이 너무 훌륭한 작품입니다. 훌륭한 컬렉터님들을 만나 이제야 제대로 된 조명을 받을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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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세계적 건축가 안도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청춘”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사진)가 1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안도 다다오―청춘’ 개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안도는 31일 뮤지엄 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팬들에게 “10대, 20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청춘”이라며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기를 당부했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한 뒤 1969년 건축연구소를 설립했다. 초기엔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 비좁은 부지나 빠듯한 예산의 프로젝트를 도맡았지만, 역경을 극복하며 세계적 건축가로 거듭났다. 이번 전시에선 1969년부터 2020년까지 그의 대표작 250점이 소개된다. 미술관 외부에는 안도가 만든 푸른 사과 형태의 조각 ‘청춘’이 있다.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미국 시인 새뮤얼 울먼의 시 ‘청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풋사과처럼 푸르고 무르익지 않은 도전정신을 담았다. 5월 개관 10주년을 맞는 뮤지엄 산 역시 안도가 건축 설계를 담당한 공간이다. 그는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1928∼2019)으로부터 설계 의뢰를 받았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그분이 세계에 없는 것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러나 저는 이렇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오겠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고문께서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것은 본인들의 역할이라 했죠. 지금은 이곳에 연간 20만 명이 찾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 “한국과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잘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교류를 이어 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안도는 지난달 17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와 일본 도쿄의 한 식당에서 오찬을 갖기도 했다. 전시는 7월 30일까지. 1만4000∼2만2000원.원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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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간 무너뜨리는 ‘세뇌’의 작동법

    6·25전쟁 때 중국 공산군에 포로로 잡혔던 미국 해군 대령 프랭크 H 슈와블은 미국이 세균전을 펼쳤다는 내용이 담긴 자백 문건에 서명했다. 이 문건에는 책임자의 이름, 전략 회의, 작전 내용 등이 상세하게 기재돼 있었다. 이 문건은 곧바로 선전에 이용됐다. 본국으로 송환된 후 군사법정에 서게 된 슈와블 대령은 자백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말은 내 것이지만, 생각은 적들의 것이었다. 거짓을 어떻게 내 입으로 사실처럼 말했는가. 나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슈와블 대령은 어떻게 생각을 지배당하고 거짓 자백까지 하게 된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나치의 폭력을 겪은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의문이다. 1903년 태어난 저자는 나치가 점령한 네덜란드에서 그들의 정신적 고문 기술을 목격했다. 1942년 영국으로 탈출한 그는 연합군의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더 많은 피해자들을 만났다. 이 경험을 확장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세뇌가 작용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책에 담았다. 통념과는 달리 신체적 고문보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등 정신적 고문이 더 치명적이다. 정신이 무너지면 동물처럼 행동할 수도 있고,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고문하는 사람도 존엄을 잃는다. 이를 저자는 ‘정신적 살해(menticide)’라고 말한다. 평소에는 통제했던 갈등이 ‘정신적 살해’의 압박 앞에서는 쉽게 무너진다. 따라서 세뇌를 이기려면 평소 내면의 작은 갈등도 스스로 극복하려는 ‘생각의 노동’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평소에도 단단히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1956년 출간된 책이지만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중매체가 사람들로부터 주체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빼앗는다는 지적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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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영아티스트 1부’ 신예 3명 작품 선보여

    사각형 픽셀이 빼곡한 스마트폰 화면을 찍은 사진 위에 돼지머리 사진이 살짝 붙어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찍은 사진은 컬러로 단단한 판 위에 고정돼 있는 반면에 돼지머리 사진은 흑백 사진으로 인화지 그대로 전시돼 아날로그 분위기가 강조된다. 같은 사안을 직접 체험하느냐, 매체로 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감각을 표현한 정영호 작가의 전시 ‘더블 레티나’ 속 작품들이다. 2004년부터 공모를 통해 젊은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를 열어 온 금호미술관의 ‘2023 금호영아티스트 1부’가 열리고 있다. 공모로 선정된 작가 6명 중 김원진, 정영호, 조재의 작품을 먼저 선보인다. 미술관 1층부터 3층까지 각 층에서 이들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김원진 작가는 과거를 회상하며 든 느낌을 그림으로 그린 뒤, 이 그림을 얇고 길게 잘라 교차해 이어 붙였다. ‘무용한 무용’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그는 시간이 선처럼 흐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그림처럼 앞뒤로 움직이며 제자리에서 도는 건 아닌지 되묻는다. 조재 작가의 ‘누락 번역’은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이미지가 확산, 소멸, 재생산되는 과정을 탐구했다. 재난에 관한 특정한 이미지가 다른 것보다 더 과도하게 퍼져 나가는 현상을 풍선으로 표현했다. 다음 달 23일까지. 2000∼4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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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 억압했지만 내 일부였던 공간들… 끌어안고 뜯어내다

    한 여자가 오래된 집의 벽을 덮은 껍질을 뜯어낸다. 라텍스로 만든 껍질은 풀과 거즈를 바른 벽에 밀착돼 여자는 안간힘을 쓰며 이를 떼어낸다. 벽의 살갗이 떨어져 나가는 듯 삐걱대는 소리도 들린다. 그녀는 스위스 출신 예술가 하이디 부허(1926∼1993·사진)다. 아버지 서재와 조상 대대로 살던 집, 감옥과 병원에 껍질인 ‘피부’를 붙이고 뜯어낸 흔적으로 만든 그녀의 작품들이 한국을 찾았다. 부허의 작품과 영상 기록 등 130여 점을 선보이는 아시아 첫 회고전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가 28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했다. ● 억압하는 공간의 껍질들부허는 1970, 80년대 공간에 풀을 바른 뒤 라텍스를 덮은 다음, 그것을 떼어내는 스키닝(skinning) 연작을 했다. 떼어낸 라텍스는 공간 형태 그대로 전시돼 허공에 공간의 껍질이 떠 있는 듯한 모양을 연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진찰실, 요양원 등의 벽이나 문의 형태는 물론이고 벽에 묻은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부허는 공간의 ‘피부’라고 표현했다. 흰색, 베이지색이었던 작품은 차츰 누렇게 변해 시간의 흔적도 담겼다. 부허가 아버지의 서재, 선조들의 집, 벨뷰 요양원에서 라텍스를 뜯어내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부허가 초기에 선택한 공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재였다. ‘신사들의 서재 스키닝’(1978년)은 서재 바닥의 껍질을 뜯어낸 뒤 46개 조각으로 자른 작품이다. 부허의 아들 인디고는 27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 작품에 대해 “(어머니가) 마룻바닥 껍질을 조각낸 다음 그것을 어딘가로 보내려는 듯 여행 가방에 담았다”고 했다. 부허는 이 가방을 ‘하이디 아발로네(전복)’라고 이름 붙였다. 묵은 기억을 전복 껍질처럼 단단한 곳에 가둔다는 의미로 보인다. 부허는 1970년대 초 남편 카를 부허와 이혼하고 미국에서 스위스로 돌아온 뒤 자신만의 작업을 시작했다. 그 후 부모의 오래된 집에서 껍질을 만들고 떼어내며 누구의 딸이나 아내가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이 과정을 2021년 독일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 전시에선 ‘탈바꿈’(metamorphosis)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녀의 작업은 감옥, 정신병원 등으로 확장됐고 이는 사회적 억압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 뜨겁게 끌어안고 떼어내다부허의 스키닝 연작은 단순히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개인을 억압한 공간을 파괴하는 대신 그 표면을 피부처럼 덮은 다음 거기에 묻은 모든 것을 떼어내기 때문이다. 마치 내 일부였지만 버려야 할 것들을 마지막으로 힘차게 끌어안는 듯이. 인디고는 어머니가 스키닝 작업을 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내면의 변화를 원했기에 아버지, 남편은 물론 사회의 억압적인 여러 면면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헨릭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 집을 박차고 나왔다면, 부허는 그 집에 남은 먼지 한 톨까지 껍질에 붙인 다음, 이를 떼어낸 후 매달아 버린다. 마치 뱀이 벗고 나간 허물처럼. 작품들은 그렇게 그녀가 끊임없이 버리고 성장하려 애쓴 흔적이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최근 높아지면서 부허는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2004년 스위스 취리히 미그로스현대미술관 회고전을 시작으로 2013년 파리 스위스 문화원, 2021년 독일 뮌헨 헤우스데어쿤스트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6월 25일까지. 5000∼1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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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과 자료가 함께하는 미술관

    미술의 역사에는 작품만 남는 게 아니다. 작가노트와 드로잉, 원고와 일기, 편지 등이 함께 남는다. 현대미술의 주요 자료 수집과 보존, 연구를 하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미술아카이브)가 다음 달 4일 서울 종로구 평창문화로에서 개관한다. 국내 첫 자료 전문 국공립 미술관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2017년부터 수집한 5만7000여 건의 기록을 소장하고 있다. 2020년 임동식 작가가 기증한 5000여 점의 기록을 비롯해 미술가와 비평가, 전시기획자와 대안공간을 주제로 한 22개 컬렉션이 포함됐다. 이 중 2년여간 정리 등 보존 작업을 마친 2만여 건을 ‘리서치랩’에서 열람할 수 있다. 미술관은 기능에 따라 모음동과 배움동, 나눔동 등 3개 동으로 조성됐다. 각각 미술아카이브 보존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 공공 프로그램에 활용된다. 개관 전시로 비평가 최민(1944∼2018)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 예술가의 자료를 살펴보는 ‘아카이브 하이라이트: 김용익, 김차섭, 임동식’이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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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뜨겁게 끌어안고 뜯어내다

    한 여자가 오래된 집의 벽을 덮은 껍질을 뜯어낸다. 고무 라텍스로 만들어진 껍질은 풀과 거즈를 바른 벽에 밀착되어 있었다. 잘 떨어지지 않는 껍질을 여자는 씨름하듯 안간힘을 쓰며 떼어낸다. 벽의 살갗이 떨어져 나가는 듯 삐걱대는 소리도 들린다. 그녀는 스위스 출신 예술가 하이디 부허(1926~1993)다. 아버지의 서재와 조상 대대로 살던 집, 감옥과 병원의 ‘피부’를 만들고 뜯어낸 그녀의 작품들이 한국을 찾았다. 부허의 작품과 영상 기록 등 130여 점을 선보이는 아시아 첫 회고전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가 28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했다. ● 억압하는 공간의 껍질들 부허는 1970~80년대 공간에 풀을 바른 뒤 라텍스를 덮어 ‘피부’를 만든 다음, 그것을 떼어내는 스키닝(skinning) 연작을 했다. 초기에 선택한 공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재. ‘신사들의 서재 스키닝’(1978)은 서재 바닥의 껍질을 뜯어낸 뒤 46개 조각으로 자른 작품이다. 27일 부허의 아들 인디고는 하이디가 “마룻바닥 껍질을 조각낸 다음 그것을 어딘가로 보내는 듯 여행 가방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부허는 이 가방을 ‘하이디 아발로네(전복)’라고 이름 붙였는데, 묵은 기억을 전복 껍질처럼 단단한 곳에 가둔다는 의미로 보인다. 부허는 1970년대 초 남편 칼 부허와 이혼하고 스위스로 돌아온 뒤 자신만의 작업을 시작했다. 그 후 부모님의 오래된 집에서 껍질을 만들고 떼어내며 누구의 딸이나 아내가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이 과정을 2021년 독일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 전시는 ‘탈바꿈’(metamorphosis)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녀의 작업은 개인적 공간을 넘어 감옥, 정신병원 등으로 확장됐고, 이는 개인의 사회적 억압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전시장에서는 아버지의 서재, 선조들의 집, 벨뷰 요양원에서 떼어낸 껍질 조각들과, 이곳에서 라텍스를 뜯어내는 부허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 뜨겁게 끌어안고 떼어내다 부허의 스키닝 연작은 단순한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만약 저항이었다면 개인을 억압했던 공간을 파괴하겠지만, 그녀는 대신 공간의 표면을 피부로 덮은 다음 거기에 묻은 모든 것을 떼어낸다. 마치 버려야할 것들을 마지막으로 힘차게 끌어안는 듯이 말이다. 인디고는 자신의 어머니가 스키닝 작업을 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그녀는 내면의 변화를 원했던 사람이고, 이를 위해서는 아버지, 남편은 물론 사회의 억압적인 다양한 면면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헨릭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 집을 박차고 나왔다면, 부허는 그 집에 남은 먼지 한 톨까지 피부에 붙인 다음 그것을 매달아 버린다. 마치 뱀이 벗고 나간 허물처럼. 전시장 속 작품들은 그렇게 그녀가 끊임없이 버리고 성장하려 노력했던 흔적들이다. 부허는 최근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2004년 스위스 취리히 미그로스현대미술관 회고전을 시작으로 2013년 파리 스위스 문화원, 2021년 독일 뮌헨 헤우스데어쿤스트 대규모 회고전 등이 있었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5000~1만 원.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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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 신진 작가의 ‘화려함 속 음울함’

    2021년 개관해 해외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소개해 온 서울 용산구 갤러리 ‘파운드리 서울’에서 29세 브라질 작가 페르난다 갈방(갈바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작가의 신작 회화 19점과 영상 설치 작품으로 구성됐다. 10대 때 암 투병을 했던 작가는 그 후로 생물학에 관심을 가졌다. 꽃을 그린 정물이나, 식물이 가득한 풍경처럼 보이는 그림들은 자세히 보면 세포 조직이나 종양처럼 생긴 형태들이 곳곳에 번져 있다. 다양한 색채를 활용하지만 마냥 밝지 않은 어두운 톤이어서 화려함 속에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브라질에서 매년 열리는 유서 깊은 공모전인 ‘히베이랑프레투 국립 현대 예술 살롱’전에서 입상했고, 히베이랑프레투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브라질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파운드리 서울 갤러리가 현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조사하며 직접 찾아냈다. 건물 1층에 있는 전시관 ‘바이파운드리’에서는 패션 브랜드 ‘KANGHYUK’의 디자이너 최강혁, 손상락의 2인전 ‘SURFACE’가 열린다. 2019년 LVMH프라이즈 세미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된 두 디자이너가 낙하산과 공업용 경첩을 가공한 작품 9점을 선보인다. 두 전시 모두 5월 1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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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멕시코서 돌 조각땐 타코와 맥주로 버텨”

    조각가 김윤신(88)이 스물여덟 살이던 1963년. 6남매 중 막내인 그는 바로 위 오빠에게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오빠는 동생에게 “결혼은 안 하겠다는 얘기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여동생에게 오빠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네가 늙어도 조카들에게 의지하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호랑이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것만 명심하면 좋겠다.” 그렇게 떠난 동생은 프랑스는 물론이고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을 누비며 평생을 작가로 살았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그를 조명하는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관악구 미술관에서 22일 그를 만났다.● 교수직 버리고 남미로 떠나다 김윤신은 1960년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뒤 상명대 조소과 교수로도 일했지만, 49세가 되던 1984년 교수직을 버리고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주변에서 만류할까 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르헨티나로 떠난 조카를 돌봐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무작정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전시를 열게 도와달라”고 한 뒤 1년 만에 정말로 전시를 열었고, 현지에서 주목을 받으며 작가 생활을 이어갔다. “제가 떠난 걸 1년 만에 알게 된 오빠가 난리가 났어요. ‘학교에서도 널 찾는데, 이렇게 말없이 떠날 수 있냐’고요. 군인이었던 오빠는 ‘내 밑에 수천 명이 있지만 누구에게도 배신을 당한 적이 없는데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배신했다’며 굉장히 서운해하셨죠.” 그러나 김윤신은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지평선과 커다란 나무에 반한 상태였다. “교수가 아니라 미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먹고살 고민은 안 했어요. 내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타코와 맥주로 버틴 멕시코 남미에서 그는 자유롭게 다양한 재료를 탐구했다. 1988∼1991년 멕시코 테칼리 마을에서 ‘오닉스’(줄무늬 있는 석회암)를, 2001∼2002년에는 브라질 솔레다지 마을에서 준보석을 재료로 석조각을 했다. 테칼리 마을은 비도 잘 오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 먹을 것마저 부족했다. “강냉이를 갈아 전처럼 부친 뒤 연한 선인장 이파리와 풋고추를 넣은 타코와 캔맥주로 끼니를 때웠죠.” 남미에서 최근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기톱을 들고 조각을 한다. 나무 조각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 최근의 연작을 ‘김윤신만의 장르’로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 옛날에 어떻게 결혼을 포기하고 예술가의 길을 택했느냐고 묻자 “전쟁을 겪으며 든 생각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그는 열세 살이던 1948년, 사라졌던 오빠가 중국에서 독립군으로 싸우다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38선을 넘었다. “6·25전쟁이 나자 거리에는 시체가 가득했고,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각 외엔 없었어요. 나라를 위해 죽음도 각오했던 오빠를 보며 나도 신념을 갖고 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김윤신의 작품은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서로 다른 것이 하나이며 같은 것이 또 둘로 나눠지듯 세상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의미를 담는다. 지금도 생생한 전쟁의 고통, 지구 반대편 낯선 땅 남미 등 너무나도 다른 것들을 껴안고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예술이라는 듯이. 이번 전시에는 석판화와 석조각, 목조각 등 작품 70여 점이 소개된다. 5월 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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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멕시코 돌 궁금해 타코와 맥주로 버텨”…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조각가 김윤신(88)이 스물여덟 살이던 1963년. 6남매 중 막내딸인 그는 오빠에게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다고 말한다. 오빠는 동생에게 “결혼은 안하겠다는 얘기냐”고 했다. 그렇다는 여동생에게 오빠는 두 가지를 말해주었다.“네가 늙어도 조카들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 호랑이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것. 두 가지만 명심하면 좋겠다.” 그렇게 떠난 동생은 프랑스는 물론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을 누비며 평생을 작가로 살았다.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그를 조명하는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2일 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교수직 버리고 남미로 떠나다 김윤신은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1960년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뒤 상명대 조소과 교수도 역임했지만 50살이던 그 해 교수직을 버리고 떠났다. 주변에서 만류할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다는 그는 처음에는 아르헨티나로 떠난 조카를 돌봐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무작정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전시를 열게 도와달라”고 말한 뒤 1년 만에 정말로 전시를 열었고, 현지에서 주목을 받으며 작가 생활을 이어갔다.“1년 뒤 오빠가 알고 난리가 났어요. ‘학교에서도 널 찾는데 이렇게 말없이 떠날 수 있냐’고요. 군인이었던 오빠는, ‘내 밑에 수천 명이 있지만 누구에게도 배반을 당한 적이 없는데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배반했다’며 굉장히 서운해 하셨죠.” 그러나 그는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지평선과 커다란 나무에 반한 상태였다.“교수가 아니라 미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먹고 살 고민은 안했어요. 내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타코와 맥주로 버틴 멕시코 남미에서 그는 자유롭게 다양한 재료를 탐구했다. 1988~1991년에는 멕시코 테칼리 마을에서 ‘오닉스’를, 2001~2002년은 브라질 솔레다데 마을에서 준보석을 재료로 석조각을 했다. 테칼리 마을은 비도 잘 오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 먹을 것이 부족했다.“강냉이를 갈아 전처럼 부친 뒤 연한 선인장 이파리와 풋고추를 넣은 타코와 캔맥주로 끼니를 때웠죠.” 그런 남미에서 최근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기톱을 들고 조각을 한다. 나무 조각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 최근의 연작들을 ‘김윤신 만의 장르’로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도 이야기했다.‘그 옛날 어떻게 결혼을 포기하고 예술가의 길을 택했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전쟁을 많이 겪었다”고 답했다. 원산 출신인 그는 13살이던 1948년, 사라졌던 오빠가 중국에서 독립군으로 싸우다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와 38선을 넘었다.“전쟁이 일어났을 때 거리에 시체가 가득했고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각 외엔 없었어요. 나라를 위해 죽음도 감수했던 오빠를 보며 나도 신념을 갖고 살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런 김윤신의 작품은 ‘합이합일 분이분일’, 서로 다른 것이 하나이며 같은 것이 또 둘로 나눠지듯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는다. 지금도 생생한 전쟁의 고통, 지구 반대편 낯선 땅 남미 등 너무나도 다른 것들을 껴안고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예술이라는 듯 말이다. 이번 전시에는 석판화 석조각 목조각 등 작품 70여 점이 소개된다. 5월 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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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구경 하려다 그림의 포로가 된 컬렉터 이야기[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제가 전시를 취재하러 갔다가 만난 두 컬렉터의 놀라운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지난주 목요일 오전, 성곡미술관에서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린다고 해 찾아갔습니다. 원계홍은 생소한 작가였기에, ‘그림이 어떤지 보러 갈까?’하는 생각이었죠.그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1978년 55세 나이가 되어서야 첫 개인전을 가졌지만, 2년 뒤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으며. 세상과 잘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런 작가의 작품을 33년 만에 다시 관객과 만나게 해 준 것은 두 컬렉터, 김태섭 전 서울장신대 학장과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이었습니다.원 화백의 그림이 빛을 보기까지는 세 번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이 그림은 함부로 흩어지면 안 되겠다”첫 번째 만남은 1984년 인사동 공창화랑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은 “좋은 전시가 있다”는 지인의 추천으로 원계홍 화백의 유작 전시를 가게 됩니다.“첫날 가서 본 뒤로 일주일 내내 매일 그림을 보러 갔죠. 하루하루 지날수록 눈이 더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 분은 함부로 흩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윤 회장은 큰마음을 먹고 원 화백의 부인을 찾아갑니다. “경제가 허락되는 대로 그림을 다 사겠다. 나중에 원계홍 미술관을 짓자”고 제안했죠. 당시 원 화백의 부인은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 그림을 내놓긴 했지만, 남편의 흔적을 내놓아야 하는지 많이 망설였다고 합니다.결국 윤 회장이 세 차례 정도 제안을 했지만 끝내 원 화백의 부인은 고사했습니다. 윤 회장은 원 화백의 그림 10여 점을 소장하는 데 그쳤죠.그러나 크라운제과 대표이사를 하던 시절이어서 그의 작품으로 달력도 만들었습니다. 윤 회장은 “몇천 부를 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다음 해 또 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언젠가는 장안평 고미술상가에서 원 화백의 그림을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프레임도 없이 수백 점 그림이 엘피판처럼 쌓여있는데 그 사이에 원 화백 그림이 있었어요. 그때 느낌이 참 슬펐습니다.”이 말을 하면서 윤 회장은 잠시 울컥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답니다.집구경 하려다 그림의 포로가 되다두 번째 만남은 1989년 봄 부암동입니다. 이때 김태섭 전 교수는 세검정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시간이 남아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리가 아파 복덕방에 잠시 들렀는데 주인의 권유로 집을 보러 가게 됩니다.“집 사러 온 게 아니라고 했는데, 안 사도 괜찮으니 주인이 구경만 하라고 해 따라갔죠. 그래서 지금 자하손만두 근처의 집에 갔는데 사모님은 마루에 앉아 계시고, 방문을 열었는데 문간방에 작품이 한가득 쌓여 있더라구요.”그림을 봐도 되냐고 허락을 받은 김 전 교수는 ‘여태까지 본 것과 전혀 다른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화가였지만, 그는 “집보다 그림이 훨씬 좋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사모님이 그림이 인화된 사진을 2~3일 보고 다시 돌려달라며 건네주었다고 합니다.그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 사진을 살펴봅니다. 보고 또 봐도 너무 좋은 그림이었고, 고민 끝에 집과 그림 약 200점을 모두 인수하기로 합니다. 당시 아파트 두 채 가격. 잔금을 마련하는 데 2년 넘게 걸렸고, 경제 상황도 어려워져 한동안 고생했답니다.그런데 1990년엔 공간화랑에서 ‘원계홍 10주기 추모전’까지 열었죠. 김 전 교수는 “그분 작품에 눈이 멀어 포로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지금도 부암동 집에 살고 있는 김 전 교수는 “방 네 칸짜리 집에서 한두 칸은 그림 차지였다”며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 갈 때까지는 앞집 방 세 칸을 빌려 공부방으로 썼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그리고 지금까지 그림을 지켜온 데에는 원 화백의 부인과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부탁이 큰 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미국 영주권자였던 사모님은 한국에 오면 저희 집에서 가족처럼 지냈어요. 이경성 전 관장은 ‘작품은 팔지 말고 잘 갖고 있는 게 좋겠다’고 했죠. 그분들의 말씀으로 견뎠습니다.”오로지 그림을 매개로 연결된 사람들세 번째 만남은 약 10여년 전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졌습니다.원 화백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갖고 있었던 윤영주 회장은 가끔씩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봤다고 합니다. 아무리 검색해도 아무 내용이 없다가 어느 날 원계홍의 작품 사진과 글을 발견합니다.반가운 마음에 윤 회장은 댓글을 달았습니다.‘제가 작품을 좀 가지고 있고, 저는 원 화백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를 아셨나요?’그러자 김 전 교수의 따님이 윤 회장에게 연락을 했고, 윤 회장은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 화백의 유작을 그가 모두 넘겨받았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됐죠.그러다 최근 김 전 교수가 ‘100주년이 되었는데 뭐 좀 해드려야죠’라고 했고, 윤 회장도 “그렇다면 한 번 뜻을 세워봅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원 화백의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 33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두 분이 만나기 전 또 한 번 연결이 있었답니다.김 전 교수님은 1989년 원 화백의 작품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는 놀라며 “아니 무슨 그림이길래?”라고 물었죠. 그러나 이름도 생소한 작가였기에 김 교수는 말없이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답니다.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아, 이거 크라운제과 달력에서 본 그림인데. 그때 내가 인상 깊게 봤어.”김 전 교수는 ‘이때 이미 윤 회장이 만든 달력의 덕을 봤다’며 웃었습니다.이 전시에서 제 마음에 와닿은 것은 그림을 매개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연결될 수 있고, 그중 많은 경우는 이해관계가 차지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름 모를 작가가 남긴 작품에 대한 사랑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됐다는 이야기가 참 따스하게 다가왔습니다.생전 원 화백은 사람들과 교류를 꺼리며 작품만 했고, 때때로 이것이 가족들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답니다.그러나 그 작품이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심지어 누군가는 ‘그림의 포로가 되었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죠. 또 전혀 모르던 사람을 ‘감동’이라는 연결고리로 끈끈하게 맺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 힘은 ‘이 작품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고, 또 사람들에게 알리자’는 의지로까지 이어졌고요.이렇게 무작위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구나,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저도 기뻤습니다.여러분도 전시장에서 그러한 힘을 직접 한 번 만나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구독자 의견(지난주 광주비엔날레 이숙경 감독 인터뷰에 관한 의견입니다)■ 현대 미술 작가와 깊은 연을 나누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숙경 감독님의 말씀 중 ‘세상을 떠나려고 미술을 하지 말자. 미술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대하지 말자는 거죠. 예술이 돈 있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서 하는게 아니잖아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라는 구절이 맘에 와닿습니다. 가장 왕성하게 세상과 소통해야 할 대다수 작가가 자의든 타의든 단절에 가까운 작업 활동을 합니다. 빛을 볼 날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는, 레지던시 한 번 입주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작가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생기길 바랍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작가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조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저 말이 가장 마음 깊게 다가왔는데 역시 미술에 애정을 가진 분들은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나봅니다. 오늘 원계홍 화백의 이야기도 남다르게 보셨을 것 같아요. 작가들의 현실도 기회가 되면 꼭 다뤄보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갤러리나 뮤지엄에서는 보기 힘든 과감한 큐레이션의 전시와 메시지에 충실한 작품을 볼수 있어서 좋아해요(고준환)☞ 그렇죠! 사실 요즘은 비엔날레도 상업화가 되어서 그나마 기댈 곳이 뮤지엄인가 싶을 때도 있긴 합니다만 비엔날레에게 보통 기대하는 바는 말씀하신 부분인듯합니다.■ 들어는 봤지만 뭘 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건 전혀 없었어요. 인터뷰 내용처럼 아트 페어나 비엔날레 등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게 딱 제 얘기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예술 생태계에 대한 뉴스레터도 받아보고 싶습니다! 이 외에 감동받은 포인트가 하나 있었는데요, 세상을 떠나려고 미술을 하지 말라 세상과 미술이 다른 것이 아니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서 예술을 하는 게 아니지 않냐는 말씀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너무 좋네요.☞ 역시 같은 부분에서 감동 받으셨군요!! 기쁩니다. 그리고 예술 생태계에 관한 내용도 좋은 기회에 꼭 다뤄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척 봐서 좋은 게 현대미술은 아니에요… ☞ 공감의 의견인가요 ㅎㅎ 사실 저는 약간의 경험과 열린 마음만 있다면 현대미술이 오히려 과거의 것보다 더 척봐도 좋은 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 글을 읽으며 기대감에 벅차오릅니다. 앞으로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실지. 이번에는 꼭 내려가서 볼 생각이예요. ‘유약어수’. 지금 시대와 사회에 흐르고 스며들면 좋겠다 느끼기에 더욱 기다려집니다.(felix) ☞ 감사합니다. 흥미로운 소식들 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대미술은 맥락을 봐야할 때가 많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볼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주의적인 작품만 전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작품들이 담고 있는 심오하고 깊은 문제를 희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미술이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말씀에 특히 공감이 갑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잡는 비엔날레의 성공을 기원합니다.■과거 관람한 좋은 기억이 떠올라요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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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공동체 만들고 친구와 집 사고… 비혼 삶의 형태도 다양

    한국에서 1인 가구를 이야기하면 홀로 사는 청년이나 노인을 흔히 떠올린다. 1인 가구를 말할 때 잘 언급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비혼 중년 여성이다. 20년째 혼자 살아온 저자는 자신을 향한 여러 단편적인 시선에 의문을 갖는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결핍의 인생이라거나, 외롭고 힘들 것이라고 단정하거나,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단언이다. 정말 중년 비혼자의 삶은 미완성이고 외로울까. 저자는 40, 50대 비혼 여성 19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이상한 정상 가족’(2017년·동아시아)을 통해 우리 사회 아동 인권과 가족 정책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며 문제점을 파헤쳤던 저자가 중년 비혼 여성에게 돋보기를 들이댔다. 중년 1인 가구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2020년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1인 가구의 37%가 중년이다. 또 20대의 52.9%, 30대의 52.7%가 앞으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중년 1인 가구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국내 1인 가구 정책과 담론이 ‘청년은 미혼, 중년은 이혼, 노년은 사별’로 요약된다고 지적하며 관점의 스펙트럼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 비혼 중년의 삶 속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모습이 펼쳐진다. ‘혼자 살면 외롭다’고 흔히 얘기하지만 저자가 만난 비혼 여성들은 외로움을 심각한 문제로 꼽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생각은 국내 1인 가구 담론과 대책이 고독사 예방 관점에서 펼쳐지면서 퍼진 과장된 두려움이라고 분석한다. 인터뷰한 중년 비혼 여성 상당수는 이웃과 친밀한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에 살거나, 친구와 함께 집을 마련하고, 대안적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살기도 했다. 현재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으며, 아플 땐 누군가 옆에 있어 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두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결혼한 삶이 다 행복하거나 성숙한 것이 아니듯 솔로의 삶도 천차만별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르는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을 ‘싱글리즘’이라고 명명했다. 혼자 사는 이들이 증가하는 건 세계적 현상이며 제도 역시 이에 맞춰 변해야 할 때임을 저자는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보여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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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조각가 유영교 회고전 ‘구도’

    조각가 유영교(1946~2006)의 회고전 ‘구도(求道)’가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26일까지 열린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조선 후기 국가 공식 참형장이었던 서소문밖 네거리에 열린 문화공간이다. 이에 맞춰 작가가 남긴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 37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천신과 싸우는 야곱’처럼 성경 속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도 있는가 하면, 부처의 이야기를 담은 ‘열반’ 시리즈 등도 선보인다. 부조 작품 ‘부처의 깨달음과 바오로의 회심’에는 한 쪽에는 부처의 반 쪽 얼굴이, 다른 쪽에는 눈부신 빛에 얼굴을 가리는 사람이 새겨져 있다. 유영교 작가의 부인인 이은기 목원대 미술교육과 명예교수는 “천신과 싸우는 야곱은 종교 미술에서는 자주 그려지지 않는 주제”라며 “작가가 성경이나 불경을 읽고 스스로 주제를 선택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말년에는 자연석에 물이 흐르도록 만들어진 ‘샘’ 연작, 청계천 복원 기념으로 설치된 빨간색 야외 조각 ‘에어 조이’ 등 키네틱 조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샘’은 전시장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지하 기획소강당으로 내려가면 볼 수 있다. ‘샘’ 연작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생전인 2000년대 초반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 정원에 돌바닥과 어우러지도록 설치한 바 있다. 전시는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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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지처럼 흩어질 뻔한 원계홍의 그림들

    ‘내가 죽고 나면, 내 작품들은 고물덩어리가 되지 않을까?’ 이는 많은 예술가가 갖는 불안 중 하나가 아닐까. 작품은 한 끗 차이로 예술이 되거나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곤 한다. 작가가 남긴 건 소장가, 큐레이터, 평론가와 미술사가에 의해 사회 속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작품이 된다.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16일 개막한 ‘그 너머―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서 원계홍 화백(1923∼1980)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은 두 소장가, 김태섭 전 서울장신대 학장과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 덕분이었다. 전시장에서 17일 만난 김 전 학장은 1989년 부동산중개소의 소개로 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원 화백의 집에서 우연히 작품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원 화백의 작품을 처음 봤지만 한눈에 반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거금을 들여 집과 작품을 사들였다. 그는 “작품에 눈이 멀어 포로가 됐던 것 같다”며 “1991년에야 잔금을 치렀고 한때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 한동안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가 넘겨받은 작품은 약 200점으로, 작품의 가격은 당시 아파트 두 채 가격과 맞먹었다. 윤 회장은 1984년 크라운제과 대표 시절 처음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원 화백의 그림을 접했다. 그도 작품 전체를 인수하고 싶었지만 당시 원 화백의 부인이 남편의 흔적을 보내길 망설였다. 윤 회장은 이후 서울 동대문구 장안평 고미술상가에서 원 화백의 그림을 발견하기도 했다. “프레임도 없이 그림 수백 점이 LP판처럼 쌓여 있는데, 그 사이에 원 화백의 그림이 있어 참 슬펐습니다.” 이후 생각날 때마다 원 화백에 대해 검색해 보던 윤 회장은 약 10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 전 학장의 글을 발견했다. 윤 회장이 ‘제가 작품을 좀 가지고 있고 원 화백을 존경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아셨냐’고 댓글을 달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전시장에는 윤 회장이 소장한 16점, 김 전 학장이 소장한 65점을 비롯해 원 화백의 작품 100여 점과 기록을 볼 수 있다. 폴 세잔의 영향을 받은 정갈한 정물화와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은 “원 화백은 미술 이론서를 탐독하고 자신감도 넘쳤지만 세상과 교류하지 않았던 작가”라며 “먼지처럼 흩어질 뻔한 운명을 소장가들이 잡아준 것”이라고 했다. 5월 21일까지. 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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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보러갔다 만난 그림의 포로가 되다…성곡미술관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

    ‘내가 죽고 나면 작품들이 고물 덩어리가 되는 건 아닌가?’ 모든 예술가가 갖는 불안 중 하나는 이런 생각일 것이다. 예술가가 남긴 것은 한 끗 차이로 예술이 되거나,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고 만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작품을 알아봐주는 타인이다. 작품을 소장하는 컬렉터, 전시를 여는 큐레이터, 글을 쓰는 평론가와 미술사가에 의해 사회 속으로 들어올 때 작가가 남긴 것은 비로소 작품이 된다. 16일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개막한 전시, ‘그 너머-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의 주인공 원계홍(1923~1980)은 생소한 작가다. 1940년대 도쿄 주오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화가의 길을 걸었고, 1978년 55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1980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그가 남긴 작품들 100여 점이 33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은 두 소장가, 김태섭 윤영주 덕분이었다. ● 산책하다 만난 작품에 사로잡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김태섭 씨는 1989년 봄 산책을 하다 부동산 주인의 소개로 간 원 화백의 부암동 집에서 우연히 작품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한 방 가득 작품이 있었는데 지금껏 본 것과 달랐어요. 집을 보러 간 건데, ‘집보다 그림이 훨씬 좋네’라고 했죠. 들어본 적 없는 화가였지만, 고민 끝에 집과 작품을 인수했습니다.” 이후 1990년에도 공간화랑에서 ‘원계홍 10주기 추모전’을 열었던 그는 “그분 작품에 눈이 멀어 포로가 됐던 것 같다”며 “이 때에도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1년 후에야 치렀고 경제 상황도 불균형해져 한동안 고생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넘겨받은 작품은 약 200점, 당시 아파트 두 채 가격에 인수했다. 지금도 부암동 집에 살고 있는 김 씨는 “방 네 칸짜리 집에서 한 두 칸은 그림차지였다”며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 갈 때까지는 앞집 방 세 칸을 빌려 공부방으로 썼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 씨는 원 화백의 부인과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부탁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미국 영주권자였던 사모님은 한국에 오면 저희 집에서 가족처럼 지냈어요. 이경성 전 관장은 ‘작품은 팔지 말고 잘 갖고 있는 게 좋겠다’고 했죠. 그 분들의 말씀으로 견뎠습니다.” ● 고미술상가 그림 더미에서 발견하기도 원 화백의 작품에 반한 또 다른 컬렉터는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이다. 윤 회장은 1984년 크라운제과 대표 시절 처음 인사동에서 원 화백의 그림을 접했다. 그도 작품을 사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원 화백의 부인이 남편의 흔적을 보내길 망설였다. 윤 회장은 장안평 고미술상가에서 그림을 발견하기도 했다.“프레임도 없이 수백 점 그림이 엘피판처럼 쌓여있는데 그 사이에 원 화백 그림이 있었어요. 그 때 느낌이 참 슬펐습니다.” 이후 생각날 때마다 원계홍을 검색해보던 윤 회장은 약 10년 전 쯤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 씨의 글을 발견했다. ‘제가 작품을 좀 가지고 있고 원 화백을 존경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아셨냐’고 댓글을 달아 두 사람이 연결됐다.“김태섭씨의 따님이 전화를 주셔서 받자마자 찾아뵈었죠. 교수님이 유작을 다 받은 걸 그 때 알게 됐고 그 후로도 잘 알고 지냈는데, 최근 100주년 전시를 열자고 하셨어요.” 전시장에서는 윤 회장 소장 16점, 김 씨 소장 65점을 비롯한 작품 100여 점과 기록을 볼 수 있다. 폴 세잔의 영향을 받은 정갈한 정물과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이수균 학예실장은 “미술 이론서를 굉장히 많이 읽고 자신감도 가졌지만 세상과 교류하지 않았던 작가”라며 “먼지처럼 흩어져 고물가게에서 마주칠 뻔한 운명을 소장가가 잡아준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5월 21일까지. 5000원.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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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이트 ‘백남준’전 맡았던 그녀의 한국 대표 비엔날레는?[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열리지 못했던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한 달 뒤인 4월 7일 드디어 개막합니다.이번 비엔날레의 예술총감독은 2019년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의 큐레이터이자, 테이트 최초의 아시아인 큐레이터로 15년 넘게 일해 온 이숙경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입니다.이숙경 감독은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광주비엔날레를 맡은 한국인 감독으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전시를 위해 3월 6일 입국한 이숙경 감독을 10일 만났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어떻게 펼쳐질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시죠.부드럽게 스며드는 예술의 힘이번 광주비엔날레의 구성을 보면, 비엔날레가 열리는 광주의 ‘저항 정신’을 지역적 맥락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존재들의 공통된 것으로 확장해서 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입니다.이숙경 감독에게 이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습니다.김민(김): 전시의 구성이 총 4가지 주제, ‘은은한 광륜’, ‘조상의 목소리’, ‘일시적 주권’, ‘행성의 시간들’로 되어 있어요. ‘은은한 광륜’에서 광주의 저항과 연대의식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으로 시작해 점점 그것을 근대주의, 탈식민주의, 생태와 환경 등 더 큰 주제로 확장하는 느낌이었습니다.이숙경(이): 정확해요. 구체적인 소재에서 시작해 보편적으로 나아가는 구성이죠. 전시에 참여하는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특수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개인적 경험이거나, 자신의 커뮤니티에 관한 것이거나, 젠더에 관한 이야기도 되죠.자신에게 중요한 부분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낸다면 그것이 전 지구적 시선(planetary vision)으로도 맞닿을 수 있다고 봤어요.김: 그런데 전체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즉 ‘유약어수’(柔弱於水)로 도덕경의 한 구절에서 가져오셨어요.이: 작가뿐 아니라 큐레이터인 저도 뒤에 숨지 말고 내 경험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오자고 생각했어요. 이번 코로나19로 영국 전역이 록다운(이동 제한) 되었을 때 동양 고전을 읽었거든요. 제가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너무 꼿꼿하게만 해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말들이 동양의 오랜 지적 전통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았고, 결국 이번 전시의 주제로 그것이 이어졌어요.김: 왜 하필 그 구절이었나요?이: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고 전부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예술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람이 죽는데 이게 다 무슨 의미냐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러나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린 것이 바위를 뚫듯이 예술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유약어수’는 결국 권력에 관한 이야기예요. 물은 비유일 뿐, 부드럽고 여린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다른 곳에 스며들잖아요. 예술도 그렇게 (가랑비에 옷이 젖듯)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바꿔 놓거나, 감동을 주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게 한다는 거죠.김: 너무 좋은데요. 저도 사실은 예술이 뭔가 예쁘고 반짝이고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흔한 것 같아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거든요.이: 그래서 그 작품 얼마야? 몇억이라고? 이런 이야기들이 흔하죠(웃음). 그러나 예술은 삶에 대한 이야기고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소통의 욕구도 있구요. 예술의 본질인 내적 성찰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죠.김: 그런 접근이 오히려 폼 잡지 말고, 어깨에 힘주지 말고 예술을 바라보자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이: 세상을 떠나려고 미술을 하지 말자. 미술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대하지 말자는 거죠. 예술이 돈 있는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한국 미술의 가능성김: 참여 작가 명단에 한국 작가도 여럿 보이는데, 전체의 17% 정도로 구성되었다구요.이: 네. 꾸준히 자기 작업을 해 온 분들이고, 아주 젊은 작가가 아니에요. 그 이유는 젊은 작가는 아직 기회가 많다고 봤고, 국제전에서 많이 보여주지 못한 작가는 누구일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런 분들을 찾다 보니 홍이현숙, 장지아, 엄정순, 김기라, 오석근 같은 작가가 나온 거죠.한국 미술의 결이 이렇게 넓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한국의 비엔날레를 왔는데 맨날 밖에서 보던 작가가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외국 감독이 오면 언어 장벽 때문에 소개되기 어려웠던 국내 작가도 있고, 제가 이번에 처음 만난 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작가분들이 “왜 저에게 오셨냐”고 깜짝 놀라곤 하셨어요.김: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니, ‘한국 미술의 매력’이 뭐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이: 굉장히 가능성이 많죠. 우선 미술 인구가 많아 작가층이 두텁고 좋은 시스템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어요. 다만 아트마켓인 아트페어나 비엔날레의 차이를 아직 모르는 분이 많은 것처럼 예술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공공 영역과 시장 영역의 구분이 잘 정리가 되면 좋겠어요. 인프라는 잘 되어 있거든요.김: 미술관이 많다는 말씀이죠?이: 네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이 된다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잘 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습니다. 광주비엔날레도 해외에선 유명하거든요. 제가 감독이 되고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어요. 이렇게 있는 것을 잘 지키고 더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현대미술의 종합선물세트이: 저도 세계의 많은 비엔날레를 보러 다니는 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가 연구를 하기 위해서예요. 비엔날레는 짧은 시간에 작은 공간에서 무지하게 많은 작가를 볼 수 있는 기회예요.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죠.김: 다만 일반적으로는 비엔날레가 어렵다거나 난해하다고 느끼는 인식도 있죠.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냥 척 봐서 좋은 게 현대미술은 아니에요. 맥락을 봐야 할 때가 많고, 그것을 위해 캡션은 물론 영상부터 도록까지 많은 보조 자료를 준비해두었어요.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대중주의적인 작품만 전시할 수는 없죠. 중요한 것은 작품들이 담고 있는 심오하고 깊은 문제를 희석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김: 그럼에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전시를 만들려고 고민도 하셨다고요.이: 의자도 많이 놓았고, 작품 해설도 가능한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작가에겐 사람들이 자기 작업을 이해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작가가 쉽게 말하진 못하더라도 큐레이터는 쉽게 얘기를 해줘야죠. 균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요.김: 이번에 한국에 꽤 오래 머물게 되시겠어요.이: 6주간 머물게 되는데 25년 만에 가장 길게 머무는 거예요. 비엔날레 전시관이 큰 5개의 공간으로 이뤄졌는데, 테이트모던의 보일러하우스와 비슷한 크기로 매우 큰 규모예요. 또 전시가 개막하고 난 다음에는 7, 8일 테이트 리서치센터와 공동 주관으로 심포지움을 엽니다.물론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휴식을 취하듯 좋은 그림을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작품도 많아요. 베티 머플러라는 작가의 작품도 아주 멋진 추상화예요. 또 기존 전시 동선을 바꿔서 광장에서 바로 올 수 있도록 웰컴 센터를 만들었거든요. ‘그냥 부담 없이 들어와서 아무거나 보고 가세요’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1996년 첫 광주비엔날레가 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관객까지 전시를 보러 오신 걸 보고 감동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요. 그런 열린 마음을 가진 관객분들에게 잘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이숙경 감독은 이날 서울에서 만났는데요. 전시 준비 기간에 해야 할 작업이 많아 ‘서울로 오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며 떠났습니다. 비엔날레가 개막하면 또 전시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구독자 의견지난주 ‘데이비드 치퍼필드’에 관해 다룬 뉴스레터를 보고 보내주신 구독자 의견을 소개합니다.■ 제 개인적 느낌은 치퍼필드가 겸손한 디자인에 능한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 아모레퍼시픽 건물은 (…) 자세히 뜯어보면 거대한 매스가 수직 루버로 분절된 듯 개방감 있게 표현한 시각적 즐거움은 색다른 묘미로 다가오면서 ‘볼수록, 자세히 보아야 예쁜’ 건물이라는 걸 수 년이 지나면서 느끼고 있네요.이에 반해 여의도 파크1 건물은 재미있게도 누가 짓는지 별 관심도 없었는데 생기고 난 후, 보면서 ‘특이하네!’ 하면서 누가 지었지, 궁금해하던 중, 80을 바라보는 엄마가 ‘어머 이거 파리에서 본 퐁피두 건물 같아, 그 건축가가 지은 거 아니니’ 하셨을 때야 찾아보니 정말 그 건축가가 맞는 걸 보고 저 자신도 깜짝 놀랐답니다.(…)치퍼필드의 수상은 묵묵히 성실히 건축이라는 본분을 다하는 건축가의 길에 프리츠커 상이라는 끝이 있다는 걸 알려준 거 같아 괜히 뿌듯하네요. 그리고 이분의 건축은 뭔가 사러 깊다는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랬을 때의 포근함 따스함보다는 시크한, 세련된 미니멀 스타일을 구사하지만 사려 깊은 츤데레 같은 묘한 느낌이 있어 지속적으로 이분이 건축가로서 러브콜을 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치퍼필드의 건축에 대한 자세하고 깊은 감상을 보내주셨어요. 저보다 더 애정을 담고 봐주신 것 같아 독자 의견으로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사려 깊은 츤데레 같은 묘한 느낌’, 정말 공감되네요! 흥미로운 의견 감사합니다.■ 사진으로 본 그의 건축물들이 과거와 현재의 조우, 주변 환경과 건축의 조화 등을 보여주는 것 같고,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존재감 있는 모습입니다. 단절이 아닌 이어짐, 연결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고요. “수백만 번의 기술적, 미학적, 정치적 선택이 이어졌다” 는 말이 그의 사려 깊음을 드러냅니다. 공간에서 무엇을 살려야 할지, 없애야 할지 고민했다는 게, 과연 건축가답습니다.■ 남아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따듯한 마음이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발자국 물러서면 보이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가까이에선 화려한 건축물에 비해 눈에 덜 띄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풍경과 자연스레 섞이는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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