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우리 정치의 진영 논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장이었다. 숱한 의혹을 “불법은 아니다”라며 강변한 여당은 물론이고 이해관계와 진영 논리를 이기지 못한 정의당은 데스노트에 자기 이름을 적고 후회하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 여당 의원이 실세 후보자를 아프게 지적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로 인해 3000통이 넘는 문자 폭탄을 맞았지만….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52)은 “국회의원, 청문위원으로서의 의무가 여당 의원에 앞선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 ―먼저, 당신을 공격한 사람들은 이 인터뷰를 보고 청문회 때처럼 또 공격할 수 있다. 대개는 그런 걸 우려해 고사하는데…. “그게 바로 편 가르기인데…, 편 가르기 현상이 나타난 데는 정치권의 책임도 많기 때문에 그분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처음 정치권에 왔을 때 민주당과 진보 쪽에서는 종합편성채널(종편)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난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 정도 시달리면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는데 안 바꿨다. 원래 멘털이 강한가.) “강한 건 아니고…. 선거 때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다 받지는 못해도 가능한 한 답을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 정도로는 바꾸지 않는다.” ―지적이 아프기는 했지만 야당처럼 구체적인 의혹을 일일이 캐물은 것도 아니지 않나. “내가 검사 출신이라 수사도 해 봤지만, 인사청문회에서 사실관계 확인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미 인정된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는 식으로 했다.” (그 정도조차 지지층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건가.) “잘했다는 사람도 많지만, 용납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었다. 비록 여당 의원이지만 나는 조 장관에 대한 비판이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공정의 문제는 가장 핵심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질문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당은 후보자를 무조건 방어하는 게 우리 정치 풍토 아닌가. “그런 관행과 문화가 있다. 하지만 나는 국회의원, 청문위원으로서의 의무가 여당 의원의 입장보다 앞선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이렇게 의문을 많이 제기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후보를 방어하면 자신의 당내 입지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당은 신뢰를 잃는다. 나름대로는 당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정치인이라고 그걸 모를 리는 없고… 현실정치는 그렇게 거룩한 게 아니지 않나. 자기 발등을 찍었다는 생각은 안 드나. “당연히 어떤 분들은 ‘금 의원이 정치를 몰라서’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 전부가 방어로만 일관했다면 당 지지율은 더 떨어지고, 한국 정치 전체에 대한 신뢰도 잃었을 거다. 나는 내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소신이 그렇다면 청문회에서의 발언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되지 않나.) “하하하, 예를 들면 조국 장관 퇴진 투쟁을 하라는 건가?” (지적이 목표일 수는 없지 않나.) “청문위원으로서의 책임은 했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거기까지고, 대통령의 인사권은 존중돼야 한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의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정부 감시와 견제이니 그 역할을 하면 될 것 같다.”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당신 질문에 조 장관은 ‘있다’고 했다. 청문회 끝나고 지금까지 진심 어린 사과가 있었다고 보나. “음… 앞으로 하시겠지? 전에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그냥 다 내 책임이라는 식으로 사과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추상적인 사과는 안 된다고…. (조 장관이) 사실관계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고, 이런 건 잘못됐고… 이렇게 말해주는 게 필요한데… 지금은 수사 중이라 쉽지 않긴 하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장관 정도의 고위공직자라면 수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얘기를 해야 한다고 본다.” ―청문회가 끝나고 민주당은 대부분의 의혹이 해소됐다고 했다. 당신이 보기에도 그런가. 해소된 사안이 있다면 설명을 해 달라. “내 생각은 있는데… 답변하기 곤란해서가 아니라, 내가 여당 법사위원이라 수사 중인 상황을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 국정감사에서도 원래 재판이나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건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많이 하지 않나.) “사실 많이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단, 이건 말할 수 있다. 지금 국민이 궁금해하는 건 불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공정이다. 조 장관이 과거의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한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명이 없었다고 본다.” ―이번에도 청문회는 무용지물이었다. “자료 미제출이나 증인 불출석같이 청문회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행위를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이 개입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보수·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후보자들이 청문위원들에게 자료를 제대로 낸 적이 없다. 의혹을 가리기 힘들다 보니 결국 검찰 손을 빌리게 되고, 검찰의 힘이 점점 더 커진다.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에서 그가 거짓말한 걸 문제 삼았다가 (열성 지지자들의 공격으로) 내가 혼이 났는데… 그때 진짜 화가 많이 났다.”―거짓말에 화가 난 건가. “당시 외국에 나간 주요 증인이 검사 출신 변호사였다. 그런 사람이 증인으로 안 나오고 도망가면 변호사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우리 청문회에는 그런 제재가 하나도 없다. 왜 나가는지 너무나 뻔하지 않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못 하는 사람이 변호사 자격을 갖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그때는 당이 온통 윤 총장 찬사 일색이어서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야당이 문제 삼았지만 우리는 한마디도 대꾸 안 했다. 그러면서 검찰개혁을 하자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 ―청문회에서 “이걸 묻는데 저걸 답하면 화난다. 묻는 사람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질문을 이해 못 했을 리 없을 텐데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증인 불출석이랑 비슷한 건데… 그런 동문서답에 대한 제재가 우리는 없다. 청문회뿐만 아니라 브리핑, 기자회견에서도 엉뚱한 답을 하면 ‘그건 답이 아니다’라고 질문자가 추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약하다 보니 대답이 엉뚱해도 그냥 넘어간다.” (2일 당시 조 후보자가 연 기자간담회에서 그런 대답이 많았다.) “그 기자간담회는 대단히 잘못됐다. 간담회를 여는 유일한 명분이 ‘청문회를 안 열어서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인데 해명은 얼마든지 다른 데서 해도 됐다. 그걸 국회에서 하고, 의원이 사회를 봐주고… 아주 잘못된 거다.” ―개인정보 유출, 피의사실 공표는 당연히 제한돼야 한다. 그런데 여당은 조 장관 관련 정보 유출은 민감해하면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고교 성적표, 출석 일수 공개는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랬다. 내가 찾아봤는데 우리도 지난 정부 때 상대방의 가족 문제에 대해서 정말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정치인에게 도저히 논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그냥 가족이 저지른 잘못, 추문만 가지고도 엄청나게 공격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나 피의자를 죄인 취급하는 문화는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추진하기가 어려울 거다. 조 장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저질렀던 일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공정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우리가 과거에 했던 잘못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하려고 하면 당연히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고 잘되지도 않을 거다.” ※정유라는 고3 때 17일만 출석하고 출결 만점을 받고, 전 과목에서 최하위 성적을 면치 못한 성적표가 2016년 11월 공개됐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개인정보 유출 조사 대신 고교 졸업 취소가 가능한 근거가 확보됐다고 밝혔다. 반면 조 장관 딸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며 유출 경위를 조사했다. ―우리 정치에 그 정도의 포용력이 있다면 이 지경이 됐겠나. “내가 ‘우리도 과거에 잘못한 적이 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지금 한목소리를 내도 모자란데 왜 방해하느냐’고 하는데…. 난 한목소리를 내자는 사람이 오히려 개혁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상황을 풀려면 상대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화도, 합의도 하는 것 아닌가. 상대가 우리를 불공정하게 보는데 무슨 얘기가 되겠나.” ―조 장관이 박사 지도교수였는데 많이 친했나. “검사 시절 1년간 미국 연수에서 석사를 땄는데 논문을 안 써도 되는 석사였다. 돌아와 박사 지원을 했는데 논문 없는 석사를 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처음 지도교수를 부탁한 분이 안 돼 당시 서울대 신진 교수였던 조 장관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받아줬다. 그 뒤 배려도 많이 해줬고, 우리 집에도 놀러올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그가 지도한 박사 논문이 무엇인가.) “제대로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어 논문을 안 썼다. 그래서 박사가 아니라 박사과정 수료다. 휴학도 많이 하고…. 조 장관은 교수 할 것도 아닌데 너무 어려운 거 말고 내가 소설을 좋아하니까 ‘형법과 문학’ 이런 주제로 따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난 진짜 학술 논문을 쓰고 싶었는데 현실이 안 돼 아예 손을 안 댔다. 일각에서 박사 학위를 못 따서 내가 그에게 심하게 했다고 하는데 전혀 아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최근 서울의 한 유명 여성병원에서 영양주사 처방을 받은 임신 6주의 임신부에게 낙태 수술을 하는 의료사고가 벌어졌다. 계류유산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아야 하는 다른 임신부와 착각했다는 것이다. 영양제 대신 수면마취제를 맞은 피해자는 깨어난 뒤 계속 하혈을 해 병원에 문의했지만, 담당의사가 퇴근해 다음 날 다시 찾아와 검사를 했고 그때서야 아기집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병원 측도 경찰 조사에서 의료사고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황당하기 그지없다. 간단한 건강검진도 맨 처음 하는 게 본인 확인이다. 수면내시경조차 본인 확인은 물론이고 각종 알레르기, 앓는 질환, 마취 거부 반응 유무 등을 묻고 동의서를 받는다. 마취제 투여 시 이름만 물었어도 환자가 다르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수술의사가 환자의 진찰 차트만 봤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묻지도 않고 냅다 주삿바늘을 꽂고, 이후에는 누구 하나 차트 한번 보지 않고 컨베이어벨트 돌아가듯 일사천리로 수술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환자를 의료상품으로 보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올 3월 전국 의료기관에 환자안전경보를 발령했다. 황당한 의료사고가 2016∼2018년에만 333건에 달한 데 따른 것이다. 몸 안에 수술 도구 등 이물질을 놔둔 채 봉합한 사고가 48건, 다른 환자를 수술하거나 검사 및 수혈한 경우도 161건에 달했다. 수술 장비가 고장 난 줄 모르고 마취했다 수술을 연기하고, 유방암 검사에서 좌우를 잘못 기재한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조직검사에서 확인돼 바로잡았지만 하마터면 엉뚱한 유방을 절제할 뻔한 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의료기관이 수술 안전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수술명, 기구 개수 등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1차 마취 유도 전, 2차 절개 전, 3차 퇴실 전에 본인 확인, 수술 동의서, 수술 부위, 각종 장비 등을 확인하는 타임아웃(Time Out)이란 절차도 있다. 의료진도 실수할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을 하나도 지키지 않아 벌어진 참사를 실수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의 책임감이나 직업적 엄격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화장실 안에도 점검 리스트가 있어 청소를 하고 나면 표시를 하는 세상이다. 병원 측은 “뭔가에 씌었던 것 같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평생 고통을 받아야 할 부모의 마음, 어이없이 박탈당한 태아의 생명의 기회는 무엇으로 달랜단 말인가.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수년 전 경북 구미공단(현 구미국가산업단지) 명칭을 ‘김대중 국가산업단지’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4년 11월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와 김관용 경북지사, 두 지역 국회의원들과 시장·군수들이 모여 경북-전남 상생협력협약을 맺었는데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이름을 활용한 사업을 함께하기로 한 것.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전남 광양공단에는 박정희, 구미공단에는 김대중을 붙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두 지역은 화합 차원에서 구미에 ‘전남도민의 숲’, 목포에 ‘경북도민의 숲’을 조성했다. ▷1969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로 조성된 구미공단은 70, 80년대를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가난한 농촌마을이던 구미읍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구미역 앞은 공단 초기 3.3m²(1평)당 6만 원 정도 하던 땅값이 2년여 만에 20만 원이 넘었고 그나마 계속 올라 팔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주택 공급이 따라잡지 못해, 초기 일부 동네에서는 한 집에 평균 16명이 살 정도였다. ▷구미공단은 중국의 덩샤오핑이 경제발전 모델로 삼을 정도로 성공했다. 60년대 일본에서는 전자산업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이를 본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수출을 주도한 섬유산업과 미래전략산업인 전자산업을 함께 육성할 지역을 찾았는데, 섬유도시 대구에 인접하고 낙동강의 공업용수가 풍부한 구미를 선정했다. 70년대 중반 부산에 있던 금성사(현 LG전자)가 옮겨오고, 1988년 삼성전자가 이곳에서 국내 최초의 휴대전화 SH-100을 개발하면서 구미는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됐다. 1995년 불량 휴대전화 15만 대를 불태우며 ‘애니콜 신화’가 시작된 곳도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이었다. ▷올해 공단 50주년을 맞아 구미시가 제작한 홍보영상에서 박 전 대통령이 빠졌다고 한다. 그 대신 DJ의 구미4공단 기공식 참석,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출 200억 달러 달성 기념식 참석, 문재인 대통령의 구미형 일자리 협약식 참석 장면이 들어갔다. 시는 제작업체의 실수라고 하지만 두 차례 시사회까지 한 걸 보면 실수만은 아닌 것 같다. 현 구미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육영재단의 불법적 재단 운영에 저항해 (영남대)교수 임용에 탈락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구미시는 22일까지 음악회, 심포지엄 등 공단 5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인정하긴 싫지만 열매는 먹겠다는 걸까. 정치적 입장이 다르고, 호불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조차 외면하려는 ‘편협함’이 씁쓸하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영국 하원 회의장 바닥에는 마주 보고 앉은 여야 앞자리 앞에 각각 붉은색 ‘검선(劍線·Sword line)’이 그어져 있다. 과거 토론이 격해져 칼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검선을 사이에 두고 100마리의 침팬지가 앉아 상대 쪽을 노려보고 있는 그림이 다음 달 런던 소더비 경매에 나온다.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의 작품인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인데 200만 파운드(약 30억 원) 이상의 가격에 팔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의회 민주주의의 산실’로 불리는 영국 의회(하원)는 무척 점잖고 예의바를 것 같지만 실제는 많이 다르다. 발언자 말이 안 들릴 정도로 야유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답변하는 총리가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삐딱하게 서서 말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지난해 말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당시 테리사 메이 총리를 향해 ‘멍청한 여자’라고 속삭이는 장면이 보도됐는데, 사과를 요구하는 정도로 그쳤다. ▷폭언이라면 현 보리스 존슨 총리를 뺄 수 없다. 그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는 코빈 노동당 대표에게 ‘염소로 표백된 닭’ ‘개똥’이라고 했는데, 거짓말쟁이, 호모 등은 평범한 축에 속할 정도다. 지난해 외교장관 시절에는 같은 당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에 대해 ‘분칠한 똥’이라며 창의적인 욕까지 만들어냈다. ▷750년 전통의 영국 의회가 ‘최악의, 최후의 정치’로 가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총리의 막말도 문제지만, 그의 역대급 막장 정치 탓이다. 그는 야당 입을 막기 위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앞세워 의회를 정회시켰고, 무려 21명의 같은 당 의원을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출당시켰다. 그의 친동생인 조 존슨 기업부 부장관에 이어 앰버 러드 고용연금부 장관도 이런 행태를 보다 못해 사임했다. ▷토론은 격렬하지만 영국 의회는 국가 중대사에서는 서로 화합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특히 여야가 합심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로 의회를 운영하는 전통이 깊어졌는데 최근 몇 주간 그런 전통과 문화가 모두 깨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9일 사퇴를 선언한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230년 만에 귀족 작위를 못 받는 하원의장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보수당이 버커우가 브렉시트에 반대했다며 귀족 지위를 주는 전통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포퓰리즘이 어떻게 의회민주주의를 흔드는지 보여주는 실험장이 됐다’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올 설을 앞두고 한 여대생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명절 폐지를 간청합니다’란 글을 올렸다. 어머니가 30여 년간 수십 명 친인척의 명절 뒤치다꺼리를 혼자 도맡다 보니 너무 힘들어 이혼하고 싶어 할 정도라는 것이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담을 주는 차례상은 어디서 나온 걸까. 퇴계의 17대 종손인 이치억 씨(43·백제충청유교특성화추진단 선임연구원)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도 홍동백서 조율이시(紅東白西 棗栗梨시)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며 “저희 집안도 과일 몇 개, 전, 포 정도만 놓고 차례를 지낸다”고 말했다. 》 ―퇴계 선생 댁 차례상은 어떻습니까. “과일 몇 가지, 포, 전 정도만 올리지요. 설에는 떡국이 올라가고요. 그런데 저희 집에서는 추석 때 차례를 지내지 않고 10월에 시제(時祭)를 지냅니다.” (추석 연휴 때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요?) “원래 아주 옛날에는 돌아가신 날 각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해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지내는 사시제(四時祭)가 더 중요했고, 그때 함께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거죠. 그래서 저희 집안도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시제를 지냈는데 지금은 중양절이 연휴가 아니다 보니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모여 하는 거죠. 일부 잘못 알려져서 퇴계 선생 집안이 추석 차례 자체를 안 하는 걸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차례를 추석 연휴 기간이 아니라 10월에 한다는 뜻입니다.” (연휴 때는 뭘 합니까.) “명절이 아닌 그냥 연휴로 보내지요. 이번 추석 연휴에도 고향에는 내려가지만 손님 오면 인사드리는 정도지 별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뼈대 있는 집안인데 상차림이 너무 간소한 것 아닙니까. “명절 차례상은 물론이고, 제사상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지는 않습니다. 주자가례에도 제사상에 어떤 과일을 어느 자리에 놔야 한다고 하나하나 지정돼 있지는 않습니다. 가장 앞줄에 과일, 그 뒤는 채소, 그 뒤는 고기 등 반찬, 그 뒤는 식사… 이 정도만 쓰여 있죠. 작년 10월 시제 때는 통닭도 올렸는데요?” (통닭요?) “원래 영남지역에서는 생고기를 쓰는데 그러면 못 먹으니까 익힌 닭고기를 올렸지요.”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늘 홍동백서를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그 말이 어디서 유래됐는지는 알 수 없어요. 애초에는 간소하고 형식도 없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더 정성을 들이려는 마음과 과시 등이 더해져 과해진 게 아닌가 합니다. 퇴계는 항상 간소한 옛날 예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상에 유밀과를 쓰지 말라고 유훈을 남기셨지요.” ※유밀과(油蜜果)는 밀가루에 기름과 꿀을 섞어 반죽한 것을 기름에 지져 꿀에 담갔다 먹는 과자. 제사상에 과일 대신 올렸는데 퇴계가 유밀과 사용을 금지한 것은 비싸기도 했지만 후대에 제사가 과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중간에 상차림이 바뀌기도 했나요. “저희 집안은 원래 제사상 가장 왼쪽에 대구포를 놨어요. 그런데 퇴계 선생의 손부 때부터 가운데로 바뀌었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읜 손부가 혼자 제사를 지내다 보니 술을 따라 올릴 때마다 자꾸 치마에 대구포가 걸려 쓰러졌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중앙에 놓았는데 그게 계속 이어졌다고 합니다.”―차례, 제사를 간소화하자는 목소리가 많은데, 종손집은 어떻습니까. “종손 모임에도 1, 2부 리그가 있는데, 2부 리그 모임에 가보면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끼죠.” (1, 2부 리그라니요?) “저희 집안에서 종손은 저희 아버지 한 분이고, 저는 아직 종손이 아니에요. 종손이 될 차종손(次宗孫)이죠. 각 집안 종손들의 모임을 우스개로 1부 리그, 저처럼 차종손들의 모임을 2부 리그라고 부르죠. 근데 정말 윗세대와는 많이 달라요. 사실 변하지 않으면 계속 유지할 수도 없고요. 저희 집도 과거에 비하면 절반 정도 줄어서 10여 번만 지냅니다.” ※종손(宗孫)은 불천위를 모신 집안의 봉사손을 말한다. 불천위가 없는 집안의 봉사손은 주손(胄孫 또는 主孫)이다. 불천위(不遷位)는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영구히 제사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로 여기서는 퇴계의 신위다. 종손이 사망하면 길사(吉祀)를 지내고 차종손이 종손을 이어받는다.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아버님이 무척 열린 분이신데, 할아버지께 강하게 말씀드려 줄였지요. 제사 문제는 집안마다 특징이 있어 쉽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제사가 현대사회에 맞게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지요.” (제사가 없어질 거라고요?) “옛날 형식 그대로 유지하면 누가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간에 갈등이 계속될 테고, 그러다 보면 힘드니까 아예 ‘이럴 바엔 지내지 말자’ 하겠지요. 부모님이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특별하게 지내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입니다. 제사란 그렇게 시작된 것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형화된 틀을 만들고 형식이 마음보다 위에 있게 된 거지요. 저는 제사는 미풍양속이고 그래서 계속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제사가 변해야 합니다. 예(禮)란 언어와 같아서 사람들과 소통하면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라지고 말죠.” ―10여 번도 적은 수는 아닙니다만…. “퇴계 선생을 기리는 불천위 제사와 종손의 4대조까지 내외분 기일, 설과 추석 차례 등입니다.”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없습니까.) “없지는 않지만, 서로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아주 어르신들은 앉아 계시지만 저를 비롯해 다른 남자들은 음식도 나르고, 설거지도 하고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해요. 여자들에게만 맡겨놓고 놀지 않습니다. 불천위 제사가 아닌 가족끼리 지내는 기제사에는 남녀가 다 제사상 앞에서 절도 하고요. 음식 만드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일을 남녀가 같이 합니다.” (여성들도 절을 한다고요?) “네, 원래 예법이 그래요. 첫 잔은 종손이 올리고, 두 번째 잔은 종부가 올리지요. 단지 불천위 제사에는 손님이 너무 많이 오니까 준비할 게 많아 함께 못 하는 것뿐이지요. 남자들도 손 좀 까딱해야 해요.” ※퇴계의 불천위 제사는 퇴계와 부인 2명 등 세 번이었으나 올해부터 음력 12월 8일 퇴계 기일에 맞춰 함께 지내기로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안도 매년 8월 15일 광복절에 4대의 기일 제사를 함께 지내고 있다. ―작년 추석엔 일부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겼다던데…. “산소가 퇴계 선생부터 한 30여 기 되다 보니… 벌초 없이 성묘만 다녀도 닷새가 걸리거든요. 다 돌아보는 게 원칙이기는 하지만 너무 많아서 후손들이 나눠서 살피기도 합니다.” ―실례 같습니다만, 그냥 장남도 결혼하기 힘든데 17대 종손이라 지장은 없었습니까. “하하하, 그런 걸 묻는 기자들은 없었는데… 짚신도 짝은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사귄 것도 아니었고요. 지금의 아내와 만난 뒤 종손이라고는 했는데… 아마 그전부터 주변에서 말해줘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사 같은 문제가 없는 집보다야 신경 쓸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결혼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처가에서 반대를 안 하던가요.) “처가의 큰집도 지역에서 기와집에 사는 유지 집안이라 아내도 그런 문화에 좀 익숙한 것 같더라고요.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결혼을 안 하지는 않겠다는 사람이니까요.” ―어릴 때는 좀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고교 졸업 때까지 안동 종택에 살았는데…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의관을 갖추고 사당에 참배한 후 식사를 하셨지요. 문안 인사 드리듯이… 외출도 사당에 제를 올린 후 하셨고요. 아버지도 지금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런 걸 지키는 게 힘들었나요.) “하하하. 그것보다는… ‘너는 다른 사람하고 다르니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압박 때문에 좀 숨이 막혔죠. 유교문화가 종손에게 주는 무게라고 할까…. 그래서 고교 시절까지는 유교를 싫어했고, 유교는 정말 없어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까지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래서 탈출도 할 겸 겸사겸사해서 일본 대학으로 진학해 동아시아 지역문화를 전공했는데 그때 논어 장자를 배우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요.” ―퇴계 종손이어서 갖는 전통이 또 있습니까. “글쎄요… 돌림이 아닌 글자에 마음 심(心)자를 꼭 넣는 게 전통이라면 전통이지요. 그래서 제 이름 치억(致億)과 제 아들 이름 이석(怡錫)에 ‘심’자가 들어 있고요. 퇴계 선생의 학문을 심학(心學)이라고 하잖아요. 그 의미를 기리자는 뜻에서 종손이 될 맏아들 이름에 꼭 넣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다고요?) “네, 둘 있는데 큰애는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죠. 퇴계 이황의 18대 종손이 될 놈이죠. 하하하.” (아… 괜찮겠습니까.) “하하하.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종손인 게) 좋은 점이 더 많은 세상이 올 수도 있고요.”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최근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집(‘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제4집·2001년 출간)이 18년 만에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됐다는 뉴스가 났다. 이 보도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번역이 안 됐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참상을 가장 생생하게 알릴 수 있는 증언집이 번역되지 않았다니,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세계에 알린 걸까. 번역 팀장을 맡은 양현아 교수(59·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생각은 했겠지만 인력과 재원이 부족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증언집의 특성상 외국어 번역은 당연한 것 같은데 18년이나 걸린 이유가 있나. “우리도 지금 번역을 해놓고 보니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을 거다. 단지 그걸 감당할 인력과 재원 등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의 성격상 출판사가 관심을 갖기도 쉽지 않았고….” (다른 책들은 번역된 게 있나.) “증언집이 모두 6집인데 1집은 1995년 영국 교수가 번역해 출간됐다. 이번에 번역된 4집은 현재 초벌 번역 상태인데 이렇게 둘뿐이다.” (영국 교수가 했다고?) “음악과 한국학 전공자인 키스 하워드 교수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영화감독 대실 김 깁슨이 ‘깨진 침묵(Silence Broken)’이란 책에서 증언을 넣었지만 증언집은 아니다.” ※키스 하워드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는 국내에 국악 전도사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가 평소 일본군의 만행에 분개한 것에 비하면 좀 부끄러운데…. “왜 이 책을 번역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는 했다. 그때 ‘이렇게 어려운 한국말을 누가 번역하겠느냐’고 답했던 것 같다.” (번역이 그렇게 어려운가.) “여기 이 구절을 봐라. ‘그놈 인자 풀국 쪼깨 해가꼬 자강자강 볼바서 파싹 몰라서 주므는 한 오십 전쓱 줘.’(최갑순 증언 153쪽) 우리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완전한 구어체로 담았다. 한국인도 이해하려면 한참 읽어야 한다. 또 성폭력 경험이기 때문에 직설적인 답 대신 행간의 의미가 많다. ‘하루에 몇 명 상대했어요?’라고 이렇게 대놓고 물을 수가 없었다. 에둘러 물으면, ‘그게… 뭐더라…’ 하고 딴청 피우다 ‘이것 좀 드셔’ 하며 회피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작업을 한 우리들은 증언집을 글이자 동시에 소리집이라고 불렀다. 이런 글을 누가 영어로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고…. 보수 정부 시절에는 ‘위안부’ 운동과 연구에 대한 사기가 많이 떨어져서 일부러 찾아다니며 번역하자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위안부(慰安婦)’란 말은 일본군의 만행을 축소하는 면이 있는데 여전히 쓰는 이유가 뭔가. “사실 극심한 성폭력에 ‘위안’이라고 쓰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일본군이 그런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역사성도 갖고 있고, 처음에는 이 용어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적었을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일본군 성노예제(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고 불렀는데, ‘위안부’라는 말을 지금도 사용하는 것은 관성도 있지만, 심각한 성폭력을 은폐하고 사소화하려는 기막힌 역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용어가 괜찮아서가 아니다. 그래서 ‘이른바’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위안부’라고 작은따옴표를 붙여 쓰고 있다.” ※증언 4집은 ‘위안부’를 ‘comfort woman’으로 번역했다. ―이번 번역은 어떻게 이뤄지게 된 건가. “번역이 필요하다는 요구는 있었다. 마침 작년에 여성가족부에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가 창립됐는데 그때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연구소에서 용역사업으로 발주했는데 우리 팀이 선정됐다. 7팀이나 지원해서 좀 놀랐다.” (7팀이나?) “국내 출판사, 대학 연구소 등에서 지원했던 것 같다. 의미 있는 사업이라 참여한 게 아닌가 싶다.” ※양 교수 팀은 서울대 여성연구소와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소재 한국학센터 연구자들로 구성됐다.―단순히 한국말을 영어로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고 하던데…. “예를 들어 ‘보국대에 끌려갔다’ ‘방적공장에서 일했다’는 증언을 번역할 때, 당시에 보국대 제도가 실재했는지, 피해자가 있던 방적공장이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확인했다.” (왜 그런 건가.) “영문 증언집이 출간되면 외국인들이 보고, 특히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 사실이 아니면 증언의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군을 Customer, 손님으로 번역했는데 오해의 소지는 없나.) “피해자들이 그렇게 증언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이 번역을 보고 ‘위안소가 민간이 설립한 성매매업소와 비슷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군 허락 없이 위안소를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군인들만 이용했고, 성병 검진은 군의관들이 했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맥락을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외국인들은 배경을 모르니 오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설명과 지배자의 언어로 현실을 이해해야 했던 피해자 입장에 대한 각주를 달았다.” ―일본어 번역은 어디서 했나. “지난해 용역사업을 발주하면서 일본어 번역도 같이 하려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됐다. 그래서 김부자 일본 도쿄외국어대 교수와 다른 연구자들이 자체적으로 올 4월에 번역을 끝냈다. 지금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 정부 지원을 안 받은 게 일본에 있는 학자들에게 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에는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많은가.) “사실 ‘위안부’ 연구나 식민주의 책임에 대한 연구가 한국보다 일본이 더 많은 것으로 안다. 식민주의와 가부장제 문제에 깨어 있는 지식인도 많다. 마쓰이 야요리 같은 분은 히로히토 일왕의 책임을 지적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아사히신문 기자를 지낸 마쓰이 야요리(68·사망)는 퇴직 후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며 도쿄에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실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일왕과 일본 정부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로 인해 그는 일본 사회에서 많은 핍박을 받다가 2002년 12월 암으로 사망했다. ―미 캘리포니아주가 2016년 중등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됐는데…. 미국 안에도 일본 지지 그룹이 있어서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소됐다’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도 함께 가르치도록 했다. 역사 교육을 놓고 외국에서 한일이 경쟁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영문 번역에 참가했던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센터 연구원들은 미국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위안부 문제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정말 얼마나 아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증언 4집이 거의 10년 전에 개정판을 냈지만 아직도 시중에 남아 있다는 게 우리의 관심 부족을 방증하는 것 아닌가 한다.” ―일각에서는 ‘위안부’ 대다수는 계약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하는데…. “일본 정부 주장인데…. 강제의 등급에는 납치 같은 좁은 것도 있지만, 제도화된 넓은 의미의 강제도 있다. 어떤 마을에 ‘10명을 모집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이장이 나섰다면 이는 행정적으로 강제된 동원이다. 동행한 군인도 총칼을 휘둘러야만 강제가 아니다. 있는 것만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데…. 일본군 성노예제를 ‘체계적 강간’이라고 부르는데, 법과 정책에 의해 성노예제를 수립하고 광범위한 피해자를 양산한 강간을 의미한다. 피해자의 동의나 가해자의 물리적 폭력, 강요 여부와는 무관하다.”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 제기를 반일 종족주의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식민주의(colonialism)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반(反)일본을 하자는 게 아니다. 광복 후 일제의 잔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탓에 식민주의 유산이 너무나 많이 답습됐다. 우리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 얼마나 배웠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한국인이 누구인가를 가르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 첫걸음으로 우리 안에 있는 식민주의 영향을 직시하자는 거다.” ―우리 사회가 호주제 폐지에 담긴 큰 의미를 직시할 기회를 놓쳤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호주제는 우리 전통이 아니고 일제가 식민 통치를 위해 도입한 가족제도다.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하면서 여성 차별과 함께 식민주의 법제도라는 점이 중요한 논거였는데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는 후자가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걸 보면서 우리 법 안에 녹아 있는 식민지성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웠다.” ―‘위안부’도, 호주제도 일제 때 일인데… 이 분야에 관심 갖는 이유가 뭔가. “일제 식민주의 역사를 모르면 어떻게 그로부터 빠져 나와야 하는지 길을 찾기 어렵다. 탈식민주의는 우리 안에 내재한 식민주의의 영향을 직시하고, 하나의 민족이라는 허상 속에서 차별당한 여성과 민중을 조명하자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가족제도는 서로 다르지만 내게는 ‘포스트식민 페미니즘(postcolonial feminism)’의 문제의식을 일깨우면서 함께 다가왔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올 4월 미국의 한 정보기술(IT) 전문지가 최신 스마트폰의 지문 잠금 기능이 위조 지문에 의해 해제되는 과정을 보도했다. 첩보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와인 잔에 묻은 지문을 카메라로 찍어, 이를 3D프린터로 인쇄한 것. 위조 지문을 갖다댄 지 세 번 만에 스마트폰의 지문 잠금 기능은 간단히 해제됐다. ▷쓰려고 하면 갱신해야 하는 공인인증서, 하도 바꿔 기억도 나지 않는 비밀번호, 어디 뒀는지 모르는 보안카드… 관리하기 어려운 본인인증 시스템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게다. 생체정보인증 시스템은 이런 분실이나 도용 위험이 없어 차세대 보안 기술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미 국내 공항에서는 지문과 손바닥 정맥을 등록하는 생체정보 사전등록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현금인출기에서 손바닥 정맥, 지문, 홍채인식을 통해 예금을 찾는 서비스도 시작됐다. 내년부터는 전자발찌 착용자의 땀 등 체액정보를 전송받아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는 기술도 반영된다. 지난해 전 세계 글로벌 바이오 인증 시장은 약 168억 달러(약 20조4000억 원)에 달하고 매년 2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체정보는 한 번 유출되면 바꿀 수가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2015년 미국 연방 인사관리국(OPM)에서는 해킹으로 전현직 공무원 2000만 명의 개인정보와 지문정보가 유출됐는데, 미국 행정부 시스템이 지문인증 방식이었다면 해커들 손에 장악됐을 거란 지적이 많다. 나시르 메몬 뉴욕대 교수는 8200개의 지문 패턴을 분석해 소위 ‘마스터 지문’을 만들었는데, 지문인증 스마트폰의 65%를 열 수 있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행정당국의 얼굴생체정보인식기술을 이용한 감시를 금지시켰다. 잦은 오류로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데다, 조지 오웰의 ‘1984’처럼 감시사회를 부른다는 지적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아마존의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로 2만5000명의 범죄자 사진과 모든 미 상하원 의원의 얼굴을 대조했는데 의원 28명이 범죄자로 지목됐다. ▷한 국내 생체인증기술 기업이 갖고 있던 수백만 건의 지문과 얼굴 정보가 인터넷에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나마 자체 발견도 아니고 이스라엘 보안 전문가가 발견해 알려줬다고 한다. 비밀번호라면 바꾸기라도 할 텐데, 생체정보 유출은 성형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의 발달이 주는 그림자는 너무도 짙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영화배우 고(故) 신성일은 생의 마지막 시간을 전남 화순의 한 요양병원에서 보냈다. 지난해 10월 중순 인터뷰를 위해 찾았는데, 마치 경치 좋은 곳에 있는 깔끔한 콘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매주 한 번 ‘신성일 영화제’를 열고 자신이 출연한 작품들을 지인들과 함께 감상했다. 경북 영천에 ‘성일가’란 이름의 한옥을 짓고 만년의 거처로 삼았던 은막의 대스타.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보름여 후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죽음을 앞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생애 말기로 접어든 어르신이나 환자가 자기가 살던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사치일 수도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절반 이상은 요양시설을 찾는다. 지난해 사망한 65세 이상 노인 중 요양원, 요양병원 등 요양시설 이용자는 13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1인당 평균 707일(약 1년 11개월)을 시설에서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좋은 요양시설이라 해도 내 집만큼 편하겠는가. 의료기관에서 말년을 보내는 기간이 길수록 행복한 임종과는 거리가 멀기 마련이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60.2%는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하기를 원하지만, 2017년 국내 사망자 중 14.4%만 집에서 숨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 임종을 맞고 있는 셈이다. ▷1991년에는 가정 사망이 75%였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부모님도 상태가 위중해지면 집으로 모셔와 평소 거처하던 방에서 삶의 끝자락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 한 세대 만에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쇠약한 부모님이나 환자를 가정에서 직접 돌보는 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가정 간호와 임종을 돕는 사회적 시스템이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족이 환자의 통증 관리나 심리적 문제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 생업을 포기하거나 개인 간병인을 둬야 할 경우라면 경제적 어려움까지 가중된다.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은 것은 대부분 노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부모 된 마음으로 자녀에게 부담 주기 싫어 마지못해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자식들 역시 어쩔 수 없으니 낯선 곳에서 부모님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병원 사망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임종은 삶의 한 단계가 아니라 의료 문제로 변질됐다. 대개의 한국인이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회. 어떻게 하면 죽음이 성큼 다가왔을 때 편안한 환경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화두를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매일 어두워지면 집 뒤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졌다. 쓰레기통 안에는 근처 채소상이 버린 배춧잎이 많았는데 그중 먹을 만한 걸 골라 씻고 소금에 절였다. 곽 여사는 이걸 끓여 죽과 찬거리를 만들어 아들과 임정 요인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임정 요인들은 동전 한 닢으로 시장에서 국수 찌꺼기를 받아와 먹기도 했는데 그나마도 거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체격이 컸던 백범은 평소에는 식사량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백범일지에 서대문형무소 투옥 시절의 고통을 적었는데 첫째는 악형, 두 번째는 배고픔, 회유와 우대가 그 다음이었다고 했다. 임정 시절에는 오후 늦게 이 집 저 집 동포들의 집을 다니며 한 술씩 얻어먹는 일이 많았는데, 임정이 재정적으로 극도로 궁핍한 데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폭탄이나 무기를 장만하는 데 먼저 썼기 때문이다. 이런 백범이 자주 먹었던 음식이 쭝쯔(粽子)였다. ▷쭝쯔는 찹쌀이나 쌀가루를 대나무 잎이나 갈잎으로 싸 실로 묶은 뒤 쪄먹는 중국 음식이다. 지역에 따라 안에 돼지고기와 팥앙금, 대추를 넣기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단옷날 쭝쯔를 먹는 풍습이 있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재상이자 시인인 굴원이 간신들의 참소를 받아 이날 자결한 것을 기리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단옷날 외에 평소에도 우리의 김밥처럼 시간이 없을 때나 여행 중 휴게소 등에서 빨리 먹기 위해 애용한다. 늘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야 했던 백범에게는 간단하면서도 지니고 다니기 좋은 쭝쯔는 최적의 ‘독립요리’인 셈이다. ▷임정의 충칭 시절(1940∼1945년)에는 ‘납작 두부볶음’도 자주 식탁에 올랐다. 식사 등 임정 안살림을 맡았던 오건해 선생은 중국어를 하지 못해 재료를 사러 시장에 나가는 게 너무 눈에 띄고 위험한 일이어서 직접 콩을 재배해 두부를 간장에 조린 이 음식을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독립유공자 및 유족을 초청해 함께한 오찬에도 쭝쯔와 오건해 선생이 만들었다는 ‘훙사오러우(紅燒肉·간장으로 조린 돼지고기)’가 등장했다.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최근 종로구 익선동에는 ‘독닙료리집’이라는 음식점이 한 달간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독립운동가들이 먹던 음식 10가지를 제공했는데 한 달간 6000여 명이 다녀가는 성황을 이뤘다. 맛집이나 별미로 생각하고 찾아온 젊은이들은 음식에 담긴 사연을 듣고 숙연해했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보였던 음식들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해준 고귀한 헌신과 희생의 역사에 고개가 숙여진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1960년대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스탠리 밀그램은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교사가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했다. 전기충격기는 가짜였고 학생도 실제론 배우였지만 교사 역할에 참여한 일반인들은 이를 몰랐다. 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교사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는 비명을 질렀다. 밀그램은 학생이 죽을 수도 있는 최대치(450V)까지 누를 참가자는 0.1%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는 65%가 눌렀다. 이들은 ‘모든 책임은 연구자가 진다. 당신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에 무감각하게 따랐다. ▷최근 미국 국무부 외교관으로 일하던 척 박(박영철·35)이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사임했다. 뉴욕 출신의 한인 2세인 그는 “공짜 주택이나 퇴직연금 같은 직업적인 특전 때문에 한때는 너무나 분명했던 이상에서 멀어지고 양심을 속였다”고 토로했다. 멕시코 영사관 행사에서 미국의 우정과 개방성에 대해 말하는 그 시간에 미국에선 수천 명의 불법체류 청년들이 쫓겨나고 있고,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 대응이 논란이 될 때 리스본 대사관에서 흑인 역사 주간을 열어 축하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이런 행태에 반발하는 어떤 반(反)트럼프 움직임도 내부에서 보지 못했다”며 이런 미국을 ‘자기만족적 국가(Complacent State)’라고 지칭했다. ▷뉴욕타임스는 인권 탄압 비판을 받아온 불법 이주자 부모와 아이의 격리 수용이 최근 다시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런 ‘비열한 행위’는 이를 돕는 공무원들 때문에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그런 건 아니다. 돈 맥갠 백악관 법률고문은 로버트 뮬러 특검을 해임하라는 트럼프 지시에 반발하다 지난해 사임했다. 4월에는 키어스천 닐슨 국토안보장관이 미-멕시코 국경지대 통관항 및 검문소 폐쇄에 반대했지만 트럼프는 받아들이지 않고 해임으로 답했다. 이런 일부 고위직의 저항에 이어 실무자급에서 처음으로 척 박이 나선 것이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일상의 지시를 수행했지만, 결과가 양심에 배치되는 일이 될 때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한다. 하지만 대개는 지시를 이행하는 것일 뿐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밀그램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정의로운 시민들이라 해도, 옳지 않은 권위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들 또한 야만성과 비인간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미국이 과연 과거처럼 자유 공정 관용의 가치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임금 및 단체협상을 놓고 벌이는 파업은 우리에게는 흔한 모습이다. 올해도 여름휴가가 끝나는 이달 중순부터 현대·기아자동차, 한국GM 등 완성차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현대중공업, 인천제철 등 조선·제철 분야에서 줄줄이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파업은 노조의 가장 큰 무기지만, 과연 얼마만큼 실익이 있는 걸까. 이정묵 SK이노베이션 노조위원장(57)은 “이제는 노조도 조합운동과 노동운동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노조는 올 3월 30분 만에 임금협약을, 지난달 29일에는 교섭 3주 만에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초면에 실례인데 혹시 어용 노조 아닌가. “하하하, 어용인지 아닌지를 내가 말해야 소용없고…. 개인적으로는 어용이니 강성이니 하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노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97년에 해고됐는데 해고되는 어용도 있을까?” (왜 해고된 건가?) “당시 노조 운영을 위원장이 거의 독단적으로 했다. 지금은 노사가 잠정 합의를 하면 대의원 대회에 보고하고 찬반투표를 통해 결정하지만, 당시에는 위원장이 직인을 찍으면 끝이었다. 조합원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인데도 일단 결정했으니 따르라는 식이다. 그래서 노조 바로 세우기 운동을 했는데 회사가 울산에서 서울로 근무지 이동 발령을 냈다.” ―노조 바로 세우기는 회사로서는 좋은 일인데 왜 서울로 발령을 낸 건가. “노조 집행부 불신임 운동을 했는데 주동자인 나를 솎아내야 조직이 와해되니까…. 기존 노조는 물론이고 당시에는 회사도 나를 불편해했던 것 같다. 부당 전직이라고 생각해 울산으로 출근투쟁을 했는데 무단결근으로 해고됐다.” 그는 입사 전에는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다. ―위원장은 어떻게 당선된 건가. 기존 노조나 사측에서는 달갑지 않았을 텐데…. “법적 투쟁을 거쳐 2001년 복직한 뒤 2008년 출마해 당선됐다. 그런데 그 6, 7년 사이에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강성 투쟁이 이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다.” (노사 대립이 심했나?) “무조건 대립과 충돌을 통해 얻으려 했으니까…. 처음에는 좀 먹혔는데 몇 년 하다 보니 회사도 내성이 생겨 잘 안 통했다. 그러다 보니 충돌이 더 자주 일어났고 결국 중재위원회까지 가서 직권 중재를 받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고도 결과는 조금씩 양보한 것보다 못했고…. 머리띠 매고 목소리만 크다고 장땡이 아니라는 걸 안 거다.” ―중재위는 조정이 결렬되면 정당한 파업권을 얻기 위해 가는 곳 아닌가. SK이노베이션은 필수공익사업장이라 당시에는 파업권도 없었는데 왜 간 건가. “내친김이니까 기 싸움으로 간 거지…. 다른 회사는 중재위 조정이 안 되면 파업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게 안 되니까 직권 중재를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중재를 받으면 조금 더 얻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2008년 이전까지 필수공익사업장은 파업권이 없는 대신 국가가 직권중재를 통해 분규를 해결했다. 2008년 직권중재 제도가 폐지되고 파업권이 보장됐으나 대신 필수인력을 남겨두도록 했다. ―2017년부터 임금 인상을 물가 인상만큼만 하고 있는데 이유가 뭔가. “2008년 위원장을 할 때도 얘기했는데 그때는 깊게 논의하지 못했다. 2016년 출마하면서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고도성장기에는 몇십 %씩 임금이 올랐지만 성장이 정체되면서 임금인상률도 낮아지고 있다. 한계치에 온 건데… 더 이상 싸워서 임금을 계속 올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또 좋을 땐 올리고 안 좋을 땐 동결하는 식보다 적지만 꾸준히 오르는 임금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야 생활계획을 안정적으로 세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 회사에 맞는 적정 임금인상률이 얼마인지 고민했고 지난 10년간 싸워서 얻어 낸 결과를 분석했더니 연평균 2.02% 인상이었다.” ―10년간 투쟁했는데 고작 2.02% 인상이었다는 건가. “더 허망한 건 같은 10년간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4%였다는 점이다. 2015년에는 적자 때문에 임금이 동결됐다. 2016년에는 3∼4% 인상을 요구하며 그렇게 싸웠지만 결국 중재위에서 1.5%로 결정됐다. 처음부터 물가상승률만큼만 인상안을 제시했다면 노조 내부에서 난리가 났겠지만 사실은 싸우지도 않고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거다.” (다른 수치가 높은 경제지표를 제시했으면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수치가 높은 경제지표는 많다. 하지만 서로 간의 차이가 클수록 협상이 안 되지 않나.” ※SK이노베이션의 임금인상률은 2017년 1%, 2018년 1.9%, 2019년 1.5% 등 전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만큼만 올랐다. ―회사가 흔쾌히 받아들였나. “회사로서는 적자가 나도 올려줘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실적이 안 좋으면 기업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게 임금 동결 아닌가. 적자 때는 중재위에 가도 노조가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다. 대부분 동결된다. 하지만 취지에 공감해 합의를 했다.” ―회사가 3년 연속 3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냈다. 합의는 했지만 그래도 회사 실적이 좋은데 임금 인상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불만은 없나. “물가와 임금을 연동하는 데 반대했던 사람들 중에는 불만인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조합원은 해마다 75∼90% 이상 찬성으로 임금인상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실적이 좋아졌다고 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실적이 좋으면 성과급으로 받으면 된다. 회사도 그걸 인정했고 그래서 원래 1월에만 나오던 성과급을 2017년 단협에서 7월에도 주는 걸로 바꿔 지금 두 번 받았다. 기본임금은 안정적으로 가고 실적에는 성과로 배려하는 것, 이게 맞는 방향 아닌가.” ―최근 단협을 3주 만에 체결했다. 단협은 종류가 많아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 곳도 많은데 별다른 쟁점이 없었나. “정년 연장(60→62세)과 통상임금이 가장 컸는데 둘 다 나중에 얘기하기로 했다. 정년 연장은 개별 회사가 먼저 치고 나가기가 부담스럽고, 통상임금은 소송 중이라 지금 합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노조가 이 둘을 양보하는 대신에 회사가 다른 부분을 받아줘 빨리 끝났다.” (어떤 걸 얻었나.) “가장 큰 게… 우리 회사는 만 60세 되는 해 태어난 달에 정년퇴직을 한다. 그런데 매년 1월 받는 성과급은 그 전해에 12개월 만근을 해야만 받았다. 그걸 정년퇴직한 달까지 일한 성과급을 받을 수 있도록 바꿨다.” ―조합원들이 기부금을 걷어 협력사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준다던데…. “어느 회사나 원청과 하청 직원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 우리가 작은 정성이라도 보여줌으로써 조금이나마 갈등을 줄이고 싶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협력업체 직원들을 우리의 동료로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의 표시다. 또 우리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시대도 지났다.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우리도 좋은 일 좀 하자, 그리고 자긍심을 느끼자며 제안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매달 기본급의 1%를 내고 있다. 옛날에는 노동자를 속된 용어로 폄훼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노동자도, 노조도 생각을 바꿔야 하고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자발적이라고는 하지만 올해 임금인상이 1.5%였는데 1%를 기부한다는 건가. “이해가 안 갈 거다. 그런데도 조합원 대다수가 찬성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면 기업의 가치가 좋아지고, 회사도 노조에 더 마음을 열 거라고 생각했다. 취지가 좋다 보니 회사도 동참해서 조합원들이 낸 금액만큼을 매칭 방식으로 보태고 있다. 절반은 불우이웃 등 소외계층을 돕고, 절반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매년 1월 보너스로 전달한다. 올해도 60여 개사 4200여 명에게 총 23억6000만 원을 지급했다. 1인당 50만 원 정도다.” ―노동운동과 노조운동이 다르다고 했는데…. “누군가는 나를 보고 ‘저게 무슨 노동운동이야’라고 할 수 있지만…, 조합운동과 노동운동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합운동은 회사 안에서 조합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억압과 탄압을 막아주는 거다. 최대한 협상을 하다가 끝내 안 됐을 때는 노동운동으로 전환해서 싸울 수 있겠지만 시작부터 너희는 적이야 하는 식으로 싸우기만 하면 되나. 우리가 그러면 사측도 우리를 그렇게 볼 텐데 그럼 보따리가 안 풀린다. 그 구별을 하자는 거다.” ―노동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강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어용으로 매도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그래서 주변에 이런 얘기를 자주 하는데… 시대 변화에 맞는 노동운동을 개발하는 게 결코 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런 노력보다 수십 년간 해오던 대로 협상이 잘 안 되면 머리띠 매고, 그래도 안 되면 관성적으로 파업했다. 사실 가장 편한 방식인데…. 투쟁도 대중이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명분과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고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히스패닉이 내가 사랑하는 텍사스주 정부와 지방정부를 장악할 것이다.’ 3일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한 대형 쇼핑몰에서 총기 난사로 20명을 숨지게 한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21)는 범행 전 이런 내용의 선언문을 올렸다. 히스패닉 때문에 텍사스가 민주당 텃밭이 될 것이며, 자신의 공격은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대적 교체(The Great Replacement)’를 언급했다. ▷‘대대적 교체’는 2011년 프랑스의 작가 르노 카뮈(73)가 쓴 책(Le Grand Remplacement)에서 나왔다. 기존 토착 인구가 이주민에 의해 교체되면서 발생하는 인종 소멸 공포를 담았는데, 21세기 서구의 반(反)이민·분리주의 정서에 불을 붙인 것은 물론 유럽의 극우정치인들에게 사상적 기반을 제시했다. 3월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 테러 사건의 범인도 범행 전 같은 제목의 선언문을 올렸다. 그는 ‘출생률 탓’이라고 강조하며 “몇백만 명이 국경을 넘어와 백인을 대체한다”고 했다. 2017년 8월 미국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유혈 참사를 일으킨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너희는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You will not replace us)”고 외쳤다. ▷크루시어스의 트위터에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 트럼프의 정책을 칭송하는 글이 많았다고 한다. 트럼프는 그의 테러를 비난했지만, 최근 실제 언행은 달랐다. 트럼프는 유색인종 출신 민주당 여성 초선의원 4명에게 “원래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고, 흑인 인권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에 대해 “사기꾼이고 백인과 경찰을 싫어한다”고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의 대표 저자인 밴디 리 예일대 의과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취임 후 미국에서 증오범죄와 학교폭력이 늘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는 두 배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대통령이 이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며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낸 제임스 길리건 등 정신의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스트롱맨들의 출현과 반이민·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가 느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세계화가 고도화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는데, 이런 불만을 저급한 지도자는 사회적 약자나 이방인 등 외부로 돌리고, 불만계층이 이를 폭력이나 테러의 이유로 삼는 악순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이런 지지층을 결집시켜 정치 생명을 연장한다. ‘진정한’ 대대적 교체가 필요하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중독 질병 코드 등재를 국내에 적용하기 위한 민관협의체가 23일 국무조정실 주도로 출범했다. 업계에서는 2025년경부터 WHO 조치가 실제 국내 산업현장에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의 규제도 만만치 않았는데 게임업계로서는 엄청난 강적을 만난 셈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 1세대 개발자인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게임에 마약처럼 중독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안 맞는다고 본다”며 “업계가 명작이라 불릴 만한 좋은 게임을 계속 만들다 보면 나쁜 인식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국내 온라인 게임 산업이 있게 한 바람의 나라(넥슨·1996년)와 리니지(엔씨소프트·1998년)의 개발자다. 》 ―게임중독이 정확한 표현인가? 정립된 용어는 아닌 것 같은데…. “WHO가 쓴 용어는 Gaming Disorder(장애)다. 이를 우리는 게임중독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정립된 용어는 아니다. 직역하면 ‘게임이용장애’이고, 업계에서는 ‘과몰입’이라고 부른다. 게임을 하다가 중단하는 게 잘 조절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걸 ‘게임중독’이라고 부르니까 마치 게임 자체가 술이나 마약같이 엄청나게 해롭고, 한번 빠지면 절대로 헤어날 수 없는 듯한 인식을 준다. 안 그래도 인식이 안 좋았는데, 더 안 좋게 됐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게임을 만들 수는 없지 않나.) “개발자로서는 일종의 자기모순적인 상황인데…. 중독자처럼 게임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단지 그들은 게임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고, 게임은 그 도피처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국무조정실은 게임중독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게임이용장애로 쓰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이 없더라도 다른 것에 빠졌을 것이라는 건가. “한때 게임에 빠져 공부나 일에 지장을 받아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금만 지나면 잊어버리고 일상에 복귀한다. 그걸 알코올이나 마약에 붙이는 중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당한지 모르겠다.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게임 자체를 매도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국내에 실제 적용되면 어려운 상황이 많이 발생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고…, 업계에서 ‘게임은 문화다’라는 캠페인을 하고는 있다. 게임이 영화 같은 문화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우리도 수준을 올리자는 것이다. 무시당하지 않게…. 그러기 위해서는 명작 영화나 소설처럼 어릴 때 경험한 게임 때문에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동을 주는 게임이 많이 나와야 한다. 아직은 그런 게임들이 많이 부족하다.” (‘달빛조각사’란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그 정도의 역작인가?) “하하하. 아직은 그렇지 않다. 인터뷰를 조금 망설인 것도 말과 만든 게임이 일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단지 명작을 만들고 싶은 과정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차세대 정보기술(IT) 유망 분야로 게임을 손꼽지 않은 정부가 없는데 규제는 많이 풀렸나.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온라인 게임 월 결제한도 제한이 16년이나 유지되다가 지난달에야 폐지됐다. 온라인 PC게임의 1인당 월 결제한도를 50만 원으로 제한한 것이다.” (게임산업 육성이 언제부터 나왔는데 16년 동안이나 그런 규제가 있었단 말인가.) “더 우스운 게 그동안 PC만 규제하고 모바일은 안 했다. 모바일 게임에서는 금액과 관계없이 얼마든지 게임 아이템을 살 수 있었다.” ―형평성이 안 맞는데 왜 그런 건가. “규제할 방법이 없으니까…. 모바일 게임에 결제한도 규제를 하려면 애플이나 구글에 요청해야 하는데 법적인 규제 근거도 미약하고, 다국적 회사들이 받아들일 리도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 결제한도 제한은 온라인 게임의 사행성 논란이 일면서 2003년 업계 자율 규제로 시작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율규제였으나 사실상 정부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자율규제라 법적 효력은 없지만 결제한도가 없는 게임을 만들 경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등급을 허가하지 않는 식으로 규제했다. ―요즘은 같은 게임을 PC와 모바일 등 양쪽에서 다 즐길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나. “그래서 국내 게임회사들이 조심해야 했던 게… 양쪽을 합쳐 50만 원을 넘으면 안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지키지 않았다가 걸려서 한 달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곳도 있다. 영업정지란 게임 이용 중지다. 큰 회사라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지만 작은 회사는 문을 닫을 수도 있을 정도의 처벌이다.” ※2015년 8월 NHN블랙픽의 온라인-모바일 연동 게임인 ‘야구 9단’에서 결제 초과가 발생했고, 당시 성남시는 영업정지 한 달을 내렸다. ―외국도 그런 월 판매액 한정 제도가 있나. “내가 아는 선에서는 없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특히 학부모일수록 게임에 대한 생각이 아주 부정적이다.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인생에 도움도 안 되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으로 본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1순위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됐고…. 그러니 ‘무슨 게임하는 데 50만 원씩 써’라고 생각하고, 제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사실 기타 연주가 취미인 사람이 악보를 사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운동복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게임하는 건 한심하게 보는 거지. 우리 아내도 내색은 안 하지만 내가 게임하고 있으면 좀 한심하게 보는 것 같기는 하던데…. 하하하. 당장 빠르게 개선될 인식은 아니고, 어려서 게임을 하면서 자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점차 변하지 않을까 한다.” ―다른 나라의 게임 규제에는 어떤 게 있나. “중국을 제외하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중국에는 3시간 컷오프 제도가 있다. 한 가지 게임을 연속으로 3시간 이상 하면 얻은 점수를 절반으로 깎는 것이다. 근데 겉으로는 청소년 보호라고 했지만 사실은 게임 중 채팅 등을 통한 정보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서가 더 큰 목적이라고 들었다.” ※중국은 2007년부터 시행한 3시간 컷오프 제도를 통해 18세 이하 청소년이 같은 게임을 연속으로 3시간 이상 하면 얻은 게임 점수의 절반을 차감하고, 5시간 이상이면 모든 점수가 사라지도록 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이 아이템 판매 방식이다 보니 사행성 문제가 생기고 게임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아지는 것 아닌가. “스타크래프트 같은 패키지 방식 게임은 한번 게임 CD를 사면 더 이상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북미와 유럽은 이런 방식으로 게임을 만들고, 시장도 이쪽이 훨씬 크다. 반면 우리와 중국에서는 P2W(pay to win·온라인에서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고 대신 필요한 아이템을 사도록 유도하는 게임) 방식이 더 인기다. 매출도 이쪽이 훨씬 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솔직히 게임 아이템에 왜 돈을 쓰나 하는 생각이 있다.) “우습긴 한데 나도 좀 그렇다. 하하하. 좀 옛날 사람인 데다 어렵게 자라서….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사는 문화에 별 저항감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투자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템을 안 사면 아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만든 게임들이 돈은 더 잘 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달빛조각사도 그렇고 돈을 안 써도 할 만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 대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돈을 주고 게임 아이템을 사는 행위가 당신이 만든 리니지에서 시작됐는데…. “1998년 리니지를 출시한 뒤 얼마 후 아이템을 사고판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템 판다고 속여 돈을 받고 잠적하는 신종 사기가 등장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만든 나조차 ‘진짜? 미친 것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말이 검이고 망토지, 사실 데이터베이스상의 01010101의 조합일 뿐인데 왜 이걸 돈을 주고 사는지 이해가 안 갔다. 당시 리니지는 월 2만7900원을 내고 이용하는 정액제로 아이템을 파는 게임이 아니었다. 그때는 아이템을 판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저들이 지금 전 세계 온라인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해준 셈인데…. 수요가 있으니 공급자가 생기고, 거래를 안전하게 중개해주는 아이템베이란 회사도 생겼다. 게임은 무료로 즐기되 필요에 따라 아이템을 사야 하는 부분 유료화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처음 개발한 거다.” ―좀 다른 얘긴데 직원들이 별로 대표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전에 한 신입사원이 자기소개 중에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해서 ‘주인은 난데 왜 당신이 주인의식을 갖느냐. 그저 임무에 충실하고 일찍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뭔가 굉장히 신선한데?)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건 좀 허위적인 것 같다. 내 귀에는 꼭 ‘월급은 더 줄 수 없지만 일은 많이 해 주세요’란 의미로 들리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실력도 체력도 부족한데 정신력으로 버티면 된다고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인가? 좀 자유롭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됐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 52시간제 등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사회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위한 것이 많다. 그런데 정작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그들이다. 대통령은 ‘사람중심경제(J노믹스)’를 표방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J노믹스를 설계했던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는 “현 정부가 원설계에서 많이 바꾼 데다 실행 과정에서도 우리가 처한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경제 질서에 대한 어떤 인식이 부족했다는 건가. “문재인 정부는 공정하고 특권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내세웠다. 그리고 이런 가치에 부합하지 못한 과거의 잘못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없애려고 했다. 지향하는 바는 동의한다. 문제는 방법론이 미숙했다.” (방법론이라니?)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에 지면 물건이 안 팔리고, 안 팔리면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 상품 경쟁력은 기업 경쟁력에서 나오고,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그 국가에 있는 게 도움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 상황은 기업이 머무르기에 좋은 환경인가? 정부정책이 그런 질서와 맞지 않았다. 양극화를 막고 저소득층의 생활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릴 수는 있다. 그 자체는 좋은데, 임금은 결국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을 포함한) 기업이 주기 때문에 주는 쪽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고민했어야 했다. 그게 미숙했다.” ―그건 너무나 상식적인 고려 아닌가. 청와대가 몰랐을 리가 있나. “몰랐다기보다는… (얽히고설킨) 경제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투른 정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부작용이 경제 성적표의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고….”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친분이 두터운데 그가 시장경제질서를 모를 수가 있나.) “장 전 실장이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래 기업 내 분배 쪽에 관심이 더 많다 보니… 분배에서 노동자가 너무 적게 가져가는 걸 고쳐주는 게 정의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인식이 조금 정확하지 못했던 게 우리나라는 영세 기업이 엄청 많다. 그들의 소화 능력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부작용에 대한 보완도 일자리안정자금 등으로 도와주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한 것 같고…. 의사가 약을 쓸 때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쓰면 되나. 정책도 마찬가지다. 세련된 정책이란 정책의 속도와 강도를 대상자가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지 알고 하는 것이다. 선한 의지는 인정하지만, 세련됨이 부족해 결과가 이렇게 됐다.” ―너무 호되게 겪어서인지 최저임금 차등 적용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음식점이든 주유소든 지역과 업종마다 임금을 주는 쪽의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이 주나. 지금 같은 동일한 최저임금 적용은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현 김상조 정책실장과도 지난 대선 캠프에서 함께 일했는데…. “김 실장이 이미지는 재벌 공격수로 돼 있지만, 그건 좀 공정을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아주 유연한 스타일이다. 재벌에 무슨 원한이 있거나 고집만 부리는 사람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장 때는 진보 쪽에서 욕을 먹기도 했다. 변했다고…. 물론 경영계에서는 강경파로 보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매우 유연하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을 할 거라 본다.” ―문 대통령은 ‘사람중심경제’를 표방했는데 왜 서민층이 더 힘들어진 건가. “지난 대선 캠프에서 내가 그걸 주도했는데… 원래 내가 설계한 J노믹스는 사람에게 투자하자는 것이었다. 사람의 능력을 올려주면 근로자는 소득이, 기업은 경쟁력이 올라간다. 기업 경쟁력이 오르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렇게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사람중심경제’다. 그런데 나중에 그냥 임금 보조해주고 올려주는 걸로 바뀌었다. 임금을 올려주더라도 교육, 직업훈련 등 사람에 대한 투자가 병행됐어야 하는데…. 물론 스스로 나아지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 부분은 복지로 해결해야 하는 거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미래를 준비하기 때문에 투자를 하면 충분히 한 단계 올라간다. 그게 빠졌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투자는 고사하고 학교도 죽이고 있지 않나. “거참, 거꾸로 가고 있으니… 세계질서를 모른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지금대로라면 더 공부하고 싶고, 재주 있는 학생들은 해외로 나간다. 강사들 보호하자고 대학강사법 만들어 정작 강사들 죽인 것과 비슷하다. 시장을 모르는 거지. 외국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공부하게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왜 우리 학생들이 나가게 만드나. 행정부가 경쟁력이 없는 것도 큰일이다.” ―어떤 경쟁력을 말하나.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리스크가 올지 각각에 대한 종합 대응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국가위험도평가(NRK·national risk assessments)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중동전쟁으로 기름값이 대폭 오르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되느냐 같은 거다.” (그런 것도 없을 리가 있나. 대체 수입처 확보 방법은 있지 않나.) “수입처 확보 같은 건 있지만, 내가 말하는 건 산업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 및 대응 시나리오다. 만약 국가적으로 어떤 에너지에 대한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되면 장기적인 리스크 완화 정책과 함께 공급 국가나 회사와의 관계 설정, 투자 등을 미리 대비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게 없으니까 뭐 하나 터지면 그때 가서 우왕좌왕 아니냐. 비상대책회의 만들고… 터진 뒤에 비상대책회의 만들면 뭐가 되겠나. 그게 우리 행정부의 능력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금 행정부 능력으로는 안 된다.” ―실례지만 당신은 경제 현실과 방향도 잘 알고, 박근혜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나름의 힘도 있었는데 왜 직접 각료로 참여해 뜻을 펼 생각을 안 했나. “직접 할 생각이 없었다기보다… (정부 같은) 조직은 조직 나름의 구조가 있는데 우리 같은 교수들은 그런 적응 능력이 좀 부족하다고 본다.” (그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왜 맡은 건가.) “대통령이 처음에는 다른 생각도 수용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대선 캠프에도 들어간 거고…. 문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경제위원회(NEC) 같은 기구를 만들어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NEC는 미국의 중요한 경제정책의 이견을 조정하는 곳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의장이고, 내가 부의장으로 대행하는 기구를 만들었고, 그때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실제 운용을 해보니 쉽지 않았다. 회의를 매일, 수시로 할 수도 없었고….” (NEC는 다른가?) “NEC는 백악관 안에 사무실이 있다. 결국 내가 재임 중에 두 번 하고 지금까지 안 열리는 걸로 안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자문회의 부의장을 그만뒀다. ―지금의 혼란이 새로운 길을 가는 데 따른 변화의 고통일 수도 있지 않나.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개혁은, 개혁을 하려는 사람과 다른 가치를 가진 쪽이 어느 정도는 동의해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들이 저항만 하면 성공할 수 없다. 잘해 보려고 하지 않는 정부가 어디 있겠나. 문재인 정부도 잘해 보려고 노력은 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나타나는 건, 과거 어느 때보다 정치는 대립적이고, 사회는 분열돼 있고, 경제는 성적표가 좋지 않다.” ―지금의 변화에 대한 욕구는 과거 보수정부가 자초한 면이 있지 않나. “지금 사회정의, 공정 등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나오는 건 지난 10년간 보수 정부들이 그걸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강자들의 특권 남용, 갑질 때문에 화가 나 있는데 최순실 딸의 부정 입학, 대한항공 2세들의 갑질 같은 게 부채질을 한 거지. 보수가 스스로 개혁했어야 했는데 안 하다 보니 결국 시장질서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뜨렸다. 그 결과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대두됐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개혁이나 적폐 청산은 미래지향적으로 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적폐청산은 어떻게 하는 건가. “지금 정부는 적폐가 발생하는 원인과 인프라를 바꾸기보다 사람을 혼내 주고 있다. 사람을 혼내면 일시적으로 조심하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똑같은 잘못이 나온다. 정부 산하 숱한 단체에 정치권 인사와 은퇴 공무원들이 낙하산으로 간다. 그리고 하는 일이 자신과 단체를 위한 로비다. 그게 특권이고 공정성 훼손이 아니면 뭔가.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프라를 최대한 줄여주는 게 진정한 적폐 청산 아닌가.” (선거에서 신세졌는데 안 갚을 수도 없지 않나.)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해줘야지…. 그렇게 공정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로비가 필요한 조직에 신세진 사람을 보내면 또 다른 불공정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더러운 물을 안 갈고 사람만 바꾸면 똑같은 행태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람을 혼내 주는 방식은 당사자가 강하게 반발하니 쉽지 않지만, 제도를 중심으로 하면 반발도 상대적으로 적을 거다. 적폐청산을 하더라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폐청산을 하자는 거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16년 5월 당시 21세이던 A 씨는 남편 B 씨와 결혼했다.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는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다. B 씨의 누나가 “동생이 전에 교제하던 여성을 폭행해 만신창이가 됐다”며 만류했지만 굽히지 않았다. 얼마 안 지나 남편은 상습적으로 A 씨를 폭행했고, 보다 못한 지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하지만 A 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 남편은 어떤 격리조치도 받지 않았다. 어느 날 6시간의 매질을 견디다 못한 A 씨는 이혼 소송을 내고 집을 나왔지만 이혼숙려기간 중 주소를 알아낸 남편에 의해 살해됐다. ▷첫 신고 당시 남편 B 씨가 처벌받지 않은 것은 폭행이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는 수사·기소는 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다. 일본 헌법 가안에서 영향을 받아 1953년 도입됐는데, 정작 일본은 도입하지 않았다. 미국도 가해자가 반의사불벌죄를 악용해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부작용이 많자 강제 기소정책을 도입해 가해자 처벌을 강화했다. 우리도 국회에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담은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가정폭력은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처벌에 어려움이 많다. 지난해 4월 서울북부지법에서는 50대 어머니가 흉기로 자신을 찌른 아들을 감싸다 위증죄로 벌금 300만 원을 받았다. 처음과 달리 법정에서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바꿨는데, 흉기 사용은 특수폭행으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찌른 아들을 감싸주려는 마음에 위증을 한 것이다. ▷한 베트남 여성이 남편에게 갈비뼈와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무참히 폭행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반의사불벌죄 폐지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남편의 생활비가 없으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데다 체류권이 남편에게 종속돼 있어 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여성도 신고하라는 지인의 말에 “애 아빠인데…”라며 망설였고 결국 지인이 신고했다고 한다. ▷가족에게 맞았다는 고통과 함께 가족이라 용서해야 하는 고통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가정폭력이다. 심하게 맞고도 경찰의 진단서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부모나 아내도 많다. 상해진단서를 제출하면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는 폭행치상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아내가 남편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쉬운 결심은 아닐 것이다. 남편을 감옥에 넣은 독한 사람이라는 삐딱한 시선도 주변에 있을 수 있고, 생계도 무거운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가정폭력의 추방을 위해선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래야 가정도 산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16년 12월, 주광야오 중국 재정부 부부장은 베이징에서 열린 ‘2016∼2017 중국경제연회’에서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건강한 발전 촉진’이란 주제의 연설을 했다. 당시는 대중(對中) 강경 노선을 예고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양국이 무역 난타전을 벌이던 시기. 주 부부장은 “양국 간 무역전쟁으로 양패구상(兩敗俱傷·양쪽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트럼프 당선인의 외손녀인 아라벨라 쿠슈너(당시 4세)의 동영상을 소개했다. ▷중국어를 배우던 아라벨라는 같은 해 초 가족파티에서 빨간 치파오를 입고 당시(唐詩) 를 암송하며 재롱을 떨었는데 이방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 영상이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화제가 됐다. 동영상은 14초에 불과했지만 중국 주요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주 부부장은 미국의 대중 무역 강경노선이 지속되면 미국도 3년 내 경기침체에 빠지고 500만 개의 일자리가 줄 것이라면서, 양국이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아라벨라의 동영상을 소개한 것이다. ▷중국 신화통신이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품목 수출 규제에 대해 “양패구상의 우려가 있다”고 논평했다. 양패구상은 사냥개가 토끼를 쫓다 둘 다 지쳐 죽었다는 견토지쟁(犬토之爭)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일본에도 자기 발등을 찍는 자충수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를 제조하는 일본 회사 스텔라케미화는 연간 120억 엔가량을 한국에 수출했지만 올해는 전망이 불투명해졌고, 주가도 하락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재 공급이 끊겨 삼성전자의 생산에 지장이 생기면 반도체를 이용하는 모든 기기의 생산이 정체돼 혼란이 전 세계로 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한국 공급업체들에 메모리반도체 수출 물량이 충분한지를 문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본 내에서조차 중국만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을 것이란 소리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유일한 승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수준 낮은 지도자는 멀리 보기보다는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로 결정을 내린다. 그 뒷감당은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한일 간에는 쉽게 풀기 힘든 과거사가 있지만, 협력해야만 하는 현실도 있다. 경제·안보적으로 한국이 타격을 받으면 그 여파는 일본에도 고스란히 전가된다. 양패구상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너 죽고, 나 죽자’다. 그걸 막아야 하는 정치가 그걸 만들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지난달 23일 오후, 기자를 맞아주는 그의 손에는 흙 묻은 호미가 들려 있었다. 일요일이지만 아침부터 밭을 고르고 있었다고 한다. 집 앞에 펼쳐진 2800여 평(약 9260m²)의 땅에는 직접 심은 깨 콩 블루베리 등 온갖 작물이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64)은 “실제 농사를 지으며 살아보니 우리 농촌 현실이 장관일 때 보던 것보다 훨씬 절박했다”며 “뭐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경북도 5급 시간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9월 장관 퇴임 바로 다음 날 고향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으로 내려왔다. 》 ―직접 농사를 지으며 본 농촌 현실이 장관 때 생각했던 것과 괴리가 크던가. “저 집 한번 봐라. 빈집이다. 그 앞집도 폐가고…. 노인들만 사는 동네는 요양원 비슷하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농식품부 장관 등을 하며 30여 년간 농업 농촌에 대해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연구하고 정책을 해왔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농촌 현실을 보며 자괴감이랄까, 책임감이 들었다. 장관에서 물러났다고 여기서 콩이나 심고 있어도 되나….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쓰러져가는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마침 경북도에서 시간제 공무원을 뽑는다고 해 지원했다.”※그는 올 1월부터 도 농업정책과 소속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5급)으로 일하고 있다. 2년 계약직으로 주 3일 근무하고, 출근하지 않는 날은 농사를 짓는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너무 세세한 일까지 잔소리를 하면 후배 공무원들이 힘드니까…. 큰 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는 한정된 예산, 인력, 조직을 정말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 사람이나 경제는 물과 같다. 한곳을 깊고 크게 파면 그리로 모인다. 사람을 강하게 끌어들일 중심지를 만들고, 주변에 배후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부분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이런 식으로 산발적으로 만들다 보니 시너지 효과를 못 내는 게 많다.” (예를 들면 어떤 식인가?) “의성 금성면에 군립인 조문국(召文國)박물관(사업비 180억 원)이 있다. 조문국은 삼한시대 이 지역에 있었다는 작은 나라다. 단촌면에는 최치원문학관이 있는데 여기도 약 200억 원이 들었다. 이렇게 작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흡인력이 약해 제대로 작동을 안 하는 거다. 이런 점을 조언해 주려고 한다.” ※조문국박물관과 최치원문학관은 차로 약 40분이나 떨어져 있다. ―농촌 소멸 현상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닌데….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다 따로 움직이다 보니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이 소멸된다고 난리인데 수도권에 또 신도시를 만들면 소멸을 가속시키지 않겠나. 지방도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예산을 표 되는 곳에만 쓰는 것도 문제고…. 시골에는 청년들이 갈 곳이 없다.” (갈 곳이 없다니?) “40, 50대면 청년인데 면에 열댓 명 정도 있다. 철도 부지 옆에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거기가 그들 회관이다. 그래 놓고 너희가 농촌의 미래라고 하면 되나.”※단촌면 인구는 약 2300명이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이런저런 시설들이 많던데…. “요 앞에 있는 단촌초등학교가 모교인데, 학생 수는 30명 정도 된다. 올 2월 졸업생이 한 명이었는데 각종 상과 장학금 10여 개를 혼자 들락날락거리며 다 받더라. 올해는 신입생도 없다. 그런 학교에 2층짜리 체육관을 지어줬다.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이란 게 있는데 그 일환으로 면사무소 앞에 2층 건물을 지었다. 근데 용도가 헬스장이다. 나중에는 다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농촌이 이렇게 어려운데 투자의 우선순위가 체육관이나 헬스장일까. 안타깝더라. 이 논설위원도 전직 장관이 사무관 됐다는 얘기보다 지방 소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농촌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이 있나. “당장 획기적으로 농촌 인구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그 대신 귀농·귀촌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귀촌을 위해 도시에 있는 집을 팔 경우 양도세를 대폭 감면해주는 식으로…. 세 부담 때문에 집을 못 팔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나. 1가구 2주택 보유세도 시골에 장만한 집은 제외해 준다든지…. 주민들도 외지인들에게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고 먼저 함께 잘 살아보자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애써 귀농·귀촌한 사람들은 지역에 아는 사람이 없지 않나. 특히 경상도는 아주 보수적이라 외지에서 온 사람에게 별로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지역 사회가 관용이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발전은 그렇게 모이는 과정에서 생긴다. 사람이 불편한데 누가 들어오겠나.” ―농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업이 된다면 농촌 현실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잘 안되는 이유가 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규제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술 분야만 해도 무슨 규제가 그렇게 복잡하고 많던지…. 복분자로 막걸리를 만드는 데 거의 10년 걸렸다.” (복분자로 술을 만들면 안 되나?) “1998년 국무총리실 파견 기간에 주류 쪽 규제 해소를 맡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술 시장은 온통 규제 덩어리다. 당시 복분자는 한약재로 분류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원료로 못 쓰도록 했다. 약이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도대체 얼마를 먹어야 위험한지 과학적 기준을 보여 달라 했더니 별 기준도 없었다.” ―그래서 규제가 금방 풀렸나. “식약처와 싸워서 일단 복분자를 식품원료로 쓸 수 있게 한 게 첫 단추였다. 다음은 국세청과 싸워야 했다. 복분자로 술을 만들려면 국세청에 주류 제조와 판매 허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술에 대해 뭘 안다고 관여하나?) “이 사람들은 술은 알코올이라 해롭기 때문에 제조와 판매를 국가가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이면에 과세가 있고…. 술 자체를 못 만들게 하지는 않지만 시설규제를 통해 사실상 못 만들게 한다. ‘발효조 크기는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전통주는 대부분 시골의 조그만 업체에서 만드는데 이런 대형 시설을 어떻게 설치하나. 택배나 온라인 판매도 못 하게 했다.” (배달 판매도 못하게 했다고?) “우편으로 팔면 청소년들이 사서 마셔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대형 주류업체도 아닌 영세업체가 전국에 매장을 세울 수도 없지 않나. 하지 말라는 얘기지. 한 3년 싸웠더니 1회 주문에 5병만 허가해 주겠다고 하더라. 또 몇 년을 싸워 20병으로 늘렸다. 복분자 막걸리가 식약처부터 시작해서 우편 판매 허용까지 10년 정도 걸렸다. 내가 복분자 막걸리 전도사라고 불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술 분야에서 가장 개선돼야 하는 게 뭔가. “우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희석식 소주를 만드는 주정(酒精)을 대한주정판매라는 회사가 독점으로 판다. 참이슬, 처음처럼 등은 이곳에서 주정을 사와 주류회사가 가공해 파는 것이다. 민간 회사인데 나라에서 술의 탈세 방지와 투명화를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독점으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회사를 국세청 퇴직 관료들이 휘어잡고 있다. 독점 판매 구조가 깨진다면 좀 더 다양한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거다.”※현 대한주정판매 이순구 사장은 서울 성동세무서장 출신이다. 국세청 출신들이 퇴직 후 한국주류산업협회, 진로발효 등 주정회사, 삼화왕관 등 병마개 회사 등 술 관련 회사의 대표이사, 임원 등 주요 보직으로 가는 것은 만연한 현상이다. ―현 64대 이개호 장관까지 역대 농림부 장관 중 재임 기간 1년 이하가 38명이나 된다. 제대로 된 농정을 펴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나. “나는 박근혜 정부 시작부터 3년 반을 했는데… 오래하다 보니 오동필이라고 부르더라. 5년 할 거라고. 박근혜 순장조라고도 하고…. 농정은 긴 호흡으로 살펴야 하는데 장관의 재임 기간이 지나치게 짧은 게 문제긴 하다.”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이라도 있었나.) “특별한 인연은 없는데… 내가 왜 장관이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최순실이 추천한 건 확실히 아닌 것 같고. 하하하.”※61대 장관인 그는 건국 이래 최장수 농림부 장관이다. 9대 윤건중 장관은 한 달 반, 45대 김양배 장관은 석 달 만에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이 농업과 관련해 뭘 당부하던가. “임명 때도 그렇고, 해마다 연초에 청와대에서 떡국을 먹는데… 6차 산업 잘 해달라고 했다.” (6차 산업?) “농업 분야는 그동안 생산, 증산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생산이 늘다 보니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는 등 복잡한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소비를 창출하고, 일자리도 만들자는 거다.”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약했다. 오로지 생산만 이야기했지….” ―거처하는 별채에 사원재(思源齋)라는 현판을 달았는데….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샘의 근원을 늘 생각하라는 뜻)에서 따온 건데, 사람이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붙였다. 우리가 살면서 신세를 지지만 또 금방 잊지 않나. 필요가 없으면 다른 데 가서 또 줄을 서고…. 도리를 잊지 말자는 뜻이다.” (누굴 잊지 말자는 건가. 박 전 대통령을 말하나.) “다 포함해서….”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러시아 오렌부르크주에 있는 ‘블랙 돌핀’ 교도소는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곳이다. 연쇄 살인범 등 종신형을 받은 흉악범이 수감되는데 죽은 뒤에는 교도소 내 공동묘지에 묻힌다. 음식은 빵과 수프가 전부고, 이동할 때도 90도로 허리를 굽혀 걷게 해 평생 하늘을 보기 어렵다고 한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한 교도소에선 수년 전 사기 혐의로 수감된 한국인 사업가가 1년 만에 사망했는데 사인은 영양실조였다. ▷21년간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 파나마 공항에서 붙잡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 씨가 22일 국내로 압송됐다. 스페인어를 써가며 한국인임을 부인하던 정 씨가 마음을 바꾼 것은 “파나마는 교도소 관리가 불안하다”는 우리 대사관 직원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위조여권으로 입국할 경우 해당국 법으로 처벌되기 때문이다. ▷파나마를 비롯한 중남미 교도소는 재소자들이 목숨을 걸고 수형생활을 한다. 파나마 교도소에서는 분기당 30여 명이 살인 에이즈 등으로 사망한다. 브라질 카란디루 교도소에서는 40여 년간 1500여 명이 살해됐는데 마약과 총, 수류탄까지 자유롭게 유입되고 동성 강간으로 에이즈도 만연해 있다. 워낙 악명이 높아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3의 무대가 된 파나마 교도소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온두라스 코마야과 교도소에서는 2012년 재소자의 방화로 358명이 사망했다. ▷국내 교도소·구치소는 중남미 교도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생활 여건이다. 곳곳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교도관이 24시간 순찰을 돌며 재소자 간의 폭행을 막는다. 새로 지은 수용시설에는 각 층마다 샤워실이 있다. 아프다고만 하면 언제든 의무실에 갈 수 있고 당뇨병 같은 지병이 있는 수용자에게는 교도관이 매일 시간 맞춰 약을 챙겨준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수백 통의 진정서를 보내고, 구치소를 상대로 엄청난 양의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재소자도 많다. 수감시설 주변에는 무료한 재소자들을 위해 만화책을 빌려주는 책방도 있다. ▷미결수들이 수용되는 구치소는 무죄 추정의 원칙 때문에 노역도 없고, 하루 종일 TV나 책만 보고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재소자들은 교도소보다 구치소 생활을 더 견디기 힘들어한다. 툭하면 불러내는 검찰, 늘어지기 일쑤인 공판 일정 등으로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기 때문이란다. 정 씨가 정말 파나마 교도소가 두려워 한국행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잡힐지 모르는 21년간의 도피가 마음이 편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더 고통스러운 감옥 밖 생활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유럽중앙은행은 최고액권인 500유로(약 68만5000원)권 발행을 올 초부터 중단했다. 탈세 돈세탁 등에 악용되는 일이 많은 데다 실생활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2010년 영국 강력조직범죄연구소는 영국에서 500유로권의 90%가 범죄 조직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2009년 6월 23일 5만 원권 첫 발행 당시 지하경제가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한 온라인 쇼핑몰의 5만 원권 발행 전 개인금고 판매량은 월평균 30대 정도였는데, 발행 5년 후인 2014년에는 월평균 1500대로 늘었다. 발행 10년간 5만 원권의 누적 환수율도 50%에 그친다. 두 장 중 한 장은 어딘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2011년 4월에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110억 원어치 5만 원권 돈 뭉치가 발견되기도 했다. ▷5만 원권은 첫 발행 당일에만 1조3000억 원이 인출됐고, 백화점업계가 화장품 의류 등 5만 원짜리 상품만 따로 모은 ‘5만 원 마케팅’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할 일련번호 1∼100번을 제외한 2만 번까지를 인터넷 경매로 팔 정도였다. 그 인기는 여전해 지난달 기준으로 5만 원권은 국내 시중 유통 금액의 84.6%(98조3000억 원), 장수로는 36.9%(19억7000만 장)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폐다. ▷현재 쓰이는 지폐 중 가장 먼저 발행된 건 5000원권(1972년)이다. 1만 원권은 1973년, 1000원권은 1975년 발행됐다. 5000원권과 1만 원권은 1972년 함께 발행하려 했으나 당초 1만 원권에 도안된 석굴암과 불국사를 지금의 세종대왕으로 변경하면서 한 해 늦어졌다. 1970년 라면 1봉지가 20원이던 시절에 1000원권보다 5000원권이 왜 먼저 나왔는지는 미스터리다. 한국은행 발권국은 “기록이 없어 잘 모른다”고 했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이 3만∼4만 원이던 1970년대, 당시 최고액권이던 1만 원짜리 한 장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연인과 영화 보고, 밥 먹고, 차를 마시고도 많이 남았다. 하지만 5만 원권이 나오면서 씀씀이 심리도 크게 바뀌었다. 특히 5만 원권은 경조사비를 올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5만 원권 사용처는 경조금, 헌금, 세뱃돈 또는 용돈 등 개인 간 거래가 50.7%로 가장 많았다. 최근엔 10만 원권을 발행하자는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지만 선진국은 고액권을 없애는 추세다, 신용카드, 전자결제 등으로 인해 지하경제를 제외하곤 고액권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를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1시간만 지나도 포털 사이트에 줄줄이 올라오는 각종 성범죄 뉴스들. 최근에는 한 남성이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 집에 침입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일명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이 공개되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통계상의 성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라는데, 그 빙산은 얼마나 크고 심각한 걸까. 여성범죄 전문이자 ‘미친놈들에게 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의 저자인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이회림(필명·39·여) 형사는 “신림동 사건 같은 일은 아주 흔하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6세 때 동네 화장실에서 낯선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한 그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경찰이 됐다. 이후 일선 경찰서에서 성범죄 수사 전담 요원 등 여성범죄를 전담해 왔다. 》 ―신림동 사건 CCTV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는데 흔한 일이라니…. “암수범죄(暗數犯罪)나 피해자가 사건화를 거부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성범죄 통계는 빙산의 일각이다. 신림동 사건도 신고하지 않았다면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게 된다.” (성폭행은 친고죄가 아닌데, 경찰이 알면서도 수사를 못 한다니?) “법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피해 여성이 울며불며 하지 말아 달라는데 무시하기는 어렵다. 가족들이 받을 충격 때문에 그러기도 하고…. 그런 경우가 너무 많다.” 암수범죄는 범죄가 발생했으나 경찰이 모르거나, 알아도 용의자의 신원 파악 등이 안 돼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범죄다. 2017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강간 강제추행 등 성범죄는 모두 2만4100건이며 이 중 강간은 5223건이다. 이보다 훨씬 많은 범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 빙산이 도대체 얼마나 큰 건가. “통계를 낼 수 없으니…. 클럽에서 만난 여성들을 건드린 남자가 잡혔는데 피해자가 40여 명이나 됐다. 어떻게 알았냐면, 휴대전화에 어떤 식으로 했는지 적어 놨더라. 누구는 강간, 누구는 키스 이런 식으로…. 그중 신고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대부분 잊고 싶으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성병까지 옮았는데 신고를 안 한 경우도 있다. 이해가 안 가겠지만… 사실이다.” ―그 정도로 신고를 꺼리나. “원룸에서 함께 살던 두 여대생이 집에 침입한 한 남성에게 차례로 강간당한 사건이 있었다. 신고는 안 됐는데 다른 곳에서 잡힌 범인의 여죄를 추궁하다 알게 됐다. 피해자들에게 확인하니까 ‘맞다’고 하더라. 경찰서에 와서 진술해 달라고 했더니 ‘잊고 살고 싶다’며 안 나왔다. 이 때문에 두 여대생 사건은 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다.” ―신고가 적으면 실제 저지른 범죄만큼 처벌을 할 수가 없지 않나. “앞서 말한 40여 명을 건드린 범인은 5년을 살았다.” (40여 명에 고작 5년?) “한 명만 신고해 법정에서 진술했으니까…. 수사보고서에는 40여 명이 다 적혀 있지만 다른 피해자들이 나서지 않으니 판사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40여 명이 모두 신고했으면 5년만 나올 수가 있겠나. 법정에서 그놈 표정을 봤는데 엄청 반성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라. 가증스럽게…. 그놈이 출소 후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냐고….” (연락처를 저장한 것도 아닐 텐데 그놈인지 어떻게 알았나) “밑에 자기 이름을 적었으니까….” ―좀 소름이 돋는데… 그런 경우가 잦은가. “어두운 쪽 사람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이상한 문자나 전화는 자주 온다. ‘여보세요’ 하면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툭 끊는데…. 누군지는 모른다. 사건 관련자들일 수도 있고…. 그래서 연말쯤 이름과 전화번호를 바꿀 생각이다. 받아 놓은 이름이 있다.” ―책까지 썼는데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유가 그 때문인가. “워낙 다양하고 이상한 범죄자들을 많이 보니까…. 성범죄를 다루는 여경이라는 점에 자극돼 범행 대상으로 삼을 범죄자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에서 가족들을 보호하고도 싶고, 얼굴이 알려지면 범인 검거에 지장도 있고. 죄송한데 양해해 줬으면 한다.”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할 때 제대로 저항을 못 한다고 하던데…. “‘긴장성 부동화’인데, 극도의 공포로 몸이 굳는 현상이다. 피해자 중 상당수가 저항하기보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더 든다고 하더라. 그래서 몸이 저항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경찰이 되면서 유도의 손목 빼기 기술을 배웠는데 순간 울컥했다. 이것만 알았어도 그렇게 맞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맞다니?) “대학생 때 남자친구가 엄청 때려서 경찰에 두 번이나 신고했다. 나쁜 놈….” ―필사적으로 저항하라고 했는데, 그러다 더 큰 피해를 입는 것 아닌가. “가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는 여성을 자기 손에 놓고 마음대로 하는 게 굉장히 짜릿하다는 것이다. 물론 납치돼 결박됐거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차분하게 기회를 노릴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장소에서는 깨물기라도 하면서 저항해야 도망치거나 살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태권도나 합기도를 배운다고 여성이 성폭행범을 제압할 수 있나. “잠깐 배운다고 그게 되겠나. 무술을 숙달해서 이기라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잡혀온 가해자들이 ‘못된 애들은 건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는 말을 자주 한다.” (못된 애들이라니?) “손을 대려는데 저항하고 거부하는 여성들을 그렇게 표현한다. 얼마 전 한 지인이 겪은 일인데, 버스정류장에서 취한 남성이 옆에 앉아 슬쩍 만지려고 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더니 ‘아이, 씨’ 이러면서 일어나 멀쩡하게 갔다는 것이다. 무술이나 운동을 하면 왜 이걸 하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이 위험한 순간이 왔을 때 몸이 굳어지는 속에서도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을 낳게 하는 것이다. ―홍익대 누드모델 몰래카메라 사건의 경우 성대결 양상까지 벌어졌다. “피해자가 남자라 경찰이 빨리 잡아줬고, 가해자가 여성이라 구속됐다는 건데…. 그 사건은 용의자가 교수와 학생들, 모델 당사자로 제한된, 아주 빨리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늦게 잡으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인데….” ―수사하는 입장에서 애로점이 뭔가. “경찰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순찰 경찰관에게 거의 어벤저스를 기대한다. 스웨덴 여행 중 친구가 카페에서 가방을 도난당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경찰이 아무리 빨라도 1시간 뒤에나 온다는 것이다.” (카페 주인이 그러던가?) “아니, 112에서. 스웨덴도 우리처럼 112다. 바로 신고 접수도 안 되고 연결에 연결을 해 간신히 통화가 됐는데 바빠서 그런 범죄는 빨라야 1시간 뒤에 도착한다더라. CCTV를 빨리 확인하고 싶으면 가까운 경찰서로 직접 가라며…. 나도 혼자 살아서 국내에서 신고를 많이 하는 편인데, 우리처럼 잘하는 곳은 드물다.” ―신림동 사건에서는 경찰의 안이한 대응이 문제가 되지 않았나(출동한 경찰은 피해자가 사는 건물 6층은 확인하지 않고 철수했다). “피해자도 만나고 좀 더 철저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신고 시간이 오전 6시 반쯤이던데… 그 시간이 밤을 새우고 퇴근을 두어 시간 남긴, 제일 피곤한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신고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라 좀 방심한 게 아닌가 싶다. 안타까운 건 그런 사건이 숱하게 벌어지는데도 시스템은 변한 게 없다는 점이다.” ―변한 게 없다니…. “프로파일링(범죄유형분석법)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거창한 말도 필요 없이 신림동은 대학생들이 많고 집들이 밀집한 지역 특성이 분명한 곳이다. 성범죄도 신림동 사건처럼 남자가 여성을 뒤따라가다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지역 특성에 맞는 범죄 예방 모델이 적용됐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나도 혼자 살아봤지만 밤에 철커덕 철커덕 하면서 문손잡이 흔드는 소리를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2007년 이전에 만든 전자키(디지털 도어록)는 건전지 두 개로 전기충격을 주면 잠금이 풀린다. 내가 직접 봤다. 얼마나 놀랐는지. 혼자 사는 여성들은 꼭 확인해 바꿔야 한다.” ―피해자 주변 사람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나. “가족이나 지인, 경찰 등 관계자들은 ‘왜 기억 못 하냐’ ‘시간 장소를 특정해야 하는데…’ 이런 말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진술이 정확해야 범인을 잡을 수 있으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지만,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그 순간 얼어붙기 때문에 100% 정확하게 기억할 수가 없다. 그런 말이 피해자를 더 위축시켜 진술을 흔들리게 한다. 진술이 흔들리면 수사가 제대로 되기 어렵다. 피해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들도 ‘잘 생각해 봐. 이거 아니었어?’ 이런 말을 해선 안 된다. 피해자들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에 빨리 잊고만 싶어 한다. 여기에 자기 진술도 확신이 없고, 수사 절차도 복잡하고 그러다 보면 중간에 포기한다. 진술 도중 ‘너무 힘들다. 신고 안 한 걸로 해 달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