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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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2-28~2026-03-30
문학/출판31%
문화 일반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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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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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烈女를 列女로 고쳐 덕행있는 부인 모두 기재”

    “열녀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열녀(烈女)라고 칭하면서 단지 지아비를 위하여 절개를 수립한 이만을 기재했다. 이제 열녀(列女)로 고치고 무릇 절의와 덕행이 있는 부인을 모두 기재했다.” 반계 유형원(1622∼1673)이 실학사상을 담아 최초의 사찬(私撰) 전국지리지인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를 쓰며 범례에 적은 글이다. 불 화(화) 받침이 있고 없고의 차이지만, 두 열녀의 차이는 작지 않다. 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烈女’는 “남편이 죽은 후에 수절하거나 위난 시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여성”. 그러나 ‘列女’는 여러 여성의 전기를 늘어놨다는 뜻이다. 굳이 표기를 바꾼 유형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역사지리서 ‘동국여지지’를 처음으로 최근 번역 출간했다. 유형원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증보 편찬)에는 안 나오지만 업적이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실제로 책에 담았다. 한양을 다룬 1권 경도(京都)의 ‘열녀’에서는 실꾸리를 삼킨 원자(元子·아직 세자에 책봉되지 않은 임금의 맏아들)의 목숨을 구한 성종 때 여성 안(安) 씨를 소개하기도 했다. 유형원은 앞선 저술을 참고했을 뿐 아니라 실제 많은 지역을 답사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 그를 통해 앞선 지리지가 해산물을 산간지역 토산물로 기재하는 등의 오류를 다수 바로잡았다. 유형원은 그런 오류가 “각 관사의 공물안(貢物案)을 근거로 해 적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군현의 위치가 달라지면서 생긴 혼란은 실제 땅을 기준으로 바로잡았다. 같은 물길인데도 지역별로 달리 불렸던 것도 주요 하천의 이름으로 통일하기도 했다. 공동 번역자인 김성애 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은 “호란을 겪은 영향으로 동국여지지는 북쪽 영토와 함경도 지역의 역사지리 인식이 두드러지고,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많이 담겼다”면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규장각 소장본에서 경상좌도가 빠져 있는데 빨리 발견되기를 기다린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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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베짜기’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삼베짜기’(사진)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40호로 지난해 12월 31일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회장 손병선)를 보유단체로 인정했다. 유사 종목인 ‘곡성의 돌실나이’는 삼베짜기 안의 세부 기·예능으로 통합 관리한다. 대마를 원료로 짜는 삼베는 삼한시대부터 길쌈해 입어온 옷감이다. 경북 안동에서 생산하는 안동포는 조선시대 궁중 진상품이었다. 예부터 마을사람들이 협업해 생산했기 때문에 문화재청은 특정 보유자를 인정하지 않고 보유단체를 인정했다. 이로써 전통 옷감 짜기 관련 국가무형문화재는 ‘나주의 샛골나이’ ‘한산모시짜기’ ‘명주짜기’ 등 모두 4건이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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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르는 사람끼리라서… 툭 터놓고 얘기합니다”

    ‘장소: 모르는 사람의 집. 준비물: 마음속 스트레스를 꺼내 놓을 열린 마음.’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직장인 5명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남의 집 프로젝트’를 위해 모였다. ‘호스트(집주인)’는 자신의 집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한 뒤 참석자들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다른 참석자가 도착할 때마다 반갑게 맞았다. 여느 연말 송년회, 친교모임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 이날 처음 본 사이라는 점. 준비물은 대화할 ‘열린 마음’이면 충분했다. ‘소통 불능의 시대’라는 요즘, 의외로 처음 보는 사람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는 일회성 모임이 늘고 있다. 상대가 누구든 공감할 의지와 말할 거리만 있다면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모임의 취지다. 이들은 친구나 지인, 가족처럼 끈끈한 관계와 달리 관계에 강제성이 없는 ‘느슨한 관계’가 오히려 소통에 장점이 된다고 본다.○ ‘느슨한 관계’의 매력 ‘남의 집 프로젝트’는 이런 시류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참석자가 다 도착하자 호스트는 “이제 다 오신 것 같으니 시작할까요?”라며 포문을 열었다. 모임의 주제는 ‘직장인 번아웃(일에 몰두하다 극도의 신체·정신적 피로로 무기력해지는 현상) 증후군’. 호스트는 ‘번아웃 증후군 자가 테스트’ 종이를 건넸고, 참석자들은 ‘일이 재미가 없다’ ‘점점 냉소적으로 변한다’ 등 17개 문항의 체크리스트에 점수를 매겼다. 일정 점수를 넘겨 심각한 수치를 보인 참석자도 나왔다. 자연스레 직장에서 힘들었던 각자의 경험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야근이 너무 잦아 일과 생활이 구분이 안 됐다” “퇴사를 자주 하고 싶다” “상사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다” “상사보다 더 어려운 건 후배다” 등 성토가 이어졌다. “주변 친구, 가족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일이 늘었다”는 대목에서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게임회사 디자이너, 식품무역업 종사자 등으로 구성된 참석자 조합은 얼핏 보기엔 어색했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힘들고, 내 고민 역시 위로받기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처음 보는 이에게 속내를 터놓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며 놀라워했다. 모임은 정해진 세 시간을 조금 넘기고 끝났다. 참석자들은 기회만 있다면 앞으로도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에 나서겠다며 긍정적인 반응. 작별 인사와 새해 덕담을 나눴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런 모임은 직업군, 나이와 상관없이 다양하게 이뤄지지만 대체로 연속적 모임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강제성이 전혀 없어 부담감이 적은 게 장점. 독서, 공예 등 특정 취미를 테마로 한 모임과는 달리 ‘대화’ 자체가 목적이다. 김성용 ‘남의 집 프로젝트’ 대표는 “현대인들은 모르는 이들과도 시시콜콜한 주제건 깊이 있는 테마건 얘기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모임에 자주 참석한다는 30대 직장인 정모 씨는 “끈끈한 관계에서는 어떤 얘기로 시작하든 결국엔 깔때기처럼 직장, 집, 결혼, 육아 얘기로만 귀결된다. 반면 느슨한 관계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는 편안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자존감 회복에는 모르는 관계가 더 낫다? 온라인에서 인기인 대화형 커뮤니티 ‘라이프쉐어’도 비슷한 분위기다. 모르는 이와 소통하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인생관, 자존감을 발견하도록 만들자는 목표. 여기서는 주변 사람에게 터놓기 어려운 다소 오글거리는(?) 질문도 모르는 사람과 주고받아야 한다. “당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하루는?”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다를까?” 등 질문에 쭈뼛거리던 참가자들도 몇 분 뒤 거리낌 없이 인생 가치관을 말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애플리케이션 ‘트로스트’도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 욕구를 겨냥했다. 상담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와 고민 글을 보내면, 상담사들이 조언을 건넨다. 지인, 친구 수준이 해줄 수 있는 위로나 대안 제시를 넘어 전문적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 특징. 트로스트 측은 “정신과를 방문하기 어렵거나, 친구들에게 꺼내놓기 힘든 고민도 비대면 방식으로 숱하게 접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이 자존감 회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퇴사 뒤 작가로 변신한 곽모 씨는 “주변에선 새로운 도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반면 처음 만난 이들은 도전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응원해줘 힘을 얻었다”고 했다. 30대 사업가 이주호 씨는 “나이, 직장에 따른 사회적 편견 없이 누군가 있는 그대로 저를 바라볼 때 더 큰 위로와 자극을 받는다. 뼈 있는 조언이나 생각지 못한 혜안을 들을 때도 많다”고 했다.김기윤 pep@donga.com·조종엽 기자}

    •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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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물길 절반만 살려도 서울이 확 달라집니다”

    얼마 전 김원 광장 건축환경연구소 대표(76)와 처음으로 눈인사를 나눴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싶었다. 한데 오랫동안 쓴 글을 모은 ‘꿈을 그리는 건축가’(태학사·광장) 출간을 계기로 27일 마주앉은 노신사는 딴사람 같았다. 여전히 채 갈무리되지 않은 혈기가 흘러나온다고나 할까. 말은 둥글어도 뜻이 지닌 예봉은 감춰지지 않았다. 김 대표는 1980년대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국악당을 비롯한 5대 문화시설 건축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했다. 1990년대에는 ‘동강 살리기’의 일선에 섰으며 최근에도 자연과 문화자원을 보존하는 내셔널트러스트(국민신탁)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터가 팔린다는 소식을 듣고 매입 보존을 시작한 것도 김 대표다. 그는 “서울 사대문 안은 난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오래된 지론”이라고 했다.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이 터를 잡고 궁을 지을 당시 서울의 도시계획을 보세요. 멋들어진 산을 배경으로 육조거리를 만든 것만 봐도 공간과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대단했던 거지요. 산업화 와중에서라도 만약 ‘사대문 안에는 5층 이상 못 짓는다’ ‘모든 골목에서 산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물길은 살린다’고 옛 도시의 형성 논리를 지켜줬다면 세계적으로 서울보다 아름다운 도시를 찾기 어려웠을 거예요.” 책 ‘꿈을 그리는…’에는 “(필수 도로만 남기고) 서울의 사대문 안을 몽땅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꿈”에 관한 글이 있다. 흥인지문(동대문)에서 돈의문(서대문) 자리까지는 불과 약 4.2km. 종로를 왕복 2차로만 남기고, 녹지와 보행자의 길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수십 년 전 서울시민에겐 오늘날 서울 모습 역시 꽤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인터뷰하던 서울 종로구 통인동 ‘(시인) 이상의 집’ 앞으로는 수많은 행인과 자동차가 오갔다. 김 대표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저 길 아래, 지금도 물이 흘러요. 수성동 계곡에서 시작해 지금 동아미디어센터 앞에서 청계천과 합류하는 개천이 흐르던 곳입니다. 옛 지도를 보면 서울은 물길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어요. 인왕산부터 청계천까지만 해도 수십 개지요. 그를 건너는 작은 다리들이 얼마나 아름다웠겠어요.” 그 물길은 모두 도로가 됐다. 토지 보상도 필요 없으니 복개만 하면 자동차가 다닐 수 있었다. 김 대표는 “물길을 절반만 살렸어도 좋았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걸을 권리를 되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광화문시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만드는 의견수렴을 돕고 있다. 보행자 중심으로 광장을 대폭 넓히는 광장 재구조화는 최근 제동이 걸려 기약이 없는 상태다. 그는 “시장의 토목 치적 쌓기 차원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가 이사장을 지낸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속칭 ‘알박기’도 한다. 개발 이익을 누리려는 게 아니라 보존하기 위해서다. 민통선 안쪽 철새도래지 땅도 샀다. 김 대표는 ‘섬 내셔널트러스트’도 설립했다. 그는 “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주민들도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 책에는 LG그룹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1907∼1969)에 얽힌 일화도 담겼다. 김 대표가 김수근건축연구소에서 일하던 1966년, 구 회장이 은퇴 뒤 살 집의 설계를 맡겼다. 구 회장은 김 대표와 함께 냉면을 먹으면서 “(집이) 40평이면 우리 부부에게 충분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김 대표는 작은 주택을 그렸지만 김수근은 “그분은 그렇게 살 수 없는 분”이라며 응접실과 회의실, 접견실 등이 딸린 저택을 지었다. 김 대표는 “내가 고집을 부려 구 회장님의 생각을 현실화시켰다면 지금도 ‘구인회 회장이 말년에 살던 소박한 집’으로 회자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작지만 알뜰하게 설계해 달라고 찾아오셨던 거지요. 사실 11, 13평짜리 서민 아파트야말로 한국 최고의 건축가가 맡아 설계해야 합니다.” 최근 별세한 구 회장의 장남 구자경 회장이 부산사범부속초교 교사로 일할 때 김 대표는 그 학교 학생이었다. 구자경 회장은 은퇴 뒤 옛 제자들을 모아 가끔 밥을 사며 옛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누이동생은 김 대표와 같은 반 친구였다. “그 친구가 명절이 지났는데도 헌 운동화를 신었더라고요. 물으니 ‘앞쪽에 구멍이 나야 새 신발을 사 준다’고 해요. 그때도 엄청난 부잣집이었는데 말이지요.” 수명이 다한 브라운관의 대체품을 구하지 못해 불이 꺼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은 백남준과 김 대표의 공동작업이다. 김 대표가 백남준과 협의하며 구조를 짰다. 1003개의 모니터를 지탱하기 위해 기초를 암반까지 내렸다. 모니터 수명이 다했을 때의 처치에 대해 백남준은 “몰라, 상관없지”라고 했다고. “백 선생은 늘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고 했어요. 지금 굳이 옛 화면을 재생하려 애쓸 필요 없어요. 일단 꺼 놓고,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된 뒤 브라운관에 맞게 붙여도 됩니다.” 김 대표는 최근 국회의사당 개보수 자문위원장도 맡았다. 김수근건축연구소에 있을 당시 여의도 개발계획 실무를 맡아 의사당 터를 잡은 이가 그였다. “원래 여의도 내에 있던 양말산(羊馬山)에 기대 물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어요. 장기적으로는 비슷하게라도 배산임수를 복원해야 합니다. 당장은 리모델링을 통해 의원들이 싸우고 싶은 생각이 덜 나는 공간을 만들었으면 하고요.”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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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존감 회복에는 모르는 관계가 더 낫다?…‘느슨한 관계’의 매력

    장소 : 모르는 사람의 집. 준비물 : 마음 속 스트레스를 꺼내 놓을 열린 마음.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5명의 직장인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남의집 프로젝트’의 한 장소에 모였다. ‘호스트(집주인)’는 자신의 집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한 뒤 참석자들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다른 참석자가 도착할 때마다 반갑게 맞았다. 여느 연말 송년회, 친교모임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이날 모두 처음 본 사이라는 것. 준비물은 대화할 열린 마음이면 충분했다. 참석자가 다 도착하자 호스트는 “이제 다 오신 것 같으니 시작할까요?”라며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이날 모임의 주제는 ‘직장인 번아웃(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현상)’. 호스트는 ‘번아웃 증후군 자가테스트’ 종이를 건넸고, 참석자들은 ‘일이 재미가 없다’ ‘점점 냉소적으로 변하고 있다’ 등 17개 문항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에 점수를 매겼다. 일정 점수를 넘겨 ‘번아웃 증후군’으로 판정된 참석자도 나왔다. 자연스레 직장에서 힘들었던 각자의 경험을 꺼내놓아야 했다. “야근이 너무 잦아 일과 내 생활이 구분이 안됐다” “퇴사가 자주 마렵다” “일도 일이지만 상사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다” “상사보다 더 어려운 건 후배다” 등 성토가 줄을 이었다. “번아웃을 겪고 주변 친구, 가족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는 대목에서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게임회사 디자이너, 식품무역업 종사자, 마케터, 전업 작가로 변신한 이 등 참석자의 조합은 언뜻 봐도 어색하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고, 내 아픔이나 고민 역시 위로받기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처음 보는 이들에게 속내를 터놓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놀랍다”며 모두 입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기회만 있다면 앞으로도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해진 세 시간을 조금 넘겨 모임은 끝났다. 작별 인사와 새해 덕담을 나눴고, 모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느슨한 관계’의 매력 ‘소통 불능의 시대’ 처음 보는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는 일회성 모임이 늘고 있다. 상대가 누구든 서로의 말에 공감할 의지와 말할 거리만 있다면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모임의 취지다. 친구, 지인, 가족과의 끈끈한 관계와 달리 관계에 강제성이 없는 ‘느슨한 관계’는 오히려 소통에서 장점이 된다. 직업군, 나이와 상관없이 다양한 이들이 모이며 한 번 모였다고 해서 연속적 모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친교 활동에 대한 강제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부담감이 적은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독서, 공예, 서핑 등 특정 취미를 테마로 목적이 분명한 모임과는 달리 모여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점이 특징이다. 20대부터 40대까지 가장 활발히 참여한다. 김성용 ‘남의집 프로젝트’ 대표는 “1인가구가 늘며 현대인들에게는 모르는 이들과도 시시콜콜한 주제부터 인생얘기까지 나누고 싶은 욕구가 분명히 있다. 이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모임에 자주 참석한다는 30대 직장인 정모 씨는 “끈끈한 관계에서는 어떤 얘기로 시작하든 나중에 깔때기처럼 직장, 집, 결혼, 육아 얘기로만 귀결된다. 반면 느슨한 관계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말할 수 있는 편안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자존감 회복에는 모르는 관계가 더 낫다? 모르는 사람의 소통이 자존감 회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많다. 퇴사 후 작가로 변신한 곽모 씨는 “주변 사람들은 제 새로운 도전을 걱정하거나 회의적으로 바라볼 때가 많았다. 반면 처음 만난 분들이 제 도전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심으로 응원해 힘을 받았다”고 했다. 대화형 커뮤니티 ‘라이프쉐어’도 인기다. 모르는 이와 소통하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인생관, 자존감을 발견하도록 만드는 취지다. 이곳에서는 주변 사람에게 터놓기 어려운 다소 오글거리는(?) 질문을 모르는 사람과 주고받아야 한다. “당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하루는?”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다를까?” 등 질문에 쭈뼛거리던 참가자들도 몇 분 뒤 거리낌 없이 인생 가치관을 말하기 시작한다. 30대 사업가 이주호 씨는 “나이, 직장에 따른 사회적 편견 없이 누군가 있는 그대로 저를 바라볼 때 더 큰 위로와 자극을 받는다. 제게 뼈있는 조언을 하거나 생각지 못한 혜안을 들을 때도 많다”고 했다. 애플리케이션 ‘트로스트’도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 욕구를 겨냥했다. 상담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와 고민 글을 보내면, 상담사들이 조언을 건넨다. 지인, 친구 수준이 해줄 수 있는 위로, 대안 제시를 넘어 전문적 해결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트로스트 측은 “정신과를 방문하기 어렵거나, 친구들에게 꺼내놓기 힘든 고민도 비대면 방식으로 숱하게 접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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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학계 원로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미국 하와이에서 휴양 중이던 24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서울대 법대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2007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일했고, 한국행정학회장과 한국공공정책학회장, 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명지전문대 총장 등을 지낸 한국 행정학계 원로다. 현실 행정과 정치에도 관여해 1999∼2002년 중앙인사위원장, 2004년 열린우리당 공직후보자자격심사위원장, 2005년 국회 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을 맡았다. 저술 활동도 활발히 했다. ‘사회과학연구방법론’(1976년), ‘정치학―성찰과 조망’(1984년), ‘한국의 관료제연구’(1991년), ‘통의동 일기’(2009년), ‘미즈 프레지던트’(2012년), ‘좋은 정부: 철학과 과학으로 풀어 쓴 미래정부 이야기’(2018년) 등 20여 권의 저서를 냈다. 국민훈장동백장(1996년), 청조근정훈장(2003년)을 받았다. 유족으로 아내 유정희 씨(77)와 1남 1녀가 있다. 장례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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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근한 민초의 얼굴 ‘창령사 터 오백나한’

    강원 춘천시 국립춘천박물관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창령사 터 오백나한’ 특별전시를 상설전시로 단장해 27일 개관한다고 밝혔다. 전시 부제는 ‘나에게로 가는 길’. 오백나한은 2001년 강원 영월군 남면에서 경작지 평탄화 작업을 하던 주민 신고로 존재가 드러났다. 이듬해까지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형태가 완전한 상 64점을 포함해 나한상과 보살상 317점을 찾았다. 근엄하지 않고, 푸근한 민초의 얼굴이 담긴 듯한 다양한 모습이 감동을 자아낸다는 평을 받았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지난해 8월 처음 선보인 특별전시는 그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뽑은 ‘2018년의 전시’로 선정됐다. 이후 서울과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전시실은 자연 속을 거니는 듯한 공간에서 나한의 다양한 표정을 만날 수 있게 조성했다. 박물관은 “관객이 자신의 마음을 닮은 나한을 고요히 마주할 수 있도록 정갈하게 상설전시실을 꾸몄다”며 “사유와 명상의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고 했다. 창령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해 조선 중기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창령사 터에서 ‘蒼嶺’(창령)이라고 새겨진 기와와 청자, 중국 송나라 때 동전 등이 함께 나왔고, ‘동국여지승람’ 등에도 창령사가 기록돼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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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장원급제 여부 고위직 승진과 큰 관계 없었다

    입시나 고시, 전문직 충원 시스템의 공정성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개천에서 용이 났을까, 아니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덕을 많이 봤을까. 과거 합격자를 양적으로 분석한 연구들이 새롭게 진행돼 눈길을 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1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규장각에서 학술회의 ‘조선시대사 연구와 빅데이터’를 열었다. 이상국 아주대 사학과 교수와 박종희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국제정치데이터센터장은 ‘성공의 경로―조선시대 지배엘리트의 관직이력 데이터 분석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발표문에서 “분석 결과 과거 합격자가 고위 관직에 진출하는 데에는 개인의 능력과 가문의 배경 모두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조선 500년 동안 문과 합격자는 1만5000명이 넘는다. ‘국조문과방목’에 문과 급제자 명단과 생년, 본관, 가족관계, 등수를 비롯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지만 나중에 어떤 관직을 지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반면 조선왕조실록은 어떤 사건을 기록할 때 인물의 이름과 관직을 충실히 기록했다. 연구팀은 텍스트 마이닝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록에서 인물들의 임명과 면직, 포상과 징벌 기록을 추출한 뒤 이를 문과방목 자료와 종합 분석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급제자 약 5000명의 집안 배경 정보와 관직 이력 정보가 결합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것이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급제자의 시험 성적이 좋으면 대체로 고위 관직(1∼3품)에 더 빨리 진출한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 관직을 지내는 기간도 더 긴 편이었다. 개인의 능력이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합격자의 조부나 증조부가 관직을 지냈을 경우 고위 관료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이 단축되는 경향도 발견됐다. 고위 관직에 오래 머무는 데는 조부와 증조부뿐 아니라 외조부의 관직 이력도 영향을 미쳤다. 선대가 높은 관직을 지냈을수록 이런 추세가 뚜렷했다. 가문의 ‘빽’이 확인된 셈이다. 장원 급제(1등) 여부는 고위 관직에 이르는 시간과 큰 관계가 없었다.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린 시기가 포함된 순조∼순종 시기에는 시험성적이 좋은 이들이 고위 관직에 오르는 데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상국 교수는 “양반 엘리트가 정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개인의 능력과 함께 가문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고 말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인문학에 활용하는 것과 관련한 시각차가 학술회의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토론자는 실록의 임명 기록이 당사자가 실제 벼슬자리에 나아갔다는 뜻은 아니며, 낙향 등으로 인한 재직 기간의 오차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희 센터장은 “역사학자는 오차 ‘0’을 목표로 하지만 사회과학에서는 자료를 (통계를 위한) 샘플로 보고, 오차가 전체적으로 상쇄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조선의 과거에서 서울 편중 문제는 어떻게 드러났을까. 박현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이날 ‘국조문과방목의 통계적 분석’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 유생은 16∼19세기 정기시험인 식년시(式年試) 전체 합격자의 23.8%에 불과했지만 현안에 대한 대책 등을 묻는 제술과(製述科) 합격자는 59.2%를 차지했다. 식년시는 ‘경서를 달달 외우면’ 되기에 인재 선발의 실효가 없는 시험이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조선은 주로 지방 유생에게 급제의 기회를 제공하는 이 시험을 폐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숙종 대 이후에는 급제해도 거의 실제 관직을 받지 못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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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 공산성엔 백제 왕이 살았을까

    충남 공주시 공산성은 웅진 백제의 왕성일까. 공산성 발굴 현장에서 궁의 문과 같은 출입시설과 대규모 토목공사의 흔적이 확인돼 주목된다. 공주시와 공주대박물관이 지난해 6월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왕궁 추정지로 출입하는 길과 관련 시설을 만들기 위해 나라에서 벌인 토목공사 흔적을 확인했다고 문화재청이 24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출입시설은 ‘문궐(門闕·궁 같은 곳의 문)’ 형태로 양 측면에 길이 50m, 너비 36m, 깊이 3.5m의 대규모 성토다짐(흙 쌓기와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을 반복한 것)을 한 구조다. 다진 경사면에는 강돌과 깬돌(割石·할석)을 깔아 유실을 막았다. 이 출입시설과 연결된 넓고 평탄한 광장에서는 기둥 열(柱列)이 30m 이상 발견됐다. 또 가장 북쪽의 높은 대지에서는 지면보다 높은 여러 개의 단(壇)을 만든 흔적이 나와 국가적 또는 왕권의 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은 공산성이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축조한 대규모 국가 시설임을 보여준다. 발굴단은 “문궐 시설은 대궐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대규모 성토다짐이나 외벽 보호시설 같은 토목구조는 한성 백제의 왕성인 풍납토성에서 확인된 후 최대 규모의 백제 토목공사 흔적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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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기인의 생존 도구… 현대인의 생존 도구

    나무썰매와 오늘날의 스키, 곰의 뼈와 현대 디자인 의자가 나란히 놓여 관람객을 맞는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 000년’ 전시다. 단순함과 자연미, 실용성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북유럽 디자인, 그중에서도 핀란드 디자인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다. 문화재를 주로 선보이는 이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로서는 다소 이례적이다. 노키아에서 제작한 휴대전화가 전시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옆과 아래에 핀란드에서 출토된 석기시대의 날렵한 양날도끼와 벌목용 전통 도끼가 놓였다. 지금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듯한 디자인이다. 전시는 관객에게 묻는다.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사회에 따라 여러 도구가 필요했고, 핀란드의 삼림에서는 도끼 한 자루가 생존에 중요했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가장 유용한 생존 도구는 휴대전화일까?” 나뭇가지의 원래 모습을 통째로 살려 다리로 만든 옛 의자의 모습은 우아하면서도 재치 있다. 전시에선 이 밖에도 고고학과 민속학 자료, 현대 산업디자인, 사진, 영상 등 핀란드 문화유산 140여 건을 만날 수 있다. 빗살무늬토기와 설피, 청동검 등 우리 문화유산 20여 건을 전시에 녹여낸 점도 흥미롭다. 쉼터 공간은 원목으로 만든 사우나 공간처럼 꾸며 핀란드의 자연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은 “인간과 물질, 사물과 기술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융·복합 전시”라고 밝혔다. 내년 4월 5일까지. 관람료는 만 25∼65세 3000원, 만 8∼25세 2000원.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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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천에서 평양까지… 현장의 남북교류사

    주 3회, 오후 5시 반 인천항을 출발하는 단둥페리는 다음 날 오전 9시 중국 단둥항에 도착한다. 1998년 취항한 이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경제활동을 벌이는 이들뿐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 노선이 21년 동안 남북 물류의 복판에 있었다고 말한다. 배에 실린 물건 가운데 일부는 단둥 세관을 거쳐 압록강의 중조우의교, 즉 중조(중국-북한) 국경을 넘어 들어갔고, 신의주에서 북한 사람이 받았다. 반대 경로도 마찬가지다. 북한 평양과 신의주에서 출발한 물건 역시 단둥항에서 인천항으로 향했다. 2000년부터 단둥을 연구하고 있는 인류학자가 쓴 현장의 민간 남북 교류사다. 저자는 “휴전선을 넘나들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폐쇄의 길로 들어섰지만, 중조 국경을 통해 남북을 연결한 길은 생겨난 뒤로 끊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썼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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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기법 모방 신라 금귀걸이 포항서 발굴

    고구려 귀걸이와 닮은 5세기 후반 신라 금 귀걸이가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18일 화랑문화재연구원이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련리 유적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橫穴式石室墓) 한 곳에서 금제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금제 가는고리귀걸이 2쌍, 은제 팔찌 1쌍 등 장신구류와 다수의 토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굵은고리귀걸이는 길이 약 5cm로 굵은 고리 아래 작은 동그라미를 붙여 만든 공 모양 장식이 있고, 그 아래 다시 원뿔이 드리워진 모양이다. 연구원은 “고구려의 제작 기법을 모방해 신라에서 만든 것으로 판단되는 귀걸이로, 두 나라의 교류를 보여 준다”며 “공 모양 장식 아래 원반 모양 장식이 생략된 점은 고구려 귀걸이의 전형적인 모습과 다른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유적에서는 모두 무덤 7기가 조사됐지만 대부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귀걸이가 출토된 무덤은 무너진 천장돌이 부장품을 덮고 있어 도굴을 피한 것으로 추정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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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투병 이어령 “시인 이상처럼… 의미를 남기면 불멸”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 소리꾼 장사익 씨가 ‘귀천’을 노래하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5)이 손으로 입을 감싸 쥐고, 감상에 빠져들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로 노래를 마칠 때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슨 뜻이었을까. 알려진 것과 같이 이 전 장관은 암 투병 중이다. 외부 행사도, 모임 초대도 거의 사절하고 있는 그가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이날 마련한 ‘이상과의 만남’ 행사에 강연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짬을 내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몸이 불편해도 오늘 나온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상처럼 일찍 세상을 떠나도, 불행했어도 오래도록 사는 방법이 있다”면서 “내가 이상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를 전하면 청중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이상이 탄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병중에도 그는 ‘한국론’을 구술로 집필하고 있다. 12권이 목표지만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쓴다. “내가 비록 세상을 떠나도 생각이 끝없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져간다면 이런 게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 쓰는 사람은 절망이 끝이 아니에요. 절망을 글로 쓸 수 있잖아요. 그게 암흑이라고 해도 암흑을 쓸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는 “생명은 숨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정보가 생명”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목숨은 다해도, 정보는 살아남는다. “생명은 바로 의미의 세계예요. 신라의 뜻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절대로 멸하지 않은 것이에요. 영원한 것이 없는, 누구나 죽는 삶 속에서 뭐를 남길 것이냐? 의미를 남기는 것이죠. 이상이 바로 그래요. 큰 기념관은 없지만 이상 같은 사람이 오늘날의 한국을 있게 만든 것이지요.” 사실 이 전 장관은 투병이 아니라 ‘친병(親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많아지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 병과 함께 살자고 태도를 바꿨더니, 병과도 친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항암치료는 받지 않고 있다. “객기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내 나이는 자연히 수명을 다해 세상을 뜨나, 병으로 세상을 뜨나 마찬가지예요. 더구나 나이 많은 사람은 (암 진행이) 더디니까. 참고 견디면서 글 하나 더 읽고, 창문 한 번 더 열고 풍경을 보는 것, 그게 의미가 있어요. 물론 내 얘기고, 젊은 사람들은 의사 지시 따라서 항암 치료 꼭 받으세요.(웃음)” 피곤한 듯하던 이 전 장관은 강연을 시작하자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힘을 더 얻어가는 듯했다. 그는 “이상은 처음으로 공간적이고 시각적인 시를 쓴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차기회장, 박정자 배우, 문화재청의 정재숙 현 청장과 이건무 전 청장, 김원 건축가 등 30여 명이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은 내게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일한 것을 두고 나라에 공헌했다고들 하는데, 이런 건 내 삶에서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에요. 장관도 내 일생에서 2년밖에 안했어요. 지금은 올림픽 굴렁쇠나 알지, 내가 ‘공간기호론’을 썼다는 건 몰라줘요.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공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로운 것, 알아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지요.” 그는 젊은 시절 ‘우상의 파괴’를 써서 기성 문단을 뒤흔든 사람이 아니라, ‘이상론’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작가 이상을 되살려낸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는 이상의 작품과 유품, 초상을 찾아내고, 이상문학상을 제정했다. 그가 창간한 ‘문학사상’ 첫 호 표지가 이상의 초상이다. “이상은 젊은 나이에 객사한 폐결핵 환자지요. 불행하게 살았어요. 그러나 작품만으로 권력과 돈을 남긴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1930년대 돌아가신 분이 지금도 새로움을 갖고 있다는 게 진짜 공헌이지요.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이름 내는 사람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별로 공헌한 게 없지요. 뒷골목에서 숨어서 일한 분들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끌고 갈 겁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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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00년 전 이집트 미라의 신비 속으로…

    약 2700년 전 이집트 제26왕조 시대 살았던 인물의 미라가 있고, 관 뚜껑에는 인간의 머리를 한 새가 망자 위를 맴돌며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것임을 알리고 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6일 개관한 ‘세계문화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존 ‘아시아관’을 개편해 세계문화관을 만들었고 첫 상설전시로 미국 브루클린박물관과 공동으로 2021년 11월 7일까지 이집트실을 연다. 2016년 12월 브루클린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해 인기를 모았던 특별전시 ‘이집트 보물전’의 주요 유물 등 94점을 볼 수 있다. 기존 중앙아시아실과 인도·동남아시아실, 중국실의 시설과 공간도 개선했다. 신안 해저 문화재를 전시했던 ‘신안실’은 내년에 세계도자실로 바꾼다. 세계문화관 전시 유물은 총 443건(531점)이다. 이집트실 다음으로는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전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협력해 열 예정이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로 확장된 시선을 갖는 것은 우리 문화재의 정체성을 드높이는 일이기도 하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상설전시실을 2년마다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공간과 소장품을 확보해 국민들이 언제나 여러 문화를 관람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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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죽음 애도한 조선의 선비들

    “어느새 무덤이 말 앞에 이르고, 성명이 저승 명부에 떨어졌구나. … 다섯 딸은 아버지를 찾아 울고, 아들 하나는 하늘 부르며 곡하며….” 조선 전기 문신 남효온(1454∼1492)이 남긴 시 가운데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흥미로운 건 이 시 속의 아버지가 남효온 자신이라는 것. 망자가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시를 짓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시는 이른바 ‘자만시(自挽詩)’다.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를 자신을 대상으로 지은 것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조선시대 자만시의 계보를 연구한 책 ‘나의 장례식: 自挽詩(자만시), 나의 죽음 소유하기’(고려대 출판문화원)를 최근 발간했다. 남효온은 스승으로 모셨던 김종직(1431∼1492)에게 1489년 편지를 쓰면서 별지로 자만시를 담아 부쳤다. 시는 죽음에 대한 달관을 표현하다가 돌연 살면서 한스러웠던 일을 털어놓기도 한다. “집이 가난하여 술이 넉넉지 못했네. 행실이 더러워서 미치광이로 불렸고, 허리가 곧아 높은 사람 노엽게 했지. 신발이 뚫어져 발꿈치가 돌에 채이고, 집이 낮아 서까래가 이마 때렸다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서 벼슬을 단념한 채 평생 바른말을 아끼지 않았고, 단종을 위해 절개를 지키다 죽은 이들을 다룬 ‘육신전’을 펴냈던 남효온의 삶이 시를 통해서도 그려지는 듯하다. 남효온은 이 자만시를 남기고 3년 뒤 세상을 떴다. “늙은 홀아비 신세 담박하기가 중과 같고, 고루하니 어찌 멀리 있는 벗 찾아온 적 있으랴. 쇠한 눈이라 일찍 온 봄에 더욱 놀라니, 매화 이미 졌지만 살구꽃 아직 남았기에.”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했던 숨은 선비 김상연(1689∼1774)의 자만시다. 죽음의 겨울, 일찍 찾아온 봄, 져버린 매화와 남은 살구꽃의 대비가 선명하고 의미심장하다. 책에 따르면 자만시의 뿌리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양식화된 만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 중국의 만시와 자만시는 보편적 생사를 주요 주제로 한 반면 조선의 자만시는 개인적 사연을 담은 자만시가 많다. 임 교수는 자만시가 자신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타인에 대한 만시가 죽음을 통한 상실감을 드러낸다면 자만시는 자신의 가장된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다”며 “‘죽은 나’라는 가공의 자아가 현실의 나를 규정하고 만든다는 점에서 자만시는 자기형상의 창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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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필 국립중앙박물관재단 이사장, 스웨덴 총리 방한 靑 환영 만찬 참석

    최정필 국립중앙박물관재단 이사장(74)은 한국과 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18~20일 방한하는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의 청와대 환영 만찬에 참석한다. 최 이사장의 부친인 최남주 선생(1905~1980)은 현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의 조부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 국왕(당시 황태자)과 함께 경주에서 ‘서봉총’ 금관 발굴에 참여했고, 1971년 스웨덴 정부로부터 동양인으로 최초로 ‘바자훈장 기사장’을 받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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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이 빚은 이산의 아픔, 망각 속에서 소환하다

    1952년 10월 37명이 동베를린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1956년까지 357명의 북한 대학생이 동독에 유학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1959년 40명을 북한으로 조기 소환했고, 동유럽의 모든 유학생에게 일시적으로 북한에 돌아와 정치사상 교육을 받도록 만든다. 이런 와중에 학생 11명이 서베를린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이념과 민족의 시각을 넘어, 남북한의 공식 역사 서술에서 생략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국제 학술회의가 열린다.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연구소(소장 임지현)는 16, 17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학술회의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북한: 잊혀진 기억과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개최한다. 학술회의의 한 주제는 분단과 관련된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다. 이유재 독일 튀빙겐대 교수는 ‘반제국주의 영웅들: 동독에 간 북한 전쟁고아와 유학생’ 발표문에서 1950년대 북한이 ‘사회주의 형제국가’들과 인적으로 교류하면서 벌어진 일상적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발표문에 따르면 1950년대 북한 정부는 전쟁고아 2만4000여 명, 유학생 5000여 명, 노동자 7800여 명을 이들 국가에 여러 목적을 가지고 보냈다. 북한은 동독에 파견한 전쟁고아가 교육을 마치고 귀환한 뒤 ‘퇴폐적 유럽 생활’과 ‘노동자 계급에 반하는 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유학생도 소환하기 시작했다. 유학생이 동독인과 연인이 됐거나 결혼한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동독 여성은 북한인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따라 북한에 갈 수가 없었다”며 “현실은 참혹하게도 이들을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북한의 초기 아파트 문화를 근대적 욕망의 시각에서 조명한 안드레 슈미드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발표를 비롯해 ‘북한의 패럴랙스 건축’(김지형 하와이대 교수), ‘이동하는 북한 여성의 원거리 모성’(김성경 북한대학원대 교수), ‘영국 거주 북한 이주민의 고국 정치’(이수정 덕성여대 교수) 등의 발표가 이어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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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조선을 발칵 뒤집은 ‘임해군 치정 사건’

    선조 36년(1603년) 8월 도승지와 개성 유수를 지낸 고위 관료가 조상의 산소에 갔다가 화적 떼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포도청뿐 아니라 경기도와 충청도의 병력까지 동원해 범행에 가담한 자들을 잡기는 했는데, 이들이 감옥에서 잇따라 사망한다. 배후가 따로 있었던 것. 범인 가운데 한 명은 사실 선조의 아들 임해군이 거느리던 수하였다. 장안에는 임해군이 살해에 관련됐다는 소문이 돌고, 추국 중에 죽은 관료의 첩이 남편 살해에 공모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사실 임해군이 이 첩을 좋아해 빼앗고자 했는데, 여의치 않자 첩과 공모해 살해를 교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선조가 벌을 준 건 임해군이 아닌 포도대장이었다. 아들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외압을 가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다양한 범죄 사건과 수사, 재판을 추적한 책이다. 범죄로 엿볼 수 있는 당대 사람들의 욕망도 흥미롭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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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재 출연 대우재단 설립해 학술총서 760여권 발간… 학문 발전 씨앗 역할

    9일 타계한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문화계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로 꼽힌다. 우선 대우학술총서 발간은 가장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고인이 1978년과 1980년 2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대우재단은 1983년부터 대우학술총서를 출간하며 ‘학술 분야의 씨앗’으로 자리매김했다. 1983년 ‘한국어의 계통’(김방한 지음)을 처음 낸 이래 지금까지 620여 권이 나왔으며 대우고전총서까지 더해 모두 760여 권의 학술서를 발간했다. 이 총서는 소외됐던 학문 분야를 조명하고 전문용어의 우리말 표현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총서 자연과학 분야가 1984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재단은 2015년부터 대우휴먼사이언스 시리즈도 발간하고 있다. 재단은 학회와 장학 지원 등 약 2000건의 지원사업을 벌여 왔다. 재단은 대우그룹이 해체된 2000년 이후에도 보유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자체 재원을 확보하고 학술사업을 이어왔다. 올해에도 ‘한국도자제작기술사’(방병선) 등 논저 6종과 번역서 1종을 지원했다. 또 고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장남 선재 씨를 기리기 위해 1991년 경북 경주시에 ‘선재미술관’, 1998년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아트선재센터를 열었다. 선재미술관은 그룹 해체 후 공매됐고 아트선재센터는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79)이 관장을 맡다가 2016년부터 장녀 김선정 관장(54)이 운영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김종성 건축가의 작품으로 지상 3층, 지하 3층 건물에 전시장, 극장, 한옥을 갖췄다. 음악 문학 무용 패션 등 여러 장르와 활발하게 협업하는 실험적 전시를 시도하고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데 힘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12년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에서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의미를 짚으며 국내외 작가 11팀이 참여한 ‘리얼 DMZ프로젝트 2012’전은 큰 주목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은 바둑계의 은인이라고 할 만하다. 아마 3단의 애기가였던 그는 1983년 한국기원 2대 총재로 취임하며 바둑계 발전에 앞장섰다. 당시 기전 상금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었던 프로기사들을 대우그룹 계열사 등에 지도사범으로 취업시켜 바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동양증권배(1988년)와 진로배(1992년) 등 세계 기전 창설에 산파역을 맡으면서 바둑계를 질적, 양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뒷받침은 한국 바둑이 1990년대 세계 바둑을 석권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또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국기원 회관이 비좁다는 바둑인들의 건의에 따라 성동구 홍익동 건물을 희사해 1994년 9월 한국기원이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전 회장은 장거리 해외 출장을 갈 때 프로나 아마 강자를 대동해 기내에서 수담을 즐겼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김 회장은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깊었다. 그는 장남이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 법정 스님의 위로를 받고 삼청동 법련사를 개축한 뒤 아들의 위패와 영가를 봉안했다. 조종엽 jjj@donga.com·손효림 기자}

    •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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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골굴석굴, 실크로드 둔황-병령사 석굴과 유사

    “골굴 앞 고개에 올라 돌 봉우리를 바라보았더니 모양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층층으로 이루어진 굴 앞의 전실 처마와 창과 벽이 채색돼 있는데 공중에 화려하게 채색된 전각 5, 6채가 바위 사이에 걸려 있어 완연한 그림 같았다.” 조선 숙종 때 학자 정시한(1625∼1707)이 기행문 ‘산중일기(山中日記)’에 남긴 경북 경주시 골굴석굴의 모습이다. 자연 동굴에 조성한 우리나라 유일의 석굴사원인 골굴석굴의 원 모습을 실크로드의 여러 석굴에서 찾기 위한 학술대회가 14일 열린다.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와 한국불교미술사학회는 한국 최초의 실크로드 학술조사(1989년) 30주년을 맞아 학술대회 ‘골굴석굴과 실크로드 석굴’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에서 연다. 12개 굴이 한 절벽에 존재하고 마애불까지 조성된 석굴사원은 국내에 골굴석굴뿐이다. 그러나 1890년대 화재로 목조 전실(前室)이 사라져 원 모습을 알 수 없다. 현재의 전실은 나중에 지은 것이다. 문명대 교수는 “문헌과 현재의 상태를 종합해 보면 골굴석굴은 실크로드의 둔황(敦煌)석굴이나 병령사(炳靈寺)석굴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비교 연구를 통해 원형 복원에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굴석굴의 구조는 인도나 중국의 차이티야 석굴(불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동굴)을 변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교수는 발표문에서 중국 간쑤(甘肅)성 둔황의 둔황 285굴과 골굴석굴을 비교했다. 285굴은 서위(西魏) 시대인 538년에 조성됐다는 명문이 남아있어 둔황석굴의 편년과 성격 연구에 중요한 석굴이다. 문 교수는 “두 석굴은 전실과 주실로 구성된 구조가 같고 주실도 골굴 법당굴은 장방형, 둔황 285굴은 정방형으로 거의 비슷하다”며 “그러나 골굴 법당굴은 벽화 없이 조각만 있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손영문 문화재청 상임전문위원은 중국 간쑤성 병령사석굴과 골굴석굴을 비교했다. 그는 병령사석굴이 돋보이는 바위 면에 대형 미륵불을 조성한 것과 마찬가지로 골굴석굴의 마애불인 석가여래좌상 역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염원과 상징을 담아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손 전문위원은 “골굴석굴은 호국정신과 관련이 있는 신인종(神印宗·신라∼조선 초 존재했던 밀교 계통의 불교 종파) 내지 유가종(瑜伽宗·신라∼고려 때 불교의 한 종파) 승려들이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루판 동쪽 45km에 있는 베제클리크석굴과 골굴석굴의 유사점을 조명한 발표도 나온다. 고승희 서울·대전 문화재전문위원은 발표문에서 두 석굴 모두 예배와 수행의 공간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암벽 개착(開鑿)과 인공 축조 방식이 모두 사용됐다고 밝혔다. 고 전문위원은 “베제클리크석굴 벽화에는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고자 하는 서원을 다룬 ‘서원도’가 많은데, 그 묘사가 골굴석굴 마애불의 형태와 가사의 주름 표현과 유사하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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