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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입시학원 건물에서 불이 났지만 입주자들의 적절한 대처로 인명피해 없이 위기를 넘겼다. 사고 직후 비상대피시설을 이용해 발 빠르게 대피했고 소방당국이 신속히 구조에 나선 결과다. 17일 오후 3시 12분경 서울 성북소방서에 지상 6층 건물에 입주한 성북구 A 입시학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불이 난 곳은 지하 1층 봉제공장이었다. 건물 3층(약 257.9m²·78평)의 A 입시학원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3 학생 18명이 논술 강좌를 듣고 있다가 화재 소식에 대피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학원의 박모 실장(41)은 현관문 너머로 자욱한 연기를 보자마자 “불이야!”라고 외쳤고, 안모 원장(48·여)과 함께 강의실로 뛰어가 학생들을 비상구로 인도했다. 건물 3층 뒤편에 베란다 형식으로 마련된 5m² 면적의 비상구에는 1층까지 내려갈 수 있는 6m 가량의 비상 사다리가 준비돼 있었다. 원장과 실장, 교사 3명이 아래로 사다리를 던지자 인근 주민 2명이 달려와 사다리를 잡아주며 대피를 도왔다. 학생들은 물티슈로 입을 막고 침착하게 대피했다. 여학생에게 “먼저 내려가라”며 양보하는 학생도 있었다. 소방차는 신고 접수 3분 뒤인 3시 15분에 도착했다. 소방관들은 자체 사다리를 3층 비상구에 연결해 구조에 나섰다. 원장과 교사들은 학생들이 먼저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왔고, 박모 교사(44)가 맨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성북소방서 이재호 소방위는 “원장과 교사들이 학생들의 대피를 도와준 덕에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건물 4, 5층 입주자 일부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구조됐다. 3명은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다가 구조됐다. 화재는 3시 38분에 완전히 진압됐고 총 33명이 무사히 구조됐다. 이 중 11명은 단순 연기 흡입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안 원장은 “비상구와 간이 사다리를 사전에 준비해 놓았고 서로가 배려하며 침착하게 대피해 대형사고를 막았다”라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근로시간을 단축해 삶의 질은 개선하되 임금 삭감은 안 된다.”(노동계)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면 인건비 부담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다.”(재계) 2000년 5월 당시 최선정 노동부 장관이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자 노사는 찬반 공방을 벌였다. 논쟁은 종교계에까지 번졌다. 불교계는 “산사(山寺) 순례생활을 하는 신도가 늘 것”이라며 환영했지만 기독교계는 “주말에 여행을 가는 등 교회에 오는 신도가 줄어든다”며 반대했다. 나라 전체가 3년 넘게 홍역을 앓은 끝에 2003년 8월 ‘주5일 근무제(주5일제)’의 근거가 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2004년 7월, 마침내 주5일제가 시행됐다. 정부는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문화 관광 레저 등 새로운 내수산업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근로시간이 줄면 추가 고용이 5.2% 증가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5년 레저시장 규모는 37조9815억 원으로 전년(34조5140억 원)에 비해 10.5% 증가했다. 전해 ―0.1%로 뒷걸음질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후 레저시장 규모는 꾸준히 커져 지난해 57조1813억 원 규모에 이르렀다. 2004년과 비교하면 65.7%나 높아진 수치다. 주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취업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2003년 49.1시간에서 지난해는 43.1시간으로 6시간이나 줄었다. 근로문화도 오랜 시간 일하는 ‘양’ 중심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질’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실감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5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 불러온 변화를 구석구석 살펴봤다. ▼ 회식은 木요일, 동창회는 金요일… 주말은 가족과 ▼레저의 재발견유흥가 대목 ‘金-土’서 ‘木-金’으로… 가족 단위 나들이 크게 늘어2014년 캠핑인구 300만명 예상… 4년만에 5배로 크게 늘어“신토불이!” 2000년대 초 한 TV 예능프로그램 ‘천생연분’의 진행자 강호동이 오프닝 때마다 이렇게 외쳤다. ‘우리 게 소중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 밤”의 줄임말이다. 당시 토요일 밤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직장인 회식이 많았던 금요일과 함께 토요일은 유흥가의 대목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일주일 내내 손꼽아 기다리던 ‘신나는 토요일’은 ‘불타는 금요일(불금)’에 자리를 내줬다. 직장인의 회식자리는 자연스럽게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당겨졌다. 주말에 이틀을 온전히 쉴 수 있게 되면서 1박 2일, 2박 3일로 떠나는 캠핑이 여가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주 5일근무제 시행 10년이 가져온 변화다.목요일은 ‘회식 데이’ 6일(목)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BBQ종로관철점. 제너시스BBQ 본사 직원 6명이 모였다. 이날은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호프(Hope)데이’다. 주로 3년차 이하 주니어급 직원들의 소통을 위해 만든 자리다. 호프데이 회식은 언제나 목요일에 열린다. 금요일 회식은 10년 이상 회사를 다닌 고참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제너시스BBQ 운용본부 선한성 주임(30)은 “지금은 목요일 회식이 대세”라며 “금요일에 정상근무를 하다 보니 회식 자리도 길지 않고 술도 덜 마시는 게 목요일 회식의 특징이다”라고 전했다. 식당과 술집의 풍경도 바뀌었다. 1996년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한식당을 운영해온 김시영 씨(55)는 “딱 금요일 점심까지만 손님이 많다”며 “금요일 단체회식 예약을 받아도 막상 오는 손님을 보면 예약한 숫자보다 적을 때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요즘 택시기사들이 가장 바쁜 날도 목요일이다. 2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김모 씨(59)는 “지난해 택시비가 인상된 뒤 전체적으로 손님이 줄었지만 그나마 목요일에는 돈을 좀 번다”며 “목요일 밤에는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와 강남에서 수입이 특히 짭짤하다”고 전했다.뜨거운 ‘불금’ 7일(금) 오후 6시경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 앞. 이제 막 퇴근한 직장인들의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가로수길. 오후 7시경 일대 식당마다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8시를 넘자 대부분 식당에서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한 족발가게에서 만난 30대 남성 직장인 3명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리려는 듯 와이셔츠 단추까지 풀어헤친 채 건배를 했다. 용산구 이태원도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낳은 명소 가운데 한 곳이다. 매주 금요일 밤 이태원역 2번 출구로 나와 골목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세계음식 문화거리는 20, 30대 직장인들과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근처 경리단길, 해방촌도 불금이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명소가 됐다. 광화문 근처 회사의 4년차 직장인 전모 씨(27·여)는 “불금에는 직장 동료보다 친구들을 만나 즐긴다. 회사 근처에 약속을 잡으면 혹시라도 직장상사와 마주칠 수 있어 부담스럽다. 기왕이면 분위기 좋은 카페, 술집이 몰려 있는 이태원이나 가로수길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로수길에 일본식 선술집을 낸 최모 씨(33·여)는 “금요일 저녁이면 평소보다 3배 이상의 손님이 몰린다”며 “금요일 장사는 토요일 오전 4시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주말은 ‘가족 데이’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가장 큰 특수를 누리는 곳은 레저업계다. 이틀간의 휴일이 주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덕분이다. 여가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캠핑’.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0년 60만 명이었던 캠핑인구가 올해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박 2일’ ‘아빠. 어디가’처럼 짧은 여행을 소재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은 시청률 보증수표가 됐다. 석영준 대한캠핑협회 사무총장은 “과거 캠핑족들이 주로 40대 남성이었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캠핑족이 대부분으로 캠핑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8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경기 가평군 자라섬 캠핑장에도 가족 단위 캠핑객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서울에서 멀지 않고 면적이 넓어 대표적인 가족 친화형 캠핑장으로 불린다. 이날도 아이는 폴대를 들고 아빠는 망치를 두드리며 텐트를 설치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캠핑장 내 설치된 100여 개의 텐트 중에서 커플족의 텐트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캠핑 2년차인 이상원 씨(40) 가족은 이제 한 달에 두세 번 짐을 꾸려 떠날 정도로 캠핑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이날도 온 가족이 힘을 합쳐 텐트를 설치한 뒤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씨의 아내인 박정선 씨(40)는 “콘도나 펜션으로 휴가를 떠나면 (집에 있는 것처럼) TV만 보다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캠핑은 자연 속에서 가족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직장인과 가족의 문화를 바꿔놓은 ‘주 5일제의 힘’이었다. ▼ 근무시간 줄었지만… 기업 생산성은 되레 높아졌다 ▼근로의 재발견법정근로 週 44시간서 40시간으로… 연공서열 대신 직급 파괴 늘고현장 출장은 화상회의로 대체… 양보다 질 ‘똑똑한 근무’ 확산SK텔레콤은 2007년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직급서열을 파괴한 ‘매니저 제도’를 도입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나뉘던 직급을 폐지하고 ‘매니저’라는 호칭으로 바꿨다. 수직적 서열에 따른 경직된 조직문화를 업무 중심의 수평적 문화로 바꿔 보자는 취지였다. 이 회사는 능력 위주로 선발한 팀장이 각 업무를 책임지면서 업무 효율화까지 꾀했다. SK텔레콤이 이런 변화에 나선 건 10년 전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게 결정적이었다. 업무시간이 줄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할 상황이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기존의 연공서열 중심의 조직으로는 과거와 같은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장기 근로’에서 ‘효율적 근로’로 주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되면서 국내 대기업의 조직문화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업무시간이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줄어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매니저 제도 같은 다양한 인사 시스템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하는 ‘스마트워크’ 시스템도 일반화됐다. 예컨대 해외 출장 업무가 발생해도 반드시 현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으면 화상회의나 콘퍼런스 콜(여러 명이 동시에 하는 전화회의)로 진행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주5일제 도입 전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중심으로 한 재계의 우려가 많았다. 재계는 “주5일제 도입은 단순한 근로시간의 단축이 아닌, 나라 전체의 근무일수가 하루 줄어드는 대단히 크고 근본적인 변화”라며 “기업 생산성 저하 문제 등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다”고 걱정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고 자유시간이 늘어난 근로자들은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갖거나 파트타임 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신규 고용창출은 물론이고 삶의 질 향상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스마트워크가 보편화되면서 기업의 생산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원격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업무 시스템이 일터에서의 근무시간을 줄였다. 다만 실질적인 근로시간은 줄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쉬는 날에도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업무 처리가 가능해 업무와 관련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영세기업에 주5일제는 ‘그림의 떡’ 다만 중소기업의 경우 주5일제로 인한 영향은 업종과 규모에 따라 편차가 있다. 제도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업종과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된 탓이다. 주5일제 도입 당시에는 중소기업이 더 큰 피해를 볼 거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인 12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주5일제 시행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9% 정도 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가 182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인건비 복리후생비 등 제반 비용이 평균 20% 상승하고, 제품 단가도 16%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때 대기업에 비해 자금과 인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은 추가 인력을 고용해서라도 생산량을 달성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하루 생산량을 늘리자고 추가 인원을 뽑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일부 중소기업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부품소재 전문 중소기업인 SJ테크의 경우 2006년 매출액이 주5일제 도입 이전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유창근 SJ테크 대표는 “2004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국내 본사 인력의 자기 계발을 지원하면서 관리와 기술개발 역량을 끌어올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주5일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중소기업도 있다. 건설 장비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인 B사는 직원 복지와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며 주5일제를 앞장서 시행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오히려 직원들이 노는 시간만 늘어난 게 아닌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이 회사의 김모 대표는 “주5일제에는 찬성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가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영세기업에 주5일제는 먼 나라 얘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생산량이 유동적이어서 주5일 근무를 보장해 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로 부족해진 일손을 메우려면 사람을 더 뽑거나 설비를 새로 들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원이 50여 명인 대구의 한 중소 금속기계 제조업체에 다니는 이모 씨는 “지금도 2주에 한 번만 주5일 근무를 한다”며 “애초부터 대기업을 위한 제도였다”고 푸념했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회사의 사무직은 생산직보다 주5일 근무에 따른 불만이 더 크다. 생산직은 주말에 출근하면 수당을 받지만 연봉제인 사무직은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샘물 evey@donga.com·강홍구·임우선·최고야·정세진·김호경·김창덕 기자}
"김포공항에 갔다가 다시 종로로 돌아와서 세무서에 들러주세요." 지난달 23일 오후 2시 반경 서울 종로구의 한 도로. 남모 씨(57)가 은행 서류봉투를 지닌 채 택시를 잡아타며 말했다. 2시간 후 종로로 돌아오자 그는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세금을 내야 하는데 수표밖에 없으니 현금으로 바꿔주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남 씨는 서류봉투에서 10만 원 권 수표 2장을 꺼내 보여줬다. 하지만 택시기사가 현금을 꺼내 세는 사이 봉투에서 슬쩍 수표를 뺐다. 현금을 받자마자 빈 봉투를 택시에 놔두고 줄행랑을 쳤다. 남 씨는 절도 등 전과 7범으로, 이전에도 비슷한 사기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세 번 입건됐다. 하지만 피해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는데 그쳤다. 남 씨는 택시기사들에게 "세무서 일을 보는 동안 기다려주면 1, 2만 원을 더 주겠다"며 계속 사기를 쳤다. 경찰은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피해신고가 연이어 접수되자 잠복수사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남 씨가 또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같은 방법으로 사기를 친 뒤 도망가던 남 씨를 현행범으로 검거했다. 경찰이 서울시내 전역으로 수사를 확대해 유사한 피해사례를 조사한 결과 강남, 송파, 마포, 광진 등에서도 범행을 저지른 게 드러났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남 씨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 조사결과 남 씨는 올해 1월부터 이달 5일까지 24회에 걸쳐 택시기사들로부터 319만 원을 챙겼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정치권은 ‘무상복지’가 ‘세금복지’임을 시인하고 복지를 구조조정해야 한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5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무상복지 공방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에 무상복지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여야 모두 선거철마다 무상복지 깃발을 흔들어 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서로 자신들이 약속한 복지는 포기 못한다고 주장하더니 급기야 증세 카드까지 꺼냈다. 무상복지를 외치며 표를 달라고 하다가 ‘공짜가 아니니 돈 내라’는 꼴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현재의 복지재정 파탄 위기는 2010년 무상급식으로 ‘무상 시리즈’ 붐을 일으킨 야당에 원죄가 있다고 진단했다. 또 야당이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은 무상복지 문제의 본질을 얼버무리는 것이며,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의 숨통을 더 옥죄어 복지재정뿐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 같은 ‘무차별 복지’를 멈춰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무상복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복지의 우선순위를 조정할 적기”라고 지적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최근 전직 고위공직자나 학자 등의 성 추문이 잇따르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경기 포천시의 한 골프장 여직원이었던 A 씨(24)는 검찰총장을 지낸 B 씨(70)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11일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성폭력수사대에 고소장을 냈다. 고소장에 따르면 A 씨는 B 씨가 지난해 6월 22일 오후 10시경 골프장 여직원 기숙사에 찾아와 샤워를 하고 있는 자신을 거실로 불러내 강제로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내 아내보다 예쁘다” “애인하자”는 식의 성희롱성 발언을 하며 5만 원을 주고 갔다고 했다. 그러나 B 씨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A 씨가 회사를 곧 그만둔다고 해서 설득하기 위해서 찾아갔다”며 “혼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여직원 3명이 같이 있었는데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또 해명자료를 통해 “허무맹랑한 고소에 대해 당당하게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립중앙의료원장을 지낸 C 씨(65)는 20대 여성 D 씨가 9월 성추행 혐의로 서울 중부경찰서에 고소해 입건됐고 최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C 씨는 원장 재직 당시 계약직이었던 D 씨의 신체 일부를 만지거나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직장을 그만둔 D 씨는 C 씨가 부적절한 관계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C 씨는 관련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학계에서 촉망받던 수학자인 서울대 E 교수도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서울북부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E 교수는 국제학술대회를 도와주던 인턴과 술을 마신 뒤 인턴을 무릎에 앉히고 가슴을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대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는 추가 피해 신고가 잇따랐고 서울대 인권센터는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76)은 9월 강원 원주시의 한 골프장에서 여성 캐디를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은 박 전 의장이 골프를 치는 도중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며 원주경찰서에 신고했다. 이후 둘은 합의서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박 전 의장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상태다. 이미경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랫사람에게 행하는 성추행 등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는 건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이샘물 evey@donga.com·조영달 기자}
"신부가 보고 싶고요, 같이 있어야 정이 들텐데 자주 가보지 못하니 답답하고…."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지게차 운전을 하는 송모 씨(39)는 베트남에 있는 신부(20)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올해 3월 베트남에 가서 신부를 소개받아 곧장 결혼식을 올렸다. 송 씨는 "말은 안 통했지만 외모가 마음에 들었고, 웃는 모습이 착해보여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여 뒤에 혼인신고도 했다. 과거에는 송 씨처럼 부부간 의사소통이 전혀 안 돼도 신부에게 결혼이민비자가 발급됐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접수되는 결혼이민비자는 부부간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 배우자는 한국어능력시험 증명서, 한국어교육 초급 이수증, 한국어 학위, 동포 입증서류, 한국에서 1년 이상 체류한 기록 등 중에 하나를 제출해 부부간 의사소통이 가능함을 입증해야 한다. 또 한국인 배우자가 일정 수준(올해 2인기준 월 123만2900원) 이상의 소득과 안정적인 주거공간이 있어야 비자가 발급된다. 송 씨는 통역 없이는 신부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런 경우 신부는 정부가 지정한 한국어교육기관을 찾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의 교육기관은 이미 수강인원이 꽉 찬 상태였다. 신부는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사설학원에서 공부해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는 방법도 있지만 합격할 자신이 없어 그저 교육기관에 자리가 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송 씨는 "기약도 없이 기다리다보니 신부가 마음이 바뀔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비자심사를 강화한 뒤 송 씨처럼 부부간 소통이 안 되는 사람들이 비자 신청을 못하면서 결혼이민 비자접수 건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법무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결혼 비자 접수건수는 올해 4~9월 6개월간 3585건으로 월평균 598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총 7853건이 접수돼 월평균 1309건이었다. 국내에서 국제결혼은 낯선 외국인과의 맞선을 통한 '속성결혼'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비자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경북지역의 국제결혼중개업자 이모 씨는 "과거엔 맞선에서 신부 입국까지 4~6개월이 걸렸는데 지금은 8개월~1년이 걸린다"며 "보통 신랑들이 신부가 입국할 때까지 매달 생활비를 30만 원씩 대주는데 결혼에 드는 비용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신속한 결혼 성사'로 수익을 내는 중개업체들은 울상이다. 결혼중개업체들의 모임인 한국다문화결혼협회의 한유진 회장은 "신부들이 현지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다보면 결혼 대신 현지의 한국기업에 취직해 돈 버는 걸 택하기도 한다"며 "한국어 공부를 하다 포기하고 한국에 안가겠다며 잠적해 신랑에게 다시 맞선을 시켜줘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혼이민자에게 최소한의 언어 요건을 부과하는 건 속성입국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한다. 조항록 상명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결혼이민자들이 언어소통이 안 되는 상태에서 입국하면 스스로의 인권과 행복을 보장받기 힘들다"며 "선진 이민국가에서도 기존 국민들과의 통합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런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양 당사자가 혼인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최소한 기초수준의 언어소통능력을 습득하도록 노력해야지 않겠느냐"며 "해외에서 한국어능력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점은 대안을 검토중이다"라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국가인권위원회 내부에서 성추문 의혹이 발생한 가운데 이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5일 인권위에 따르면 인권위 여직원 A 씨는 같은 부서 상급자인 B, C 씨로부터 8개월간 성희롱 및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급자들은 주로 회식 자리에서 신체 접촉을 유도하거나 과한 애정 표현 발언으로 피해자를 괴롭힌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올해 9월 말 인권위에 진정을 냈고 가해자들의 성희롱 예방교육을 요청했다. 그는 이후 휴가를 냈고, 현재는 휴직한 상태다. 그러나 해당 사건을 맡은 조사관은 A 씨에게 “가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으면 진정을 취하하거나 합의로 종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결국 진정을 취하했고, 해당 사건은 ‘조사 중 해결’된 것으로 분류됐다. A 씨는 1일 B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는 4일 해당 사건의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진정이 취하된 뒤 지난달 초 내부에서 감사를 지시해 조사 중이다. 조만간 사건의 경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청와대 인근에서 8월 22일부터 지속해온 농성을 5일 끝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는 농성장이 설치된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6일간의 청와대 앞 기다림을 마친다”고 밝혔다. 농성장은 유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설치됐고, 최근엔 유족 5명 내외와 시민단체, 종교인이 상주해왔다. 대책위는 회견문을 통해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님의 말씀을 믿었다. 당신이 국민들이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한 번만 닦아 달라고 코앞에서 울고 있는데 설마 이토록 철저히 모른 척 외면하시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떠난다”고 밝혔다. 이어 “광화문과 전국 곳곳으로 더 많은 국민을 만나러 간다. 앞으로는 대통령님께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닦아 달라고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회견문을 통해 각종 지원에 나서 준 단체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또 “(국회가 마련한 세월호 특별법은) 많이 미흡한 법안이지만, 그나마 이 정도 법안이라도 만들어 진상규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청운동, 효자동 주민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라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4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은 썰렁했다. 몽골텐트 13개가 ‘ㄷ’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마당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고,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진 등을 엮어서 만든 바리케이드만 빙 둘러져 있었다. 석 달 전인 8월만 해도 유족과 시민단체 사람들을 포함해 최대 300∼400명(경찰 추산)이 텐트와 마당에 머물며 농성을 했다. 지금 텐트에 머무는 인원은 주간 30명 정도(경찰 추산)밖에 되지 않는다. 시민들의 발길도 부쩍 줄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광화문 농성장을 유지하면서 투쟁의 구심점으로 삼기로 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이 통과되는 7일을 전후해 청와대와 국회 인근에 설치한 농성장은 철수할 예정이지만 광화문 농성장은 당분간 철수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제대로 진실이 규명되는지 꼭 ‘광화문’에서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농성장이 설치된 건 7월 14일. 이들은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지금은 단식농성과 특별법 제정 모두 일단락됐으니 농성을 지속할 마땅한 명분이 없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텐트는 13개. 이 중 1개만 유가족이 설치하고 나머지 12개는 서울시에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설치해줬다. 유가족이 설치한 텐트 1개는 서울시로부터 광장 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시설물’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장소를 점용할 당시 변상금을 부과하겠다고 고지했고, 농성장이 철수되면 그때 한번에 변상금을 부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법시설물을 설치한 114일째인 4일을 기준으로 변상금은 총 60만∼80만 원이며, 나머지 12개 텐트는 언제까지 지원할지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농성이 장기화되면서 ‘시민의 광장’인 광화문광장에선 시민단체가 매일 주인 행세까지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곳에서 열린 ‘세월호 진상규명 풍선 날리기’ 행사에선 시민단체 회원들이 경찰에게 “여긴 유가족 농성장이야, 나가!” “여기가 어디라고 경찰이 와!”라며 욕설과 반말을 내뱉었다. 일부 언론을 적대시하는 팻말도 붙어 있었다. 세상에는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만큼, 사회에는 무수한 현안이 있고 다양한 이유로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시민의 주목을 가장 많이 끌 수 있는 광화문광장 남단은 ‘기한도 없이’ 세월호 관련 단체들이 독점하고 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에 준법정신과 주변에 대한 배려심을 갖추길 바라는 건 과도한 기대일까. 이샘물·사회부 evey@donga.com}

10원부터 500원짜리까지 동전들, 1000원짜리 지폐, 구두 상품권 4만5000원…. 푸르메재단 직원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 도착한 묵직한 소포 속에 든 내용물을 살펴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A4용지 크기의 조그만 소포엔 2개의 기부함이 담겨 있었고, 현금 17만230원과 구두상품권을 포함해 총 21만5230원 상당이 들어 있었다. 발신인은 김광호 씨(56·사진). 소포에 경기 남양주시로 된 주소가 적혀 있었지만 전화번호는 없었다. 한 직원이 기부함을 싸고 있던 종이를 살펴보니 세탁소를 광고하는 유인물이었다. 직원들은 수소문 끝에 남양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 씨가 기부자임을 알아냈다. 김 씨는 10년쯤 전부터 8, 9년간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세탁비 매출의 1%를 기부했다. 동전이 생기면 저금통에 넣은 뒤 1년에 한 번씩 재단을 찾아가 별도의 기부를 했다.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쓴 책에서 ‘수입의 1%를 나누면 정부가 못 돌보는 소외계층을 돌볼 수 있다’는 글귀를 본 게 계기였다. 그는 “하지만 박 시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간 걸 보면서 순수함을 잃었다는 생각에 실망을 했고, 기부도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부는 중단했지만 저금통에는 동전이 계속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씨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와 대화를 하게 됐다. 이때 어린이재활병원 건립활동을 하는 푸르메재단을 알게 되면서 ‘이 저금통이 갈 곳이 푸르메재단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 씨는 “동전의 액수는 적지만 동전 하나하나에 사연이 담겨 있다”며 “아프고 돈 없는 소외계층들을 위해 기부금이 잘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10원부터 500원짜리까지 동전들, 1000원짜리 지폐, 구두 상품권 4만5000원치…. 푸르메재단 직원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 도착한 묵직한 소포 속에 든 이런 내용물을 살펴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A4용지 크기의 조그만 소포엔 2개의 기부함이 담겨 있었고, 현금 17만230원과 구두상품권을 포함해 총 21만5230원 상당이 들어있었다. 발신인은 김광호 씨(56). 소포에 경기 남양주시로 된 주소는 적혀 있었지만 전화번호는 없었다. 한 직원이 기부함을 싸고 있던 종이를 살펴보니 세탁소를 광고하는 유인물이었다. 직원들은 수소문 끝에 남양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 씨가 기부자임을 알아냈다. 김 씨는 10년쯤 전부터 8~9년간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세탁비 매출의 1%를 기부했다. 동전이 생기면 저금통에 넣은 뒤 연 1회씩 재단을 찾아가 별도의 기부를 했다.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쓴 책에서 '수입의 1%를 나누면 정부가 못 돌보는 소외계층을 돌볼 수 있다'는 글귀를 본 게 계기였다. 그는 "하지만 박 시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간 걸 보면서 순수함을 잃었다는 생각에 실망을 했고, 기부도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부는 중단했지만 저금통에는 동전이 계속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씨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와 대화를 하게 됐다. 이때 어린이재활병원 건립활동을 하는 푸르메재단을 알게 되면서 '이 저금통이 갈 곳이 푸르메재단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택배비 6500원을 부담해 동전을 푸르메재단에 보냈다. 김 씨는 "동전의 액수는 적지만 동전 하나하나에 사연이 담겨 있다"며 "아프고 돈 없는 소외계층들을 위해 기부금이 잘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정부가 책임져라, 연금개혁 반대한다!” 1일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 마련한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 대회에서 연달아 구호가 울려 퍼졌다. 투쟁본부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비롯한 공무원 단체 50여 곳이 연합해 결성한 단체. 행사에는 경찰 추산 9만5000명(주최 측 추산 12만 명)이 모였다. 공무원노조 측은 “공무원 역사상 10만 명 이상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 버스 1800대를 타고 사상 최다 인원이 모이면서 당초 계획됐던 거리 행진이 안전문제로 취소되기도 했다. 이날 본행사 전에 열린 사전대회에서 사회자는 “힘들 때마다 정권은 공무원에게 ‘참고 양보하라’고 했고 우린 항상 참았다. 또다시 참으라는데 세월호 참사에서 알게 된 것은 가만히 있으면 다 죽는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100만 공무원 노동자가 똘똘 뭉쳐 이 세상 바꿔내자”고 외치자 공무원들은 “와”하고 환호했다. 행사 참가자들은 ‘연금을 연금답게’라는 문구가 쓰인 조끼를 입고 ‘국민 노후 팔아먹는 매국노 새누리당’ ‘국민의 노후 팔아먹는 현 정부’라는 내용이 적힌 손 펼침막을 들고 있었다. 연단에 선 이옥경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미래창조과학부 지부장은 “정부가 국가재정을 걱정한다면 혈세 먹는 하마인 4대강 관리사업을 즉시 정리하고 방위사업체 비리와 이명박 정부가 말아먹은 자원외교를 국정감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총궐기 대회에는 퇴직 공무원들까지 합세했다. 이주완 한국노총 공대위 퇴직공무원협의회 회장은 “소중한 공무원연금을 공권력을 이용해 삭감하거나 문제 삼고 있다. 우리 100만 공무원이 이를 막지 않으면 군인연금, 사학연금, 국민연금까지 손을 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 국민은 불안정한 노후에 빠지고 가난과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이례적인 의기투합을 두고 따가운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공무원연금개혁 거리 캠페인’을 열고 ‘공무원연금을 적당히 받으라, 세금을 내는 국민은 등골이 휜다’ ‘가난한 국민이 잘사는 공무원 노후를 책임지는 건 정말 부당하다’는 팻말을 들고 비판했다. 일부 시민은 ‘공무원은 월급만 철밥통인 줄 알았는데 연금도 철밥통인가’라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행사장에 붙여놓기도 했다. 한편 이번 행사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모이는 데 든 교통비와 버스 임차료를 비롯해 식사비, 행사 준비 비용 등까지 수십억 원이 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정용천 대변인은 2일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약 3억 원을 쓴 것으로 추산된다. 중앙에서 일부 지원을 하긴 하지만 여비, 버스 임차료 등은 각 단체 지부단위에서 독자적으로 한 것이어서 금액은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달 31일 타결된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경기 안산 단원고 유가족들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는 2일 오후 6시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경기도미술관에서 총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가족대책위는 총회 직후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10·31 합의안’은 가족과 국민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첫 결실”이라며 “양당의 합의 과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족대책위는 여야 합의안이 적지 않은 한계와 문제점을 갖고 있다며 일부 내용의 수정 보완을 제안했다. 가족대책위는 “특별조사위원장을 유가족이 추천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여당이 특별검사 2명을 추천할 때 유가족이 반대하는 인물을 배제한다는 안에 대해선 “그래도 독립성을 제약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청문회 출석 대상자가 조사를 계속 거부하고 동행명령도 거부하면 벌금 1000만 원을 물릴 수 있다는 강제조항도 “과태료 상한선이 낮아 강제력이 약하다”고 주장했다. 가족대책위는 5가지 제안을 정부와 여야에 제시했다. △법안 처리 전 유가족이 지적한 개선안 반영 △‘진실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대국민 서약식’ 개최 △연내 특별조사위 구성 후 내년부터 본격 활동 △후속 절차에 유가족 참여 △배상·보상에 생존자 피해자 참여 보장 등이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이 제안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합의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안이 만들어져 공포가 될 현실을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총회에는 유가족 230여 명이 참석했다. 총회가 열리는 동안 고성이나 논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9월 30일 여야가 새로운 합의안을 마련했을 때 가족대책위 내부에서 찬반 논쟁이 격하게 벌어졌던 분위기와는 크게 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인지 2일 총회에서는 합의안 수용 여부를 놓고 투표도 하지 않았다. 한 유가족은 “수용 여부를 정하는 게 아니라 제안문을 만드는 등 세부적인 사항을 정했을 뿐 투표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광화문광장과 국회,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의 농성장 철수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철수하는 쪽으로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청운효자동주민센터만 조속한 시일에 철수하고 국회 농성장은 7일 법안 통과 후에 철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광화문광장에선 농성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가족대책위 관계자는 “국회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농성장은 철수할 것으로 보이나 광화문광장 농성장은 예정된 것이 없다”고 전했다. 일반인 가족대책위원회도 조만간 여야 합의안을 놓고 견해를 내놓을 방침이다. 장종열 대책위원장은 “알려진 것처럼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위원장을 유족이 선출한 상임위원이 맡는다지만 수적으로 많은 단원고 유가족에게 일반인 유가족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세월호 침몰 사고 200일째인 1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는 세월호 참사 200일 문화제가 열렸다. 진도실내체육관에는 실종자 여덟 가족만이 남아있다. 같은 날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에서는 단원고 유가족과 생존 학생 가족 300여 명, 일반인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이샘물 evey@donga.com/진도=박성진/안산=최혜령 기자}
“아이가 남겨 놓은 글을 통해 아빠에 대한 증오를 발견하고 제가 죄인인 걸 알았습니다.” 2011년 모친을 살해하고 8개월간 시신을 방치한 지모 씨(21·범행 당시 18세)의 부친(55)은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아동학대 없는 세상을 위한 기자간담회’에 나와 이렇게 자책했다. 간담회는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이 아동학대에 관한 책 ‘우리는 모두 아이였습니다’를 공동 저술한 것을 계기로 아동학대 피해자 가족 등과 아동학대 예방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아들 지 씨는 부모의 별거로 아버지와 따로 살던 상태에서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하다 범행을 저질렀다. 현재는 수감 중이다. 부친 지 씨는 “아이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다”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아이가 때론 자신의 손을 보면 끊어버리고 싶다고 한다”며 “듣는 아빠로서는 내가 죄인인데 어떻게 애가 평생을 고생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또 “누가 뭐라고 손가락질하든 나는 아무 변명을 할 수 없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며 죄스러워했다. 간담회에는 아동학대 피해자 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2008년 12월 성범죄자 조두순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나영이(가명·당시 8세)의 아버지도 참석했다. 나영이 아버지는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애비로서 그동안 나름대로 몸부림을 쳤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며 “피해아동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저의 의무이며, 생애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해야겠다는 각오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영이는 다른 건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는데, 자신이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라는 게 알려지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며 “6년 후에 조두순이 출소하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어 “앞으로 열심히 아이를 위해 노력하겠으니 많은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올해 개교 109주년을 맞은 고려대가 서울 성북구 안암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한 지 80주년을 맞아 29일부터 기념행사를 연다. 고려대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1905∼1918년), 낙원동(1918∼1922년), 송현동(1922∼1934년)을 거쳐 1934년 9월 28일 안암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전하던 해에 건물 1개 동으로 출범한 안암캠퍼스는 80년이 지난 지금은 건물 110여 동의 대규모 캠퍼스로 발전했다.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은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한 뒤 안암동 부지를 찾아냈다. 그는 건물을 지을 때 신진 건축가 박동진 씨와 3개월에 걸쳐 설계도면을 작성했고, 거의 매일 공사 현장에 나와 감독했다고 한다. 이때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 외국의 유수 대학 사진을 참고했다. 건축이 완료되고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던 날 보성전문학교(고려대의 전신) 학생과 교수, 직원들은 교기를 앞세운 채 송현동에서 안암동까지 행진했다. 이때 많은 시민이 뒤따랐다. 초창기 고려대 건물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표적인 신식 건물이었다. 고려대는 안암캠퍼스 이전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9, 30일 ‘요람에서 광야로’라는 제목으로 교내 백주년기념관과 인촌기념관에서 기념콘서트를 연다. 콘서트에선 건축, 문학, 음악을 주제로 고려대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본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국보 1호 숭례문의 단청 복원공사에 부실한 화학 안료와 접착제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숭례문 복원공사 때 단청에 사용이 금지된 화학안료(지당)와 화학접착제(포리졸)를 사용하며 공사비를 빼돌린 단청장 홍창원 씨(58·중요무형문화재 48호) 등 6명,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문화재청 공무원 5명, 감리사 2명 등 총 13명을 사기와 업무상 배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숭례문은 2008년 2월 화재로 불탄 뒤 지난해 5월 복원공사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단청이 벗겨지고 들뜨면서 부실 복원 논란이 일었다. 경찰 조사 결과 홍 씨는 2009년 12월 문화재청이 발주한 숭례문 복원공사 단청 분야 장인으로 선정됐다. 당초 전통안료와 교착제만을 사용하는 전통기법으로 단청공사를 하기로 했지만, 전통안료만으로는 색상이 잘 나오지 않고 아교가 엉겨 붙었다. 홍 씨는 문제를 숨기기 위해 사용이 금지된 화학안료를 전통안료와 섞고, 화학접착제와 물을 섞어 사용했다. 경찰은 이렇게 부실 시공된 단청을 재시공하는 데에는 11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홍 씨는 단청공사비 7억3499만8000원 중 3억9025만7907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실종자의 가족들이 전남 진도 어민들이 개최한 꽃게축제에 참석해 상생의 미소를 보냈다. 진도 어민들은 25, 26일 이틀 동안 진도군 임회면 서망항에서 제5회 진도꽃게한마당잔치(축제)를 열었다. 가을 꽃게는 살이 꽉 찬 별미로 어민들의 주 소득원이다. 어민들은 2010년부터 10월에 서망항에서 축제를 열어 왔지만 올해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축제를 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이 깊었다. 25일 오후 5시 개막식에는 어민들의 초청을 받은 희생자 실종자 가족 40여 명이 참석했다. 실종자 가족 대표 황모 씨는 인사말을 통해 “군민들이 참고 견뎌주고 어민들이 수색작업에 도움을 주신 점에 감사한다”며 “이 축제는 실종자 희생자 가족에게도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아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씨가 인사말을 할 때 한쪽에서는 세월호 참사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개막식 이후 어민들은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꽃게를 대접했다. 실종자 가족 대변인 배의철 변호사는 “군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실종자 가족들이 모두 축제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7시에 열린 꽃게가요제에는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또 꽃게 깜짝 경매, 무료시식 행사도 진행됐다. 진도 어민들은 서망항이 팽목항에서 왼쪽을 볼 때 정면이고 1km 거리여서 축제를 열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실종자 가족의 슬픔도 이해하지만 어민들은 관광객 감소, 수산물 판매 감소로 생계가 걱정될 정도였다. 진도 어민들은 지난해 6∼8월 120억 원어치의 오징어를 잡았지만 올해는 10억 원어치밖에 잡지 못했다. 꽃게도 문제다. 진도는 전국 꽃게 어획량의 25%를 차지하지만 kg당 가격은 지난해 1만8000원 선에서 크게 떨어진 1만3000원 수준이다. 이런 절박함 때문에 진도 어민들은 고심 끝에 꽃게축제를 열기로 결론을 내렸다. 어민들은 8월부터 꽃게축제 개최 문제를 논의하며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도 어민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덕분인지 축제에는 2만여 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김상호 진도수협 조합장은 “올해 꽃게축제를 찾은 관광객이나 판매량이 평년보다 많다”며 “아직 어려움이 있지만 상생을 통해 작은 희망을 찾았다”고 말했다. 진도 군민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도로 불법점거한 대책회의, “靑으로 가자” 경찰과 몸싸움 ▼폭력 휘두른 시위자 연행 소식에… 유가족 40명, 경찰서 몰려가기도“우리도 경찰 때렸으니까 다 잡아가라!” 25일 오후 10시경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옆 차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이렇게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과 유가족 오병환 씨가 경찰을 폭행하다가 잠시 격리된 뒤 풀려난 직후였다. 유 대변인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니 강제로 연행하든 체포하든 때려죽이든 즉결처분하든 마음대로 하라”며 격분했다. 유가족 100여 명은 이날 오후 7시부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광화문광장에서 연 ‘세월호 추모 문화제’에 참석했다. 오후 8시 55분경 사회자가 “모두 일어서서 유가족과 함께 청와대로 가자”고 하자 유가족들이 앞장서서 청와대 방향으로 향했다. 총 400명(경찰 추산)이 신고되지 않은 장소에서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막아섰다. 그러자 유 대변인은 마이크를 잡고 “뚫린 곳으로 가겠다”며 차도로 향했다. 시위대는 단체로 세종문화회관 앞 차도에 뛰어들었고, 달려오던 버스와 차들이 갑자기 멈춰서면서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은 차도에 뛰어들어 시위대를 인도로 내몰았다. 시위대는 “왜 우릴 가로막느냐”고 반발하며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이 불법행위를 채증하자 “야! 찍지 마 개××야” “카메라 부숴버리겠다”는 험한 말도 내뱉었다. 경찰이 해산명령을 하자 “서장 나오라”며 반발했다. 유 대변인과 오 씨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붙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폭력이 의심되지만 유가족이라 (체포에) 신중을 기해 잠시 격리한 것이고, 사법처리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에게 폭행을 벌이던 시민 김모 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돼 연행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32기동대장은 이날 시위대를 막다 부상을 당해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시위대는 인도 쪽으로 내몰린 뒤에 정부서울청사 옆 차도를 점거했다. 경찰이 총 7차례 해산명령을 내렸지만 야유하며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에서 담요와 물, 핫팩을 조달해 와 연좌 농성을 하며 경찰에 “우릴 잡아가라”고 외쳤다. 유 대변인은 “공권력은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불법 공권력에는 마땅히 항거해야 한다”며 “정당한 공권력이라 생각하면 우릴 다 잡아가면 되는데 그걸 확신 못해서 유가족을 못 잡아가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또 “공권력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적용돼야 하니 우리에게도 같이 적용해주길 명령한다”고 외쳤다. 이날 유가족 40여 명은 김 씨가 연행된 방배경찰서를 항의 방문했다. 26일 오전 1시 40분경 김 씨가 풀려나자 시위대는 해산했다. 차도를 점거한 지 4시간 40분 만이었다. 진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등 7개 시민단체가 25일 오후 1시 경기 파주시 임진각 앞 광장에서 대북 전단(삐라) 살포를 강행하기로 했다. 북한은 강력 반발하고 있고 일부 시민단체와 경찰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앞서 10일에도 자유북한운동연합 등이 경기 연천에서 대북 전단을 날렸다. 북한은 처음으로 대북 전단을 향해 고사총탄을 발사해 국군이 대응사격을 했고, 이 과정에서 남북 간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우원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대표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 단체에서 4만∼5만 장, 다른 단체들이 10만 장 등 총 14만∼15만 장의 대북 전단을 날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단에는 북한 정권이 어떤 민족반역 범죄를 저질렀는지 역사적인 근거 등을 적었다. 김정은 일당을 없애버리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품안으로 통일해서 번영 속에서 같이 살자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북 전단 살포 및 애기봉 등탑 반대 주민 공동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와 파주 주민들은 25일 현장에서 이들의 전단 살포를 저지할 계획이다. 경찰은 전단 살포 찬반 단체가 충돌할 경우에 대비해 경비 병력을 배치하고,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전단 살포를 막기로 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우리는 전단이 한 장이라도 (북한에) 가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며 “경찰이 막을 경우 공개할 수 없는 임의의 장소에서 20만∼50만 장의 대북 전단을 날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단 살포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대북 단체 활동의 원천 봉쇄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공대위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25일까지 전단 살포에 대해 아무 조치를 하지 않으면 주민 소송단을 모집해 해당 단체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로, 당국자와 경찰을 직무유기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은 시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앞두고 이번 전단을 뿌릴 경우 ‘남북관계 파국’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북한은 24일 조선중앙통신 ‘조국통일연구원 백서’에서 “반공화국 삐라 살포는 국제법적 견지에서 볼 때에도 엄중한 위반사항”이라며 “온갖 허위와 날조로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모독·중상하는 것은 사실상 선전포고”라고 주장했다. 앞선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에서는 “(전단을 살포하면) 북남 관계가 회복 불능의 파국에 처하게 되고 사태가 험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박상학 대표는 “불안감과 공포감을 조성해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건 김정은의 전략”이라며 “우리 국민을 향해 총질해대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증오해야지, 그쪽에 서서 대북 전단을 막는 건 자기모순이다. 사실과 진실을 막는 데에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근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의 전제조건으로 대북 전단 살포 중지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일부 탈북자는 전단 살포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탈북자 고경호 씨(45)는 “이미 북한 사람들은 남한을 많이 알고 있다. 대북 전단을 보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전단 살포는 오히려 궁지에 몰린 북한에 전쟁 할 구실을 만들어준다.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기보다 남북회담 결과를 지켜보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이샘물 evey@donga.com·백연상 기자}
"사이버 사찰 논란을 틈타 불안감을 부추기지 말라."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근거없는 소문과 억지 주장으로 민심과 정국을 혼란시키는 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확산되는 사이버사찰 논란에 대해 "일부 세력들이 검찰의 명예훼손 모니터링과 사이버 사찰을 악의적으로 묶어 여론을 오도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해외 메신저로 갈아타라고 부추기고 있다"며 "정치권도 이에 편승해 연일 국정감사 현장에서 사이버사찰에 대한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이버 사찰 논란과 사이버 망명 사태는 장기적으로 국내 인터넷 업계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다음카카오가 협조 거부를 밝힌 감청 영장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중범죄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발부된다"며 "최근 4년간 연평균 감청 건수는 118건이고 그 중 95%가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나머지 5%는 강력사건에 관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찰 논란) 사태는 정부와 시민 사이의 소통 부족에서 비롯한 부작용이 표출된 사례지만, 범죄수사를 위한 감청 제도는 국가안보와 사회안전에 필수불가결하다"며 "국민들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해 감청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일부 세력의 시도는 반드시 차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고려대 총학생회는 최근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총학생회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22일 밝혔다. 기존 총학생회칙 제5조에서는 학생들이 자치활동에 참여할 때 '성별, 인종, 사상, 종교, 장애 등'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개정안에서는 차별금지 항목으로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추가했다. 총학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명백한 차별로 인정하며, 학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근절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총학에 따르면 학기 초에 교내 성소수자 동아리가 학생회관에 '성소수자 분들의 졸업과 입학을 축하드린다'는 취지의 현수막을 내걸었지만 얼마 후 찢어진 채로 발견됐다. 최종운 고려대 총학생회장(21·기계공학4)은 "총학이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자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회칙만 바꾼다고 해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진 않지만, 출발점으로서의 의의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가치들을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해 피해를 주는 형태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며 "이번 개정안 통과에 특별한 반발은 없었지만, 회칙 변경이 차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견은 있었다"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