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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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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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된 박물관 복원한 건축가, 프리츠커상 받다[영감 한 스푼]

    2009년 3월 독일 베를린의 어느 박물관. 텅 빈 건물인 이곳에 베를린 시민들이 입장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가을에 정식으로 개관하기에 내부에 있어야 할 유물들은 아직 설치되지 않은 상태. 이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의 유명한 작품 ‘네페르티티의 흉상’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한 베를린 신박물관입니다. 신박물관이 있는 지역은 19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소장품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베를린의 ‘박물관 섬’입니다. 박물관 섬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신박물관은 왜 텅 비어 있고, 베를린 시민들은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이 박물관이 전쟁으로 무너지고 수십 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막 복원을 마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박물관을 복원하는 일을 맡은 이는 8일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70)였습니다.새롭게 거듭난 아픈 역사 베를린 박물관 섬은 구박물관이 1828년 처음 건축된 후 100여 년 지나 1930년 완성된 곳으로, 5개 박물관이 한곳에 모여 있는 지역입니다. 19세기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야심찬 프로젝트로 시작됐지만, 모든 건물이 세워진 지 9년 만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박물관들은 문을 닫게 됩니다. 그중 신박물관은 1943년과 1945년 베를린에 가해진 공습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동독이 점령하면서 60여 년간 폐허로 방치되었다고 합니다. 독일 시민들에게 신박물관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었죠. 이곳을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1993∼1997년 3단계에 걸친 국제 공모 끝에 치퍼필드가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공간을 다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끄러운 역사이니 건물을 부숴야 할까요, 아니면 있는 그대로 보존해 그 역사를 기억하도록 해야 할까요. 프로젝트를 맡은 치퍼필드는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남아 있는 역사 중 일부를 보존하되, 완전히 부서진 곳은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절충안을 선택했습니다. 이를테면 총탄을 맞은 흔적이 있는 기둥은 그대로 복원해 고통스러운 역사를 드러냈습니다. 사라진 공간을 다시 만들 때에는 재활용 벽돌이나 과거의 건물에 사용됐던 것과 비슷한 소재를 선택하되, 현대적인 미니멀리즘 방식을 적절히 섞었죠. 치퍼필드는 이 과정을 “수백만 번의 기술적, 미학적, 정치적 선택이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것은 살리고 없애야 할지를 이 건물이 속한 도시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며 오랜 시간 고민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1998년부터 2009년까지 11년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복원 작업은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로부터 “유럽 문화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때를 계기로 치퍼필드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습니다.드러나지 않는 것의 가치이번 프리츠커상의 수상자 선정이 독특했던 것은 치퍼필드가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건축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CNN은 “비정형적 형태의 프랭크 게리, 굽이치는 곡선의 자하 하디드, 콘크리트의 질감을 살린 안도 다다오 등 대표적 스타일이 있었던 기존 수상자와 정반대되는 건축가를 선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재능 있는 건축가는 때때로 자신의 존재감을 지워버리기도 한다”며 “세계 여러 도시에 있는 치퍼필드의 건축은 보자마자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치퍼필드가 그만큼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건축이 있는 환경과 맥락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디자인의 배경으로는 치퍼필드가 자란 환경과 경력을 쌓아온 이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영국 잉글랜드 남부 데번의 농촌에서 자란 그는 수의사가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술과 체육 외에는 공부에 소질이 없었고, 대학을 가지 못해 킹스턴 아트스쿨에 진학했다가 영국의 권위 있는 건축전문학교 AA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그 후 저명한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 노먼 포스터 아래에서 일했지만 그의 첫 프로젝트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1985년 패션 디자이너 미야케 잇세이의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눈에 띄어 일본으로 건너가 건축 일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도 프로젝트를 맡게 됐죠. 고국인 영국에서 인정받은 것은 그 뒤였습니다. 치퍼필드는 인터뷰에서 스스로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외국에서 일을 시작하며 다양한 문화들의 차이를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덕분에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주어진 환경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됐다고도 하죠.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비롯해 지금은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현재 최대 관심사는 기후 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이라고 합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새롭고 반짝이고 화려한 것을 모두가 원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가 오래된 것을 부수지 않고 되살리고, 스스로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 건축가를 선정한 것은, 잠시 멈춰서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돌아보자는 의도는 아니었을까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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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드럽지만 강한… 광주서 예술의 힘 느껴보세요”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예술총감독의 손에서 열린다. 주인공은 국제 미술계에서 20여 년간 활동해 온 이숙경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54·사진). 이 감독이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 펼쳐낼 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도덕경의 한 구절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출발했다. 비엔날레 개막(4월 7일)을 한 달 앞두고 10일 이 감독을 만났다. ● “부드럽지만 강한 예술의 힘 보여줄 것” 7월 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는 비엔날레 전시관은 물론이고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호랑가시나무 등 광주의 5개 전시 공간에서 펼쳐진다. 세계 각국에서 작가 79명이 참여하며 이 중 40여 명이 신작을 선보인다. 이 감독은 비엔날레 주제가 “물이 아닌 힘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도덕경에서 ‘유약어수’는 “세상에서 물이 가장 부드럽고 약하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구절의 일부다. 이 감독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린 태도가 결국은 바위를 뚫듯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는 의미인데,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니 결국 권력에 관한 말”이라며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어 감동을 주고, 때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기까지 하는 예술이 바위를 뚫는 힘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주제는 팬데믹 동안 내적 성찰을 통해 나오게 됐다고 한다. “영국 전역이 록다운(이동 제한)돼 외출할 수 없을 때 그간 못했던 독서를 했죠. 그러다 동양의 고전을 다시 봤고, 저의 지적 뿌리가 그곳에 있음을 깨달았어요. 유교적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꼿꼿하게만 해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같은 말씀이 오랜 지적 전통에서 나온 것임을 새삼 깨달았죠.”● 개인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 전시의 4가지 소주제는 ‘은은한 광륜’과 ‘조상의 목소리’, ‘일시적 주권’, ‘행성의 시간들’이다. 첫 주제 ‘은은한 광륜’에서는 광주의 정신을 영감의 원천이자 저항과 연대의 모델로 삼은 작품을 선보인다. 이 주제는 근대주의 비판, 탈식민주의, 생태와 환경 등으로 확장되면서 변주된다. 이 감독은 “아주 개인적이고 특수한 이야기에도 세상과 공명하는 보편적인 것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며 “참여 작가들도 개인적 삶이나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젠더 등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내는데, 이런 것들을 보편적인 것으로 엮어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홍익대 대학원 재학 중이던 24세 때 최연소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됐다. 이후 영국 에섹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2007년 테이트 미술관 최초의 동양인 큐레이터가 됐다. 요즘은 테이트 미술관에 다양한 국적의 큐레이터들이 일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6일 입국한 이 감독은 6주간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그는 “이렇게 오래 한국에 있는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라며 “어딘가 안심이 되고 안정적인 느낌이고, 광주에 연고는 없지만 특별한 관계가 생겨난 느낌”이라고 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열렸을 때 가 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전시를 보러 오신 것을 보고 감동받았어요. 이번에도 관객이 많이 오실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 휴식 공간도 충분히 마련했으니, 마음의 안정과 영감을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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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길호 PD, 고교때 학폭 인정… “상처받은 분들께 용서 구한다”

    ‘더 글로리’를 연출한 안길호 PD가 고교 시절 폭력을 휘두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안 PD는 12일 입장문을 내고 “1996년 필리핀 유학 당시 여자친구가 저로 인해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지우지 못할 상처를 줬다”며 “상처받은 분들께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당시 고3이던 안 PD가 교제하던 중2 여학생을 동급생들이 놀리자, 안 PD 등 열댓 명이 나와 친구를 불러내 2시간가량 폭행했다’며 학폭 의혹을 제기한 글이 올라온 바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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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보 ‘히어로콘텐츠’, 글로벌 미디어 연구기관서 조명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세계적 미디어 연구 기관인 로이터연구소가 동아일보의 ‘히어로콘텐츠’를 소개하는 기사를 10일(현지 시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히어로콘텐츠는 본보의 탐사보도를 담은 디지털 및 지면 콘텐츠다. 로이터연구소는 ‘디지털 프로젝트를 위해 기자들을 수개월간 차출한 신문사’라는 제목으로 이샘물 본보 디지털이노베이션 팀장을 인터뷰했다. 연구소는 “2020년 동아일보는 편집국 기자 일부를 차출해 개발자, 디자이너와 팀을 꾸려 디지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히어로콘텐츠 팀은 마감의 제약을 받지 않고 디지털 탐사보도를 했고, 이는 종이신문 중심의 뉴스룸 문화를 바꾸기 위한 시도”라고 소개했다. 이 팀장은 “히어로콘텐츠는 주제 선정, 마감 시간, 취재 과정에 어떠한 제약도 두지 않고 혁신적인 기사 작성을 최우선에 두고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이어 “자극적인 헤드라인 등을 통해 페이지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통해 각자의 ‘명작’을 만든 경험이 중요하고 의미 있었다”고 덧붙였다. 히어로콘텐츠를 통해 기자들이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한 가지 주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기사의 품질을 높일 수 있었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증발’ ‘환생’ ‘99℃’ ‘공존’ ‘산화’의 5회까지 이어진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시리즈는 관훈언론상과 노근리평화상, 대통령 표창, 한국디지털저널리즘 어워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린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에서 성과가 소개되기도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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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 ‘검정고무신’ 작가 이우영씨 숨진채 발견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작가 이우영 씨(51)가 별세했다. 12일 인천 강화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반경 인천 강화군 선원면의 한 주택에서 이 씨가 방문을 잠근 채 기척을 보이지 않는다는 가족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은 소방 당국과 함께 강제로 문을 열고 숨진 이 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씨 가족들은 “이 씨가 최근 저작권 소송 문제로 힘들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다만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 의견에 따라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공주대 만화예술학과를 중퇴하고 1992년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 가족 이야기를 다룬 검정고무신은 선풍적 인기를 끌며 2006년까지 14년 동안 연재됐다. 시사 만화를 제외하면 최장기 연재 기록을 세웠고 45권짜리 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 하지만 이 씨는 2019년경부터 극장판,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업 등의 저작권 및 수익 분배 문제를 두고 소송을 이어 왔다. 이 씨는 지난해 1월에도 “극장판 ‘추억의 검정고무신’ 제작사가 원작자이자 그림 작가인 제 허락을 구하지 않았고 저작료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극장판 제작사 측은 “만화 검정고무신의 글 작가가 극장판 제작에 참여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씨는 2020년에는 “불공정 계약에 지쳤다”며 창작 포기 선언까지 했다. 빈소는 인천 강화군 비에스종합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14일 오전이며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이다. 032-216-4444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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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 숨진채 발견…“저작권 소송 힘들어해”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작가 이우영 씨(51)가 별세했다. 12일 인천 강화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반경 인천 강화군 선원면의 한 주택에서 이 씨가 방문을 잠근 채 기척을 보이지 않는다는 가족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은 소방 당국과 함께 강제로 문을 열고 숨진 이 씨를 발견했다.경찰은 이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씨 가족들은 “이 씨가 최근 저작권 소송 문제로 힘들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다만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 의견에 따라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이 씨는 공주대 만화예술학과를 중퇴하고 1992년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 가족 이야기를 다룬 검정고무신은 선풍적 인기를 끌며 2006년까지 14년 동안 연재됐다. 시사 만화를 제외하면 최장기 연재 기록을 세웠고 45권짜리 단행본으로도 출간됐다.하지만 이 씨는 2019년경부터 극장판,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업 등을 놓고 저작권 및 수익 분배 문제를 두고 소송을 이어 왔다.이 씨는 지난해 1월에도 “극장판 ‘추억의 검정고무신’ 제작사가 원작자이자 그림 작가인 제 허락을 구하지 않았고 저작료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극장판 제작사 측은 “만화 검정고무신의 글 작가가 극장판 제작에 참여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씨는 2020년에는 캐릭터 사업을 하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불공정 계약에 지쳤다”며 창작 포기 선언까지 했다.빈소는 인천 강화군 비에스종합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4일 오전이며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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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인 최초 테이트 큐레이터 이숙경 “광주에서 예술의 힘 보여드릴게요”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예술총감독의 손에서 탄생한다. 주인공은 국제 미술계에서 20여 년 간 활동해 온 이숙경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54)다.이숙경 감독이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 펼쳐낼 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출발했다. 비엔날레 개막을 약 한 달 앞둔 10일 이 감독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부드럽지만 강한 예술의 힘 보여줄 것그는 이번 전시 주제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했던 내적 성찰을 통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영국 전역이 록다운 되어 외출할 수 없을 때 그간 못 본 넷플릭스도 보고, 독서도 했죠. 그러다 동양의 고전을 다시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저의 지적 뿌리가 그곳임을 깨달았어요.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했던 많은 말씀이 오랜 역사에서 나온 것임을 새삼 알게 됐죠.”이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홍익대 대학원 재학 시절인 26세 때 최연소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됐다. 이후 영국 에섹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2007년 테이트 미술관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큐레이터가 됐다. 지금은 테이트 미술관에 다양한 국적의 큐레이터들이 일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드문 일이었다.그는 이번 주제가 “물이 아닌 힘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유약어수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린 태도가 결국은 바위를 뚫듯 가장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는 의미에요. 결국은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니 권력에 관한 말이죠.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어 감동을 주고, 때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기까지 하는 예술이 바위를 뚫는 힘을 갖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 개인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4월 7일 개막해 7월 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는 비엔날레 전시관은 물론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호랑가시나무 등 광주 전역 5개 전시 공간에서 펼쳐진다. 세계 각국에서 작가79명이 참여했고, 이 중 절반이 넘는 40여 명이 신작을 선보인다.4가지 소주제는 각각 ‘은은한 광륜’, ‘조상의 목소리’, ‘일시적 주권’, ‘행성의 시간들’로 구성된다. 첫 주제는 ‘은은한 광륜’은 광주의 정신을 영감의 원천이자 저항과 연대의 모델로 삼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주제는 점점 근대주의 비판, 탈식민주의, 생태와 환경 등 더 큰 주제로 확장되면서 뒤이어 변주된다.이 감독은 “아주 개인적이고 특수한 이야기에도 세상과 공명하는 보편적인 것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참여 작가들도 개인적인 삶이나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젠더 등의 이야기를 진정성있게 풀어내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보편적인 것으로 엮어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죠.”6일 입국한 그는 6주간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그는 “25년 만에 이렇게 오래 한국에 있었던 것은 처음”이라며 “무언가 안심되고 안정적인 기분이 들고, 광주에 연고는 없지만 이 장소와 특별한 관계가 생겨난 느낌”이라고 말했다.“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열렸을 때 저도 보러 왔습니다. 당시 전시에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 보러 오신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한국 관객이 많이 오실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 의자와 휴식 공간도 충분히 마련했으니, 마음의 안정과 영감을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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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된 박물관 복원한 건축가, 프리츠커상 받다[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2009년 3월 독일 베를린의 어느 박물관. 텅 빈 건물인 이곳에 베를린 시민들이 입장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가을에 정식으로 개관하기에 내부에 있어야 할 유물들은 아직 설치되지 않은 상태.이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의 유명한 작품 ‘네페르티티의 흉상’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한 베를린 신박물관입니다.신박물관이 있는 지역은 19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소장품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베를린의 ‘박물관 섬’입니다. 박물관 섬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신박물관은 왜 텅 비어있고, 베를린 시민들은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일까요?그것은 이 박물관이 전쟁으로 무너지고 수십 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막 복원을 마쳤기 때문이었습니다.이 박물관을 복원하는 일을 맡은 것은 8일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70)였습니다.새롭게 거듭난 아픈 역사베를린 박물관섬은 1828년부터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1930년 조성된 곳으로, 5개 박물관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지역입니다.19세기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야심찬 프로젝트로 시작됐지만, 모든 건물이 세워진 지 9년 만인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박물관들은 문을 닫게 됩니다. 그 중 신박물관은 1943년과 1945년 베를린에 가해진 공습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동독 점령 하에 놓여지면서 60여 년 간 폐허로 방치되었다고 합니다.독일 시민들에게 신박물관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었죠. 이 곳을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1993~1997년 3단계에 걸친 국제 공모 끝에 치퍼필드가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이런 공간을 다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끄러운 역사이니 건물을 부숴야할까요, 아니면 있는 그대로 보존해 그 역사를 기억하도록 해야 할까요. 프로젝트를 맡은 치퍼필드는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대신 남아있는 역사 중 일부를 보존하되, 완전히 부서진 곳은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절충안을 선택했습니다.이를테면 총탄이 맞은 흔적이 있는 기둥은 그대로 복원해 고통스러운 역사를 드러냈습니다.사라진 공간을 다시 만들 때에는 재활용 벽돌이나 과거의 건물에 사용됐던 것과 비슷한 소재를 선택하되, 현대적인 미니멀리즘 방식을 적절히 섞었죠.치퍼필드는 이 과정을 “수백만 번의 기술적, 미학적, 정치적 선택이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것은 살리고 없애야 할지를 이 건물이 속한 도시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며 오랜 시간 고민했다는 의미입니다.이렇게 1998년부터 2009년까지 11년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복원 작업은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로부터 “유럽 문화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 때를 계기로 치퍼필드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습니다.드러나지 않는 것의 가치이번 프리츠커상의 수상자 선정이 독특했던 것은 치퍼필드가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건축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CNN은 “비정형적 형태의 프랭크 게리, 굽이치는 곡선의 자하 하디드, 콘크리트의 질감을 살린 안도 다다오 등 대표적 스타일이 있었던 기존 수상자와 정 반대되는 건축가를 선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재능 있는 건축가는 때때로 자신의 존재감을 지워버리기도 한다”며 “세계 여러 도시에 있는 치퍼필드의 건축은 보자마자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치퍼필드가 그만큼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건축이 있는 환경과 맥락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이런 디자인의 배경으로는 치퍼필드가 자란 환경과 경력을 쌓아온 이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영국 잉글랜드 남부 데본의 농촌에서 자란 그는 수의사가 꿈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술과 체육 외에는 공부에 소질이 없었고, 대학을 가지 못해 킹스턴 아트스쿨에 진학했다가 영국의 권위있는 건축전문학교 AA에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그 후 저명한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 노먼 포스터 아래에서 일을 했지만 그의 첫 프로젝트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1985년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눈에 띄어 일본으로 건너가 건축 일에도 손을 뻗었습니다.그 후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도 프로젝트를 맡게 됐죠. 고국인 영국에서 인정받은 것은 그 뒤였습니다.치퍼필드는 인터뷰에서 스스로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외국에서 일을 시작하며 다양한 문화들의 차이를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덕분에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주어진 환경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됐다고도 하죠.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비롯해 지금은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현재 최대 관심사는 기후 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이라고 합니다.눈길을 사로잡는, 새롭고 반짝이고 화려한 것을 모두가 원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오래된 것을 부수지 않고 되살리고, 스스로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 건축가를 선정한 것은, 잠시 멈춰서 정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돌아보자는 의도는 아니었을까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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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 도슨트 전시 문턱 낮춰 각광… 미술과 대중의 가교 역할”

    《‘가르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된 도슨트(docent)는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을 말한다. 도슨트는 전시 작품, 작가의 생애, 미술관의 전시 기획 의도 등을 설명하며 전시와 관람객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같은 전시회를 찾아도 어떤 도슨트를 만나느냐에 따라 관람객의 이해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미술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슨트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일부 도슨트의 경우 팬덤이 형성될 정도다. 이 때문에 관객을 유치하려는 전시 기획사들 사이에선 ‘스타 도슨트’ 섭외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스타 도슨트’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왜 관객들은 그들을 찾는지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여기쯤 오면 다리가 아프실 거예요. 한국은 아직 관람 문화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요. 미술관 바닥에 앉아서 편하게 보셔도 전혀 문제없습니다.”2일 ‘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평일 오전인데도 5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한 남성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캐주얼 정장을 갖춰 입은 남성은 마이크를 차고 투어를 진행하듯 전시를 설명했다. 관람객을 몰고 다녀 ‘미술관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불리는 그는 6년 차 도슨트 정우철 씨(34)이다.설명을 듣던 관객들은 전시 관람 경험이 많지 않은 듯 일반적인 내용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 도슨트도 이런 관객들을 배려해 작품에 관한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작가의 삶이나 사변적 이야기로 설명을 이어갔다. 전시장을 찾은 문성숙 씨(72)는 “여고 동창 10여 명이 종종 모여 가볍게 전시를 관람하고 차를 마시곤 한다. 오늘도 일부러 도슨트 시간에 맞춰 왔다”고 했다.설명이 끝난 뒤 일부 관객이 정 도슨트를 찾아 인사를 건네거나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정 도슨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의 일정을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팬 카페도 생겼다.》● 객관성 강조 김찬용, 감성 설명 정우철 정 도슨트의 설명은 단정적이고 웅변적이었다. 작품에 관해 “멀리서 보면 구상, 가까이서 보면 추상”이라거나 “노란색 배경은 경쾌한 음악을, 붉은 배경은 열정적인 음악을 뜻하는 것”이라는 식의 간결하면서도 알기 쉬운 언어를 사용했다. 또 “작품을 하나하나 분석할 필요는 없다”며 전시장의 큰 주제와 그것이 작가의 인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주로 설명했다. 또 중간중간 그는 ‘재밌는 게 뭐냐면’, ‘맞는 말인 게 뭐냐면’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작품의 보존 상태에 관한 뒷이야기나 액자에 끼워진 유리가 있고 없을 때의 차이 등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도 했다. 정 도슨트는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최대한 친구처럼 설명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제가 과거 어느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을 때 ‘너네는 이것도 모르지? 내가 배웠으니 알려줄게’라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어떨 땐 기분이 나빠져 바로 나간 적도 있었죠. 미술 용어도 어려운데, 설명도 권위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정 도슨트가 감성에 충실한 설명을 한다면, 또 다른 ‘스타 도슨트’ 김찬용 씨(39)는 좀 더 분석적이다. ‘국내 1호 전업 도슨트’로 16년 경력을 지닌 그는 작품보다 자신이 돋보여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가 도슨트로 전시장에 설 때 검은 옷만 입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전시 기획자, 작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철저한 중간자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도 알아듣기 쉬운 언어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한다고 했다. “평소 유튜브나 밈(meme)을 즐겨 봐요. 예를 들어 현재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마르틴 마르지엘라 전시는 작가의 독창성이 핵심 키워드예요. 독창성을 잃어가는 시대의 모습을 설명할 때 ‘무신사 냄새 쩐다’(인기 쇼핑몰의 흔한 옷을 구매해 개성이 없다는 의미)는 유행어로 말하면 20, 30대 관객은 쉽게 받아들여요. 뒤이어 그런 상황 속에서 ‘마르지엘라가 해체주의 디자인을 통해 독창성을 보여줬다’고 설명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죠.”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이자 예술가인 마르지엘라의 작품은 ‘독특하면서도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이 놓여 있던 ‘흔적’만 전시하거나 작품 옆엔 제목 한 줄만 있을 뿐, 별도의 설명조차 없는 식이다. 어려운 전시인데도 김 도슨트의 설명이 인기를 끌면서 관심을 모았다. ● 자원 봉사자에서 전업 도슨트로 두 스타 도슨트가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던 건 아니다. 과거 도슨트는 급여를 받지 않고 자원봉사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두 사람 역시 무급으로 일을 시작했다. 김 도슨트는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졸업하고 작가로 살아남기 험난한 현실 속에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도슨트가 됐다. 처음 그가 도슨트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도슨트는 잠깐 경험해보는 봉사일인데 어떻게 전업으로 하냐”며 만류했다. “현장에서 전시 스태프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미술은 약간의 정보가 있으면 감상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이 일을 누군가가 책임감 있게 하면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처음 10년간은 수입이 적었다. 그는 연말마다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슨트의 위상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 계기로 2013∼2015년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이 연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 ‘청춘, 그 찬란한 기록’,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과 그즈음 시작된 소셜미디어의 인기를 꼽았다. “두 전시는 이례적으로 전시장 내부에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했어요. 이게 당시 막 확산된 소셜미디어 문화와 엮여서 미술 전시를 즐기는 연령층이 넓어지기 시작했죠. 그 전에는 방학 때 어린이 관객이 보는 유물 전시가 대부분이었고 현대미술 전시는 텅 빈 미술관에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보는 풍경이 익숙했어요.” 소셜미디어 확산을 기점으로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 유입되면서 오디오 가이드 등 관객 서비스가 확장됐다. 도슨트 설명도 그중 하나였다. 미술 용어를 관객에게 맞춰 쉽고 재밌게 풀어낸 설명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김 도슨트는 2017년 알베르토 자코메티전 등을 통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정 도슨트는 2019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르나르 뷔페’전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이전까지는 도슨트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부족해 대리운전 등 투잡을 고민했을 정도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뷔페전 국내 개최를 알게 됐고, 이 전시에 모든 것을 다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간 모은 돈을 몽땅 털어 베르나르 뷔페 미술관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작가의 비극적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전시 초반엔 10명 남짓한 분들이 들었지만, 해설 시간마다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친구를 데려오거나 입소문을 내면서 전시 막바지에는 한 관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모였죠.” 당시 그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긴장돼 진정제를 먹기도 했다. 뷔페전을 계기로 유명해진 그는 이후 강연과 방송 출연, 저서 출간까지 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 스타 도슨트는 일부, 대부분 무급 봉사 일부 상업 전시 기획사의 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슨트는 여전히 무급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다. 또 ‘스타 도슨트’라고 해서 최근 미디어에 보도된 것처럼 도슨트 업무만으로 큰 수입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상업 전시 도슨트들은 평균 10만∼15만 원의 일당을 받는다. 다만 이를 기반으로 외부 강연, 개별 투어나 해외 미술관 투어 등을 통해 부수입을 얻는다. 김 도슨트는 “처음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전시에서 근무 제안을 해오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수익에 수년간 큰 변화가 없다가 방송이나 강연, 출간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공립 미술관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부하고, 배운 것을 나누는 커뮤니티 활성화 차원에서 도슨트 활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활동에 필요한 실비나 교통비 정도를 지원받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03년부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교육 수료자 중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미술관 도슨트로 선발되며 성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가장 최근 모집을 실시한 2019년에는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한 70명 중 13명이 미술관 도슨트로 선발됐다. 2021년에는 도슨트를 주제로 한 전시 ‘SeMA 도슨트 대회1…묵다 묻다’도 열렸다. ● 주입식 설명은 우려, 전문화 필요성도 도슨트 설명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자신의 관점을 찾아가는 것이 전시 감상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설명은 결국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본 해석이기에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스타 도슨트’는 작품을 보고 각자의 감상을 말하거나 토론하는 문화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낳은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시 작품의 제목과 작가 이름을 모두 가리고 작품만 보도록 했던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2022년)를 기획한 부산현대미술관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작품에 대해 모른다는 불안감이 설명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도 하나의 감상 방법이며 예술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정보를 잘 가공해 떠먹여주는 설명은 너무 강한 자극일 수 있다”고 했다. 이 자극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과정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어 우려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홀로 작품을 마주하고, 마음대로 나의 감상을 말해보고 거기서 궁금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오래 남는, 온전한 나만의 감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도슨트 양성 교육을 해 온 한주연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시 해설에 대한 인기와 도슨트 프로그램의 확산은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한국만의 현상”이라며 “이런 관심을 잘 살려 미술관 교육과 해설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기관에서는 도슨트 양성 과정을 장기로 진행하며 스크립트 작성을 위해 시나리오 작가를 초청하는 등 외부 전문가의 강의를 듣기도 한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슨트가 미술관 소속 인력으로 전문화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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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남아 예술 8년째 국내 소개… “고마움 전하려 시작”

    2015년부터 국내에 동남아시아 미술을 소개해 온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말레이시아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말레이시아를 품다’전을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13일까지 개최한다. 전시장에서 7일 만난 조영수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77·사진)은 “재단의 모태인 한세실업의 생산법인이 대부분 동남아에 있다. 현지에서 기여할 방법을 찾다가 전시 등 문화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단은 한세실업과 인터넷서점 예스24를 자회사로 둔 한세예스24홀딩스 김동녕 회장(78)이 설립했다. 조 이사장과 김 회장은 부부다. 이번 전시에선 아누렌드라 제가데바, 친 콩이, 줄키프리 유소프 등 말레이시아 현대미술 작가 12명의 작품 33점을 선보이고 있다. 동남아 미술전은 8년 전 베트남 예술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김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재단은 동남아를 주제로 한 연구를 위해 이화여대-미국 예일대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문학 총서’도 지난해 국내 발간을 시작했다. 총서 출간은 서울대, 미국 피츠버그대(석사), 이화여대(박사)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조 이사장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동남아의 문화예술을 국내에 소개해 다채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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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인지 해인지 아리송한 그 순간, 자연과 내가 하나됨을 보았네

    생명을 주제로 작업해 온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 겸 가천대 석좌교수(69)가 서울 용산구 갤러리 U.H.M.에서 6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21점을 포함해 총 48점을 선보인다. 전시 개막일인 9일 갤러리에서 만난 김 교수는 “최근 200호, 300호가 넘는 대작들과 씨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화홍산수’, ‘풍죽’, ‘송화분분’ 등 100호가 넘는 큰 작품을 다수 선보인다. 새로 제작한 작품은 2022년작 10점, 2023년작 11점이다. 김 교수는 “주로 새벽에 작업실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붓 한 자루를 들고 캔버스 앞에 섰을 때 교차하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주로 밤에 작업했지만, 요즘은 오전 5시쯤 작업실로 이동해 오전 11시까지, 어떨 때는 저녁까지도 작업을 이어간다고 했다. “요즘 저의 은사님이셨던 서세옥 작가(1929∼2020)의 말씀이 종종 떠올라요. 창 대신 붓 한 자루 들고 호랑이 앞에 선 것처럼 정면 대결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늘 말씀하셨죠. 대학을 떠난 지 이제 햇수로 5년이 돼 가는데, 작품에 대한 열정은 지금 가장 많이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한가운데 꽃을 그린 ‘생명의 노래―화홍산수’(2022년)에 대해서는 “어릴 적 멱을 감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꽃의 형상이 나를 압도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그린 것”이라며 “갑자기 꽃이 크게 보이면서 해인지 꽃인지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랑, 연노랑 작은 점들이 가득한 가운데 바닥에 엎드린 소년이 이를 바라보는 ‘생명의 노래―12세의 자화상’(2021년)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세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그림 작업뿐 아니라 저서 집필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 여행기를 시와 그림으로 풀어낸 ‘시화기행’ 두 권을 펴냈다. 조만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생명을 주제로 한 대담을 엮어 ‘생명 칸타타’(가제)를 출간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과학자의 관점에서, 김 교수는 예술가의 관점에서 생명에 관해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김 교수는 지난해 작고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도 각별하고 깊은 인연을 맺었다. 2014년 ‘김병종과 이어령의 생명 동행’ 전시를 열고, 이 전 장관의 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김 교수가 직접 현장에서 붓으로 쓰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쯤 “내가 퍼뜨린 문자의 밈(meme)으로 내 후손이 남겨진다고 생각한다”며 “김 교수는 색채와 형상의 밈을 많이 퍼뜨려 후손으로 번성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전 금요일에 뵙기로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약속을 미루며 못 만날 것 같다고 하시고는 저희 집으로 하얀 난을 보내셨죠. 그리고 다음 날인 토요일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우리가 남긴 문자와 색채의 밈이 사방에 퍼져 날아다닐 것이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하신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김 교수는 요즘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향해 “내 정신을 잘 담아달라”거나 “죽어있는 물질이 아닌 생동하는 밈으로 가득 차 반응해 달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아직 제 양쪽 눈의 시력이 모두 1.5이고, 정신과 몸 상태도 최고조에 오른 것 같습니다. 다시 200호, 300호짜리 화판을 다량 맞췄어요. 대작을 그리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겠습니다.” 4월 30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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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 째 동남아 예술 소개…“아시아 문화 다양성 들여다볼 때”

    한 나라를 이해할 때 정치나 경제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미술관에 가거나 그 나라의 문학 작품을 읽는다. 문화 예술에는 단순한 수치나 정보로 표현되지 않는 그 나라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매년 국내에 동남아 미술을 소개해 온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말레이시아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말레이시아를 품다’전을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조영수 이사장(77)을 7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 8년 째 동남아 예술 국내 소개 조 이사장은 “재단의 모태인 한세실업의 생산법인이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어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가운데 해당 지역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전시 등 문화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한세실업과 인터넷서점 예스24를 자회사로 둔 한세예스24홀딩스 김동녕 회장(78)이 설립한 사회공헌 재단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교수가 감독을 맡은 이번 전시에선 아누렌드라 제가데바, 친 콩이, 줄키프리 유소프 등 말레이시아 현대미술 작가 12명의 작품 33점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2020년 기획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3년 만에 열리게 됐다. 동남아 미술전은 8년 전 베트남 예술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김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김 회장과 조 이사장 부부는 당시 동남아 예술에 대한 국내 자료나 전시가 열린 경우가 거의 없어 직접 현지 미술관과 갤러리를 답사했다. 이 때 우리나라의 자개와 유사한 ‘래커 페인팅’ 기법을 소개해 화제가 됐다. 조 이사장은 래커 페인팅을 비롯한 동남아 예술을 보며 한국의 전통 문화에 관한 향수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어릴 적 유행이 지나자 어머니가 12폭 자개장을 팔고 마호가니 가구를 산 기억이 떠올랐어요. 우리 자개 전통 기술에 대한 인식이 더 있었더라면 오래된 것들을 함부로 처분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죠.” ● 낯선 것 호기심이 동남아로 이끌어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미술전 외에도 동남아 국가를 주제로 한 토론과 연구가 활발해지도록 이화여대-미국 예일대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또 4년의 기획 기간을 거쳐 지난해부터 동남아시아의 근현대 문학 명작을 선별해 우리말로 번역하는 ‘동남아시아문학 총서’ 시리즈 발간을 시작했다. 문학 총서는 서울대, 미국 피츠버그대(석사), 이화여대(박사)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한 조 이사장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막내로 가족들의 예쁨을 받고 자란 덕분에 낯선 것에 대한 겁이 없다”며 웃었다.“대학생 때 산악반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친구와 신청했는데 여학생이 없어 받아줄 수 없다는 거예요. 너무하다고 항의해 학교에 처음으로 여학생 산악부가 생겨났어요. 또 교수님께 공부를 안 한다고 혼나면서도 학보사 기자로도 활동했는데, 그 생각이 나 오늘 아침 남편에게 ‘여보 내가 아무래도 그 때 언론계로 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했죠. 그만큼 저는 낯선 것에 호기심도 많고,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는 쪽이에요.” 다방면에 대한 관심으로 2018년에는 문화권마다 다른 색채의 상징을 연구한 책 ‘색채의 연상’을 썼고, 독일에서 인정받는 어린이책을 수입한 ‘경독 교육 동화 시리즈’의 ‘얘들아, 차 조심해!’ 등 독일 아동 문학책도 여러 권 번역했다. 이런 경력은 조 이사장이 문화를 통해 동남아시아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 배경이 됐다. 조 이사장은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양 강대국과 중국, 일본이 아시아를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가 더 노력하고 가능성을 개발할 때”라며 “아세안 회원국의 다채로운 문화예술을 국내에 소개해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무료. 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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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건축가 치퍼필드,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설계한 영국 출신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69·사진)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7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치퍼필드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축을 통해 새 건물은 물론 복원 건축물의 기능성과 접근성을 새롭게 상상하고, 건축물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치퍼필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19세기 중반 건축물을 되살린 독일 신베를린 박물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16세기 관청 건물을 복원한 ‘프로쿠라티에 베키에’ 등 건물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존중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치퍼필드는 “항상 건축이 건축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며 “그것을 인정받아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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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으로 표현한 마음… 복도로 그려낸 기억…

    마음을 공간의 형태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나타날까. 미술가 홍범(53)의 작품 ‘드러나는 복도’에서 겹겹이 쌓인 문틀은 점점 좁아지고, 뒷부분에 있는 문틀은 마치 한 손으로 커튼을 들추듯 굴곡진 형태로 열려 있다.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담긴 이야기는 혼자서 조용히 다가와 들어달라는 듯하다. 자신의 기억과 정서를 공간으로 표현하는 홍범 작가의 개인전 ‘순간의 변형’이 서울 마포구 복합문화공간 씨알콜렉티브에서 2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감정을 계단, 복도, 창문과 같은 건축적 요소를 기본 단위로 활용해 표현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과거에는 특정 공간이 자아내는 감정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감정 자체를 가상의 공간으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기억을 건축적 단위와 연결시키기 위해 만든 연필 드로잉 시리즈 20여 점과 템페라로 그린 회화 1점, 입체설치 1점과 영상 3점이 전시됐다. 입체설치와 영상은 드로잉에서 표현한 공간을 더 큰 규모로 확장해 하나의 성이나 마을처럼 만들었다. 복잡하게 얽힌 공간을 작가는 “아무 데나 숨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라고 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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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누, 미술관-박물관의 경계를 녹이다

    매끈한 비누가 물과 기름을 녹여 서로 만나게 하듯, 중견 작가 신미경(56)의 비누 작품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만나게 했다. 서울 강남구 코리아나미술관이 개관 20주년 기념전으로 ‘비누 조각’으로 유명한 신 작가의 개인전을 펼친다.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을 주제로 한 전시는 코리아나미술관은 물론이고 같은 건물에 있는 코리아나화장박물관까지 총 4개 층에 걸쳐 신 작가의 조각과 회화 등작품 120점을 선보인다. 두 미술관과 박물관은 코리아나화장품이 설립한 문화 공간 ‘스페이스 씨’에 속해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지하 1, 2층에, 화장박물관은 5, 6층에 있으며 코리아나화장품 창업자인 송파 유상옥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과 유물을 전시한다. 미술관은 현대미술을, 화장박물관은 화장과 관련된 고미술품을 전시해 왔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두 공간이 하나로 이어졌다. 미술관에서는 신 작가의 신작과 미술관이 소장한 현대미술 작품을, 박물관에는 고대 유물과 신 작가의 작품이 서로 섞여 전시된다. 여기에는 비누를 재료로 고대 유물과 똑같은 형태의 작품을 만드는 신 작가의 작품 세계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는 1990년대부터 서구 고전 조각상을 비누로 만든 조각 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또 페르시안 유리공예품을 연상케 하는 연작 ‘고스트’나 오래된 유물을 재현한 ‘화석화된 시간’ 등으로 작업을 확장시켰다. 이렇게 고대 유물을 비누로 재해석한 작품이 다시 박물관 유물들 옆에 전시되면서, 어떤 것이 현대 미술 작품이고 유물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통해 작가와 미술관은 관객에게 박물관 속 유물의 가치와 시간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신 작가는 자신의 비누 조각에 대해 “영국 박물관에 갔을 때 처음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보고 감탄함과 동시에 외국인으로서 따라갈 수 없는 벽을 느끼며 시작된 작업”이라고 했다. 지하 2층 전시장에는 코리아나미술관의 서양화와 조각 컬렉션이 신미경의 신작 ‘낭만주의 조각 시리즈’ 등과 함께 전시돼 마치 유럽 박물관에 온 것 같다. 신 작가의 프로젝트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화장실 프로젝트’도 만날 수 있다. 각 전시장 화장실에 관객이 마음껏 만져볼 수 있는 비누 조각이 설치됐다. 전시 기간 중 관람객에 의해 마모된 결과물 자체가 작품이 된다. 김찬동 전 아르코미술관장은 “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서로 벽이 공고하고 조직 문화도 다르다”며 “그런 두 영역을 신미경의 작품으로 효과적으로 융합하는 시도를 보여준 전시”라고 평가했다. 6월 10일까지. 5000∼6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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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비드 호크니 마저…! ‘몰입형 전시’ 뛰어들다[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오랜만에 해외 현대미술가와 미술 시장에 관한 따끈한 소식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첫 소식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생존 작가로는 이례적으로 ‘몰입형 전시’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례적인지, 호크니는 뭐라고 했는지 소개합니다.두 번째도 이례적인 소식입니다. 미국의 어느 컬렉터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작품을 경매에 내놨다는 이야기인데요. 그 내막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호크니 너마저…! 몰입형 전시에 뛰어들다위 사진은 2월 22일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소재로 한 몰입형 전시 ‘Bigger & Closer’ (Not Smaller & Further away) 의 모습입니다. 런던에 새로 개관한 공간인 ‘Lightroom’에서 6월 4일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더 큰 첨벙’(1967), ‘더 큰 그랜드 캐년’(1998) 등 호크니의 주요 작품을 압도적인 사이즈로 감상할 수 있어 화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어떤 작품들은 바닥 면으로 호크니의 붓터치가 애니메이션처럼 번져서 흘러 나오기도 하고, 호크니가 방송이나 라디오 인터뷰에서 했던 음성도 스피커로 들리기도 한다네요.‘회화는 원화로 봐야 제 맛’인 줄 알았건만이 소식을 보도한 외신 기사에서 다소 이례적이라는 언급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그간 몰입형 전시는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아주 오래 전 작가들. 이를테면 반 고흐나 세잔과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물론 국내에서는 비교적 해외보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 생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사용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몰입형 전시에 대한 거부감의 이유는, ‘예술 작품은 눈으로 직접 감상해야 한다’라는 암묵적 원칙 때문입니다. 특히 회화 작품은 캔버스라는 한정된 공간을 작가가 어떻게 구성하고 점유하는지도 중요한 요소죠. 여기에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색감과 붓터치의 미묘함도 직접 감상으로만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이런 작품을 사이즈를 엄청나게 크게 늘려버리거나, 또 납작한 스크린에 픽셀로 구현하면 어쩔 수 없이 왜곡되는 부분이 있고 이 때문에 몰입형 전시는 그간 전문가들에게는 혹평을 받아왔죠.저 역시 작품을 직접 보는 맛을 즐기는 쪽이고, 인증샷도 잘 찍지 않기 때문에 😓 몰입형 전시를 보면 종종 헛헛한 마음이 들곤 했답니다. 물론 몰입형 전시는 테마파크처럼 즐겁게 볼 수 있다는 점에는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감상의 목적이 전시마다 다르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뉴욕타임스의 평론가 제이슨 파라고는 몰입형 전시에 대해 “지적 감상의 장이기 보다는, 감각적 셀피(인증샷)을 위한 배경”이라고 언급했었고, 가디언의 평론가 조너던 존스는 특히 이번 전시에 대해 “호크니가 자신의 명성을 유행에 순진하게 넘겨주고 말았다”며 “부족한 기술로 그의 예술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없다”고 썼습니다.호크니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스스로가 폴라로이드, 아이패드 등 다양한 매체로 실험해 왔다며 “내 일관적인 커리어의 연장선”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다른 몰입형 전시는 제대로 본 적이 없다며 다만 자신은 살아있는 예술가로 직접 참여했기에 다르다고도 했답니다.몰입형 전시,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살아있는 컬렉터가…이름 걸고 작품 내놓다이번 소식 역시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알게된 내용입니다.미국의 컬렉터이자 아트 딜러인 아담 린더만이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장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이 소식이 기사가 된 이유는 그가 ‘멀쩡히 살아있는 컬렉터’이기 때문인데요.보통 작품이 대거 경매에 나오는 경우를 ‘3D’라고 줄여서 말합니다. 소장가의 죽음(death), 이혼(divorce), 아니면 채무(debt) 때문이라는 것이죠. 즉 컬렉터가 사망하거나, 이혼해 재산을 나눠줘야 하거나, 채무에 시달려 작품을 현금화해야 하는 등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큰 경매가 이뤄진다는 것이죠.이런 사유가 있지 않은 경우 대부분의 컬렉터들은 자신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조용히 작품을 내놓습니다.왜냐면 작품을, 특히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을 빨리 다른 사람에게 되파는 것은 ‘플리핑’(flipping, 낮은 가격에 구매해 단기간에 비싸게 팔아 치우는 것) 등 투기로 보일 수도 있고 이것이 발각되면 향후 그 작가의 작품을 구매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작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2차 시장에 나와도 직접적으로 이득을 볼 수 없기도 하고, (소장자가 작품을 다시 팔았을 때 그 이득은 모두 소장자의 것이고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은 없다는 의미) 소장자가 작품의 예술성이 아니라 투기성만 보고 이득을 취했다는 점에서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죠.그런데 아담 린더만은 자신의 컬렉션에 ‘아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당당하게 경매에 나섰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NYT 인터뷰에서 린더만은 “어떤 사람은 나를 놀리고 또 뒤에서 이야기를 하겠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며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이 10여 년 만인데 매우 기대된다”고 운을 뗐습니다.그러면서 자신의 경매도 ‘스토리’를 갖게 하고 싶었고 이 때문에 ‘아담’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2009년 입생로랑의 유산 경매가 그랬고, 작년 폴 앨런 컬렉션 경매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경매도 스토리를 갖길 바랐다”며 “컬렉터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고르는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죠. 즉 경매에 관심을 쏠리게 하려는 의도라는 의미로 읽힙니다.그가 내놓은 작품에는 조지 콘도, 요시토모 나라, 무라카미 다카시 등 국내 컬렉터에게도 익숙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작품들의 추정가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린더만은 “경매로 내놓는 것은 어차피 떠나기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그러면서 떠나보낸 작품을 판 수익 중 일부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아프리카, 대서양, 고대 미국 전시관에 후원할 계획이라고도 밝혔습니다.일부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프 쿤스나 데미언 허스트처럼 최근 가격이 하락한 작품들을 처분하려는 의도를 포장했을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하네요.실제로 지난 수 년간 코로나19로 미술 시장에도 많은 돈이 흘러들어 왔던 가운데, 금리 인상 등 여파로 올해 미술 시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우려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3월 9일 펼쳐질 린더만 컬렉션 경매에서 그 분위기 일부를 가늠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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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명작 속 여인들은 왜 그런 식일까

    말괄량이는 길들여져야 할까?(말괄량이 길들이기)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은 여자가 죽어야만 임무를 시작할 수 있는가?(안녕 내 사랑) 개츠비는 못된 데이지 없이는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없는 걸까?(위대한 개츠비)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서평가와 여성학자 등 8명이 비판적으로 다시 읽은 고전 문학이 담겨 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달과 6펜스’, ‘안녕 내 사랑’, ‘위대한 개츠비’, ‘나자’, ‘ 그리스인 조르바’, ‘날개’, ‘메데이아’가 이들의 도마에 올랐다. 서평가 한승혜는 어릴 적 좋아했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다시 읽고, 작품 속 사회가 여성을 규정하고 단죄하는 방식이 과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미술평론가 조이한은 ‘그리스인 조르바’ 속 여성에 대한 과대 망상적 시선에서 ‘n번방 사건’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조르바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꿈꾸는 나약한 지식인의 판타지는 아니냐”고 되묻는다. 이러한 비판적 읽기가 고전 문학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의 ‘날개’를 분석한 여성학자 정희진은 “한국 문학사에서 이상이 이룬 문학적 성취는 동의하지만 불편한 것은 작품에 대한 변화 없는 해석”이라고 꼬집는다. 식민지 시대 노예무역을 주도했던 이들의 동상이 마침내 끌어내려지듯,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치 판단도 달라져야 함을 보여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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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아닌 ‘방에 걸린 사진’ 보여드리고 싶어”

    “누구나 매일 사진을 찍고, 스마트폰에 사진 수천 장을 저장하죠. 그 많은 사진이 온라인에서 떠돌잖아요. 그게 아니라 ‘사진이 걸린 방’이 실제로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류가헌에서 자신이 소장한 사진 작품을 전시하는 최연하 큐레이터(사진)의 말이다. 사진 전시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최 큐레이터가 20여 년간 전시 기획을 하며 만나고 모은 작품 27점이 ‘사진이 걸린 방’전에서 공개되고 있다. 20대 때 전시에서 보고 반해 마음에 담아뒀다 20년 만에 산 작품부터, 1960년대 국내에서 꺼리던 합성을 과감하게 시도한 황규태의 사진, 싹이 막 피어오르기 직전의 당산나무를 찍은 사진까지…. 작품마다 소장하게 된 계기를 친절하게 설명에 담았다. 최 큐레이터는 사진 작품을 소장하는 매력에 대해 “사진은 살아있는 무언가에 닿았던 빛을 담은 기록”이라며 “그 사진을 좋은 종이 위에 인쇄하면 다시 그때의 빛이 반짝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 감상의 즐거움과 컬렉션의 의미에 대한 담론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4일에는 최 큐레이터와 박미경 류가헌 관장, 이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진행하는 큐레이터 토크도 열린다. 전시는 3월 5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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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화-철화-동화… 조선백자 대표 다 모인 ‘챔피언스 리그’

    조선시대 백자라고 하면 흔히 ‘달항아리’ 도자기를 떠올리지만 백자에는 청화백자부터 철화·동화백자, 순백자까지 다양한 기법과 형태가 있었다. 이렇게 조선시대 500여 년간 만들어진 수많은 백자 중 대표 명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28일 개막하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에선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조선 백자 59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이 출품돼 눈길을 끈다. 특히 일본에 있는 수준급 백자 34점을 비롯해 국내외 14개 박물관·미술관의 백자 185점을 모은 역대 최대 규모란 점도 기대감을 높인다.● 백자 ‘챔피언스리그’ 리움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일단 화려함으로 압도한다. 1부 ‘절정, 조선백자’는 외부 빛을 차단한 약 661㎡(약 200평) 규모의 ‘블랙박스’에 백자 42점을 펼쳐놓았다. 가벽이나 칸막이가 없다 보니 드넓은 암흑 속에 조명과 흰 백자만 반짝인다. 마치 관람객들에게 인증샷을 남기라고 만든 공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최근 관람객들은 자신이 화려한 공간 속에 있었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전시 초입부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고미술도 군집을 통해 화려함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공간에는 국보·보물로 지정된 백자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총 42점이 청화백자, 철화백자, 채색백자, 상감백자와 순백자의 순으로 전시됐다. 이 연구원은 “1부 전시는 백자의 대표 선수들을 모은 ‘챔피언스리그’”라고 강조했다. 달항아리는 단 3점만 전시됐다. 이에 대해 그는 “조선백자 토털전이라는 취지에는 좋은 작품 석 점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가장 깊은 곳으로 가면 전체 백자를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개구쟁이 같은 철화백자 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2부 ‘청화백자’, 3부 ‘철화·동화백자’, 4부 ‘순백자’가 이어진다. 초창기 청화백자는 주로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청화 안료인 코발트가 수입해야 하는 값비싼 재료였기 때문이다. 이후 청화백자는 점차 사대부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이 때문에 사군자나 자작시가 문양으로 들어간 작품을 볼 수 있다. 철화·동화백자는 조선 중기 일본, 중국과의 전란으로 청화 안료 수급이 어려워지자 대체재로 철 안료를 사용하면서 나타났다. 청화백자는 왕실을 중심으로 중앙에서만 제작된 데 비해 철화백자는 지방에서 제작됐다. 이번 전시에서 철화백자를 만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지방 백자는 거의 민속품이기에 자주 전시하기 어렵다”며 “지방 백자는 (왕실의) 제약 없이 직접 만들어 소비한 것이기에 개구쟁이 같은 자유분방함을 지닌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단정한 백자만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지방 백자 섹션을 마련해야 관람객이 비로소 웃으실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고 전시를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장난스러운 용의 모습이 담긴 17세기 ‘백자철화 운룡문호’, 연잎이 시원하게 그려진 ‘백자동화 연화문 팔각병’ 등이 전시됐다. 전시와 연계해 조선 백자 전문가들의 강연과 학술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청소년을 위한 단체 자율감상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일 2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된다. 5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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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명품 백자 한 자리에…역대 최대 백자 ‘챔피언스 리그’

    요즘은 조선시대 백자라고 하면 흔히 ‘달항아리’ 도자기를 떠올리지만 백자에는 청화백자부터 철화·동화백자, 순백자까지 다양한 기법과 형태가 있었다. 이렇게 조선시대 500여 년 간 만들어진 수많은 백자 중 대표 명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조선 백자 59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이 출품됐으며, 일본에 있는 수준급 백자 34점까지 가져와 국내외 14개 박물관·미술관의 백자 185점을 모은 역대 최대 규모 조선 백자전,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28일 개막한다.○ 백자 ‘챔피언스 리그’ 리움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첫 인상부터 화려함으로 압도한다. 1부 ‘절정, 조선백자’ 전시는 약 661㎡(200평) 공간에 외부 빛을 차단한 ‘블랙박스’에서 가벽이나 칸막이가 일체 없이 백자 42점을 펼쳐 놓았다. 드넓은 암흑 속에 조명과 흰 백자만 반짝여 ‘인증샷’을 남기라고 만든 공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광 리움미술관 책임연구원은 “최근 관람객들은 내가 화려한 공간 속에 있었다는 경험 또한 중요하게 본다고 생각했다”며 “관람객의 시선을 전시 초입부터 사로잡기 위해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고, 고미술도 군집 속에서 화려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음을 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공간에는 국보·보물로 지정된 백자 31점과 그에 준하는 국내 백자 3점, 해외 소장 백자 8점 등 42점이 청화백자, 철화백자, 채색백자, 상감백자와 순백자 순으로 전시됐다. 이준광 연구원은 “백자의 대표 선수들을 모은 ‘챔피언스 리그’”라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단 3점만 전시되었는데 이에 대해 “조선백자 토탈전이라는 취지에는 좋은 작품 석 점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가장 깊은 곳으로 가면 전체 백자를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개구쟁이 같은 철화백자 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2부 ‘청화백자’, 3부 ‘철화·동화백자’, 4부 ‘순백자’가 이어진다. 청화백자는 청화 안료인 ‘코발트’가 수입해서 쓰는 값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이후 점차 확대되어 사대부 계층에서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사군자나 자작시가 문양으로 들어간 경우를 볼 수 있다. 철화·동화 백자는 조선 중기 일본, 중국과의 전란으로 청화 안료 수급이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대체재로 철 안료를 사용하면서 나타났다. 특히 청화백자는 왕실을 중심으로 중앙에서만 제작했는데, 철화는 지방에서 제작된 백자도 소개된다. 이 연구원은 “지방 백자는 거의 민속품이기에 자주 전시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지방 백자는 (왕실의) 제약 없이 직접 만들어 소비한 것이기에 개구쟁이 같은 자유분방함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일반 관람객에게 단정한 백자만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지방 백자 섹션을 마련해야 비로소 웃으실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고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장난스러운 용의 모습이 담긴 17세기 ‘백자철화 운룡문 호’, 연잎이 시원하게 그려진 ‘백자동화 연화문 팔각병’ 등이 전시됐다. 전시와 연계해 조선 백자 전문가들의 강연과 학술심포지움도 개최된다. 청소년을 위한 단체 자율감상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을 통해 볼 수 있다. 전시는 5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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