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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부분 초등학교가 다음 달 일제히 개학을 맞는 가운데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야 할 아동 19명의 소재와 안전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1일 교육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취학 대상 아동 49만6269명 가운데 19명의 소재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 중 14명은 출국 기록이 확인됐다. 나머지 5명은 국내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에 있는 아동 14명은 미인정 유학을 떠나거나 이주민 부부 자녀로 부모를 따라 본국에 돌아간 경우로 보인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당국은 현지 경찰 측에 협조를 구해 소재 파악 등 수사 요청을 했다. 국내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5명도 경찰이 수사 중이다. 교육부는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은 아직 없었다”면서도 “경찰청과 함께 아이들의 소재와 안전을 끝까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19명 외에 일부 학생도 초기에는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으나, 추적 결과 불법 체류자가 자녀들의 국적 취득을 위해 허위로 출생신고를 한 경우이거나 국제결혼 가정 아동이 해외 외가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정부는 2016년 ‘원영이 사건’을 계기로 초등학교 취학 대상 아동 관리를 크게 강화했다. 당시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었던 6세 신원영 군이 부모의 학대로 숨진 뒤 뒤늦게 발견돼 사회적 논란이 됐다. 2017년부터는 초교 입학 예비소집을 되도록 참여하도록 하고, 불참 시 학교장이 학부모에게 전화로 학교에 올 것을 요청하거나 정부 및 지자체 정보를 활용해 출입국 사실 확인 및 가정방문 등을 하도록 했다. 2017년 첫해 조사 때 소재 미확인 아동은 98명이었다. 이 중 2명은 아직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 2018년에는 9명이 미확인 상태였지만 이후 소재가 파악이 됐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서울시교육청이 학교통합지원센터를 신설해 기존 학교의 폭력처리업무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일반직 공무원들이 해당 계획을 철회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21일 서울시교육청일반공무원노동조합(서일노)는 성명서를 통해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 업무는 교원들의 고유 업무인데도 불구하고 일반직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며 “업무분장표에서 학폭위 업무를 일반직 공무원들이 맡는 일이 없도록 삭제하라”고 주장했다. 일반직 공무원이란 교사가 아닌 교육청 공무원을 말한다. 앞서 교육부는 학폭위 업무를 학교 내 자치위원회에서 지역별 교육청 지원기관인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학폭법 개선안을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교원노조들은 학폭 처리에 따르는 과도한 스트레스와 짐을 덜 수 있어 반겼던 것이지만 지원청 공무원들로서는 원치 않았던 ‘핵폭탄’을 맞게 된 셈이다. 시교육청이 각 교육지원청에 전달한 공문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11개 지원청에 학교통합지원센터를 신설하고, 관내 학폭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지원단을 꾸려 행정업무를 맡게 된다. 학폭 예방 프로그램 운영, 실태조사, 후속대책 등을 수립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이미 학폭위 업무를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넘기는 것에 대해서는 교육 현장의 우려가 있었다. 학생 특성이나 전체적 상황을 알 수 있는 교사와 달리 교육지원청이 ‘페이퍼(서류)’로만 일을 해야 해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내 11개 지원청 중 학부모 민원이 강한 지역일수록 공무원의 업무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은 이번에 발표된 업무분장은 예시일 뿐 각 지원청의 형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점희 서일노 위원장은 “권위있는 교사들조차 소송에 휘말리며 힘들다고 여긴 학폭업무를 일반 공무원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공문에 담긴 업무분장을 ‘예시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새 교육과정의 학습량이 대폭 줄어들면서 올해 초중고교 검정교과서의 평균가격이 전년도에 비해 4~24%가량 낮아지게 됐다. 교육부는 20일 교과용 도서 심의회를 열어 이런 내용의 ‘2019학년도 검정교과서 및 교사용지도서 신간본’ 가격을 심의·의결했다. 올해 초등 5, 6학년의 검정교과서 가격은 지난해 4987원에서 4670원으로 6%(317원) 떨어졌다. 중2 검정교과서는 지난해 9028원에서 6856원으로 24%(2172원) 인하됐다. 나머지 학년의 초중 검정교과서 가격은 지난해와 같다. 반면 고교는 전 교과의 교과서 가격이 지난해 평균 7940원에서 올해 7625원으로 4%(315원) 낮아진다. 검정교과서 가격이 낮아진 이유는 새 교과서의 쪽수가 이전에 비해 평균 23% 감소했기 때문이다. 초중학교 교과서비는 교육예산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여벌 책 등을 추가 구입하지 않는 이상 학부모의 비용 부담은 없다. 교육부는 “교과서 값을 낮추는 대신 올해는 기획 연구비 및 심의본 제작비를 증액해달라는 출판사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며 “종전 교과서 1권당 2명만 인정하던 편집자 인건비를 3명까지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대전역에서 농촌 풍경을 따라 차로 30여 분을 달리면 대전 유성구 대동에 자리한 작은 학교 건물이 나온다. 옛날 스타일의 단층 건물, 화단에 세워진 책 읽는 어린이 동상, 축구 골대가 세워진 넓은 운동장은 여느 시골 학교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학교는 ‘특별한 학생들’만 올 수 있는 특별한 학교다. 전국 유일의 학교 폭력 피해 학생 전용 기숙형 교육기관인 ‘해맑음센터’다. 2013년 폐교를 활용해 세운 해맑음센터는 사단법인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중심이 돼 운영하고 교육부가 지원하는 기관이다. 학폭 피해를 겪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해 무료로 머물 수 있다. 서류상 학적은 원래 학교에 두되 실제 교육은 해맑음센터에서 위탁하는 형태다. 피해 학생은 2주간 기본 교육을 받는다. 길게는 1년간 장기 위탁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충분히 회복된 후에 원래 학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학폭 충격 헤어나지 못했는데… 갈 곳 없는 아이들 이달 12일. 이곳에서 학부모들과 교육부가 ‘학폭 피해 학생 지원’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 20여 명은 대부분 해맑음센터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학폭 피해 자녀의 ‘살길’을 모색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해맑음센터 같은 곳이 없으면 우리 아이들은 죽는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7400개에 달하는 가해 학생 특별교육기관이 있지만 피해 학생만을 위한 기관은 41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가해·피해 복합형이 아닌 피해 학생만을 위한 기관을 마련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가 학폭 피해를 당하고 무서워서 학교를 못 갔어요.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생 상담 시설 ‘위(Wee)센터’에 가면 가해 학생도 같이 교육받아요. 그 친구를 마주칠까 더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대안학교를 가보려 했지만 거기도 가해 학생 회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어디에도 우리 애가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강원 춘천에서 해맑음센터를 찾아왔다는 학부모 A 씨의 말이다. 각각 영남, 인천, 충청, 대구, 광주에서 왔다는 학부모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영남에서 온 학부모는 “학폭 피해를 입은 우리 아이는 오도 가도 못하고 학교에서 계속 고통을 당했다”며 “자식을 살리기 위해 전국에 안 다녀본 기관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학교가 겁나서 못 가겠다는 아이를 위해 전국의 대안학교를 다 뒤졌지만 (곧 졸업하는) 중3은 아예 안 받는다는 학교가 많았다”며 “모든 대안학교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통합형이라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에 신음, 극단적 선택도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자식이 겪은 고통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루는 아이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자전거 타고 학교 가는데 골목에서 차가 나와서 날 쳐서 죽였으면 좋겠어. 너무 힘들어’라고요. 3년간 잠도 못 자고 소리 지르며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를 보고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대구 학부모 B 씨) “아이가 7층에서 유서 써놓고 투신하려는 걸 가까스로 잡았어요. 학폭 때문에 학교에 상담을 요청했는데 갈 곳이 ‘위클래스’밖에 없었대요. 내 아이가 죽어 가는데 어디 도움 요청할 곳이 없었어요.”(학부모 C 씨) 학부모 D 씨는 “아이가 ‘엄마,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어. 4층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란 말을 한다”며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더 절망적”이라고 하소연했다. 고통 받는 자녀를 도울 수 없다는 좌절감에 피해 학생의 부모가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장은 “피해 학생만을 위한 통학·기숙형 기관 설립은 물론이고 피해 학생 부모의 심리적 지원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만의 고통 아닌 모두의 문제’로 알면서 힘 얻어 그럼에도 해맑음센터에서는 희망이 꿈틀거렸다. 학부모 C 씨는 “이곳을 통해 아이도 살고 나도 살았다”고 했다. 그는 “해맑음센터 교사들은 다년간의 학폭 피해 학생 심리상담, 교육 경험을 가지고 있고 아이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준다”며 “피해 학생 부모들의 자조모임을 하면서 서로의 고통 공감을 통해 치유가 됐다. 죽으려 했던 아이도 센터를 수료한 후 밝게 잘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C 씨는 ‘회복’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아이가 그래요. ‘엄마, 난 해맑음센터 안 갔으면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거야’라고요. 여기 있는 6개월 동안 웃음을 찾고 자신감을 찾았대요.” 교육부는 해맑음센터와 유사한 기숙형 학폭 피해 학생 전담 학교를 전국에 1, 2곳 더 만들 계획이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지역별 통학형 센터도 더 확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피해 학생 전담 기관이 수십 곳이라지만 대부분 전용 시설이 아니라 기존 복합시설에 이름만 피해 시설로 걸어놓은 곳”이라며 “숫자 늘리기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을 온전히 치유할 교사와 프로그램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대전=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찾아 “전교조가 교육정책의 중요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을 위해 전교조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 10월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이후 교육부 장관이 직접 전교조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유 부총리는 진보성향 교원단체인 전교조를 찾아 방명록에 ‘새로운 100년!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을 위해 전교조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교육계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보도자료에서 전교조 앞에 ‘소위’라는 표현을 쓰며 법적 실체가 없는 단체임을 강조한 것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전교조를 실체적 단체로 인정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전교조는 앞서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지만 1, 2심에서 모두 패소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은 “교육부 장관이 법외노조 상태인 전교조를 공식 방문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인 만큼 이번 방문은 큰 의미를 지닌다”며 “오늘 교육부 장관의 방문이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의 신호탄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또 △전교조 해직교사 복직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3·1절 100주년을 진정으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교육계 내부에 숨어있는 친일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며 전교조가 앞장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유 부총리는 전교조 방문에 앞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를 찾았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은 교권 강화를 위한 교원지위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하 회장은 “퇴근 후는 물론이고 한밤중에, 새벽에 걸려오는 학부모들의 부적절한 전화에 교원들이 사생활 침해를 겪고 있다”며 “이와 관련한 방지 대책과 생활지도 매뉴얼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유 부총리는 “교총의 요청을 반영한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을 마련 중”이라며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적용 가능한 통일된 지침을 마련해 신학기 전에 학교에 보급하겠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포용국가는 기초생활을 넘어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며 올해를 ‘혁신적 포용국가’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육아휴직 확대, 실업급여 인상, 치매 환자 관리율 확대 등 전 생애 주기에 맞춘 복지 혜택 강화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9일 서울 노원구 월계문화복지센터에서 열린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보고회’에 참석해 “혁신적 포용국가는 혁신성장을 이뤄가면서 동시에 국민 모두가 함께 잘사는 포용적인 나라를 만들어가자는 뜻”이라며 “대한민국이 혁신적 포용국가가 된다는 것은 혁신으로 함께 성장하고, 포용을 통해 성장의 혜택을 모두 함께 누리는 나라가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포용국가의 목표에 대해 “모든 국민이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생애 전 주기를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돌봄, 배움, 일, 쉼, 노후 등 생애 주기 각 영역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국민이, 전 생애에 걸쳐, 기본생활을 영위하는 나라가 포용국가 대한민국의 청사진”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복지 확대에 따른 재원 논란에 대해선 “대한민국 국력과 재정도 더 많은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우리가 이뤄낸 포용국가가 세계 포용국가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각 부처는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펼칠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보고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부처별 정책을 국민의 삶의 영역인 ‘돌봄, 배움, 일, 쉼, 노후’ 5개 분야와 생활기반과 관련한 ‘소득, 환경·안전, 건강, 주거·지역’ 등 4개 분야로 재구성해 소개했다. 분야별 포용국가 정책은 대부분이 국가 서비스의 질적 향상보다는 대규모 재원 투자를 통한 양적 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돌봄 분야에선 지난해 발표된 △2022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40%로 확대 △초등학생 돌봄시설 수용 80%로 확대 등이 포함됐다. 교육 분야에서는 지난해 ‘과속 정책’ 논란을 빚은 고교 무상교육이 포용국가 정책 일환으로 재조명됐다. 교육부는 올 2학기부터 고3학생을 시작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지만 당장 소요 예산 공식 추정치나 예산 확보 방안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일과 쉼 분야에서는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 월 20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확대 △청년 재직자 내일채움공제 대상자 4배로 확대 △경찰·소방·복지 공무원 확충 및 사회 서비스 분야 일자리 34만 개로 확충 등 양적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복지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올해를 ‘아동에 대한 국가책임 확대의 원년’으로 올 5월 선포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정책으로는 지난해 발표한 △전 계층에 월 10만 원 아동수당 지급 △아동 의료비 부담 경감 △위기 아동 조기 발견 시스템 구축 등을 포함했다. 다만 이날 발표된 정책들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각 부처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들이라 새로울 게 없이 백화점식으로 나열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2022년까지 포용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이 실시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며 “포용국가를 위한 장기 로드맵도 별도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 참모들은 ‘포용국가 비전 2040’ 수립을 진행 중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과 오찬을 갖는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유공자들의 의견을 듣고 5·18 폄훼 논란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한상준 alwaysj@donga.com·임우선 기자}

“‘간장공장 공장장’ 빨리 말하기 게임은 하선 학우에겐 어렵지 않을까?” “그럼 2라운드에 ‘촉감으로 상자 속 물건 맞히기’ 게임을 넣자.” “오리엔테이션(OT) 상황을 점자로 전달하려면 누군가가 타자를 빨리 쳐야 할 텐데, 누가 속기사 역할을 맡을래?” “18학번 8, 9명이 속기사를 자청했어. 세션별로 돌아가며 맡기면 될 것 같아.” 이달 초 연세대 19학번 신입생 OT를 기획하던 이 학교 교육계열 학생들은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OT를 준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연세대 개교 이래 처음 입학하는 시청각장애 학우인 김하선 씨(19)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전국에서 가장 늦은 오후 9시 43분까지 점자 수능 문제지를 풀어 화제가 됐다(본보 지난해 11월 19일자 A2면 참조). 그는 수시전형으로 이 대학 교육학과에 합격했다. 연세대 교육계열 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3학년 허나연 씨는 “기사를 통해 하선 학우가 우리 과에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함께 즐길 OT 및 새내기배움터(새터)를 위해 미리 하선 학우를 만나 여러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통상 신입생 OT는 게임과 응원, 학교 프로그램 안내 등으로 구성된다. 비장애 학생들은 미처 알지 못하지만 장애 학생들로서는 참여하기 힘든 내용이 많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면 행사 진행 내내 ‘외딴 섬’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면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텍스트로 입력한 뒤 점자화해 알려줘야 한다. 그나마 김 씨는 왼쪽 귀의 청력이 조금 남아 있어 누군가가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주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김 씨는 “OT 때 따로 속기사를 구할까도 생각했는데 다른 학우들이 거리감을 느낄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며 “그런데 학교 선배들이 미리 연락을 주고 속기까지 해줘 무척 고마웠다”고 말했다. 연세대에는 지난해까지 장애 학생 72명이 재학 중이었다. 허 씨는 “가장 신경 쓰는 건 우리가 몰라서, 미처 생각지 못해서 하선 학우가 배제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며 “개학에 앞서 이런 고민을 같이 공유하고 함께 답을 찾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5년간 서울맹학교만 다닌 김 씨에게 대학생활은 그 자체가 도전이다. 맹학교는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몇 개인지, 복도 어디쯤에 전기 스위치가 있는지 모두 꿰고 있다. 모든 시설이 장애를 고려해 갖춰져 있다. 하지만 대학은 전혀 다르다. 특히 연세대는 신입생들이 1학년 때 모두 송도캠퍼스에서 기숙생활을 한다. 김 씨에겐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맞는 ‘날것 그대로의 세상’인 셈이다. 연세대 측도 처음 맞는 시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이삼현 연세대 인권센터 장애학생지원실장은 “장애 학생들에게 학습에 필요한 대필, 이동보조, 식사보조 등 인력지원을 하는데, 시청각 장애가 있는 하선 학생에게는 2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의시간 중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자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당 가격이 600만 원인 점자전달단말기도 필기용과 읽기용으로 2대를 지원한다. 이 실장은 “지난 학기 한 청각장애 학생이 학점 4.3으로 만점을 받았다”며 “필요한 지원을 하면 장애 학생들의 학업적 성취에 한계가 없다”고 말했다.임우선 imsun@donga.com·김수연 기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하려면 우선 대입제도와 고교 내신평가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교육 전문가들이 답했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각자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고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방식이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모든 고등학교에 전면 도입할 계획이다. 17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학점제 도입을 위한 고등학교 교육과정 재구조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 6월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5.6%는 고교학점제 시행에 앞서 가장 먼저 대입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현 입시제도는 모든 학생이 같은 교육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이 설문조사에는 고교 교사와 장학사, 연구사, 대학교수 등 1만552명이 참여했다. 이어 고교학점제 시행의 선결조건으로 ‘고교 내신평가제도 개편’(20.9%)이 꼽혔다. 현재 고교 내신은 완전한 성취평가제(절대평가)가 아니라 석차가 함께 병기되고 있어 선택 과목 간 유불리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수강생이 적은 과목은 상대평가 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 시행에 앞서 필요한 사항으로 ‘과목 이수 기준 및 미이수자 대책 마련’(18.5%)과 ‘시설 및 인프라 구축’(18.3%)이 뒤를 이었다. 모든 학생이 충분한 과목 선택권과 양질의 수업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선택 과목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는 80.7%가 교과별로 기초 과목을 포함해 수준별 과목 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수학점 기준에 미달한 학생 대책으로는 보충학습과 별도 과제, 해당 과목만 재이수, 학기 또는 학년 전체 유급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간장공장공장장’ 빨리 말하기 게임은 하선 학우에겐 어렵지 않을까?” “그럼 2라운드에 ‘촉감으로 상자 속 물건 맞추기’ 게임을 넣자.” “오리엔테이션(OT) 상황을 점자로 전달하려면 누군가 타자를 빨리 쳐야 할 텐데, 누가 속기사 역할을 맡을래?” “18학번 8, 9명이 속기사를 자청했어. 세션별로 돌아가며 맡기면 될 것 같아.” 이달 초 연세대 19학번 신입생 OT를 기획하던 이 학교 교육계열 학생회 간부들은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OT를 준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연세대 개교 이래 처음 입학하는 시청각장애 학우인 김하선 양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하선 양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전국에서 가장 늦은 밤 9시 43분까지 점자 수능 문제지를 풀어 화제가 됐다(본보 지난해 11월 19일자 A2면 참조). 그는 수시전형으로 이 대학 교육학과에 합격했다. 연세대 교육계열 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3학년 허나연 씨는 “기사를 통해 하선 학우가 우리 과에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함께 즐길 OT 및 새내기배움터(새터)를 위해 미리 하선 학우를 만나 여러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통상 신입생 OT는 게임과 응원, 학교 프로그램 안내 등으로 구성된다. 비장애학생들은 미처 알지 못하지만 장애학생들로서는 참여하기 힘든 내용이 많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면 행사 진행 내내 ‘외딴 섬’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면 누군가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텍스트로 입력한 뒤 점자화해 알려줘야 한다. 그나마 하선 양은 왼쪽 귀의 청력이 조금 남아있어 누군가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주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선 양은 “OT 때 따로 속기사를 구해 데려갈까 생각했는데 다른 학우들이 거리감을 느낄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며 “그런데 학교 선배들이 미리 연락을 주고 속기까지 해줘 무척 고마웠다”고 말했다. 연세대에는 하선 양 외에도 장애를 가진 학생 72명이 재학 중이다. 허 씨는 “가장 신경 쓰는 건 우리가 몰라서, 미처 생각지 못해서 하선 학우가 배제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며 “개학에 앞서 이런 고민을 같이 공유하고 함께 답을 찾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5년간 서울맹학교만 다닌 하선 양에게 대학생활은 그 자체가 도전이다. 맹학교는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몇 개인지, 복도 어디쯤에 전기스위치가 있는지 모두 꿰고 있다. 모든 시설이 장애를 고려해 갖춰져 있다. 하지만 대학은 전혀 다르다. 특히 연세대는 신입생들이 1학년 때 모두 송도캠퍼스에서 기숙생활을 한다. 하선 양에겐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맞는 ‘날 것 그대로의 세상’인 셈이다. 연세대 측도 처음 맞는 시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이삼현 연세대 인권센터 장애학생지원실장은 “장애학생들에게 학습에 필요한 대필, 이동보조, 식사보조 등 인력지원을 하는데, 시청각 장애가 있는 하선 학생에게는 2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의시간 중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자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1대당 가격이 600만 원인 점자전달단말기도 필기용과 읽기용으로 2대를 지원한다. 이 실장은 “지난 학기 한 청각장애 학생이 학점을 4.3 만점 받았다”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면 장애학생들의 학업적 성취에 한계가 없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11월, 12월, 1월, 2월….’ 예년 같으면 11월 말 진즉 발표했을 자료인데, 어찌 된 일인지 교육부가 해가 바뀌도록 발표를 안 하는 자료가 있다. 바로 ‘2018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교육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교육부가 매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지필평가다. 중3과 고2를 대상으로 시행하는데, 결과엔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 △지역에 따른 학력 격차 등이 나타난다. 사실상 ‘학교 교육의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에 교육계의 관심이 상당히 높은 자료다. 그런데 이번엔 왜 깜깜 무소식일까. 들리는 얘기로는 결과가 상당히 좋지 않은 모양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거의 8∼9%에 육박했다는 말도 나온다. 과목에 대한 기본적 이해나 최소한의 학업도 안 되는 학생이 10명 중 1명이란 얘기니 교육부로서는 정말 발표 자체가 난감한 상황이다. 사실 성취도 평가는 현 정부 들어 아예 없어질 뻔했다. 2017년 5월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는 성취도 평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학교별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 등이 공시돼 ‘학교 서열화’가 조장된다는 게 대외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진보 교육계가 학생들의 학력저하 현상이 공식 지표로 드러나는 걸 막으려고 평가 자체를 없애려 한다’는 해석도 많았다. 학교별로 제각각인 내신시험이나, ‘톱급’ 학생들에게 관심이 쏠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달리 성취도 평가는 전국 공통의 틀로, ‘중간 이하’의 학생 현황이 여실히 파악되는 유일한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성취도 평가는 학생보다 학교나 교육청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시험이었다. 학생들은 시험이 성적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데다 문제도 평이해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반면에 학교나 교육청은 결과가 안 좋으면 ‘제대로 가르치고 있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일부 교육학자는 공교육에 대한 ‘워치도그’ 차원에서라도 성취도 평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선 직후인 2017년 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견을 존중한다며 ‘성취도 평가를 전수에서 표집 평가로 변경하라’고 교육부에 제안한다. 전국 모든 중3과 고2를 대상으로 하던 시험을 이 중 3%만 표본으로 뽑아 평가하라는, 사실상의 지시였다. 이렇게 하면 학교별 성적 공시는 자연히 불가능해진다. 자문위의 ‘제안’은 상당히 거친 방식으로 현장에 적용됐다. 제안이 발표된 시점은 그해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지기 일주일 전이었는데, 이미 전국에 94만 명분의 시험지가 배포돼 있던 상황에서 3%를 뺀 나머지 시험지가 모두 폐기됐다. 평가를 준비해 온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바보’로, 국민들의 세금을 폐지로 만들어 버렸다. 2018년에도 학업성취도 평가는 이렇게 3% 학생만을 대상으로 해서 치러졌다. 교육부는 요즘 부랴부랴 이 결과와 함께 발표할 기초학력 강화 대책을 만드는 모양이다. 수치를 밝힐 땐 아마도 ‘3%만을 대상으로 해서 정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해명도 덧붙일 것 같다. 아픈 곳을 부정하고 싶다고 진단장비 자체를 없애버리면 환자는 결국 더 큰 고통을 받거나 급기야 죽을 수도 있다. 불편하고 골치 아파도 병변을 드러내고 문제를 파악해야 정확한 치료법을 찾아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 아닐까. 3%만 들여다봤는데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의미도, 재미도 모른 채 학교 수업을 견디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버릴 것인가. 교육당국의 기초학력 강화 대책이 면피용에 그친다면 한국 교육의 미래도 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엄마 아빠는 지금 뭐하고 계실까?’이번 설날 아침에도 저는 이 생각을 하며 시댁 차례상을 차렸어요. 벌써 9년째 자식도, 손주도 없이 친정 부모님 둘이서만 보내는 설날 아침을 생각하면 절로 죄송해지는 못난 딸이랍니다. 저희 집은 딸만 둘이에요. 언니는 외국에서 일하고, 제가 결혼한 뒤로 명절은 늘 부모님 두 분이서 지내시죠. 남편 집은 아들만 둘이고 아버님이 맏형이라 친척들이 많이 모여요.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댁 풍경을 볼 때마다 ‘한 해 정도는 우리 없이 차례를 지내셔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추석 때 남편에게 물었죠. “내년 설엔 우리 집 먼저 갔다가 설 다음 날 시댁에 가면 안 될까? 나도 사촌들 집에 가보고 싶어. 우리 아이가 엄마 쪽 친척은 아무도 모르잖아.” 그랬더니 남편은 “엄마한테 그 얘기를 어떻게 꺼내느냐”며 손사래를 치더군요. 많이 섭섭했어요. 한국에서 명절에 처가를 먼저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지난해 초 결혼한 직장인 강모 씨(30)는 이번 설을 앞두고 아내와 부모님 사이에서 속앓이를 많이 했다. ‘설 당일을 누구 집에서 보낼 것이냐’가 문제였다. “아내가 외동딸이고 장인이 안 계셔서 아내는 이 문제에 굉장히 민감해요. 결혼 전 ‘명절은 번갈아 가자’고 약속했죠. 작년 설은 저희 집에 먼저 갔으니 이번엔 장모님 댁에 먼저 가려 했어요. 저도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반대할 줄은 몰랐어요.”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갓 결혼했는데 며느리 없이 설을 보내란 말이냐”며 “명절 당일엔 시가에 있는 게 며느리의 도리”라고 잘라 말했다. 강 씨는 “결혼 전엔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보수적인지 몰랐다”며 “처가를 먼저 오긴 했는데 마음도 불편하고 뒷감당도 두렵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 의식이 높아지고 저출산으로 자녀가 한둘에 그치는 집이 늘면서 명절 당일 시가에 먼저 가는 일이 집안 내 갈등의 소재가 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이제는 아들과 딸이 시가와 처가의 유일한 자식이다 보니 ‘나도 명절에 우리 부모님을 챙기고 싶다’는 아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설을 앞두고 동아일보 기자 8명이 기혼 남성 100명을 상대로 ‘설날 당일 처가에 먼저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21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40, 50대에서는 ‘본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동선상 편해서’가 처가에 먼저 간 주된 이유였다. 20, 30대에서는 ‘결혼 전 번갈아 가기로 약속해서’, ‘아내가 외동이라서’라는 답이 많았다. ‘올해 설날 아침도 처가에서 보낸다’는 남성은 11명이었다. 10명 중 1명꼴인 셈이다. 3개월 전 결혼한 주모 씨(29)는 결혼 전에 명절 때 ‘본가-처가 교차 방문’을 사전 승낙 받은 경우다. 설날 아침에 한 해는 본가를 먼저 가고, 다음 해는 처가를 먼저 가기로 한 것. 이번 설은 결혼 후 첫 명절이라 본가를 먼저 갔지만 내년 설에는 처가를 먼저 갈 예정이다. “결혼 전 아내가 ‘명절에 친정 부모님이 우리만 기다릴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자식으로서 공감이 돼 사전에 부모님께 ‘번갈아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어요.”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부계 중심 유교문화’가 강하다. ‘명절날 처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게 아들로서는 쉽지 않다. 직장인 정모 씨(34)는 지난해 설에 결혼 후 처음으로 본가 대신 처가에 갔다가 1년 내내 엄마로부터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 ‘며느리한테 잡혀 산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는 “분란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추석부터는 다시 본가에 먼저 간다”고 했다. 아내의 불만을 누르고 매해 본가에 먼저 간다는 박모 씨는 “아내가 어떤 대목에서 예민해질지 알 수 없어 나도 본가에 있는 내내 아내 눈치를 살핀다”며 “명절 목표는 최대한 빨리 본가 방문을 끝내고 처가에 가는 거다. 나도 이런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회사원 심모 씨(40)는 본가 부모님의 배려로 다툼을 줄일 수 있었다. 심 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부모님이 ‘연휴 때 내려오려면 힘드니 우리가 올라가겠다’며 설 전 주말에 다녀가신다”며 “엄마가 서운한 기색 없이 ‘차례 음식을 안 하니 나도 편하다’고 말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김모 씨(36)는 ‘제3의 길’을 택했다. 그는 “설 전에 본가와 처가를 모두 다녀온 뒤 연휴에는 아예 아내와 둘이 여행을 간다”며 “의외로 본가가 이렇게 하는 편을 덜 서운해한다”고 전했다. 오윤자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명절 갈등을 줄이려면 먼저 부부가 감정이 아닌 사실 위주로 소통해 방문에 대한 원칙을 정하고 부모님께 이를 잘 설명해야 한다”며 “시부모 역시 이런 변화를 ‘권력의 이동’이라고 받아들일 게 아니라 같은 가족인 며느리와 사돈에 대한 배려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젊은 세대가 명절 변화를 원한다면 그 전에 더 자주 찾아뵈어 부모님의 ‘빈 감정 계좌’를 채워드려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그래야 부모님이 명절 변화를 오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임우선 imsun@donga.com·김자현 기자}

‘엄마 아빠는 지금 뭐하고 계실까?’ 이번 설날 아침에도 저는 이 생각을 하며 시댁 차례상을 차렸어요. 벌써 9년째 자식도, 손주도 없이 친정 부모님 둘이서만 보내는 설날 아침을 생각하면 절로 죄송해지는 못난 딸이랍니다. 저희 집은 딸만 둘이에요. 언니는 외국에서 일하고, 제가 결혼한 뒤로 명절은 늘 부모님 두 분이서 지내시죠. 남편 집은 아들만 둘이고 아버님이 맏형이라 친척들이 많이 모여요.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댁 풍경을 볼 때마다 ‘한 해 정도는 우리 없이 차례를 지내셔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추석 때 남편에게 물었죠. “내년 설엔 우리 집 먼저 갔다가 설 다음 날 시댁에 가면 안 될까? 나도 사촌들 집에 가보고 싶어. 우리 아이가 엄마 쪽 친척은 아무도 모르잖아.” 그랬더니 남편은 “엄마한테 그 얘기를 어떻게 꺼내느냐”며 손사래를 치더군요. 많이 섭섭했어요. 한국에서 명절에 처가를 먼저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지난해 초 결혼한 직장인 강모 씨(30)는 이번 설을 앞두고 아내와 부모님 사이에서 속앓이를 많이 했다. ‘설 당일을 누구 집에서 보낼 것이냐’가 문제였다. “아내가 외동딸이고 장인이 안 계셔서 아내는 이 문제에 굉장히 민감해요. 결혼 전 ‘명절은 번갈아 가자’고 약속했죠. 작년 설은 저희 집에 먼저 갔으니 이번엔 장모님 댁에 먼저 가려 했어요. 저도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반대할 줄은 몰랐어요.”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갓 결혼했는데 며느리 없이 설을 보내란 말이냐”며 “명절 당일엔 시댁에 있는 게 며느리의 도리”라고 잘라 말했다. 강 씨는 “결혼 전엔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보수적인지 몰랐다”며 “처가를 먼저 오긴 했는데 마음도 불편하고 뒷감당도 두렵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 의식이 높아지고 저출산으로 자녀가 한둘에 그치는 집이 늘면서 명절 당일 시댁에 먼저 가는 일이 집안 내 갈등의 소재가 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이제는 아들과 딸이 시가와 처가의 유일한 자식이다 보니 ‘나도 명절에 우리 부모님을 챙기고 싶다’는 아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설을 앞두고 동아일보 기자 8명이 기혼 남성 100명을 상대로 ‘설날 당일 처가에 먼저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21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40, 50대에서는 ‘본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동선상 편해서’가 처가에 먼저 간 주된 이유였다. 20, 30대에서는 ‘결혼 전 번갈아 가기로 약속해서’, ‘아내가 외동이라서’라는 답이 많았다. ‘올해 설날 아침도 처가에서 보낸다’는 남성은 11명이었다. 10명 중 1명꼴인 셈이다. 3개월 전 결혼한 주모 씨(29)는 결혼 전에 명절 때 ‘본가-처가 교차 방문’을 사전 승낙 받은 경우다. 설날 아침에 한 해는 본가를 먼저 가고, 다음 해는 처가를 먼저 가기로 한 것. 이번 설은 결혼 후 첫 명절이라 본가를 먼저 갔지만 내년 설에는 처가를 먼저 갈 예정이다. “결혼 전 아내가 ‘명절에 친정 부모님이 우리만 기다릴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자식으로서 공감이 돼 사전에 부모님께 ‘번갈아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어요.”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부계 중심 유교문화’가 강하다. ‘명절날 처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게 아들로서는 쉽지 않다. 직장인 정모 씨(34)는 지난해 설에 결혼 후 처음으로 본가 대신 처가에 갔다가 1년 내내 엄마로부터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 ‘며느리한테 잡혀 산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는 “분란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추석부터는 다시 본가에 먼저 간다”고 했다. 아내의 불만을 누르고 매해 본가에 먼저 간다는 박모 씨는 “아내가 어떤 대목에서 예민해질지 알 수 없어 나도 본가에 있는 내내 아내 눈치를 살핀다”며 “명절 목표는 최대한 빨리 본가 방문을 끝내고 처가에 가는 거다. 나도 이런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회사원 심모 씨(40)는 본가 부모님의 배려로 다툼을 줄일 수 있었다. 심 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부모님이 ‘연휴 때 내려오려면 힘드니 우리가 올라가겠다’며 설 전 주말에 다녀가신다”며 “엄마가 서운한 기색 없이 ‘차례 음식을 안 하니 나도 편하다’고 말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김모 씨(36)는 ‘제3의 길’을 택했다. 그는 “설 전에 본가와 처가를 모두 다녀온 뒤 연휴에는 아예 아내와 둘이 여행을 간다”며 “의외로 본가가 이렇게 하는 편을 덜 서운해한다”고 전했다. 오윤자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명절 갈등을 줄이려면 먼저 부부가 감정이 아닌 사실 위주로 소통해 방문에 대한 원칙을 정하고 부모님께 이를 잘 설명해야 한다”며 “본가 부모 역시 이런 변화를 ‘권력의 이동’이라고 받아들일 게 아니라 같은 가족인 며느리와 사돈에 대한 배려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젊은 세대가 명절 변화를 원한다면 그 전에 더 자주 찾아뵈어 부모님의 ‘빈 감정 계좌’를 채워드려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그래야 부모님이 명절 변화를 오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공포된 ‘강사법(고등교육법)’의 후속 조치로 고등교육법 시행령 등 4개 법령을 개정해 1일부터 40일간 입법예고에 들어간다고 31일 밝혔다. 시행령은 강사법이 현장에 적용되는 구체적 지침이 담기는 만큼 대학과 강사 양측의 관심이 컸다. 먼저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대학들이 강사 대신 고용이 쉬운 겸임교원이나 초빙교원만 늘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항을 신설했다. 이미 직장을 가진 겸임·초빙 교원들은 재임용 요구, 인건비 인상 등의 요구가 적어 대학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겸임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조교수 이상의 자격조건을 갖추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내용이 원래 다니는 직장의 직무 내용과 유사해야 하며 △본래 직장에서 상시 근무하는 현직 근로자로서 △임용 기간을 1년 이상으로 계약해야 하는 등의 4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도록 했다. 산업체 소속 전문대 강사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강사 임용 시 반드시 공개 임용을 하도록 했다. 대학은 이를 위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심사위원을 임명·위촉할 방법을 학교 정관 및 학칙에 명시해야 한다. 강사가 임용 기간 만료나 재임용 조건 등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정관이나 학칙에 임용 기간, 임금(방학 중 임금 포함), 강의 시간 및 복무 등 근무조건, 면직 사유, 재임용 절차 등을 명시하도록 했다. 대학들은 “시행령이 겸임·초빙 교원 고용을 제한하는 데 방점을 뒀다”는 반응이다. 수도권 대학의 한 관계자는 “조교수 이상이면 박사 이상이란 얘긴데 그럼 실무 역량 위주의 강사들은 고용하기 어렵다”며 “추가 고용이 어려워진 건 물론이고 고용 중인 겸임·초빙 교원도 엉뚱한 유탄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대학들이 정말 궁금해했던 방학 중 임금 산정 기간이나 임금 기준이 나오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자 여러분, ‘삼탄아트마인’이라는 강원 정선군의 관광지가 있습니다. 과거 광산이었던 곳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세계 150개국에서 수집한 10만여 점의 예술품을 지하 갱도 안에 모아 둔 곳이죠.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가진 곳이 1년 중 4개월 정도만 손님이 몰리고 나머지 기간은 비수기라 고민이라고 합니다. 학생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양대 ERICA캠퍼스 경상대 강의실. 학생들은 강의실 화면에 뜬 삼탄아트마인의 사례를 보며 고심에 빠졌다. 이 학교 전상길 교수가 던진 질문은 학습용, 즉 가공의 사례가 아니었다. 폐광산을 문화광산으로 바꾸려 했지만 사업 위기에 부닥친 실제 기업의 사례였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모든 경영학 지식과 사업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삼탄아트마인을 살릴 전략을 내놓아야 했다.○ 학생-대학-기업 윈윈 PBL 최근 대학가에서는 대학생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고 창의력 발산의 기회를 주기 위한 ‘산업 연계 문제 기반 프로젝트 수업(IC-PBL·Industry-Coupled Problem Based Learning)’ 방식이 화제다. PBL은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수업 형태다. 대학이 기업으로부터 고민을 의뢰받고 학생들에게 가공의 사례가 아닌 실제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미션을 준다. 학생들은 주도적으로 관련 지식을 학습하고 현장을 탐사하며 문제를 이해한다. 기업은 관련 실무자들을 대학에 보내 각 팀의 멘토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결과는 실제 기업 현장에 적용된다. 학생과 기업 모두가 성과를 공유하는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실제 한양대 ERICA캠퍼스에서 진행됐던 삼탄아트마인 프로젝트는 PBL의 정석을 보여줬다. 삼탄아트마인 대표는 학생들을 찾아 기업의 실제 고민을 전했고, 학생들은 비슷한 위기를 경험했던 기업들의 사업모델을 탐구해 삼탄아트마인에 적용할 만한 대안을 제시했다. 수업 과정에서 각종 아이디어가 나왔다.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은 “기업의 고민은 비수기의 흑자 전략을 얻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성수기의 수익을 더욱 극대화할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이처럼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정선의 기업 현장을 수차례 찾아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냈다. 갱도에 뒤섞여 있는 전시물 배치 공간 설계를 다시 하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했다. 전시장에서 파는 음식 메뉴도 바꿨다. △가격 전략을 높이기 위한 패키지 상품 구성 △인근의 하이원 및 강원랜드와 결합한 지역사회 마케팅 △전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직행버스 노선 설계 등도 제시됐다. 모두 학생들 머리에서 나온 해결책이다. 전 교수는 “한 학기가 끝났을 때 학생들과 기업 대표가 끌어안고 함께 우는 감동의 드라마가 연출됐다”며 “학생들의 솔루션을 적용한 뒤 지난 한 해 추가로 얻은 수익의 3%를 기업 대표가 한양대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업무 능력 갖춘 학생들에 기업들 큰 관심 한양대 ERICA캠퍼스는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IC-PBL 수업을 전 학과에 도입했다. 2017년 신입생부터는 졸업 요건에 ‘4개 이상의 PBL 교과목 이수’를 추가했다. 원활한 PBL 수업을 위해 모든 단과대에 ‘IC-PBL 강의실’을 구축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PBL 경험을 한 학생들은 기업들이 따로 채용 문의를 할 정도로 실무 역량이 뛰어나다”며 “PBL 과정에서 기업으로부터 받은 다양한 수상 경력은 타 기업에 지원할 때도 일종의 ‘마패’가 된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물류회사인 DHL,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인 풀무원과도 산학협정을 맺고 PBL을 진행 중이다. 한양대는 “올해 개교 80주년을 맞아 중장기적으로 전체 수업의 20% 이상을 소통 중심의 스마트 교육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설 차례상요? 우리 집안은 이미 신정에 차례를 지냈는데요.” 25일 조선시대 대표적 성리학자인 명재 윤증(1629∼1714) 종가의 차종손인 윤완식 씨에게 설 차례 계획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는 “설 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신정 차례상에는 과일과 차만 올린다”고 했다. 조선시대 선비를 대표하는 명재 종가가 설을 지내지 않는 데다 신정 차례상에 다과만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재는 왕에게서 우의정 등 높은 벼슬자리 부름을 받고도 관직에 나가지 않고 평생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살림은 늘 궁핍했다. 어려운 살림에도 제사를 지내야 할 후손들을 위해 명재의 유지(遺旨)는 분명했다. ‘제사를 간소하게 하라. 부녀자들의 수고가 크고 사치스러운 유밀과(약과)는 올리지 말라. 기름을 쓰는 전도 올리지 말라.’ 집안의 제사상 크기는 가로 99cm, 세로 68cm로 정해져 있어 음식을 많이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다고 한다. 윤 씨는 “우리 종가의 특징은 여성의 수고를 덜어주고 제물보다 마음을 중시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명재 종가의 제사상에 올라가는 과실은 대추와 밤, 감 등 딱 세 가지다. 대(代)의 이어짐을 의미하는 뿌리와 줄기, 잎을 활용한 3색 나물을 올리는데, 이조차 따로따로 담지 않고 한 그릇에 담는다. 조기 역시 통으로 올리지 않고 한 토막만 올린다고 윤 씨는 전했다. 설 차례상은 기일제(조상이 돌아가신 기일에 지내는 제사)상보다 더 간소하다. “차례는 차(茶)를 올린다고 해서 차례예요. 차례상에는 떡국과 과실 세 가지, 식혜, 녹차 정도만 올려요.” 윤 씨는 “만약 조상이 커피를 좋아하셨다면 커피를 타서 올릴 수도 있을 것”이라며 “차례상 비용은 3만 원이 채 안 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시덕 교육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통 차례상은 명재 종가처럼 간소했다. 김 과장은 “차례에 대해 조상들이 남긴 규칙은 ‘과일과 제철음식 하나’가 전부”라며 “설 차례 때 기일제를 함께 드린다면 모를까 기일제를 따로 지내면서 차례상을 제사상처럼 차리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다. 차례상은 명절 때 자손들만 맛있는 음식을 먹기 죄송해 설이면 떡국, 추석이면 송편, 단오면 쑥떡 등을 한 그릇 담아 차와 함께 조상에게 올린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명재 종가처럼 설 대신 신정을 쇠는 건 문제가 없을까. 명재 종가가 신정을 쇠게 된 것은 윤 씨의 증조부인 윤하중 선생의 결정 때문이었다. 천문학자인 윤하중 선생은 1938년 5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역서에 관한 고서란 고서는 모두 읽은 역학계의 거성(巨星)’으로 소개된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윤 씨는 “천문학을 공부한 증조부는 양력이 음력보다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집안의 제사와 생일을 모두 양력에 맞춰 지내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안승준 고문서연구실장은 “차례든 제사든 전통은 시대와 집안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다”며 “모든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지난 한 해 독자 여러분의 큰 사랑을 받은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 시리즈가 올해 ‘신예기 2019’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신예기는 빠른 시대 변화 속에서 세대와 남녀, 개인 간 갈등을 낳는 일상의 예법을 재조명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예법을 제안하는 공론의 장입니다. ‘신예기 2019’ 첫 회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 종가의 특별한 설 차례와 제사 풍경을 소개합니다. 》 22일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인 이창수 씨(54)와 함께 경북 안동시 고성 이씨 사당이 있는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을 찾았다. 1519년 세워져 500년 전통을 간직한 임청각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기 전까지 부유한 유림 종가였다. 그래서 1년 내내 조상을 모시는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청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은 현재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나 감실(龕室·신주를 모시는 곳) 등 일반적인 제례(祭禮) 도구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 씨는 “고조할아버지(석주)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며 고향 땅에 신주를 묻었다”며 “지금은 신주 없이 사진만으로 조상을 모신다”고 말했다. 임청각에는 석주가 1911년 만주로 떠나기 직전 쓴 ‘거국음(去國吟)’이라는 시가 걸려 있다. ‘보배로운 우리 강산 삼천리, 조선 500년간 문화를 꽃피웠네. (중략) 고향 동산 근심하지 말거라. 태평한 훗날 다시 돌아와 머무르리다’라는 내용으로 구국을 위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조선 후기 임청각 종가의 분재기(分財記·가족이나 친척에게 나눠줄 재산을 기록한 문서)에는 노비만 무려 408명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석주는 1911년 1월 “너희도 이제 독립군이다”라는 말과 함께 안동에서 처음으로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이들을 해방시켰다. 처분한 모든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쓰면서 제사는 자연스럽게 간소해졌다. 이 씨는 “독립운동 이전에도 임청각 종가의 제사상은 매우 간소했다”며 1744년 작성된 ‘고성 이씨 가제정식(家祭定式)’을 보여줬다. 집안의 제사 매뉴얼인 이 문서에는 ‘제사상은 간소하게 차릴 것’, ‘윤회봉사(형제간에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것)를 할 것’, ‘적서(嫡庶)의 차별 없이 모두 참여시킬 것’ 등 지금 봐도 혁신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임청각은 아들이 없는 경우 외손이 제사를 지낸 전통도 있다. 이 씨의 20대조 6형제 중 다섯째인 ‘이고’라는 분은 자손이 딸 하나밖에 없었는데, 생을 마치고 사위인 서씨 집안에 재산을 물려줬고 이후 외손자가 제사를 지냈다. 이 씨는 “지금도 서씨 가문에서 외손봉사로 ‘이고’의 제사를 지낸다”며 “외가든 서자든 누가 제사를 지내든 각 집안의 예법인 ‘가가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제사 때문에 식구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는 것이야말로 임청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며 “제삿날에는 제 여동생들도 모두 모여 며느리들과 똑같이 일한다”고 말했다. 광복절인 8월 15일 4대조의 제사를 모두 모아 지내는 임청각 종가는 낮 12시 제사를 마치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비빔밥을 먹는 것으로 제사를 마친다. 이런 원칙은 설 차례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씨는 “제가 사는 서울의 아파트는 좁아 음식을 올릴 상을 제대로 펼 수도 없다”며 “가로 60cm, 세로 40cm 크기의 상 4개를 붙여 한꺼번에 차례를 지낸다. 차례 음식은 과일 4개랑 포, 떡국까지 합해 10개가 채 안 된다”고 전했다. 이 씨는 “지난해 추석 신예기 기사에서 퇴계 이황의 종가가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는데 많은 안동 유림 종가들이 그렇다”며 “우리도 추석엔 차례 없이 처갓집에 가서 처가 식구들과 여행도 하며 가족애를 다진다”고 말했다.안동=유원모 onemore@donga.com / 임우선 기자}

#사례1.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모 씨는 자녀가 만 4세가 되던 해부터 과학고·영재학교 입학을 준비했다. 의대와 명문 이공계대 진학을 위한 ‘직선 코스’라고 봤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각종 놀이와 사고력 수학 프로그램을 접하게 했고, 7세부터는 연산학원 등 3, 4개의 수학학원을 보내 본격적으로 초등 수학을 선행 교육했다. 앞으로는 계속 선행학습을 하면서 영재원 입학과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출전 준비를 할 계획이다. 김 씨는 “6학년까지 고1 수학을 떼야 올림피아드 출전을 바라볼 수 있다”며 “사교육 인프라가 갖춰진 강남이 아니면 준비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사례2. 서울 송파구에서 중2 자녀를 키우는 박모 씨도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박 씨는 당초 자사고 진학을 노려 왔지만 현 정부 들어 폐지 움직임이 가속화되자 유일한 ‘무풍지대’인 과학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지금까지 ‘수학의 정석’을 세 번 정도 돌렸는데 이 정도는 다들 한다”며 “자유학기제라 내신 부담이 없는 중1 때 집중적으로 선행이 이뤄진다”고 전했다. 평소 수학·과학 학원비는 월 150만 원이지만 수업 시간이 길어지는 방학 땐 300만 원 이상이 든다. 최근 우수한 교육과 대입 실적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과학고·영재학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올해 외고 경쟁률은 대부분 2 대 1 미만이었던 반면 전국 20개 과학고·영재학교 입학경쟁률은 3.54 대 1로 전년도(3.09 대 1)보다 일제히 상승했다. 이에 동아일보는 종로학원하늘교육과 함께 서울지역 25개 자치구별 중학교 졸업생들의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실적을 전수 분석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학교별 진학 통계를 대상으로 했다. 분석 결과 이른바 강남, 목동 등 교육특구와 다른 지역 간의 격차가 최대 11.5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계에서는 “중학교의 공교육이 대동소이한 상황에서 지역별 격차가 이 정도로 나타난 것은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에 사교육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방증”이란 평가가 나왔다.○ 강남구-중구 진학 실적 격차 11.5배 지난 5년간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46만3319명의 고교 진학 상황을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2574명(0.56%)이 과학고·영재학교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고·영재학교에 가장 많이 진학한 곳은 졸업생 3만246명 중 382명이 진학한 강남구였다. 1만 명당 126명이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서초구로 1만 명당 99명이 과학고·영재학교에 진학했다. 3위 양천구는 1만 명당 81명이 진학했다. 5년간 200명 넘는 학생이 과학고·영재학교에 진학한 서울지역 자치구는 강남구 외에 양천구(286명) 노원구(285명) 송파구(255명) 서초구(216명) 등 5곳뿐이었다. 5년간 가장 많은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자가 나온 상위 20개교를 뽑아본 결과 절반이 강남·양천구에 속했다. 반면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생이 가장 적은 곳은 중구로 졸업생 5268명 중 단 6명(1만 명당 으로 환산한 경우 11명 진학)만이 합격했다. 1위인 강남구와 1만 명당 합격자 비율로는 11.5배, 절대 수치로는 64배 차이가 났다. 중구 다음으로 진학생 비율이 낮은 곳은 동대문구(1만 명당 20명 진학), 중랑구(1만 명당 21명 진학), 금천구(1만 명당 22명 진학) 순이었다.○ 극복 안 되는 지역 간 사교육 격차 전문가들은 지역별로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격차가 생기는 가장 큰 원인으로 △천양지차인 사교육 인프라 △입시 정보 비대칭 △동료 효과의 부재 등을 꼽았다. 과학고 입시학원들이 경제력이 높은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데다 관련 교육과 정보까지 이곳으로 쏠리다 보니 다른 지역은 지원할 엄두조차 못 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환철 수학교육개발실장은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실적이 낮은 지역에도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다만 중학교 공교육이 수준별 교육을 못하게 돼 있다 보니 (사교육 뒷받침이 안 되는 지역은) 적절한 발굴과 교육, 입시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입시컨설턴트 김은실 씨는 “수학올림피아드 준비 없이 서울지역 과학고에 붙는 학생은 0명이라고 봐야 한다”며 “전문 사교육 지원 없이는 도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과학고·영재학교 입시가 면접 위주의 ‘미니 학종(학생부종합전형)’화되면서 중학교 때부터 내신뿐 아니라 각종 스펙 관리를 해야 하는 것도 비교육특구 학교에 불리한 요인이란 분석도 나온다. 입시멘토업체 대표인 이미애 씨는 “자기소개서에 교내활동이나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공부한 탐구보고서를 담아야 한다”며 “학교에 전통적 과학동아리가 있는지, 4∼5명 규모로 자율동아리를 만들 수 있는지, 학교 선생님이 어느 정도 지원해주는지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에서 과학고·영재학교 진학 실적이 가장 낮은 중구에서는 수년 전만 해도 학교별로 최상위권 4, 5명 정도가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구의 A중학교 교감은 “학생 수가 적으니 사교육 시장도 작고, 우수한 학생끼리 상호 자극을 받기도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그간 지역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고 선발전형을 여러 번 바꿨음에도 격차는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지역의 우수 학생들을 각 지역에 고르게 머물게 할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임우선 imsun@donga.com·김수연 기자}

“아니, 그래도 명색이 정부가 실시하는 설문조사 아닙니까. 그런데 ‘빽’도 안 되더라고요. ‘빽’도.” 지난해 여름쯤이다. 과학계 인사로부터 갑자기 “‘빽’도 안 됐다”고 외치는 전화가 걸려왔다. 들어보니 당시 교육부가 대입제도 개편과 관련해 교육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던 온라인 설문조사를 두고 하는 얘기였다. 그는 “설문 과정에서 앞 문항 응답을 수정하려 해도 시스템 설계가 잘못돼 ‘빽(back·뒤로 가기)’이 안 되더라”며 “‘제출’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수정도 안 되게 만든 설문지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교육부의 정보기술(IT) 역량에 의구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에피소드였다. 머지않아 두 번째 사건이 생겼다. 이번에도 설문조사가 문제였다. 작년 6월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를 국민참여 정책숙려제의 첫 과제로 정하고 1만 명 규모의 모니터링단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을 했다. 그런데 진행 과정에서 한 사람이 횟수와 상관없이 여러 번 중복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설문 결과 자체가 왜곡될 수 있는 중대한 시스템 결함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교육부는 “(오류를 알았지만) 시간이 없어 진행했다”며 “모니터링단 명단이 있으니 응답자의 신상 내용을 하나하나 비교해 중복 참여는 걸러내겠다”고 해명했다. 시간이 없다면서 어느 세월에 로그기록 1만 개를 비교할지…. 애초에 시스템을 제대로 짰으면 안 해도 됐을 ‘삽질’이었다. 교육부의 세 번째 ‘IT 구멍’은 기자가 직접 체험했다. 지난해 11월 유치원 지원을 위해 열린 ‘처음학교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하루 종일 먹통인 사이트를 목격한 것이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친절하게도 ‘서비스 접속 대기 중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예상 대기시간 13분 25초, 고객님 앞에 6436명 대기 중’ 같은 ‘정확한’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두 눈을 부릅뜨고 십수 분을 기다리니 ‘이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새하얀 화면만 나왔다. 안 열릴 거면 기다리게 하지나 말든지…. 간장 종지만 한 교육부의 서버 용량에 결국 이날 전국 학부모의 인내심은 터져버렸다.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달 들어서는 교육당국 홈페이지에서 중등교사 임용시험 필기시험 점수와 등수 정보가 사전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이트에 접속해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비공개 정보인 과목별 점수와 등수를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사이트 관리를 맡은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 “실수”라며 “문제를 바로잡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 후에도 여전히 정보가 노출되는 사실이 알려져 재차 망신을 당했다. 교육부가 이 모양인데 교육청이라고 잘 돌아갈까. 지난주 세종시에서는 교육청 시스템 오류로 109명에 이르는 고교 신입생이 이중 배정되는 사고가 났다. 재배정 과정에서 학생 414명의 배정 결과가 달라졌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지금도 반발 중이다. 학생들의 학교 배정부터 학교 추첨, 성적 산정까지…. 사실상 모든 교육정보가 전산 처리되는 시대지만 교육당국의 IT 시스템은 용량, 기술, 관리 등 모든 면이 허술해 보인다. 반복되는 사고를 보는 국민의 불안과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IT 사고는 불거지기 전엔 알기 어려워 더욱 그렇다. 옛 어른들이 그랬다.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다고. 잦은방귀 같은 사고를 눈여겨보고 교육계 IT 관리 전반을 되짚어야 한다. 그래야 더 험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수도권 상업고 3학년 이모 양은 다음 달 졸업을 맞는 게 두렵다. 지난해 4월부터 20여 곳에 취업 원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졸업한 선배들은 전교생 320명 중 200명 넘게 취업했는데 올해는 120명 정도밖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선배들을 뽑은 기업 중 상당수가 올해는 아예 채용 공고조차 내지 않았다. 이 양은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기업들이 신입을 뽑을 여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각종 취업 통계는 학력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사회로 진입하려는 모든 취업계층이 사상 유례없는 ‘취업 한파’를 겪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교육통계에 따르면 특성화고 취업률은 65.1%로 전년도(74.9%)보다 9.8%포인트나 급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64.7%)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대학 졸업자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교육부의 ‘2017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전문대·일반대·대학원 졸업자의 취업률이 일제히 하락했다. 전문대(69.8%)와 대학원(77.7%) 취업률은 3년간 이어져온 상승세가 꺾였고, 일반대 취업률(62.6%)은 2011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았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2년째 취업에 도전하고 있는 양모 씨도 40군데에 취업 원서를 냈지만 아직까지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그는 “경제가 나빠져 올해는 사람을 더 안 뽑을까 봐 너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 4년제 주요 대학을 졸업한 이모 씨는 “좋은 학점에 높은 토익 점수, 대기업 공모전 다수 수상, 인턴 경력까지 웬만한 건 다 갖췄는데도 면접마다 ‘올탈(전부 탈락)’”이라며 “미래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2014년 국내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유학을 다녀온 신모 씨는 귀국 후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3개월 동안 9곳에 지원했는데 모두 떨어져 3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연구소 보조로 일하고 있다”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대학원 진학 대신 그나마 취업이 나았던 2014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2019년 대한민국의 끝 모를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은 묻는다. ‘우리는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에 진학해 무엇을 공부하든 도통 열리지 않는 취업시장 앞에서 청춘들은 속수무책인 것이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간 실업 상태에 있거나 일거리를 찾지 않는 인구는 250만 명을 넘어섰다.임우선 imsun@donga.com·최예나·최혜령 기자}

10일자로 전국 초등학교의 2019학년도 1학년 예비소집이 종료된다. 이제 초등학교 입학까지 남은 날짜는 50여 일. 이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 아이들의 원만한 초등생활을 도울 수 있을까? 교사들은 학업 준비보다 생활 습관 잡기,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긍정적 기대 갖기 등 생활적인 요소를 챙겨 보길 권한다. 남은 시간 관심을 기울일 주요 사항을 알아보자.● 늦잠 자는 아이라면 “7시 반에 깨워요” 사립초 등 일부 학교를 제외하면 요즘 초등학교의 등교시간은 대부분 오전 9시까지다. 수업 시작 전 차분히 학습 준비를 하고 친구들과도 대화하려면 적어도 8시 30∼40분에는 학교에 도착하는 게 좋다. 준비 시간을 1시간 정도 잡으면 7시 반 전후로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이 시간보다 기상 시간이 늦는 아이라면 입학 때까지 매일 조금씩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일찍 잠들 수 있도록 취침 시간을 앞당겨 정해 두는 것도 좋다.● 책가방 챙겨 보고 정리정돈 연습을 학교에 입학하면 책과 준비물, 알림장 등 스스로 챙겨야 할 것이 늘어난다. 문제는 초1 아이들에게는 가방을 싸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미리 책가방을 구입해 책과 필통을 넣을 자리를 정해주고 선생님의 유인물을 챙겨올 얇은 플라스틱 파일을 넣어주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추후 학교에서 알려주는 준비물을 구입한 뒤에는 색연필 한 자루까지 모든 물건에 이름을 적도록 한다.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강조한다. 학교 교실에 있는 개인 사물함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도록 습관을 잡아줘야 수업시간에 혼란을 겪지 않는다.● 엄마·아빠와 미리 걸어 보는 안전한 등하굣길 입학 전 엄마·아빠 등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학교 가는 길과 집에 오는 길을 걸어 보면 좋다. 어느 길이 안전한지 알려주고, 위험요인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오가는 길에 생길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눠 본다. 학교로 가는 길이 멀다면 길에 있는 큰 건물이나 표지판을 반복해서 인지시켜 아이가 길 찾기에 익숙해지도록 돕는다.● 마음 편히 화장실 가기 연습 초1의 경우 40분 수업을 한 뒤 10분간 쉬는 시간을 갖는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때와는 달리 정해진 쉬는 시간에 용변을 해결해야 하다 보니 배변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많다. 긴 줄을 서 기다리는데 스트레스를 호소하거나 제때 용변을 해결하지 못해 수업 중 실수하는 상황도 생긴다. 아이들이 되도록 쉬는 시간 중 용변을 해결하되 급할 경우 부끄러워하지 말고 손을 들어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도록 일러주면 좋다.또 초등학교 화장실은 요즘 아이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재래식 변기가 있는 곳도 다수다. 양변기에 익숙하다 보니 쪼그려 앉는 데 불편을 느끼거나 발이 빠지기도 한다. 방향을 바꿔 앉거나 물 내리는 법을 모를 수 있으므로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다. 휴지와 물티슈 등을 사용해 스스로 뒤처리를 할 수 있게 미리 연습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자아이들의 경우 치마나 딱 붙는 바지보다는 쉽게 내리고 올릴 수 있는 편안한 옷을 입히는 것이 좋다 ● 젓가락질부터 우유팩 따기까지 급식 적응하기 학교 급식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때보다 매운 음식이 나올 수 있다. 김치 등을 남기거나 편식하지 않도록 집에서 미리 지도한다. 학교에서는 쇠젓가락을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젓가락질 연습도 해보도록 한다.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나 요구르트 등을 스스로 딸 수 있도록 우유팩 입구 벌려 보기, 요구르트 뚜껑 따기도 시켜 본다. 식사를 빨리 마친 아이들은 남는 점심시간에 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친구들과 비슷한 속도로 밥을 먹으면 좋다.●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예절 일러두기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면 먼저 소리 내 인사할 수 있도록 반복해 지도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때보다 많은 친구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므로 나와 다른 친구를 받아들이고 서로 배려하도록 가르친다. 최근에는 여러 학교에서 크고 작은 학교 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친구를 고의로 소외시키거나 놀리는 것, 괴롭히는 것은 폭력임을 분명하게 일러줘야 한다. 평소 짓궂은 표현이나 욕을 사용하는 아이라면 입학 전 반드시 엄격하게 가르쳐 습관을 고친다. 평소 화가 나면 몸부터 반응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소극적인 아이일 경우 친구를 때리거나 가만히 참지 말고 자신의 감정 표현을 ‘올바른 언어’로 분명하게 표현하게 일러준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