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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프랑크(1822~1890)를 ‘대중적’인 작곡가라고는 말하기 힘들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성가곡 ‘생명의 양식’으로 주로 기억되죠. 하지만 연주자들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곡이 있습니다. 64세 때인 1886년에 쓴 단 한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입니다. 프랑크는 이 소나타 A장조를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음반도 많이 나와 있고 음악애호가들도 제법 좋아하는 곡이지만 연주자들이 이 곡을 더 사랑하는 편입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만든 곡인데, 첼리스트와 플루티스트도 원래 첼로나 플루트를 위해 쓰인 것처럼 즐겨 연주합니다. 심지어 색소폰이나 튜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악기 연주자들이 연주한 이 곡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연주자들이 유독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곡에는 프랑크가 가진 고유한 장기들이 꼭꼭 다지듯 집약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만 들자면, 순환형식, 돌림노래, 잦은 조바꿈을 들 수 있겠습니다. 순환형식이란, 앞의 악장들에 나왔던 선율이나 동기(모티브)를 뒤의 악장들에 다시 불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약간 바뀌어서 쓰거나, 거의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죠. 실은 베를리오즈나 리스트 등 먼저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의 전통을 계승한 것입니다. 순환형식을 사용하면, 처음엔 불분명했던 것들이 뒤로 갈수록 모이면서 통일되고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이 곡의 마지막 악장에서는 앞의 악장들에서 제시된 것들이 새로운 질서를 이루면서 지혜를 전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같은 시대에 나온 다른 작곡가들의 소나타에서 느끼기 힘든 매력입니다. 돌림노래는 설명하기 쉽습니다. 어릴 때 많이 불러봤죠? ‘오리는 꽥꽥’ ‘다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같은 노래를 여러 명이 시간차를 두고 시작하면 화음을 이루면서 듣기 좋은 노래가 되죠. 이른바 ‘카논’이라고 하는 기법의 일종인데, 카논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카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소나타 A장조의 마지막 4악장에서 프랑크는 이 돌림노래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매우 아름다운 효과를 냅니다. 피아노가 앞서가고, 바이올린이 쫓아갑니다. 이 곡의 마지막 매력으로는 프랑크 특유의 잦은 조바꿈(전조·轉調)을 들 수 있습니다. 프랑크는 섬세한 조바꿈을 통해 환상적인 효과를 내는데 달인이었습니다. 제자였던 작곡가 댕디나 뒤파르크에 따르면, 프랑크는 제자들이 제출한 작품에 몇 줄 동안 조바꿈이 나오지 않으면 작품이 단조롭다며 바로 주의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유로운 조바꿈 때문에, 연주자들은 프랑크의 곡을 연주할 때마다 마치 공중에 뜬 사다리를 휙휙 갈아타는 듯이 자유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한 플루티스트는 이런 조바꿈이 마치 프리즘으로 분할한 빛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2월 4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리는 ‘아름다운 목요일’ 콘서트에서는 2018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 이듬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9세 나이로 3위에 오른 뒤 주목받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이 피아니스트 박영성과 프랑크 소나타 A장조를 연주합니다. 전반부에서는 모차르트와 그리그의 소나타를 연주하고, 프랑크에게서 소나타를 선물 받은 이자이의 곡 ‘슬픈 시’도 소개합니다.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바이올린은 동양 선율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악기죠. 우리 해금이나 중국 얼후(二胡) 소리와도 닮은 점이 많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28)이 ‘아시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음 달 2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일리야 라시코프스키 피아노 반주로 중국 작곡가 허잔하오와 천강이 쓴 ‘바이올린 협주곡-나비 연인’과 윤이상의 1963년 곡 ‘가사’ 등을 연주한다. ‘나비 연인’은 그가 21세 때인 2014년 중국 국제 바이올린콩쿠르에서 1위 수상 당시 연주한 곡이며 ‘가사’는 3년 뒤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했을 때 연주한 작품이다. ‘나비 연인’은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알려진 ‘양산백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台)’ 이야기를 음악으로 엮은 작품.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남녀가 나비로 환생한다는 줄거리를 담았다. “선율이 5음 음계에 기초해 동양적이지만 서양 화성(和聲)을 담고 있어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죠. 처음 악보를 접할 때부터 표현하는 데 어렵지 않았어요.” 그는 이후 상하이 콩쿠르에서도 이 곡을 잘 해석한 연주자에게 주는 특별상을 받았다. ‘정서가 비슷한 동양인으로서 반사이익을 본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중국 연주자가 가장 많이 참가하는 콩쿠르들이었다”는 반박(?)이 돌아왔다. 윤이상의 ‘가사’는 한국 고유의 정서를 표현했지만 무조(無調)주의적 12음계에 기초한 작품이다. “화성을 쌓는 전통적 서양음악과 달리 각각의 음을 변화시키며 흐름을 만드는 곡이죠. 그 패턴을 이해하면 동양적인 세계가 보입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노르웨이 민요에 바탕을 둔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2번과 헝가리 음계에 기초한 버르토크의 소나타 2번도 연주한다. 그는 “유럽의 민속음악에서도 장식음 등에서 아시아 음악과 닮은 요소들을 자주 발견한다”고 말했다. 미국 커티스음악원과 뉴잉글랜드음악원(NEC)을 졸업하고 NEC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앞으로도 바이올린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 음악이 서로 소통하게 하는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3만∼5만 원.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조성진(27)이 처음 발견된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을 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세계 초연한다. 조성진의 해외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프리모 아티스트에 따르면 조성진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개최되는 ‘디지털 모차르트 위크’의 일환으로 모차르트의 265회 생일인 27일 오후 6시(현지 시간) 모차르테움 대극장에서 세계 초연곡인 ‘알레그로 D장조 K 626b/16’을 연주할 예정이다. 모차르테움 음대 교수인 음악학자 울리히 라이징거가 해설을 맡는다. 연주는 온라인 유료 클래식 음악 채널 피델리오(myfidelio.at)와 메디치 TV(medici.tv)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모차르테움 재단은 이 작품이 1분 34초 길이의 춤곡이며, 모차르트가 생전에 피아노곡 주문이 들어오면 완성하기 위해 악보로 적어둔 미완성 작품이라고 밝혔다. 모차르트가 17세 때인 1773년 초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단은 최근 개인 소유였던 악보 모음을 구입한 뒤 분류 과정에서 이 작품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초 이 작품은 미국 피아니스트 로버트 레빈이 연주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 때문에 유럽에서 활동 중인 조성진이 연주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모차르트의 음악 유산을 유지 관리하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재단은 매년 1월에 모차르트 생일을 기념해 ‘모차르트 위크’ 축제를 열어왔으나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일정을 축소하고 23일부터 31일까지 무관중으로 축제를 개최한다. 올해 온라인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조성진 콘서트에서는 새로 발견된 곡 외에 피아노 소나타 12번과 ‘핌피넬라’ K 33b, 알레그로 C장조 등 기존에 알려진 모차르트 작품 세 곡도 연주된다. 조성진은 2018년 모차르트 소나타 3번과 12번, 피아노협주곡 20번을 담은 앨범을 도이체 그라모폰(DG)레이블로 발매하며 정상급 모차르트 해석가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 앨범은 ‘우아하고 신중하게 계산되어 있으며 고른 연주’(BBC 뮤직 매거진) 등의 평가를 받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늘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제 왈츠’입니다. 먼저 짧게 들려드릴게요.” 인공지능(AI) 스피커가 클래식 초보자들을 위해 매일 한 곡씩, 엄밀히 말해 두 곡씩의 추천 음악을 소개한다. 디토디지털컴퍼니와 서울대 UX랩(사용자경험 연구실)이 내놓은 ‘클래식 메이트’다. 구글 음성인식 서비스인 ‘구글 어시스턴트’가 있는 스마트 기기에서 사용 가능하다. 가지고 있는 ‘구글 홈 미니 스피커’로 체험해 보기로 했다. “오케이 구글, 클래식 메이트 불러줘”라고 지시를 내렸다. 바로 음악을 소개하지는 않았다. “연결이 필요합니다. 새 클래식 메이트 계정을 만드시겠어요?”라고 물어온다. 정보이용 동의 등 간단한 절차를 마친 뒤 다시 불러냈다. “이번에는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3악장입니다. 먼저 짧게 들려드릴게요.” 쿵, 쿵, 치는 시작 부분이 흘러나오더니 다시 음성이 나왔다. “어때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죠? 간단한 곡 설명을 원하면 알려드려요. 설명해 드릴까요?” “예”라고 대답했다. “첼로 협주곡의 대표 레퍼토리입니다. 드보르자크 고향이 체코입니다. 곡마다 보헤미안 느낌이 물씬 풍기곤 해요….” 다섯 개 문장으로 간략한 설명이 이어진 뒤 3악장이 계속 흘러나오고 장대한 마무리가 지어졌다.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3악장, 괜찮았죠? 이어서 어울리는 음악 들려드릴까요? 슈만의 첼로 협주곡 3악장 들려드릴게요. 오늘은 토니가 꼽은 첼로 협주곡의 날이에요.” 아, 이름이 토니구나. 리드미컬하면서도 우수에 찬 슈만의 협주곡도 한 악장 전체가 연주됐다. “오늘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아카이브와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만의 클래식 메이트 토니였습니다. 안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 ‘토니’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의 목소리를 학습시켜 합성한 것. 종종 ‘간단한 곡 설명을/ 원하면 알려드려요’처럼 끊는 부분이나 억양(인토네이션)이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었다. 다음 날 다시 토니를 불러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제 왈츠’에 이어 어울리는 곡으로 아버지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려주었다. ‘마음껏 박수치며 들어보라’는 권고도 곁들여졌다. 지휘자나 협연자에 대한 정보는 들려주지 않아 아쉬웠다. 토니 자신의 말처럼 ‘간단한 곡 설명’을 들려주었지만 ‘더 상세한 곡 설명’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싶었다. 하루 한 곡만 되는 건 아니었다. 같은 날 다시 불러내니 새로운 곡을 안내해 주었다. 11일 시작된 이 서비스는 4월 20일까지 100일 동안 무료로 제공된다. 디토디지털컴퍼니 측은 “이번 서비스가 종료된 뒤에는 ‘클래식 메이트 시즌2’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지난해는 공연 날짜를 확보하기조차 어려워 그만하라는 뜻인가 싶었습니다. 단원들이 만류해 마음을 다잡았죠. 허허.” 누구나 힘들었지만 2020년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와 음악감독 김민(79·서울대 명예교수)에게 유독 가혹했다. 핀란드 지휘자 랄프 고토니의 지휘로 10회를 예정한 모차르트 교향곡 46곡 전곡 연주는 두 번을 끝으로 중단됐다. 해외 초청연주도 세 차례 모두 취소됐다. 올해는 2월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신년음악회로 새 시작을 꿈꾼다. 올해부터 KCO 수석객원지휘자로 활동하는 최수열(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지휘로 베베른 ‘느린 악장’, 쇤베르크 ‘정화된 밤’, 에스더 유가 협연하는 바버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수석객원지휘자 임명은 6년 전 기존의 ‘서울 바로크 앙상블’을 KCO로 바꾼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50년 동안 현악 단원들이 ‘서울바로크합주단’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2015년에 관악 연주자 8명을 영입해 ‘실내 오케스트라’로 확대했죠. 앞으로는 현악 위주로 연주할 때는 음악감독인 내가 이끌고, 관악기가 함께하는 편성은 수석객원지휘자가 지휘하는 투톱 체제로 꾸려나갑니다.” 이틀 뒤인 7일에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그가 이끄는 하이든 스페셜 콘서트를 갖는다. 하이든의 교향곡 6, 39번과 협주곡들을 연주한다. 이틀 간격으로 투톱 체제의 전모를 선보이는 셈이다. “최수열 지휘자는 지난 3년 동안 객원지휘에서 단원들과 교감이 좋고 음악에 대한 지향이 비슷했어요. KCO는 앞으로 청중이 비교적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현대곡들을 자주 연주하고자 하는데, 그런 쪽에 역량을 보여 온 점도 잘 맞았죠.” KCO는 지난해 11월부터 1년간 서울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상주단체 개념)로도 활동 중이다. 3월 11일 피아졸라 콘서트, 7월 2일 하이든과 본윌리엄스, 차이콥스키 곡을 연주하는 콘서트가 예정돼 있다. 그는 “롯데콘서트홀은 큰 홀이지만 대부분의 좌석에서 섬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공연장 측이 좋은 제안을 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단한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시리즈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종식되면 재개하기로 지휘자 고토니와 합의했다. 시리즈가 끝나면 음반도 발매할 계획이다. “코로나19가 물러간 뒤 음악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겠죠. 상처가 크게 남겠지만 새로운 가능성들도 열릴 겁니다.” 그는 변화 속에서 ‘김민 이후 KCO 100년을 이끌어나갈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가 복잡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5일 콘서트 2만∼8만 원, 7일 2만∼6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비행택시로 출퇴근하고 벽걸이 TV가 거실을 영화관으로 만들고, 무선으로 화상통화를 하고, 알약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반세기 전 흔히 보던 미래 예측 기사다. 일부는 실현됐지만 알약이 식사를 대신하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식사, 음식, 식재료와 그 생산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저자는 11개국을 다니며 세계 식량 시스템에 일어나는 변화를 살핀 뒤 이를 묶어 냈다. 인류의 곳간에 가장 큰 위협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10년마다 세계 농작물 수확량이 2∼6%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식량 생산 과정에서도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5분의 1이 발생한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가 관찰한 변화들은 대부분 실험적이거나 초기 단계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가능성은 고무적이다. 제초 로봇은 제초제 사용을 기존의 10분의 1 이하로 줄여준다. 수직 공중재배 농장은 한계와 위험이 있다. 사소한 고장에도 작물을 망칠 수 있고, 에너지 소비도 큰 편이다. 하지만 수확물의 대부분을 버리지 않고 팔 수 있다. 예전에 채소 재배에 쓰던 도시 교외의 땅들을 자연에 되돌려줄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점이다. 유전자변형작물(GMO)을 다룬 장에서 저자는 유독 조심스럽다. 가장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논쟁도 거센 분야다. 거대 기업 몬산토를 비롯한 GMO의 대변자들이 새로운 시장을 얻어 통제하려 한다는 ‘농업 제국주의’ 관점의 비판도 가감 없이 소개한다. 그러나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력 높은 GMO 도입은 가난한 신흥국들에선 선택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GMO가 살충제 사용량을 줄이는 건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GMO 세균으로 만든, 인간에게 무해한 살충제가 기존 농약을 대체할 수도 있다. 저자는 기술을 무작정 독(毒)이나 만병통치약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과거의 경험과 발달하는 기술 양쪽에서 지혜를 빌리자고 제안한다. 원제는 ‘The fate of Food(식량의 운명)’이다. 번역서 제목의 ‘식량위기’는 책 앞부분에, 원제에 담긴 미래상은 뒷부분에 주로 담겼다. 미래 음식을 다룬 13장은 많은 부분이 이미 뉴스를 통해 전해진 내용이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콩의 유전자를 삽입한 효모로 헤모글로빈(동물 피의 주성분)을 만들어 합성 식물고기와 결합하면 그럴싸한 고기 맛을 재현할 수 있다. 세포 배양을 통한 고기 생산이 저렴해지는 날에는 이조차 필요 없어질 것이다. 곤충이 미래 식량의 주역이 된다면? 곤충은 소고기보다 단백질이 많고 지방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곤충 기르기는 소 사육에 비해 물을 1000분의 1밖에 사용하지 않고 온실가스는 1%만 배출한다. 플랑크톤도 지구상에 막대한 양이 있다. 특유의 냄새가 불만이지만 냄새가 없는 종만 다량 증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들이 언젠가는 인류의 단백질 공급에 많은 부분을 떠안을 것으로 저자는 내다본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영국의 정상급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66·사진)이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 수석지휘자로 임명돼 2023년 활동을 시작한다고 11일 독일과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통상 세계 주요 교향악단들은 임기 시작 한두 해 전 수석지휘자 임명을 공식화한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수석지휘자였던 마리스 얀손스가 2019년 심장병으로 타계한 뒤 수석지휘자가 공석인 상태로 활동해 왔다. 래틀은 2002∼2018년 세계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지냈으며, 2017년부터는 영국을 대표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재직해왔다. 이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래틀의 음악감독 임기를 2023년까지 연장하며, 이후 래틀은 명예지휘자(Conductor Emeritus)로 활동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뉴욕타임스는 래틀이 2년 뒤 독일에 자리 잡기로 마음먹은 데는 영국이 유럽연합(EU)과 결별한 ‘브렉시트’가 결정적이었다고 보도했다. 래틀의 부인인 체코 출신 메조소프라노 마그달레나 코제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베를린 근교에 거주 중이며, 세 자녀는 독일 학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튜브 링크: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 21일 성시연 지휘로 정기연주회 ‘하이든과 쇼스타코비치’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합니다. 하이든 교향곡 44번 ‘슬픔’과 루토스와프스키 ‘장송음악’, 쇼스타코비치 ‘실내 교향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처음엔 ‘슬픔 교향곡’ 뒤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장송 미사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무대 위 거리 두기가 용이한 곡들로 바뀌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실내 교향곡은 작곡가가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한다’고 말한 곡입니다. 성시연 지휘자는 이 연주회가 ‘코로나19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콘서트’라고 밝혔습니다. 눈길이 가는 작품은 첫 곡인 하이든(사진)의 교향곡 44번 ‘슬픔’입니다. 독일어로 ‘Trauer’인데, 슬픔 외에 ‘애도’ ‘장송’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전해지기로는 하이든이 자기 장례식 때 이 곡의 느린 3악장을 연주해 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이든이 슬픈 음악을? 그는 명랑하고 밝은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우등생’ 느낌을 전해주는 그의 트럼펫 협주곡이 대표적이죠. 성품도 온화해서 생전 별명은 ‘파파(아빠) 하이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이든도 슬픈 음악을 썼습니다. 슬픔 교향곡 다음의 45번 ‘고별’ 교향곡도 그렇습니다. 하이든은 거의 평생을 에스테르하지 후작이라는 귀족의 궁정 음악가로 일했습니다. 후작이 오랫동안 궁정 오케스트라에 휴가를 주지 않아 단원들이 가족들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 하이든이 이 고별 교향곡을 썼습니다. 연주를 마친 단원들이 하나둘씩 무대 뒤로 나가버리고,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주자 두 사람만 남습니다. 이걸 본 후작이 “우리도 가야겠네. 알았어. 휴가들 가게”라고 영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얘기인즉 유쾌하지만 이 고별 교향곡 마지막 악장도 비장할 정도로 슬프게 시작해서 조용히 끝나는 악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은 당대의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질풍노도 양식’,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직역하면 ‘폭풍과 충동’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본디는 같은 시대 독일에서 일어난 문학운동의 이름이었습니다. 주인공들은 뜨거운, 때론 미치광이 같은 열정에 사로잡힌 인물들이죠. 실러의 희곡 ‘도둑 떼(Die R¨auber)’나 당대를 강타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이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음악에서의 ‘슈투름 운트 드랑’도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었습니다. 역시 뜨겁고 광기 같은 열정이나 슬픔을 표현했죠. 단조 선율을 선호했고, 선율이 큰 폭으로 건너뛰고, 급박한 리듬을 강조했습니다. 하이든뿐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자신을 찌르는 장면의 비장한 음악은 이 양식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 g단조입니다. 물론 슈투름 운트 드랑이라는 유행이 없었어도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슬픈 음악들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사의 천재들도 시대의 산물이며, 이들의 천부적인 재능도 적합한 시대와 만나 조화를 이뤘을 때 더욱 빛났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하이든의 장례식에서는 교향곡 44번 ‘슬픔’ 3악장이 연주되었을까요? 그런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이든의 장례식을 함께한 음악은 그의 동료이자 친구였고, 경쟁자였고, 서로 존경을 표현하기 주저하지 않았던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 21일 성시연 지휘로 정기연주회 ‘하이든과 쇼스타코비치’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합니다. 하이든 교향곡 44번 ‘슬픔’과 루토스와프스키 ‘장송음악’, 쇼스타코비치 ‘실내 교향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처음엔 ‘슬픔 교향곡’ 뒤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장송 미사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무대 위 거리두기가 용이한 곡들로 바뀌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실내 교향곡은 작곡가가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한다’고 말한 곡입니다. 성시연 지휘자는 이 연주회가 ‘코로나19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콘서트’라고 밝혔습니다. 눈길이 가는 작품은 첫곡인 하이든의 교향곡 44번 ‘슬픔’입니다. 독일어로 ‘Trauer’인데, 슬픔 외에 애도, 장송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전해지기로는 하이든이 자기 장례식 때 이 곡의 느린 3악장을 연주해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이든이 슬픈 음악을? 그는 명랑하고 밝은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왔습니다. ‘우등생’ 느낌을 전해주는 그의 트럼펫협주곡이 대표적이죠. 성품도 온화했서 생전 별명은 ‘파파(아빠) 하이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이든도 슬픈 음악을 썼습니다. 슬픔 교향곡 다음의 45번 ‘고별’ 교향곡도 그렇습니다. 하이든은 거의 평생을 에스테르하지 후작이라는 귀족의 궁정 음악가로 일했습니다. 어느 날 후작이 오래 궁정 오케스트라에 휴가를 안 줘서 단원들이 가족들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 하이든이 이 고별 교향곡을 썼습니다. 연주를 마친 단원들이 하나둘 씩 무대 뒤로 나가버리고,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주자 두 사람만 남습니다. 이걸 본 후작이 “우리도 가야겠네. 알았어. 휴가들 가게”라고 영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얘기인즉 유쾌하지만 이 고별 교향곡 마지막 악장도 비장할 정도로 슬프게 시작해서 조용히 끝나는 악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은 당대의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질풍노도 양식’,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직역하면 ‘폭풍과 충동’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본디는 같은 시대 독일에서 일어난 문학운동의 이름이었습니다. 주인공들은 뜨거운, 때론 미치광이 같은 열정에 사로잡힌 인물들이죠. 실러의 희곡 ‘도둑떼’(Die R¤uber)나 당대를 강타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이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음악에서의 ‘슈투름 운트 드랑’도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었습니다. 역시 뜨겁고 광기 같은 열정이나 슬픔을 표현했죠. 단조 선율을 선호했고, 선율이 큰 폭으로 건너뛰고, 급박한 리듬을 강조했습니다. 하이든뿐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자신을 찌르는 장면의 비장한 음악은 이 양식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 G단조입니다. 물론 슈투름 운트 드랑이라는 유행이 없었어도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슬픈 음악들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사의 천재들도 시대의 산물이며, 이들의 천부적인 재능도 적합한 시대와 만나 조화를 이뤘을 때 더욱 빛났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하이든의 장례식에서는 교향곡 44번 ‘슬픔’ 3악장이 연주되었을까요? 그런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이든의 장례식을 함께 한 음악은 그의 동료이자 친구였고, 경쟁자였고, 서로 존경을 표현하기 주저하지 않았던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지난해 코로나19로 활동이 크게 제약됐던 오페라계가 불투명한 전망 속에서도 부활의 노래를 꿈꾼다. 오페라는 여러 독창자와 대규모 관현악, 합창단이 필요하며 무대 위 출연자 대부분이 목소리를 사용해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대표적 공연 장르로 꼽혀 왔다. 전막 오페라 무대의 스타트는 대구오페라하우스가 끊는다. 지난해 공연을 계획했다가 순연한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을 28∼30일 공연한다. 테너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로 친숙한 유쾌한 작품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4월 중 비제 오페라 ‘카르멘’을 8회 공연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국내 오페라는 대부분 2∼4회 공연에 그쳐 ‘준비에 들인 노력이 아깝다’는 평을 들어왔다. 지난해 11월 푸치니 ‘토스카’ 전막 공연으로 대역병 극복의 소망을 담았던 서울시오페라단은 프랑스 작곡가 구노의 대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3월 25∼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30편이 넘는 고금의 ‘로미오와 줄리엣’ 소재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5막 규모의 대작이다. 2020년 전 공연을 무관중 영상 중계 공연과 무대 없는 콘서트 오페라, 지방 공연으로만 치러야 했던 국립오페라단도 올해 다섯 개의 전막 무대를 준비한다. 특히 첫 공연인 전예은 작곡의 창작오페라 ‘브람스…’(Brahms…)가 눈길을 끈다. 독일 작곡가 브람스의 아름다운 명선율들을 편곡해 삽입할 예정이며,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향한 사랑이 줄거리의 기둥을 이룬다. 5월 13∼16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푸치니판 서부극’으로 미국 캘리포니아가 배경인 ‘서부의 아가씨’도 7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푸치니 생전에는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 4대작’으로 인기를 누렸으나 사후 ‘푸치니 고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드물게 공연돼온 작품이다. 8월 12∼15일에는 국립극장 리모델링과 재개관을 기념하는 베르디 ‘나부코’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베르디의 세 번째 오페라이자 출세작으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어 10월 7∼10일에는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를, 12월 2∼5일에는 푸치니 ‘라보엠’과 함께 오페라의 대명사 격인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국내 오페라 축제의 상징이 된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8월 25일∼11월 7일 열린다. 러시아 국민음악파 거장 보로딘의 ‘이고르 공’ 등 전막 오페라 6개 작품과 콘서트 4회가 열린다. 솔오페라단이 11월 공연하는 보로딘 ‘이고르 공’도 대형 해외 협력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성악가들과 합창단, 상트페테르부르크 뮤직홀 오케스트라와 현지 발레단 등 200여 명이 내한하는 대형 프로젝트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에 가까운 180쪽이 지나서야 음악 세상에 당당히 나갈 준비가 된 열여덟 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게 방대한 책이지만 대(大)바흐의 전모를 속속들이 전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저자는 영국의 유명 지휘자이자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관현악단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의 설립자. 이 책에선 바흐의 성악곡이 지닌 의미와 매력을 소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칸타타(독창곡과 낭송풍 독창, 합창 등으로 이루어진 여러 악장의 성악곡)들과 수난곡(복음서의 내용을 토대로 예수의 수난을 묘사하는 음악) 두 곡, 그리고 B단조 미사곡이다. 요한수난곡과 마태수난곡을 다룬 두 장만 따로 뽑아내도 한 권의 상세한 학술서가 될 정도다. 저자는 특히 바흐의 칸타타 안에 작곡가 자신의 연주 흔적이 엮여 있으며, 이 곡들은 교회력(曆)은 물론 농사력과 시사문제까지 다룬다고 설명한다. “이 흔적들은 자연의 순환과 계절에 순응하고, 천사들 사이에서 보낼 내세를 고대하며 들떠 있는 누군가의 음색이다. 이 책의 부제(원어 부제: Music in the castle of heaven·천국 성채의 음악)가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다.” 바흐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기존의 책들 이상 풍성한 내용이 들어있다. 저자의 눈에 비친 바흐는 신실한 루터파 신교도였지만 ‘까칠한’ 인간이었다. 교회의 부당한 지시에 대놓고 대들었다. 당찮은 지시를 내리는 성직자들에게는 음악 속에 같은 단어를 지겹게 나열하거나, 악기들이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게 하는 등 비밀 메시지를 숨겨 보복했다. 그의 반항적 기질은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시도들을 도입하게 만들었다. 합창과 독창이 어울린 그의 성악곡이 교회용 음악뿐은 아니었다.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포도주보다 달콤하다’며 커피의 매력을 찬미한 그의 ‘커피 칸타타’는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당시 커피하우스에서 열리던 음악회는 18세기 후반에 등장하는 공공 연주회의 전신이었다. 바흐는 시의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음악감독으로 지위를 다지려 했다. 커피하우스와 교회는 이를 실현할 양대 기관이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양음악의 역사에서 사람의 귀와 눈이 가장 가까웠던 때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전환기’였을 것이다. 이 시기에 프랑스의 라벨과 드뷔시는 피아노곡에 ‘거울’ ‘영상’ 등 빛을 불러내는 제목들을 붙였고, 러시아의 스크랴빈은 심지어 소리와 빛을 동시에 뿜어내는 악기를 만들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왕혜인이 소리로 빛을 들려주는 피아노곡 여섯 곡을 새 앨범 ‘빛의 유희’(Jeux de Lumi‘ere·사진)로 묶어 냈다. 첫 곡인 라벨 ‘거울’ 중 ‘슬픈 새들’부터 거침없이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빛의 포말이 귀를 감싼다. 강박(强拍)과 약박의 당기고 풀어냄이 귀로 듣는 색의 심도를 높여준다. ‘거울’ 중 ‘어릿광대의 아침노래’는 리드미컬한 빠른 연타가 연주자에게 기교적으로 도전정신을 불러오는 곡이다. 전설적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도 ‘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은 운(運)에 달렸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음반에서는, 연주자가 운을 딛고 리듬의 재미를 한껏 즐기는 게 느껴진다. 서울 JCC아트홀에서 녹음한 1∼5트랙은 객석 가장 앞줄에서 듣는 듯, 악기 모습이 크게 잡힐 듯 가까운 느낌과 좌우로 안락하게 퍼진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트랙인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은 2014년 금호아트홀 공연 실황을 실었다. 이 외 앨범 제목에 영감을 준 라벨 ‘물의 유희’, 스크랴빈 소나타 4번과 ‘왼손을 위한 녹턴’ 등을 앨범에 담았다. 음반에 실은 연주 노트에 왕혜인은 “유학 시절 스승이었던 피아니스트 베른트 글렘저가 피아노로 색의 마법을 부리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적었다. “우주 공간을 채우는 물질의 색은 어떠할지, 빛과 하나가 되었을 때의 느낌은 어떠할지…. 나는 손에 닿는 건반의 감촉이라는 뚜렷한 물질적 감각을 가지고, 동시에 그것을 휘발성 울림으로 날려 보낸다. 사진은 세상을 빛으로 그리고, 나는 빛을 소리로 그린다.” 왕혜인은 서울대와 독일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고 2006년 독일 하벨란트 페스티벌 콩쿠르 1위 및 베토벤 소나타상, 쇼팽 에튀드상을 받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클라리넷을 색깔로 정의하라면 검은색이죠. 모든 색이 들어있고, 어떤 색이든 뽑아 쓸 수 있어요. 댄디(dandy)하면서도 고독하고 감각적이죠. 직접 관심받기 싫어하지만 실제로는 관심을 원하는 제 성격과 비슷해요. 후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선정하는 금호아트홀 올해의 상주음악가에 클라리네티스트 김한(25)이 선정됐다. 2013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제도가 시작된 이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첼리스트 문태국 등 세 악기 연주자들이 여덟 차례의 상주음악가를 거쳤고 목관악기는 올해 김한이 처음이다. 4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김한은 “클라리넷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애니메이션 스펀지밥의 캐릭터 징징이가 부는 악기’라고 하면 그때서야 ‘아하∼’ 한다”며 웃음을 유도한 뒤 “이번 상주음악가 선정은 관악기를 음악팬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하라는 뜻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큰아버지인 작곡가 김승근(서울대 교수)의 권유로 클라리넷을 시작했다. 2016년 자크 랑슬로 국제 클라리넷 콩쿠르 1등상과 청중상, 위촉곡 해석상을 석권한 뒤 2018년 핀란드를 대표하는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에 클라리넷 부수석으로 입단했다. “솔로 연주는 저만의 느낌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고, 실내악은 토론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게 매력이죠. 오케스트라는 기계의 일부처럼 지휘자가 원하는 걸 바로 받아들여야 하고요. 제 강점이 유연함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세 영역을 모두 잘 살려나가려 합니다.” 상주음악가로서 그는 올해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네 차례의 콘서트를 마련한다. 시리즈 제목으로 ‘온에어: 지금부터 만나는 김한’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미래지향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펼친다는 뜻을 담았다. 첫 회는 이달 7일 열리는 신년음악회 ‘백 투 더 퓨처’. 그가 2007년 금호영재콘서트에서 처음 연주한 라보 ‘솔로 드 콩쿠르’, 베버 ‘그랜드 듀오 콘체르탄테’ 등 여섯 곡을 연주한다. “1부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잇고, 2부에서 앞으로 제 연주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백 투더 퓨처(미래로의 귀환)’라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6월 3일 ‘세 개의 5중주’에서는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 윤이상의 클라리넷 5중주 1번을 연주한다. 10월 7일 ‘시간의 종말’에서는 윤이상 ‘피리’,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등 20세기 작품을 선보인다. 12월 30일 ‘Be my guest’에서는 거슈윈과 번스타인 등의 재즈 스타일이 가미된 작품들을 연주한다. 네 콘서트 모두 ‘시대와의 호흡’이 두드러진다. “클라리넷은 개성과 기능이 현대 음악에 적합해 20세기에 확실히 주목받았죠. 우리 시대의 경험에 공감하고, 그 감정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은 음악이 가진 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공연 오후 8시 4만 원. 7일 신년음악회 ‘백 투 더 퓨처’는 네이버TV로 중계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알려진 식품이나 요법을 소개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장수의 비결을 찾아 노심초사하기보다는 건강한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게 낫다는 것. 어느 쪽이든 책들은 차고 넘쳐 새롭지 않다. 이 책의 미덕은 전자의 내용에서 출발해 꼼꼼한 검증을 거친 뒤 후자의 내용을 충분히 확인시켜주는 데 있다. 검증 가능한 세계 최장수자는 프랑스의 잔 칼망 할머니다. 122년 164일 동안 살았다. 그의 가계도를 조사하면 조상들도 장수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런데 특별한 점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결혼 후 헬리콥터 타기, 스키 등 새로운 일이라면 뭐든지 도전했다. 그게 20세기 초였다. 110세에 양로원에 들어가면서는 “15분 먼저 일어나 몸단장하는 걸 허락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는 삶을 최고로 누리려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 책 앞부분에서 저자는 장수에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진 과학적 요인들을 차례로 검증한다. 염색체 끝부분에 달린 ‘텔로미어’의 길이가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텔로미어의 마모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전한다. 오히려 짧은 텔로미어는 발암을 막는 역할도 한다. 체중은 어떨까. 체질량지수가 30∼35로 비만인 사람들은 호리호리한 사람보다 사망 위험도가 5% 낮다.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코르티솔 수치는 더 중요할 수 있다. 코르티솔은 ‘싸우는 에너지’를 높이지만 저항력을 떨어뜨려 노화를 촉진한다. 반대로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은 편안함, 친화력, 사회성에 관련된다. ‘좋은 호르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96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제트 마을은 ‘심장병 없는 마을’로 주목을 끌었다. 고령자는 존경받고 가족 사이는 끈끈했다. 틈날 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리고 경조사를 기념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저마다 큰 집을 짓고 자동차를 타고 먼 데로 나가면서 마을의 심장병 수치는 급증했다. 이쯤에서 책 166쪽을 펼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목요연한 숫자들이 있다. 먼저 도표 왼쪽의 ‘음식과 운동’. 지중해식 식단은 사망 위험도를 21% 낮춰준다. 십자화과 채소(무, 배추 등)를 하루 160g 섭취하면 20%, 운동은 23∼33% 사망 위험도를 낮춘다. 이제 도표 오른쪽의 ‘마음과 사회성’으로 가보자. 상냥함은 20%, 자원봉사 22%, 폭넓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45%, 행복한 결혼 생활은 49%나 사망 위험을 낮춰준다. 먼 길을 돌아 도착한 저자의 권유는 어렵지 않다. 가족애와 우정을 쌓고 삶의 목적을 가져라. 근심을 줄여라. 친절을 베풀라. 가능하다면 지역 사회나 타인을 위해 봉사하라. 이런 요인들은 광고 속의 건강보조제와 달리 ‘확실한 숫자’로 건강과 장수에 도움을 준다. 더욱 좋은 것은, 이런 삶의 자세는 주변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한 달에 한 번, 열 차례. 맛난 클래식 오찬이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마련된다. 대한민국 대표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을 초청하는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 2021’이 1월부터 매달 둘째 주 수요일(8, 9월 제외, 12월은 셋째 주) 오전 11시 반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고 공연기획사 크레디아가 밝혔다. 조희창, 이지영, 유정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칼럼니스트와 클래식 저널리스트들이 10회에 걸쳐 매회 연주 프로그램과 아티스트에 대해 상세하고도 흥미로운 해설을 들려줄 예정이다. 1월 13일 열리는 오프닝 공연은 평생 같은 길을 걸어온 피아니스트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장식한다. 200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3위를 수상한 두 사람이 함께 꾸미는 듀오 무대다. 슈베르트 ‘네 손을 위한 판타지’와 라흐마니노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2번’ 등을 들려준다. 2월 무대는 재즈 그룹 스윙메이커스와 밝은 에너지의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꾸미는 ‘클래식, 재즈에 홀릭하다!’.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드뷔시 ‘어린 흑인’, 거슈윈 ‘포기와 베스’ 모음곡 등 재즈의 이디엄이 클래식에 독특한 색깔을 입힌 작품들을 연주한다.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가 장르를 넘나드는 사유로 각 작품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3월 10일에는 클라리넷과 피아노가 펼치는 ‘잉글리시맨 인 뉴욕’이 무대에 오른다. 2016년 자크 랑슬로 국제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 1등상을 받은 클라리네스트 김한과 부조니 국제콩쿠르 준우승 수상자인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꾸미는 듀오 리사이틀이다. 번스타인의 클라리넷 소나타와 스팅 ‘잉글리시맨 인 뉴욕’ 등을 연주한다. ‘잉글리시맨 인 뉴욕’은 어린 시절을 영국에서 보낸 김한의 추억을 반영한 제목. 전 공연 3만8000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슈베르트 가곡집 ‘겨울 나그네’ 중 ‘봄의 꿈’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유리창에 누가 이파리들을 그렸을까. 겨울에 꿈속에서 꽃을 본 사람을 비웃으려나.’ 지금은 깊은 겨울이지만 우리는 봄을 꿈꾸고자 합니다. 2021년 예정된 내한 연주가들의 공연을 소개합니다. 지난 한 해 보기 힘들었던 해외 연주가들의 무대에 우리가 목말라 하듯, 그들도 자국보다 무대가 많이 열려있는 한국에 열망이 크다는 게 공연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우선 상반기. 240년 역사의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3월 4,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옵니다.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의 지휘로 3월 4일 브루크너 교향곡 8번, 5일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합니다. 이들은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로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음반을 차례차례 내놓고 있습니다. 3월 15, 16일엔 지휘자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가 이끄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바이올린계의 젊은 여제 힐러리 한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옵니다. 브람스 바이올린협주곡과 차이콥스키 5번을 연주합니다. 힐러리 한은 6월 2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솔로 무대도 갖습니다. 3월 31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2017년 에코 클래식상 콘서트 리코딩 부문을 수상한 1995년생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 리사이틀이 열립니다. 2024년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도 4월 18일 조성진 반주로 롯데콘서트홀을 찾아옵니다. 4월 22일에는 2014년 이자이 바이올린 작품집으로 황금 디아파종상과 클래시카 올해의 음반상을 휩쓸었던 바이올리니스트 테디 파파브라미가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 옵니다. 모든 프로그램을 무반주로 연주합니다. 5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는 지난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이고어 레비트가 옵니다. 베토벤 소나타 네 곡을 연주합니다. 필리프 헤레베허가 지휘하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도 5년 만에 내한합니다. 5월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연주합니다. 6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는 2021년 만 25세가 되는 전도유망한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가 자신이 수석지휘자로 있는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섭니다. 2019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화제를 휩쓴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가 그리그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하고, 메인곡은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입니다. 압두라이모프는 6월 16일 같은 곳에서 솔로 무대도 갖습니다. 하반기엔 코로나19 진정에 대한 기대로 내한 일정들의 밀도가 더 높아집니다. 기대를 가지면서 지켜보고 싶습니다. 오케스트라로는 체코 필하모닉(세묜 비치코프 지휘·조성진 협연·10월 19일), 런던 필하모닉(로빈 티치아티 지휘·백건우 협연·10월 27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발레리 게르기예프 협연·10월 3일),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파보 예르비 지휘·자닌 얀선 협연·11월 10일) 등이 눈을 크게 뜨게 만듭니다. 피아니스트로는 베아트리체 라나(9월 12일), 언드라시 시프(10월 7일), 라파우 블레하치(10월 17일), 미하일 플레트뇨프(12월 4일), 랑랑(12월 10일)의 대형 무대가 준비됩니다. 자세한 소식과 연주를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위태위태하게 열화상 감지기에 걸릴 듯한 미열이 있다. 약간의 혼미함이 느껴질 정도로 달아오른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서울대 교수)과 피아니스트 이진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한국인 최초로 내놓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소니뮤직)이 그렇다. 물론 9번 ‘크로이처’는 마약 같은 도취 없이는 연주할 수 없다는 곡이다. 한데 다른 곡들도 그렇다. 예민하고 민감하게 은은한 열기를 뿜으며, 약간씩 재촉하듯 달려 나간다. “악보를 살펴보면, 베토벤은 역시 피아니스트였죠.” 최근 가진 음반 발매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백주영은 말했다. “화성 진행 등 여러 면에서 이 곡들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진행이 많아요. 하지만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열심히 극복해야 하는 거죠.” 달뜬 열기는 두 악기 모두에서 나온다. 바이올린 파트와 피아노 파트 모두 밋밋한 부분 없이 약간씩 도발적인 기복을 주며 흐른다. 소나타 5번 ‘봄’의 스케르초는 두 파트가 겨루듯이 듣는 이의 귀를 잘근잘근 씹는 쾌감이 근사하다. 녹음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톤마이스터(음향감독) 최진이 진행했다. 11개 멀티채널 입체음향으로 녹음해 2채널 스테레오 앨범에 담았다. 듀오 무대로는 약간 큰 공간의 특징 때문인지 악기와 마이크 사이의 적절한 거리감과 공간감, 잔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피아노에 이런 공간적 특징이 강조됐다. 녹음되는 음향을 면밀히 분석한 뒤 연주에 반영한 느낌이다. 여린 부분에서 충분히 투명하고, 기복이 큰 부분일수록 잔향의 쾌감과 공간의 크기가 살아난다. “녹음 기술 측면에선 수많은 테크놀로지가 반영됐지만, 연주자들은 악보를 대면하며 베토벤의 시간 속으로 다가갔다”고 이진상은 말했다. 장식음의 해석 등 기존의 연주들에 비해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귀에 들어온다. 소나타 9번 ‘크로이처’ 1악장 제시부가 반복될 때는 피아노의 분산화음도 완전히 다르게 연주한다. 베토벤 당시 연주 전통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일 것이다. 발매와 동시에 가지려던 기념 리사이틀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앨범은 코로나19로 힘든 음악 팬들에게 주는 12월의 선물이 되었다. 백주영은 “긍정적 에너지를 받기 원하는 분에게는 1번, 다가올 봄을 느낄 수 있는 곡으로는 5번, 공연장과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곡으로는 9번,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곡으로는 10번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바이올린의 비중이 크고 첫 곡인데도 완성도가 높은 1번 D장조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원서 제목은 ‘The end of epidemics’(전염병들의 종식)이다. 출간 연도는 2018년이다. 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의 책이다. ‘실현된 예언서’인 셈이다.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이 책의 효용은 달라질 수 있다. 책은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계속 높아져 온 팬데믹 위험의 요인들을 살피고 에볼라, 에이즈, 지카 등 21세기에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들의 발생 배경을 돌아본다.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다른 대유행 병들도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적응하면서 폭발적인 양상을 띠었다. 세계 곳곳에서 숲을 완전히 밀어버리는 완전 벌목이 일어나면서 위험한 바이러스들이 인간에게로 갈아탈 기회가 높아진다. 대규모 축산공장에 야생조류가 접촉하면 대규모 전염병공장이 될 수 있다. 2부에서 저자는 전염병에 맞서는 인간의 대담한 행동을 촉구한다. “왜 우리는 다음 전염병이 세계적 재앙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필요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저자가 요약한 7개 항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①모든 차원에서 대담한 리더십을 확고히 하라(지도자는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라) ②회복력 있는 보건 체계(탄력적인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라) ③적극적인 예방과 상시적인 대비(질병에 맞서는 세 가지 전선인 예방, 발견, 대응을 강화하라) ④사람을 죽이는 정보, 살리는 정보 구분(정확하고 시기적절하게 보도하라) ⑤획기적인 혁신, 협력하는 변화(현명하고 새로운 기술 혁신에 투자하라) ⑥현명한 투자(전염병이 유행하기 전에 질병을 막을 수 있도록 돈을 현명하게 써라) ⑦시민 행동을 조직하고 동원하라(경고를 울려라, 지도자를 깨워라) 이 일곱 개 거울을 사용하면 한국 사회가 코로나19에 맞서 어떤 점을 잘하고 어떤 점을 소홀히 해왔는지도 비칠 것이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남은 팬데믹 기간 동안 어떤 길을 가고 어떻게 그 길을 단축하느냐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전염병 근절의 최전선에 있었고 코로나19 발생 이후 미국 록펠러재단 전염병 대응 이사를 맡고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튜브 링크: www.youtube.com/classicgam 코로나19로 얼룩진 2020년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이었습니다. 2021년은 누구를 기념하는 해가 될까요. 그동안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작곡가를 소환해 보겠습니다. 2021년 서거 100주년을 맞는 프랑스의 샤를 카미유 생상스(1835∼1921)입니다. 생상스의 이름을 아는 분은 많습니다. 어렸을 때 어린이날 즈음 부모님 손을 잡고 음악회에 가서 그의 ‘동물의 사육제’를 들은 분이 많을 겁니다. 물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생상스는 이 곡을 진지하게 쓴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장난처럼, 기분전환 삼아 작곡했습니다. 심지어 생전에 악보를 출판하는 것도 막았습니다. 그러나 이 곡을 통해 생상스를 잘 알게 되는 점도 있습니다. 생상스 자신은 큰 가치를 두지 않았지만 이런 음악을 썼다는 것은 일종의 시대정신의 반영이었습니다. 생상스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은 박물지(博物誌)의 시대, 백과사전적 지식의 시대였습니다. 어느 대륙에 가면 어떤 동물과 식물과 광물이 있고, 풍습은 어떻고 등등, 먼 곳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폭발하던 시대였죠. 동물의 사육제에도 그런 박물지적인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생상스는 천재였습니다. 다섯 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열두 살 때부터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는데, 청중이 앙코르를 요청하면 청중이 원하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한 곡을 다 쳤다고 합니다. 그는 “내게 작곡한다는 것은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에겐 유별난 취미가 있었습니다. 최신의 망원경을 갖춰 놓고 밤하늘을 관찰하기를 즐겼습니다. 아마추어 수준을 넘는 일이었습니다. 프랑스 국립천문학회는 생상스를 회원으로 받아주었습니다. 그의 우주적인 상상력은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을 들으면 느낄 수 있습니다. 밤하늘이나 우주와 더불어 생상스의 또 다른 관심사는 아랍이었습니다. 아랍에 대한 책을 즐겨 읽었고, 여러 차례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도 알제리 여행 중이었죠. 생상스의 아랍 사랑은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피아노협주곡 5번 ‘이집트’ 등에 반영됐습니다. 이렇듯 천문학이나 아랍을 비롯한 다른 세계에의 관심을 생각할 때 생상스는 공상소설가 쥘 베른(1828∼1905)과 같은 시대 분위기를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여겨집니다. 생상스와 베른이 서로를 잘 알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베른은 생상스보다 불과 다섯 살 위였고, 천체나 해저 같은 새로운 세계의 탐험, 중동이나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 심지어 80일이면 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흥분되는 공상을 펼쳤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시대는 과학과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지식이 크게 확장되고, 인류가 모든 장벽을 넘어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은 낙관주의의 시대였습니다. 런던과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가 그런 낙관주의의 상징이기도 했죠. 생상스의 교향곡 3번이 세상에 나온 다음 해 짓기 시작한 에펠탑 또한 그런 시대정신의 반영이었습니다. 그런 진보와 낙관주의의 시대정신, 미지 세계에 대한 탐구를 생상스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유(윤종)튜브’에서 생상스의 대표 작품들을 맛보기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임동혁이 ‘위드 코로나’ 시대로 가속화된 온라인 클래식 체험의 길잡이로 나섰다. 선우예권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가상현실(VR) 투어를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 임동혁은 정치용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를 다양한 시점과 음향으로 감상하는 ‘멀티뷰·멀티오디오’ 영상에 참여했다. 선우예권이 참여한 VR 콘텐츠 ‘롯데콘서트홀이 전하는 예술’은 VR로 입장하는 공연장 투어다. 1부에서는 선우예권과 롯데콘서트홀 김시진 매니저의 안내로 이 홀의 건축양식과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객석 정면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에 대해 오르가니스트 박준호와 함께 알아본다. 피아노 보관실로 이동해 항온·항습장치 등 악기 유지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고르는 방법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피아노가 무대 위에 세팅되고 선우예권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0번과 아르카디 볼로도스 편곡 ‘터치 행진곡’을 연주한다. 이 서비스는 LG유플러스 U+VR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유저들에게 무료로 서비스된다. ‘온:클래식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임동혁’ 콘텐츠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가 참여한 연주를 카메라 11대와 마이크 40대로 담아 다양한 시점과 음향으로 감상할 수 있다. 멀티뷰는 디렉터스컷, 지휘자, 피아니스트, 현악·관악 파트, 객석, 전문가 해설 등 일곱 가지 시점으로 구성했다. 지휘자의 손끝부터 피아니스트의 표정, 팀파니 표면의 떨림까지 라이브 공연에서도 만나기 힘든 섬세한 장면들을 잡아냈다. 원하는 화면들을 모아볼 수 있는 분할화면이나 화면을 4배까지 확대해 보기도 가능하다. 멀티오디오도 예전에 없던 체험을 제공한다. 지휘자가 듣는 소리, 객석에서 듣는 소리, 현악기나 관악기 주자가 듣는 소리 등 각각의 시점에서 차별화된 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 최진 톤마이스터(녹음감독)가 오디오 작업을 총괄했다. 연주곡은 임동혁이 협연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외 베토벤 교향곡 1번과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 베토벤이 빈 부르크 극장에서 열고자 했지만 협주곡 완성이 늦어지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던 220년 전 콘서트를 재현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상민, 이지영, 황덕호가 스포츠 경기를 해설하듯 공연의 요점을 설명한다.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 이용자는 모바일 앱 5GX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웨이브와 Btv에서 VOD 구매도 가능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