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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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승련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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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100%
  • “지지층에게 투표하고 싶은 마음 들게 해야 선거에 승리”[월요 초대석]

    《22대 4·10총선은 여론조사로 시작해 출구조사로 끝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론조사는 선거의 승패를 예측하기도 하지만 ‘응답하려는 의지’를 반영하면서 특정 정당 지지자들이 지금의 정치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그래서 기꺼이 투표소에 가서 표를 던질 뜻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늠자 기능을 한다. 예컨대 여론조사 때 보수층 응답률이 떨어지면 절대 보수정당이 그 선거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실제 투표장에 가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뜻일 수 있어 그렇다. 정치 지도자는 지지층이 여론조사 전화에 기꺼이 응답하게 하고, 투표장에 가서 투표할 맛이 나도록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과 통한다. 총선 민심과 여론조사의 상관관계를 따져보기 위해 여론조사 전공학자 2명에게 답을 구했다. 12일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에서 있었던 대담은 김승련 논설위원이 진행했다.》―이번 총선 여론조사를 통해 여당의 참패를 예상할 수 있었는지.▽김영원 숙명여대 교수=총선 전에 더불어민주당이 꺼냈던 ‘200석 개헌선’까지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이유는 여론조사마다 ‘나는 보수’라는 응답자 비율이 평소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보수 유권자가 숨었다는 뜻이다. 이런 숨은 보수가 선거 당일에 나타날지 말지가 변수였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사전투표율 비교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했다. 2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될 때 사전투표율이 높았던 경북 포항 등지에서 이번 총선 때 그 숫자가 낮아졌다. 중앙선관위 250여 개 시군구 자료에 그게 들어있다. ―2월, 3월 여론조사를 보면 양대 정당의 승리 가능성이 요동쳤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등장과 민주당의 공천 파동 때 국민의힘 지지율이 크게 올랐을 때다. 어떻게 해석하나.▽김=갤럽과 NBS 등이 실시해 온 정기 여론조사의 흐름이 중요하다. 국민의힘,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더 긴 흐름에서 크게 출렁인 적이 거의 없다. 큰 변수가 안 됐다는 뜻이다. ▽이=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1년 넘도록 30% 대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이 정도면 총선 승리가 쉽지 않다. 한동훈 등장 초기의 지지율 상승은 2012년을 연상시켰다. 한나라당이 임기 5년 차 이명박 대통령 대신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총선을 이겼던 그때 말이다. 그런 기대감이 생기면서 보수 지지층이 여론조사에 적극 응했다. 민심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여론조사에 적극적인 분위기가 생긴 게 (당시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2월 이후에는 의대 정원 확대, 이종섭 주호주 대사 출국, 대파 논란 등 쟁점이 여럿 등장했다. 어떤 사안이 영향이 컸을까. ▽김=특정 사안들이 표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정치적으로는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동의한다. 유권자마다 찬반 의견은 그때그때 있겠지만 영향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 여당에 악재가 등장하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 응답에 더 나서 대통령 정책에 반대한다고 답하게 된다. 정치 지도자가 지지층에 투표할 이유를 제공하느냐가 선거 승리의 요체다. 민심을 살피는 정치라는 것도 바로 이 이야기 아닐까. ―선거 여론조사의 정확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정권 심판 응답이 많이 나온 여론조사가 총선 담론을 지배한 것이 특징이다. 표심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론정치는 민주제도의 기능이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 놀랐다. 진보 성향 유권자의 응답률이 높아지면서 지역구에서는 민주당, 비례대표에선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과대 평가된 측면이 있다. ―여론조사는 잘 작동했나. ▽이=조사가 너무 많다는 점은 지적해야 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전국 조사만 234회 진행됐다. 234개 가운데 전화면접 방식은 대부분 주류 언론이 의뢰한 것으로, 88개였다. 나머지는 인터넷 언론이 발주한 ARS 조사였다. 이 숫자는 지역구 조사 말고 전국 단위의 지지 정당 조사만 따진 것이다. 그런 만큼 유권자이자 뉴스 소비자는 조사 품질 기준에서 옥석 구별을 잘해야 한다. ―좋은 여론조사는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나. ▽이=높은 응답률이다. 몇 % 이상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높을수록 잘된 조사로 볼 수 있다. 면접 조사원이 직접 질문하는 방식은 예산이 더 들지만, 끊으려는 유권자에게 ‘잠시만요’라며 붙잡기도 한다. 이렇게 응답률이 높아진다. 조사원은 평소 교육도 받아야 하니 ARS보다 비용이 더 든다. 5, 6배로 알고 있다. ―ARS 조사가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나. ▽이=컴퓨터가 전화 거는 ARS 방식은 응답률이 매우 낮아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축적돼 있다. 결론이 나 있는 셈이다. ―품질이 낮다면 금지시킬 수는 있나. ▽이=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어서 금지는 곤란하다. 어찌 보면 자동화라는 게 혁신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이 ARS 조사는 가급적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터넷 매체가 보도는 하겠지만, 뉴스 독자들은 그런 조사를 마주하면 사람이 하는 면접조사보다는 신뢰를 덜 하고 보면 좋겠다. ▽김=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정치조사에 ARS를 규제하기도 한다. 워낙 텔레마케팅 회사의 로보콜을 많이 써서 상품 홍보를 많이 하니까 아예 금지시킨 주도 있다. 그 바람에 선거 여론조사도 ARS 방식은 응답할 패널을 미리 정해놓고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여론조사에 어떤 마음으로 답하나. ▽이=전화가 걸려올 때 응답하려면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현재 응답률은 전화면접은 13∼14%, ARS는 3∼4%다. 접촉이 된 응답자 100명 중 13명 안팎과 3명 안팎이 응답한 결과물이다. 조사에 응하는 사람들은 지지 정당 공개에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작다. 또 기다렸다는 듯이 답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 의견 표명 성향이 높은 것이다.(※한국과 미국은 응답률 표현 기준이 다르다. 3만 명에게 전화 걸어 1만 명이 전화를 받았고, 그 가운데 1000명이 답변을 끝까지 마친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때 우리는 접촉률(33%)-응답률(10%)로 표시한다. 미국에선 최종 응답률은 두 숫자를 곱한 3.3%가 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최종 응답률을 ‘성취율’ 등으로 표현하자는 의견이 있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이슈지만 선거 1주일 전에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다.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김=과거엔 선거 앞두고 엉터리 조사 결과를 퍼뜨릴 우려가 있었다. 지금은 조사 방법을 함께 공개하니까 장난치는 게 쉽지 않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함으로써 선거 하루 전까지는 발표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수용하지 않고 있다. ―왜 그렇다고 보나. ▽이=흔히 말하는 ‘깜깜이 기간’은 선진국 중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정도만 남아있다. 하지만 국회가 변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하루 전날까지 발표하도록 해야 엉터리 여론조사를 하는 회사들이 냉정한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럴 때 여론조사 품질이 더 좋아져 유권자에게 도움이 된다. ▽김=현역 의원들은 자기 선거구 도전자가 신인일 경우 마지막에 따라붙을 걸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1주일간 공표를 차단하면, 신인의 도전장을 받는 현역 의원이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론조사 기관의 정치적 편향성에 따른 여론 왜곡 문제는 없나. ▽김=특정 업체가 너무 많이 틀렸다는 점은 꼭 지적해야겠다. 이 업체는 언론사 의뢰 없이도 자기 예산으로 여론조사를 가장 많이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3월 25일 이후 이 업체가 실시한 비호남권 조사 27개를 전부 살폈는데, 실제 선거 결과와 비교할 때 단 1곳도 예외 없이 민주당 후보가 과다 추정됐다. 7곳은 당락이 뒤바뀌었는데, 모두 민주당 당선으로 잘못 추정됐다. ▽이=이런 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지지 정당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실제 투표할지 말지 행동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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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감시 사각지대 국정원 ‘비상금’ 역대 최대

    국가정보원 예산은 일부 공개되기도 하지만 전모는 베일에 가려 있다. 국정원 예산은 세 덩어리로 구성된다. 첫째, 지난해 8526억 원이 책정된 공식 예산으로, ‘안보비’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영수증 증빙이 생략되는 특수활동비로 전액 구성됐다가 전직 원장 3명이 재판받는 홍역을 치른 뒤 바뀌었다. 둘째, 기획재정부가 편성한 예비비에서 가져다 쓰는 ‘국가안전보장 활동경비’다. 셋째, 국방부·경찰청 등의 몫으로 책정된 특수활동비를 함께 쓰는 것이 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블랙 예산”으로 부르듯, 합법적으로 숨겨놓은 예산이다. ▷주목받는 것은 안보 활동경비다. 예비비는 태풍 피해가 생기거나, 새만금 잼버리 행사 차질에 따른 긴급대응처럼 1년 전 미리 짜놓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꺼내 쓰는 돈이다. 말 그대로 비상금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상시 예산처럼 쓰는 듯하다. 추정액 기준 2020년 6000억 원, 2021년 6300억 원이다. 예산 규모도 정식 예산(안보비)의 80%를 넘나드는 수준이다. ▷예비비 집행은 국무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국정원은 지난해 4차례 국무회의를 통해 예비비를 가져갔다. 12월에는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 긴급 확보’ 명목이었다. 하지만 어떤 활동이었는지는 2급 기밀이어서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해 국정원 예비비가 7800억 원이었고, 역대 최대 규모라는 보도가 지난주 나왔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2020년 이후로는 매년 6000억 원대로 올라섰다는 추정이 틀리지는 않는 듯하다. ▷정부 예산은 국회 예결위 심사를 받는다. 국정원은 기밀성을 감안해 중진급 정치인이 포진한 정보위가 그 역할을 맡는다. 국정원이 3개월마다 고강도 검증을 받는다지만, 예산·결산 심사가 얼마나 정밀한지는 의문이다. 정보위는 인사청문회 등을 빼면 개회 직후 비공개로 전환된다. 언론 취재도 어렵고, 속기록도 확인할 수 없다. 다른 부처의 예산은 예결위의 소인수 회의체인 ‘소소(小小)위’ 대화까지 개방하지만, 정보예산은 비공개다. ▷미 국가안보국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이 자국의 불법 행위를 2013년 폭로하면서 예산까지 공개한 적이 있다. 그가 공개한 178쪽 자료에 따르면 CIA가 연 16조 원을 썼다. CIA로선 러시아와 중국이 봤을 이런 노출은 큰 타격이었다. 이 자료를 입수한 워싱턴포스트는 이례적으로 정부와 보도 범위를 상의했다. 보안과 독자 알권리 사이에서 경계선을 찾는 노력이었다. 우리 국정원은 역대 원훈(院訓)처럼 음지에서, 소리 없는 헌신을 해 왔다. 그런 자부심에 걸맞은 예산 투명성 확보의 때가 왔다. 비밀 활동 예산은 100% 보안이 기본이다. 그렇지 않은 활동 예산이라면 국회 정보위가 역할을 더 키우는 쪽으로 변화를 생각해야 한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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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유엔 제재대상 北 석탄 수출선 첫 나포

    우리 해경과 해군이 지난 토요일 여수 앞바다를 지나던 3000t급 화물선을 나포했다. 이 배는 중국 산둥반도에서 출항해 북한 서쪽 남포항에 열흘쯤 머문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던 중이었다. 선박에는 러시아 수출용으로 보이는 북한산 무연탄이 가득 실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의 석탄 수출은 대북 제재 대상이다. 이 배는 아프리카 토고 국적선이었지만 지금은 무국적이다. 비슷한 국적세탁 사례로 볼 때 북한 통제하의 선박으로 정부는 의심하고 있다. ▷이번 나포는 미국 요청에 따른 것으로, 우리 정부가 대북 제재 위반 의심 선박을 나포한 것은 처음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는 제재 위반이 의심되면 문제의 선박을 영해(領海)에서는 나포·검색·억류할 수 있다. 이 배는 북한 남포항 입출항을 전후로 국제적 의무인 자동식별장치를 껐다고 한다. 북한 흔적 지우기다. 우리 당국이 정선 명령을 내렸지만 불응했다. 중국인 선장은 “석탄을 실은 곳은 북한이 아닌 중국”이라고 부인했으나 정찰위성에 따르면 남포에 머물 때 석탄이 채워졌다고 한다. ▷이번 나포는 구멍 뚫린 대북 제재망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반복하면서 안보리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2017년 이후로는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추가 제재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그 사이 벤츠 등 사치품이 평양으로 흘러들어갔다. 지난주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감시하는 유엔 전문가 8인 패널을 아예 없애버렸다. 적절히 통제만 한다면 핵 가진 북한이 미국을 괴롭히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일 것이다. ▷북한에 선박은 생존 통로다. 중-러 국경에서 육상 운송도 가능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일정량 이상 수입이 금지된 석유 제품을 배에서 배로 옮기는 선상 환적을 자행하고, 미사일처럼 돈 되는 수출품도 배로 실어 나른다. 2002년 서산호 사건은 미국이 해상 차단의 근거 마련에 주력하게 된 계기가 됐다. 북한은 스커드미사일 15기를 예멘에 수출했는데, 미국 요청으로 스페인 해군이 공해(公海)에서 나포했다. 하지만 안보리 제재와 같은 근거가 없었던 때여서 미사일을 예멘에 넘겨야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대응의 속도와 강도다. 유엔에서 중-러가 북한 감시 패널을 없애버린 것은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우리가 선박을 나포한 것은 이틀 뒤인 토요일이었다. 미국은 과거에도 비슷한 위성 추적을 했지만 이번처럼 한국에 나포 요청을 한 적은 없었다. 북한은 포탄과 미사일을 제공하며 전쟁 중인 러시아를 돕고 있다. 미국으로선 북한의 돈줄 차단도 중요하지만, 러시아 견제도 감안했을 것이다. 한반도 안보 질서는 우리 뜻과 관계없이 가변성이 더 커졌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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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월스트리트저널의 1면 백지 기사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월 29일자에 4개 면으로 구성된 특별 섹션을 발행했다. 그 섹션을 통상 인쇄되는 신문 섹션들을 바깥에서 감싸도록 했다. 이렇게 탄생한 1면이건만 가장 중요한 머리기사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로 취재 출장을 갔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된 자사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32)의 구금 1년째 되는 날이었다. 백지(白紙) 편집은 러시아에 대한 항의였고, 용기 있는 저널리즘에 대한 다짐이었다. ▷기자 생활 8년째인 게르시코비치의 부모는 옛 소련의 경제난을 피해 1970년대 미국에 정착했다. 그런 그가 냉전 종식 후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첫 미국인 기자가 된 점이 기막히다. 그는 프랑스 통신사 AFP를 거쳐 4년 전 WSJ에 합류했다. 간첩 행위로 몰린 지난해 봄 출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용병기업 와그너 그룹 취재를 위해서였다. 푸틴의 요리사였다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 의문의 항공기 사고로 숨진 프리고진이 설립한 그 회사다. ▷특별 섹션 1면은 3분의 2가 백지였는데, 위쪽에 제목은 달려 있었다. “빼앗긴 1년: 그의 취재기사가 여기 실렸어야 했다.” 그런 뒤 4개 면에 걸쳐 그가 1년 동안 놓쳐야 했던 친구 결혼식과 축구 경기 시청을 비롯한 일상의 소중함 등을 기사로 담았다. 그는 지난달 모스크바 콘서트장 테러를 자행한 범인들과 같은 구치소에서 독방에 감금돼 있다. 외부 접촉 없이 비공개 재판 절차를 밟는 동안 러시아가 공개한 짤막한 법정 동영상으로 그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러시아는 강력한 언론 통제 국가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뉴스매체가 외국과 인적-경제적 인연을 맺었다면 모든 기사 첫머리에 “외국 기관(Foreign Agent)이 관여했다”는 딱지를 붙여야 할 정도다. 정부 매체의 발표만 믿으라는 뜻이다. 푸틴의 정적 나발니의 의문사처럼 ‘권력의 반대편’이란 말은 독살 납치 구금의 위험을 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구촌 삶의 방식을 바꾼 러-우크라니아 전쟁과 그 이면을 알려야 한다는 믿음은 꺾이지 않고 있다. WSJ와 취재 기자는 이런 위험 감수를 언론의 길이라 믿었다. ▷언론 탄압은 러시아 외에도 중국 이란 미얀마 등 권위주의적 독재국가에서 자행되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가택연금 혹은 투옥된 언론인이 520명이 넘는다고 한다. 중국에만 100명 넘는 기자가 체포 또는 구금됐고, 팔레스타인 전쟁을 시작한 이스라엘에서도 기자 35명이 억류 중이라는 것이다. 저널리즘엔 남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WSJ 특별섹션 1면의 커다란 빈칸은 강렬한 메시지다. 신문은 독립적으로 취재한 진실을 담을 것이고, 외부의 힘이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할지라도 누군가가 그 일을 지속할 것이란 점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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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IQ와 후흑이 만날 때 [오늘과 내일/김승련]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가 도(道)보다는 기(技)의 영역으로 옮겨간 것을 절감한다. 그래서 얼굴 두껍든(厚), 뱃속 시커멓든(黑) 둘 중 하나는 해야 정치에서 성취한다는 100년 전 중국인의 역사 연구는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후흑(厚黑)이 승부를 가르는 정치는 고대 중국에선 몰라도 21세기 한국 정치에선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정치 IQ가 후흑과 만날 때 지지를 더 보내는 게 현실이다. 서울 강북을 공천 소동 후 민주당 전체에 흐르는 침묵을 보자. 이재명 대표의 전횡을 비판하던 원로들도, 비명횡사당한 친문들도 약속한 듯 입을 닫았다. 친문 배제 때 비판 성명서까지 냈던 김부겸 전 총리는 “이제 더는 말 않겠다”고 돌아섰다. 정적에게 먹잇감을 주지 않겠다는 본능에 가깝다. 집단적 IQ가 작동한 것이고, 후흑에 비유하자면 후(厚)의 발현이다. 민주당이 한미 동맹론자인 위성락 전 북핵 6자회담 대표와 반미를 내세운 통진당의 후예 3명을 동시에 비례대표로 공천한 것은 명백한 가치 충돌이다. 그럼에도 워싱턴에서 말이 먹히는 위 전 대표에게 2번을 부여한 것은 신의 한 수다. 싱하이밍 중국대사 앞 해프닝, 반미운동가 대거 공천, 중국-대만 셰셰(謝謝) 발언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 대표가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그조차 동맹파 외교관을 중용했다. 정치 IQ를 인정하든 흑(黑)의 작용으로 보든, 그건 유권자 몫이다. 대장동 쌍방울 등 숱한 사건에서 드러난 후흑의 징후와는 다른 정치 감각이다. 친윤 핵심 이철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은 어떤가. “한동훈 사천(私薦)”이란 비판은 김부겸의 침묵과 비교된다. 비례 후순위를 받고 사퇴한 주기환 후보를 용산 대통령실은 사흘 만에 대통령 특보로 임명했다. 둘 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여권 핵심부가 당의 간판인 한동훈 위원장을 겨냥한 일인데,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검찰 수사관 출신인 주 특보는 인수위, 광주시장 후보, 총선 비례 후보, 대통령 특보까지 2년 사이 4번의 공직 기회를 부여받았다. “또 검찰, 또 아는 사람”이란 야당 비판에 앞서 대통령 지지자들이 뒷목을 잡을 지경이다. 비상근 무보수라지만 특보 인선을 총선 뒤로 늦추지 않은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 때처럼 섬세한 과정 관리가 안 됐다는 의미다. 후도 흑도 안 느껴지는 결정이 용산에서 나올 때가 있다. 요즘 조국 전 장관에게선 강한 후의 기운이 있다. 그는 유재수 금융위 국장의 비리를 눈감아준 혐의로 2심까지 유죄 판단을 받았다. 청와대 핵심의 청탁을 받고 공직 감찰을 무마시킨 건 권력형 범죄다. 그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입시 문제는 있을지언정 권력형 비리는 없다”고 답한다. 하도 자신 있게 말하는 바람에 ‘유재수 건도 무죄로 바뀌었나’ 착각할 정도다. 그러나 어쩌랴. 조국혁신당에 표가 몰리는 건 이유가 있다. 대통령 주변과 검사들은 왜 느슨하게 수사받느냐는 질문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와 별개로 조국 본인과 황운하 의원처럼 하급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후보는 후보직에서 사퇴하기를 권한다. 그게 염치에 맞고, 그럴 때라야 조국은 후의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높은 정치 IQ와 후흑의 만남이 좋은 정치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 없이 선거 승리는 쉽지 않다. 2세기 전 프랑스 학자는 “모든 국가는 국민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요즘 유권자들의 정치 IQ는 정치인 못지않다. 여든 야든 높아진 유권자 수준에 걸맞게 정치 IQ를 더 높여야 한다. 이걸 못하고선 승리도 뭐도 없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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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210년 중립국 스웨덴의 나토 가입

    스웨덴이 210년 중립국 원칙을 벗어던지고 집단안보체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정식 가입한다. 지난해 4월 튀르키예에 이어 그제 헝가리 의회가 최종 동의함으로써 스웨덴은 32번째 회원국이 되기 위한 행정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나토 회원국이 되려면 모든 회원국 동의가 필요하다. 2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나토의 동진(東進)이 러시아 안보를 위협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는데, 그 침략 전쟁이 중립국까지 나토의 품을 찾게 만들었다. ▷국가 안보에는 세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강대국과 한편이 되거나(한미동맹), 강대국의 반대편에서 힘을 합치거나(소련에 맞선 나토), “누구도 편들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중립국이 되는 길이다. 현재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이 영세중립국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러시아 침공에 놀란 2년 전 나토 가입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스위스처럼 중립국으로 평가받았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중립국이 된 스웨덴은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의 침공을 모면하는 등 210년간 전쟁이 없었다. 냉전 붕괴 후에는 육군의 90%를 감축할 정도로 외침 걱정 없이 살았지만, 옛이야기가 됐다. ▷압박을 느낀 러시아 국방부는 모스크바 군관구와 레닌그라드 군관구를 14년 만에 부활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 해군에 핵심적인 발트해(海)를 나토 8개국이 완벽하게 둘러싸게 됐다. “발트해가 나토해(海)가 됐다”는 평가도 그럴듯하다. 중국도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초청했다. 나토를 전체주의에 맞서는 지구적 자유진영 안보체제로 확대하려는 것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구상이다. ▷스웨덴 가입 과정은 실리 챙기기 외교의 교과서에 가깝다. 헝가리는 친러-친중 총리가 21개월 동안 가입 동의를 미루며 스웨덴의 애를 태웠다. 44조 원 규모의 유럽연합(EU) 지원금, 러시아의 에너지, 중국의 자본 투자를 모두 챙기려는 속내다. 끝에서 두 번째로 동의해 준 튀르키예도 자국이 원하는 유럽연합 가입을 돕겠다는 약속을 받을 때까지 스웨덴을 괴롭혔다. 미국에서 F-16 전투기 40대 추가 수출 승인을 덤으로 챙겼다. ▷스웨덴 핀란드가 선택한 중립국 지위 포기는 한쪽 편에 서서 뭉쳐야 안심할 수 있는 집단안보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 도움 없이 스스로를 지켜야 할 수도 있다”는 유럽의 공포감이 배어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도 많다던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는 ‘2%가 최소치’로 바뀌었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군사 개입에 비판적이던 프랑스가 “우크라이나 파병도 가능하다”고 나설까. 국가 위상과 국익에 걸맞은 군사적 기여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어쩌면 지구 반대편 우리에게도 머잖아 닥칠 일일 수도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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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슬쩍 물러난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

    부 폐지를 전제로 ‘여성가족부의 마지막 장관’을 자처하던 김현숙 장관이 어제 이임식을 치렀다. 지난해 8월 새만금 잼버리 파행으로 사의를 표명한 지 5개월 만이다. 후임 김행 후보자가 하차하는 바람에 장관직 수행 기간은 21개월로 늘어났다. 후임자 지명 없이 차관 대행 체제로 갈 전망이다. 여성가족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1호 공약으로 폐지를 공언했던 조직이다. ▷폐지 추진일까, 존속일까. 대통령의 생각은 파악되지 않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1호 공약을 110대 국정 과제에서 제외시켰다. 공약 후퇴 논란이 생기자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고, 행정안전부는 몇 개월 뒤 폐지안까지 내놓았다. 요즘 용산 대통령실 기류는 애매하다. 공약으로는 살아있지만, 실행 여부는 총선 후 정국에 달렸다는 말도 들린다. 차관 대행 체제는 적어도 총선 전에는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이를 놓고 인사청문회 부담으로 총선 이후로 장관 임명을 미룬 것일 뿐이란 해석도 나온다. 어느 경우건 1호 공약인데도,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않는 것은 어색하다. ▷김 장관의 조용한 사퇴는 국정 얼버무리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새만금 잼버리는 어느 정부의 누가,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 명확히 가려야 한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무총리실이 나서서 김현숙 장관, 박보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잼버리 공동 조직위원장은 물론 집행위원장이던 김관영 전북지사를 상대로 정밀조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종합 조사는 없었다. 대신 감사원 감사가 9월 시작됐고, 아직 감사가 진행 중이라고 하며, 언제 결과가 나올지 감감무소식이다. 4월 총선 이후 ‘아무도 잼버리를 기억 못 할 때’를 골라 슬쩍 공개될 개연성이 없지 않다. ▷정부가 미적거렸다면 국회라도 갈피를 잡았어야 했다. 정기국회가 시작된 9월에 여가부와 문체부 장관이 ‘때맞춰’ 교체됐다. 잼버리 책임을 지닌 장관에게 직접 물을 방법이 사라졌다. 그러다 김행 후보자의 중도 사퇴가 빚어졌고 11월이 되어서야 김현숙 장관 상대로 본격 질문 기회가 왔다. 민주당 의원들은 소리만 높였지 새롭게 밝혀낸 게 없었다. 김 장관도 “이미 사과한 대로다. 사의를 표명했다”는 식으로 넘겼다. ▷여가부는 어떤 운명을 맞을까. 폐지 추진 가능성이 남았다지만 총선 이후라고 법 개정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누가 총선 승자일지 모른다. 국민의힘이 이기더라도 지금처럼 민주당이 반대하면 1년쯤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미제(未濟) 상태에서 김 장관은 숭실대 교수직으로 돌아간다. 하필 3월 개강이 코앞인 시점이다. 국무위원이자, 논쟁적 부처 수장인 그의 면직 결정인데, 1학기 강의 일정에 영향받은 건 아니길 바랄 뿐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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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경호처의 ‘입틀막’,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3, 4월쯤 윤석열 대통령의 외부 행사 때 누군가 큰 목소리로 정치적 구호를 외친다고 가정해 보자. 최저임금 인상 요구일 수도, 강제징용 사안일 수도 있겠다. 대통령은, 현장의 경호처 요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예상 밖 위기와 맞닥뜨리면 몸에 밴 무언가가 툭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최근 불거진 대통령 행사 강제퇴장 문제를 경호처 매뉴얼의 적절성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력과 국정 스타일의 문제로 살펴야 하는 이유다. ▷2번이나 발생했다. 1월 전북 전주에서 진보당 국회의원이, 지난주엔 대전 KAIST 졸업식에서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인 석사 졸업생이 소란을 일으켰다가 들려 나갔다. 둘 다 경호원 손에 입이 틀어막혔다.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가 아니라 정치 구호인 것은 맞다. 의도한 소란이란 걸 감안하더라도 ‘입틀막(입 틀어막기)’이라는 신조어가 말하는 과잉 대응 논란은 피할 수 없다. 누구나 촬영하고, 실시간 공유하는 세상이다. 옛 시절에 고여 있는 경호처 때문에 대통령이 손해를 봤다. ▷영상 속 윤 대통령은 행사에 집중했다. 전주에선 국회의원을 지나쳐 갔고, 대전에선 “실패를 두려워 말라”는 연설을 이어갔다. 용산 대통령실에선 두 장면을 복기하며 점검 회의를 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결론이 궁금하다. “규정대로 했을 뿐”이라는 경호처 말에 수긍하고, 동일 상황에는 동일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마무리했을까. 요즘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현직이던 2013년 연설 영상이 주목받고 있다. 영상 속 오바마는 불법 이민자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한국계 청년의 돌발 외침을 40초 넘게 놔두고, 경호원 개입을 제지하고, 그 청년과 대화하듯 연설했다. 그는 능숙하게 경청했다. ▷경호는 순간의 과업이다. 찰나의 대응에 안위가 결정되는 만큼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 그걸 인정하더라도 기계적 경호는 아쉬움을 남긴다. 국회의원을, 대학원 졸업생을 요원 4, 5명이 들어내지 않고 걸어 나가도록 안내했다면? 퇴장시키는 동안 주장을 외치도록 놓아뒀다면? 들어내기와 입 막기는 대통령 안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정치 경호였고, 심기 경호였다. 경호처 판단에는 우리 대통령이 저 정도 주장도 불편해할 것으로 본다는 뜻인가. ▷윤 대통령이 “발언을 멈춰달라. 행사가 끝난 뒤 나랑 더 이야기하자”고 다독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노정객 바이든 미 대통령이 작년 9월에 했던 그대로 말이다. 오바마나 바이든이나 오랜 현장정치 경험이 있다. 윤 대통령의 대민 접촉은 사전 기획, 선발대 점검, 경호 통제 속에서 대부분 진행됐다. 그렇다고 이런 일을 2번이나 겪고도 용산 참모들이 매뉴얼도 고치지 않고, 대통령의 임기응변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입틀막’만큼은 경호처가 경호 규정에서 삭제해야 한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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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바이든 조사한 특검 “기억력 나쁜 노인”

    올 11월 두 번째 4년 임기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억력 문제로 궁지에 몰렸다. 1942년생으로,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인 그가 재선되면 86세로 퇴임한다. 말실수 잦고, 자주 넘어지더니 이번엔 지난주 특별검사가 내놓은 345쪽 수사보고서가 미 정가를 흔들고 있다. 인스턴트 음식을 즐기는 과체중 도널드 트럼프(77)가 아니라 늘 운동하고 건강 식단을 챙기는 바이든(81)에게 생긴 건강 논란이 역설적이다. ▷한국계인 로버트 허(Hur) 특검은 바이든이 부통령에서 퇴임한 뒤 이란 우크라이나 군사기밀을 자택으로 가져간 일의 불법성을 수사했다. 바이든은 “참모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고, 1년 수사의 결론은 “중범죄 혐의 없음”이었다. 사달은 그 이유에서 시작됐다. 허 특검은 “기소하더라도 대통령 변호사들은 배심원단에게 바이든을 ‘착하지만 기억력은 나쁜 노인’으로 묘사할 것이고, 결국 유죄 평결을 받기 어렵다”고 썼다. 미 특검은 조사를 마칠 때 유죄 가능성 판단을 밝혀야 한다. ▷허 특검은 지난해 10월 8, 9일 이틀에 걸쳐 5시간 동안 바이든을 백악관에서 조사했다. 그는 보고서 곳곳에 “의사소통이 느리고… 기억력에 한계가 있다”는 표현을 남겼다. 바이든은 반박문을 통해 “조사 시점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7일) 이튿날로, 내가 국제분쟁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여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특검은 자택에서 찾은 녹음테이프에 기밀이 담겼는지도 확인했다. 확인 결과 바이든이 책 대필작가에게 구술한 테이프였다. 특검은 “녹음 속 바이든은 때론 듣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말이 느렸다(painfully slow)”거나 “수첩을 보고 말하는 것도 힘겨워했다”고 썼다. “대통령이 내부 회의 때나 외국 정상과 만날 때는 판단이 날카롭다”는 백악관 해명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메시지를 반박 못 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정치 공식이 워싱턴에서도 작동됐다. 민주당은 허 특검을 향해 “정치 목적으로 권한 밖의 일을 했다”는 공세를 폈다. 허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메릴랜드주 연방검사에 임명됐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공화당원이다. 하지만 그를 특검에 임명한 것은 바이든의 법무장관이었다. ▷“돈을 더 안 내면 러시아의 나토 공격을 장려하겠다”는 발언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킨 트럼프 캠프는 역공 소재로 삼고 있다. 공화당은 문제의 5시간 대화록을 의회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녹음 속 하나하나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91개 혐의로 4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 말과 행동이 둔해지는 바이든. 미국인들은 11월 두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투표권 없는 우리는 한반도 운명에 직결된 미국의 선택을 숨죽이며 지켜보게 됐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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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신생정당-위성정당 난립… 이름 짓기 백일장

    정치 뉴스를 읽으려면 정당명 10개쯤은 알아둬야 할 판이다. 개혁신당(이준석) 개혁미래당(이낙연) 새로운선택(금태섭) 등 제3지대 창당 붐이 일더니 비례 위성정당들도 태동을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국민의미래 창당 발기인 대회를 준비한다고 밝혔다. 비례대표 선거 방식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한다는 이유라지만 4월 총선 투표용지에 오를지도 모를 페이퍼 정당이다. 야권 전체가 비례 후보를 연합 공천하자는 새진보연합(용혜인)도 갓 태어났다. 익숙해지려던 새로운미래(이낙연) 미래대연합(이원욱)과 한국의희망(양향자)은 통합으로 사라졌다. ▷이러니 괄호 안에 정치인 이름을 안 넣으면 정치부 기자들도 정확히 기억 못 한다. 그럴수록 정치인들은 기억되는 이름 짓기에 골몰한다. 중앙선관위는 기존 정당과 일부 겹치거나 발음이 비슷해도 불허한다. 6년 전 국민의당(안철수)-바른정당(유승민) 합당 때 미래당으로 신청했으나 불허됐다. 우리미래라는 청년 결사체가 존재한다는 이유였다. 더불어민주당(문재인)도 2016년 현직 의원이 없던 민주당(김민석)이 명맥을 유지하는 바람에 민주당 대신 ‘더민주’라는 약칭을 썼다. ▷위성 정당들은 모태 정당이 쉽게 떠올라야 유리하다. 그러니 랩 가사처럼 운율(韻律)에도 신경 쓴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 이름으로 국민의길과 시민의힘은 막판까지 경합했다. 4년 전에는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자유한국당-미래한국당이란 쌍둥이 조합이 있었다. 첫 위성정당이라 이름이 겹쳐짐에도 당시 선관위가 평소보다 관대하게 나왔다. 현재 원내 정당들은 기억되고 싶은 가치를 담아 더불어, 민주, 국민, 힘, 정의라는 언어를 선점했으니 신생 정당들은 새 어휘를 찾아 나섰다. ▷비례정당명은 아니지만 요즘은 개혁과 미래가 인기어다. 그렇다 보니 벌써 다툼까지 생겼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파트너인 개혁미래당(이낙연)이 비슷하게 지었다고 꼬집었다. “장사 잘되는 중국집 옆에 비슷한 이름으로 또 내는 격”이라고 했다. 개혁미래당에선 “개혁이 어떻게 누군가의 전유물일 수 있느냐”라며 “한강 물에 등기했느냐”고 반문한다. 이름 다툼을 하는 것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을 높여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양당 통합의 순간에 당직과 공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지지율이 1차 변수다. ▷이렇게 지은 정당명이지만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정의당에 정의 없고, 민주당에 민주 없고, 국민의힘에는 국민도 힘도 없다”는 말은 정치의 실패가 만든 낭패다. 총선 국면에서 잘하기 경쟁에 나서고, 유권자 마음을 사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개혁과 미래를 입증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그러나 벌써부터 유권자들을 힘들게 만드니 걱정이 앞선다. 속 빈 강정 같은 정당 이름을 10개 넘게 기억하도록 만들고 있지 않나.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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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영방송 라디오와 그 앵커들[오늘과 내일/김승련]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법무장관 시절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는 (나에게) 반박하지 않고 라디오로 달려가 저 없을 때 뒤풀이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사건건 충돌하던 민주당 의원들을 꼬집은 말이다. 기자는 라디오 책임자나 앵커가 무반응했던 것이 의아했다. 국가가 소수에게만 허락한 전파를 이용해 정치인들이 주장을 마음껏 펴는데, 반론성 앵커 질문이 제대로 없다는 뜻 아닌가. 언제부턴가 공영방송 라디오가 흔들리고 있다. 황당한 사례가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기소된 안민석 의원이다. 그는 최순실을 향해 수조 원대 재산은닉 의혹 및 사드 배치 과정에 미국 록히드마틴으로부터 막대한 커미션을 수수했단 주장을 폈다. 대부분 2016년 말 라디오에서 기정사실처럼 한 말이다. 그때 최순실은 공적(公敵) 1호였다. 그렇다고 공영방송에서 근거 제시도 없이 비판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마주 앉아 있던 라디오 앵커들이 공적 책무를 방기한 듯했다. 대학교수가 진행한 YTN, 괴담 제조기라는 유튜버가 진행한 TBS 등을 돌아다니며 안 의원은 반복해 말했다. YTN 진행자가 “최순실의 독일 재산이 어느 정도냐”고 부추겼을 때 “독일 검찰과 독일 언론이 수조 원대로 추산한다”는 답이 나왔다. 안 의원은 앵커의 맞장구에 “독일 검찰의 돈세탁 자료도 얼추 봤다”는 말까지 했다. 자사 아나운서였던 MBC 라디오의 앵커는 록히드마틴 뒷돈 주장을 또 꺼냈음에도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다”며 마무리했다. “시간 부족으로 다시 모셔 확인하겠다”는 흔한 말도 없었다. 그 시절 앵커들은 △사실 검증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기를 잊은 듯했다. 안 의원을 향해 “왜 그게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느냐”거나, “자신 있게 말하시는데, 어떻게 알게 됐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럴 때라야 청취자들은 신뢰할지 말지를 판단할 것이고, 앵커와 프로그램의 신뢰도는 올라간다. 망가진 정치 담론을 위해서도 그렇다. 앵커의 반론성 질문이 살아 있을 때 정치인들은 긴장한다. 허튼소리를 했다간 공개 망신할 수 있다. 궤변 같은 주장이 어디 한 곳에서는 걸러져야 한다. 형사 기소된 수년 전 사례를 들어서 그렇지 크고 작은 일방적 주장은 요즘도 여전하다. 보수 패널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수많은 혐의를 두고 유죄를 전제로 발언해도 듣고만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앵커들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저널리즘 ABC를 몰라서는 아닐 것이다. 여야를 불러 일방적 주장을 듣기만 하고, 판단은 뉴스 소비자에게 맡기면 된다고 믿는 걸까. 한쪽에 유리한 방송을 한 라디오 앵커가 유튜브에 고정 출연해 그쪽에 치우친 발언을 내놓는 건 뭔가. 그런 앵커의 태연함에도, 그걸 두고 보는 방송사의 무신경함에도 놀랄 따름이다. MBC, KBS 등 공영방송 라디오 패널이 7 대 3 정도로 기울어진 지 오래다. 기울어진 패널에는 앵커 의견도 크게 작용한다. 불균형을 지적해도 오불관언이다. 당파성 강한 앵커가 기본 책무를 포기하다시피 해 저널리즘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을 지적하는 이 글은 신경이 쓰이기나 할까. 안민석 의원은 재산 은닉과 사드 뒷돈으로 최순실 가족과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1심에서 “1억 원 물어주라”는 판결이 났다가, 2심에선 “공익 목적이라 문제 안 된다”고 뒤집혔다. 딸 정유라가 “공익 목적이면 이래도 되냐”고 분기탱천했다. 정유라 모녀를 오래 비판해 왔지만, 이 말만큼은 동의한다. 안 의원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공익에 도움이 됐던 걸까. 아니면 앵커와 합작으로 공론장 라디오의 품격을 떨어뜨린 걸까. 대법원 판단이 궁금하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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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평화 배당금 끝나… ‘포스트 워’에서 ‘프리 워’로”

    영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2%인 국방예산을 2.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냉전 한복판이던 1960년대(5∼7%) 수준은 아니지만 21세기 최고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의지다. 그랜트 섑스 국방장관은 어제 이런 구상을 밝히면서 “평화 배당금을 누리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평화 배당금이란 국방비를 삭감해 생긴 여유 예산을 투자 배당금을 받아 생긴 목돈처럼 보는 표현이다. 냉전 후 각국은 복지와 교육 등에 더 썼다. ▷섑스 국방장관은 현 시점을 “전후(post-war) 시기를 벗어나 (전쟁을 앞둔) 전전(戰前·pre-war) 시기에 접어드는 새 시대의 여명”이라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에서 2개의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진짜 전쟁’은 따로 올 듯이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5년 내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에서 분쟁 현장을 보게 될 것”이라며 4개국을 거론했다. 미국과 동맹이고, 북한과 대적하고, 중국과 협력해야 하는 우리로선 엄중한 상황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이 국방비 증액에 나선 이유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한 축인 서유럽이 평화 배당금에 취해 국방 태세를 놓아버렸기 때문이란 판단에서다. 나토는 국방예산의 70%를 미국에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다. 독일 슈피겔지는 자국 주력 전투기인 128대 가운데 4대만이 비상시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비축 탄약이 이틀 분량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영국이 보유한 장거리포는 12문에 불과하다. 우리 흑표 K-2 전차가 방산 경쟁 때 명성 높던 독일 레오파드 전차를 번번이 이긴 것도 이래서 가능했다. ▷트럼프의 미국 중심주의도 유럽을 긴장하게 한다. 그가 11월 재선될 경우 나토 탈퇴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회원국 한 곳이 공격받으면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약 5조가 나토의 핵심이다. 트럼프는 2017년 나토 정상회의 때 모든 미 대통령이 반복 다짐했던 ‘조약 5조의 중요성’을 일부러 빼고 말했다.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비용 추가 부담을 요구한 것 이상으로 유럽 부자 나라들에 방위비 증액을 압박했던 것이다. ▷탈냉전 평화를 벗어나 새로운 전쟁 시대의 전야(前夜)가 된 지금 미국과 영국이 보는 적대세력에 러시아 외에 중국 이란 북한이 추가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섑스 국방장관은 연설에서 “냉전 때는 상대가 이성적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향후 30년 안보 위협의 성격을 보여주는 말이다. 미영의 전략 구상이지만, 한미동맹을 통해 연결된 우리 처지도 다를 게 없다. 1981년 GDP 대비 6.4%였던 우리 국방예산은 김영삼 정부 이후 2%대를 유지하고 있다. 2022년은 2.7%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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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15% 투표율로도 美 대선판 흔드는 아이오와의 힘

    미국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때 빼놓지 않고 요청하는 게 미국산 콩과 옥수수 수입 확대다. 간장 두부 식용유를 만드는 데 필요해 중국은 이들 작물의 최대 수입국이다. 수출 증대를 꾀한 것이겠지만, 두 작물이 대통령 선거에 영향력이 큰 ‘정치 곡물(穀物)’인 것이 진짜 이유일 수도 있겠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아이오와주의 대표 농산물인 콩과 옥수수의 판로 확대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서부 대평원 지역의 아이오와 그리고 지역 농산물이 정치적으로 대접받는 이유가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의 해 1월 가장 먼저 코커스(caucus·당원 대회)를 여는데, 그 경선 결과가 앞으로 펼쳐질 주별 경선에 심리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오와에서 우리 시간으로 오늘 오전 10시 공화당 코커스가 열리고, 오후쯤 결과가 나온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경선은 1∼6월 50개 주마다 1등 후보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2가지 방식이 있다. ▷우리처럼 하루 날을 잡아 방문 투표 또는 우편 사전투표를 하는 프라이머리(primary) 방식이 일반적이다. 코커스 방식은 예외적이다. 아이오와처럼 1500곳 투표소 현장을 직접 찾아 오후 7시부터 연설 듣고 토론한 뒤 투표하니 꽤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투표율에도 차이가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투표율이 15% 선에 그치는 반면 프라이머리는 2배인 30%를 넘어선다. ▷역설적이게도 낮은 투표율이 아이오와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공화당 후보라면 이론상 등록 유권자의 7∼8%만 내 편으로 만들어 투표시키면 50% 득표율로 1위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인구 300만 정도인 아이오와를 대선 주자들이 더 자주 찾는다. 맥줏집, 교회와 극장 앞, 학교 운동장에서 뉴스에서 보던 후보들과 선 채로 대화하는 경험이 많은 것이 아이오와 정치의 자부심이다. ▷올해 공화당 아이오와 코커스는 80년 만의 폭설과 영하 20도 맹추위로 낮은 투표율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 오죽했으면 1위인 트럼프조차 “죽도록 아프더라도 투표하고 죽으라”고 독려할까. 후보 캠프마다 한국에선 불법인 투표장까지 교통편 제공을 위한 당번을 정해 놓았고, 2위 경쟁을 하는 후보 캠프들은 역시 한국에선 불법인 가가호호 노크 유세를 혹한에도 중단하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50년 동안 4년마다 같은 날 열던 민주당의 코커스는 올해부터 3월로 미뤄졌다. 흑인 지지세가 주춤한 것을 감안해 흑인 유권자가 많은 2월 초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을 올해의 첫 경선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현직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있어 민주당 후보 경선은 크게 의미가 없어졌지만, 낮아진 흑인 지지율을 올리려고 머리를 짜낸 것이다. 이래저래 첫 경선장에 전략적 의미를 부여하는 건 대선 후보들에겐 인지상정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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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은 선거의 해 “인구 42억 사는 71개국서 투표” [횡설수설/김승련]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옛 유고 연방의 일부였던 동유럽 세르비아에선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1주일째 진행 중이다. 시위대 수천 명은 “대통령이 선거를 강탈했다”며 선거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2주 전 출범한 폴란드 정부는 “공영방송이 전임 정부의 선전도구였다”며 뉴스 전문채널의 방송을 중단시켰다. 전임 정부, 새 정부 모두 비교적 자유 선거로 집권한 나라에서 했는데 벌어진 일이다. ▷선거가 언제부턴가 두려움이란 표현과 쓰이곤 한다. 일부 정치인이 민주의 외피(外皮)를 입고 전횡을 저질러 그럴 것이다. 이런 우려 속에 내년은 71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독일 우루과이 등 자유 선거 43개국, 베네수엘라 튀르키예 등 불완전 선거 28개국 등 모두 71개국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집계했다. 71개국 인구는 42억 명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유권자가 투표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과 올해 선거를 치른 나라의 인구는 모두 약 12억 명이다. 2024년 선거는 그래서 지구적 현상이다. 1월 대만, 2월 인도네시아, 3월 러시아 이란, 4월 한국 인도, 11월 미국까지…. ▷선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란 믿음이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정보 왜곡, 부정 선거, 여론 조작 시비가 잦아졌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트럼프의 재등장을 걱정할까. 선거 아닌 선거를 치르는 푸틴, 시진핑 등이 ‘선거란 참 좋은 발명품’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24년 장기집권 푸틴은 5선에 도전하고, 지난해 3연임 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인민대표 2952 대 0이라는 만장일치 형식을 갖췄다. ▷1년 전 탄생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은 가짜 공포를 더 키웠다. 메타(옛 페이스북)는 AI 정치 광고를 금지시켰다. 구글은 AI에 묻는 대선 질문을 제한한다는 원칙은 정했지만, 무엇을 막을지는 결정 못 했다. 미국도 11월 대선을 앞두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떨고 있다는 말이다. “대외 개입을 줄이겠다”는 트럼프의 당선이 유리하다고 여긴다면 여론 왜곡에 나서지 말란 법도 없다. 푸틴, 시진핑, 하마스라면 유혹이 적잖을 것이다. ▷지금의 세계는 경제 공급망과 안보 지도로 촘촘히 엮여 있다. 1월에 뽑힐 새 대만 총통이 친중이냐 반중이냐는 중국의 북태평양 군사행동에 영향을 준다. 한미일 3국에게 중요하다. 우크라이나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5년 임기가 3월에 끝난다. 전쟁 탓에 연기됐지만 우크라이나 대선은 우리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외교정책과 주식시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 투자액이 85조 원을 넘나드는 수백만 서학(西學) 개미에게 지구 반대편 선거가 내 앞마당 선거인 것이다. 어느 선거 하나도 우리와 무관한 것은 없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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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콜로라도 대법원 “州 경선서 트럼프 이름 빼라”

    정치가 자기 일을 제때 못하고 법원에 번번이 판단을 맡기는 걸 두고 ‘정치의 사법화’라 부르곤 한다. 이런 일이 미국서도 생겼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내년 대선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내년 1월 공화당 주(州) 경선 절차에서 그의 이름을 투표용지에서 빼도록 명령했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뒤 2021년 의사당 습격을 선동한 행위가 국가 반란에 해당한다고 봤다. 트럼프에겐 4가지 형사재판과는 다른 차원의 사법 리스크다. ▷수정헌법 14조 3항이 근거였다. 미 의회는 남북전쟁 후 헌법에 14조를 추가했다. 노예에게 시민권을 주는 조항과 함께 “공직자가 국가 반란에 가담했다면 공직을 못 맡는다”는 내용을 3항에 담았다. 노예해방에 반대한 남군 핵심의 공직을 제한하는 155년 전 조치였지만, 어느 대선 후보도 이 조항을 걱정한 적은 없다. 미국에는 유죄 판결을 받은 후보일지라도 공직선거 출마 제한법이 없다. 트럼프에게 14조 3항은 느닷없는 폭탄이 됐다. ▷후보 자격이 최종 박탈된 것은 아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용지 인쇄 전인 내년 1월 4일까지 효력 발생을 늦췄고,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경우도 집행을 늦추겠다고 했다. 동일한 소송이 미네소타, 뉴햄프셔주에선 기각됐으니 결과를 짐작하기 어렵다. 미시간주 법원에선 1심 판사가 “민감한 정치 사건은 연방의회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판사가 결정하지 않겠다”며 각하했다. 법원의 권한 행사를 절제하겠다는 판단이었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1위를 달리자 역풍을 우려해 이 사안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처럼 정치권 뜻과 무관한 연방대법원의 대선 개입은 과거에도 있었다. 아들 부시와 앨 고어가 붙은 2000년 대선이 대표적이다. 펀칭 기계로 투표용지에 구멍을 뚫던 플로리다주에서 무효표가 쏟아졌다. 고령 은퇴자에게 익숙지 않은 방식이 도입되었고, 민주당 강세 지역인데도 부시가 앞섰다. 그 방식 도입 책임자가 부시의 친동생이어서 민주당은 반발했다. 재검표, 수작업 검표를 거치며 혼란이 한 달 넘게 지속되자 연방대법원이 나섰다. 검표 중단을 결정했고, 부시 승리가 확정됐다. ▷후보 자격은 연방대법원 심리 동안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현재는 6 대 3으로 보수 대법관이 많다. 3명은 트럼프가 직접 임명했다. 자격 박탈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가 많다. 파문을 일으킨 콜로라도 대법원도 4 대 3으로 가까스로 과반(過半)이었다. 주 대법원 판사 7명 모두 민주당이 지명했는데도 그랬다. 트럼프 캠프는 “마녀사냥이다. 뭉쳐야 한다”며 지지표 결집을 시도했다. 미국 대선은 분열과 갈등이 지배할 공산이 지금보다 더 커졌다. 지지층 결집이 셀지, 중도층이나 덜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의 이탈이 클지가 승부처가 됐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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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승련]김건희 특검법과 대통령의 선택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의 순간을 맞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8일 김건희 특검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다. 대통령은 내년 1월 중순쯤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총선, 민심, 책무, 가족이 뒤엉킨 사안으로 홀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전망된다. 총선을 앞둔 민주당 노림수에 동의 못 하리라 짐작된다. 법안을 보면 수사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도이치모터스뿐만 아니라 김 여사 가족 전체의 모든 주식을 수사할 수 있다. 반대 논리도 만만찮다.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등 거부했던 법안들이 지닌 정책적 독소가 특검법에는 없다. 타이밍 맞춘 듯 공개된 손가방 수수 영상에 상처받은 민심을 헤아려야 한다. 거부권은 대통령 권한이지만 배우자 수사여서 회피(回避) 사유라는 주장도 있다. 총선 코앞 특검법은 검찰이 빌미를 줬다. 문재인 검찰이 2년간 붙들다가 넘긴 수사는 3년 반이 넘도록 결론이 없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지난해 5월 “최종 처분만 남았다”고 한 말과 아귀가 안 맞는다. “한 톨의 증거도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상부의 지시에도 ‘증거가 안 된다’며 기소를 못 했다. …진짜 팩트”라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주장은 또 어떤가. 무죄로 결론짓고 1년 넘게 끌었다는 이야기다. 총선 뒤 “혐의 없음”이라고 할 참이었던가. 한동훈이든 원희룡이든 곧 등장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열흘 안쪽에 해법을 찾아야 하는 승부가 기다리고 있다. 경우의 수는 둘이다. 첫째,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길이다. 총선이 영부인 이슈로 뒤덮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특검법을 주도적으로 찬성하는 길이다. ‘한 톨 증거’도 없다면 피할 이유가 없다. 그동안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다만, 여야 간 절충의 묘가 더해져야 가능한 선택지다. 법안은 지금 통과시키더라도 수사는 총선 뒤로 늦출 수 있다. 또 과거 특검법이 그랬던 것처럼 수사 범위를 구체화하면서 좁히는 일이다. 둘 다 민주당으로선 양보하는 것 같지만 상식에 부합한다. 총선 영향 준다며 이재명 선고를 늦추는 마당에 영부인 특검을 시작하자는 민주당 주장에 중도층은 동의할까. 당정 일체를 강조해 온 김기현 체제에서 김건희 특검법은 금기어였다. 새 비대위원장은 두 번째 카드를 용산에 관철할 의지와 역량을 보여주기 바란다. 건의하는 형식이겠지만 대통령 가족 문제를 당이 주도하는 일이다.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자는 변화 요구를 현실로 만드는 일이다. 대통령의 최종 결심은 짐작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든 관계없이 새 비대위원장은 검찰에 수사 결과를 연내에 발표하도록 촉구하기 바란다. 이제라도 내용을 봐야 특검이 필요한지 아닌지 유권자가 판단할 것 아닌가. 법무장관이 늘 말하는 “이름 가리고 해도 동일한 수사”인지는 혹독하게 검증받게 될 것이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대외활동에 대한 종합적인 원칙도 제시해야 한다. “조심 또 조심하겠다”던 대선 때 약속에 가까울수록 민심은 더 수긍할 것이다. 김 여사 동영상 공개 후 3주가 흘렀건만 공식 반응이 없는 건 이해할 수 없다. 7년 넘게 공석인 특별감찰관도 임명해야 한다. 일련의 노력에 여론이 공감할 때라야 새 비대위원장의 특검법 절충 요구가 힘을 받는다. 절충 제안을 수용할지는 민주당 선택이지만 이 역시 총선 국면에서 심판받을 것이다. 리더의 진면목은 일상적 결정이 아니라 큰 결단에서 드러난다. 대통령도, 새 비대위원장도, 이재명 대표도 어떤 인물인지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앞으로 한 달 사이에 벌어질 일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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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지율 17% 찍은 日 기시다 [횡설수설/김승련]

    일본인이 뽑은 올해의 한자는 ‘세(稅)’였다. 증세와 감세가 뒤섞인 정책이 일본인 마음을 흔들었다는 뜻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방위비 증액과 저출산 대책을 위해 세금 인상을 공언해 왔다. 인기 없는 정책이었다. 그러다가 10월 들어 “더 걷은 세금을 돌려 준다”며 난데없이 감세 정책을 꺼냈다. 이게 역풍을 맞았다. 총리가 내년에 있을지 모를 총선을 앞두고 “인기에 영합한다”는 이유였다. 5월만 해도 50% 선이던 지지율은 어제 공개된 지지(時事)통신 조사에선 17.1%까지 추락했다. 이 숫자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정타는 총리 취임 2년을 넘기며 터진 자민당 파벌 비자금 사건이었다. 아베파(派)는 후원금 모금을 위해 기업이나 단체에 파는 행사 티켓(20만 엔·180만 원)을 의원 1인당 50장씩 할당했다. 할당량보다 더 팔면 의원들이 갖도록 했는데, 이렇게 챙겨둔 돈 45억 원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게 도쿄지검 특수부가 보는 혐의다. 여론이 나빠지자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등 장관 4명을 경질했고, 부대신 5명도 교체를 예고했다. 9명 모두 아베파 소속이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파벌 색깔 지우기에 나섰지만 결국은 제 발등 찍기에 가깝다. 이들 도움 없이는 총리직 지탱이 어렵다. 당내 역학관계가 그렇다. 기시다파는 아베파(의원 99명)에 비해 한참 모자란 4번째 파벌(45명 전후)이다. ‘아베시다 정권’이란 별칭에서 보듯 총리 이름이 오히려 뒤에 붙었다. 총리가 주도자가 아니란 뜻이다. 그가 내세운 ‘한국과 중국에는 엄격히’ 구호도 강경한 아베파를 의식한 것이었다. ▷자민당은 1955년 출범한 뒤로 64년 가까이 통치했고, 4년만 야당이었다.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정권교체란 파벌끼리 권력 넘겨주기와 동의어가 됐다. 그만큼 쉽다 보니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단명(短命) 총리가 속출했다. 아베(1년), 후쿠다(11개월), 아소(1년), 하토야마(8개월), 간 나오토(15개월), 노다(16개월), 2번째 아베(7년 8개월), 스가(1년)…. 거대 계파의 확실한 리더(작고한 아베 전 총리)만 예외였다. ▷소수파 리더인 기시다 총리는 스캔들을 견뎌낼까. 당내 경쟁자는 용퇴론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당 기반도 약한데, 지지율은 바닥이다. 기시다 총리가 출산율 제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 회생, 방위력 증강처럼 장기간 뒷심이 필요한 정책을 주도해 내기란 기대 난망이다. 신냉전시대를 맞은 지금 한미일 3각 협력은 더없이 중요해졌다. 3국 지도자의 위상과 협력 고리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고령의 바이든이 치를 내년 대선도 변수고, 자민당 내 온건파인 기시다도 휘청이고 있다. 우리만 고비를 맞은 게 아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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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 “워싱턴이 부서졌다”… 막장 정치에 美 의원 불출마 도미노

    미국 정치인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대선 및 상하원 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11월까지 1년 가까이 남았지만 벌써 38명째다. 이 중 절반은 주지사나 상원의원 등 다른 선출직에 도전하겠다지만 절반은 말 그대로 “정치를 떠난다”고 했다. 긴 연말 휴가를 마치는 1월 중에 불출마 선언이 더 나올 전망이다. 2022년과 2018년의 55명 불출마 기록이 깨질 듯하다. 상원 100명, 하원 435명 가운데 10% 정도다. ▷워싱턴에서 현역의원의 정치 포기가 주목받는 것은 손에 쥐다시피 한 재(再)당선을 포기하는 결심이어서 그렇다. 지난 20년간 90% 넘는 선거구에서 ‘재출마는 곧 당선’이었다. 미국에선 물갈이 전략공천이란 제도가 없다. 현역의원에게 별 하자가 없다면 경선에서 승리해 출마한다. 2022년 상원 선거 때 33곳에 출마한 현역의원은 전원 당선됐다. 재출마한 하원의원은 94.5%가 승리해 돌아왔다. 현역 공천 탈락이 30∼40%를 넘나드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현역 재당선은 TV 광고의 역할이 크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 상업 광고에선 자동차건 세탁비누건 경쟁 제품 깎아내리기가 허용된다. TV 선거광고도 마찬가지로 상대 후보 꼬집기가 넘쳐난다. 이런 TV 광고에 방송 횟수 상한선이 대체로 없다. 정치자금이 넉넉한 다선 현역의원이 TV 광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다. 일견 불공정한 이 제도는 미 대법원의 1976년 판례 때문에 고치기도 쉽지 않다. 대법원은 “TV 광고에 상한선을 두는 것은 ‘정치적 발언을 가로막는 것’으로,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불출마 의원들은 막장 정치를 이유로 꼽았다. 5선 하원의원인 켄 벅(64)은 “우리는 길을 잃었다. 트럼프의 대선 패배 부정을 똑바로 다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으로 초강경 노선을 걸었지만 당의 난맥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 밖에도 “워싱턴이 부서졌다(broken)”거나 “트럼프 계파의 혐오 정치가 문제”라는 표현이 불출마 선언문에 담겼다. 이런 자조와 무기력이 워싱턴 의사당에 퍼져 가자 공화당의 빌 하이징아 의원(54)은 “이렇게 의원 생활을 한다면 내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은가 묻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미 의회는 실질적 권한과 국정 참여의 명예가 존중받던 곳이다. 예산발의권도 의회에만 있고, 대통령도 의회 동의 없이는 전쟁을 치르지 못한다. 그런 미 의회가 안으로부터 흔들리고 있다. 불출마 선언을 한 하원의원은 “어린아이 칭얼거림 같아진 워싱턴 정치는 더 이상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일 만한 곳이 못 된다”고까지 평가했다. 미국 정치의 하향 평준화를 걱정하는 말인데, 우리 여의도 정치에 적용해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 안타깝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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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반대 의견 듣겠다”… 美 국무부의 ‘반대 채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취임 1주일 만에 이란 시리아 등 7개국 국민에게 발급한 비자를 전격 무효화시켰다. 미 국무부 외교관들은 연판장을 돌려 “국익을 해친다”며 반대했다. 국무부가 외교관들에게 ‘반대 전문(電文·dissent cable)’을 쓰도록 허용하는 공식 제도(‘반대 채널’)를 통한 것이었다. 서명자가 1000명을 넘었다. 국무부 외교관이 7600명이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큰 숫자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최근 중동 주재 외교관 몇몇을 불러모은 것은 반대 정책을 직접 듣는 자리였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반대 전문’을 쓰고 서명한 외교관 23명 중 일부다. 이들의 목소리는 크게 두 가지다. “이-하 전쟁에서 휴전을 독려하라. 이스라엘을 지지하더라도 민간시설을 공격할 때만큼은 비난하라.” 이스라엘에 휴전 요청도 않고, 어떤 비판도 않는 방침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요청이다. 국무장관이 면담에 나서야 할 정도로 국무부가 균열됐다는 뜻이다. ▷외교관들의 ‘반대 전문’ 제도는 베트남 전쟁이 수렁에 빠진 닉슨 행정부 때인 1971년 시작됐다.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 굵직한 군사작전이 비밀리에 부쳐지면서 외교관 266명이 집단 사표를 냈다. 전쟁 문건들이 언론에 유출되기 시작했다. “미 행정부가 이길 수 없는 전쟁인 걸 알면서도 확전시켰다”는 1급 기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도 그즈음 폭로됐다. 비밀주의가 가장 극심했던 닉슨 행정부 때 “반대 의견을 듣겠다”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는 뜻이겠다. ▷50년 남짓 동안 반대 전문은 연평균 4, 5건가량 작성됐다. 이라크 전쟁 반대(2003년), 보스니아 내전 개입 촉구(1993년) 등이 제안됐다. 이렇듯 직업 외교관이 실명으로 대통령과 장관에게 반대하는 제도인 만큼 용기가 필요하다. 국무부는 인사상 불이익이 없을 것을 약속했고, ‘건설적 반대상’을 만들어 독려하기까지 한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실무자의 반대 정책 제안으로 쉽사리 바뀌기는 어렵다. 하지만 외교관들이 집단사고에 휩쓸려 ‘윗사람이 결정한 일’이라며 반론을 삼키지 않아야 한다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국무부의 독특한 제도는 최고위 당국자가 혹시 놓쳤을 반대 논리를 듣는 기회를 더 갖겠다는 뜻이다. 9·11테러 때도 테러 징후를 놓쳤다고 판단한 중앙정보국(CIA)이 레드 셀(Red Cell)을 추가로 설치했고, 미 원자력위원회는 방사능 유출 사고를 겪은 뒤 비슷한 제도를 만들었다. 단 한 차례의 오판일지라도 초래할 위험이 큰 안보와 핵과학 영역에서 먼저 시행된 것이다. 정부 기구건 기업이건 판단 실수와 그에 따른 위험 요소를 줄이고자 한다면 고려해 봄 직하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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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승련]‘바비’ 케네디 아들의 돌풍… 확인된 정치 브랜드의 힘

    바이든-트럼프가 4년 만에 재대결할 공산이 큰 내년 미국 대선에 제3의 인물이 등장했다. 민주당원으로 출마했다가 불과 1개월 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선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다. 변호사이자 환경운동가인 그는 퀴니피액대가 이달 초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22% 지지를 얻었다. 바이든(39%) 트럼프(36%)에는 못 미치지만 만만찮은 숫자다. 18∼34세를 떼어놓으면 38%를 얻어 바이든(32%) 트럼프(27%)를 눌렀다. 최근 3개월 여론조사 평균치가 14.5%이니, 일시적 현상은 아니다. ▷그가 이처럼 돌풍의 주인공이 된 데는 이름의 힘이 크다. 큰아버지가 43세에 대통령이 됐다가 재임 중 살해된 존 F 케네디다. 아버지는 법무장관을 지낸 뒤 ‘바비(Bobby)’란 별명을 얻으며 개혁의 아이콘이 된 로버트 케네디. 두 형제는 1960년대 변화와 희망을 앞세워 기성정치를 흔들다가 5년 간격으로 총탄에 숨졌다. 69세가 되도록 선출직 출마 경험이 없던 케네디 가문의 아들이 단숨에 3위에 오른 이유다. ▷1등에게 주별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미국의 독특한 제도 때문에 그가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민주 공화 양당은 케네디가 누구 표를 더 잠식할지 한창 표 계산 중이다. 그의 환경 인권 불평등 개선 주장은 바이든 표를 가져갈 것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 백신의 위험성을 이유로 접종 반대에 앞장서면서 트럼프 추종자들의 표를 뺏어갈 수도 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그의 출마 선언 직후 “케네디를 지지하면 안 되는 23가지 이유”라는 성명을 발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케네디 바람의 실체는 지난주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제3 후보를 찍겠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응답자의 2%만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케네디 이름을 제시하며 물었더니 24%가 “케네디라면 찍겠다”고 답했다(바이든 33%, 트럼프 35%).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전망 속에 마음 줄 곳 없던 표심이 케네디라는 향수 짙은 이름을 통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선거에는 정책과 비전을 파는 마케팅 요소가 있으니 브랜드의 힘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1980년 이후 미 대통령 선거에서 가족 출마가 빈번한 것도 이런 인지도가 결정적일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가 총 3번 당선됐다. 재선 대통령 클린턴의 지명도에 힘입어 아내 힐러리도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오바마 재임 8년 동안 대통령 부인이었던 미셸의 출마 가능성도 끊이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의 막강한 뉴스 장악력과 함께 그 이름이 소환하는 시대의 추억은 묘한 힘을 지닌다. 트럼프 후보가 며칠 전 “나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TV 스타였던) 내 브랜드로 당선됐다”고 한 게 엉뚱한 말이 아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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