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94

추천

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raphy@donga.com

취재분야

2026-01-07~2026-02-06
여행34%
경제일반27%
문화 일반20%
음악7%
환경3%
종교3%
교육3%
기타3%
  • 서울 중앙고서 기형도 시인 시비(詩碑) 제막식 열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요절한 시인 기형도(1960~1989)의 ‘빈집’이 새겨진 시비(詩碑)가 29일 고인의 모교인 서울 종로구 중앙고 교정에 세워졌다. 이날 열린 제막식에서 중앙고 후배인 문예반 학생들이 시 ‘빈집’을 낭독했고, 대학시절 연세문학회에서 시인과 함께 활동하며 글벗으로 우정을 나눴던 성석제 소설가가 ‘기형도의 청년시절’을 강연했다. 성 작가는 “기형도는 대학시절부터 이미 완성된 시 세계를 갖고 있었다”며 “긴 세월 동안 기형도라는 이름이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를 다시 읽는 우리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에는 기형도문학관의 명예관장인 시인의 친누나 기향도 씨와 김종필 중앙고 교장, 김주선 중앙교우회 사무총장, 시인의 고교친구인 중앙고 70회 졸업생들이 참석했다. 1985년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기형도 시인은 ‘입 속의 검은 잎’, ‘질투는 나의 힘’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29
    • 좋아요
    • 코멘트
  •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 시민에 개방 행사 가진 5개국 대사관 돌아보니

    건축은 외교다. 대사관 건축엔 동서양 문화가 절묘하게 담겨 있다. 디자인과 설계, 나무와 돌, 인테리어와 가구까지…. 본국과 주재국 간의 팽팽한 긴장과 협력이 느껴진다. 그래서 대사관 건축 탐방은 무척 흥미롭다. 지난달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오픈하우스서울’이 평소 닫혀 있는 대사관을 개방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인터넷 신청이 1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였다. ○ 한옥을 재해석한 외교공관 주한 프랑스, 스위스, 미국대사관은 한옥을 재해석한 건축으로 한국인들에게 다가선다.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프랑스대사관은 프랑스에서 르코르뷔지에의 제자였던 김중업의 대표작이다. 1962년 완공한 프랑스대사관의 핵심은 한국적 선이 살아있는 지붕이다. 업무동의 지붕이 날아갈 듯 가볍게 하늘로 치솟았다면, 대사관저 지붕은 웅장하게 내려앉는다. 지붕은 단 4개의 기둥이 떠받들고, 두 개의 건물은 부드러운 곡선의 가교로 이어진다. 정원을 부채꼴처럼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은 마치 노래하고 군무를 추는 듯 경쾌하다. 외벽에는 김종학 윤명로 화가가 만든 모자이크로, 내부에는 앙리 마티스와 이응로 화백 등 양국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장식돼 있다. 특히 다이닝룸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눈길을 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는 “식탁 위 대동여지도는 프랑스식 테이블을 한국적인 영혼이 보호하고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정부는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서 45년간 사용했던 낡은 건물을 허물고 지난해 새 대사관을 완공했다. 스위스 출신 건축가는 설계 전 부석사, 소수서원 등을 답사한 뒤 ‘ㄷ’자 한옥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 목재 대들보와 기둥으로 한옥 특유의 켜켜이 반복되는 공간감과 리듬감을, 격자무늬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즐거움을 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대사 집무실이었다. 창 밖으로 돈의문 마을 뒤편 한양도성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뷰를 가졌다. 또한 중정에 설치된 지붕부터 바닥까지 쇠사슬로 연결해 빗물을 받는 스위스 예술가의 설치작품 ‘워터커넥션’도 재미와 감동을 준다. 빗물은 지하탱크로 모아서 정수한 뒤 화장실과 난방에 활용한다. ○ ‘미스터 션샤인’이 근무했던 옛 미국 공사관 정동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에 들어선 순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떠올랐다. 미 공사대리 유진 초이(이병헌)가 근무했을 법했던 옛 공사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한옥은 1884년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 건물이었다. 이 건물 뒤쪽으로 가면 1974년 신축한 미 대사관저가 나온다. 당시 필립 하비브 대사의 이름을 따 ‘하비브하우스’로 불린다. 잔디밭에 있는 해태 석상 중간에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 석상이 놓여져 있다. 해리스 대사 부부가 고양이를 좋아해 구해 놓은 앙증맞은 석상이다. 서까래와 기둥은 미국에서 가져온 더글러스전나무로 만들었고, 전통장인이 구운 기와로 지붕을 얹었다. 관저 안뜰 가운데에는 경주 포석정 수로를 본뜬 연못도 있다. 덕수궁 옆에 1892년 지어진 영국대사관저는 개화기 대사관 가운데 현재까지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유일한 곳이다. 빅토리아풍 건물인 대사관저로 들어서면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경북 안동 방문 사진도 걸려 있다. 대사관의 ‘서프라이즈’ 공간은 지하에 설치된 영국식 펍 ‘브로턴 바’다. 매주 금요일 밤 주한 외교관들의 사교 공간으로, 대사관 직원들이 자원봉사로 바텐딩을 한다. 닉 메타 부대사는 “주한 대사관 중 바가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고 자랑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주한 이집트대사관은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은 듯한 형태다. 설계자인 건축가 장윤규는 이 건물을 ‘떠 있는 돌’에 은유했다. 돌은 바로 이집트 문명을 다시 재발견하게 한 로제타스톤. 대사관 외벽에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내부 1층 로비는 이집트 신전처럼 꾸며져 있다. 장 건축가는 “돌이 자유롭게 떠 있다는 것은 신화적인 상상”이라며 “건물 전체를 상형문자로 뒤덮어 돌이라는 물성(物性)을 제거하고 문자와 기호만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디자인 설계부터 인테리어·가구까지…대사관 건축으로 보는 외교

    건축은 외교다. 대사관 건축엔 동서양 문화가 절묘하게 담겨 있다. 디자인과 설계, 나무와 돌, 인테리어와 가구까지…. 본국과 주재국 간의 팽팽한 긴장과 협력이 느껴진다. 그래서 대사관 건축 탐방은 무척 흥미롭다. 지난달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오픈하우스서울 2019’가 평소 들어가 볼 수 없는 대사관을 탐방하는 특별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인터넷 신청이 1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였다. ●‘한옥의 재해석’ 프랑스, 스위스 대사관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은 김중업의 대표작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제자로 함께 일했던 1세대 건축가. 1962년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완공한 프랑스대사관의 핵심은 지붕이다. 김중업은 한국적 건축의 특징을 바로 지붕에서 찾았다. 대사관 업무동의 지붕은 날아갈 듯 가볍게 하늘로 치솟았다면, 대사관저 지붕은 웅장하게 내리누른 형상이다. 거대한 지붕이 단 4개의 기둥으로 떠받들어지고, 두 개의 건물을 부드러운 곡선의 가교가 이어준다. 중앙 정원을 두고 부채꼴처럼 둘러싼 건축물은 마치 노래하고 군무를 추는 듯 경쾌한 형상이다. 대사관저 외벽에는 김종학·윤명로 화가가 만든 모자이크가, 내부에는 앙리 마티스와 이응로 화백 등 양국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특히 다이닝룸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눈길을 끈다. 필립 르포르 주한프랑스대사는 “식탁 위 대동여지도 장식은 프랑스식 테이블을 한국적인 영혼이 보호하고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라며 “대사관은 한국과 프랑스의 정신을 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 정부는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서 45년간 사용했던 낡은 건물을 허물고 2017년 새 대사관을 지었다. 주변에 고층아파트가 즐비하지만, 주한스위스대사관은 낮은 한옥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 원래 땅의 능선을 따라 3층이던 건물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서 1층으로 점차 낮아진다. 스위스 건축회사는 설계 전 부석사, 소수서원 등 전통한옥을 답사했다고 한다. 목재 대들보와 기둥이 보이는 내부는 한옥 특유의 켜켜이 반복되는 공간감과 리듬감, 격자무늬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즐거움을 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대사 집무실에서 바라본 창 밖 풍경이었다. 돈의문 마을 뒤편 한양도성이 창문 가득히 눈에 들어왔다. 또한 중정에 설치된 빗물받이용 설치작품인 ‘워터커넥션’도 재미와 감동을 준다. 지붕에서 바닥까지 쇠사슬로 연결해 스위스에서 가져온 돌에 묶었고, 바닥에 파인 수로를 따라 흐르도록 했다. 스위스 예술가 레나 마리아 튀링의 작품으로 비가 올 때 빗물 떨어지는 소리와 모습에 취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빗물은 지하탱크로 모아서 정수한 뒤 화장실과 난방에 활용한다. 또한 지열과 태양열을 이용해 대사관에서 쓰는 모든 냉방과 난방, 전기를 자급자족하는 친환경 건물이기도 하다. ●‘미스터 션샤인’이 근무했던 옛 미국 공사관 정동에 자리 잡은 미국 대사관저에 들어선 순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떠올랐다. 미 공사대리 유진 초이(이병헌)가 근무하던 옛 공사관 별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옛 미국공사관은 1884년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 건물이었다. 드라마의 실제 촬영지는 충북 청주시 ‘운보의 집’이지만, 한옥과 나무가 어우러진 분위기는 무척 흡사한 느낌이었다. 옛 미국공사관 뒤쪽으로 가면 1974년 신축한 미 대사관저가 나온다. 당시 건물을 지은 필립 하비브 대사의 이름을 따 ‘하비브하우스’로 불린다. 건축가이자 민속학자인 조자용이 설계하고, 전통목조건축 대가인 신영훈과 인간문화재 이광규 대목장 등이 참여했다. 미국 오리건 주와 테네시 주에서 자라는 더글러스전나무로 서까래와 기둥을 만들었고, 전통 기와 장인이 만든 기와로 지붕을 만들었다. 잔디밭에는 해태 석상 중간에 작고 귀여운 고양이 석상이 눈길을 끈다. 해리스 대사 부부가 고양이를 좋아해 구해놓은 앙증맞은 석상이다. 대사관저의 리셉션 실에 있는 벽난로 굴뚝에는 ‘녕(寧·편안할 녕)’ 자가 새겨져 있다. 관저 안뜰 한가운데에는 경주 포석정 수로를 본뜬 연못도 있다. 미국 대사관의 직원은 “포석정 모양 수로에서 술잔을 한번 띄워놓아 보았더니 잘 흘러가지는 않았다. 물고기를 기르는 관상용 연못”이라고 귀띔했다.●독특한 자국 문화를 살린 영국, 이집트 대사관 덕수궁 옆에 있는 영국대사관저는 1892년에 지어진 건물로 개화기 대사관 가운데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사용하는 유일한 외교공관이다. 빅토리아풍 빨간 벽돌 건물인 대사관저로 들어서면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경북 안동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과 기념품들이 전시돼있다. 신축한 건물 지하에는 주한외교관들의 사교공간인 영국식 펍 ‘브로턴 바’가 있다. 1797년 한반도에 도착한 첫 번째 영국인 선장 윌리엄 브로턴 대위를 기념하는 바다. 매주 금요일 밤 운영하는 회원제 술집으로, 닉 메타 부대사 등 대사관 직원들이 자원봉사로 바텐딩을 한다. 메타 부대사는 “한국에 있는 대사관 중 바가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며 “서울 최고의 진(gin)과 위스키 컬렉션을 갖춘 곳”이라고 자랑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주한이집트대사관은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은 듯한 형태다. 이집트 대사관을 설계한 건축가 장윤규는 건축물을 ‘떠있는 돌(floating stone)’에서 은유했다고 한다. 돌은 바로 이집트문명을 다시 재발견하게 한 로제타스톤. 대사관 외벽에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건물 내부 1층 로비는 이집트 신전처럼 꾸며져 있다. 장윤규 건축가는 “돌이 자유롭게 떠 있다는 것은 신화적인 상상”이라며 “원래 계획은 건물 전체를 상형문자로 뒤덮어 돌이라는 물성(物性)을 제거하고 문자와 기호만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 기자raphy@donga.com}

    • 2019-10-28
    • 좋아요
    • 코멘트
  • 환경과 인간을 생각하며… 드론으로 기록한 ‘봉다리의 여행’

    검은색 코트를 입은 사내가 서 있다. 그 앞에 검정 비닐봉지가 바람에 흩날린다. 비닐은 르코르뷔지에의 유명 건축물인 프랑스 롱샹성당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피사의 사탑,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으로도 흘러간다. 사내의 얼굴에서 출발한 드론의 카메라는 검정 비닐을 쫓아가다가 세계의 랜드마크 건축물을 천천히 밑에서 위로 훑으며 치솟는다. 우주에서 내려다본 마을과 도시, 지구는 둥그렇게 원이 된다…. 13년째 검고 흰 비닐봉지와 함께 세계 각국의 자연과 건축물을 촬영하며 여행하는 사내가 있다. 퍼포먼스,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작가 이경호(52·사진). 유튜브에 공개된 그의 영상은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물, 지구를 색다른 차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프랑스 유학 시절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2006년 우연히 비닐봉지가 선풍기 바람에 날리는 모습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후 경북 경주, 비무장지대(DMZ)와 같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봉다리의 비행’을 담은 ‘Some Where’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는 “마치 일기장을 적는 것처럼 가는 곳마다 도시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현지에서 썼던 흰색, 검은색, 노란색 비닐봉지를 날리며 촬영했다. 구속 없이 자유로운 ‘봉다리의 여행’에는 짙은 허무주의도 배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봉다리는 2009년부터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생태 사상가 토머스 베리(1914∼2009) 연구 모임인 ‘지구와 사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봉다리는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검은 석유덩어리’를 상징하게 됐다. 그는 2, 3년 전부터는 드론을 활용해 검은 봉다리의 비행을 좇고 있다. 알프스산맥의 빙하가 녹는 산골,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태평양의 마을에도 봉다리는 날아다닌다. 드론 촬영 영상은 작은 비닐봉지에서 출발해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 지구적인 모습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시각적 충격을 더한다. 그는 “두렵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더욱 직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환경 파괴의 주범인 비닐봉지를 ‘생태운동’의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한 ‘세종 카운터웨이브’ 전시에서 신작 ‘흑 백’을 선보였다.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선풍기 바람에 검은색, 흰색 비닐봉지 수십 개가 끊임없이 유영하는 작품이다. 전시 장소인 광화문의 장소성에 주목한 작품으로, 흑백의 봉다리는 촛불과 태극기 시위가 벌어지는 광화문광장의 좌우, 남북, 계층 간의 분노와 대립을 풍자하는 상징이다. 이 작가는 “자유롭게 섞이며 날아다니는 봉다리를 보며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고, 사람뿐 아니라 자연과 동물까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12월 15일까지.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영하는 ‘검은 봉다리’…지구 속 우리의 현실을 바라본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사내가 서 있다. 그 앞에 검정 비닐 봉지가 바람에 흩날린다. 비닐 은 르코르뷔지에의 유명 건축물인 프랑스 롱샹성당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 피사의 사탑,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으로도 흘러간다. 사내의 얼굴에서 출발한 드론의 카메라는 검정 비닐을 쫓아가다가 세계의 랜드마크 건축물을 천천히 밑에서 위로 훑으며 치솟는다. 우주에서 내려다본 마을과 도시, 지구는 둥그렇게 원이 된다…. 13년째 검고 흰 비닐봉지와 함께 세계 각국의 자연과 건축물을 촬영하며 여행하는 사내가 있다. 퍼포먼스,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작가 이경호. 유튜브에 공개돼 있는 그의 영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건축물, 지구를 색다른 차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프랑스 유학시절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2006년 우연히 비닐봉지가 선풍기 바람에 날리는 모습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후 경주, DMZ와 같은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봉다리의 비행’을 담은 ‘Some Where’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는 “마치 일기장을 적는 것처럼 가는 곳마다 도시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현지에서 썼던 흰색, 검은색, 노란색 비닐 봉지를 날리며 촬영했다. 구속없이 자유로운 ‘봉다리의 여행’에는 짙은 허무주의도 배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봉다리는 2009년부터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생태 사상가 토마스 베리(1914~2009) 연구모임인 ‘지구와 사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그의 봉다리는 이제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검은 석유덩어리’를 상징하게 됐다. 그는 2~3년전부터는 드론을 활용해 검은 봉다리의 비행을 좇고 있다. 알프스산의 빙하가 녹는 산골,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위기에 처한 태평양의 마을에도 봉다리는 날아다닌다. 드론 촬영 영상은 작은 비닐봉지에서 출발해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지구적인 모습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시각적 충격을 더한다. 그는 “두렵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더욱 직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환경 파괴의 주범인 비닐봉지를 ‘생태운동’의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한 ‘세종 카운터웨이브’ 전시에서 신작 ‘흑 백’을 선보였다.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선풍기 바람에 검은색, 흰색 비닐봉지 수십 개가 끊임없이 유영하는 작품이다. 전시장소인 광화문의 장소성에 주목한 작품으로, 흑백의 봉다리는 촛불과 태극기 시위가 벌어지는 광화문 광장의 좌우, 남북, 계층 간의 분노와 대립을 풍자하는 상징이다. 이 작가는 “자유롭게 섞이며 날아다니는 봉다리를 보며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고, 사람 뿐 아니라 자연과 동물까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12월15일까지.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24
    • 좋아요
    • 코멘트
  • 가는 발길 멈춰 세운… 감성충만 ‘힙지로’

    360도 탁 트인 전망. 북한산과 종묘, 남산타워, 광화문의 고층빌딩 숲까지…. 세운상가 9층 전망대와 세운상가 3층과 대림상가를 잇는 공중 보행교는 요즘 가장 떠오르는 곳이다. ‘을지로 루프톱’으로 불리는 이곳엔 해질 녘이면 연인들이 몰려든다. 가장 아름다운 청계천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인 데다 다전식당, 호랑이 카페 등 야외에 테이블을 내놓는 ‘힙한’ 가게들이 성업 중이기 때문이다. 을지로에 들어선 가게들은 대개 크고 특별한 간판을 내걸지 않는다. 작은 입간판을 내놓거나, 계단 한쪽에 붙은 포스터가 간판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숨어 있는 을지로의 명소를 공공미술과 디자인으로 해석해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을지로3가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1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 지하보행로에는 70여 m에 이르는 구간에 ‘을지로 사이’가 오픈했다. 신한카드와 서울교통공사, 굿네이버스가 함께 만든 문화예술 전시공간으로, 세운상가의 장인들과 을지로의 핫한 가게들의 이야기가 예술작품으로 전시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계탑 광장. 파리, 런던, 베이징,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시간을 보여주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계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을지로를 상징하는 듯하다. ‘메이드인을지로’ 섹션에서는 세운상가 기술장인들의 작업물이 아트워크로 전시됐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다다익선’ TV제작에 참여했던 이정성 엔지니어, 50여 년간 3대에 걸쳐 경찰관과 소방관용 특수조끼를 만들어 온 이종훈 장인, 게임기를 만들다 화폐교환기를 발명한 주승문 장인…. 을지로에서 생산되는 부품과 공구, 인쇄기와 타일도기, 조명기구 등도 지역 디자이너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소상공인과 장인, 예술가를 연결시키는 ‘을지로3가 프로젝트’는 2년 전부터 시작됐다. 신한카드 본사가 을지로로 옮겨오면서 지역의 중소상공인 가맹점과 상생프로젝트를 펼친 것. 기업이 도심재생을 통해 사회공헌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시도였다. 올해 3월에는 어두운 골목길에 있던 낙후된 서울시립청소년센터를 지역과 사람, 문화를 잇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단장했다. 이곳에서는 을지로를 다룬 독립출판물, 전문매거진, 영상 콘텐츠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고강석 신한카드 브랜드기획팀 부부장은 “을지로 고유의 지역 문화와 자산을 활용하는 공공디자인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설명했다. 16일부터는 을지로 12곳의 가게와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팝업 전시인 ‘을지로 아트위크’도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허준 선생이 환자를 치료하던 ‘혜민서’ 자리에서 운영 중인 ‘커피 한약방’에서는 전통민화가 김제민 작가의 ‘향기약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아티스트 부채로 마치 한약을 달이듯 정성껏 커피를 식혀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혜민당’에서는 디저트를 풍경으로 담은 조은아 작가의 이색적인 동양화, 그리고 동양화를 닮은 특이한 디저트를 만날 수 있다. ‘그랑블루’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한 함영훈 작가의 ‘LOVE’가 전시되고, 세운상가 ‘호랑이 카페’에는 카프카의 이방인 등 문학작품을 재해석한 문신기 작가의 그림이 전시된다. 12곳의 가게에서는 취향에 따라 을지로를 즐길 수 있는 ‘을지로 컬처맵’을 나눠준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디자인과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 을지로3가 숨은 ‘핫플레이스’

    360도 탁 트인 전망. 북한산과 종묘, 남산타워, 광화문의 고층빌딩 숲까지…. 세운상가 9층 전망대와 세운상가 3층과 대림상가를 잇는 공중 보행교는 요즘 가장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다. ‘을지로 루프탑’으로 불리는 이 곳엔 해질녘이면 데이트족들이 몰려든다. 가장 아름다운 청계천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인데다, 다전식당, 호랑이카페 등 야외에 테이블을 내놓는 힙한 가게들이 성업 중이기 때문이다. 을지로에 들어선 가게들은 대게 특별한 간판을 내걸지 않는다. 작은 입간판을 내놓거나, 계단 한 켠에 붙은 포스터가 간판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숨어 있는 을지로의 명소를 공공미술과 디자인으로 해석해 좀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을지로3가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 을지로3가역 문화예술 전시공간 ‘을지로 사이’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 지하보행로에는 70여m에 이르는 구간에 ‘을지로 사이’가 오픈했다. 신한카드와 서울교통공사, 굿네이버스가 함께 만든 문화예술 전시공간으로, 세운상가의 장인들과 을지로의 핫한 가게들의 이야기가 예술작품으로 전시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계탑 광장. 파리, 런던, 베이징, 뉴욕 등 세계 주요도시의 시간을 보여주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계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을지로를 상징하는 듯하다. ‘메이드인을지로’ 섹션에서는 세운상가의 기술장인들의 작업물이 아트워크로 전시됐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다다익선’ TV제작에 참여했던 이정성 엔지니어, 50여년간 3대에 걸쳐 경찰관과 소방관용 특수조끼를 만들어 온 이종훈 장인, 게임기를 만들다 화폐교환기를 발명한 주승문 장인…. 을지로에서 생산되는 부품과 공구, 인쇄기와 타일도기, 조명기구 등도 지역 디자이너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을지로를 이용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을지로를 관찰하는 작가들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 곳만의 ‘을지로다운’ 이야기를 지역 스튜디오 ‘망우삼림’의 윤병주 작가의 눈으로 담은 갤러리도 마련됐다. 을지로3가역 12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을지로 컬쳐존’에서는 독립출판물, 전문매거진, 영상팀의 특별 콘텐츠를 한 곳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을지로를 취향대로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도인 ‘을지로 컬처맵’도 디지털로 감상할 수 있다. ● 디자인과 예술을 통한 도심재생 프로젝트 소상공인과 장인, 예술가를 연결시키는 ‘을지로3가 프로젝트’는 2년 전부터 시작됐다. 신한카드가 본사를 을지로로 옮겨오면서 지역의 중소상공인 가맹점과 상생프로젝트를 펼친 것. 기업이 도심재생을 통해 사회공헌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시도였다. 올해 3월에는 어두운 골목길에 있던 낙후된 서울시립청소년센터를 지역과 사람, 문화를 잇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단장했다. 이곳에서는 을지로를 다룬 독립출판물, 전문매거진, 영상 콘텐츠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고강석 신한카드 브랜드기획팀 부부장은 “을지로 고유의 지역 문화와 자산을 활용하는 공공디자인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설명했다. 16일부터는 을지로 12곳의 가게와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팝업 전시인 ‘을지로 아트위크’도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허준 선생이 환자를 치료하던 ‘혜민서’ 자리에서 운영 중인 ‘커피 한약방’에서는 전통민화가 김제민 작가의 ‘향기약방’ 전시가 열리고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아티스트 부채로 마치 한약을 달이듯 정성껏 커피를 식혀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혜민당’에서는 디저트를 풍경으로 담은 조은아 작가의 이색적인 동양화, 그리고 동양화를 닮은 특이한 디저트를 만날 수 있다. ‘그랑블루’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한 함영훈 작가의 미디어아트 ‘LOVE’가 전시되고, 카페 ‘녁’에서는 김건주 작가가 가게의 벽과 유리창을 숲으로 변신시켰다. 숲 속 동물을 담은 일러스트 공간과 아트같은 푸드 플레이팅을 경험할 수 있다. 아티스트들의 영감의 성지로 유명한 ‘호텔수선화’에서는 다양한 감각의 비주얼 쇼가 열리고, 세운상가 ‘호랑이 카페’에서는 문신기 작가가 카프카의 ‘이방인’ 등 문학을 재해석한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챔프커피’에는 잭슨심 작가의 ‘아임챔피언, 킹콩!’ 작품 감상과 함께 응원메시지를 담은 킹콩 스탬프도 가져갈 수 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22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감정이 스며든 정치가 사회를 정의롭게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우리 사회는 반으로 갈라졌다. 서초동과 광화문. 진영논리로 둘러싸인 채 각자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혐오하기까지 한다. 사랑의 해방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한 저자는 정치에서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에서 호소한다. 분노, 두려움, 공감, 혐오, 시기심, 죄책감, 비애, 사랑…. 그러나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 ‘감정’은 학문의 대상이 아니었다. 저자는 법, 철학, 문학, 오페라, 건축, 동물학 등을 넘나들며 감정이 어떻게 공적 영역을 지배하는지를 분석한다. 그중 ‘혐오’ 부분이 가장 눈에 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공동체는 늘 경쟁적인 서열 매김이 일어난다. 복종의 핵심 장치는 혐오였다. 혐오의 ‘1차적 대상’은 땀, 오줌, 배설물, 정액, 피 등 동물적 특성을 상기시키는 신체 분비물. 오염을 피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투사적 혐오’는 사회적이다. 머릿속에서 ‘더 동물적’이라고 덧씌운 하위계층을 만들어내 배제하고, 낙인찍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정치는 박애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군주에 대한 두려움, 복종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이 한데 뭉칠 수 없었다. 시민들은 서로 협력해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생각해내야 했다. …혐오는 어떤 집단들에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그들을 동물로 그린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상상적 연결을 부추기는 것은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정의를 위해 중요하다.”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 창립총회

    일제강점기 3·1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펼쳐졌던 ‘6·10만세운동’ 기념사업회 창립총회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동화빌딩 별관에서 열렸다. 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전 주일대사)는 인사말에서 “6·10만세운동은 온 국민이 정치적 성향과 사상을 뛰어넘어 뭉친 거족적 민족운동이었다”며 “100주년을 앞두고 사단법인 창립을 통해 통합의 정신을 되살리려 한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학술심포지엄, 100주년 운동사 발간, 종로3가역 테마역 조성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사에는 박찬승(한양대) 장석흥 교수(국민대), 6·10만세운동 유공자 유족인 이원정 곽준 선생, 유영환 ㈜효성 전무, 김종필 중앙고 교장,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고문, 이승철 전 고려대 기금교수, 감사에 김재호 바른 법무법인 대표가 뽑혔다. 6·10만세운동은 1926년 순종 인산일에 중앙고보, 연희전문 등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합세해 벌였던 만세시위로, 3·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함께 국내 3대 독립운동으로 꼽힌다. 이날 총회에는 양봉진 전 현대자원개발 사장, 김주윤 전 흥국생명 사장, 유종성 가천대 교수(전 경실련 사무총장), 유족인 권옥희 김원진 선생 등 32명이 창립회원으로 참석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뒤뜰 툇마루에 가을이 내려앉다… 혜곡 최순우 옛집에 들어서서

    작고 예쁜 샛노란 산국(山菊)이 꽃망울을 확 터뜨렸다. 감나무 아래 흙에는 잘 익은 단감이 떨어져 주황색 물감으로 색칠을 해놓았다. 작살나무엔 진주구슬 같은 보랏빛 열매가, 산사나무엔 붉은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최순우 옛집’의 툇마루에서 바라본 뒤뜰엔 가을색이 완연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1914∼1984·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작고하실 때까지 돌과 나무를 가꾸며 살았던 운치 있는 한옥이다. 오랜 향나무와 노송이 서 있는 앞마당과 사랑채를 지나면 이 집의 백미인 뒤뜰이 나타난다. 참나무 산수유 모과 목련 매화 등 고인이 직접 가꿨던 나무와 화초 사이로 문인석과 이지러진 돌확,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긴 괴석, 해학적인 얼굴의 벅수까지…. 대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달빛을 감상하고,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사색할 수 있는 선비의 정원이다. 이날 ‘혜곡의 뜰’ 강의를 한 안선영 생명다양성재단 책임연구원은 “전통한옥의 정원은 ‘차경(借景)’이란 표현을 쓴다. 1930년대 지어진 근대한옥이지만 최순우 옛집은 주변의 산과 나무의 풍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온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최순우 옛집이 귀한 이유는 정원에 도토리나무가 있다는 겁니다. 원래 정원엔 비싸고 귀한 나무를 심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를 잘 심지 않아요. 최 선생은 진달래 소나무 대나무 머위 벌개미취 옥잠화 같은 우리 산하에서 자라는 친근하고 소박한 나무와 꽃, 풀을 심고 키우며 정원을 즐기셨습니다.” 실제로 뒤뜰 가득히 노랗게 물들이는 들국화는 1960년대 초반 최 선생이 전남 강진에서 고려청자 가마터를 발굴할 때 길가에서 한두 그루 캐온 것이 퍼진 것이라고 한다. 매화나무는 1979년 도예가 노경조 씨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인사차 들렀을 때 최 선생과 함께 종로 화훼시장에서 사서 심은 것이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사연이 가득하다.선생이 직접 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時深山·문을 닫으면 이곳이 깊은 산중)’이란 현판처럼 집 안 마당에 들어서면 도심의 소음이 딱 끊기고 고요한 세상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을 받는다. 사방탁자, 문갑 등으로 정갈하게 꾸며 있는 안채 사랑채는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가 살았던 집처럼 작지만 결코 모자라지도 않는 공간이다. 이 집은 선생의 사후에 매각돼 빌라로 재건축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2004년 4월 시민들과 지인들이 모금 운동을 통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문화유산 1호’로 일반에 공개했다. 이 집에는 요즘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가을을 즐기고 가는 시민들이 많다. 9일에는 뒤뜰에서 리코더 연주로 ‘음악이 꽃피는 한옥’ 콘서트가 열렸고, 안채와 사랑채에서는 11월 16일까지 김종학 화백 수집가구 전시회가 열린다.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시민문화유산 1호’ 성북동 최순우 옛집을 찾아서[전승훈 기자의 도시산책]

    작고 예쁜 샛노란 산국(山菊)이 꽃망울을 확 터뜨렸다. 감나무 아래 흙에는 잘 익은 단감이 뚝뚝 떨어져 주황색 물감 색칠을 해놓았다. 작살나무엔 진주구슬 같은 보랏빛 열매가, 산사나무엔 꽃사과처럼 빠알간 산사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의 사랑채 툇마루에서 바라본 뒤뜰엔 가을색이 완연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4~1984·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선생이 작고하실 때까지 돌과 나무를 가꾸며 살았던 운치있는 한옥이다.오랜 향나무와 노송이 서 있는 앞마당과 사랑채를 지나면 이 집의 백미인 뒤뜰이 나타난다. 참나무, 산수유, 모과, 목련, 매화 등 최 선생이 직접 가꿨던 나무와 화초 사이로 물이 담긴 돌확, 비바람에 씻겨 괴괴한 풍모를 자랑하는 괴석, 해학적인 얼굴의 벅수와 문인석까지…. 툇마루에서 달빛과 눈내리는 모습을 감상하고,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는 풍경을 사색할 수 있는 선비의 정원이다. 이날 ‘혜곡의 뜰’ 강의에 나선 안선영 생명다양성재단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전통한옥의 정원은 자연의 경치를 빌려온다는 ‘차경(借景)’이란 표현을 쓴다. 1930년대 지어진 근대한옥이지만, 최순우 옛집은 주변의 자연 풍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최순우 옛집이 귀한 이유는 정원에 도토리 나무가 있다는 겁니다. 원래 정원엔 비싸고 귀한 나무를 심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를 잘 심지 않아요. 최 선생은 진달래, 소나무, 대나무, 머위, 벌개미취, 옥잠화 같은 우리 산하에서 자라는 친근하고 소박한 나무와 꽃, 풀을 심고 키우며 정원을 즐기셨습니다.” 실제로 뒤뜰 가득히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들국화는 1960년대 초반 최 선생이 강진에서 고려청자 가마터를 발굴할 때 길가에서 몇 그루 캐온 것이 퍼진 것이라고 한다. 매화나무는 1979년 도예가 노경조 씨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인사차 들렀을 때 최 선생과 함께 종로 화훼시장에서 함께 사서 심은 것이라 한다. 나무와 꽃들마다 주변 사람들과 교유했던 사연이 가득하다. 선생이 직접 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時深山·문을 닫으면 이곳이 깊은 산중)’이란 현판처럼 집 안 마당에 들어서면 도심의 소음이 딱 끊기고 고요한 세상으로 순간이동한 느낌을 받는다. 사방탁자, 문갑 등으로 정갈하게 꾸며 있는 안채와 사랑채는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가 살았던 집처럼 남지는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는 공간이다. 이 집은 선생의 사후에 매각돼 빌라로 재건축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2004년 4월 시민들과 지인들이 모금 운동을 통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문화유산 1호’로 일반에 공개됐다. 뒤뜰에서 매달 ‘음악이 꽃피는 한옥’ 콘서트가 열리는가 하면, 안방과 사랑채에서는 현재 김종학 화백 수집가구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안 연구원은 강의를 마치면서 참석한 시민들에게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단풍’이란 시를 건네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읽어보라는 당부였다. “가을은 노을을 잘라내어 옅은 색 짙은 색 붉은 천을 만들고 서슬 퍼런 서리는 웬 정이 많은지 끝도 없이 솜씨를 보인다. 저무는 낙조 아래로 점점이 불에 타오르고 이 산 저 산 속에 층층이 화폭이 펼쳐진다. 몇 줄의 사연은 심사를 구슬프게 만들며 이런저런 시름 끌고 저녁 바람에 떨어진다. 깊어가는 가을 향해 조락을 원망하지 말자. 봄바람은 또 시든 풀숲에서 풀을 엮고 있을 게다.”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14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불에 탄 도서관 앞으로 수천명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학창 시절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 자주 갔다. 대부분 시험공부 하러 갔지만, 가끔씩 소설이나 역사책을 빌려 보곤 했다. 책의 뒷면에 있는 대출카드에 반납기일 도장이 찍힐 때, 앞에 빌려 본 사람들과 비밀을 나누는 듯한 느낌을 갖곤 했다. 파리 특파원 시절, 아이와 함께 자주 찾았던 파리 한국문화원 도서관에서 한국어로 된 동화책과 만화책을 빌려 품에 가득 안고 나오던 아이의 환한 미소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워싱턴포스트가 ‘국보’라고 일컬을 정도로 논픽션의 대가인 수전 올리언은 “나를 키운 것은 도서관이었다”고 단언했다. “도서관은 내게 자율권이 주어졌던 최초의 장소였다. 상점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과 엄마가 사주고 싶어 하는 것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질 게 뻔했다. 반면 도서관에서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원하는 것을 뭐든 가질 수 있었다.” 올리언은 로스앤젤레스 중앙도서관을 찾았다가 “아직도 책에서 연기 냄새가 난다”는 운영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1986년 4월 29일 미국 공공도서관 역사상 가장 큰 참사로 기록된 7시간 반 동안의 도서관 화재로 총 40만 권의 책이 불길 속에 사라졌고, 70만 권이 연기나 물에 심각하게 훼손됐다. 그는 인류의 기억과 지식이 담긴 도서관의 책이 모두 사라졌을 때 재 냄새가 가득했던 비통한 현장을 추적한다. 이 책은 방화 용의자인 금발의 배우 해리 피크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불타 버린 도서관의 책을 어떻게 다시 살려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불에서 살아남은 70만 권의 책들은 선반에서 떨어져 무더기로 쌓여 있거나 꽂혀 있어도 끈적끈적했다. 책 보존 전문가는 책들을 신속하게 옮겨 냉동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불을 끌 때 뿌린 물 때문에 곰팡이 포자가 활성화되면 48시간 내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책에 곰팡이가 피면 손을 쓸 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20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도서관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사흘간 연기 자욱한 건물 안에서 문 밖까지 손에서 손으로 책을 전해 날랐다. 물에 젖고 연기에 그을린 책들은 냉장 트럭에 실려 섭씨 영하 56도의 창고로 보내졌다. “이 긴급한 순간은 로스앤젤레스 시민들로 살아 있는 도서관을 이룬 것 같았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시민들은 공유된 지식을 보호하고 전달하는 체계, 서로를 위해 우리 스스로 지식을 보존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도서관들이 매일 하는 일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도서관이 잃은 책들을 다시 채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책을 구하자’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냉동한 지 2년이 지난 책들은 항공우주 제조업체 맥도널 더글러스로 보내져 우주 시뮬레이션실에서 기압과 온도를 극단적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과정을 통해 수분을 제거했다. 마침내 1993년 도서관은 재개관했다. 역사적으로도 화재로 사라진 도서관이 적지 않다. 서기 640년 이슬람교도의 이집트 침략 당시 화재로 사라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대표적이다. 저자의 탐사 취재를 읽다 보면 책과 도서관이 ‘생명을 가진 유기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세네갈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표현할 때 ‘그녀의 도서관이 불탔다’고 말한다. 개인의 의식은 한 사람의 삶을 담아낸 도서관이다. 다른 누구와도 완전히 공유할 수 없는, 죽으면 불타 사라지는 무엇이다. 하지만 그 내면의 컬렉션에서 무언가를 꺼내 책이나 이야기로 세상과 공유할 수 있다면 그 무언가는 생명을 얻게 된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현실과 픽션, 회화와 사진 경계를 넘어

    《한 사내가 옷에 검정 잉크를 묻힌 채 바닥을 구르고 있다. 이어 장미꽃에 분홍색 페인트를 묻혀 천에 글씨를 쓴다. 그리고 천으로 몸을 둘둘 감싸고 또 구른다. 세상과의 완전한 고립. 겨우 일어선 그의 몸엔 검은색, 분홍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었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두 팔을 벌려 다가선다. “Hug me(안아주세요).” 그러나 10여 분이 흘러도 그를 안아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를 옆에 있던 무용수가 살포시 안아 준다…. 》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개막식.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고상우 씨(40)의 퍼포먼스 주제는 ‘외로움’. 고독에 몸부림치던 사내의 옷에는 물감이 묻어 있었고, 오프닝에 참석한 관람객 중 그를 안아준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안아줄 때 퍼포먼스를 끝내려 했어요. 다 끝난 후에 남녀 2명이 저를 안아주려고 막 재킷을 벗고 나오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예정된 10분이 너무 짧아 아쉬웠죠. 만일 옷이 깨끗했다면 좀 더 빨리 허그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겠지요?” 미국 시카고예술학교를 졸업한 고 씨는 22세에 뉴욕 최대 아트페어인 아머리쇼에 참가하는 등 일찌감치 미 현대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1월에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막식에서도 ‘평화’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그는 퍼포먼스 도중에 자신의 얼굴이나 모델의 몸에 하트나 꽃을 그려 넣으면서 사진촬영을 한다. 자신의 얼굴에 Love(이마), Speak(입), Believe(목) 등의 글씨를 쓰고 촬영한 작품은 뉴욕 갤러리에서 팝스타 마돈나가 소장해 유명해졌다. 그는 “행위예술은 반쯤 미치지 않으면 그냥은 할 수가 없다. 200∼300명의 관람객에게 둘러싸인 채 하다 보면 때로는 감정 컨트롤이 어려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 속 사람 얼굴은 온통 푸른색이다. 색상이 반전(反轉)된 필름을 그대로 현상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푸른색 사진예술의 선구자’라는 칭호가 따라다닌다. 그는 “대학 시절 처음 암실에서 필름 속 내 얼굴을 봤을 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며 “유령처럼 파란색 얼굴이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 안에서는 인종이든 성이든, 모든 경계선이 무너진다. 동양인의 노란색 피부는 푸른색으로, 흑인은 흰색으로, 백인은 검은색으로 반전된다. 그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반전시키고, 현실에서 환상으로 전도시킨다는 것이 제 첫 작업의 타이틀이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사진을 직접 찍고, 디지털로 채색해 하이퍼리얼(hyperreal)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16∼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나우에서 열리는 ‘고상우―경계의 확장’에서는 ‘피에로 사자’, 곰의 ‘겨울잠’, 코끼리의 ‘키스’, 호랑이의 ‘운명’ 같은 신작들을 전시한다. 그의 사진 속 사자와 호랑이의 노란색 털도 반전시켜 푸른색 피부가 됐다. 그의 ‘푸른색 피에로 사자’는 압도적인 눈빛과 분홍색 하트 모양이 신선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하트는 새로운 심장과 생명을 상징한다. 사진을 엄청나게 확대한 후 디지털 페인팅으로 세밀하게 채색하기 때문에 사자의 눈동자 속 홍채를 그리는 데만도 1주일 이상 걸린다고. 그는 “도심 빌딩이나 운동장, 동물원 등에서도 전시해 사람들 마음에 호소하고 싶어 극사실적인 채색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푸른색 사진예술의 선구자’ 고상우 “행위예술은 반쯤 미치지 않으면…”

    한 사내가 옷에 검정 잉크를 묻힌 채 바닥을 구르고 있다. 이어 장미꽃에 분홍색 페인트를 묻혀 천에 글씨를 쓴다. 그리고 천으로 몸을 둘둘 감싸고 또 구른다. 세상과의 완전한 고립. 겨우 일어선 그의 몸엔 검정색, 분홍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묻었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두 팔을 벌려 다가선다. “Hug me”(안아주세요). 그러나 10여분이 흘러도 그를 안아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를 옆에 있던 무용수가 살포시 안아 준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KIAF 개막식.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고상우(40) 씨의 퍼포먼스 주제는 ‘외로움’. 고독에 몸부림치던 사내의 옷에는 물감이 묻어 있었고, 오프닝에 참석한 관람객 중 그를 안아준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한명이라도 안아줄 때 퍼포먼스를 끝내려 했어요. 다 끝난 후에 남녀 2명이 저를 안아주려고 막 재킷을 벗고 나오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예정된 10분이 너무 짧아 아쉬웠죠. 만일 옷이 깨끗했다면, 허그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겠지요?” 미국 시카고예술학교를 졸업한 고 씨는 22살에 뉴욕 최대 아트페어인 아모리쇼에 참가하는 등 일찌감치 퍼포먼스 사진작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1월에 열리는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개막식에서도 ‘평화’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그는 퍼포먼스 도중에 자신의 얼굴이나 모델의 몸에 하트나 꽃을 그려 넣으면서 사진촬영을 한다. 자신의 얼굴에 Love(이마), Speak(입), Believe(목) 등의 글씨를 쓰고 촬영한 작품은 뉴욕 갤러리에서 팝스타 마돈나가 소장해 유명세를 탔다. 그는 “행위예술은 반쯤 미치지 않으면 그냥은 할 수가 없다”며 “무대 위가 아니라 200~300명의 관람객에게 가까이 둘러싸인 채 하다보면 때로는 감정 컨트롤이 어려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 속 사람 얼굴은 온통 푸른색이다. 색상이 반전(反轉)된 필름을 그대로 현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에겐 ‘푸른색 사진예술의 선구자’라는 칭호가 따라다닌다. “대학시절 처음 암실에서 필름 속 내 얼굴을 봤을 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죠. 유령처럼 파란색 얼굴이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인물사진을 푸른색 그대로 현상했다가, 교수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며 혼도 많이 났지요.” 그의 사진 안에서는 인종이든 성이든, 모든 경계선이 무너진다. 동양인의 노란색 피부는 푸른색으로, 흑인은 흰색으로, 백인은 검은색으로 반전된다. 검은색, 흰색의 무채색보다는 푸른색이 더 환상적이기 때문에 그는 동양인 모델과 작업을 즐겨왔다. 그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반전시키고, 현실에서 환상으로 전도시킨다는 것이 제 첫 작업의 타이틀이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직접 사진 찍고, 디지털로 채색해 하이퍼리얼(hyperreal)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16~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나우에서 열리는 ‘고상우-경계의 확장’ 전시회에서는 바디페인팅 퍼포먼스 촬영 작품 외에도 ‘피에로 사자’, 곰의 ‘겨울잠’, 코끼리의 ‘키스’, 호랑이의 ‘운명’과 같은 신작들이 전시된다. 그는 몇 주 동안 동물원에 머물며 촬영했다. 사자와 호랑이의 노란색 털도 반전시키면 푸른색 피부가 됐다. 그의 ‘푸른색 피에로 사자’는 압도적인 눈빛과 분홍색 하트모양이 신선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사진을 촬영 뒤 5GB까지 용량을 늘려 디지털 페인팅으로 세밀하게 채색한다. 사자의 눈동자 속 홍채를 그리는 데만도 1주일 이상 걸리고, 한 작품 당 3~4개월씩 걸릴 정도로 공을 들이는 작업이다. 분홍색 하트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에게 새로운 심장과 생명을 준다는 상징이다. 그는 “도심의 대형 빌딩이나 운동장, 동물원 등에서도 전시해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싶어 극사실적인 채색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전승훈문화전문기자raphy@donga.com}

    • 2019-10-09
    • 좋아요
    • 코멘트
  • “자음-모음 조합한 한글 자체가 예술”

    “요즘 외국 유명인사들도 한글로 디자인한 티셔츠를 잘 입고 다닙니다. 한글이 굉장히 기호적이고, 형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오히려 인터넷으로 그런 사진을 보면 코믹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영문이 아닌 한글로 디자인한 티셔츠를 어색해하죠.” 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사)에서 개막한 ‘2019 타이포잔치: 제6회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서 만난 진달래, 박우혁 예술감독은 “한글이야말로 글자로 패턴을 만든다든가, 모양을 만드는 타이포 디자인을 위해 탄생한 문자”라고 강조했다. 6회째를 맞는 이 전시회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최봉현)이 주관하는 국내 최대 타이포그래피 전시회. 올해는 ‘타이포그래피와 사물’을 주제로 전 세계 22개국, 127개 팀 작가들이 6개 섹션(만화경, 다면체, 시계, 모서리, 잡동사니, 사물들)에 다양하고 기발한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출품했다. 전시장에는 글자와 숫자를 디자인으로 활용한 옷걸이, 가구, 문구, 액세서리, 장난감 등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물건들이 가득하다. 또한 각국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활자의 숲’ ‘활자의 터널’이 있고, 서체 디자인이 굵기에 따라 형태가 자동으로 변화되는 ‘배리어블 폰트’ 신기술이 마치 춤추는 듯한 영상처럼 펼쳐진다. 가장 인상적인 전시는 ‘만화경’ 섹션. 3면이 거울인 원통 속에 색종이나 셀룰로이드를 집어넣은 만화경을 움직이면 천변만화하는 아름다운 형태를 볼 수 있듯이, 점 선 면의 요소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다채롭게 변화하는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소개한다. “타이포그래피의 핵심은 ‘조합’입니다. 기본적인 알파벳 20∼30개를 이리저리 조합해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활자에서 활은 ‘살 활(活)’입니다. 서로 떼어진 글자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죠. 이렇게 자음과 모음이 건축적으로 아름답게 쌓이고, 해체되고, 다시 모이는 글자는 한글이 대표적입니다.” 박 감독은 “한글은 자모를 만들 때도 기본적인 것을 만들고, 다시 조합하고 변형해서 만들었다”며 “예를 들어 ‘ㄲ’은 ‘ㄱ’을 두 개 붙인 것이고, ‘ㅋ’은 ‘ㄱ’에 가로획을 덧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 ‘모아서 쓴다’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렇듯 사용 매뉴얼까지 완벽하게 나와 있는 언어는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강조했다. 다음 달 3일까지 무료 관람. 이달 9, 19일 오후 2시에는 전시에 참가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이 나오는 토크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사소하고 흥미로운 예술가들의 사생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인 저자가 1989년부터 2013년까지 25년간 쓴 예술 에세이다. “미술을 보는 눈이 번쩍 뜨였다”는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저자는 예술가들의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까지 상세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사실주의의 대가 쿠르베는 모든 프랑스 여자가 자신을 택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하다 시골 처녀에게 거절당한 나르시시스트였다. 드가는 여성을 혐오한다는 혹독한 오해를 받은 반면, 보나르는 한 여인의 모습을 385점이나 그린 지독한 사랑의 상징이 됐다. 마네는 모델에게 생동감 있게 움직이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세잔은 사과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 치다 화가 나면 붓을 내팽개치고 화실을 뛰쳐나갔다. 뻔한 비평 대신 주인공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가슴 뛰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값싸지, 개성 있지… 나는 얇은 집에서 산다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에서 동대문으로 넘어가는 첫 동네. 한양도성의 고즈넉한 풍경과 숲이 어우러진 동네에 ‘세로로(SERORO)’라는 이름의 흰색 건물이 올봄에 들어섰다. 33m²(약 10평)에 불과한 땅에 5개 층을 위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협소주택이다. 신혼부부인 최민욱 씨(39·스몰러건축 소장)와 정아영 씨(34·와인 강사)는 올해 3월 결혼하면서 이 집을 짓고 입주했다. 사무실이 대학로인 남편은 서울 성곽과 낙산공원을 넘어 걸어서 출퇴근한다. 이 집은 층마다 1개의 방이 블록처럼 수직으로 쌓여 있는 형태다. 1층은 필로티 주차장, 2층은 서재 겸 작업실, 3층은 주방과 거실, 4층은 침실, 5층은 옷방과 욕실로 구성돼 있다. 2, 3층은 주로 일하거나 식사하고, 손님을 맞는 공간이고, 4, 5층은 사생활 공간이다. 최 소장은 “낮과 밤 시간대의 동선을 철저히 고려해 설계함으로써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할 일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각 층의 방은 불과 16.5m²(약 5평) 규모. 그러나 실제로 보면 답답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숲 방향으로 2개 면에 걸쳐 시원하게 뚫린 창문 때문. 창 밖의 숲에는 비가 내리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고, 딱따구리와 족제비가 나타나기도 한다. 도로와 접한 2개 면은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창문을 최대한 절제했다. 최 소장은 “이사 후 창 밖을 보며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서울로 귀농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가 협소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은 건 5년 전. 친구가 서울 강동구에서 4억 원에 오피스텔 전세도 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그는 아내와 “대출금에 치이느니 차라리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집을 짓자”고 의기투합했다. 이후 강남의 자투리땅, 강북의 산동네까지 다 뒤졌다. 드디어 대학로 사무실 인근 창신동에서 땅을 찾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폐가였다. 지붕은 무너지고, 들고양이들의 아지트였던 이 땅을 3.3m²당 1000만 원씩 1억 원을 주고 샀다. 공사비 1억7000만 원으로 총비용은 2억7000만 원이 들었다. 서울에서 웬만한 전세도 얻기 힘든 돈이다. 그는 1년 동안 설계를 다듬으며 고심했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크기를 미리 정해 놓고 벽체를 설계했다. 단열재는 콘크리트 외부에 시공했다. “협소주택에서는 1∼2cm도 아쉬운데, 단열재를 외부에 시공하면 단열효과도 크고, 평균 10cm 정도의 공간이 더 커진다.” 그가 새 집을 짓기 시작하자 동네사람들은 환영했다. 보기 흉했던 폐가가 ‘귀여운’ 새 건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따뜻한 응원을 보낸 것이다.○ “세상에 나쁜 땅은 없다”… 얇디얇은 집 올해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얇디얇은 집’은 “집이란 어떤 공간에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상식을 깬 곳”이라는 평가를 받은 곳이다. 입구 쪽 폭이 1.4∼2m에 불과한 땅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반면 측면의 길이는 20m에 이른다. 그야말로 책을 한 권 세워놓은 것처럼 얇고 길쭉한 집이다. 이 집은 영상 촬영과 편집을 하는 두 부부가 같이 산다. 1층과 지하는 작업실, 2층은 거실과 부엌, 3층은 침실과 자녀방, 4층에는 지붕 테라스와 옥탑방이 있다. 복도처럼 길쭉한 집 공간이 좁게 느껴지지 않도록 화장실 욕실을 빼고는 벽이나 문을 만들지 않았다. 원래 이곳은 경부고속도로 주변 완충녹지를 만들고 남은 서울시 땅이었다. 공공부지 매각을 통해 민간에 팔렸지만 여러 건축설계사무소에서도 집을 짓는 건 불가능하다고 손을 들었던 곳이다. “서울에서 집 짓기 좋은 땅은 이미 집이 다 들어섰다고 보면 됩니다. 좁고 길거나, 도로변 삼각형 모양의 비정형적인 필지만 남았죠. 그러나 세상에 나쁜 땅은 없습니다. 땅의 컨디션을 잘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개성 넘치고 가치 있는 건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신민재 AnL스튜디오 소장)○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작은 집의 혁명’ 1인 가구가 늘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주택담보대출에 시달리는 밀레니얼 세대들 사이에서 삶을 다운사이징하는 작은 집 열풍은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큰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미국에서도 타이니 하우스(협소주택)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협소주택 사진은 예쁘면서도, 친환경적이고,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로 각광받는다. 미국에서는 2017년 타이니 하우스 판매량이 67%나 증가했다. 한 채의 평균 가격은 4만6300달러(약 5500만 원). 협소주택에 사는 이들의 68%는 주택담보대출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내 집 마련이 가장 어려운 도시로 알려진 홍콩에서는 대형 콘크리트 수도관으로 만든 협소주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홍콩의 건축사무소 ‘제임스 로 사이버텍처’가 만든 ‘오포드 튜브 하우스(OPod Tube House)’. 지름 2.5m, 길이 2.6m짜리 수도관 2개를 연결해 지은 이 집의 내부 면적은 약 9.3m²(약 2.8평). 여러 개를 쌓아올려 아파트형 타운을 만들 수도 있으며, 빌딩 틈새나 다리 밑 같은 사각지대에도 설치가 가능하다. 한 채 건설 비용은 약 1700만 원, 월 47만 원에 임대한다. 넷플릭스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Tiny House Nation(도전! 협소주택)’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랜드 피아노는 꼭 있어야 해요” “큰 오븐이 필요해요”와 같은 출연자들의 요구를 실현시켜 주는 갖가지 아이디어가 펼쳐진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10-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 정도면 충분해!”…‘작은 집의 혁명’? 협소주택 뜨는 이유

    “이렇게 좁은 땅에 어떻게 집을 짓지?” “한 두 사람 살기엔 이 정도면 충분해!”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자투리 땅을 활용한 개성있는 작은 집 짓기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넷플릭스에서도 리얼리티쇼 ‘Tiny House Nation’(도전! 협소주택)이 큰 인기를 끌면서 미니멀한 삶을 꿈꾸는 협소주택 열풍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에서 동대문으로 넘어가는 첫 동네. 한양도성의 고즈넉한 풍경과 숲이 어우러진 동네에 ‘세로로(SERORO)’라는 이름의 흰색 건물이 올 봄에 들어섰다. 33㎡(10평)에 불과한 땅에 5개 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협소주택이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신혼부부인 최민욱 씨(39·스몰러건축 소장)와 정아영 씨(34·와인강사) 부부. 이들은 올해 3월 결혼하면서 이 집을 짓고 입주했다. 남편의 사무실은 대학로. 서울성곽을 따라 낙산공원을 걸어서 넘어 출퇴근을 한다. 야경이 멋진 핫플레이스 데이트코스가 통근길인 셈이다. 대부분의 집은 여러 개의 방들이 수평으로 놓여 있게 마련. 그러나 이 집은 침실과 거실, 주방 등이 블록처럼 수직으로 쌓여 있는 형태다. 필로티 주차장인 1층에서 올라가면 2층은 서재 겸 작업실, 3층은 주방과 거실, 4층은 침실, 5층은 옷방과 욕실로 구성돼 있다. 2,3층은 주로 일하거나 식사하고, 손님을 맞는 공간이고, 4,5층은 사생활 공간이다. 2층 작업실에서는 남편이 설계업무를 하거나, 아내가 와인강의 준비를 하는 등 집이 일터가 되기도 한다. 각 층에 있는 방은 불과 16.5㎡(5평)에 불과하다. 사용하는 공간이 4개 층이니 총 20평짜리 집이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가서 보면 답답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숲과 마을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 때문이다. 2개면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비가 올 때 빗소리와 흙냄새, 나무향기가 퍼지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숲에 눈 내리는 모습이 창밖으로 펼쳐진다. 또한 딱따구리와 족제비와 같은 온갖 새들과 동물도 나타난다. 반면 도로와 접한 2개면은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창문을 최대한 절제했다. “이사 후 창 밖을 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3층 주방에서 마주보고 커피를 마실 때면 경치 좋은 카페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저녁엔 집 근처 서울성곽과 낙산공원으로 산책을 가죠. 우리 부부는 ‘서울로 귀농한 느낌’이라고 말해요.” 협소주택의 가장 좁고 높은 집을 오르락내리락하려면 무릎이 아프지 않을까? 최 씨는 “낮과 밤 시간대의 동선을 철저히 고려해 설계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내려오면 주로 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최 씨는 이 땅을 3.3㎡당 1000만 원씩 1억 원을 주고 샀다. 공사비는 1억7000만원으로 총 2억7000만 원이 들었다. 그가 협소주택을 지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5년 전. 친구가 서울 강동구에서 오피스텔을 구하려고 하는데 4억 원에 전세도 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친구와 함께 “대출금에 치이느니 차라리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집을 짓자”며 의기투합했다. 경기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최 씨는 통근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서울에서 집 지을만한 땅을 찾아다녔다. 가격이 저렴해보이는 곳은 강남의 자투리땅, 강북의 산동네까지 다 뒤졌다. 드디어 대학로 사무실과 가까운 창신동에서 땅을 찾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폐가였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지붕은 무너지고, 들고양이들의 아지트였던 곳이었다. “집을 내놓은 지도 꽤 오래됐는데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부동산에서도 ‘거기는 집을 못 짓는 땅’이라고 했어요. 과연 10평의 땅에 집을 지을 수 있을지 저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제가 설계했던 빌딩의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는 공간보다도 작은 크기였지요.” 그는 1년 동안 설계를 다듬으며 고심했다. 그가 이 곳에 새 집을 짓기 시작하자 동네사람들은 환영했다. 보기 흉했던 폐가가 ‘귀여운’ 새 건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 것이다. ●“세상에 나쁜 땅은 없다”… 얇디얇은 집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얇디얇은 집’은 올해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했다. “집이란 어떤 공간에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상식을 깬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입구 쪽 폭이 1.4~2m에 불과한 땅에 지하1층, 지상4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반면 높이는 20m에 이른다. 그야말로 책을 한 권 세워놓은 것처럼 얇고 길쭉한 집이다. 이 집은 영상촬영과 편집을 하는 두 부부가 산다. 1층과 지하는 작업실이고, 2층은 거실과 부엌, 3층은 침실과 자녀방, 4층에는 지붕 테라스와 옥탑방이 있다. 1개 층의 건평이 대략 33㎡(10평) 정도다. 원래 이 땅은 경부고속도로 소음을 막기 위한 완충녹지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땅이었다. 서울시 소유였지만 공공부지로는 활용하지 못해 일반에 매각했다. 여러 번 유찰된 끝에 5~6년 전에 주변 시세의 절반가격에 낙찰됐다. 이 땅을 구입한 매수자는 집을 짓기 위해 여러 설계사무소를 다녀봤지만 모두들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금의 주인이 다시 사들여 AnL스튜디오에게 맡겨 집을 지었다. “서울에서 집짓기 좋은 땅은 이미 집이 다 들어섰다고 보면 됩니다. 공공이든 민간이 갖고 있는 땅이든 좁고 길거나, 도로변 모퉁이 삼각형 모양의 비정형적인 필지만 남았죠. 요즘에는 이런 자투리땅을 매입해 지은 개성 있는 집들이 단조로운 도시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신민재 AnL스튜디오 소장) 이 집은 각 층이 복도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집을 좁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화장실이나 욕실을 빼고는 칸막이나 문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또한 고속도로 완충녹지를 향해 커다란 창문을 만들어 자연을 감상하게 했다. 창신동 ‘세로로’ 집이나 잠원동 ‘얇디얇은 집’은 창문을 통해 숲과 공원의 풍경을 끌어들여 집이 넓게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협소주택의 평당 공사비는 보통주택에 비해 1.5배 이상 든다. 같은 면적이라도 층층이 쌓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 소장은 “세상에 나쁜 땅은 없다. 땅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나쁜 땅인가. 작지만 그 땅의 컨디션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건물이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협소주택에 산다는 것 작은 집에 산다는 것은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가구나 물건들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협소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그동안 갖고 있던 살림살이를 버리고, 비워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Tiny House Nation’에서도 진행자인 존과 잭은 협소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의뢰인에게 먼저 짐을 줄이는 교육을 시킨다.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협소주택으로 이사하려는 이유는 평생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갚으며 살기 싫어서, 자녀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청소 등 집안 관리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등 다양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큰 집에서 살다가 16.5~33㎡의 집으로 옮길 때는 준비가 필요하다. 작은 집에 더블사이즈 침대, 쇼파, 책상, 주방, 화장실까지 집어넣는 신기에 가까운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대방출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사람들의 요구는 끝이 없다. “큰 오븐이 있어야 해요” “턴테이블은 꼭 갖고 가야해요”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가야 해요”…. 창신동 ‘세로로’ 주택을 지은 최 소장은 가구 크기까지 미리 염두에 두고 설계를 했다. 장롱과 냉장고와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의 크기를 미리 정해놓고 집 내부 벽체를 설계했다. 또한 가구가 들어올 수 있도록 창틀까지 한꺼번에 양쪽으로 열리는 대형 창문을 설치했다. 그는 “협소주택을 지을 때는 가구 크기는 물론 가구가 들어올 방식까지 계획하지 않으면 창문이나 유리를 뜯어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또한 단열재를 콘크리트 외부에 붙여 공간을 조금이라도 넓게 만들었다. 그는 “협소주택에서는 1,2cm도 아쉬운데, 단열재를 외부에 시공하면 단열효과도 더 크고, 평균 10cm 정도의 공간이 더 커지는 효과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잠원동 ‘얇디얇은 집’에도 좁고 길쭉한 땅의 모양 때문에 시중에 판매하는 가구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현장에서 공간에 맞춰 가구와 주방기구를 붙박이식으로 제작해 설치했다. 다행히 거주하는 부부는 원래 가구나 짐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이사 올 때 옷가지 정도만 싸들고 왔다고 한다.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작은 집의 혁명’ 홍콩에서는 대형 콘크리트 수도관으로 만들어진 협소주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홍콩의 건축사무소 ‘제임스 로 사이버텍처’가 만든 ‘오포드 튜브 하우스(OPod Tube House)’다. 홍콩은 세계의 주요 도시 중에서 내집 마련이 가장 어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자리를 찾아 홍콩으로 몰려든 청년들은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내집 마련의 꿈은 꿀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과잉생산으로 빈터에 방치된 대형 콘크리트 수도관을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지름 2.5m, 길이 2.6m짜리 2개의 수도관을 연결해 지은 이 집의 내부 면적은 9.29㎡(약 2.8평)로 1~2인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크기다. 2017년 말 모델이 공개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오포드 튜브 하우스는 창문은 따로 없고 전면의 통유리 출입문이 창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식 원목 바닥으로 꾸며진 내부는 안락하며 다양한 선반들을 설치해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소파 겸용 침대는 접이식으로 벽면에 장착돼 있으며, 냉장고, 전자레인지, 옷걸이, 가방 등 대형 물건들도 모두 맨 하단의 대형 선반 위에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여러 개를 쌓아올려 아파트형 타운을 만들 수도 있으며, 빌딩 사이 공터나 다리 밑과 같은 사각지대에도 설치가 가능하다. 한 채 건설비용은 약 1700만 원인데, 비슷한 부동산 시세의 20%인 월 47만 원에 임대한다. ‘큰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미국에서도 삶을 다운사이징하기 위한 타이니 하우스(협소주택) 열풍이 거세다. 협소주택은 소셜미디어에서 질투심을 유발하는 인기 아이템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협소주택을 찍은 사진이 그림처럼 예쁘면서도,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친환경적이고,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로 각광받는다. 한편 협소주택은 경제적 불평등, 엄청난 학자금 대출금에 시달리는 밀레니얼 세대의 불행을 상징하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2017년에만 협소주택 판매량이 67%나 증가했다. 협소주택의 평균가격은 4만6300달러. 협소주택을 가진 이들의 68%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를 갖고 있지 않으며, 협소주택에 사는 사람의 89%가 평균적인 미국인들보다 더 적은 신용카드 빚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raphy@donga.com}

    • 2019-10-03
    • 좋아요
    • 코멘트
  • “부드러운 곡선으로 어머니의 따뜻한 품 형상화”

    올해 3월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신축된 새문안교회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에서 14일 열리는 ‘2019 아키텍처 마스터 프라이즈(AMP)’의 건축설계 분야 문화건축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새문안교회는 최동규 건축사(서인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와 이은석 경희대 교수가 10년 가까이 공동으로 설계 프로젝트를 맡아왔다. 198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국제디자인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전문 기업 파르마니그룹에 의해 제정된 AMP는 매년 전 세계의 혁신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선정해 수상작을 발표하고 있다. 올해는 건축설계, 인테리어 디자인, 조경 분야 등 42개 분야에 68개국 1000개 이상의 후보작이 출품됐다. 최동규 건축사와 함께 프로젝트를 공동진행해 온 이 교수와 1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1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한국 개신교회가 세계 속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됐다”며 “이제 교회 건축에서도 한국적 가치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교회 건물로 국제적 건축상을 받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 수상작 중 교회 건축은 유일하다. 요즘엔 한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교회를 많이 짓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국의 교회 건축은 뾰족탑이 있는 서양의 고딕 스타일만 흉내 내왔다. 형태보다는 공간, 채움보다는 비움을 통해 한국적인 교회 건축의 가치를 표현하려 했다.” ―‘무창(無窓)의 건축’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도 절제된 창이 인상적이다. “새문안교회는 언더우드 목사가 1886년에 세운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다. 한국 개신교회의 어머니 교회로서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부드러운 곡선 벽면으로 형상화했다. 교회 앞마당에서 올려다보면 하늘로 열려있는 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정면의 작은 창문들은 밤이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은하수처럼 반짝이는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광화문 쪽에 설치된 전면 유리창에는 자세히 보면 십자가 문양이 숨겨져 있다.” 새문안교회의 베이지색으로 보이는 돌은 화강암의 일종인 중국산 사비석이다. 돌 사이에 낀 철분에 녹이 슬면 전체적으로 발그스름한 베이지색을 띠게 된다고 한다. 이 교수는 “돌마다 색깔이 달라 저렴한 재료이지만, 잘 섞어서 쓰면 고상하고 역사성 있는 건물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예배당 본당을 지을 때 고려한 점은 무엇인가. “현대의 개신교회는 너무 극장식이다. 스크린에서 화면이 나오고, 대형 스피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개신교회가 원래의 경건한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피커를 안으로 감췄고 화면은 없앴다. 작곡가 홍난파, 김동진이 새문안교회 성가대 지휘자를 맡았을 정도로 음악적 전통이 강해 전자오르간 대신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다.” 1층에 위치한 ‘새문안홀’은 1972년에 지어 50년 가까이 썼던 기존 예배당의 벽돌과 스테인드글라스, 한옥창문 무늬 장식 등을 그대로 복원해 옛 기억도 잊지 않았다. 이 홀과 1층 로비, 외부 광장은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 개방되고 새문안로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는 지름길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예로부터 교회는 도시생활의 중심 공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사회적 기능을 잃어버렸다”며 “새 교회를 지으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공공성 회복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많은 교회 건물을 설계해 온 교회 건축 전문가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주경기장 인근에 세워질 예정이었던 초대형 원형 건축물인 ‘천년의 문’ 설계 공모(2000년)에서 1등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독일 바우하우스의 첫 카탈로그 표지에는 고딕성당이 그려져 있습니다. 건축을 통해 과학, 회화, 음악 등 모든 예술을 통합하자는 뜻이었죠. 현대건축은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데 집중하는데 교회 건축가는 정신적, 심리적, 상징적인 것을 포괄하는 복합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행복합니다.”전승훈 문화전문기자raphy@donga.com}

    • 2019-10-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은석 교수 설계 ‘새문안교회’, 국제 건축상 수상작으로 선정

    “1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한국 개신교회가 세계 속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됐습니다. 이제 건축에서도 한국적 가치를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올해 3월 신축된 새문안교회 설계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은석 경희대 교수(57)가 말했다. 새문안교회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14일 열리는 ‘2019 건축 마스터상(AMP)’의 건축설계분야 문화건축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1985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국제디자인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전문기업 파르마니 그룹에 의해 제정된 AMP는 매년 전 세계의 혁신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선정해 수상작을 발표하고 있다. 올해는 건축설계, 인테리어 디자인, 조경분야 등 42개 분야에 68개국 1000개 이상의 후보작이 출품됐다. 이 교수는 서인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 최동규)와 10년 가까이 새문안교회 설계프로젝트를 맡았다. 1일 이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교회 건물로 국제적 건축상을 받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 수상작 중 교회 건축은 유일하다. 요즘엔 한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교회를 많이 짓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국의 교회건축은 뾰족탑이 있는 서양의 고딕스타일만 흉내내왔다. 형태보다는 공간, 채움보다는 비움을 통해 한국적인 교회건축의 가치를 표현하려 했다.”―‘무창(無窓)의 건축’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도 절제된 창이 인상적이다. “새문안교회는 언더우드 목사가 1886년에 세운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다. 한국 개신교회의 어머니 교회로서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부드러운 곡선 벽면으로 형상화했다. 교회 앞마당에서 올려다보면 하늘로 열려있는 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정면의 작은 창문들은 밤이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은하수처럼 반짝이는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광화문 쪽에 설치된 전면 유리창에는 자세히 보면 십자가 문양이 숨겨져 있다.” 새문안교회의 베이지색으로 보이는 돌은 화강암의 일종인 중국산 사비석이다. 돌 사이에 낀 철분에 녹이 슬면 전체적으로 발그스름한 베이지색을 띠게 된다고 한다. 이 교수는 “돌마다 색깔이 달라 저렴한 재료이지만, 잘 섞어서 쓰면 고상하고 역사성 있는 건물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예배당 본당을 지을 때 고려한 점은 무엇인가. “현대의 개신교회는 너무 극장식이다. 스크린에서 화면이 나오고, 대형 스피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개신교회가 원래의 경건한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피커를 안으로 감췄고 화면은 없앴다. 작곡가 홍난파, 김동진이 새문안교회 성가대 지휘자를 맡았을 정도로 음악적 전통이 강해 전자오르간 대신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다.” 1층에 위치한 ‘새문안홀’은 1972년에 지어 50년 가까이 썼던 기존 예배당의 벽돌과 스테인드글라스, 한옥창문 무늬장식 등을 그대로 복원해 옛 기억도 잊지 않았다. 이 홀과 1층 로비, 외부 광장은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 개방되고 종로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는 지름길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예로부터 교회는 도시생활의 중심 공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사회적 기능을 잃어버렸다”며 “새 교회를 지으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공공성 회복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많은 교회건물을 설계해 온 교회건축 전문가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주경기장 인근에 세워질 예정이었던 초대형 원형 건축물인 ‘천년의 문’ 공모설계(2000년)에서 1등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독일 바우하우스의 첫 카탈로그 표지에는 고딕성당이 그려져 있습니다. 건축을 통해 과학, 회화, 음악 등 모든 예술을 통합하자는 뜻이었죠. 현대건축은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데 집중하는데 교회 건축가는 정신적, 심리적, 상징적인 것을 포괄하는 복합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행복합니다.”}

    • 2019-10-02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