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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세상이 정한 규격에 미달인 내가 미울 때가 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그런 관객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그 누구도 자기 존재를 의심하며 살면 안 된다”고 따뜻하게 다그친다. 우리는 못 된 존재가 아니라, 단지 복잡하고 다채로운 존재일 뿐이란 이유에서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이 아시아 초연됐다. ‘디어…’는 2017년 제71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외톨이 소년 에반 핸슨이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고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짓말을 저지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에반 역은 배우 김성규, 박강현, 임규형이, 홀로 에반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아들의 ‘정상화’를 바라는 엄마 하이디 역은 김선영, 신영숙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총 15곡의 넘버는 주인공의 감정선과 맥락을 섬세하게 반영한 덕에 이야기 서사를 빈틈없이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 등을 작사·작곡한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곡 작업에 참여했다. 특유의 세련되고 서정적인 팝 스타일을 살려 간판 넘버 ‘You will be found’ 등 누구나 즐기기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 별도 앙상블이 없지만 4명의 등장인물이 부르는 ‘Good for you’는 탄탄한 화음 덕에 1200여 석 규모의 대극장을 화려하게 메웠다. 2021년 개봉한 동명 영화와 비교해 서사 공감도가 높다. 관객 저마다 판관이 되어 주인공을 비난하기 쉬운 줄거리지만, 상황의 불가피함과 에반의 극단적 심경을 암시하는 대사를 곳곳에 배치해 자연스레 유예를 이끌어냈다. 에반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장면은 보다 주체적, 점층적으로 구성해 성장의 국면을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공연에 출연한 임규형은 갈 곳 잃은 시선과 가쁜 호흡, 허공을 헤매는 손짓 등을 통해 ‘배달원과 대면 결제조차 힘겨운’ 심리 상태를 관객에게 매끄럽게 전달했다. 50cm 정사각형 발광다이오드(LED) 패널 935장으로 구성된 무대 세트 역시 볼거리다. 물리적 세트 대신 패널을 활용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속 세상과 에반의 침실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이는 공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물론이고 ‘디어 에반 핸슨’이 오늘날 우리 주변의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식상한 러브 라인도, 신파성 슬픔도 남발하지 않는다. 그 자리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명료한 대사들이 채운다. 엄마 하이디가 에반을 다독이며 “언젠간 이 모든 일들이 아주 작게 느껴질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길고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6월 23일까지, 7만∼16만 원. 7월부터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계속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시대를 풍미한 실존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하는 창작뮤지컬 3편이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브론테’는 19세기 영국에서 소설가로 활동했던 세 자매의 삶을 재창작했다. 소설 ‘제인 에어’를 쓴 첫째 샬럿, ‘폭풍의 언덕’을 남긴 둘째 에밀리, ‘아그네스 그레이’ 등을 쓴 막내 앤이 그 주인공이다. 여성은 글을 쓸 수 없던 시대, 불우했던 삶 한복판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6월 2일까지, 4만∼7만 원. 서울 종로구 예스24아트원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디아길레프’는 혁신을 좇은 20세기 러시아 발레단 ‘발레 뤼스’의 단장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디아길레프가 천재 발레리노 니진스키, 수석 디자이너 브누아, 전위적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봄의 제전’을 준비하던 과정을 재창작했다. 6월 9일까지, 5만∼7만 원. 이달 23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버지니아 울프’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 등을 남긴 20세기 동명 영국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 속 세상에 작가 자신이 들어가며 벌어지는 일을 2인극으로 풀어낸다. 재즈와 클래식 간 크로스오버 넘버들로 구성됐다. 7월 14일까지, 4만4000∼6만6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하임숙 채널A 전략기획본부장(사진)이 4일 제31대 한국여성기자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임기는 2년. 하 신임 회장은 199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동아일보 편집국 산업1부장, 산업2부장,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 등을 지냈다. 이날 협회는 부회장에 박영진 YTN 국제부 기자와 신보영 문화일보 경제부장, 감사에 윤수희 KBS 시청자센터장과 하현옥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획이사에 정호선 SBS 생활경제부장, 총무이사에 강유현 동아일보 산업1부 차장을 각각 선임했다. 재무이사는 이한나 매일경제신문 부동산부장, 출판이사는 송혜진 조선일보 산업부 차장, 디지털이사는 권혜진 연합뉴스 산업부 차장, 국제협력이사는 박은경 경향신문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균형발전이사는 최진주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이 맡는다.일반이사는 안선희 한겨레 뉴스룸국 신문부국장, 노희영 서울경제신문 생활산업부장, 강미선 머니투데이 편집국 에디터, 조인경 아시아경제 산업부문 콘텐츠매니저, 곽인숙 CBS 정치부장, 백민경 서울신문 사회부장, 이진경 세계일보 산업부 차장, 박신영 파이낸셜뉴스 금융부 차장, 문수정 국민일보 산업2부 차장, 조수영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차장이 선임됐다. 1961년 설립된 한국여성기자협회에는 현재 33개 언론사, 1700여 명의 여기자가 회원으로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독한 현실을 마주하느니 환상 속에 남길 택한 이들의 결말은 비슷하다. 어리숙한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가 “동양인은 결코 완전한 남성이 될 수 없는 세상”에서 황제로 군림하는 동안, 파멸의 격랑은 그에게 빠르게 닥쳐오고 있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 ‘엠. 버터플라이’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7년 만에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번 시즌은 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된 개작 버전의 첫 국내 공연이다. 작품은 1964년 중국 베이징, 하급 외교관 르네가 오페라 ‘나비부인’을 연기하는 경극 배우 송릴링(쑹리링)의 신비롭고 순종적인 매력에 빠져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20세기 중국에서 여장을 한 채 스파이로 활동했던 경극 배우 스페이푸가 프랑스 외교관 베르나르 브루시코를 속이고 국가 기밀을 유출한 실화를 재창작했다. 작품의 배경은 60년 전이지만, 극중 동양과 여성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오늘날과도 평행을 이룬다. 르네는 송릴링을 ‘순수한 얼굴로 자신을 최고라고 말해주는 신비로운 여인’이라 칭찬하고, 그의 친구 마크는 경극에 대해 “고양이들이 짝짓기하는 소리”라고 농담한다. 이는 유머를 빙자한 차별과 타자화, 오마주의 탈을 쓴 문화전유가 더욱 교묘해진 오늘날 일부 콘텐츠를 떠올리게 했다. 은유와 직설을 오가는 정교한 설정 및 대사로 울림의 깊이를 더했다. 르네가 매료되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미국 해군 중위와 일본 게이샤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오페라로, “동양을 동등하게 바라봐야 한다”면서도 송릴링의 순종적인 모습에 이끌리는 르네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르네 역은 배우 배수빈, 이동하, 이재균이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송릴링 역은 김바다, 정재환, 최정우가 맡아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다. 다음 달 12일까지, 4만5000∼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005년 국내 초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 ‘헤드윅’의 14번째 시즌이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받거나 사랑받지 못해 상처투성이가 된 트랜스젠더 로커 ‘헤드윅’을 더 진하게 만나보기 위한 관전 포인트들을 짚어봤다. 올해 공연은 대형 ‘샤막’(반투명 스크린)을 처음 도입해 더욱 풍성해진 볼거리를 자랑한다. 작품의 대표 넘버 ‘The Origin of Love’에선 헤드윅의 미묘한 표정 연기가 중계되는 발광다이오드(LED) 패널 위에 오일파스텔로 그린 듯 동화적인 그림을 샤막으로 오버랩시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층적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손지은 연출가는 “지난 시즌에선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헤드윅에게 집중했다면, 이번 시즌에선 그 과거가 헤드윅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강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헤드윅의 이야기를 따라 록음악의 매력이 고스란히 묻어난 넘버들로 구성된다. 1988년 동독 베를린, 헤드윅은 음악을 들으며 불우한 유년 시절을 버티다가 성전환을 조건으로 결혼을 제의하는 미군을 만나 미국 캔자스로 간다. 그러나 결국 버림받고 변두리 술집을 전전하며 노래한 끝에 뉴욕에서 콘서트를 열게 된다. 이준 음악감독은 “세 도시 모두 펑크록과 글램록이 성행 및 발전했던 장소들로, 넘버와도 연관된다”며 “‘Angry Inch’, ‘Exquisite Corpse’ 등이 대표적인 펑크록 넘버”라고 설명했다. 무대 소품과 대사에 깨알같이 숨어 있는 음악적 요소를 발견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어린 헤드윅이 부엌에서 라디오를 듣는 장면의 경우 주인공이 동경한 데이비드 보위 등 록스타들의 사진이 오븐 안쪽에 도배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영국 록밴드 레드 제플린을 비롯한 뮤지션들이 대사에서 재치 있게 활용되기도 한다. “얜 마치 레드 제플린의 비행선(zeppelin)이 터져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라는 헤드윅의 말은 ‘알고 들을 때’ 더욱 유머러스하다. 끈적이는 목소리, 뇌쇄적 눈빛이 강렬한 주인공 헤드윅 역은 이번 시즌 조정석, 유연석, 전동석이 돌아가며 맡는다. 2006년 처음 헤드윅 무대에 선 조정석이 다시 출연하는 건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3인 3색 캐스트의 매력은 어떻게 다를까. 이 감독은 “조정석은 감정의 움직임이 큰 ‘Wig in a Box’를, 유연석은 통통 튀는 ‘Sugar Daddy’를, 전동석은 서사적 표현이 특징인 ‘The Origin of Love’를 자신만의 색깔로 특히 잘 소화해낸다”고 했다. 넘버 11곡 사이사이, 헤드윅은 공식 넘버 이외 ‘히든 트랙’들을 노래하며 관객 귀를 즐겁게 한다. 곡은 배우별로 다르다. 조정석의 경우 헤드윅의 어린 시절 우상이던 미국 록스타 루 리드의 ‘워크 온 더 와일드 사이드(walk on the wild side)’, 마치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는 듯한 가사가 담긴 렌카의 ‘더 쇼(The show)’ 등을 노래한다. 손 연출가는 “치밀한 캐릭터 분석을 요하는 작품인 만큼 배우 자신조차 모르던 본인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6월 23일까지, 8만∼15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채널A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당일 오픈스튜디오와 광화문광장, 청계광장을 잇는 ‘나의 선택 2024’ 선거 방송을 선보인다. 방 안에서 수동적으로 지켜보던 기존 선거 방송의 틀을 깨고 유권자와 함께하는 ‘축제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광화문 찾은 시민들 생방송 제작 직관 채널A 선거 방송은 대한민국의 심장 광화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동아미디어센터 1층 오픈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픈스튜디오는 시민 누구나 뉴스 제작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핫플레이스’. 총선 당일 광화문을 찾은 시민들은 선거 생방송 현장을 직관할 수 있다. 맞은편 광화문광장에서는 초고화질 대형 전광판으로 중계되는 몰입형 선거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세종대로 사거리의 일민미술관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 투표율, 득표율은 물론이고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3차원(3D) 이미지로 구현된 후보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청계광장에서도 채널A의 긴박감 넘치는 생방송이 이어진다. 전국 254개 지역구를 카토그램(특정한 주제와 통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지도)으로 구현한 가로 7m, 세로 13m 크기의 ‘A-MAP’ 앞에서 김윤수 앵커가 실시간 판세를 전한다. ‘주말 뉴스A’를 진행하는 김 앵커가 모자이크처럼 정당별 색깔로 채워진 카토그램을 직접 바꾸며 선거 상황을 전달할 예정이다. 눈앞에서 채워지는 지도를 통해 전국 판세는 물론이고 한강벨트를 비롯한 관심 지역 판세도 확인할 수 있다.● ‘1당 바로미터’로 족집게 선거 예측 선거 방송의 열기는 투표가 종료되는 오후 6시부터 더욱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채널A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데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족집게 예측조사를 진행한다. 앞서 채널A는 2022년 대선에서 서울대·연세대 공동 연구팀과 개발한 당선인 예측 시스템 ‘알파A’를 활용해 초접전을 달렸던 두 후보의 득표율 차(0.73%포인트)를 근접하게 맞혔다. 이번에는 서울 용산, 동작을 등 원내 1당을 차지하려면 반드시 차지해야 할 ‘1당 바로미터’ 지역을 중심으로 당선 결과를 내다본다. 해당 지역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직접 꼽았다.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천차만별의 여론조사 결과에 혼란을 느끼는 유권자들을 위해 채널A는 여론조사 팩트체크 시스템 ‘Poll-A’를 운영 중이다.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ViBA Lab과 협업해 만든 시스템이다. 각 여론조사 기관의 편향성을 최소화해 실제 민심에 가장 가까운 여론을 전달하며, 조사 방식에 따른 지지율 변화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정치 고수’가 읽어주는 판세 선거판을 정확히 읽어내는 ‘정치 고수’들이 출연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5선 중진의원 출신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여야를 가리지 않는 촌철살인 코멘트로 유명한 유인태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팽팽한 분석 배틀을 펼친다. 간판 시사 보도 프로그램 앵커들도 전진 배치한다. ‘뉴스A’ 진행자이자 채널A 정치부장으로 현장까지 꿰고 있는 동정민 앵커가 내공 있는 선거방송을 이끈다. 이와 함께 ‘김진의 돌직구쇼’로 아침을 여는 김진 앵커, 매일 저녁 파트너 ‘뉴스 TOP10’의 김종석 앵커도 가세한다. 손영일 채널A 선거방송기획TF팀장은 “방 안에서 지켜보는 기존 선거 방송의 틀을 깨려고 한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광화문 한가운데에서 유권자들과 함께 즐기는 선거 방송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제전’은 제사의 의식 또는 성대한 잔치를 뜻한다. 길운을 염원하는 제전에선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치고, 넘보기 힘든 산해진미를 내어놓는 법이다. 다음 달 26∼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서울시발레단 ‘봄의 제전’은 한국 발레의 새 지평을 열고자 현대무용가 안성수(62), 유회웅(41), 이루다(38)가 힘을 모은 귀한 한상차림이다. 지난달 출범한 서울시발레단이 선보이는 첫 번째 공연으로 8월 창단 공연에 앞서 공연된다. 서울시발레단은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에 이어 48년 만에 창단된 국내 세 번째 공공발레단이다. 그중 컨템퍼러리(현대) 발레단은 서울시발레단이 유일하다. 3인 3색 트리플빌을 안무한 세 사람을 27일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첫 신호탄을 알리는 만큼 세 작품 모두 뛰어난 기량과 고강도 체력을 요구한다. 안 씨의 ‘로즈’는 2009년 초연된 ‘장미―봄의 제전’을 더욱 빠르고 역동적으로 재구성한 30여 분 길이의 공연이다. 힙합 댄스가 가미된 기존 버전에서 발레 동작을 강화해 움직임은 자연스레 화려해졌다. 안 씨는 “2009년 초연 때부터 15년간 작품의 음악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선율에 익숙해지면서 이전엔 놓쳤던 음표와 쉼표가 들렸다. 이를 움직임으로 채우다 보니 작품 강도가 높아졌다”면서 “연습이 끝나면 다들 몸을 부여잡으며 힘들어하지만, 운 좋게 이를 해낼 수 있는 멋진 무용수들을 만났다”며 웃었다. 서울시발레단은 기존 공공발레단과 달리 단장, 고정 단원 없이 시즌 및 작품별로 선발된 무용수와 안무가로 구성된다. 올해 시즌 무용수는 국립발레단, 미국 뉴욕 페리댄스 컨템퍼러리 무용단 등 출신의 무용수 5명으로 이뤄졌다. 김희현, 김소혜, 원진호는 ‘로즈’에, 남윤승, 박효선은 ‘노 모어’에 출연한다. ‘볼레로24’는 프로젝트 무용수 9명이 무대에 선다. 이루다의 ‘볼레로24’ 역시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곡 ‘볼레로’를 더욱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펼쳐낸다. 1년 24절기, 하루 24시간으로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에 관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볼레로’의 희극적인 선율은 이 씨를 상징하는 ‘어둠’을 거쳐 재탄생된다. 이 씨는 “낮과 밤, 음과 양 등 우주의 흐름 속 생명체의 탄생과 소멸을 몸으로 표현하려 한다”며 “어릴 때부터 백조보단 흑조를 좋아했다. 검정 색은 내 작품에 정체성을 부여한 길잡이”라고 설명했다. 컨템퍼러리 발레는 클래식발레와 비교해 비정형적인 움직임이 매력으로 꼽힌다. 그런데 유회웅의 ‘노 모어’는 그 매력을 한판 더 뒤집었다. 유 씨는 “현대무용이지만 신체적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선다. 탁탁 두드리는 소리를 만들고 분출하는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작품은 오늘날 피로와 무기력에 매몰된 사람들의 심장에 힘찬 박동을 안겨주고자 기획됐다. 무용수들은 도심을 형상화한 무대세트를 배경으로 떨림과 긴장감을 빠른 드럼 비트에 맞춰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현대예술엔 정해진 답이 없어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정답이 없기에 관객은 ‘찾아나가는’ 재미가 크다. 이 씨는 “클래식발레의 길고 예쁜 동작들이 어떻게 해체적으로 변형됐는지 비교해 보는 방법이 있다”며 “미디어아트에 담긴, 춤의 의미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각적 힌트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권했다. 안 씨는 “무용수들의 아이디어로 재미난 동작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의 제스처, 가수 엄정화의 춤 등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만∼6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020년 12월, 한 재심법정에서 내려진 선고로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1988년 벌어진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에서 범행을 자백해 20년간 구금됐던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 재판부는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사과하며 “피고인의 자백 진술은 불법체포·감금 상태에서 가혹행위로 얻어졌다. 각종 증거에 객관적 합리성도 없다”고 밝혔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는 이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책은 이처럼 누구든지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오늘날 사법제도에 대해 비판한다. 저자는 무죄 입증 변호사 단체인 ‘캘리포니아 무죄 프로젝트’의 설립자로서 30년간 힘썼다. 무고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옥에 갇히게 되는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변호 인력의 부족과 부적절한 수사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은 매릴린 멀레로 사건, 범행 현장으로부터 56km나 떨어져 있었지만 목격자의 부정확한 진술 탓에 억울하게 복역한 라파엘 매드리걸 사건 등이 총 10개의 장에 걸쳐 등장한다. 영화 ‘추락의 해부’의 모티브가 된 어맨다 녹스 사건도 눈길을 끈다. 오판을 낳게 하는 불가항력적 실수와 구조적 요인들도 지적한다. 잘못 조합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인간의 기억력이 대표적이다. 책은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경찰이 잘못된 정보를 한두 개 흘리면 기억을 정확히 소환하기 어렵다”며 “경찰관은 심문에서 진실을 찾으려 하는 대신, 이미 만들어놓은 시나리오에 피의자가 동의하는 것에 집중한다”고 말한다. 무고한 피해자를 낳는 불합리한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1800억 달러를 교도소에 사람을 가두는 비용으로 투입하고 있다. 저자는 “거짓 자백을 만들 우려가 있는 절차들은 전부 뿌리 뽑고, 용의자 식별 절차 중 의도적 오염이나 실수가 개입하지 않도록 이중 잠금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뮤지컬 시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가운데 공연계가 ‘지방 관객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4591억 원으로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1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 공연 대비 짧은 기간 진행되는 지방 투어 공연에선 과거 시간 및 비용 효율 등의 이유로 뮤지컬 음악 반주가 MR(반주 음원)로 대체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서울 공연과 마찬가지로 지방 공연에서도 20인조 이상의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21∼24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과 다음 달 2∼7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드라큘라’는 모든 회차 공연에서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에 나선다. ‘드라큘라’ 제작사인 오디컴퍼니 공연제작팀 관계자는 “최근 일회성이 아닌 기간적 여유를 가지고 공연하는 경우가 늘면서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가능한 구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학생 등 밤 시간 공연 관람이 어려운 관객층을 겨냥해 낮 시간대 공연을 신설하기도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이어진 대구 공연 기간 금요일 마티네 공연을 추가했다. 통상 수요일 낮에 이뤄지는 마티네 공연을 금요일에도 실시해 주말과 이어 붙여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지난해 10, 11월 열린 부산 공연에서 4번의 마티네 공연을 추가했다. 노민지 클립서비스 홍보팀장은 “‘레미제라블’의 경우 먼 지역으로 공연을 보러 가기 어려운 학생들의 호응이 높았다. 마티네 공연을 중심으로 부산·경남 소재 40여 개 학교의 단체 관람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공연 여건상 전국 투어 공연이 불가능할 경우 지방 관객의 발길을 서울까지 모으기 위한 이색 프로모션들도 제공한다.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EMK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360도 회전하는 대규모 무대장치 등으로 인해 서울 외 지역에서 공연을 열지 않는다. 그 대신 고속버스 승차권, 항공권 등을 제시하는 타 지역 관객에게 20% 할인 혜택을 줬다. 김지원 EMK 부대표는 “프로모션용으로 준비한 물량이 거의 다 소진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며 “투어 공연이 어려울 경우 다양한 혜택을 마련함으로써 지방 관객들의 공연 관람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는 말을 기치로 사랑 한 줌 없는 삶을 견뎠다. 불우했던 이팔청춘에 청부 살인을 시작해 40여 년간 감정을 거세한 채 살아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 그의 메마른 삶에 타인과 생명을 향한 사랑이 움트려 한다면 그건 축복일까, 더 큰 불운일까. 15일부터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초연 중인 창작 뮤지컬 ‘파과’는 2013년 발표된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목 ‘파과’는 부서진 과일 또는 여자 나이 16세를 뜻한다. 작품은 파과(破瓜)일 적부터 파과(破果)로서 살아야 했던 조각, 그리고 어린 시절 조각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후 20년간 복수심과 동경심을 원동력 삼아 살아온 ‘투우’가 그리는 이야기다. 투우 역을 맡은 배우 신성록은 증오와 동경, 연민이 뒤엉켜 비틀린 투우의 내면을 비릿한 웃음과 느릿한 말투 등으로 매끄럽게 표현한다. 조각 역의 구원영은 세월이 흐르며 곪아버린 마음과 그 속에서도 돋아나려는 새살로 인한 미묘한 감정을 건조하면서도 처연한 연기로 그려낸다. 조각 역은 차지연과 구원영이, 투우 역은 신성록과 김재욱, 노윤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소설과 비교해 뮤지컬에선 누아르 장르의 매력을 더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스카프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등 주연 배우들이 무대에서 몸소 선보이는 격정적 액션 장면은 긴박감을 더한다. 통상 뮤지컬에서 액션을 가미한 연기 및 군무가 극 전개와 다소 괴리되는 인상을 주는 것과 달리 ‘파과’ 속 액션은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누아르 영화를 연상케 하는 무대세트와 흑백 영상도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차갑고 대칭적인 형태의 철제 난간과 계단은 날카롭고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총 3개 층으로 이뤄진 수직적 무대는 언제 어디서든 감시와 위협을 당할 수 있는 조각의 불안한 삶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성근 전개와 심리묘사는 다소 아쉽다. 조각이 어릴 적 친척 손에 거둬지며 겪었던 성장통, 투우가 살해범에게 온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배경 등이 뮤지컬에선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지극히 인간적인’ 이들의 양가적 마음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조각이 과거 자신을 거둬주고 청부 살인 방법을 전수한 스승에게 느꼈던 애틋함과 현재 부상당한 자신을 치료해주는 ‘강 박사’로 향한 연정이 어수선하게 병렬되며 흐름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다만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내레이션과 20여 곡의 서정적 넘버가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보완했다. 5월 26일까지, 6만∼12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오늘 훌륭한 가수분들과 (학전의) 마지막 무대에 서게 돼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학전의 정신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배우 황정민)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끌어 온 학전이 15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91년 3월 15일 개관한 지 꼭 33년 만이다. 폐관 전날인 14일, 서울 종로구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 콘서트’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황정민은 “학전은 제게 배우로서 포석이자 지금의 저를 만든 마음의 고향”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등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그는 이날 학전 대표 김민기의 히트곡 ‘작은 연못’을 노래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오랜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투병이 겹치면서 지난해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학전과 인연이 있는 배우, 가수들이 뜻을 모아 기획했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던 배우 설경구, 장현성부터 가수 동물원, 시인과 촌장, 윤종신, 세계적인 재즈 가수 나윤선까지 모두 출연료 없이 노개런티로 동참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어진 총 20회 릴레이 공연은 티켓 예매 시작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티켓 수익금은 제작비를 제하고 모두 학전에 기부된다. ‘김민기 트리뷰트’를 부제로 열린 이날 공연에선 그룹 노찾사, 가수 박학기, 권진원, 정동하, 알리 등이 ‘상록수’를 비롯한 김민기의 히트곡들을 불렀다. 1956년 문을 열어 대학로의 산증인이 된 학림다방의 이충열 대표도 게스트로 참석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콘서트는 모든 출연진이 입 모아 “나 이제 가노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아침이슬’)를 노래하며 끝을 맺었다. 이번 릴레이 콘서트의 총감독을 맡은 가수 박학기는 “김민기 이름 석 자 아래 선후배들이 같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 서정임 씨(서울 광진구·50)는 “20대에 ‘지하철 1호선’만 두세 번 봤고 지금도 김민기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며 “아쉬운 마음에 딸에게 부탁해 티켓을 구했다”고 했다. 학전은 그동안 고(故) 김광석, 들국화, 조승우 등 수많은 스타 가수와 배우들을 배출해 냈다. 국내 창작뮤지컬 역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1994년 초연한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연주를 선보인 작품이었다. 공연 횟수 4000여 회, 누적 관객 7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소극장 뮤지컬의 역사를 썼다. 또 학전이 제작한 뮤지컬 ‘의형제’는 제35회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극장은 다음 달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임차한다. 학전의 뜻에 따라 명칭은 변경되며 올 7, 8월경 어린이·청소년 전문극장으로 재개관하게 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호흡을 맞춘다’는 것. 심장박동을 나누고 함께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말이다. 차디찬 로봇이 달리는 말의 등에 올라타 호흡을 맞추고 질주의 두근거림을 나눈다면, 그 순간만큼은 로봇에게도 온기가 도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존재가 맞추는 호흡을 담은 연극 ‘천 개의 파랑’이 다음 달 4∼28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천선란 작가의 동명 공상과학(SF) 소설이 원작으로 국립극단이 제작했다. 더는 달리기 힘든 경주마 ‘투데이’, 투데이를 살아있게 하고자 스스로 폐기를 택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그런 콜리를 살리려는 소녀 ‘연재’가 연대하는 과정을 그렸다. 티켓 예매 시작 하루 만에 전 회차 전석 매진된 화제작이다. 이번 공연에서 ‘호흡을 맞춘’ 장한새 연출가(35)와 천선란 작가(31)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났다. 2016년부터 SF 연극을 꾸준히 다뤄온 장 연출가는 연재와 콜리가 첫눈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봤듯 책 ‘천 개의 파랑’을 읽자마자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SF지만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기술에 관한 이야기는 다분히 일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먼 미래에나 벌어질 상상으로만 치부한다면 이미 도래한 기계사회에서 기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고 사유되고 있는지 놓치기 쉽다”고 했다. 천 작가의 작품이 연극, 영화 등 3차원(3D)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해 공연으로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당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다고 외쳤다”며 “2년 전 한 축제에서 ‘천 개의 파랑’ 낭독을 듣던 중 울어버렸다. 한 장면의 감각과 분위기를 언어로 온전히 담아내는 데 평소 한계를 느끼는데 연극에선 이를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콜리와 투데이가 대화하지 않고 고삐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호흡을 맞추듯 연극은 관객과의 약속만으로 상상력을 펼쳐내는 무대예술이다. 천 작가는 “영화화 제안도 받았지만 말과 로봇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런데 연극은 약속으로 이뤄지는 장르이니 가능하겠단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 중 투데이는 빛으로 형상화돼 콜리의 심장을 표현한다. 국립극단 74년 사상 처음으로 로봇 배우가 무대에 올라 콜리 역을 맡는다. 특별 제작된 145cm 크기 로봇은 조명장치 제어 기술로 신호를 받아 동작과 대사를 실시간으로 소화한다. 배우 김예은이 로봇을 조종하는 동시에 콜리 시각에서의 서술자 역할을 수행한다. 무대는 사실적 재현 대신 ‘콜리의 메모리박스’로서 표현된다. 장 연출가는 “콜리가 각 인물과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에 중점을 뒀다”며 “경마장은 말발굽 소리와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 투데이의 존재를 통해 감각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이 각자 소설로 연극으로, 있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만 이야기하는 이유는 뭘까. 두 사람에게 SF적 상상력이란 ‘현실과 맞서 싸울 힘의 원천’이다. 장 연출가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반추하듯 세상의 끝을 이야기함으로써 새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싶다”고 했다. 천 작가는 “인류가 사라지고 몇백 년이 흘러 텅 빈 도시를 상상하면 소란스럽던 마음이 차분해진다”며 이같이 답했다. “그 순간 차별과 갈등에 맞서 싸울 힘이 생겨요. 결국 모두 침묵 속에 가라앉을 거라면 지금 더 크게 목소리 내도 되겠다 싶어요. 그게 제가 SF를 사랑하는 이유죠.”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오늘 집을 나서는데 마음이 너무 무겁더라고요. ‘진짜 마지막’ 같아서…. 학전은 제게 운명이었고, 그 이름은 사라져도 제겐 학전의 DNA가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겁니다.”(배우 설경구) 뿌린 씨가 싹을 틔우길 기다리는 이른 봄, 11일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 콘서트’에 선 배우 설경구가 아쉬움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1994년 학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한 그는 꼬박 30년이 흘러 국내 손꼽는 ‘명배우’ 타이틀을 달고 같은 무대에 섰다. 설경구는 “대학 졸업 후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학전 김민기 대표의 눈에 띄어 엉겁결에 무대에 섰다. 그땐 모든 게 참 어설펐다”고 미소 지었다. 15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학전의 마지막 공연은 ‘릴레이 콘서트’다. 오랜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투병이 겹치면서 지난해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학전과 인연이 있는 배우, 가수들이 ‘학전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겠다’며 발 벗고 나선 것. 출연료는 한 푼도 없다. 티켓 수익금은 제작비를 제하고 전액 학전에 기부된다. 윤종신, 장필순 등 싱어송라이터와 동물원, 시인과 촌장 등 굵직한 포크 가수, 그리고 데이브레이크 등 ‘요즘’ 밴드까지 릴레이에 동참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어진 총 20회 공연은 티켓 예매 시작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폐관을 나흘 앞둔 11일 공연은 나윤선, 오지혜 등 학전 출신 배우 70명이 직접 기획과 연출을 맡은 것은 물론이고 직접 출연자로 나섰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고추장 떡볶이’ 등 학전 대표작의 넘버를 부르는 갈라 콘서트와 토크쇼로 구성됐다. 과거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김윤석과 함께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배우 장현성은 손수 기타를 치며 설경구, 방은진, 최덕문과 ‘축복합니다’를 노래했다. 장현성은 “가장 ‘학전답게’ 이별하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관객과 학전의 앞날을 축복하고자 이 노래를 골랐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순수한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방은진은 “백스테이지에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라”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2시간 반 동안 이어진 콘서트는 출연진 전원이 무대와 객석 통로에 빼곡히 서서 ‘지하철 1호선’ 1막 마지막 넘버 ‘코랄’을 합창하며 끝이 났다. 김민기를 위해 배우들이 준비한 감사패는 직접 전달되지 못했다. 가수 박학기 등에 따르면 김민기 대표는 “건강상 극장을 직접 찾진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극장에 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매일 릴레이 콘서트 녹화 영상을 챙겨 보고, 출연진에게 전화해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공연 막바지 그동안 학전을 거쳐 간 배우, 연주자, 스태프 등 771명의 이름을 호명하는 엔드크레디트가 오를 때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 울음은 김민기의 히트곡 ‘봉우리’가 흘러나와 위로했다. 1991년 개관한 학전은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끈 상징적 공간이다. 지금까지 기획·제작한 작품 수는 총 359개에 달한다. 고(故) 김광석, 들국화, 안치환 등이 학전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2008년까지 약 4000회 공연되며 관객 70여만 명을 모았다. 다음 달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극장을 임차해 어린이·청소년 전문극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다만 학전의 뜻에 따라 명칭은 변경하며 7∼8월 재개관한다. 한편 학전은 14일 열리는 콘서트를 끝으로 33년의 릴레이를 완주한다. 마지막 공연에선 배우 황정민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최근 공연계에선 다음 달 17∼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발레 ‘모댄스’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주역인 세계적 발레 스타이자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5·사진)의 정치색 논란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그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찬성한 데 이어 러시아 연방의회 국가두마(하원) 의원을 두 차례 지낸 인물이다. 푸틴으로부터 훈장도 받아 ‘친푸틴’ 인사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이번 공연을 앞두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측은 주한 대사관을 통해 “침략 국가의 공연자들을 보여주는 것은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며 공연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공연계에선 논란이 되는 정치적 배경을 지닌 예술가의 공연을 허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물리고 있다. 최근 정치적 올바름(PC)이 대중의 중요한 잣대가 되면서, 정치적 성향뿐 아니라 윤리적 결함이 있는 예술가의 공연 취소, 캐스팅 변경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올 초 공연 예정이던 연극 ‘두 메데아’는 공연예술 관계자 343명, 관객 363명이 연명한 보이콧 운동으로 개막을 열흘 앞두고 취소됐다. 주연 배우 김모 씨가 2018년 미투로 질타를 받은 연희단거리패 대표 출신인 데다, 그래픽디자이너가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달 3일 폐막한 뮤지컬 ‘더 데빌: 파우스트’에는 원래 배우 한모 씨가 출연 예정이었으나 개막 전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했다. 2020년 성추행 논란을 두고 관객들이 대학로 거리에 현수막을 내거는 등 거세게 항의한 데 따른 결정으로 알려졌다. 공연을 허용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적인 여론을 수용한 것이다. 공연계에선 PC 논란을 일으킨 예술가들의 공연 여부를 놓고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연 강행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과 캔슬컬처(논란이 된 인물의 지위를 박탈하는 집단적 움직임)는 마녀사냥일뿐더러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위축시킬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자하로바 공연 논란의 경우 자하로바 본인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 주장해도 핵심적인 친푸틴 예술가로서 가해자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전쟁에 반대하는 나라들에선 러시아 출신 예술가들의 공연을 줄줄이 취소했다. 비윤리적 예술가가 활동을 재개해도 괜찮다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공연을 ‘안 볼 권리’가 있는 개개인이 작품을 외면함으로써 예술가가 반성을 하고, 자연적으로 정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공과를 다각도로 살피지 않은 일방적 매도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고 했다. 일회성에 그치는 단죄를 넘어 논란이 된 예술가의 작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16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열리는 포럼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에 참여하는 홍예원 연출가는 “나치 독일의 괴벨스가 만든 선전 영화는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받는 한편 어떤 목적으로 제작됐는지 대중이 인지하고 본다는 게 핵심”이라며 “공연을 취소하고 사안을 봉인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평가로 건강한 논의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 달 16∼18일에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갈라콘서트가, 6월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현악 4중주단의 공연이 열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인터넷을 보다 보면 세상의 종말이 머잖은 것 같은 때가 있다. 정치 혼란, 경기 침체 등 막막한 문제를 둘러싼 각종 ‘썰’이 난무해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는 썰의 황금기(?)에 태어난 듯해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책은 음모론이 단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 역사와 패턴에 대해 몰입도 높게 풀어낸다. 책에 따르면 음모론은 중세에도 팽배했다. 부활절 전날 영국의 숲속에서 소년의 시신이 발견되자 ‘유대인이 기독교도 아이들을 살해한다’는 낭설이 유럽 전역에 퍼졌다. 1960, 70년대 미국에선 베트남전, 정계 인사의 암살 등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며 음모론이 폭발했다. 다만 저자는 “오늘날 인터넷이 보급되며 극단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심화한 양극화는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의식을 키웠다”고 말한다. 일루미나티, 폴 매카트니 사망설 등 세상을 뒤흔든 음모론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며 음모론이 사라지기 힘든 이유를 진화론과 심리학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원시 인류는 위험 요소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보다 실존하지 않는 위험을 보는 게 유리했다”며 “음모론은 세상을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욕구를 충족해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 음모론자가 단지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이 아닌 ‘우리’ 모두일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예컨대 20세기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은 ‘케네디 암살 음모론을 믿는 모임’을 창설했다. 음모론의 시비도 따져본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이 팬데믹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전자기파 중 하나인 5G는 인체에 피해를 일으킬 만한 에너지가 없는 비전리 방사선”이라고 반박한다. 음모론에 매몰되면 그것의 토대가 된 진짜 문제를 놓칠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삶을 좌우하는 진짜 원인을 밝혀내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이야기, 평범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만남과 헤어짐이 물 흐르듯 이어진대도 어떤 사랑은 결코 평범할 수 없다. 존재 자체를 끊임없이 부정당하는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오래 살며 사랑하는 일’은 머나먼 행성만큼 요원하다. 19∼31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는 이처럼 평범함이 허락되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2000년생 동갑내기 재은과 윤경이 만나 동성 가족을 이루고, 딸을 입양해 함께 살아가는 100년의 시간을 그린다. 제59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이래은이 연출했다. 6일 정동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초연 대본을 읽었을 땐 다음 일이 쉽게 예측돼 꾸벅꾸벅 졸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장을 넘긴 순간 눈물이 탁 터졌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현실에서 오롯이 지켜본 적이 없기에…. 마음이 무너진 거예요.” 주인공 재은과 윤경의 혼인신고서가 반려되자 곧장 유언장을 작성하는 장면은 관객 가슴에 파문이 일게 한다. 이 연출가는 “동성 부부는 병원에 가도 서로 보호자조차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이 그들에겐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극 중 일대기는 ‘우주’와 연결된다. 처음 만나 UFO(미확인비행물체) 이야기를 하며 마음이 닿고, 먼 미래엔 우주정거장에서 재회한다. 이 연출가는 “슬픔과 고통이 반복되는 삶의 순간들이 까맣고 긴 터널처럼 이어지는 형상을 머릿속에 그렸다. 이를 표현하고자 분야별 디자이너들과 논의해 무대 바닥에 궤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평범한 사랑 이야기’임을 보여주고자 무대와 관객 간 거리를 좁히는 보조 무대를 설치했다. 세 주인공의 10대 시절은 특히 섬세한 대사로 그려진다. 시대별 10대를 적확히 표현하고자 당시 정치사회와 대중문화부터 양육자 세대의 성장 배경까지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8세부터 99세까지 넘나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액팅코치, 안무가와 머리를 맞대고 신경심리학적 연구도 했다. 8세 전후 어린이를 연기할 땐 윗입술을 바짝 올리고, 에너지가 사방으로 분출하듯 걷는다. 80대가 되면 무게 중심을 골반 앞으로 움직이고, 길어진 인중과 밭은 숨으로 말한다. 그는 “과학적 근거로 몸을 만들면 슬픔과 고통을 연기하더라도 배우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눈물을 뚝뚝 떨구기도, 봄 닮은 미소를 짓기도 하던 그에게 사랑은 단지 이성을 향해 타오르는 것이 아니다. “텅 빈 우주 어딘가에 표류할 서로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깜박깜박 신호를 보내는 것, 다시 말해 계속 들여다보고 면면을 발견하는 것. 그게 사랑이죠.”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굽은 등과 뒤틀린 입술, 절룩이는 다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카지모도)의 첫 등장은 여느 뮤지컬의 ‘백마 탄 왕자님’들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향해 누구보다 꾹꾹 진심을 눌러 담아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의 사랑을 응원하게 될지 모른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콰지모도 역을 맡은 배우 정성화(49)를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만났다. 그는 콰지모도를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역할’로 꼽으며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말문을 뗐다. 이어 “첫 등장은 열한 살인 우리 아이가 나를 피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하지만 공연이 끝날 때쯤엔 ‘나라도 저 친구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전 세계 23개국에서 15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스테디셀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세 남자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한국어 공연은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콰지모도 역은 정성화와 양준모, 윤형렬이 돌아가며 맡는다. 그는 관객에게 연민을 자아내는 것을 목표로 배역을 끊임없이 파고들었다고 했다. “시즌 초반에 ‘콰지모도가 너무 청아하다’는 관객 평을 보고 크게 반성했어요. 콰지모도의 불편한 등허리와 청력 등을 연기와 목소리로 표현하려 다시 고민했죠.” 이후 그는 또렷한 발음 대신 다소 어눌한 발음을 연습했고, 다리 근육을 훈련해 최대한 낮은 자세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04년 뮤지컬 ‘아이 러브 유’로 공연계에 입성한 그는 21년 차 베테랑 배우다.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킹키부츠’의 롤라,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등 다채로운 캐릭터를 오갔다. 그는 2009년 ‘노트르담 드 파리’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이번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정성화는 “무대에 올라 관객 귀를 즐겁게 해주는 동시에 저 스스로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은 처음이다.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24일까지, 7만∼17만 원. 29일부터는 부산과 대구에서 공연이 이어진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카메라에 불이 켜지고 두 무용수가 눈을 맞추자 연습실 검은 장막에 푸른 달빛이 사푼 내려앉은 듯했다. 밤마다 백조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오데트와 악마의 방해로부터 사랑을 지켜내려는 왕자 지그프리트. 호수만큼 시린 눈빛이 허공에 걸렸을 땐 이들이 사랑의 주역으로 거듭 호흡을 맞추는 이유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달 27∼3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되는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영원한 사랑을 춤추는 두 주역, 솔리스트 조연재(29)와 수석무용수 박종석(33)이다. 5일 서울 서초구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이들은 ‘호두까기 인형’ ‘고집쟁이 딸’ 등에서 연인을 연기한 발레단 대표 듀오 중 하나다. 전 회차 전석 매진된 이번 공연에서 오데트 역은 심현희, 조연재, 안수연이, 지그프리트 역은 박종석, 허서명, 하지석이 번갈아가며 맡는다.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는 세계적인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버전으로 남녀 무용수 모두에게 고강도 체력과 정교한 연기를 요구한다. 박종석은 “1막 1장은 내내 뛰어다니기 때문에 연습한 날엔 따로 유산소 운동을 안 해도 될 정도”라며 “그 대신 공연을 끝낸 뒤 돌아오는 행복도 2배”라고 했다. 조연재는 역대 출연작 중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를 꼽았다. 그는 “백조를 표현하려 뒤로 꺾는 팔의 움직임이 매우 까다롭다. 태생적으로 왼쪽 어깨가 잘 움직이지 않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고백했다. 백조 오데트 역 발레리나가 사랑을 훼방 놓는 흑조 오딜 역까지 겸해 180도 반전 연기를 선보이는 것이 작품의 묘미다. 조연재는 ‘처연한’ 백조와 ‘매혹적인’ 흑조가 되고자 고심했다. 그는 “지그프리트를 속이려면 흑조는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봤다”며 “백조 연기는 전설적인 무용수 율리아나 로파트키나 영상을 참고했다. 인간이 아닌 백조 그 자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한 지그프리트가 그릇된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은 박종석에게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2년 전 발레리나 겸 배우 왕지원과 결혼한 그는 평소 사랑꾼으로 유명하다. “이때 지그프리트가 받는 충격은 완전히 제 것이에요. 오데트와 사랑에 빠질 때, 자기 잘못을 깨닫고 슬픔을 느낄 때 아내와의 일들을 생각하죠. 일상에서 느낀 진짜 감정을 무대에서 표현해 내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섬세한 연기로 공연마다 호평을 받는 박종석은 2016년 입단 후 5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조연재 역시 승급 속도가 매섭다. 2018년 입단한 해에 ‘호두까기 인형’ 마리 역으로 주역에 곧장 데뷔했다. 올해 1월엔 드미솔리스트에서 솔리스트2를 건너뛰고 솔리스트1로 두 계단 점프했다. 입단 동기 중 승급이 가장 빠르다. “‘백조의 호수’를 잘하고 싶어서 연말연초 휴가에 쉬지 않고 연습을 했거든요. 그런데 1월 첫 출근 날 발목이 돌아갔어요. 발레가 내 길이 아닌 걸까 하늘을 원망했죠. 병가를 내고 병원에 다녀오는데 승급 전화가 와서…포기하지 말라는 거구나, 큰 힘이 됐죠.” 두 사람에게 빠르게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게 된 비결을 물었다. 조연재는 “연습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우울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 할 일은 하자’는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하려 한다”고 했다. 박종석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같은 답을 내놓았다. “집 가서 털고 다음 날부터 그냥 다시 하는 거죠. 안 되는 걸 계속 해보고 또 해보면서.”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걸그룹 트와이스가 미국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K팝 가수가 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8번째다. 3일(현지 시간) 미국 빌보드는 차트 예고기사를 통해 트와이스가 열세 번째 미니음반 ‘위드 유-스(With YOU-th)’로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미국의 컨트리음악 스타 모건 월런의 앨범 ‘원 싱 앳 어 타임(One Thing at a Time)’과 카녜이 웨스트-타이 달라 사인의 ‘벌처스 1(Vultures 1)’ 등 쟁쟁한 후보를 제쳤다. 비(非)영어 앨범이 ‘빌보드 200’ 1위에 오른 건 24번째다. 앞서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뉴진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스트레이 키즈, 슈퍼엠, 에이티즈 등 7개 K팝 그룹이 1위를 차지했었다. 2015년 데뷔해 ‘치어 업’ 등의 히트곡을 낸 트와이스는 해당 차트의 10위권에 5차례 진입한 끝에 처음 1위에 올랐다. ‘빌보드 200’은 스트리밍 횟수,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횟수 등을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뒤 실물 음반 판매량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위드 유-스’는 집계 기간 음반 판매량이 9만5000장에 달했다. 신보에는 타이틀곡 ‘원 스파크’를 비롯한 6곡이 수록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방송인 김신영이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하차한다. 송해(1927∼2022)의 후임으로 발탁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김신영은 지난달 29일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았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담당 CP(책임 프로듀서)가 (KBS 윗선으로부터) MC 교체 통보를 받고 당황해 연락이 왔다. 이달 9일 인천 서구편 녹화를 끝으로 하차하게 됐다”며 “김신영은 그동안 전국을 누비며 달려온 제작진과 힘차게 마지막 녹화에 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국노래자랑’은 국내 최장수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1980년 정규 편성돼 가수로 활동했던 고 이한필, 방송인 이상용 등이 역대 MC로 이름을 올렸다. 김신영은 1988년부터 34년간 MC를 맡았던 송해의 뒤를 이어 2022년 10월 ‘전국노래자랑’ 첫 여성 MC로 발탁됐다. 김신영의 하차는 시청률 하락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국노래자랑’은 송해가 진행을 맡던 시절 10%대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으나 올해 시청률은 5∼6%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대표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임으로는 방송인 남희석이 확정됐다. 남희석이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은 이달 31일부터 방영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