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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정책에 맞서 24일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영향력이 가장 큰 현대자동차 노조가 간부들만 총파업에 참여한 데다 공공부문도 당초 예상보다 적은 인원만 참여해 파업의 파장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광장 등 전국 17개 지역에서 총파업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연맹을 비롯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총파업에 참여했다. 민주노총은 전국 2829개 사업장에서 총 26만여 명이 이날 총파업에 동참했고, 서울 2만여 명 등 총 7만여 명이 총파업 집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파업 참여 시 형사 처벌하겠다고 경고한 전공노는 이날 오전 조합원 총회를 열고 총파업에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교조는 연차휴가를 한꺼번에 내는 방식으로 총파업에 참여했다. 민주노총은 전공노 5만여 명, 전교조 30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자체 집계했다. 전교조가 연가투쟁을 한 것은 9년 만이고 법외노조가 된 이후로는 처음이다. 그러나 개별 노조로는 영향력이 가장 큰 현대차 노조가 간부들만 총파업에 참여하고, 일반 조합원은 참여하지 않아 파업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전국적으로 약 3만4000명만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마저도 2∼4시간 부분파업을 벌인 기아자동차(2만8000명)와 기아차 사내하청 조합원(2600명)을 제외하면 금속노조 소속 일부 조합원만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교에서 연가 승인을 두고 교장과 교사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기는 했지만 학교 수업도 전국적으로 큰 차질 없이 진행됐다. 교육부 집계 결과 전교조도 1500명 정도만 연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노의 상당수 지부 역시 징계나 형사처벌을 우려해 지도부가 지시한 비상총회를 취소하거나 점심시간에 총회를 여는 등 실질적으로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3시 서울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엔 8000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행진 과정에서 일부 불법시위가 있었지만 경찰과의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당초 주최 측은 서울광장, 을지로 입구, 종각, 종로2가, 을지로2가 등 총 2.4km를 행진한 뒤 서울광장으로 돌아온다고 신고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 45분 서울광장을 출발해 종각까지는 폴리스라인을 잘 지키며 행진했지만, 5시 20분쯤 4000명(경찰 추산)이 종각에서 운현궁 앞 경운동 일원으로 몰려가 모든 차로를 점거하고 연좌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오후 5시 50분 종로1가로 이동해 다시 모든 차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지만 경찰과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경찰이 4차 해산명령을 내린 뒤인 6시 40분경 차분히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이날 대구에서는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소속 2500여 명이 오후 3시 반부터 1시간가량 범어네거리를 점거해 통행이 차단되기도 했다. 시위대가 자진 해산을 거부하면서 경찰이 최루액과 물대포를 사용하는 등 양측 간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정부는 이날 총파업을 근로조건과 상관없는 정치,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파업 지도부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파업을 주도한 전교조, 전공노 지도부 역시 검찰에 고발하거나 중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한편 경찰은 이날 서울시청 별관과 종로의 건물 옥상 등에서 정권 비판 전단을 배포하거나 배포하려 한 3명을 연행했다.유성열 ryu@donga.com·김희균·이샘물 기자}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는 유가족을 포함한 피해자 가족들이 물대포와 캡사이신 최루액을 맞으며 아들 같은 의경들과 악에 받쳐 싸우게 하는 걸 멈춰 주십시오. 국민들에게 자식 잃고 생기를 잃어가는 부모들을 폭도로 매도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지 마십시오.” 단원고 실종자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46)는 결국 대성통곡했다. 옆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아버지 조남성 씨(53)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더이상 폭력은 안 된다”고 한 호소였다. 사랑하는 딸을 품에 안지 못한 단원고 실종자의 부모들이다. 23일 오후 2시 경기 안산시 한사랑병원. 이 씨가 입원 중인 병실에서 조 양의 부모와 또 다른 단원고 실종자 허다윤 양의 부모 등 4명은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의 선체 인양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인양작업에 함께 하겠다”는 말도 했다. 이어 조 씨는 “과격한 투쟁의 현장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경찰과 싸우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유가족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를 향한 호소였다. 4·16가족협의회는 이날 두 가족의 기자회견 진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안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던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오후 2시 반경 병원에 모습을 나타내 “가족협의회와 회견 내용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유 위원장은 “인양 작업을 앞두고 계속된 시위로 정부 심기를 건드리면 인양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한 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회견 후 “1, 2년 지나야 찾을 수 있는 우리 딸을, 시민들이 돌아서고 (가족들이) 폭도라고 욕먹으면 찾을 수나 있겠느냐”며 여론을 걱정했다. 유 위원장이 전체 유가족 의견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유가족마다 집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이가 있다. 18일 열린 세월호 1주년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한 유가족은 “우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광화문 대신에 가족끼리 안산이나 팽목항에서 진상 규명을 주장했다면 국민의 지지를 더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은 여전히 ‘강경 투쟁’을 외치고 있다. 본보 취재진과 만난 단원고 유가족 대부분은 “민주노총이든 시민단체든 설령 우리를 이용한다고 해도 상관없다”며 “아이들이 제때 구조되지 못한 이유와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싶은 마음을 같이한다면 새누리당이 와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유가족이 강경 투쟁에 매달리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트라우마 영향으로 보인다. 가족들은 “사람들은 지겹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못 본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그리움이 커진다”고 토로했다. 가족들 사이에는 “이 싸움이라도 하지 않으면 슬픔을 못 견딜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또 다른 유가족은 “투쟁이라도 해야 정부가 유가족의 말에 귀 기울인다”고 항변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연합해 만든 ‘4·16연대’는 이번 주말에도 대규모 집회를 연다. 25일 오후 3시 서울 청량리역, 홍익대 정문 앞, 용산역 광장, CGV성신여대입구 앞 등 4곳에서 광화문광장까지 ‘썩은 정권 시행령 폐기, 진실을 향한 국민 행진’을 진행한다. 광장 도착 후 분향을 하고 ‘범국민 추모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경찰은 추모제가 ‘불법 시위’로 변질되면 이를 제지할 방침이지만 시위대는 “문화제는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니다”라며 반발하고 있어 또다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안산=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이샘물 기자}
정부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화하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수중수색 종료 후 지금까지 인양 결정을 미뤄온 만큼 신속하게 작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16가족협의회는 22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제라도 인양을 공식 선언해 환영한다. 앞으로 가족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인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밝혔다. 이들은 “다만 인양은 당연한 결정이며 정부가 큰 시혜나 결단을 내린 것처럼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직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실종자 가족은 인양 작업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 단원고 실종자 허다윤 양의 부친 허흥환 씨(51)는 “10월 시작도 늦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인양을 시작해 최단 시간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측도 “신속하게 인양 작업이 완료돼야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가 가능하다”며 빠른 선체 인양을 촉구했다. 세월호 인양 결정과는 별개로 세월호 관련 추모문화제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시민단체와 유가족들이 만든 4·16연대 측은 22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광장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폐기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며 “24일에는 ‘전국 광역 동시다발 총파업대회’에, 25일에는 ‘4·25 추모행진과 추모문화제’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한편 세월호 참사 생존자가 20일 처음으로 배·보상금 지급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배·보상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2일까지 사망자 3명, 생존자 1명 등 총 4명의 배·보상금 신청이 접수됐고, 차량과 화물 배상 신청이 각각 48건 접수되는 등 총 100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이건혁 gun@donga.com·이샘물 기자}

18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세월호 범국민대회 현장에서 구체적인 집회 대응 계획이 담긴 경찰 내부 자료가 유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현장에 흘리고 간 것을 집회 참가자가 주워서 보내 준 것”이라며 문건 원본을 배포하고 자체 홈페이지 등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은 ‘4·18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문화제 차벽(車壁) 및 안전펜스 운용’ 지도와 ‘경력 운용 계획’ 등 2건이다. 차벽 및 안전펜스 운용 지도에는 집회 당일 경찰버스를 몇 대씩 어디에 배치할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경력 운용 계획에는 경찰 인력 운용과 불법 행위 차단 등 조치 방안이 담겨 있다. 문건에는 ‘보안’이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앞서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연합해 만든 4·16연대도 20일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에 해당 문건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들은 “경찰이 애초에 ‘문화제’를 차벽으로 막으려 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자료”라며 “경찰버스는 인원 수송용이 아니라 ‘차벽용’이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두 문건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자료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대책회의가 11, 16일 도로를 불법 점거해 시위를 벌였고 18일엔 (100m 반경 이내 집회시위 금지 구역인) 청와대까지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하겠다고 예고해 사전에 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처음 광화문광장 분향소 근처에 배치한 경찰버스는 3대에 불과했고 시위대가 도로에 뛰어든 뒤 경찰버스를 보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 안팎에서는 민감한 집회 작전계획이 집회 현장에서 유출된 것을 놓고 보안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해당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 조사 중이나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며 “집회 현장에서 보안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서울 도심에서 18일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을 놓고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4·16가족협의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4·16연대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경찰 당국의 4·16 1주기 추모 탄압 규탄 및 시민 피해 상황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집회 차단과 시위대 진압을 규탄했다. 앞서 경찰청은 19일 성명을 통해 “불법 폭력 시위 주동자를 엄중 사법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1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한 뒤 청와대까지 ‘인간 띠 잇기’를 할 예정이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에서의 집회만 신고하고, 행진 신고는 하지 않은 데다 청와대와 외교기관 반경 100m 이내는 현행법상 집회시위 금지 구역이라는 이유로 시위대의 도로 진출을 차단했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광화문광장에는 주한 미국대사관 등 외교기관이 있어 법적으로 행진 신고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유가족 측 박주민 변호사는 “추모 행사인 ‘인간 띠 잇기’는 애초에 신고 대상이 아니므로 불법 집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유가족 연행 반발 경찰의 유가족 연행 과정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은 회견문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대통령의 대답을 듣고 싶다며 경복궁 앞에 닿았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는 더욱 심각하다. 안에 있던 가족들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조차 막아서는 등 경찰의 비인도적 처우는 심각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문화재인 경복궁 광화문 앞을 점거해 농성하는 것은 불법인데도 유족들이 이를 지속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나가는 것은 허용했지만 불법 행위를 방조할 수 없기 때문에 농성 인원 확대를 막기 위해 다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후엔 화장실 차량 두 대를 마련해 줬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찰이 유가족을 제압해 연행한 것도 규탄했다. 경찰은 “불법 시위대에 4번 해산을 명령했는데 불응했다. 농성 인원 증가를 막기 위해 경찰버스를 배치하는데 유족들이 도로에 뛰어들었고, 이를 제지하는 경찰을 폭행하는 등 불법 행위를 해 연행했다”고 말했다. ○ 과잉 진압 논란 경찰은 집회 때 시위대에 최루액과 물대포를 사용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경찰이 캡사이신과 물대포를 시위대에 정조준해 사용하며 과잉 대응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에 경찰은 “경찰버스를 흔들거나 경찰 장비를 훼손하고 경찰을 폭행하는 시위대에만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또 “경찰버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물대포를 사용했지만 직선으로 쏘면 사람들이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곡사(曲射·곡선을 그리며 쏘는 것)’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경찰버스로 ‘차벽(車壁)’을 만들어 시위대의 광화문 진출을 차단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2009년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봉쇄한 게 위헌이라고 2011년 결정했다. 헌재는 경찰이 차벽으로 통행을 완전히 봉쇄하는 행위에 대해 ‘개별적 집회의 금지나 해산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경찰이 16일(1주년 추모 행사)에 친 차벽도 위헌이다. 경찰이 이날 친 차벽을 18일에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오후에 보강하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사전에 광화문광장 분향소 인근에 차벽 3대를 배치했고, 시위대가 도로에 뛰어든 이후 차벽을 추가로 배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본보 기자가 집회 직후 촬영한 동영상에는 세종대로에 버스와 택시가 들어오던 중에 시위대가 도로에 뛰어드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애초부터 차벽으로 도로를 완전히 봉쇄하진 않은 것이다. 시민단체는 경찰이 시민들의 순수한 추모 행사를 막았다며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순수한 추모라면 왜 시위대 일부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도로에 뛰어든 채 폴리스라인도 훼손하고 경찰을 폭행했느냐”고 주장했다.이샘물 evey@donga.com·최혜령 기자}

18일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선 위험천만한 상황이 밤늦게까지 벌어졌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 등 100명이 17일 0시경부터 무단 점거 농성을 벌이면서부터였다. 경복궁관리사무소에 따르면 광화문 앞 인도는 ‘문화재구역’으로, 관람 목적 외의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경찰이 경찰버스를 동원해 불법농성 인원이 많아지는 걸 막으려고 하자, 유가족 일부는 차도에 주저앉거나 드러누웠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을 때리기도 했다. 일부는 경찰버스 위에 올라가 피켓시위도 벌였다. 경찰이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이들은 경찰에게 물을 뿌리며 저항했다. 4차례에 걸친 경찰의 해산 명령도 무시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서울광장에서 오후 3시 50분부터 연 ‘범국민대회’는 1만 명(경찰 추산)이 모인 후 폭력시위로 번졌다. 오후 4시 반, 김혜진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은 “광화문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뒤를 돌아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 광화문으로 가달라”고 외쳤다. 경찰에 행진 신고도 안 한 상태에서 대규모 인원이 차도인 세종대로로 급하게 뛰면 위험하단 걸 알면서 이런 주문을 한 것이다. 앞장선 시위대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도로에 뛰어들어 세종대로 전 차로를 점거하면서 달려오는 차들이 급히 멈춰 섰다. 시위대는 오후 5시 반경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 집결해 경찰에게 폴리스라인, 물병, 달걀 등을 던지고 방패를 빼앗았다. 경찰의 얼굴에 소화기와 빨간 스프레이를 뿌리고 발로 걷어차며 폭행하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최루액과 물대포를 사용했지만, 시위대는 1.7m 높이의 질서유지선을 빼앗은 뒤 광화문광장 북단까지 진출했다. 시위대 6000명(경찰 추산)은 경찰이 버스로 막아놓은 유가족 농성장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유가족이 보고 싶다” “시행령을 폐기하라” 등을 외치며 버스 유리를 깨고 망가뜨렸다. 경찰버스를 수차례 흔들며 쓰러뜨리려 하기도 했다. 이날 경찰차 71대가 파손되고, 경찰 74명이 부상을 입었다. 35중대 의경 3명은 귀, 머리가 찢어지는 등 부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 갔다. 경찰은 총 8차례 해산명령을 하고, 버스를 흔드는 시위대에 10차례 이상 물대포를 발사했지만 시위대는 해산하지 않았다. 이날 유가족 21명과 외부세력 79명 등 100명이 연행됐다. ‘소요 사태’ 수준의 위험천만한 행위는, 오후 10시 반경 유족들이 “시민들을 만나겠다”며 시위대의 환호를 받으며 경찰버스 사이로 나오면서 일단락됐다. 망가진 경찰버스 앞에 선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은 “4월 24일(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 25일(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대동 한마당)에는 다시 한 번 정의를 담은 시민 여러분의 걸음을 다시 청와대 앞으로 옮겨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오늘 올해 들어 가장 아름다운 밤인 것 같다. 안 그렇습니까”라고 물었다.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무지막지한 공권력은 (유가족) 유민 아빠를, 영석 아빠를, 그리고 시민 몇 명은 연행해 갈 수 있어도 이 땅의 정의를 연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분과 함께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위험천만한 불법 폭력시위의 해산을 앞두고, 그 중심에 있던 유가족 단체와 국민대책회의 간부, 국회의원은 시위대에 ‘위험한 행동은 자제해 달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안전사회 건설’을 외치면서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고, 안전보다 자기 목적을 중시하는 이들의 행태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또 다른 참사였다.이샘물·사회부 evey@donga.com}

서울 중구의 L주상복합아파트 건물 바깥쪽에 설치된 환풍구는 바닥에서 3m가량 떨어져 있다. 환풍구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m 정도 되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윗면이 아닌 옆면만 뚫려 있다. 접근이 어려워 누구도 환풍구에 올라가지 않지만, 아파트 측은 ‘추락 위험’ 표지를 붙여 놨다. 환풍구 아래엔 정원이 조성돼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조모 씨(45)는 “2010년 준공 당시부터 쭉 이렇게 설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7일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 공연장에서 추락 사고가 발생한 지 6개월이 흘렀다. 당시 1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해 ‘환풍구 안전’에 큰 관심이 쏠렸다. 사고 다음 달 국토교통부는 ‘환기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국토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도로나 공원, 광장에는 되도록이면 환풍구를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 불가피하면 도로 경계로부터 2m 이상 떨어지게 설치해야 하고, 조경수 등으로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 높이는 2m 이상이어야 하고, 외부에 노출되는 환풍구는 속이 보이는 ‘투시형’ 벽으로 설계하고 디자인에도 신경 써야 한다. 서울 도심에서는 주로 고급 아파트나 고층 빌딩과 같은 민간시설에서 ‘환풍구 모범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중구의 N주상복합아파트 환풍구는 기울어진 사각형 모양으로, 커다란 예술 조형물 같았다. 환풍구가 옆면에 설치돼 있고, 본체가 기울어진 모양이라 올라갈 수 없는 구조다. 주변에는 나무와 화초도 심어져 있었다. 서울 중구 삼성본관에 있는 환풍구는 약 1m 높이에 있지만, 유리로 가림막을 쳐 접근을 차단했다.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도 부착해 뒀다. YTN타워 옆에 설치된 환풍구는 높이가 5m라 올라갈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반면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 환풍구는 미관은커녕 안전을 고려한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 앞에는 인도 바닥에 세로 3m, 가로 5m가량 되는 환풍구가 설치돼 있다. 15일 오전 중년 남성 6명은 이 환풍구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가 대화를 나눴다. 시청역 1번 출구 앞 환풍구 위는 행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환풍구는 바닥에 붙어 있지만 위험 안내 표지조차 없었다. 전문가들은 환풍구 사고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환풍구 위로 걷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환풍구는 지하의 안 좋은 공기를 빼내는 장치라 세균과 먼지 및 악취가 올라오는 곳”이라며 “추락 위험도 크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환풍구 위로 걸어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대한민국은 여전히 ‘고통의 바다’에 빠져 있었다. 치유와 위로의 시간은 찾아오지 않았고 봉합되지 못한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아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선체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열흘 만에 선체 인양을 공식화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이제 세월호의 고통을 딛고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길에 나서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날 팽목항 분향소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지 못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도 만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낮 12시 팽목항 분향소에 도착했을 때 분향소 문 앞은 책상과 실종자 사진 패널들로 막혀 있었고, 유족들은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박 대통령은 팽목항 방파제 앞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읽고 20여 분 만에 상경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도심에서는 차로 점거 등 거리시위가 이어졌다. 이날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 행사에 참가한 시민 1만 명(경찰 추산)은 오후 9시경 행사가 끝난 뒤 차로를 점거하고 거리 행진에 나섰다. 세종대로 서울광장부터 청계광장까지 400m 구간 8개 차로가 모두 점거됐다. 선두에선 “청와대로 가자”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경찰은 ‘차벽’으로 맞섰다. 경찰 버스를 3중으로 세워 추모객의 광화문광장 진입을 막았다. 경찰이 광화문 일대에 투입한 경찰관 수는 130개 중대 1만 명에 달했다. 대한민국 전체 경찰(10만7433명)의 10%에 가까운 수가 ‘세월호 1년’에 빚어질 수 있는 충돌에 대비하고 있었다. 행사 참가자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선두로 한 채 종로 일대에서 “평화 행진 보장하라”고 외쳤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공항을 통해 남미 순방의 첫 번째 방문지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향했다. 박 대통령은 9박 12일 일정으로 콜롬비아와 페루 칠레 브라질을 방문한 뒤 27일 귀국한다. 이재명 egija@donga.com·이샘물 기자}

한국자유총연맹 제15대 중앙회장으로 2월 25일 선출된 허준영 전 경찰청장(63·사진)이 경찰을 동원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우종철 전 자유총연맹 사무총장은 1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직 경찰총수라는 직위를 이용해 불법선거를 감시해야 할 경찰공무원들을 선거에 이용한 허 회장은 국민운동단체를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며 “엄정한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우 전 사무총장에 따르면 자유총연맹 선거관리규정에 회장 후보자는 선거운동 때 대의원을 만나선 안 되고, 전화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만 이용하도록 돼 있다. 선거 과열과 금권 선거를 막기 위해서다. 또 ‘사전 선거운동 금지 기간(1월 13일∼2월 14일)’도 정해져 있다. 우 전 사무총장은 “사전 선거운동 금지 기간에 허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후보는 대의원을 일절 만나지 않았다. 반면 허 후보는 전국을 돌며 대의원을 만났으며, (그 자리에) 현직 경찰서장이 배석했을뿐더러 경찰간부들이 대의원을 초청해 식사도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날짜와 식당 이름, 배석자 등이 적힌 자료도 배포했다. 우 전 사무총장은 “허 회장과 측근들이 불법선거 증거 인멸을 위해 연맹 간부들과 시도 사무처장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했다. 급기야 저를 이달 14일 불법적으로 해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허 회장 측은 “사전 선거운동을 한 적도, 경찰간부와 함께 대의원들을 만난 적도 없다. 전혀 사실무근이며 시기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반박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식은 한순간에 정부를 향한 성토대회로 변했다.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4·16 약속의 밤’에는 유가족과 시민 등 약 1만 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희생자를 추모하던 시민들은 “분향소에 가겠다”며 도로를 점거하고 밤 12시를 넘겨 행진했다. 이날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연합해 만든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가 연 추모 행사가 시작됐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대통령은 팽목항에서 대국민 담화만 하고 떠났다”며 “대통령의 답을 얻어내기 위해 끝까지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자리에 앉아 박수를 보내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분위기가 급변한 건 오후 9시경 행사가 마무리될 즈음이었다.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임시 분향소가 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함께 헌화하러 가자”고 말했다. 이에 참가자들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화답하며, 가져온 국화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대 앞쪽에 있던 유가족들의 이동이 늦어지는 사이 뒤편에서 먼저 이동을 시작한 일부 시민단체 회원이 순식간에 경찰이 설치한 폴리스라인을 넘어 세종대로 전 차로를 점거했다. 경찰이 다급하게 서울시의회 인근부터 막아서자 참석자들은 “폭력 경찰 물러가라” “박근혜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광장 쪽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경찰이 “미신고 불법집회로 세종대로를 점거하고 있으니 해산하라”고 방송하자 참가자들은 “헌화하러 가는데 왜 막느냐”고 항의했다. 선두에 선 트럭에서는 계속해서 “청와대로 전진하자”는 구호가 흘러나왔다. 경찰이 설치한 차벽에 막힌 시위 참가자들은 청계천을 따라 우회하며 지속적으로 구호를 외쳤다. 전명선 운영위원장이 선두에 섰다.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향하자 경찰은 오후 9시 50분 시위대에 최루액(캡사이신)을 뿌리며 대응에 나서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10대 여학생들은 채증하려는 경찰을 향해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오후 10시 20분경 청계천을 따라 우회한 시위대가 종로3가로 진출해 차도를 점거하자 을지로와 청계천로까지 영향을 미쳐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졌다. 추모 참가자들은 17일 자정 너머까지 5000여 명이 남아 종로구 종로3가 일대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이날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도로 점거는 예견됐던 일이다. 세월호 1주년을 앞두고 일부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농성과 집회, 도보행진을 연이어 개최하며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유가족 측은 16일에 대통령이 시행령 철회와 선체 인양 공식선언을 하지 않으면 구체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견을 밝히며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고 예고해왔다. 경찰은 이에 종로 일대와 광화문광장에 시위 진압 경찰이 타고 온 차량 300여 대를 차벽으로 둘러싸고 청와대 접근을 원천 봉쇄했지만 종로 일대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와의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시위에 참여한 양모 씨(41)는 “분향소에 꽃 한 송이 바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결국 오늘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17일 자정 현재 집회 참가자 중 경찰관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8명을 검거해 조사 중이다. 이날 낮에도 서울 도심은 추모 대신 갈등과 대립이 넘쳤다. 16일 오후 3시부터 1시간가량 서울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광장에서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욕설과 비난이 오갔다. 광장 맞은편 KT 본사 앞에서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 150명(경찰 추산)이 ‘세월호 선동세력 규탄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아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고, 선동꾼들은 지옥으로 꺼져라”라고 외쳤다. 맞은편 광장의 안쪽에 선 이들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물러가라”고 맞받아쳤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이샘물 evey@donga.com·최혜령 기자}
페이스북에 대출 광고 글을 게재한 뒤 이를 보고 연락해온 사람의 대출 서류를 위조하고, 은행을 속여 대출받은 뒤 수수료를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페이스북에 ‘문의사항 24시간 항상 대기합니다, 무직자 대출 소득증빙 완료’ 등의 광고 글을 게시한 뒤 이를 보고 연락해온 경모 씨(19·여) 등 9명이 은행대출을 받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서류를 위조한 혐의로 총책 홍모 씨(28)를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대출금 인출책 정모 씨(30), 전화 상담책 채모 씨(24·여) 등 다른 6명도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경 씨 등 9명의 재직증명서, 건강보험자격득실 확인서, 병적증명서, 은행 거래내역 등을 위조해 저축은행 등에서 총 7900만 원을 대출 받았다. 금융권 인터넷 대출은 공인인증서 로그인을 통해 신청할 수 있고,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등기 등으로 전송해 서류 심사만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했다. 홍 씨 일당은 대출의뢰가 들어오면 모텔에 가서 모텔 컴퓨터를 이용해 대출을 신청했다. 은행에 보내는 위조 재직증명서의 회사 전화번호 란에 가짜 전화번호를 기재했다. 이후 은행에서 재직 확인 전화를 걸어오면 대출 신청자가 재직하고 있다고 응답하며 속이는 방식으로 대출을 받았다. 이들에게 대출을 의뢰한 사람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으로, 직업이 없어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출금의 30~40%를 수수료로 지불하면서 대출을 의뢰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 씨 일당은 이들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총 2580만 원을 챙겼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올해 초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2011년부터 재단에 정기 후원하고 있는 엄소영 씨(40·여)였다. 엄 씨는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2학년이던 외아들 최성호 군(당시 17세)을 잃었다. 엄 씨는 재단에 “나를 비롯해 세월호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자녀 이름으로 정기 후원을 하고 싶다”고 전해왔다. 최 군과 함께 숨진 단원고 2학년생 이준우 군, 김건우 군, 이재욱 군, 김제훈 군의 부모는 그렇게 엄 씨와 1월부터 세상을 떠난 자녀 명의로 재단에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엄 씨는 아들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친한 친구가 누군지 잘 몰랐다. 엄 씨는 아들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들이 친구 4명과 함께 ‘자살 방지’를 주제로 만든 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을 컴퓨터에서 발견해 친한 친구가 누군지 알게 됐다. 부모들은 이 그룹을 ‘5인방’으로 부르며 유가족끼리 모임을 결성했고, 지금은 매일 만나는 사이가 됐다. 이들은 모임을 만들면서 ‘먼저 간 아이들을 대신해 아이들이 이루고 싶어 한 것, 좋아했던 것들을 하자’는 회칙을 만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일로 후원을 택했다. 고 이준우 군의 아버지 이수하 씨는 “사고 이후 진도 팽목항에서부터 지금까지 국민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관심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 어떻게든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엄 씨가 하고 있는 일에 뜻을 모아 동참하게 됐다”고 후원 동기를 밝혔다. 유가족은 “5인방 모임에서 같은 아픔을 나누기도 하지만, 모두 모이면 다섯 아이가 함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위로가 된다”고 입을 모았다. 세월호 참사 때 숨진 정차웅 군의 부모는 이 5인방 부모들의 후원 소식을 들은 뒤 후원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군은 참사 때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다른 친구들을 구하다가 숨을 거뒀다. 정 군의 부모는 2월부터 아들 명의로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청소년·대학생·청년단체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남미 4개국 순방에 나서는 것을 중단하라고 14일 요구했다. 이들은 주한콜롬비아대사관에 순방에 항의하는 공개서한도 전달했다. 청년유니온, 청소년유니온 등 27개 단체는 이날 오후 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은 상중(喪中)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16일 오후 9박 12일 일정으로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나 27일에 귀국한다. 당초 청와대는 세월호 1주년을 지낸 뒤 18일경 출국하는 일정을 계획했지만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한 6·25전쟁 참전국인 콜롬비아가 박 대통령의 방문을 강력히 희망해 출국일이 당겨졌다고 전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측은 (순방이) 정상외교를 통한 국익을 위해서라고 명분을 내세우지만, 국가가 지키지 못한 어린 생명의 기일에 온 국민이 애도를 표하고 국가적 재난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때다. 어떤 국익을 위해 떠나는 것인지, 국민의 생명과 안녕보다 우선되는 국익이 도대체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주한콜롬비아대사관에 ‘박근혜 대통령 중남미 순방 질의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도 전달했다. 서한에는 “대한민국의 상주(喪主)인 박근혜 대통령은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의 국민적 슬픔과 함께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또 “청와대 측이 콜롬비아에서 15~17일 사이에 박 대통령이 방문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해왔다고 밝혔다”며 대사관 측에 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도 요청하는 한편,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대한 주한콜롬비아대사관의 입장도 밝힐 것을 요구했다.이샘물 기자evey@donga.com}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와 유가족이 11일 서울 종로와 을지로에서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5시간 동안 도심을 마비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다음 날 오후 현안 브리핑에서 “어제 경찰이 집회를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려던 유가족과 시민들을 향해서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고 20여 명을 무차별 강제 연행했다고 한다”며 “과잉 대응에 대한 경찰의 사과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찰의 최루액 사용을 “부끄러운 악행”이라고 표현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최루액을 쏜 경찰이 과연 과잉 대응한 것인지 짚어 봐야 할 듯하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집회하려는 측은 미리 경찰서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해산 명령을 받으면 즉시 해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청와대나 외국 대사관 100m 이내에선 시위를 금지하는 규정도 있다. 국회의원이 만든 법 내용이다. 집회신고를 하지 않은 시위대는 이날 오후 7시에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로 향하려다 경찰에 막히자 오후 8시 5분부터 종로와 을지로 모든 차로를 무단점거하고 행진한 뒤 오후 9시경 세종대로를 재차 점거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있었지만 이들에겐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최종 목표 지점은 청와대로 정했을 정도다. 도로 점거로 차량이 다니지 못하면서 많은 시민이 큰 불편을 겪은 점 정도는 시위대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정 무렵까지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 때문에 서민의 발인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입으로만 10차례에 걸쳐 시위대가 ‘해산하시길’ 애원했을 뿐이다. 경찰의 소극적인 자세를 잘 아는 시위대는 경찰 방패도 빼앗고 질서유지선 일부를 훼손하기도 했다. 그제야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액을 뿌리면서도 “유족에겐 뿌리지 말라”는 지시를 잊지 않았다. 불법 시위로 피해를 보는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 경찰을 향해 야당은 ‘과잉 진압’을 문제 삼고 있다. 자정까지 도심을 마비시키며 운전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서민과 모처럼 도심 나들이에 나섰던 수많은 시민에게 끼친 불편이 야당 의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야당이 지적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자정까지 도심 교통을 마비시키는 시위대를 그저 지켜만 보고 시민 불편을 외면한 채 청와대행만 막기에 급급한 무능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다. 충분히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데도 굳이 도로로 뛰어든 불법 시위대의 막무가내도 지적했어야 한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야당 의원이 경찰에게 윽박지르는 건 ‘청와대를 겨냥만 한다면 불법 시위도 지원하겠다’는 신호는 아닌지 모르겠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성폭력과 인신매매 매춘은 조직범죄의 일부입니다. 이는 기본적인 인권 문제인 만큼 우리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얀 엘리아손 유엔 사무부총장은 13일 오전 10시 반 고려대 백주념기념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고려대는 이날 외교부, 유엔개발계획(UNDP) 서울정책센터와 공동으로 특강을 마련했다. 강연은 ‘새로운 글로벌 정세: 유엔과 회원국의 도전과제’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스웨덴 출신의 엘리아손 사무부총장은 제60회 유엔총회 의장, 인도적 지원 분야의 첫 유엔 사무차장, 스웨덴 외교장관 등을 지냈다. 2012년 7월부터 사무부총장을 맡고 있다. 특강에서 한 학생은 “한국은 성매매 위헌 여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인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엘리아손 사무부총장은 “자세히 (사안을) 확인해야 하지만 나는 견고한 입장”이라며 “(성매매는) 인간을 물건으로 상품화해 매매하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과거 스웨덴 정부는 ‘성매수자는 범죄자이고 성매수는 피해자를 착취하는 행위’라고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올바른 시민사회는 가장 취약한 계층에 눈을 돌리는 사회’라는 표현을 언급하며 “가장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제대로 돌보느냐가 시민사회를 평가하는 잣대”라고 말했다. 엘리아손 사무부총장은 ‘새로운 글로벌 정세’를 설명했다. 지금 세계는 기후 변화, 인구 이주, 국제 조직범죄 등으로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에 있다는 것. 직면한 위기에 대처하려면 ‘예방’에 진지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만약 소방관이라면 불을 진화하는 역할만 할 게 아니라 성냥을 처음 그을 때부터 조짐을 감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세월호 참사 1주년을 앞두고 시민단체와 유가족이 도로를 점거하고 불법시위를 벌이면서 서울 도심 곳곳이 마비됐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와 유가족 등 2500명(경찰 추산)은 11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 폐기 4·11 총력행동 문화제’를 열었다. 오후 7시 행사가 마무리되자 1500명(경찰 추산)이 ‘세월호를 인양하라’ ‘정부시행령 폐기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청와대로 가겠다”며 신고되지 않은 장소로 행진했다. 경찰이 “미신고 불법집회”라며 자진해산을 요청했지만 시위대는 폴리스라인을 밟고 세종문화회관 앞 세종대로로 뛰어들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이를 막는 경찰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청와대행이 막히자 시위대는 오후 8시 5분경 종로2가로 이동해 양방향 전 차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종로 일대에는 급하게 달려온 정보경찰 외엔 경찰력이 배치되지 않아 교통이 마비돼도 속수무책이었다. 시위대가 도로를 따라 을지로2가를 지나 서울광장에 다다랐을 때 뒤늦게 교통경찰이 달려왔지만 도심 마비 상태를 막지 못했다. 시위대는 오후 9시경 광화문광장 일대 세종대로 전체를 점거했고 자정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은 시위대의 청와대행만 막았을 뿐 시위대가 도심을 여유 있게 돌며 도로를 점거해도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경찰이 총 10차에 걸쳐 해산명령을 내렸지만 시위대는 야유하며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서유지선 일부를 훼손하기도 했다. 최루액을 뿌리며 시위대를 막던 경찰은 양측의 충돌이 거세지자 “유족에겐 최루액을 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에 시위대는 “진실을 향한 걸음에 가족이 앞장서겠다”며 유가족을 앞세워 경찰의 시위저지선을 뚫었다. 이날 자정이 다돼 가는데도 시위대 300명(경찰 추산)이 해산하지 않자 이규환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10차 해산명령에 불응하니 안내 및 경고를 하겠다”고 방송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조용히 해라, 말 좀 하자 인마!”라며 되레 호통을 쳤다. 경찰은 이날 유가족 3명을 포함해 20명을 공무집행 방해, 해산명령 불응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시위대는 연행된 유가족 3명이 풀려난 뒤 자정이 돼서야 해산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친선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 왔다가 동대문쇼핑몰에서 집단으로 물건을 훔쳐 돌아간 일본 고교생 22명이 경찰 조사를 받으러 다시 입국했다. 훔쳐간 물건도 모두 주인에게 돌려줬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중구 동대문쇼핑몰 ‘밀리오레’에서 벨트와 지갑 등 잡화 64점(252만 원 상당)을 훔친 일본 A고등학교 축구부 학생 22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학생들은 범행 당일 오전 10시 반부터 직원이 출근하지 않은 매장 9곳에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 경찰이 피해 신고를 접수한 뒤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고 주변을 탐문한 결과 용의자는 일본 A고교 학생들이며, 이미 출국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A고교 측에 연락해 용의자를 특정한 뒤 재입국을 요청했다. A고교 축구부 22명은 최근 훔친 물건 64점을 모두 피해 매장에 돌려줬고 이틀에 걸친 조사에서 범행을 모두 시인한 뒤 일본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다음 주 이들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날도 채 밝지 않은 9일 오전 5시경.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고급빌라 단지 사이로 한 60대 남성이 왼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오른팔을 휘저으며 골목길을 걸어 나왔다. 검은색 점퍼와 바지를 입고 흰색 모자를 쓴 채 성큼성큼 걷는 모습은 마치 등산객처럼 보였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64)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200억 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리고 분식회계를 통해 정부 융자금을 받아낸 혐의로 이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던 성 회장은 법정이 아닌 서울 북한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북한산 산책길서 목숨 끊어 잰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온 성 회장은 청담동 리베라호텔로 향했다. 성 회장 자택에서 걸어서 8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오전 5시 11분. 성 회장은 택시를 타고 서울 종로구로 향했다. 가족은 성 회장이 사라진 사실을 3시간 후에야 눈치 챘다. 운전기사 A 씨는 집 안에 있던 유서를 발견한 뒤 “회장님이 밖에 나갔는데 보이지 않는다”며 오전 8시 6분 112에 최초로 신고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성 회장의 장남(34)도 청담파출소를 찾아 재차 신고했다. 남겨진 유서에 “충남 서산 어머니 묘소 옆에 묻어 달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오전 8시 30분경 성 회장의 휴대전화 신호를 포착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인근이었다. 기지국을 통한 휴대전화 신호는 계속 움직였다. 평창동에서 인근 정토사, 북악터널, 형제봉 능선까지 이동했다. 이날 경찰 1300여 명과 인근 군부대 장병, 헬기 2대까지 동원됐지만 성 회장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정확도가 훨씬 뛰어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적용되지 않는 일반 폴더형 휴대전화라 기지국 신호에만 의존해 위치를 찾아야 했다. 기지국 연결 범위가 넓어 인근 2∼3km 반경을 모두 수색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은 평창동과 북한산을 폭넓게 뒤졌다. 계속 움직이던 휴대전화 신호는 오후 1시경부터 이동 없이 고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성 회장이 목숨을 끊은 시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신은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인근 산책로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성 회장이 평소 이 산책로를 즐겨 걸었다는 단서를 토대로 수색견 5마리를 투입했다. 매표소 인근 300m 지점 산책로에서 오른쪽으로 30m 더 들어간 지점의 나무에 목을 맨 성 회장을 발견했다. 그는 짙은 푸른색 넥타이를 나뭇가지에 걸어 목을 맸다. 휴대전화 1대는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나머지 1대는 시신에서 15m 떨어진 바닥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검안 결과 자살로 판단하고, 유족 뜻대로 부검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검찰이 지난달 18일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하면서 자원개발 수사를 시작한 지 22일 만의 일이다. ○ ‘억울함’ 호소, 극단적 선택 징후 보여 성 회장 주변에서는 그가 이미 극단적 선택을 할 징후를 보였다고 말한다. 검찰 수사로 경남기업이 세 번째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회생 불가능’ 상태에 빠지고, 자신마저 구속 위기에 처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미다. 성 회장의 한 지인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고 상심한 상태에서 검찰 수사가 한국석유공사 등 사업 관계자와 주변 인물들로 뻗어갈 조짐을 보이자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불안정한 감정이 실제 행동으로 표출된 적도 있다. 3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할 때는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을 뿌리치며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고, 8일 기자회견 말미에는 “(자원개발 사업 실패로 인해)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목숨을 걸고라도 보답(보상)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달 초 모친의 기일에는 친동생과 함께 충남 서산의 모친 묘소를 찾아 통곡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 카드’였던 기자회견이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성 회장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며 “나는 MB(이명박 전 대통령)맨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기자회견에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를 도왔다’고 주장한 것은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 회장의 한 지인은 “8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한숨도 자지 않고 박 대통령 측의 반응을 기다리다 새벽에 결심을 굳히고 외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최근 여권 고위 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 의사를 전달받거나 전화 통화 자체를 거부당한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명 jmpark@donga.com·조건희·이샘물 기자}
“생계형 성매매 여성을 위한 성매매 특구를 마련해야 한다.”(김강자 전 서울종암경찰서장) “성매매는 공공에 유해해 직업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최현희 변호사) 성매매 당사자를 국가가 처벌하는 게 위헌인지를 놓고 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2000년 서울 미아리 일대 집창촌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며 ‘미아리 포청천’으로 불렸던 김 전 서장은 국가가 정한 ‘성매매특구’에 한해 합법적인 공창제를 실시해 성매매 여성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합헌을 주장하는 여성가족부 측 참고인으로 나온 최 변호사는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성산업이 무분별하게 커질 거라고 반박했다. 헌법재판소는 성매매 여성 김모 씨(44)가 “성매매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건 위헌”이라며 낸 위헌제청에 대해 사회 각계의 견해를 듣기 위해 이날 공개변론을 열었다. 김 씨의 대리인 정관영 변호사는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인 성적 영역을 국가가 처벌하는 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불특정 다수와의 성매매는 처벌하고 축첩이나 현지처처럼 특정인과의 성매매는 처벌하지 않아 평등권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위헌론자인 김 전 서장은 국가가 성매매 여성 재활을 도울 능력이 없으면서 무리하게 특별법을 만들어 성매매 여성의 생계를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자립지원금이 6개월에 한해 월 40만 원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2009년부터 국가 재정 부족으로 폐지된 상황에서 성매매를 전면 금지하는 건 해당 여성들에게 가혹한 처사라는 견해다. 그는 “경찰 재직 시절 만난 한 성매매 여성은 1.5평(약 5m²)짜리 방에서 한 번에 1만, 2만 원씩 받고 성을 팔고 있었다”며 “이런 여성에게는 벌금 50만 원도 생계를 위협하는 엄청난 액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찰의 성매매 단속에 적발된 사람이 2009년 7만여 명에 달했다가 2010년부터 쭉 2만 명대로 급감한 건 단속 경찰이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라며 “경찰력을 늘려 비생계형 성매매를 엄하게 단속해야 생계형 성매매 여성이 모인 성매매특구로 성매수자가 몰려 자연스럽게 비생계형 성매매가 근절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는 성매매가 인간의 성을 거래 대상으로 격하시키고 그릇된 성 풍속을 확산시켜 헌법 최후의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반박했다.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노동력 흐름을 왜곡해 국가 산업구조를 기형화시킬 뿐 아니라 착취나 강요, 인신매매의 부작용이 커질 거라고 우려했다. 법무부 측 서규영 변호사는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확산 폐해와 피해자의 비극 속에서 제정된 것”이라며 “위헌 결정이 나면 성매매에 대해 무정부적 상태에 이르러 여러 비극이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성매매 종사자들의 단체인 한터전국연합과 한터여종사자연맹은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기원하는 성노동자 대표 외 882명의 탄원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매매는 피해자가 없다.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한 사람이나 구매한 사람 그 누구도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조동주 djc@donga.com·이샘물 기자}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일 제자들을 구조하다 숨진 경기 안산시 단원고 영어교사 남윤철 씨(사진)를 기리는 강의실이 국민대에 마련된다. 국민대는 남 씨가 대학 4학년 1학기 재학 때 마지막 전공강의인 ‘고급영어특강’을 수강한 북악관 708호실을 ‘남윤철 강의실’로 명명하고, 8일 명명식을 연다고 6일 밝혔다. 남 씨는 국민대 영문과 98학번이며,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명명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과 추도사 및 기념사 낭독, ‘남윤철 장학증서’ 전달, 현판 제막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강의실 벽면에 걸릴 현판에는 ‘불의의 선박 사고 속에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교사로서의 사명과 제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신 고 남윤철 선생님(2005년/영어영문학과 졸업)의 고귀한 뜻을 여기에 새겨 기리고자 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길 예정이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