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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무대 경력 5년 이상.’ 극단 단원 모집 공고를 본 ‘나’의 얼굴에 비장함과 혼란스러움이 동시에 번진다. 온몸과 휠체어 사이를 샅샅이 뒤지며 ‘경력’을 찾지만 손에 잡혀 나오는 건 먼지뿐. ‘나’는 “혼자 버텨온 시간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었다”고 되뇌며 휠체어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땅바닥을 뒹군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자격을 구축하기 위한, 오디션을 준비하기 위한 경력”을 쌓을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3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연습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작품은 한 예술가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인정투쟁’을 들여다보는 내용으로 28일부터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 2019년 초연과 마찬가지로 뇌병변장애, 골형성부전증, 언어장애 등 출연 배우 6명 전원이 장애인으로 구성됐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하지성, 김지수 등은 ‘나’의 내면에서 여러 줄기로 갈라지는 목소리를 연기한다. 이연주 연출가가 이 작품으로 2019년 제56회 동아연극상 신인 연출상을 받았다. 초연과 달라진 건 장애인 배우들의 몸 본연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부각했다는 점이다. 신가은 두산아트센터 PD는 “무대를 객석이 둘러싼 형태로 바꿔 각자의 몸이 갖는 고유성이 관객에게 더 잘 보이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22∼28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국내 초연되는 연극 ‘젤리피쉬’에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배우 백지윤이 무대에 올라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주인공 켈리 역을 연기한다. 스물일곱 살 켈리의 사랑과 성장을 통속적인 로맨스물로 그려낸 작품으로,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이 희곡을 썼다. 켈리가 비장애인 연인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면서 겪는 현실적 고민을 진솔하게 다룬다. 배우 김범진, 김바다, 정수영 등이 출연해 호흡을 맞춘다. 이처럼 장애인 배우들이 출연해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연기하는 작품 두 편이 관객을 만난다. 그동안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배역과 연기 양식을 따르던 데서 벗어나 장애인 배우의 움직임과 발성으로 배역이 완성되는 것이 특징. 이들 작품 속에서 장애인 배우는 단지 서사적 소재를 넘어 주체적이고 완전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인정투쟁’의 배우 하지성은 “연기는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인 동시에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작업이다. 내 언어장애가 담긴 대사로 ‘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기에 더 주체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같은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 김지수는 “장애로 만든 드라마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이 출연하는 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관객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습 과정이 색다르게 진행되기도 했다. ‘젤리피쉬’에선 모든 출연진이 함께 감각 워크숍과 공간인지 훈련 등을 수차례 진행했다. 민새롬 연출가는 “기존의 연습 방식은 다양한 개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아 참여 장벽이 높다”면서 “공간과 관계를 맺는 훈련을 통해 연습실 내 불안지수를 낮추려고 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반세기 동안 고도를 기다리던 사나이가 떠났다. 한국 연극계의 거목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의 아들 임수현 산울림 예술감독(서울여대 불문과 교수)은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생 연극에 헌신하신 아버지가 1년 가까이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며 “1985년 개관한 산울림 소극장 40주년을 맞아 내년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란 갔던 휘문고 2학년 때 연극제를 열 정도로 당돌하고 끼 많은 소년이었다. 서라벌예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시절인 1955년 연극 ‘사육신’으로 연출 데뷔했다. 졸업한 후 신문기자를 거쳐 동아방송과 KBS에서 PD로 일했다. 고인은 201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아방송에서 PD로 재직하며 연극 연출 작업을 동시에 했었다”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회사와 선후배들이 후원자였던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의 인생을 바꾼 건 부조리극의 대표적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다. 두 부랑자가 시종일관 얼토당토아니한 대화를 나누며 ‘고도’라는 정체불명의 인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작품이다. 고인은 1969년 초연한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 배우인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김인태와 윤여정 박정자 손숙 윤소정 사미자 김용림이 산울림 창단 멤버다. 이후 50여 년간 1500여 회 공연에 22만여 명이 고인의 공연을 봤다. 고인은 2012년 “나도, 극단 산울림도, 산울림 소극장도 ‘고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고인은 1985년 아내인 오증자 서울여대 명예교수(89)와 사재를 털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산울림 소극장을 열었다. 23㎡(약 7평) 크기의 무대에 객석 74석의 작은 공간이었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소극장을 유지하기 위해 고인은 말년까지 극장 건물 3층에 살았다. 극장 건물 3층에서 자란 아들이 산울림 예술감독, 딸이 산울림 극장장으로 아버지의 꿈을 잇고 있다. 산울림은 ‘연극학교’로 불리며 수많은 연출가와 배우를 배출했다. 특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을 평일 낮에 공연해 주부에게 인기를 끌었다. 박정자의 ‘위기의 여자’, 윤석화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손숙의 ‘담배 피우는 여자’가 대표작이다. 배우 손숙은 이날 “산울림은 남성 배우들이 차지하던 연극판에 주부를 불러들이고, 여성 배우 전성시대를 열었다”며 “고인은 열악한 시절 오직 뚝심만으로 연극계의 지평을 넓혔다”고 했다. 고인은 1985년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로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았다. 또 그가 이끈 극단 산울림은 1986년 대상(‘위기의 여자’) 등 동아연극상을 총 23회 수상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던 고인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1995년) 동랑연극상(1995년) 보관문화훈장(2004년) 금관문화훈장(2016년)을 받았다. 한국 최초로 1989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국립극단 이사,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초대 회장 등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2019년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며 “반세기 외길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증자 교수, 아들 수현 산울림 예술감독, 딸 수진 산울림 극장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7일 오전 8시.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현지 제작진과 함께 무대에 올린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인 토니상의 의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토니상 주최 측에 따르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의상디자인을 맡은 린다 조는 토니상 최고 의상디자인 부문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지난달 25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개막했다. 린다 조는 앞서 뮤지컬 ‘신사들을 위한 사랑과 살인 설명법’으로 2014년 토니상 의상상을 받은 바 있다. 토니상 시상식은 6월 16일 뉴욕에서 열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꼭 봐야 하는 공연의 마지막 회차. 예매에 실패한 내게 남은 기회는 당일 취소표뿐. 악천후를 뚫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헐떡이며 극장으로 달려간다. 겨우 한두 장 나올 취소표 대기줄에는 벌써 두 명이 와 있다. 그런데 한 명은 가방만 둔 채다. 내가 내는 세금을 받아 일하는 매표소 직원에게 문제를 제기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줄은 알아서 서세요”.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고 나는 ‘지성인답게’ 말한다. “제가 이해하는 공정함과 상식에 따르면 이건 아니죠.”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일랜드 극작가 소냐 켈리가 쓴 희곡이 원작이다. 인기 공연의 마지막 취소표를 두고 벌이는 다툼을 세밀한 대사로 그려냈다. 배우 최희진, 정승길, 이송아 등이 출연해 권리의 본질과, 이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공연에는 주류와 비주류, 특혜와 차별을 동시에 오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심각한 신장질환을 앓는 퇴출 직전의 교수, 외국계 기업을 다니다 밑바닥 신세로 전락한 직원, 전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군인 등이 저마다 절박한 사정을 하소연하며 억지에 가까운 논리를 펼친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말다툼에 따라 오르내리는 각 인물의 대기순번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의 지위와 시스템의 정당성에 대해 따져보게 된다. 어느새 흐릿해진 목적 의식 속에서 맹목적으로 다투는 아이러니는 희극적 연출로 강조됐다. 피비린내 나는 총성에 이어 울려 퍼지는 해맑은 음악은 쓴웃음을 유발한다. 무대 세트는 마치 장난감 나라처럼 꾸며져 객석과 심리적 거리감을 만든다. 이는 낯 부끄러울 정도로 닮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비춰보게 하는 효과를 낸다. 공연은 허를 찌르는 반전과 함께 다소 허망하게 끝난다. 그러나 여백 많은 결말은 오히려 이 투쟁의 목적과 결과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곱씹을 여지를 준다. 이미 견고히 세워진, “도착 순서대로 번호표를 받는 간단한 시스템” 안에서 “밀치고 훔쳐서라도 앞으로 가야 하는” 투쟁의 끝은 모두의 안녕과 평화이어야 하지 않을까. 전석 3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극 ‘욘’이 열리는 극장에 들어서자 차가운 숲 내음이 코끝에 닿았다. 작품의 주인공 욘이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숲을 표현한 향기, 바질과 측백나무 향내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이는 관객 밀집도, 출입문 열림 횟수 등 변수에 맞춰 로비 내 발향 기기 2대로 조절한 농도였다. 관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시향지에는 온라인 프로그램북으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찍혀 있어 공연이 끝나고도 작품 감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근 공연계가 작품, 극장에 어울리는 향기로 시청각을 넘어 관객 후각까지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비밀의 화원’은 무대 위 화원의 문이 열릴 때마다 은은한 꽃 향과 흙 내음이 객석 전체에 퍼지게끔 했다. 조향 업체와 약 2개월간 논의 끝에 ‘누구나 아름답게 기억할’ 향을 개발한 것. 뒷좌석 관객들도 같은 농도의 향을 맡을 수 있도록 중형 서큘레이터 한 대로 극장 내 공기 순환을 조절했다. 제작사뿐 아닌 극장들도 향기 마케팅에 나섰다. 현재 뮤지컬 ‘헤드윅’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 들어서면 ‘뒷골목 오래된 펍’이 연상되는 달콤하면서도 뇌쇄적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조향 업체와 협업해 주인공 헤드윅이 공연했을 듯한 공간의 향을 제작한 것. 라벤더와 머스크, 바닐라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향은 로비에 설치된 발향 기기 2대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분 30초마다 분사된다. 극장 자체를 대표하는 향기를 만들기도 한다. LG아트센터 서울은 2022년 서울 강서구로 이전 개관하면서 알싸한 나무 느낌의 시그니처 향 ‘136’을 제작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공연장 내 타원형 통로인 ‘튜브’에서 영감을 받은 향이다. 객석과 사무공간을 제외하고 튜브를 중심으로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간가량 건물 내부 공조 시스템을 통해 분사된다. 캔들, 방향제 등 상품으로도 제작해 극장에서 판매 중이다. 이는 향기를 통해 관객의 공연 몰입도를 높이고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게끔 하기 위함이다. ‘비밀의 화원’을 연출한 이기쁨 연출가는 “4DX 영화처럼 또 하나의 감각을 사용했을 때 작품이 훨씬 생생하게 와닿는다”며 “통상 공연이 시각과 청각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후각을 통해 환상적인 몰입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샤롯데씨어터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의 윤세인 공연사업팀장은 “마니아층이 아닌 관객도 공연을 즐기고 기억할 방법의 일환”이라며 “향을 통해 극장이 단지 공연만 보고 마는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공연계 향기 마케팅은 이색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관객 발길을 모으려면 ‘경험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됐다. 연극 ‘욘’을 제작한 서울시극단의 박지환 PD는 “오늘날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며 “연극 ‘욘’을 시작으로 올해 남은 작품 3편 모두 맞춤형 향기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지인 LG아트센터 홍보마케팅팀장은 “공연장에 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현장성’이라는 장르 특성을 살려 공감각적 요소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MZ세대 젊은 관객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머시브 공연 등 관객과 공연을 적극적으로 연동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향기 마케팅 역시 그 사례다. 공연장의 형태, 활용 방식 등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시내 박물관과 공연단체들이 각양각색의 행사와 공연을 선보인다. 아이 손 잡고, 즐겁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이 가득하다. 관람이 끝나고 아쉬운 분들을 위해 주변 볼거리도 함께 소개한다. ● 어린이박물관 즐기고, 서커스도 보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달 4∼6일 산하 어린이박물관의 입장 인원을 하루 1300명에서 1800명으로 늘린다.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예부터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진 해, 산, 물, 거북 등을 다룬 ‘십장생, 열 가지 이야기’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다. 관람일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며, 예약이 찼더라도 당일 노쇼 인원만큼 현장 관람이 가능하다.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을 마쳤다면 도보로 6, 7분 거리의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어린이, 한글과 놀자’ 행사를 찾을 만하다. 어린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외마당에서 서커스 음악극, 비눗방울 퍼포먼스, 코미디 마술, 한글 퀴즈 맞히기, 책갈피 만들기 등이 진행된다. 한글박물관 행사를 찾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인근 용산가족공원 산책을 추천한다. 야외 조각상과 연못을 구경한 뒤 너른 풀밭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서울 도심권에서는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과 인근 고궁 나들이를 고려할 만하다. 어린이날 민속박물관에서는 아이들이 분리수거를 실천하며 맑은 물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국악 뮤지컬 ‘동동마을을 구해주세요!’를 선보인다. 민속박물관과 이어져 있는 경복궁뿐 아니라 창덕궁에서는 1∼5일 ‘어린이 궁중문화축전’이 열린다. 경복궁에선 조선시대 군인인 갑사(甲士)의 선발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창경궁 통명전에서는 도장을 활용해 왕실 잔치 의궤도를 그리는 ‘화원 체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3일 개관하는 송파구 서울어린이백제박물관을 찾을 만하다. 1991년 문을 연 몽촌역사관을 전면 개편한 곳으로, 인터랙티브 영상 등을 활용해 전시장을 새로 꾸몄다. 이곳에서는 ‘열려라 백제 왕성’ 등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백제 역사를 설명한 전시를 볼 수 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에는 백제 초기 왕성 터로 박물관과 맞닿아 있는 몽촌토성을 둘러볼 수 있다. 몽촌토성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는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지인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있다.● 동화책이 현실로…청와대도 ‘눈높이 개방’ 어린이날을 맞아 다채로운 기획 공연들도 열린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뮤지컬 배우들이 디즈니 만화영화 속 OST를 영어로 들려주는 ‘2024 디즈니 인 콘서트’가 열린다. ‘인어공주’, ‘라이온 킹’부터 ‘겨울왕국’, ‘위시’ 등 최근 개봉작까지 아우른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디즈니 만화 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뮤지컬 배우 김환희, 이아름솔, 최민우, 이종석이 화음을 맞춘다. 4만4000∼11만 원. 인기 동화를 재창작한 뮤지컬도 눈길을 끈다. 서울 마포구 마포문화센터 아트홀맥에서는 뮤지컬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이 무대에 오른다. 일본의 판타지 동화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가 쓴 동명의 스테디셀러가 원작. 오래된 과자가게 전천당이 기묘한 힘을 가진 과자로 하루 한 명의 고민을 해결해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5만∼7만 원. 서울 광진구 상상나라 극장에서는 영국의 유명 그림책을 무대화한 뮤지컬 ‘고릴라’가 펼쳐진다.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통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앤서니 브라운이 원작을 썼다. 공연은 일하느라 바쁜 아빠로부터 주인공 한나가 고릴라 인형을 선물로 받으면서 시작된다. 한나의 꿈에 고릴라 인형이 나타나 함께 동물원에 놀러가는 여정을 환상적으로 풀어냈다. 전석 4만 원. 어린이들의 오감을 자극할 체험형 공연도 열린다. 서울 성북구 하땅세극장에선 가족극 ‘오버코트’가 공연된다. 매일 출근 전쟁을 치르는 아빠와 놀고 싶은 딸 제인의 이야기를 미디어 아트와 라이브 음악으로 풀어냈다. 공연이 끝난 뒤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제인 역의 배우와 털실을 가지고 노는 행사가 이어진다. 전석 3만 원. 청와대 개방 2주년을 맞아 열리는 아동 그림 전시는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동심을 다룬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2층에서 1일부터 6월 3일까지 ‘희망을 그리는 아이들: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이 열린다.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자신의 일상과 희망을 그린 그림 15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금까지 연기했던 배역 중 가장 차갑고 건조한 인물이에요. 평소 웃음이 많지만 영화에선 웃는 장면이 거의 없죠. 포커페이스의 고독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영화 ‘설계자’ 제작보고회에서 주인공 영일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이 자신의 배역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음 달 29일 개봉하는 ‘설계자’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홍콩 영화 ‘엑시던트’(2009년)가 원작. 연출은 영화 ‘범죄의 여왕’(2016년)을 만든 이요섭 감독이 맡았다. 영화는 영일이 이끄는 팀 ‘삼광보안’이 한 유력 인사를 처리해 달라는 위험한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간 다수의 액션, 범죄 영화에서 지능범죄 수사팀장(‘마스터’), 꽃미남 사기꾼(‘검사외전’) 역할 등을 연기해 온 강동원은 “살인을 조작한다는 신선한 세계관에 이끌려 출연을 결정했다”며 “영일은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완벽주의자 캐릭터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삼광보안의 베테랑 팀원 재키 역은 배우 이미숙이 연기한다. 영화 출연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그는 “기존에 해온 역할과는 상반된 캐릭터라 걱정도 되고, 욕심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총, 칼 등 흉기 하나 없이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풀어낸다. 이 감독은 “일상적 요소들이 오히려 흉기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연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며 “삼광보안의 사무실이 위치한 전자상가는 ‘킬러가 숨어 있어도 모를’ 평범한 공간이기에 배경으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짜뉴스, 사이버 레커(악의적 영상 편집 등으로 조회수 올리는 유튜버) 등 요소를 추가해 현재의 한국 관객에게도 현실감을 주려 했다”고 말했다. 자극적 이슈몰이에 혈안이 된 ‘사이버 레커’ 역은 이동휘가, 사고 처리를 맡는 보험전문가 역은 이무생이 연기한다. 이무생은 “관객의 시선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는 미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이들을 의심하면서 관람하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요즘 일은 좀 어때?” 사람 여럿이 모이면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여전히 바쁘다”는 대답 역시 단골이다. 그런데 스스로 정직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 업무시간 중 정확히 무엇을 하느라 바빴는지 말이다. 혹시 바쁨이 그저 지속적인 상태라면 ‘가짜 노동’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전작 ‘가짜 노동’을 통해 오늘날의 과잉 노동을 비판한 덴마크 출신 사회인류학자다. 가짜 노동이란 ‘업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속이나 의미가 없는 행위’를 말한다. 자동화, 스마트폰 등 각종 기술이 보급되면서 업무의 효율성은 꾸준히 높아졌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노동시간은 더 이상 줄지 않았다.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근무시간에 따라 대가를 받는 구조의 맹점을 지적한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됐지만, 업무의 가치를 측정할 기준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만족감을 주는 업무를 하면서 시간을 채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예로 번듯하게 들리지만 핵심은 없는 ‘헛소리’ 소통 방식을 든다. 현실적으로 가치 없는 일을 ‘잠재적 발전 가능성이 있는 도구’로 포장하는 식이다. 공자 왈 맹자 왈 식으로 논하는 책은 아니다. 조직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예컨대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조직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애자일(agile)’ 경영 방식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애자일이 실제 도입됐을 때 직원들이 업무에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과 불필요한 노동을 투입해야 하는지 등을 단계적으로 짚어 봐야 한다는 것. 경영자는 물론이고 말단 직원에게도 유용하다. 구인 광고에서 ‘가짜 노동’을 걸러내는 팁부터 조언한다. ‘당신은 새로운 계획의 개발에 참여한다’는 통상적인 설명 문구에 대해 저자는 “그 계획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지 않다면 결과적으로 당신의 업무는 무언가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최대 음반 기획사인 하이브가 25일 산하 레이블이자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인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와 부대표 A 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발했다. “경영권 탈취 시도가 있다”며 어도어에 대한 감사에 나선 지 사흘 만이다. 어도어의 민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경영권 찬탈 계획 의도도, 실행한 적도 없다”고 반박하며 맞소송에 나설 뜻을 밝혔다. 글로벌 음반 기획사의 본사와 자회사가 치열한 법적 공방에 본격 돌입하게 된 것이다. ● 하이브 “물증 확보” vs 민희진 “직장인 푸념일 뿐” 이날 하루 양측은 치열한 진실 공방에 나섰다. 하이브는 오전 10시쯤 “감사 대상자 중 한 명은 조사 과정에서 경영권 탈취 계획, 외부 투자자 접촉 사실이 담긴 정보자산을 증거로 제출하고 이를 위해 하이브 공격용 문건을 작성한 사실도 인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어 “(어도어 경영진 사이에서) 아티스트와의 전속 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방법,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 계약을 무효화하는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도어 경영진이 4일 나눈 카카오톡 대화라며 대화창 캡처본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이브가 어도어 부대표라고 지목한 A 씨는 ‘△하이브에 어도어 팔라고 권유 △적당한 가격에 매각 △민 대표님은 어도어 대표이사+캐시 아웃(Cash Out)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이란 글을 썼고, 민 대표라고 하이브가 설명한 B 씨는 “대박”이라고 답했다. 어도어의 민 대표는 하이브의 입장이 나온 지 5시간 뒤인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5분간 입장을 밝혔다. 민 대표는 “경영권 찬탈을 계획하거나 실행한 적이 없다”며 “하이브가 A 부대표와 내가 나눈 카카오톡 내용을 포렌식해 가져가서 일부를 딴 뒤 이런저런 정황을 이야기한 희대의 촌극”이라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눈 푸념일 뿐”이라며 “배임이 될 수가 없다”고도 했다. 민 대표는 공식 석상임에도 하이브 고위 인사들을 향해 “시×××” “지×” “개저씨(개+아저씨)” “양아치” 등의 비속어를 쏟아냈다. “개저씨들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온갖 카톡을 야비하게 캡처했다”고 말했다.● 아이돌 회사 운영에 ‘주술 경영’ 논란도 ‘주술 경영’ 논란도 벌어졌다. 하이브는 포렌식을 통해 확보한 민 대표와 한 무속인 간의 대화록을 공개하며 민 대표가 무속인의 코칭을 받아 ‘주술 경영’을 펼친 정황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 측은 실제 대화 내용과 무속인의 이름 등을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민 대표는 ‘XX 0814’라는 여성 무속인과 어도어 경영 관련 내용은 물론 하이브 관련 내용 등을 논의했다. 또한 민 대표가 “BTS 군대 갈까 안 갈까”라고 묻자 무속인은 “가겠다”라고 답한 내용도 있다. 민 대표는 자신의 기자회견을 20여 분 앞두고 하이브가 본인과 무속인의 사적 대화를 공개한 것을 두고 “개인 사찰”이라며 “하이브 측을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 대표는 “하이브가 왜 무당이 어쩌니 하면서까지 날 쫓아내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제 원래 지인인데 무속인이다. 무속인인 사람은 지인으로 두면 안 되냐”고 반문했다. 이어 “경영권 찬탈을 시행한 적이 없다. 저는 월급 사장이고 직장인이다. 월급 사장이 왜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해서 화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하이브가 저를 써먹을 만큼 써먹었다. 찍어 누르기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주주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나를 찍어 누르는 것이 배임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3년 전부터 독립 시도’ ‘감사 3일 만에 고발’ 하이브 측은 민 대표가 2021년부터 무속인으로부터 경영 사안에 대한 조언을 받고 이행했다는 점에서 어도어 경영진이 3년 전부터 경영권 탈취 시도 움직임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민 대표가 2021년 11월 어도어 대표에 취임한 것을 감안하면 취임 초반부터 독립을 꾀했다는 것이다. 하이브 측은 “실제 민 대표가 경영권 탈취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인 시점이 무당이 코치한 시점과 일치한다”며 “민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하이브 주식의 매도 시점도 무속인과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 측이 확보했다는 대화록에 따르면 2021년 무속인은 민 대표에게 ‘3년 만에 회사를 가져오라’ 등의 조언을 하고, 민 대표는 조인트벤처를 설립하는 방안, 스톡옵션, 신규 레이블 설립 방안 등을 무속인에게 검토 받았다. 하이브는 감사를 통해 확보한 어도어 부대표의 컴퓨터 등에서 ‘경영권 탈취 의도’와 관련된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 감사 사흘 만에 경찰에 고발장을 접수시킨 것은 그만큼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사건이 일단락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이브는 앞서 22일 민 대표가 어도어 경영진과 함께 뉴진스를 데리고 본사에서 불법적인 독립을 꾀하고 경영권 탈취를 공모했다며 감사에 착수하고 사임을 요구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신사용 모자를 쓴 한 시인이 예식장에 들어선다. 사랑하던 연인 에드바드의 결혼식이다. 시인은 ‘금지된 사랑’과 이별에 슬퍼하며 눈물 한 방울을 바다에 떨어뜨린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바쳐 왕자를 사랑한 인어공주가 그곳에서 탄생한다. 다음 달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발레단 신작 ‘인어공주’의 도입부다. 2005년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로열 덴마크 발레단이 제작한 작품으로,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다. 이를 안무한 이는 1973년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함부르크 발레단을 이끌어온 존 노이마이어 예술감독 겸 수석안무가다. 그는 2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시인은 상처투성이 삶을 살았던 안데르센의 분신 같은 존재”라며 “동화 ‘인어공주’가 안데르센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데서 영감을 얻어 도입부를 재창작했다”고 밝혔다. 그가 “안데르센의 원작으로 회귀하고자 했다”는 발레 ‘인어공주’는 슬픈 결말을 맞는다. 대중에게 친숙한 동명 디즈니 만화영화의 해피엔딩과는 다르다. 노이마이어 안무가는 “내가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한대도 상대가 날 사랑할 책임은 없음을 알려준다”며 “고통을 감내한 인어공주의 헌신적인 사랑을 무용수가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원작을 따르되 인어공주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는 등 일부 요소는 현대적으로 각색됐다. 격동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전자악기 테레민과 바이올린을 사용해 불협화음을 만든다. 인어공주 역 무용수는 다리가 아닌 꼬리를 가진 존재로서 긴 바지를 입고 춤추기도 한다. 노이마이어 안무가가 국립발레단과 협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국립발레단과 함께 작업하게 돼 기쁘다. 함부르크 발레단을 통해 만난 한국인 무용수들에게서 ‘아주 성실하고 잘 훈련된 이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인어공주’에 대해 “무용수들이 ‘살아있는 감정의 형체’가 되어 관객에게 진실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인어공주 역은 솔리스트 조연재와 드미솔리스트 최유정이, 왕자 역은 수석무용수 이재우와 허서명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왕자와 약혼한 공주 역은 수석무용수 정은영과 솔리스트 곽화경이 맡는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땐 두려움이 앞섰어요. 연극을 다시 할 자신이 없었고, ‘비겁하지 않게 잘 거절할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했죠. 그러다 지난해 사이먼 스톤 연출가의 연극 ‘메디아’를 보고, 배우로서 피가 끓었어요. 그렇게 두려움을 넘어섰죠.” 배우 전도연(51)은 2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올 결심’을 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2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진행된 연극 ‘벚꽃동산’ 제작발표회 자리에서였다. 1990년 광고모델로 데뷔한 전도연은 ‘리타 길들이기’(1997년)를 끝으로 연극 무대를 떠나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누볐다. 2007년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으로 한국인 최초로 트로피(여우주연상)도 받았다. 데뷔 35년 차인 그지만 연극 무대 복귀는 ‘도전’에 가까웠다. 전도연은 “정제된 모습만을 보여주는 영화,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보여줘야 하기에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분명 (실제) 공연에서 실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실수가 두려웠다면 출연을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더 성장하고 싶다”고도 했다. ‘벚꽃동산’은 10여 년 전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난 송도영(전도연)이 한국으로 돌아오며 맞닥뜨리는 위기를 다룬다. 호주의 ‘스타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동명 희곡을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맞게 재창작한 작품. 체호프의 원작 속 아름다운 벚꽃동산의 지주이자 몰락한 귀족 ‘류바’는 송도영으로, 류바 집안 농노의 자식이었지만 신흥사업가로 성공한 ‘로파힌’은 부동산 개발업자 황두식(박해수)으로 각색됐다. 스톤 연출가는 “전통과 혁신, 세대 간 갈등 등 급변하는 사회 모습을 보여주기에 한국 사회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원작이 나왔던 당시 러시아도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급변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에서 전도연과 ‘오징어게임’의 박해수(43)가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춘다. 스톤 연출가는 캐스팅 배경에 대해 “전도연은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관객에게 사랑스럽게 느껴질 배우가 ‘벚꽃동산’ 송도영 역에 필요했다. 박해수는 강렬함과 연약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황두식 역을 완벽히 소화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고 했다. 그는 “한국 배우들은 다른 나라 배우들과 비교해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연기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도 평가했다. 스톤 연출가는 열일곱 살이던 2002년 박찬욱의 영화 ‘올드보이’를 접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국 영화 200여 편을 섭렵한 ‘K콘텐츠광’이다. 전도연과 박해수는 총 30회의 공연에 단일 캐스트로 출연해 한국어로 연기한다. 박해수는 “워크숍에서 배우들은 한국적 정서 자체보다 아버지와의 일화 등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면서 “등장인물의 성격은 물론 이름까지 개개인의 삶이 투영됐기 때문에 단일 캐스트가 아니면 안 되는 공연이었다”며 웃었다. 전도연은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만 공감하는 한국적 이야기는 아니다. 변화해야 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작품을 제작한 LG아트센터는 ‘벚꽃동산’의 글로벌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6월 4일부터 7월 7일까지. 4만∼11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음 달 발레와 댄스 뮤지컬로 각각 해석돼 관객을 맞는다. 10∼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이 공연하는 케네스 맥밀런(1929∼1992) 안무작과 8∼19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매슈 본 안무작이 바로 그것. 두 영국 출신 안무가가 영국 대문호의 대표작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앙숙 가문의 자제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원작 서사를 충실히 따른다. 1965년 초연 당시 셰익스피어 원전을 가장 충실히 담아냈다는 평가와 ‘혁신적 안무’란 평가를 동시에 받은 버전이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앞서 라브롭스키 버전(1940년)이 형식적인 마임과 반복되는 동작,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큰 리프트 안무가 많았던 것과 달리 맥밀런은 서사와 감정을 연기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본은 맥밀런의 혁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사랑과 우울증, 성 정체성 등 오늘날 젊은이들이 마주한 문제를 응시한다. 원작의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 공국은 청소년 교정시설 ‘베로나 인스티튜트’로, 줄리엣은 내면의 악마와 싸우는 ‘문제아’로 바뀐다. 본은 ‘호두까기 인형’ 등 정통 발레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올리비에 상을 무려 9차례 받은 안무가. 본은 “어린 두 남녀의 사랑을 담기 위해서는 이들의 실제 삶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봤다”고 해석의 배경을 밝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발코니 2인무’와 ‘기사들의 춤’ 장면. 이들 장면에선 두 안무가의 색깔이 극명하게 갈린다. 맥밀런의 ‘발코니 2인무’ 장면에 대해 문 단장은 “단순 동작이 아닌 자연스러운 연기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며 “시대를 앞서간 줄리엣의 당찬 면모와 걷잡을 수 없는 첫사랑에 빠진 감정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본의 손을 거친 ‘발코니 신’은 ‘무용사상 가장 긴 키스신’으로 변주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입술이 닿은 채로 한 몸이 되어 바닥을 구르고 돌면서 5분 가까이 2인무를 추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기사들의 춤’에서 맥밀런의 작품은 캐풀릿 가문의 무도회에서 열리는 화려한 군무로 유명하다. 본의 작품에선 베로나 인스티튜트에 수용된 젊은이들이 군무를 추는 장면으로 각색됐다. 주먹을 쥐고 팔을 당기는 등 기존 무대에선 찾아보기 힘든 동작들로 이뤄진다. 주인공 역을 맡은 무용수들도 상반된 매력을 드러낸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에선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메리카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가 된 서희(38) 등 내공을 갖춘 스타 무용수들이 줄리엣 역을 연기한다. 서희는 2013년 ‘오네긴’ 이후 11년 만에 내한한다. 지난해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은 강미선(41)이 같은 배역을 맡는다. 이와 달리 본의 공연에서는 1995∼2002년생 신예 무용수 3명이 줄리엣 역을 돌아가며 맡아 에너제틱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한지영 발레 평론가는 “맥밀런 버전에선 절제된 발레 테크닉으로 풀어낸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장면 전환이 빠르고 화려한 구성의 본 버전에선 마치 쇼를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동그랗고 큰 눈이 고등학생 연재의 두 눈을 응시한다. 알루미늄으로 된 손을 들어 연재의 호흡과 떨림을 측정한다. 이어 성별을 알 수 없는 기계 톤 음성으로 말한다. “당신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국립극단 74년 사상 처음 로봇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 ‘천 개의 파랑’에서 로봇이 관객을 향해 던진 대사다. 이 작품은 천선란 작가의 동명 공상과학(SF) 소설이 원작. 병든 경주마 ‘투데이’와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그리고 소녀 연재가 연대하는 과정을 그린다. 로봇과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실시간 영상 송출 등 기술로 SF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앞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당초 4일 개막이었는데 이틀 전 회로상 결함이 발견된 것. 공연은 연기됐고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콜리 역은 배우 김예은과 로봇이 나눠 연기한다. 로봇은 설계된 알고리즘에 따라 대사를 말하고 상체를 움직이는 반자동 퍼펫(Puppet). 공연 중 큰 버벅거림 없이 매끄럽게 ‘연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다만 손가락과 하반신 등은 움직이지 않아 다소 어색함도 있었다. 미세한 몸짓과 감정선은 배우 김예은이 풍부한 표현으로 보완했다. 김예은은 “로봇에게 마음을 열게 될 줄 몰랐다”며 “연습 초반 (신호 지연으로) 예측 불가 실수를 할 땐 더욱 인간처럼 느껴졌다. 나중엔 연습이 끝나고 콜리만 극장에 남는 게 걱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관객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최지우 씨(26)는 “로봇이 기대한 만큼 뛰어나진 않지만 사람이 연기를 뒷받침해 몰입엔 문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우수현 씨(25)는 “이보다 퀄리티가 높았다면 (로봇을) ‘고등학생이 만들었다’는 설정과 충돌했을 것 같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쉰둥이 아빠’들로서 좌충우돌 속에서도 가장 진실한 모습을 담아내려고 고군분투 중이죠. 예능 ‘아빠는 꽃중년’은 결혼을 한 분들, 하지 않은 분들 모두에게 위로가 될 겁니다.”(배우 안재욱) 18일 오후 9시 반에 첫 방송 되는 채널A 신규 예능 프로그램 ‘아빠는 꽃중년’ 제작발표회가 방송 전날인 17일 온라인으로 열렸다. 1990년대 연예계 ‘대표 오빠’였던 신성우, 안재욱, 김원준이 각각 두 자녀와 함께 출연한다. 평균 나이 53.7세로, 이제 꽃중년이 된 아빠들이 평균 4.8세인 아이들을 키우며 겪는 육아의 행복과 어려움을 진솔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진행은 ‘선배 아빠’이자 각각 세 살배기 늦둥이를 키우고 있는 배우 김용건과 방송인 김구라가 맡는다. 여러 방송사로부터 육아 예능 출연 제안을 수차례 받을 때마다 매번 거절했다는 이들이 ‘아빠는 꽃중년’ 출연을 최종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세 아빠는 “육아를 통해 커가는 꽃중년 아빠들의 성장 일기라는 점에 끌렸다”고 입을 모았다. 신성우는 “나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며 고칠 점을 찾을 수 있겠다고 봤다”면서 “편찮으신 어머니께서 화면으로나마 아이들을 지켜보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고 했다. 김구라는 “단순 육아 예능이었다면 나이 많은 아빠들의 ‘짠함’만 비쳐 거절했을 것”이라며 “나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는 점이 많다. 고군분투하는 세 아빠를 보며 ‘내가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구나’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김구라는 김원준을 ‘육아 고수’로 꼽았다. 실제로 김원준은 방송에서 18개월 된 둘째 예진이의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는 등 육아로 동분서주하면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평정심’을 보여준다. 꽃미남 로커 출신 신성우는 ‘독박 육아’를 하던 중 첫째 태오에게 꾸지람하는 자신의 모습을 모니터링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는 첫째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잊어버리고 다시 복습 중”이라며 “첫째와 차를 타면 록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마음을 나눈다”고 말했다. 이들 세 아빠의 아내는 모두 워킹맘이다. 육아 보조가 아닌 주역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검사 아내를 둔 김원준은 “(저는) 육아가 적성에 잘 맞다. 하지만 ‘워킹 대디’이기도 해서 힘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 최현주와 결혼한 안재욱은 “내가 아이를 본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도 아직 못 믿는다. 집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방송을 통해 확인받겠다”며 웃었다. 늦깎이 아빠들이란 공통점 때문에 깊은 연대감도 생긴다고 했다. 안재욱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50대가 넘어 어린아이들을 키우는지라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3박 4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구라는 “곧 군대에 가는 동현이를 키워 본 경험자이자 ‘아직은 아빠보다 뽀로로를 좋아하는’ 늦둥이 딸을 가진 아빠로서 관심사가 잘 맞다”고 했다. 2021년 75세의 나이에 늦둥이 아들은 본 배우 김용건은 스케줄상 제작발표회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닌데 현역으로 뛰어서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용건은 ‘인생 선배’이자 같은 처지의 아빠로서 꽃중년 아빠들에게 세심한 공감과 조언을 건넬 예정이다. 프로그램 연출은 채널A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 등으로 호흡을 맞춘 박철환, 한지인 PD가 맡았다. 박 PD는 “중년에 ‘인생 2회차’를 시작한 그 열정이 어디서 시작됐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계기가 됐다”며 “인생 마지막까지 행복한 삶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다섯 사람을 보며 시청자들도 ‘꽃 같은 인생’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꽃중년’은 매주 목요일 오후 9시 반에 방송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2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연극 ‘스카팽’의 막이 오르고 첫 대사가 들렸지만 극장은 깜깜해질 기미가 없이 훤했다. 관객들은 거실에서 TV를 보는 듯 옆 사람과 웃으며 속삭였다. 몰입에 자칫 방해될 정도로 너무 큰 손뼉과 환호도 터졌다. 공연 중간 밖으로 나가 스트레칭을 하고 오는 사람까지. 하지만 이를 제지하는 이도, 불만을 토로하는 이도 없었다. 이번 시즌 ‘스카팽’은 ‘열린 객석’으로 운영되며 이를 사전에 공지했기 때문. 이에 따라 극 중간에 입장, 퇴장도, 일정 소음 발생 등도 허용됐다. 관객으로서는 보다 ‘과감한 관람 모드’가 가능해진 것. 아홉 살 자녀와 극장을 찾은 김모 씨(43)는 “평소 공연을 볼 때 아이가 일부 장면에서 화들짝 놀라거나 모르는 내용을 질문할 때면 주변 관객들 눈치부터 살피곤 했다. 오늘은 부담을 내려놓고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직장인 최모 씨(26)는 “평소 ‘남들 웃을 때만 웃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는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실컷 웃으며 몰입했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 최근 사진 촬영, 음식물 섭취 등 소위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타인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 논란을 사며 금기시되던 것들에 도전하는 작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달 15∼23일 서울 용산구 아쉬랩하이에서 공연되는 배우 성수연, 양대은 주연의 연극 ‘타임스퀘어’는 관객 몰입을 떨어뜨리는 행위 50여 가지를 폭넓게 허용한다. 반려동물 동반부터 스마트폰 사용, 간단한 간식 및 주류 섭취까지 가능하다. 심지어 ‘관크’로 규정돼 금하던 행동들을 관객 참여와 소통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공연도 있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열린 다원 예술 ‘메이크 홈, 스위트 홈’은 공연 중 각자 스마트폰을 통한 투표를 진행해 투표 결과에 따라 극 전개가 실시간으로 바뀌도록 했다. 객석 의자는 전부 없앴다. 관객은 마치 전시회를 보듯 극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퍼포머들을 발치에서 구경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이러한 공연들은 젊은 연출가들을 중심으로 엄숙한 극장 문화에 변화를 주려는 움직임의 결과다. ‘메이크 홈, 스위트 홈’의 변재하 연출가는 “관객을 통제하는 기존 공연계 관람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꼈다. 안전 등 이유로 꼭 제한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자율성에 맡기고 싶었다”고 했다. 자유로운 관람 분위기를 통해 극장이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의도도 크다. 김정연 국립극단 PD는 “집중력이 비교적 흐트러지기 쉬운 어린이, 노인 관객이나 외부 환경에 민감한 공황장애, 자폐스펙트럼 등을 지닌 관객 등에게 경직된 관람 문화는 높은 장벽”이라며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의 기존 문법을 깨는 파격적 시도가 창작자, 출연진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스카팽’의 임도완 연출가는 “지난 시즌과 달리 공연 시작부터 관객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 배우들도 더욱 열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 연극에선 배우가 금기시된 행동을 직접 하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4∼7일 서울 강동구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미국인 연출가 제프 소벨이 주연까지 맡은 연극 ‘푸드’는 웨이터 복장의 배우가 대형 식탁에 둘러앉은 관객에게 말을 걸고 와인을 따르며 주문을 받거나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치워 화제가 됐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기존 규범을 전복하려는 젊은 창작자들과 수동적 관람 방식에서 벗어나 공연의 일부가 되려는 젊은 관객의 수요가 맞아떨어졌다”며 “당분간 자유로운 관극 문화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나이 50쯤 되면 인생이 자칫 지루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때 ‘짜잔’ 하고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제 느슨해진 삶에 다시 불을 붙였죠. ‘아빠는 꽃중년’은 단지 아이의 성장 일기가 아닌, 늦깎이 아빠들의 성장 일기입니다.” 18일 첫 방영을 앞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아빠는 꽃중년’에서 일곱 살, 두 살 아들과 함께 출연하는 가수 신성우(57)는 이렇게 출연 소감을 밝혔다. 이 프로그램에는 배우 안재욱(53), 가수 김원준(51)도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나온다. 이들 ‘늦깎이 아빠’들의 평균 연령은 53.7세. 이들은 평균 4.8세인 자녀들을 키우며 겪는 육아의 기쁨과 어려움을 진솔하게 공개한다. 13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에서 만난 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유쾌한 수다를 풀어냈다. 1990년대 연예계를 사로잡았던 ‘오빠’들은 이제 ‘반백 살 아빠’가 된 일상을 공개한다. ‘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꽃미남 로커로 활약했던 신성우는 이제 첫째 태오에게 아기자기한 동요를 불러준다. 안재욱은 두 아이에게 삼시 세끼 밥을 지어 먹이느라 초췌해졌고 식탁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김원준 또한 두 자매 육아로 체력 방전이다. 이들은 스타이기 전에 ‘아빠’다. 안재욱은 “화려한 무대에 서는 사람일지언정 아빠로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김원준은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모습)도 아니고 그냥 ‘안꾸’ 방송이에요. 부스스한 머리로 아이 목욕을 시키던 중 갑자기 둘째 예진이가 제게 기습 뽀뽀를 하는 거예요. 평소 안 그러는 앤데… 당황한 기색과 마냥 행복해하는 제 얼굴이 그대로 카메라에 찍혔죠.” 언제까지나 스타의 환상이 깨지지 않기를 원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망가질 결심’을 한 이유는 무얼까. 세 아빠는 “아이와의 소중한 추억을 가장 예쁘게 남기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원준은 “10년, 20년이 흘러 아이들과 함께 돌이켜볼 수 있는 기록이 돼줄 것 같았다”며 “특히 총각 때부터 가까이 지내던 형들이 출연한다기에 그저 자석처럼 끌렸다”고 했다. 신성우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 위주로 담긴 기존 육아 예능과 달리 부모, 자식 간 발전해나가는 관계에 대한 비망록이라 좋았다”고 덧붙였다. ‘선비 아빠(신성우), 투덜이 아빠(안재욱), 엄마 같은 아빠(김원준).’ 세 사람이 말한 각자의 아빠 캐릭터다. 슬하에 둔 아이들의 성격이 각기 다르듯, 나이는 비슷해도 육아 스타일은 천지 차이다. 안재욱에겐 여덟 살 큰딸과 5년 터울인 아들이, 김원준에겐 일곱 살, 세 살 난 딸 둘이 있다. 김원준은 “성우 형이 자유로운 영혼인 줄 알았더니 아이를 키울 땐 예의범절을 중시하기에 놀랐다. 재욱이 형은 까칠하면서도 다정한 아빠”라며 웃었다. “부모로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그간 고민의 연속이었죠. 이번 촬영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보며 정답은 없음을 깨달았어요. 시청자들도 방송을 보며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도 아이와 닿는 마음만은 같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안재욱) 이들은 ‘육퇴(육아 퇴근)’ 후 모여 속풀이도 나눈다. 진행자 김용건, 김구라가 ‘선배 아빠’로서 조언도 건넨다. 안재욱은 “김구라 씨도 3년 전 늦둥이를 얻어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신성우는 “김용건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자 인생 선생님이다. 세심한 조언은 브라운관을 넘어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꽃중년’은 매주 목요일 오후 9시 30분에 방송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잘 먹어야 힘을 쓴다’는 말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체력, 골밀도가 실력과 직결되는 스포츠계에서 여성 선수들은 ‘잘 먹지’ 못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연구에 따르면 여자 대학 운동선수의 35%가 거식증의 위험에 처해 있다. 남자 선수의 비율(10%)을 3배 이상 뛰어넘는다. 이상적인 여성 체형과 효과적 경기 체중에 대한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용의 책은 달리기 선수 출신인 저자가 27년간 스포츠계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썼다. 전미 선수권대회와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대회에서 각각 두 차례 우승을 거머쥔 여성 챔피언이다. “스포츠계는 여성의 생리적 경험을 평가절하하거나 잘못된 우선순위를 강조해 평생에 걸친 해를 끼친다”는 주장을 구체적 일화와 근거로 탄탄히 펼쳐낸다. 여성 선수로서 자기 신체와 끊임없이 불화했던 과거를 가감 없이 담아냈다. 저자는 사춘기 신체 변화가 시작되자 가슴이 커져 기록이 나빠지지 않도록 체중을 엄격히 통제했다. 하지만 중학교 댄스파티용 드레스를 고르러 가서는 “내 가슴이 남자처럼 납작하다고 놀리는 친구들”로 인해 자신의 몸을 부정하는 혼란을 겪는다. 구조의 불합리성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인용해 독자를 설득한다. 책은 “2016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여학생은 14세에 또래 남학생의 두 배에 달하는 비율로 스포츠를 그만두지만 이들을 위한 여성생리학 교육, 연구 및 지원은 거의 없다”고 비판한다. 이어 “오늘날 여성은 미국 운동선수의 40%를 차지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후원금은 전체 금액의 1% 미만”이라고 지적한다. 단지 여성 선수만을 위한 조언서가 아니다.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성장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저자의 설명처럼, ‘주류 집단이 가진 것을 얻는 방식’으로 세상의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발버둥 치는 모든 이들을 격려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평생 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 고통스러웠어요.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걱정하느라 배고픔마저 잊고 하루가 다르게 야위었을 정도로요.” 최근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펜트하우스’ 등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 하도권 씨(47·사진)는 ‘그레이트 코멧’의 주인공 피에르 역으로 8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복귀한 뒤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2016년 뮤지컬 ‘왕의 나라’ 이후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복귀작이기에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부담이 컸다”고 했다. ‘그레이트 코멧’은 1812년 나폴레옹이 침공하기 직전, 삶에 대한 회의감 속에 방황하는 러시아 귀족 피에르가 여인 나타샤에게 연민을 느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재창작한 뮤지컬로 2017년 제71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무대디자인상 등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피에르 역은 하 씨와 케이윌, 김주택이, 나타샤 역은 이지수, 유연정, 박수빈이 돌아가며 연기한다. 총 27곡의 넘버는 일렉트로닉, 록, 힙합 등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 귀를 즐겁게 한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클래식을 전공해서인지 음악을 들으면 선율과 박자를 예측하게 된다. 그런데 ‘그레이트 코멧’의 넘버들은 그 예측이 전부 빗나갈 만큼 신선하고 세련되다”고 했다. 출연자들은 넘버를 가창하는 동시에 악기 연주까지 소화한다. 하 씨는 총 8곡의 넘버에서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그에게 악기 연습은 그야말로 울분의 연속이었다. “하루 8시간씩 악기를 붙들고 있었어요. 특히 아코디언은 생소했기 때문에 오후 10시 공연 연습이 끝나면 레슨 선생님과 새벽 3∼4시까지 연습했죠. 대학 입시 때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하 씨는 2004년 뮤지컬 ‘미녀와 야수’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뮤지컬 ‘엘리자벳’ ‘레미제라블’ 등을 거친 베테랑 배우다. 그는 “20년간 맡은 배역 중 피에르는 나와 가장 많이 닮아 있다. 무대에서 자주 울컥하지만 남은 넘버를 소화하기 위해 감정을 다잡는다”며 “피에르가 느끼는 결핍,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사랑을 좇으려는 마음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이트 코멧’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6월 16일까지 공연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죽음 뒤의 세상은 증명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 인간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사후 세계의 모습을 조명한 신작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립무용단이 이달 25∼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리는 ‘사자의 서’가 바로 그 작품이다. 작품은 죽음 후 망자가 겪는 49일간의 여정을 ‘의식의 바다’ ‘상념의 바다’ ‘고요의 바다’ 등 3장에 걸쳐 풀어낸다. 지난해 4월 취임한 김종덕 예술감독이 불교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영감을 받아 처음 무대에 올리는 작품. 주역인 망자 역을 맡은 무용수 조용진 씨(39)와 최호종 씨(30)를 8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삶과 죽음을 표현하는 것은 베테랑 무용수에게도 쉽지 않은 일. 30대로 ‘한창’ 때인 무용수들이 한바탕 죽음의 춤사위를 추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최 씨는 “삶에 대한 미련을 하염없이 표현하고 나면 후련함을 느낀다”며 “춤이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기준에 못 미치는 나를 매일 후회하며 살기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햇수로 28년째 춤을 추고 있는 조 씨는 이렇게 답했다. “제 춤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게 됐어요. 내가 더 나은 무용수가 됐는지 연말마다 반추하곤 하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을 오가며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죠. 이처럼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되돌아볼 수 있길 바랍니다.” 조 씨는 1장에서 죽음을 맞은 망자를, 이어 최 씨가 삶을 돌아보는 망자를 연기한다. 두 망자의 온도 차는 극명하다. 최 씨는 “불같이 살수록 죽음의 그림자가 더 짙어진다고 봤다”며 “생전 가장 열정적이던 순간을 2장에서 파노라마처럼 표현해 삶과 죽음을 대비시키려 한다”고 했다. 반대로 조 씨는 부정과 분노, 타협이 응축돼 끝내 차분해진 상태를 표현한다. 그는 “비교적 느리고 힘 있는 동작으로 죽음 앞 모든 걸 내려놓은 마음을 담아낼 예정”이라고 했다. 무대 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 무용에 기반한 작품이지만 역동적 춤사위, 미니멀한 무대 등으로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새하얀 무대는 조각조각 나뉘고 회전하며 이승과 저승이 중첩된 공간을 연출한다. 그 위에서 빠르고 역동적으로 이뤄지는 남성 군무 ‘일상’은 두 사람이 꼽은 가장 현대적인 장면이다. 조 씨는 “한국무용은 몸을 감아내는 동작이 많아 힘을 표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전쟁 같은 일상을 역동감 있게 표현한 군무에선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예술감독이 “마치 도화지 같다”고 평한 두 사람은 창작 과정에 참여해 자신만의 색깔도 더했다. 최 씨는 “어렸을 땐 느리게 가던 시간이 나이가 들면서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느낀다”며 “망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그 변화의 흐름을 춤의 강약 및 완급 조절로 표현하려 한다”고 했다. 조 씨는 “1장과 2장이 동일 인물의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호종 씨와 나의 동작 일부가 겹치게끔 했다”고 했다. 조 씨와 최 씨는 국립무용단에 각각 2011년, 2017년 입단했다. 최 씨는 늦깎이로 무용을 시작한 고교 3학년 시절을 회상하며 “(용진)선배가 출연한 무용단 공연을 보고 무용수라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멋쩍은 듯 손사래를 치던 조 씨는 “호종 씨의 집요함을 존경한다. 동작 하나를 백 번, 천 번 반복해 완성해낸다”며 후배를 치켜세웠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광클’해서 어렵게 예매했는데 공연이 갑자기 연기되니 허탈하네요.” 최근 국립극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댓글창엔 관객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국립극단의 연극 ‘천 개의 파랑’이 개막 하루 전에 공연이 돌연 연기됐기 때문. 이 공연은 국립극단 창단 74년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 배우가 무대에 오르게 돼 큰 화제였다. 예매 경쟁도 치열해 예매 시작 하루 만에 전 회차, 전석이 매진됐었다. 극단이 공연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은 무대에 서는 로봇 배우 ‘콜리’가 막바지 리허설 도중에 전원이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회로 설계상의 문제가 발견됐고,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에 당초 4일이었던 개막일이 16일로 연기된 것. 회로 재점검을 마친 ‘콜리’는 10일부터 이어지는 리허설에 다시 나설 예정이다. 공연이 재조정된 일정대로 진행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은 공연계에도 ‘로봇 공연’이란 새바람을 불러왔다. 지난해 6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손잡고 국내 첫 로봇 지휘자 ‘에버6’를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공연은 티켓 1200여 장이 매진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번 ‘천개의 파랑’ 역시 젊은 관객층을 중심으로 티켓 쟁탈전이 뜨거웠다. 새로운 형식의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이다. 하지만 ‘천 개의 파랑’ 공연 과정을 들여다보면 상대적으로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앞서 국립국악관현악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에버6를 지휘자 역할에 맞게 1년 가까이 연구 및 개조해 무대에 세웠다. 하지만 국립극단은 지난해 12월 로봇 개발 업체와 계약을 맺은 뒤 지난달 중순에야 로봇 제작을 완료했다. 티켓은 지난달 초순부터 판매되기 시작했으니 로봇도 완성하지 않고 ‘로봇 공연’을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로봇 등이 접목된 ‘기술 융합 공연’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제작이나 공연 시스템을 보다 세밀히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공연 중 로봇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상황별 가이드라인이 미비하다. 단 며칠 주어지는 리허설만으로는 현장을 파악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엄현희 연극평론가는 “작품을 본격 제작하기 전에 해외 공연계처럼 ‘기술 랩(lab)’을 진행하는 등 수년간 단계별로 개발해야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