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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11일 잼버리 폐영식과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가 열린 서울 마포구 상암동.캐나다에서 온 도로시 모리슨 양(16)은 “폭염부터 태풍까지, 출발 전엔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다”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잼버리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또 “마지막 날 콘서트까지 잘 마무리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 정부와 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1일 시작된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가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막을 내렸다. 태풍 ‘카눈’ 때문에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을 떠나 전국 8개 시도로 흩어졌던 스카우트 대원 약 4만 명은 이날 오전부터 버스 약 1400대를 타고 경기장으로 모였다. 콘서트가 시작되자 파도타기를 하고 함성을 지르며 잼버리의 마지막 밤을 뜨겁게 달궜다. 뉴진스 등이 무대에 오를 땐 너나없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치켜들며 열렬히 환호했다.벨기에에서 온 릴리 자넨 양(14)은 “초반엔 힘들기도 했지만 일정을 완주하니 정말 뿌듯하다”며 “K팝 ‘왕팬’인데, 아티스트들을 직접 보고 노래를 들으니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폐영식에선 한국 스카우트 대원이 차기 잼버리 개최국인 폴란드 대원에게 스카우트 연맹기를 건네주는 전달식이 진행됐다. 캐나다 대원 온킷 사하 군(15)은 상기된 표정으로 “완벽한 피날레”라며 “12일 캐나다로 돌아가는데 더 있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11일 폐영식 및 K팝 콘서트를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과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의 숙소에선 들뜬 분위기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기숙사에 머물던 스위스 단원들은 이날 오전 강당에 모여 함께 K팝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공연 관람을 준비했다. 한 단원은 “콘서트를 신나게 즐기기 위해 아침부터 노래를 듣고 춤추며 준비했다”고 말했다.오후 2시경부터 경기장 입장이 시작됐는데 각국 대원들은 이슬비를 맞으면서도 정해진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밝은 표정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 앞에선 스카우트 대원들을 도왔던 한국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스카우트 대원들은 이들과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한국어로 인사하며 행사장에 들어섰다. 일부 대원은 총을 들고 입구를 지키는 경찰특공대원들과 사진을 찍거나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기도 했다.● 유명 그룹 등장하자 응원봉 흔들며 열광잼버리의 마지막 순서인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가 시작되자 스카우트 대원들은 좋아하는 그룹의 이름을 외치고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댄스크루 ‘홀리뱅’이 콘서트의 포문을 연 뒤 ‘더보이즈’ ‘있지’ ‘마마무’ ‘NCT 드림’ 등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 그룹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대원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공연 중에도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대원들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대원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박자에 맞춰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들고, 앉은 자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챌린지로 유행한 아이브의 ‘I AM’ 하이라이트 소절이 나올 땐 안무를 따라 추는 대원들도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알투로 군(15)은 “콘서트장에서 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니 마지막까지 재밌다.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기억 가득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며 감격했다. 미국에서 온 케빈 하트 씨(22)도 “주최 측에 감사하다”고 했다.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 전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의 포토카드와 K팝 콘서트 응원봉,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상품 등이 담긴 ‘콘서트 리멤버 키트’ 기념품을 지급했다. 미국에서 온 데포 오에린 씨(21)는 “BTS 굿즈를 받았다고 하니 미국 친구들이 메신저로 벌써부터 달라고 난리”라며 웃었다.마지막 무대가 다가오자 대원들 사이에선 아쉬움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원들은 “꼭 다시 만나자”며 다른 나라 대원들과 포옹을 나누고 서로의 SNS 계정을 교환하기도 했다. 콘서트에 등장한 아티스트 19개 팀이 함께 무대로 나와 마지막 곡 ‘풍선’을 부르자 스마트폰 플래시 불빛과 응원봉을 흔들며 경기장을 더욱 환하게 물들였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추억”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힘들었지만 즐거운 잼버리였다”고 입을 모았다.네덜란드에서 온 마틴 새트 씨(20)는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유럽에서 먼 국가에서 온 이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며 “특히 한국 시민들의 친절함에 감동했다. 한국에 더 남기 위해 항공편도 바꾸고 다음 주에는 부산과 제주도를 찾을 생각”이라고 했다.영국 스카우트 단원 제임스 에더리지 씨(37) 역시 “스카우트 목도리를 두르고 다닐 때마다 한국인들이 환한 표정으로 맞아줬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돌이켰다. 모리셔스에서 온 사하바나즈 아모드 씨(24)와 잔시 파르마 씨(20)는 “화합이라는 스카우트 정신에 부합하는 잼버리였다”며 “매일매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펼쳐졌지만 그래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아흐마드 알헨다위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은 폐영식에서 “여러분은 시련에 맞서고 이것을 오히려 특별한 경험으로 바꿨다”며 “‘여행하는 잼버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이날로 공식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각국 스카우트 대원들은 12일부터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스웨덴과 대만 스카우트 대원 957명이 부산을 찾는 등 일부 국가의 경우 자체적으로 추가 관광 일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개별적으로 한국에 남아 다른 프로그램이나 관광을 하는 경우 비용은 해당 국가가 부담하도록 할 방침이다. 행정안전부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2일 이후에도 잼버리 참가자들이 원하는 경우 숙소 등 필요한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100년 전 급변하던 세상에서 ‘모던걸’들이 거쳐야 했던 폭풍의 눈과 그럼에도 꺾이지 않던 정신을, 그 속에서 태동하던 에너지를 춤으로 보여주려 해요.” 이달 24∼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여자야 여자야’의 안무를 맡은 안은미 씨(60)의 말이다. 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신작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공연은 1920, 30년대 우리나라에서 구습을 비판하며 새 길을 개척했던 신여성을 이야기한다. 파격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으로 대체 불가능한 스타일을 구축한 안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로 꼽힌다. 2018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 시립극장(테아트르 드 라빌)의 상주예술가로 위촉됐고, 그의 대표 레퍼토리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해외 50개 안팎의 극장 및 축제에 초청을 받았다. ‘여자야 여자야’는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무용수들과 함께 다양성을 이야기한 공연 ‘잘란잘란’ 이후 10개월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에 담긴 역사를 발견하고 춤으로 풀어냈던 그가 과거의 인물상을 토대로 안무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안 씨의 대표작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아저씨의 무책임한 땐스’ 등은 각각 동시대 할머니와 중년 남성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맥락을 짚었다. 신작에서 12명의 무용수는 ‘닫혀 있던 여성의 몸’이 점차 열리는 과정을 표현한다. 개화기 서구 문화를 받아들인 신여성들이 거추장스러운 치마와 쪽 찐 머리 대신 짧은 치마, 단발머리를 선택한 데 따른 변화다. 안 씨는 “조선시대의 문화는 앉아있는 자세, 말하는 태도 등 여성의 몸 제스처까지 제한한다”며 “사진 기록 속 신여성들은 홀가분해진 옷차림 덕에 손발의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터져 나온 해방감을 춤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까까머리에 형광 꽃무늬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모는 ‘21세기 신여성’ 안은미는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최초’를 일궈낸 인물들에게 특히 마음이 가닿았다고 했다. 한국 최초의 여자 서양화가 나혜석, 국내 첫 단발머리를 시도한 강향란 등과 연대감을 느낀 것. “나를 구경하는 눈초리들, 이해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는 거기서 고통받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 크고 작은 굴레들이 상존하죠. 이를 견뎌낸 최초의 시도들이 있었기에 남자와 여자 모두 부당한 현실로부터 차츰 해방될 수 있었던 겁니다.” 무용수들은 단조로운 ‘유관순 스타일’ 한복을 벗어던지고 색색깔 옷으로 갈아입으며 무대를 쉼 없이 뛰어다닌다. 의상과 무대는 시대상을 반영하되, 화려하고 통통 튀는 ‘안은미식’으로 제작됐다. 동대문종합시장을 휩쓸며 원단과 부자재를 손수 떼 왔다.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은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가 작곡했다. 안 씨는 “30년 가까이 함께 작업하면서 말없이 서로 믿고 맡기는 듀오가 됐다. 모던걸의 춤사위에 꼭 맞는 1시간짜리 교향곡을 들려줄 예정”이라고 했다. 1988년 ‘종이계단’을 발표하며 안무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그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적게 잡아도 150편이 넘는다. “밥 먹고 작품만 했어요. 이걸 끝내면 저걸 또 춤으로 빚어보고 싶고. 과학자가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세상에 궁금한 게 이렇게나 많은데 글쎄, 잠이 와요?”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구온난화 시대를 넘어 ‘열대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공연계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립극단은 이달 24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멸종위기종 갈라파고스 땅거북을 소재로 삼은 연극 ‘스고파라갈’을 공연한다. 뒤집어지고 비틀려 버린 장소 ‘스고파라갈’에서 인간의 이기심으로 희생되고 있는 땅거북과 이를 발견한 인간 7명이 주고받는 파편화된 대화가 극을 이룬다. 올해 1월 열린 제59회 동아연극상에서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임성현이 연출을 맡았다. 임 연출은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연구한 ‘종의 기원’은 생물의 적응과 변화를 이야기했으나 사람들은 이를 ‘진보’로 비틀어 해석했다”며 “이러한 오역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임을 말하고자 ‘뒤집힌 세계’를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7명은 고정된 한 인물을 연기하지 않고 속사포로 대사를 내뱉는다. 임 연출은 “쉽게 다른 것에 관심이 뺏겨 집단적 고민이 깊어지지 못하는 현 세태를 표현했다”며 “관객은 직접 방석을 배치해 앉아 무대와의 경계를 지운다. 이를 통해 ‘나 역시 이곳에 책임이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월 6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에서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선 기후위기를 다룬 강의형 연극 ‘에너지…보이지 않는 언어’가 28, 29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전윤환, 김지연이 공동 연출을 맡고 직접 출연한다. 이들은 ‘미미하다’ ‘깨끗하다’ 등 일상적 단어가 적힌 카드들을 가지고 관객들과 ‘기후 문장’을 만들어 나가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전 연출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착한 소비 같은 기업적인 용어들 외에 기후에 대해 이야기할 일상적 언어가 부족하다. 언어의 부재가 기후위기 시대에 상상력의 부재를 만든다고 봤다”며 “기후라는 거대 서사를 개인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연세대 기후적응 리빙랩 연구사업단에서 연구 중인 김 연출은 “기후 대응이 일상화하기 위해선 지식 너머의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 교육은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당위적”이라며 “경각심을 일깨우는 언어는 일상에 거리감과 피로감을 주기에 희망을 주는 예술의 언어를 활용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소설도, 영화도 아닌 물리적 한계가 많은 극장을 기후위기 논의의 장으로 택한 이유는 뭘까. 임 연출은 “집이나 영화관과 달리 관객과 무대가 함께 호흡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만남은 공동체성을 자극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동아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LG와 함께하는 제18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성악 부문)’ 1차 예선 경연에 참가할 10개국 55명이 가려졌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 3개 부문을 매년 돌아가며 개최하는 국제대회로 바리톤 김기훈, 테너 스테판 마리안 포프 등이 이 대회 우승자 출신이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열린 참가자 제출 영상 예비심사에는 박미자 서울대 교수, 신상근 경희대 교수, 양준모 연세대 교수, 성악가 연광철, 캐슬린 김 한양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심사위원들은 15개국 224명의 지원자가 제출한 영상을 보며 예선 출전 가능 여부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채점한 뒤 합산해 예비심사 합격자를 정했다. 합격자 55명의 국적 및 인원은 한국 38명, 중국 4명, 러시아 3명, 몽골 3명, 미국 2명, 브라질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호주 각 1명이다. 심사위원들은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출중한 지원자가 많아 합격자를 가려내기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예비심사 합격자들은 11월 22,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1차 예선에 참가한다. 예비심사 결과는 21일 콩쿠르 홈페이지에 공지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00년 전 급변하던 세상에서 ‘모던걸’들이 거쳐야 했던 폭풍의 눈과 그럼에도 꺾이지 않던 정신을, 그 속에서 태동하던 에너지를 춤으로 보여주려 해요. 작은 공연 하나로 삶과 사회가 변화할 힘이 생긴다면 그건 우리가 춤춰야 할 이유죠.”이달 24~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여자야 여자야’를 안무한 안은미 씨(60)의 말이다. 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공연은 1920~1930년대 우리나라에서 구습을 비판하며 새 길을 개척했던 신여성을 이야기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그를 안무가로 초청한 첫 작품이다. 파격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으로 대체 불가능한 스타일을 구축한 안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 레퍼토리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해외 50개 안팎의 극장 및 축제에 초청을 받았다. 2018년에는 한국인 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 시립극장(테아트르 드 라빌)의 상주예술가로 위촉되기도 했다. ‘여자야 여자야’는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무용수들과 함께 다양성을 이야기한 공연 ‘잘란잘란’ 이후 10개월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에 담긴 역사를 발견하고 춤으로 풀어냈던 그가 과거의 인물상을 토대로 안무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안 씨의 대표작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아저씨의 무책임한 땐스’ 등은 각각 동시대 할머니와 중년 남성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맥락을 짚었다. 그는 “공공기관과의 협업인 만큼 역사 속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돌아볼 책무를 느꼈다”고 말했다.공연에서 12명의 무용수들은 ‘닫혀있던 여성의 몸’이 점차 열리는 과정을 표현한다. 당시 서구 문화를 받아들인 신여성들이 거추장스러운 치마와 쪽진머리 대신 짧은 치마, 단발머리를 선택한 데 따른 변화다. 안 씨는 “한 시대의 문화는 앉아있는 자세, 말하는 태도 등 몸의 제스처까지 제한한다”며 “사진 기록 속 신여성들은 홀가분해진 옷차림 덕에 손발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터져나온 해방감을 춤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까까머리에 형광 꽃무늬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모는 ‘21세기 신여성’인 그는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최초’를 일궈낸 인물들에게 특히 마음이 가닿았다고 했다. 최초의 여자 서양화가 나혜석, 여성 최초로 단발머리를 시도한 강향란 등과 연대감을 느낀 것.“나를 구경하는 눈초리들, 이해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는 거기서 고통 받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 크고 작은 굴레들이 상존하죠. 이를 견뎌낸 최초의 시도들이 있었기에 남자와 여자 모두 부당한 현실로부터 차츰 해방될 수 있었던 겁니다.”무용수들은 단조로운 ‘유관순 스타일’ 한복을 벗어던지고 색색깔 옷으로 갈아입으며 무대를 쉼 없이 뛰어다닌다. 의상과 무대는 시대상을 반영하되, 화려하고 통통 튀는 ‘안은미식’으로 제작됐다. “없는 게 없는” 동대문종합시장을 휩쓸며 원단과 부자재를 손수 떼왔다.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은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가 작곡했다. 안 씨는 “30년 가까이 함께 작업하면서 말없이 서로 믿고 맡기는 듀오가 됐다. 모던걸의 춤사위에 꼭 맞는 1시간짜리 교향곡을 들려줄 예정”이라고 했다.이번 공연이 끝나면 초등학생을 탐구한 작품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1988년 ‘종이계단’을 발표하며 첫발을 내딛은 그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적게 잡아도 150여 편이 넘는다.“밥 먹고 작품만 했어요. 이걸 끝내면 저걸 또 춤으로 빚어보고 싶고. 과학자가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세상에 궁금한 게 이렇게나 많은데 글쎄, 잠이 와요?”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결선 무대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지휘봉을 잡았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행복했어요. 젊은 지휘자로서는 감히 넘보기 어려운 무대죠.” 6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열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콩쿠르 우승자 윤한결 씨(29)는 “수상보다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좋은 연주를 남겨 드리려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씨는 7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멘델스존 교향곡 3번을 지휘하기 시작했을 때 오케스트라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고 ‘오늘 연주 잘 되겠다’는 직감이 왔다. 연주가 끝난 뒤 카라얀협회의 마티아스 뢰더 대표께서 ‘이 단원들을 수없이 봤지만 눈빛을 보니 결과는 이미 나왔다’고 말씀해 주셨다”며 웃었다. 전설적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을 기리는 카라얀협회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주최하는 이 콩쿠르는 젊은 스타 지휘자를 여럿 배출해 왔다. 앞선 우승자로 네덜란드 국립오페라단 상임지휘자 로렌조 비오티(2015년), 스페인 국립관현악단 상임지휘자 다비트 아프캄(2010년) 등이 있다. 우승자는 1만5000유로(약 2150만 원)의 상금과 다음 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지휘할 기회를 얻는다. 이번 우승은 “독일에서 지휘를 공부하는 아내의 따끔한 조언과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의 덕”이라고 했다. 윤 씨는 래틀 경이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의 2022∼23년 시즌 유럽 투어에 부지휘자로 참여했다. 지난해 11월엔 래틀 경과 정명훈, 첼리스트 요요마 등이 속한 기획사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다. “예전엔 테크닉이 수려하고 정확한 지휘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을 통해 테크닉 너머의 감정을 연주자들로부터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달았죠. 감사하게도 유럽 투어 동안 래틀 경이 단순 보조가 아닌 ‘진짜 지휘’를 시켜주셨어요. 그때 많이 보고 배웠죠.” 이날 대회 결선 무대에서 윤 씨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가단조 ‘스코틀랜드’ 등 총 4곡을 지휘했다. 신동훈의 체임버 오케스트라곡 ‘쥐와 인간의’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은 직접 골랐고, 모차르트의 아리아 ‘오, 그대 온화한 별이여’는 지정곡으로 지휘했다. 독일 뮌헨 음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윤 씨는 2019년 세계적 음악 축제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의 지휘 부문에서 최연소로 1등을 거머쥐며 이름을 알렸다. 2019∼2021년 독일 노이브란덴부르크 극장·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그는 “언젠가 BRSO와 호흡을 맞춰 보는 게 꿈이다. 마리스 얀손스(1943∼2019)가 지휘한 BRSO의 공연을 보고 지휘를 꿈꾸게 됐기 때문”이라며 “오케스트라의 일부로서 손발을 맞추며 최고의 연주를 안겨 줄 수 있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무대 위 볼품없는 냉장고 하나가 덩그러니 웅웅댄다. 그 옆에 무심히 선 배우는 토막글을 소리 내 읽기도, 콩트를 벌이기도 하며 80분간 이어달리기를 한다. 짧게는 2분, 길게는 7분 길이의 쇼트폼 같은 20개의 쇼가 서사적 맥락 없이 연잇는 공연은 언뜻 낯설다. 그러나 어릴 적 책 귀퉁이에 그린 낙서를 빠르게 넘기던 놀이처럼 관객 마음에 잔상을 새겨놓는다. 다음 달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넥스트23’ 중 ‘백현진 쑈: 공개방송’이 공연된다. 배우 김고은, 가수 장기하 등 소극장에서 만나보기 힘든 톱스타들이 출연 배우로 총출동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작품의 연출과 미술감독, 출연까지 두루 맡은 아티스트 백현진(51)을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재밌어하고 잘하는 재료를 한데 모은,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PKM갤러리 소속 화가인 백 씨는 드라마 ‘모범택시’(2021년)의 박양진 회장 등 강렬한 악역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해 배우로서도 눈도장을 받았다. 음악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와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로 활동하던 시절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년)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했다. 또 전설적인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1940∼2009)의 2003년 내한공연 ‘마주르카 포고’ 에선 그의 음악이 안무곡으로 사용됐다. 이번 공연에선 단막극과 낭송을 비롯해 무대 소품으로 설치미술 작품을 활용하는 등 여러 장르를 빌려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이 변화하는 존재일 뿐, 진보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누가 우월한지 끝없이 비교하는 사회에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형식은 독특하지만 내용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문장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배우 한예리와 코미디언 문상훈 등 이번 공연 무대에 오르는 사람만 총 20여 명에 달한다. “주어진 제작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합”인 이들은 순전히 ‘재미’를 위해 모였다. 출연진은 장면을 들락날락하며 연기도 하고 토크쇼도 한다. “그동안 캐스팅 타율이 경이로운 수준이었는데 이번엔 많이 까였어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출연을 제안했죠. 작품이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단번에 ‘오케이’한 고마운 사람들이 출연합니다.” 여러 매체를 종횡무진하며 ‘괴짜’ 대접을 받는 백 씨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재미’다. 최근에는 재미로 밴드 활동명을 백현진씨에서 ‘벡’현진씨로 바꿨다. 그는 “20, 30대까지만 해도 별명이 ‘홍대 염세왕’일 정도로 냉소적이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고자 훈련했다”며 “꾸준히 귀동냥, 눈동냥 하며 예술적 영감을 찾는다”고 고백했다. “1995년에 처음 공연했을 땐 다들 ‘저 인간 뭐냐’고 했어요. 제 색깔대로 오래 하다 보니 이젠 사람들이 좋아해 주네요.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과거의 저처럼 오랜 무명에 놓인 좋은 ‘일꾼’들과도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4만5000∼5만5000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흙냄새 나는 영혼이 나의 멤피스 이곳에 살아 숨 쉬네.”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멤피스’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50년대 미국 남부 멤피스를 배경으로 백인 DJ 휴이와 흑인 가수 펠리샤가 꿈과 사랑을 나누며 로큰롤을 세상에 전파하는 이야기다. 작품은 당시 흑인들의 음악으로 여겨지던 로큰롤을 대중화시킨 라디오 쇼 DJ 듀이 필립스의 실화를 토대로 한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2009년 초연된 이 작품은 이듬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복고풍 넘버와 무대 세트는 관객을 1950년대 미국으로 데려다준다. 록밴드 본조비의 멤버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작곡한 넘버는 로큰롤부터 리듬앤드블루스, 가스펠 등을 다채롭게 오간다. 브라이언은 “어릴 적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됐던 아픔을 떠올리며 작곡했다”고 밝혔다. 친숙한 선율과 박자가 향수를 자극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대목 없이 기계적인 ‘솔’만 남은 점은 아쉬웠다. 지난달 28일 공연에선 아이돌 그룹 비투비 출신 가수 이창섭이 휴이 역을 맡아 천진난만한 캐릭터를 매끄럽게 묘사해냈다. 펠리샤 역은 배우 손승연이 맡아 ‘컬러드 우먼(Colored Woman)’ 등 고음의 넘버를 파워풀하게 소화하며 관객의 환호를 샀다. 휴이 역은 박강현과 고은성이, 펠리샤 역은 정선아와 유리아가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백인인 휴이의 시혜적 시선이 아닌 펠리샤의 주체적인 면모를 강조한 서사는 ‘음악으로 차별에 맞선다’는 메시지를 모순 없이 드러내는 데 일조했다. 10월 22일까지, 7만∼16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나이가 들면 설렘도 미움도 옅어져요. 편안하지만 서글픈 일이죠. 엉덩이 뼈를 다쳐 병상에 누워 딸이 녹음해준 대본을 들으며 지난 인생을 잠잠히 돌아봤어요. 이 연극은 내 삶과 같습니다.” 배우 손숙 씨(79)가 19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하는 신작 연극 ‘토카타’에 대해 말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3일 그를 만났다. 이탈리아어로 접촉을 뜻하는 ‘토카타’에서 그는 세상과 단절된 노년의 여성을 연기한다. 연출을 맡은 손진책 감독은 “처절한 고립 속에서도 관세음보살의 따스한 눈으로 인생을 보게 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손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던 찬란한 시간이 전부 지나고 홀로 남은 노인이 살아가야만 하는, 즉 나의 이야기”라며 “이름을 걸고 하는 마지막 연극이 될 거라는 생각에 부담이 크다. 연륜이 쌓인다 해서 연기가 쉬워지진 않는다”고 고백했다. 이작품은 손 씨의 연기 인생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고려대 사학과 재학 중 1963년 연극 ‘삼각모자’로 데뷔한 그는 자상한 어머니와 세련되고 냉철한 여인 등 다채로운 배역을 넘나들며 연극계 ‘대모’로 불린다. 출연한 연극만 200편이 넘는다. 연습 전 자신의 대사뿐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까지 모두 외우는 성실함과 탁월한 기억력을 지녀 ‘지적인 배우’로도 유명하다. 그는 다시 하고 싶은 연극으로 1999년 초연된 대표작 ‘어머니’를 꼽았다. ‘엄마를 부탁해’, ‘메리크리스마스, 엄마’ 등을 짚으며 “엄마는 나와 잘 맞고, 잘할 수 있는 배역”이라고 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와 ‘나의 아저씨’, 영화 ‘봄날’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젊은 시청자들이 ‘아이유 할머니’ ‘더 글로리 할머니’라고 불러주는 게 재미있다”며 웃었다. ‘토카타’는 등장인물 3명이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총 4개 ‘악장’으로 이뤄졌다. 뚜렷한 서사도, 화려한 무대장치도 없다. 완만한 파고로 침전과 부유를 반복하는 산문시 같은 대본은 극작가 배삼식이 손 씨를 염두에 두고 썼다. 배 작가는 “연극적 장치 없이 순수한 목소리가 들려지길 원했다. 손숙 씨가 아니면 안 됐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경을 헤매는 중년 남성 역은 배우 김수현(53)이 맡았다. 춤추는 사람 역의 무용수 정영두(49)는 미니멀한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고독을 몸으로 표현한다. 공연은 당초 올해 3월 개막할 예정이었지만 연습실로 향하던 손 씨가 넘어져 엉덩이뼈에 금이 가면서 미뤄졌다. 그는 이후 3개월 동안 걷지 못했다. 제대로 걷기 시작한 건 2개월도 채 안 됐다. 시력이 나빠진 그는 딸이 해 준 녹음을 듣고 또 들으며 대사를 외웠다. “1악장 마지막에 ‘이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다’는 대사가 나와요. 누워 있는 동안 그 대사를 계속 떠올렸어요. 뼈가 붙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니 죽을 맛이더군요. ‘토카타’는 그 고립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그의 오랜 연기 열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어릴 적 경남 밀양에 살았던 그는 할아버지가 구독하던 동아일보의 연재소설을 빠짐없이 읽으며 이야기를 사랑하게 됐다. 고교 시절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이 쓴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접한 경험은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는 “60년 전 데뷔 무대를 앞두고 들떴던 마음을 요즘 새삼 느낀다. 아침마다 연습 갈 생각에 행복하다”고 했다. 연습은 매일 오후 1시부터 길게는 9시까지 이어진다. “연기는 오르고 올라도 끝없는 산처럼 느껴져요. 그러니 내 연기 인생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이에요. 살아 움직이는 한 연기할 거고, 다시 태어나도 무대에 설 겁니다. 훗날 묘비명은 이렇게 써 달라고 딸에게 미리 알려뒀어요. ‘손숙, 열심히 연극하다 간 사람’(웃음).” 다음 달 10일까지, 5만∼7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주한노르웨이대사관이 3일 서울 중구 대사관저에서 김미혜 한양대 연극영화과 명예교수(75·사진)에게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을 수여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23개 희곡 전집을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 번역·출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교수는 “소식을 듣고 벅차서 울음이 터졌다. 내게는 운명과도 같은 과업이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입센 전집을 한국어로 옮기기로 결심한 건 200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입센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그는 “입센은 안톤 체호프와 함께 ‘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대회 27개 참가국 중 한국만 입센에 관한 연구 결과가 없어 부끄러웠다”며 “해외 배송이 쉽지 않던 시절이라 미국 각지의 연극 전문 책방을 돌며 입센 자료를 공수했다”고 말했다. 영어, 독일어로 된 자료로 연구하던 김 교수는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노르웨이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노르웨이어 사전과 독학서를 사왔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총 4300쪽 분량으로 번역한 책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며 “통렬한 문제의식이 담긴 입센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한 희극인 블랙코미디 작품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서구에선 다양한 장르에서 블랙코미디가 사랑받고 있지만 국내에서 블랙코미디는 불모지에 가까웠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바비’는 젠더 이슈를 적나라하면서도 적절한 위트로 웃음을 터지게 해 관객 수는 많지 않지만 꾸준히 팬덤을 다지는 중이다. 비인간적 몸매를 자랑하던 주인공 바비에게 어느날 허벅지 셀룰라이트라는 ‘대재앙’이 닥친다. 문제를 해결하러 현실 세계로 모험을 떠난 바비는 “소녀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던 바비 인형 홍보 문구와 달리 본사 ‘마텔’에 남자 임원만 가득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올해 5월 개봉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 ‘슬픔의 삼각형’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계층과 인종, 외모 권력에 따른 불평등을 냉소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초호화 크루즈선에 탑승한 노부부는 “세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사업을 한다”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사업의 주력 상품은 다름 아닌 수류탄이다. 지난해 제75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스웨덴 출신 감독의 영화지만 5만6000명 넘게 관람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 중에서도 블랙코미디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4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사소한 갈등이 치열한 복수극으로 비화하는 과정을 ‘웃프게’ 그렸다. 현대인의 비틀린 분노와 이민자의 아픈 현실을 꼬집으며 인기를 모았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팀 버턴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는 냉소적 유머를 통해 ‘별종’이란 낙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끔 만들었다는 평가를 국내에서도 받았다. 쿠팡플레이 코미디쇼 ‘SNL 코리아 시즌4’의 코너 중 하나인 ‘MZ오피스’, 중소기업의 열악한 처우를 실감 나게 꼬집은 왓챠 드라마 ‘좋좋소’ 등 현대사회의 면면을 풍자하는 콘텐츠가 MZ세대(밀레니엄+Z세대)를 중심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블랙코미디에 대한 호응은 콘텐츠를 즐기는 개인의 다양한 취향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우리나라는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해 블랙코미디가 자리 잡기 어려웠다. 하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은 통쾌함이 공감을 얻고,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데다 콘텐츠 플랫폼도 다양해지면서 블랙코미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홍수정 영화평론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비꼬는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면서 블랙코미디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암전된 무대. 디지털 시계의 붉은 숫자만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계는 매일 새벽 악몽처럼 반복되는 ‘그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2시 18분에서 째깍거림을 멈춘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예고된 강하에 공포를 느끼듯 “혼령의 경고가 점점 가까워지는” 동안 불안과 초조가 밀물처럼 차올랐고, 한기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최근 막이 오른 서스펜스 연극 ‘2시 22분’은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 보내기에 제격이다. 뮤지컬 ‘시카고’, 연극 ‘레드’ 등을 제작한 신시컴퍼니가 5년 만에 선보인 라이선스 연극 신작이다. 2021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돼 이듬해 영국 뮤지컬상 중 하나인 왓츠온스테이지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작 연극’을 비롯해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등을 번역한 스타 번역가 황석희와 김태훈 연출가가 호흡을 맞췄다. 연극은 매일 오전 2시 22분마다 집 안에 울려 퍼지는 주인 없는 발소리에 관해 등장인물 4명이 나누는 열띤 토론이 주축을 이룬다. 초자연적 현상을 두고 각자의 신념과 논리로 관객을 설득하는 대화는 높은 밀도를 유지하되 현학적이지 않아 몰입도를 높였다. 주인공 제니 역은 배우 아이비와 박지연이, 샘 역은 최영준과 김지철이 맡았다. 아이비는 2010년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로 공연계에 데뷔한 후 13년 만에 처음 연극에 도전했다. 그는 공포에 사로잡혀 극도로 예민해진 캐릭터를 날 선 말투와 눈빛으로 매끄럽게 소화했다. 크고 작은 소리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관객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파열음부터 모든 소리가 멈춘 데서 오는 적막함이 오싹함을 고조시켰다. 물건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등 집 안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일들은 마술사 이은결의 자문을 거쳐 구현했다. 9월 2일까지, 6만∼9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웹툰 작가 주호민(사진)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들을 가르치던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지난해 9월 신고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입장문을 냈다. 주 씨는 2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수업 시간을 녹취한) 녹음에는 단순 훈육이라 보기 힘든 상황이 담겨 있었다”며 “정서적 아동학대는 교육청 자체적으로 판단해 교사를 교체하기가 어렵고, 사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서만 조치가 가능해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주 씨의 아들은 지난해 9월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수업 중 여학생 앞에서 신체 일부를 노출해 특수학급으로 분리됐다. 주 씨는 아들의 돌발행동과 무관한 상황에서 교사가 이를 지적했다고 주장한다. 주 씨는 “(특수교사가) 본인의 수업 시간 중 발생한 일이 아님에도 부적절한 언행을 해 아이가 불안함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아이의 돌발행동에 대해서는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주 씨가 신고한 특수학급 교사 A 씨는 학생을 학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동료 교사라고 밝힌 이가 인터넷에 올린 A 씨의 경위서에 따르면 그는 “받아쓰기 교재 중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라는 표현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업 중 바지를 내린 행동이 고약한 행동이다’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날 주 씨의 자녀는 수업 중 거듭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고, 이를 제지하고자 다소 부정적인 표현을 단호한 어조로 반복적으로 사용했으나 정서적으로 학대하고자 하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고 했다. A 씨는 직위 해제됐고 지난해 12월부터 재판이 진행 중이다. A 씨의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A 씨에 대한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빛은 우리 몸처럼 살아있는 존재예요.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죠. 무대 조명이 파도처럼 물결치고, 무용수의 몸에 닿았다가 흩어지기도 하는 건 이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27∼30일 공연하는 국립현대무용단 ‘몸쓰다’에서 조명 디자인을 맡은 후지모토 다카유키(63·사진)가 말했다. 예술의전당에서 21일 만난 그는 세계적인 멀티미디어 예술집단 덤 타입(Dumb Type)의 원년 멤버이자 일본의 유명 조명 디자이너다. 무용가 안애순이 안무한 ‘몸쓰다’는 몸이 기억을 기록하고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했다. 지난해 초연 당시 전석 매진된 화제작이다. ‘몸쓰다’에서 무용수들은 ‘처한 장소에 따라 달리 반응하는 몸’을 춤으로 표현한다. 무대 바닥을 비롯해 왼쪽과 가운데, 오른쪽의 육중한 무대장치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무용수와 호흡한다. 후지모토는 “변화무쌍한 무대는 이 공연의 매력이자 넘어야 할 허들이었다”며 “움직이는 무대 바닥엔 조명기기를 둘 수 없고, 조명을 수직으로 쏘면 바닥에 빛이 반사되기에 공중에 떠 있는 장치를 고안했다”고 말했다. 일반 공연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는 짙은 보라색 조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보라색을 인식하는 과정은 정말 흥미로워요. 눈이 인식할 수 있는 파장의 양극단, 즉 파랑과 빨강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감각과 경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인식되죠. 이번 공연에서 보라색은 사랑을 뜻하기도 합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다채로운 조명은 그의 무기다. 무대 바닥에 초록, 파랑, 보라색 조명이 부드럽게 퍼지는 장면은 수채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듯하다. 무지개 색 조명이 허공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마지막 3분은 마치 사이키델릭 록음악 같은 황홀감을 선사한다. 그는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오랜 팬이다(웃음). 서양화를 전공해 당시 배운 투명 수채화 기법이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녹아났다”고 말했다. 건축물 등에 사용하는 특수 조명도 활용했다. 고층 빌딩 측면에 가늘게 직진하는 빛을 쏘아 올릴 때 쓰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기기다. 무대바닥과 평행으로 쏜 빛은 누워 있는 무용수에게 가로막혀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레이저보다는 두꺼운 빛을 연출할 수 있고, 눈에 닿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 장점”이라며 “LED 조명은 일반 컬러필터를 쓴 무대조명에 비해 오묘한 색을 표현할 수 있고 전환 속도도 빠르다”고 말했다. 실험적인 조명 연출은 안 안무가와의 “두터운 신뢰”로 빛을 발한다. 둘의 인연은 8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2015년 국립현대무용단 ‘어린 왕자’ 조명 디자인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히어 데어’(2019년), ‘잠시 놀다’(2022년) 등에서 협업했다. 그는 “안 안무가가 구상한 이미지와 내가 만든 조명이 크게 다른 경우가 때때로 있다. 그러나 작품과 잘 어울리면 (안 안무가가) 쿨하게 오케이 하기에 시너지가 난다”며 웃었다. 2만∼5만 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누구나 ‘먹고살겠다’는 이유로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을 때가 있어요. 과연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우리 모두가 품고 살면 좋겠습니다.” 영화 ‘밀수’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50·사진)이 말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6일 그를 만났다. ‘밀수’는 1340만여 명을 모은 영화 ‘베테랑’(2015년)을 비롯해 ‘군함도’(2017년) 등으로 ‘액션영화 스타 감독’이라 불리는 그가 ‘모가디슈’(2021년)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이날 개봉한 ‘밀수’는 올여름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신작을 낼 때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영화는 1970년대 가상의 바닷가 마을 군천에서 벌어진 밀수를 그린다. “먹구살려믄 어디까지 해야 허는 거냐”는 엄 선장(최종원)의 대사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군천에 화학공장이 들어서며 바다가 오염되자 먹고살 방법을 찾던 해녀들은 ‘바닷속 물건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밀수에 가담한다. 류 감독은 “엄 선장의 대사는 스스로도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이다. 특수효과 등 촬영으로 배출된 쓰레기 때문에 괴로웠다. 작품 완성도를 높여 보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해녀들과 다방 여주인 옥분(고민시)의 ‘워맨스’(우먼+로맨스)가 서사의 기틀을 이룬다. 육지라면 해녀들이 남성 밀수꾼들과 육탄전을 벌이기 어렵지만 그들의 홈그라운드인 바다에선 훨씬 유리하다. 주인공 해녀 춘자와 진숙을 김혜수와 염정아가 맡아 주목을 받았다. 류 감독은 “두 배우의 오랜 팬이다. 함께 작업하게 돼 꿈을 이뤘다. 김혜수 씨의 연기가 뜨겁고 공격적이라면 염정아 씨는 차갑고 수비적이라 조화가 잘 맞았다”고 했다. “배역 제안서와 바다 영상을 보여줬더니 둘 다 멍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염정아 씨는 수영을 못해서, 김혜수 씨는 물 공포증 때문에 공황장애가 온 거였어요. 영화가 엎어질 수도 있겠다고 걱정하던 차에 ‘일단 해보겠다’는 답이 왔죠. 마치 주부노래교실처럼 서로 북돋는 촬영장 분위기 덕에 결국 모두가 해냈습니다.(웃음)” 해녀들이 장비 없이 맨몸으로 펼치는 수중 액션신은 절로 숨을 참게 만드는 영화의 백미다. 지상 액션과 달리 상하좌우로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수심 6m 수조에서 촬영했다. 류 감독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액션을 만들려 했다”며 “국가대표 출신 김희진 코치가 이끄는 아티스틱(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팀으로부터 기술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조인성과 박정민이 활약하는 지상 액션도 눈길을 끈다. 류 감독은 “호텔 방에서 벌어지는 조인성의 ‘폼 나는’ 장면과 깡패들의 패싸움인 박정민의 액션을 통해 각 캐릭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쇼트폼의 대표 플랫폼인 틱톡은 영상매체가 아닙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죠. 인기 크리에이터들은 단 15초 만에 시청자를 사로잡습니다. 쇼트폼의 화법을 모르면 이들을 이길 수 없어요.”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18일 만난 박창우 순이엔티 대표(사진)가 말했다. 순이엔티는 국내외 쇼트폼 콘텐츠 시장에서 선두권에 있는 쇼트폼 비즈니스 기업이다. 전속 크리에이터 170여 명의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광고 집행도 돕는다. 틱톡 팔로어 수가 블랙핑크(4530만 명)보다 많은 원정맨(5610만 명)이 순이엔티 소속이다. 시아지우(2770만 명) 등 국내 틱토커 외에도 멕시코 출신 도멜리파(Domelipa·6740만 명), 독일 출신 유네스 자루(Youneszarou·5300만 명) 등 해외 유명 틱토커들이 속해 있다. 박 대표는 ‘성공하는 쇼트폼의 비결’로 따라 하기, 성실함, 소통 등 3가지를 꼽았다. 그는 “쇼트폼의 세계에선 ‘따라 하기’가 표절이 아닌 문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춤, 밈(meme) 등 지금 가장 유행하는 것을 따라 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로 ‘곧 죽어도 영상은 올리는’ 성실함이다. 매일 꾸준히 올려야 플랫폼 이용자들과 접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댓글 등을 통해 팔로어들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뜨고 있는 크리에이터를 스타로 키우는 게 저희 회사의 역할이에요. 영상 몇 초쯤 조회수가 터졌는지, 어떤 국가와 연령대에서 인기인지 등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해 활용합니다.” 그는 가까운 시일 내 쇼트폼이 영화, 드라마처럼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초반에는 국내 틱톡 이용자 대부분이 초등학생이었다면 이젠 중장년층까지 확대된 상태”라며 “해외에선 TV를 시청하듯 쇼트폼을 ‘틀어 놓고’ 보기에 세계적으로 입지가 공고해지고 있다”고 했다. 말 중심인 유튜브 등과 달리 춤과 노래를 위주로 한 쇼트폼은 언어 장벽이 낮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았다. 순이엔티는 소속 크리에이터들이 더 많은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여러 장르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뮤지컬 ‘레딕스―십계’ ‘미션’ 등을 기획한 공연계 출신인 박 대표는 “최근 뮤지컬 ‘삼총사’ 투자를 확정했고, 영화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과 영화 제작도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미니 2집 발매를 맞아 새로워진 ‘뉴진스 토끼’가 세계 각지에 등장한다. 그동안 토끼 캐릭터를 내세운 커버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던 뉴진스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와 손잡고 다시금 토끼를 활용해 홍보에 나선 것. 스포티파이는 뉴진스의 ‘Get Up’ 발매를 기념해 ‘버니랜드’ 캠페인을 벌인다고 26일 밝혔다. 서울 종로구 낙원악기상가에선 오프라인 팝업 공간이 28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운영된다. 뉴진스의 새로운 토끼 캐릭터 ‘버니니’를 활용한 아케이드 게임 공간과 야외 루프탑 ‘버니해변’ 등으로 구성됐다. 뉴진스 음악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미국 시카고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도 팝업 행사가 열린다. 아시아 각지에서 뉴진스 토끼 조형물도 만나볼 수 있다. 스포티파이 헤드폰을 착용한 모습의 ‘스포티버니니(스포티파이+버니니)’가 일본 도쿄, 필리핀 마닐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에 대형 조형물로 설치됐다. 서울에선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다음달 3일까지 운영되며 방문객은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인증샷 이벤트도 참여할 수 있다. 스포티파이 이용자를 위한 온라인 행사도 진행된다. 스포티파이는 28일 ‘버니랜드 마이크로사이트’를 개설해 뉴진스 멤버들이 큐레이션한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한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음악 취향을 바탕으로 뉴진스 ‘히어로’ 멤버를 확인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할 수 있다. 뉴진스와의 인터뷰 등을 담은 다양한 콘텐츠도 선보일 예정이다. 뉴진스는 “스포티파이와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팬들에게 뉴진스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국미래문화예술포럼(대표 김혜경)과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31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미래 청년예술세대 일자리 창출과 방안 모색’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에서는 김혜경 대표가 ‘K컬처를 위한 미래 청년세대들의 살아남기’를 주제로 발표한다. 시각예술가 신민준(예술대학생네트워크 활동가)이 ‘문화예술계인력 관련 진흥 법제의 필요성’, 김종덕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문화예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 방향성 제안’, 박남희 홍익대 대학원 교수(전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가 ‘공공기관의 지원방식을 넘어 창작 시스템의 제도적 개선’, 송인호 굿스테이지 발행인이 ‘오페라 300 제작 프로젝트로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토론을 맡는다. 김혜경 대표는 “청년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면서 문화강국을 향한 한 단계 높은 실천방안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 포럼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휴가가 절정에 이르는 8월부터 선선한 날씨에 야외에서 공연을 즐기기 좋은 9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음악 축제가 열린다. 음악은 같이 부르고 춤추며 즐겨야 제 맛. 대형 야외 음악 페스티벌부터 이색 페스티벌까지 다양한 음악 축제가 펼쳐져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2006년 시작한 국내 대표 여름 야외 음악 축제인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 다음 달 4일부터 6일까지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다.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 관계자는 “축제 첫해에 주요 가수로 무대에 올랐던 미국 밴드 스트록스가 17년 만에 다시 출연한다는 점이 올해 축제의 큰 특징”이라고 했다. 일본 밴드 엘르가든, 김창완 밴드가 주축을 이룬다. 다음 달 11∼13일 전북 전주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리는 ‘전주얼티밋뮤직페스티벌’에선 밴드 크라잉넛, 넬 등이 무대를 달군다. 9월 2, 3일 서울 마포구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리는 ‘렛츠락 페스티벌’에는 국가스텐, 자우림 등이 참가한다. 이색 페스티벌도 눈에 띈다. 다음 달 25일부터 9월 3일까지 열흘간 부산 전역에서는 제1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열린다. 페스티벌 측 관계자는 “TV 코미디프로그램이 폐지돼 설자리를 잃은 개그맨들이 유튜브로 주 활동 무대를 옮긴 가운데, 팬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적었던 개그맨들이 팬들과 만난다”고 말했다. 유튜브 쇼트폼 콘텐츠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사랑받는 ‘숏박스’(김원훈 조진세 엄지윤)팀, ‘뚱시경’이란 부캐로 화제가 된 나선욱이 개그 공연을 펼친다. 개막식에는 일본 호스트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다나카(본명 김경욱)도 참가한다. 자연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도 있다. 9월 15∼17일 경기 용인에서 열리는 ‘더 그레이트풀 캠프 2023’은 숲속에서 2박 3일간 야영하며 인디밴드의 공연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9월 9, 10일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선 서해안의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곽윤찬 트리오, 허소영 밴드 등 재즈 음악가들의 선율을 즐기는 ‘제2회 선셋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해외 음악을 즐기고 싶다면 광주와 강원 철원군을 주목하자. 다음 달 25∼27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일대에서 열리는 ‘ACC 월드뮤직페스티벌’에선 국내외 30여 개 팀이 음악을 선보인다. 스페인 전통 타악기인 찰라파르타를 연주하는 4인조 밴드, 내전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세르비아 출신 밴드 등의 평소 듣기 쉽지 않은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9월 2, 3일 철원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는 독일, 시리아, 콜롬비아 등 10개국 출신의 가수 26팀이 무대에 선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는 “엔데믹 이후 이색 주제를 앞세운 페스티벌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장르별, 지역별 다양성이 강화됐다”며 “관객들은 자신의 취향과 축제별 특징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끈적한 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여름밤, 아파트 단지의 매미는 해가 떨어진 후에도 오래도록 목청이 떠나가라 운다. 매미가 울자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던 까마귀도 덩달아 흥분해 울어댄다. 원래 매미는 밤이 오면 울음을 그치지 않았던가. 생명과학자인 저자는 ‘요즘 매미’는 다르다고 말한다. 밤이 돼도 환한 불빛 탓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재미난 과학 이야기를 편지글 형태로 담았다. 일본 미쓰비시화성생명과학연구소 주임 연구원으로 일했던 저자는 30년 넘게 병마와 싸워 이긴 후 자연과 생명에 경외감을 느꼈다.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감수성을 길러 과학하는 마음을 갖게 하자”고 주장한 데 공감하며 쓴 에세이다. 35편의 편지는 진화론과 유전학 등 과학적 담론을 구체적인 사례로 쉽게 풀어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가뭄이 지속된 1977년, 먹이가 부족해지자 핀치 중 평균 부리 길이가 약 1㎜ 짧은 새는 먹이인 씨앗을 충분히 뚫고 들어가지 못해 죽었고(자연선택), 인간을 비롯한 다세포 생물은 생존에 불리한 세포를 사라지게 하려고 세포에게 자살 명령을 내리는 현상(아포토시스) 등을 다정하게 묻고 답한다.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지만 성인도 흥미롭게 읽게 된다. 저자는 “어른이 되면서 점차 ‘감탄하는 감성’을 잃는다. 그러나 세상은 감탄할 것들로 가득하다”며 “자연과 생명에 감탄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