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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회고전을 기억하시나요? 사전 예약에만 20만 명이 몰리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죠. 그 전시가 열렸던 레익스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네덜란드 작가인 프란스 할스 회고전이 개막 2주 만에 12만 명이 관람하며 화제였습니다. 할스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와 함께 네덜란드 17세기 미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힙니다. 할스의 전시를 보고 레익스미술관 큐레이터인 프리소 라메르처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사진 이전에 ‘움직임’을 담다전시를 여는 작품은 ‘즐거운 술꾼’입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달아오른 남자가 술잔을 앞으로 쑥 내밀며 ‘너도 한잔해’ 하고 말을 거는 듯합니다. 주인공의 권위를 과시하려 애쓰는 어떤 초상화들과 달리, 할스의 작품은 이렇게 친근함이 돋보입니다. 할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메르처는 페르메이르가 ‘고요함’의 화가라면 할스는 ‘움직임’의 화가라고 말합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다면 할스는 정반대로 역동성이 돋보입니다. 이를테면 할스의 그림에서 측면으로 고개를 돌린 인물은 1초 뒤에 우리를 쳐다볼 것만 같죠. 이런 그림이 얼마나 새로웠는지를 요즘처럼 사진이나 영상이 흔한 시대에는 느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정반대인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세계적 사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20세기 초반 레익스미술관장이었던 프레데리크 슈미트데헤너르가 페르메이르를 ‘2급 작가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던 걸 생각하면, 시대에 따라 취향이 변한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취향도 바뀔 수 있겠죠. 어쨌든 할스의 놀라운 점은 사진이 발명되기 전 이미 그가 ‘스냅숏’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알기 위해 우리는 17세기의 맥락에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죠.” 그렇다면 할스의 이런 그림들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이것은 당시 네덜란드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연관됩니다.가장 진보했던 네덜란드 미술보통 미술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아카데미’ 미술에서는 역사화나 종교화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17세기를 전후한 네덜란드 미술에서는 이보다 상인들이 주문한 초상화나 바다와 자연을 그린 풍경화, 또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과일을 담은 정물화가 유행했습니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할스의 여러 초상은 보통 결혼 등의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해 의뢰로 그려진 것입니다. 카메라가 지금처럼 흔해지기 전에는 현대인들도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처럼 말이죠.할스의 초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부유한 상인입니다. 왕이나 성직자, 귀족이 아닌데도 그림을 주문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플랑드르 지역의 발달한 상업과 종교개혁 이후 종교화를 그리지 않게 된 시대적 배경이 작용합니다. 덕분에 네덜란드 일대에서는 ‘미술 시장’이 빨리 발달했고, 화가들은 주문받지 않고도 정물화나 풍경화 등 인기 있는 주제를 그려 시장에 팔았습니다. 이런 진보한 미술의 가치는 19세기 인상파 화가와 평론가에게 재발견됩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라메르처는 할스가 인상파 화가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할스의 그림을 재발견한) 프랑스의 19세기 평론가 겸 기자 테오필 토레뷔르거(1807∼1869)는 17세기 네덜란드가 프랑스 공화국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또 빈센트 반 고흐는 할스의 그림이 ‘길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을 이상화하거나 종교적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그려 더욱 아름답다’고 칭송했습니다.” 즉, 할스의 그림이 보여준 현실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공화국이 탄생하는 19세기 말 프랑스가 갈망했던 것입니다. 인상파 작가들은 신화나 종교적 상징을 담은 아카데미 미술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할스와 네덜란드 그림이 훨씬 아름답다고 여겼죠. 라메르처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유모와 함께 있는 카타리나 호프트’를 꼽았는데요. 그는 “아기가 입은 굉장히 화려한 옷에서 할스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지만,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기의 생생한 손짓”이라고 했습니다. “아기와 유모의 부드러운 미소와 시선은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아기가 뻗은 손은 유모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여요. 아기들은 실제로 저런 행동을 하잖아요. 아기의 옷은 오래전인 17세기 것이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손짓은 지금도 이어지는 것이기에 감동을 줍니다.” 그와의 대화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은 사람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단체 초상화에서 남성들이 뽐내는 모습까지도 모든 것이 너무나 인간적”이라며 “이런 요소로 우리는 오래전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백 수천 년 전 작품 앞에 서면 처음엔 내가 작아지는 걸 느낍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에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이 있고, 내가 죽은 뒤에도 그게 이어질 거라 생각하면 나 역시 그 위대한 흐름에 속한 큰 존재임을 느낍니다. 미술사의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 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페로탕 서울은 2016년 서울에 진출한 후 두 번째 한국 작가 전시로 1월 25일부터 이상남 작가의 개인전 ‘마음의 형태(Forme d’esprit)’를 열고 있다. 전시는 1981년 작가가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후 1990년대부터 2023년까지 작업해 온 회화 13점을 선보인다. 이전 한국 작가 전시는 2019년 박가희의 ‘We Used to be Fish’였다. 전시장 입구엔 단색 화면에 검은 선으로 기호를 그려 넣은 1990년대 작품 4점이 자리한다. 이들 그림은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여러 가지 기호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점차 복잡해지고 색채도 다채로워진다. 다만 작가는 그림 속 기호들이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기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특히 아크릴 물감이 재료인 그림인데도 시트지를 붙인 것 같은 매끄러운 표면이 독특하다. 이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밑그림을 만든 뒤 물감을 칠하고 옻을 입히며 사포로 문지르는 여러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물질 그 자체와 내가 하나가 되어 수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가한 이상남의 작업은 단색화와 달리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다양한 컬러와 기계적인 매끈한 표면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3월 16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22년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열었던 미국 작가 이안 쳉(40)이 신작 ‘사우전드 라이브스’로 한국을 찾았다. 작품은 서울 강남구 글래드스톤 갤러리 서울에서 23일 개막한 동명의 개인전에서 공개됐다. 이번 작품은 전작 ‘BOB 이후의 삶’의 주인공인 챌리스가 키우는 거북이 ‘사우전드’의 일상을 보여준다. 역시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영상 작업인데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 모델을 이용해 만든 가상현실 속 거북이의 삶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영상 속 거북이는 집 안 사물들과 부딪치며 자신에게 해가 되는 물건과 득이 되는 것을 일종의 ‘딥 러닝’으로 배우며 진화한다. 그러다 거북이가 죽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이전에 배운 지식의 20%를 갖고 다시 태어나 배움을 반복한다. 이렇게 무한대로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사우전드 라이브스(천 개의 삶)’라는 제목을 달았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이전 작업에서도 비디오 게임 설계, 인지 과학 등 여러 기술을 활용했던 작가는 “기술로 현실보다 더 강한 버전의 ‘나’를 만남으로써 관객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감성을 불어넣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는 ‘사우전드 라이브스’와 전작 ‘BOB 이후의 삶’ 등 영상 작품 2점을 볼 수 있다. 4월 13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권 사진 같은 인물 초상 연작, 인터넷 데이터를 편집한 이미지, 우주의 별까지…. 사진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온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사진)가 이번엔 16세 청소년 때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21일 서울 종로구 PKM 갤러리에서 그가 발표한 ‘d.o.pe.’ 시리즈가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d.o.pe.’ 연작은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낸 프랙털(fractal·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되풀이되는 구조) 패턴을 변형해 만든 그래픽 이미지를 담고 있다. 독특한 것은 이 이미지를 인화지가 아닌 벨루어 카펫에 프린트했다는 점이다. 이날 갤러리에서 만난 토마스 루프는 “프랙털 구조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느낌이 종이에서는 살아나지 않아 고민하다 벨기에의 카펫 회사에 의뢰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최장 290㎝ 길이의 카펫에 펼쳐지는 패턴들은 섬유의 부드러운 느낌에 화려한 색감을 더해 보는 즐거움이 충분하다. 제목 ‘d.o.pe.’는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에서 따온 것으로, 인간이 화학적 촉매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이는 그가 16세 때 친구들과 소파에 앉아 핑크 플로이드 등의 음악을 들으면서 사이키델릭(환각적인)한 이미지를 보고 공상에 빠졌던 경험에서 출발했다. 그는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전날 한국에 도착해 시차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음에도 스스로는 잠을 잔다고 믿었기에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음을 예로 들었다. 이처럼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인간의 상상과 인식으로는 한계 없이 가능한 현상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 그는 “만약 우리가 뇌의 주어진 기능의 100%를 쓴다면 하늘을 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부드러운 카펫 위에 깊은 황홀경처럼 펼쳐지는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현실 너머 다른 차원의 세계로 뛰어들어 보라고 권한다. 루프는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거장 베른트 베허(1931∼2007)로부터 사진을 배운 뒤 1980년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칸디다 회퍼와 함께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다. 한국에서는 2004년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 후 20년 만에 첫 개인전이다. 4월 13일까지. 무료.김민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이 팬데믹 이전 규모를 회복해 돌아온다. 3월 26∼30일 완차이구의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 2024’에는 40개국 243개 갤러리가 참가한다. 이는 지난해 177개 갤러리보다 37% 증가한 것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20일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아트바젤 홍콩 디렉터 앤젤 시양러는 “지난해 3월에는 개막 한 달 전 호텔 7일 격리가 해제됐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갤러리들의 참여가 어려웠다”며 “올해는 아시아 전역의 방역 조치가 해제돼 진정한 의미의 ‘포스트 팬데믹’ 아트페어가 될 것”이라고 했다. 팬데믹은 지나갔지만 글로벌 경제 상황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미술 시장에도 불황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에 대해 시양러는 “지난해에도 사정은 비슷했지만 3월 홍콩에서 시작해 6월 스위스 바젤,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고 무엇보다 12월 미국 마이애미 비치 에디션에서 몇몇 갤러리들은 역대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해 올해에도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특히 유럽과 미국 등 서구 갤러리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시양러는 “2023년에는 페어 개막 한 달 전 격리가 해제돼 서구 갤러리와 컬렉터가 홍콩을 찾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갤러리는 물론이고, VIP들이 묵는 호텔 예약 상황을 봐도 컬렉터의 관심 역시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여러 미술 주체를 후원하는 데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홍콩 정부의 문화 산업 지원 등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3월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수년간 아시아에는 프리즈 서울을 비롯해 아트 싱가포르, 도쿄 겐다이 등 새로운 아트페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시양러는 “아시아 미술 시장은 아직 성장의 여지가 많아 경쟁보다 관심이 확산하는 효과가 날 것으로 본다”며 “더불어 퀄리티 있는 국제적 행사를 아시아에서 치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최근 아트바젤은 VIP를 대상으로 한 현지 갤러리 투어 프로그램인 ‘아트 위크 도쿄’, ‘싱가포르 아트 위크’ 등을 개최하며 홍콩 외의 도시와도 접점을 늘리고 있다. 올해에는 1, 2월 중국 광저우와 상하이에서 디지털 아트, 다완취(Greater Bay Area) 예술 생태계에 관한 토크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아트바젤 홍콩과 직접 연계된 프로그램이 홍콩 밖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양러는 “이러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다른 아시아 도시에서도 이어갈 예정”이라며 “한국에도 알맞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개최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새 미술 전시가 개막하는 현장이면 늘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미술 전시와 관련된 자료는 모두 수집하고, 그 자료를 모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차린 김달진 관장이다. ‘미술계 넝마주이’, ‘움직이는 미술 자료실’ 등 별명을 가진 그가 어떻게 미술 자료 수집을 시작하고 공유하게 되었는지 사연을 담은 에세이가 출간됐다. ‘김달진, 한국 미술 아키비스트’(빛나래·사진)는 미술저술가 김재희가 김 관장을 16차례 인터뷰하고 그의 일기를 읽고 써낸 책이다. 1부 수집, 2부 공유로 나눠진 책은 전반부는 김 관장이 자료 수집을 하게 된 과정을, 후반부는 그가 국립현대미술관을 그만두고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연 시기 이후를 다룬다. 시골에서 궁핍하게 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김 관장은 어릴 때부터 껌 상표, 우표 등을 수집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그러다 헌책방에서 그림엽서와 화집을 스크랩해 ‘서양미술전집’을 만들면서 미술 자료 수집에 눈을 떴다. 김 관장은 “집요하게 자료를 모은 다음 이것을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는 박물관을 통해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연결고리를 맺을 수 있었다”며 “밤하늘의 무수한 별 중 일등별만이 아니라 이등별, 삼등별 자료도 남겨야 우리 미술계가 풍부해진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언제나 현재의 나에 대한 의심과 사실에 대한 궁금증으로 계속된다. 그것은 삶에 대한 지속적인 의심이며 호기심이다.” 역사와 도시 풍경 등 다양한 소재를 ‘개인의 경험’이란 관점에서 풀어나가고 있는 작가 서용선(73)의 작품이 서울의 미술관과 갤러리 여러 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서 먼저 선보였던 ‘암태도 소작항쟁’ 연작이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전시되고 있는가 하면, 나무로 조각한 인물상은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 단체전에서 볼 수 있다. 이 밖에 도시 풍경과 자화상도 갤러리 전시에 출품됐다.●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 서용선은 ‘단종 애사’를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문자로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구전으로 내려온 단종에 얽힌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회화로 그려 왔고 이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용선을 ‘역사 화가’로 보기도 하는데, 그는 “역사 자체를 기록하기보다 그것에 얽힌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문화비축기지의 ‘서용선 프로젝트: 암태도’전 작품들은 그의 말처럼 역사를 사건 중심이 아니라 그것에 얽혔던 사람들의 감정과 내면을 조명한다. 암태도 소작 항쟁은 1923∼1924년 일제강점기 소작료를 낮춰 달라는 요구가 묵살되자 농민 500여 명이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 항의하고 단식 투쟁으로까지 이어진 항일운동을 말한다. 문화비축기지 T5이야기관, T6영상미디어관, T6문화아카이브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에서는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갔던 농민들의 결연한 표정과 구호가 더 생생하게 묘사되거나, 항쟁 주도자인 서태석의 비극적 결말이 강조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농민들이 항일운동에 나선 계기가 된 3·1운동과 동학농민운동을 담은 작품도 제시해 하나의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서용선 프로젝트: 암태도’전은 5월 5일까지 열린다. 서용선은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그리는 것은 “나를 형성시킨 과정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림을 그리는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 내가 속한 사회와 과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이러한 그의 탐구는 도시 풍경과 자화상으로 이어진다.● 도시 풍경과 자화상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그룹전 ‘타임 랩스: 어느 시간에 탑승하시겠습니까?’에서는 서용선의 ‘숙명여대역 07-09시’(1991년), ‘보는 사람들’(1991년), ‘브루클린’(2023년) 등 도시 연작을 볼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작품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서울이 개발로 급속하게 도시로 변하는 과정에서 보인 풍경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아낸 작가의 주요 작품 중 하나다. ‘브루클린’은 작가가 직접 해외 도시를 방문하고 느낀 감각을 담았다. 전시는 3월 13일까지 열린다. 이렇게 역사와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서용선 개인전 ‘나를 그린다’에선 1995년부터 2024년까지 그린 자화상 30여 점을 볼 수 있다. 또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 그룹전 ‘용 龍·用·勇’은 서용선을 비롯해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작업에 전념한 70대 작가 김을 김주호 김진열의 작품을 소개한다. 각각 3월 17일, 24일까지. 모든 전시는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늘은 강원 강릉시에 2월 14일 새롭게 개관한 ‘솔올미술관’을 직접 다녀온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솔올미술관은 강릉시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도심지의 해발 62m 작은 산 위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인근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시행사가 이곳의 공원과 미술관을 조성했고, 올해 하반기 강릉시에 기부채납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솔올미술관은 강릉시에서 운영하는 공공미술관이 되는데, 운영 주체 간 갈등이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미술관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또 그 안의 콘텐츠는 어떻게 채워질지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합니다.‘마이어 파트너스’ 설계 아담한 미술관우선 솔올미술관은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 게티센터 등을 설계하고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리처드 마이어가 설립했던 ‘마이어 파트너스’에서 설계를 맡아 관심을 모았습니다.다만 리처드 마이어는 2021년 은퇴했고 ‘마이어 파트너스’는 그와 함께 일했던 건축가들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이어는 2018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 성폭력이 폭로된 후 ‘리처드 마이어 앤드 파트너스’에서 은퇴했고, 이 설계사무소는 2021년 ‘마이어 파트너스’로 재구성됩니다.그렇게 마이어가 빠진 설계사무소 ‘마이어 파트너스’가 재단장을 하고 처음으로 완성해 공개한 미술관 프로젝트가 솔올미술관입니다. 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전체면적 3221.76㎡ 규모로, 이 중 전시 공간은 1층 전시실 1(288㎡), 2층 전시실 2(메인 전시실+ 다용도 전시실, 629㎡), 전시실 3(135㎡)으로 총 1052㎡ 넓이입니다. 전시 공간만 보면 서울 삼청동의 대형 갤러리와 비슷한 아담한 미술관입니다.기자간담회에는 마이어 파트너스의 연덕호 대표가 참석해 건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미술관 전시 작품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건축물 자체가 완벽한 조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건축물이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는 동시에 예술 작품과 상호작용하기를 바랐다”고 말했습니다.특히 “내부 공간과 주변 환경이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하게 하는 것이 우리 회사에 깊이 자리 잡은 중요한 디자인 철학”이라고 했는데요. 백색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해서 건물이 조경의 일부로 삽입된 ‘묵직한 조형물’처럼 보이기를 의도했다고 합니다.또 기하학적 형태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백색 콘크리트,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또 유리 통창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외부 조경을 장식적인 요소로 활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특히 미술관이 높은 부지에 있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곳곳에 강릉 도심과 미술관 1층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공간이 마련된 것이 돋보입니다.루치오 폰타나와 공간주의이렇게 만들어진 미술관의 개관 전시는 ‘루치오 폰타나: 공간, 기다림’과 ‘인 다이얼로그: 곽인식’전이었습니다. 1·2층 두 전시관은 폰타나 작품, 2층 한 전시관은 곽인식의 작품으로 채워진 소규모 전시인데, 하이라이트는 2층 전시실 2에서 만날 수 있는 폰타나의 공간연작이었습니다.캔버스를 찢거나 구멍을 낸 작품으로 잘 알려진 폰타나는 회화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작가입니다. 미술의 역사에서 회화가 현실 속 대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런 캔버스에 구멍을 내면서 ‘캔버스도 물질일 뿐’임을 보여주어 미술의 역사에 남았습니다.폰타나는 20·30대 때는 조각 작품을 하다가, 40대부터 이런 미술의 새로운 개념을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된 작품들이 바로 공간연작입니다. 공간 연작은 1947년 폰타나가 ‘공간주의 - 제1차 공간주의 선언’을 하고 난 뒤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우선 공간주의에서 폰타나가 주장한 바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예술은 행위로서 영원하지만 물질적으로는 수명을 다 할 것이다. (…) 우리는 영원이라는 감각을 해방시키기 위해 미술을 물질에서 분리하고자 한다. 수행된 행위가 한 순간에 불과하든 천 년 동안 생명을 이어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행위가 수행됐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원하다.”즉 캔버스 위에 그려진 물질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사람의 ‘행위’가 행해졌다는 것 자체로 영원하다고 폰타나는 말하고 있는데요. 이 말에 비추어보면 찢어진 캔버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칼로 찢어낸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폰타나는 공간 연작에서 캔버스를 벗어나 가벽과 빛을 활용해 3차원 공간 위에 조형 언어를 그려 넣습니다. ‘검은 빛의 공간 환경’, ‘네온이 있는 공간 환경’ 등은 1940~1960년대 작품으로 빛과 시각 효과를 활용해 인기를 끈 올라퍼 엘리아슨보다 훨씬 앞섰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 역시 선을 그리는 작가의 제스처를 강조한 작품으로,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하드웨어는 있는데, 소프트웨어는…?그러나 이날 기자간담회는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의 작심 발언으로, 미술관을 현재 운영하는 한국근현대미술재단(이사장 박명자)과 향후 운영하게 될 강릉시와의 갈등이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김 관장은 다음 전시가 마무리되는 8월이면 미술관 운영에서 손을 뗍니다. 기부채납 절차가 마무리되면 강릉시 산하 강릉아트센터에서 이관받아, 강릉시립미술관의 형태로 운영합니다. 솔올미술관이 ‘세계미술과 한국미술을 연결하겠다’는 포부로 개관했지만 사실상 8월 이후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이에 관해 운영 주체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건지, 향후 운영 과정에 대해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질문이 나왔고 김석모 관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강릉시가 어떤 미술관을 운영하겠다는 청사진을 공유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드릴 의사가 있다. 시 쪽에서도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그러한 정보들이 충분하게 공유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답답한 상황이다.”그러면서 “대한민국 미술계가 우리 미술관 때문에 들썩이고 있는데 단 한 군데 들썩이지 않는 곳이 바로 강릉시청”이라는 작심 발언까지 나왔습니다.강릉시와 한국근현대미술재단 사이에 어떤 의견 차이가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날 간담회에서는 미술관의 ‘작품 소장 계획’에 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김석모 관장은 “미술관에는 아무 작품이 아니라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작품을 소장해야 한다”며 “사실 여기 있는 폰타나 작품을 다 합치면 이 건물의 몇 배가 넘는 가격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각 지자체 재정 규모가 다르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중요한 작품은 현실적으로 소장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며 오히려 ‘소장품 없는 미술관’을 통해 유연한 운영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이와 관련해 강릉시 관계자는 다른 입장입니다.“기부채납이 완료되면 강릉아트센터에서 운영하게 될 것이지만 기부채납이 완료되는 시기가 불투명하다. 10~11월로 예상되니 마무리되면 내년부터 전시를 정상적으로 열 것이고, 현재 있는 강릉시립미술관과 본관·분관 체제로 운영할지, 또 관장은 지자체 공무원이 겸임할지 선발할지 검토 중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 미술관과 충분히 소통했다.”그러면서 작품 소장과 연구 등 미술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미술관의 운명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날 해프닝은 ‘미술관 건물은 잘 짓지만 소프트웨어는 없다’는 한국 미술계의 오래된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수 년간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미술관을 짓는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이는 대부분 ‘건물 짓기’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그러나 미술관은 그 안에 소장품, 작품 연구, 전시 기획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건물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솔올미술관 역시 멋진 건물이 작품을 맞이할 준비는 마쳤지만, 그곳의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이 비영어권 시리즈물 중 가장 많은 시청 횟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는 21일 ‘살인자ㅇ난감’이 12∼18일 550만 시청 수(views·시청시간을 재생시간으로 나눈 값)로,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일주일 전 2위에서 1위로 올라선 것이다. 국가별로는 한국,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10개국에서 ‘살인자ㅇ난감’의 시청 수가 1위였고 43개국에서 10위 안에 포함됐다.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이 드라마는 악인을 감별하는 능력을 우연히 발견해 살인자가 된 이탕(최우식)과 그를 쫓는 형사 장난감(손석구)의 이야기를 그린 8부작 범죄 스릴러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미술과 세계 미술을 연결하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강원 강릉 솔올미술관의 모습이 19일 언론에 공개됐다. 솔올미술관은 강릉시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도심지인 교동 작은 언덕 위에 들어섰다. 백색 노출 콘크리트, 흰색 알루미늄, 유리를 주재료로 한 건축물은 세계 유명 건축가인 리처드 마이어가 설립한 설계사무소 ‘마이어 파트너스’가 맡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14일 개관한 미술관은 개관전으로 공간주의를 창시한 루초 폰타나의 국내 첫 전시인 ‘루초 폰타나: 공간·기다림’과 ‘In Dialog: 곽인식’전을 4월 14일까지 개최한다.● ‘마이어 파트너스’ 설계 첫 미술관 솔올미술관은 강릉시 교동7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62m 높이에 건립돼 진입로를 따라 서서히 걸어가면 백색 미술관의 모습이 등장하도록 만들어졌다. 미술관 주변으로 교동7공원 산을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놀이터도 조성 중이다. 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에 연면적 3221.76㎡ 규모다. 이 중 전시장은 1층에 한 곳, 2층 두 곳의 1052㎡ 넓이로 아담하다. 19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연덕호 마이어 파트너스 파트너는 “건축물이 그 자체로 조형이 되고 관객에게 감동을 주며 예술 작품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단순한 형태이지만 내·외부 형태에서 의도하지 않은 감동을 발견하도록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북쪽으로 웅장하게 뻗어 나간 2층 전시실의 끝으로 가면 통창으로 외부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미술관의 높은 위치를 활용해 강릉 시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공간이 여럿 마련되어 있으며, 2층에서 중앙 파빌리온의 카페가 내려다보이는 구성도 흥미롭다. 솔올미술관은 ‘리처드 마이어 앤드 파트너스’가 2021년 ‘마이어 파트너스’로 재구성된 뒤 처음으로 완성해 공개한 미술관 프로젝트다. ‘백색 노출 콘크리트’가 시그니처인 리처드 마이어는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 게티센터 등을 설계하고 프리츠커상을 수상했지만 2021년 은퇴했다. 리처드 마이어와 30여 년간 함께 일한 연덕호 파트너는 현재 마이어 파트너스의 대표이자 리드 디자이너를 맡고 있다. ● 하반기부터는 강릉시에서 운영 건축물이 유명 설계사무소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지고, 개관전 역시 해외 미술사 주요 작가인 루초 폰타나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솔올미술관은 개관 전부터 미술계의 관심을 모았다. 미술관과 공원 부지는 강릉시 소유이며, 건축물은 올해 8월 이후 시에 기부채납되면서 솔올미술관은 공공미술관이 될 예정이다. 미술관과 전시공간 위탁 운영은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이사장 박명자) 소속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이 맡고 있다. 김 관장은 “강릉에서 좋은 미술관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수도권 밖에서도 가능하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퀄리티 있는 전시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반기 운영 주체가 강릉시로 이관되기 때문에 8월이면 김 관장은 미술관 운영에서 손을 뗀다. 김 관장은 간담회에서 “강릉시가 운영 청사진을 갖고 있다면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돕겠지만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강릉시 관계자는 “솔올미술관 건축물은 하반기부터 강릉아트센터에서 시립미술관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강릉=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내가 글을 쓰려면 당신이 필요해… 내겐 당신의 편지만이 옷을 입혀줘. 나는 벌거벗은 느낌이고, 우편 수송기가 당신의 편지를 쏟아놓고 가면 온종일 화려한 실크를 걸치고 있지. 시종처럼, 기사처럼, 왕자처럼….’ 1944년 1월 1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알제리에서 미국 뉴욕에 있는 연인 콘수엘로에게 보낸 편지다. 1930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생텍쥐페리가 비행 중 실종된 1944년까지 15년간 주고받은 편지 168통을 모은 책이 한국어로 출간됐다. 두 사람의 편지는 생텍쥐페리가 실종된 지 77년 만인 2021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왕자’를 쓴 문학가이자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와 화가·조각가였던 콘수엘로는 각자의 정체성과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부부였다. 생텍쥐페리가 비행사였기 때문에 자주 떨어져 있었고, 이 때문에 글로 주고받았던 사랑과 불안, 아쉬움과 간절함을 편지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어린 왕자’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콘수엘로가 생텍쥐페리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었는지가 드러난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콘수엘로의 역할은 그간 생텍쥐페리의 전기나 연구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그러나 편지를 보면 콘수엘로의 별명이 ‘오이풀’이었고 콘수엘로는 생텍쥐페리를 나무에 자주 비유했는데 이러한 표현은 ‘어린 왕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린 왕자’의 중심 주제인 장미꽃이 초반에는 오이풀 모양으로 그려지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린 왕자가 한 그루 나무가 쓰러지듯 서서히 쓰러진다고 묘사된다. 무엇보다 불확실한 사랑과 삶의 우여곡절을 버텨내는 데에는 두 사람이 상상력과 시로 만든 공통의 ‘영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이 책의 프랑스 편집자 알방 스리지에는 말한다. “당신을 피하면서 동시에 당신을 찾아다녔다”는 생텍쥐페리. 그렇게 오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연인, 삶의 ‘순수함’을 찾으려 애썼던 두 사람의 ‘영토’가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을 울리는 명작을 만들어냈음을 편지들은 보여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브라질의 선주민인 ‘후니 쿠인’ 부족에게는 이런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태초에 인간이 땅을 밟으며 기나긴 여정을 떠났는데, 땅끝에서 바다를 만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 바다에서 거대한 악어가 나타나 자신의 등을 밟고 바다를 건너가도록 다리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악어는 인간에게 도움을 준 대가로 자신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엔 조건이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동물을 바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악어에게 바칠 먹이가 부족해진 인간은 새끼 악어를 거대한 악어에게 주고 맙니다.화가 난 악어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렸고, 이때부터 인간은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중앙 파빌리온을 벽화로 장식할 ‘후니 쿠인 예술가 운동’(MAHKU, Movimento dos artistas Huni Kuin)‘의 작품 속 이야기입니다. 2주 전 뉴스레터에 이어 베니스 비엔날레의 이야기를 더 전해드립니다.대안 찾는 국제 미술계위에서 보여드린 두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제전 ‘이방인은 어디에나’에서 동시대 미술 섹션에 소개될 작가 그룹의 예전 작품입니다. 이 그룹의 독특한 점은 각각 브라질과 칠레의 선주민(indigenous) 예술가들로 구성됐다는 점입니다.선주민 예술은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찾으려는 움직임에 따라 주목받고 있습니다. 뉴스레터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던 북미의 이누이트 예술, 북유럽의 사미족 예술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 중심의 미술사가 규정하는 예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후니쿠인 예술가 그룹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기존 미술사에서 ‘나이브 아트’라고 여겨졌던, 아카데미 예술의 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난 조형 언어가 첫 번째 특징입니다. 이런 조형 언어를 통해 어떻게 다른 형태의 예술이 가능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려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또 다른 점은 이들이 세계를 보는 시선입니다. 후니 쿠인의 전설은 세계가 원래는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서구 중심적 사고가 모든 것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죠. 이런 세계관은 기후 위기나 도시에서 사라진 커뮤니티와 연대 등 여러 현대사회의 문제에 관한 대안으로도 여겨집니다. 시스템이 고장 난 현대 사회의 다른 방식을 찾아보려는 움직임이지요손에서 손으로 내려온 예술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여 예술가들에 관한 두 가지 반복되는 특징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텍스타일’로 작업한 작가들이 많았고, 두 번째는 가족 등 혈연관계 사이에서 선대부터 후대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전승되어 온 예술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그러면서 페드로사는 텍스타일(자수) 작업은 그간 예술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는데, 이것이 주로 여성의 일이며 공예적인 것이고, 손기술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시 한번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또 손에서 손으로 내려온 예술은 바꾸어 말하면 그것이 역사나 문자로 기록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그간 미술의 역사가 시각 언어가 아닌 조르조 바사리의 책이나 왕실의 기록 등 텍스트가 중심이 되어서 쓰였다면, 이제는 그것을 넘어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편입해서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그런 점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의 중앙 파빌리온 외벽은 ‘후니 쿠인 예술가 운동’이 대형 벽화로 장식하게 됩니다. 또 국제전의 시작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예술가로 구성된 ‘마타아호 콜렉티브’의 대형 설치 작품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집중 조명된 ‘북반구’를 벗어나 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변두리의 지역을 더 자세히 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관건은 이들 예술이 정말로 ‘나이브 아트’를 넘어 어떤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부터는 정말로 좋은 큐레이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영역이겠지요. 물론 이번 전시에는 잉카 쇼니바레 등 유명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이후 뉴스레터에서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강황으로 노랗게 염색한 장막을 걷어내고 들어가면 옹기와 짚, 삼베와 밧줄이 서로 얽혀 있는 광경이 드러난다. 천장에서 옹기까지 드리워진 삼베 천 가운데엔 흙이 채워져 있고, 바닥에 놓인 옹기 뚜껑 위엔 물이 찰랑인다. 쌀과 누룩이 익고 있는 옹기를 엮은 밧줄을 따라 눈길을 옮기면 천장에 매달린 국화 다발이 보이고 흙, 누룩, 국화의 냄새가 섞여 감각을 자극한다. 인도네시아계 브라질 출신 작가 댄 리(36)의 한국 첫 개인전 ‘상실의 서른여섯 달’의 풍경이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와 한옥에서 열리는 전시는 작가의 대형 설치 작업 두 점을 선보인다. 항온 항습 등 작품 보존을 위한 깨끗한 환경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미술관에 곰팡이, 효소, 버섯 종자 등을 재료로 활용해 ‘작은 생태계’를 만들면서 작가는 최근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짚풀 공예와 장례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리는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님을 만나 대화하다 한국의 ‘3년상’ 문화를 알게 됐다. 나의 아버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3년이 됐고, 아버지의 고향인 인도네시아에서도 고인이 죽고 난 뒤 1000일이 지나 기리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이런 전통을 참고해 아버지에 관한 애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정관 스님을 만나 함께 보낸 시간이 매우 소중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수년간 죽음에 관한 의식을 연구해 왔다. 그간 그가 보았던 의식들은 슬픔이나 상실에 집중한 반면 정관 스님을 통해 애도가 ‘마무리’의 과정임을 알게 됐고, 그런 감정을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리는 전시장은 슬픔보다 희망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옹기부터 지푸라기까지 어느 하나도 홀로 놓인 것 없이 모두가 연결돼 있다. 삼베 천에 가득 찬 흙에서는 새싹이 자라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버섯도 돋아날 예정이다. 죽음처럼 혼자라 느껴지는 극단적인 순간에도 사실은 미생물을 비롯한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이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돌아보게 한다. 5월 12일까지. 5000∼1만 원. (3월 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올해로 60회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윤곽이 지난달 31일 현지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개됐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895년부터 2년마다 열리는 국제전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 세계 미술인들이 주목하는 행사다. 올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리는 국제전의 주제는 ‘이방인은 어디에나(Foreigners Everywhere)’. 비엔날레 역사상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 예술감독인 아드리아누 페드로자는 그간 미술사에서 배제된 예술가들을 적극 조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페드로자는 브라질 상파울루미술관(MASP)의 예술감독으로, 이 미술관에서 2016년부터 이어 온 기획전 시리즈 ‘역사’가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역사’는 유럽과 미국,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벗어나 여성, 퀴어, 선주민 등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의 작품을 6차례의 전시에 걸쳐 소개했으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도 이 같은 경향을 반영한다. 주최 측은 비엔날레 국제전에 참여한 경력이 없는 작가를 우선 선정하되 퀴어·아웃사이더·선주민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올해 참여 작가는 332개 팀, 400여 명으로 2년 전보다 약 30% 늘었다. 그만큼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페드로자가 MASP에서 개인전으로 소개했던 브라질과 페루의 ‘후니쿠인’족 예술가 그룹인 ‘후니쿠인 예술가 운동(MAKHU)’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비엔날레 전시장 중앙의 파빌리온 파사드에 대형 벽화를 선보인다. 또 뉴질랜드 선주민으로 구성된 ‘마타아호 컬렉티브’의 대형 설치 작품으로 전시회의 문을 연다. 한국 작가로는 근대 화가 이쾌대(1913∼1965)와 수묵화가 장우성(1912∼2005), 현대미술가 김윤신, 이강승이 포함됐다. 김윤신은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40여 년간 작업을 이어왔으며, 이강승은 백인·남성·이성애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에서 배제된 인물과 사건을 발굴해 작품으로 되살리고 있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리우데자네이루대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에서 예술과 비평을 연구한 페드로자는 “여러 국가를 다닐 수 있는 특혜를 누렸지만, 언제나 제3세계 외국인이 받는 시선을 인식해야만 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으며 당신도 어디에 있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방인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한국 미술을 알리기 위한 전시들이 국제전 본전시장 밖에서도 여럿 열린다. 우선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의 한국관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가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강익중, 전수천, 이불, 서도호 등 한국관에 작품을 선보였던 역대 작가 30여 명이 출품한다. 전시 개막일인 18일에는 한국관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백남준을 기리는 퍼포먼스도 열린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을 16세기 고택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미술관에서 연다. 추상화가 유영국(1916∼2002)의 작품을 김인혜 큐레이터가 기획을 맡아 선보인다. 유영국의 첫 유럽 전시라는 의미가 있다. 또 바르토메우 마리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재프랑스 화가 이성자(1918∼2009)의 개인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의 기획을 맡았다. 1959년 초기작부터 2008년 후기작까지 20여 점을 베네치아의 아르테 노바 미술관에서 전시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02년 첫 공동작업을 시작으로 ‘따로 또 같이’ 작업을 해 온 두 작가 박미나와 Sasa[44]의 2인전 ‘이력서: 박미나와 Sasa[44]’가 서울 종로구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개관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첫 주제 기획전인 이 전시는 ‘이력서’의 형태를 빌려 두 작가의 작업세계를 선보인다. 박미나와 Sasa[44]의 공통분모는 수집이다. 박미나는 2000년대 초반 ‘오렌지색 그림’을 찾는 갤러리의 요청에 시중의 오렌지색 물감을 전부 모아 줄무늬 회화를 만든 ‘오렌지 페인팅’이 유명하다. Sasa[44]는 본인이 먹고 사고 소비하고 저장한 것들을 일일이 기록하거나 수집하는 등 방대한 사물과 정보를 전시장에 펼쳐 놓는다. 이번 전시는 2부로 나뉘어 전시실1에서는 두 작가의 ‘전시 이력’ 데이터를 모두 수집해 선별한 작품 140여 점을 새롭게 배치하고 분류했다. ‘하하하’(2003년), ‘하나, 라이선스가 없는 하나, 라이선스가 있는 하나’(2003년) 등 주요 초기 작품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전시실2에서는 국내외 연속 간행물 중 두 작가가 언급된 기사 1529건을 수집해 제작한 책 형태의 작품 ‘참고문헌 일부’와 함께 만든 설치 작품 ‘집 안’이 전시된다. 3월 31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누군가를 마주할 때보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빈자리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저에겐 외삼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가 그랬습니다. 유쾌한 멋쟁이였던 그가 두고 간 집을 정리할 때 쏟아져 나오던 온갖 잡동사니들. 낡은 낚시 모자, 지포 라이터, 짝이 맞지 않는 그릇 더미, 베란다에 쓸쓸히 놓인 화분들은 온 가족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죠. 중국의 주목받는 현대미술가 장언리(張恩利·59)의 빈 양동이 시리즈를 보면 저는 그것을 스쳐 간 사람들의 외로움과 절망, 꿈과 희망이 떠오릅니다. 최근 하우저 앤드 워스 홍콩 갤러리에서 개인전 ‘얼굴들’을 통해 신작을 공개한 그의 작품 세계를 공유합니다.빈 양동이, 상자와 고무호스영국 테이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언리의 ‘양동이’ 연작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놓인 듯한 양동이를 여러 각도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걸레를 빨거나, 더러워진 물을 나르거나, 필요하면 언제든 쓸 수 있게 아무렇게나 놓인 양동이입니다. 장언리는 2000년대에 이렇게 일상 속 보잘것없는 사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양동이뿐 아니라 텅 빈 욕조, 바닥에 멈춰 있는 공, 뚜껑을 쩍 벌린 상자, 리드미컬하게 엉킨 고무호스 등이 소재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일상 연작들은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렸지만, 마치 수채화처럼 아주 얕게 채색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그 물건의 기하학적 형태보다 표면의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텅 빈 내부가 마치 깊은 구덩이처럼 시선을 빨아들이는 효과가 극대화되는데요. 이렇게 그림을 곱씹어 보면 결국 중요한 건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길’임을 느끼게 됩니다. 양동이가 아니라 바닥에 무심코 놓여 있는 그 양동이를 가만히,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 시선과 함께 우리는 양동이의 깊은 구멍이 열어 주는 문을 열고 상상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잿빛 물이 가득 찼다 비워지기를 반복하며 양동이가 지나왔을 일상의 많은 시간들. 그 시간을 분주히 살아가며 삶의 희망을 다져 나갔을 어느 이름 모를 사람의 모습을….제 살을 깎아 먹는 푸주한장언리의 일상 사물 연작에는 맥락이 있습니다. 이 연작이 나오기 전 1990년대에 그는 도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푸주한(Butcher)’ 시리즈죠. 1993년에 그린 ‘쇠고기 두 근(Two Jin of Beef)’처럼 거칠고 적나라한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쇠처럼 굳은 얼굴을 한 푸주한의 앞에 놓인 고깃덩어리와 그의 팔이 마치 같은 고기인 듯 비슷한 질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 어깨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요. 이 무렵 작가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던 도시 상하이에서 대학 강사로 일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죠. “캠퍼스의 작은 기숙사에 살며 한 달에 100위안(약 2만 원)을 벌었고 시간은 남아돌았다. 그림 그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날이었고, 우울감이 자주 찾아왔다. … 집 맞은편 큰 시장을 오후마다 들렀고, 내가 고기를 좋아했기에 정육점을 늘 구경했다. … 90년대 초반 난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 모두는 도마 위에 놓인 고기다. 어쩌다 한 번씩 푸주한 노릇을 할 뿐….”(2017년 이숙경 큐레이터와의 이메일 대화에서 발췌) 빽빽한 빌딩 숲에서 서로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는 이 무렵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림에서 사람이 사라졌고, 그 대신 그들의 흔적이 남은 사물들이 캔버스를 대신 채웠죠.사라진 테두리, 흔적의 지도하우저 앤드 워스 홍콩 개인전 ‘얼굴들’에서는 최근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 작품에서는 화면 위에 선과 색들이 서로 리듬을 맞추듯 둥둥 떠다닙니다. 장언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흔적을 남긴다”며 “벽이나 하늘을 보면 흔적이 가득하다. 이 흔적들에 사람의 이름을 붙이면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전시장 속 작품은 추상화처럼 형태가 없지만, 제목은 구체적입니다. ‘멀리서 온 손님’, ‘미술관장’, ‘멜론 농부’ 등의 제목이죠. 그리고 전시의 제목은 ‘얼굴들’. 마치 얼굴 없는 표정만으로 특정 인물에 대한 감각을 드러내려는 듯합니다. 그가 “누군가의 뒷모습도 초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죠. 밝고 경쾌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들은 이제 다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쓸쓸하고 절망스러웠던 도시의 군상에서, 텅 빈 공백으로 향한 다음, 이제는 마음에 들어 있는 각자의 꿈이나 욕망, 그로 인한 희망과 약간의 좌절을 지도처럼 펼쳐 놓습니다. 흥미로운 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는 작업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흔적’과 ‘저 너머’의 무언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 보려는 작가의 시선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50년 동안 발전해 온 내 생각은, 내가 보는 시각과 그에 얽힌 나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세계가 중요한 사건이나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것들로 만들어진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누군가를 마주할 때보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빈자리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저에겐 외삼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가 그랬습니다. 유쾌한 멋쟁이로 어릴 적 기억에 남았던 그가 두고 간 집을 정리할 때 쏟아져 나오던 온갖 잡동사니들. 낡은 낚시 모자, 지포 라이터, 짝이 맞지 않는 그릇더미, 베란다에 쓸쓸히 놓인 화분들은 온 가족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죠.중국의 주목 받는 현대미술가 장언리(59·Zhang Enli)의 빈 양동이 시리즈를 보면 저는 그것을 스쳐 간 사람들의 외로움과 절망, 꿈과 희망이 떠오릅니다. 최근 하우저 앤 워스 홍콩 갤러리에서 개인전 ‘얼굴들’을 통해 신작을 공개한 그의 작품 세계를 오늘 독자 여러분께 공유합니다.빈 양동이, 책상과 고무호스영국 테이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언리의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놓인 듯한 양동이를 여러 각도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걸레를 빨거나, 더러워진 물을 나르거나, 필요하면 언제든 쓸 수 있게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양동이입니다.장언리는 2000년대에 이렇게 일상 속 보잘것없는 사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양동이뿐 아니라 텅 빈 욕조, 바닥에 멈춰 있는 공, 뚜껑을 쩍 벌린 상자, 리드미컬하게 엉킨 고무호스 등이 그림 속 소재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양동이를 비롯한 일상 연작들은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렸지만, 마치 수채화처럼 아주 얕게 채색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그 물건의 기하학적 형태보다 표면이 주는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텅 빈 내부가 마치 깊은 구덩이처럼 보는 사람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효과가 극대화하는데요. 이렇게 그림을 곱씹어보면 결국 중요한 건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의 ‘시선’임을 느끼게 됩니다. 양동이가 아니라 바닥에 무심코 놓여 있는 그 양동이를 가만히,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길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그 시선과 함께 우리는 양동이의 깊은 구멍이 열어 주는 문을 열고 상상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잿빛 물이 가득 찼다 비워지기를 반복하며 양동이가 지나왔을 일상의 많은 시간들. 그 시간을 분주히 살아가며 삶의 희망을 다져 나갔을 어느 이름 모를 사람의 모습을….제 살을 깎아먹는 푸주한장언리의 일상 사물 연작에는 맥락이 있습니다. 이 연작이 나오기 전 1990년대에 그는 도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푸주한’(Butcher) 시리즈죠.1993년에 그린 ‘’처럼 거칠고 적나라한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쇠처럼 굳은 얼굴을 한 푸주한의 앞에 놓인 고깃덩어리와 그의 팔이 마치 같은 고기인 듯 비슷한 질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 그의 어깨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요. 이 무렵 작가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던 도시 상하이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죠.“캠퍼스의 작은 기숙사에 살며 한 달에 100위안(약 2만 원)을 벌었고 시간은 남아돌았다. 그림 그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날이었고, 우울감이 자주 찾아왔다. 이런 생활이 수년 동안 이어졌고 1995년이 되어서야 작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집 맞은 편 큰 시장을 오후마다 들렀고, 내가 고기를 좋아했기에 정육점을 늘 구경했다. (…) 90년대 초반 난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 모두는 도마 위에 놓인 고기다. 어쩌다 한 번씩 푸주한 노릇을 할 뿐…”(2017년 에서 발췌)빽빽한 빌딩 숲에서 서로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는 이 무렵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림에서 사람이 사라졌고, 그 대신 그들의 흔적이 남은 사물들이 캔버스를 대신했죠.사라진 테두리, 흔적의 지도그 다음으로 나온 최근작을 하우저 앤드 워스 홍콩 개인전 ‘얼굴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 작품에서는 화면 위에 선과 색들이 서로 리듬을 맞추듯 둥둥 떠다닙니다. 장엔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흔적을 남긴다”며 “벽이나 하늘을 보면 흔적이 가득하다. 이 흔적들에 사람의 이름을 붙이면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이 된다”고 설명합니다.실제로 전시장 속 작품은 추상화처럼 형태가 없지만 제목은 구체적입니다. ‘멀리서 온 손님’, ‘미술관장’, ‘멜론 농부’ 등의 제목이죠. 그리고 이들 작품을 모은 전시의 제목은 ‘얼굴들’. 마치 얼굴 없는 표정만을 통해 어떤 사람에 대한 감각을 드러내려는 듯합니다. 장엔리가 어느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의 뒷모습도 초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죠.이전 작품보다 훨씬 더 밝고 경쾌한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들은 이제 다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쓸쓸하고 절망스러웠던 도시의 군상에서, 텅 빈 공백으로 향한 다음, 이제는 마음에 들어 있는 각자의 꿈이나 욕망, 그로 인한 희망과 약간의 좌절을 지도처럼 펼쳐 놓고 있습니다.흥미로운 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지는 작업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흔적’과 ‘저 너머’의 무언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보려는 작가의 시선을 증명하고 있습니다.“50년 동안 발전해 온 내 생각은, 내가 보는 시각과 그에 얽힌 나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세계가 중요한 사건이나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것들로 만들어진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홍석 작가의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가 1일 국제갤러리 서울점 K2, K3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뒤엉킴’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김 작가는 전시장에서 우리가 당연하고 정상적이라고 여겨 온 것들이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슬리퍼에 돌덩이를 붙여 놓고 ‘하이힐 한 켤레’라고 제목을 붙이거나, 입구에 놓인 작품 ‘내 발밑의 무게’는 부드러워야 할 카펫을 금속(브론즈) 조각으로 만들었다. 또 조커의 얼굴에 고양이 몸을 한 조각은 조커가 고양이 털옷을 입은 건지, 고양이가 조커의 탈을 쓴 것인지 모호하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믿는 것은 언제부터 정상이 된 걸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모든 것을 뒤집어 본다. K2관 2층으로 가면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사군자 회화들이 나타난다. 이곳 전시장에는 배경음악을 넣었는데 작가는 “내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 쇼핑몰, 지하철역과 다를 바 없기를 바란다”며 “미술이 특수하다고 느끼는 감상자의 마음에 균열을 내고 싶다”고 했다. K3관에서는 거대한 운석이 천장을 뚫고 바닥에 떨어진 듯한 장면이 연출된 설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김 작가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현해 기존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미술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3월 3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봄이 올 테니 모두 모여 무거운 짐을 덜어 놓고 기쁘게 한번 흐드러집시다.” ‘소리의 마녀’란 별명을 가진 가수 한영애(68)가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다음 달 17일 단독 콘서트 ‘다시 봄’을 연다. 6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번 공연에선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부른 노래도 좀 해보고, 초대 손님도 부를 예정”이라며 “공연 기획사와 소속사의 짜임대로 가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평소 공연 의상부터 콘셉트까지 스스로 기획하는 과정을 즐긴 그였지만 “이번엔 마음이 열렸다”며 웃었다. “무거운 겨울 외투를 벗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아무런 반항 없이 공연 이름과 사진 등 모든 것을 맡겼죠. 이제 내용만 제가 잘 짜면 됩니다. 여기에 초대 손님들을 어떻게 빛나게 해줄 수 있을까. 그것이 제게 주어진 숙제예요.” 소속사 나무뮤직에 따르면 한영애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거나 경연 대회에 나와 부른 아티스트는 70여 명. 그중 신예원, 이소정, 강태관, 임지수, 계범주가 게스트로 초대됐다. 한영애는 여기에 관객도 ‘함께 공연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제일 뽐내고 싶은 옷을 입고 와서 가장 빛나는 눈동자로, 빛나는 소리와 몸짓으로. 관객이 저와 함께 흐드러지는 그런 순간을 늘 상상해요. 누군가 나에게 무대 위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느냐고 묻는데 저는 관객이 하는 공연을 봅니다.” 그는 객석에 앉아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관객, 가만히 있지만 눈동자가 반짝이는 관객, 이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보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공연을 하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비전이 보인다”며 “콘서트의 꽃은 관객이며 무대는 나의 거울”이라고 했다. 한영애가 부를 다른 아티스트의 곡은 여러 후보군을 고민 중이다. ‘조율’ ‘루씰’ ‘누구 없소?’ ‘불어오라 바람아’ 등 주요 히트곡은 당연히 세트리스트에 포함된다. 새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는 ‘조율’이 기대된다고 하자 한영애는 “조율의 노랫말은 20년 후에도, 인간사가 계속되는 한 유효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했다. “처음 그 가사를 썼을 땐 환경 보호를 떠올렸는데 시간이 지나니 사회에 관한 이야기도 되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되었어요. 어느 시대에도 이 노랫말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봄’이라는 주제에 가장 어울릴 곡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한영애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여울목’이 좋겠다고 답했다. “아직도 꿈을 못 놓아 계속해서 꿈을 찾는 이야기예요. 아직 경칩은 안 지났나요? 겨우내 언 물이 녹아 흘러가 여울목에서 맴돌다 흘러가니, 어딘가에는 잃어버린 내 꿈이 걸려 있으려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곤지암뮤직페스티벌(이사장 백수현)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약을 맺고 이달 2, 3일 카라얀아카데미 목관 예선 오디션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에서 열었다. 오디션 심사위원은 목관 수석 연주자로 구성되었으며,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대만 학생들도 참가한 가운데 김우아 안석진 유제빈 씨가 합격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출신의 바순 연주자다. 합격자 3명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카라얀아카데미 본선 오디션에 참가한다. 카라얀아카데미는 1972년 베를린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젊은 연주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