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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쫄이 의상과 망토 대신 윗 단추를 풀어헤친 와이셔츠에 구겨진 정장바지, 주로 슬리퍼를 끌고 다닌다. 근육질은커녕 음주로 다져진(?) 뱃살에 눈은 항시 충혈돼 있다. 싸움터는 대기업 사무실. 전화벨 소리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입사시험과 거래처와의 미팅, 실적 경쟁과 프레젠테이션, 사내정치까지 숱한 전투가 벌어진다. tvN 드라마 ‘미생’은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화이트칼라 영웅의 세계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 주인공은 프로 바둑 기사 입단에 실패한 고졸 검정고시 출신의 ‘무스펙’ 장그래(임시완)와 워커홀릭에 열정은 넘치지만 ‘빽 없는’ 오상식 과장(이성민·오 과장은 드라마 10회에서 과장 7년 만에 차장으로 승진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의 무대는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의 말마따나 “볼펜 하나, 딱풀 하나 때문에 울고 웃는 세계”다. 그러나 일하고 부딪치는 가운데 살아남는 이 평범해 보이는 삶이 얼마나 비범한 것인지 미생은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미생의 영웅들은 전 세대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는다. CJ E&M의 시청률 분석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채널의 주요 시청층인 20∼40대 여성뿐만 아니라, TV와 거리를 두고 지내는 30대 이상의 남성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대중은 “버틴다는 건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 “바둑판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 “꼼수는 정수로 받는다”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같은 드라마 속 대사를 잠언처럼 공유하고 되새김한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젊은층은 비정규직 장그래의 설움이, 회사에서 위아래로 치이는 중년의 샐러리맨들은 오 과장, 아니 오 차장의 애환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유리천장의 벽에 부딪치는 안영이(강소라)나 오 차장과 장그래 사이에서 중재자 역을 하는 김 대리(김대명) 역시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이들이다. 공감의 힘은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나온다. 윤태호 작가는 원작 만화를 그리기 위해 3년간 종합상사를 취재했다. 드라마가 나오기까진 1년 7개월의 준비기간이 더 필요했다. 보조 작가 2명이 실제 종합상사에 한 달 넘게 상주하며 신입사원 교육부터 직원 회식자리까지 동석했다. 공희정 대중문화 평론가는 “지금까지 대중문화에서 직장은 사장 오너의 아들이 연애나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이었다면 ‘미생’의 세계는 현실에 닿아 있다. 보통 직장인의 일상과 애환을 주인공인 장그래와 오상식뿐 아니라 주변의 대리, 과장, 부장들까지 각각의 입장에서 세밀하게 보여주어 대중의 공감대를 얻어냈다”고 평했다. 첫 회 1%대에서 시작한 미생의 시청률은 계속 상승해 최근 6%를 돌파했다.(닐슨코리아 전국 시청률 기준) 원작 만화는 한 달 만에 170만 부 가량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편으로 미생의 인기는 갈수록 힘든 세상의 반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세상의 부당한 차별조차 늘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이라며 자기 탓으로 돌리는 장그래나 “버티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오 차장 모두 ‘단단한 세상의 벽’을 실감하고 있는 이들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미생은 조직 내에서 버티고 살아남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대중을 위로한다. 드라마의 인기는 그만큼 우리가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광고인 듯 광고 아닌 광고 같은 미생 간접광고.” 간접광고도 잘 만들면 칭찬받는다. tvN ‘미생’ 얘기다.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센스가 돋보인다” “간접광고 찾는 재미가 있다”면서 이례적인 호감을 보인다. 사실 미생은 여느 드라마보다 많은 간접광고와 협찬사를 낀 드라마다. CJ E&M 관계자는 “tvN 드라마 사상 최고액을 모았다. 우리 회사의 다른 미니시리즈 대비 영업실적이 5∼6배 좋다”고 귀띔했다. 미생에는 직장인들이 많이 마시는 커피믹스나 숙취 해소음료, 복사용지 같은 사무용품까지 모두 15개 업체의 간접광고가 등장한다. 특이한 간접광고도 있다. 전문무역상사 제도에 대한 정책 홍보(KOTRA, 한국무역협회, 한국무역보험공사)도 등장할 예정이다. 드라마 기획을 맡은 이재문 PD는 “지난해부터 드라마 준비를 하고 올 초부터 광고 영업을 시작한 덕분에 작품과 어울리는 소품을 고려해 간접광고가 가능한 업체를 미리 뽑고 광고주를 설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콘셉트와 맞지 않은 제품군은 처음부터 배제했다. 미생에는 드라마에서 흔한 자동차나 해외 유명 브랜드의 간접광고는 나오지 않는다. “작품의 배경, 등장인물의 생활과 어울리는 제품이 나와야 한다”는 연출자 김원석 PD의 원칙 때문이었다. 오상식 차장(이성민)의 차는 27만 km를 뛴 국내 브랜드의 중고차로 제작진이 구입한 소품이다. 휴대전화는 간접광고 제품이긴 하지만 작품의 배경이 2012년이어서 등장인물들은 줄곧 최신형 LTE 휴대전화가 아닌 2G폰을 사용한다. 간접광고를 극에 자연스럽게 녹이려는 ‘깨알 같은’ 연출과 정윤정 작가의 공들인 대사도 시청자의 호감을 산 요인이다. 커피믹스를 타 마시는 장면과 복사하는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대기업 사무실 속 다른 소품들과 어우러져 노출된다. 제품 로고가 나올 때도 화면 중앙을 차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에피소드 역시 튀지 않는다. 거래처 술 접대를 위해 팀원 전체가 숙취 해소제를 챙겨 먹는 모습이나 첫 출근 하는 아들에게 입힐 양복을 고르려고 남성 정장 매장을 들락거리는 장그래 어머니의 에피소드는 간접광고지만 억지스럽지 않다. “장그래 가을 타?” “커피 탑니다” “이래 봬도 이게 황금비율”(커피믹스 간접광고)같이 언어유희를 강조한 대사도 호평을 받았다. 경원식 한국CM전략연구소장은 “드라마 속 간접광고가 노출에만 중점을 두다 보면 억지스러운 전개 때문에 브랜드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 광고인지 모를 만큼 드라마와 어우러진 미생은 좋은 간접광고의 사례로 꼽을 만하다”고 평가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멘붕’이죠. 일본 시장은 죽었고, 중국 시장으로 부족분을 메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심의 때문에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지상파 드라마 제작자들의 한숨이 깊어진 데는 수출 시장 불황도 한몫했다. 한류는 드라마 제작자들에겐 기회이자 독(毒)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와 ‘대장금’의 해외 흥행 이후 수출 의존도가 높아진 국내 드라마 시장은 끊임없이 제작비를 늘리며 몸집을 부풀려 왔다. 그러나 국내 방송 수출액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 시장의 침체는 드라마 산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 내 국내 드라마 판권 판매액은 2012년 KBS ‘사랑비’가 회당 40만 달러(약 4억5000만 원)에 팔리며 가격 정점을 찍은 후 지금은 ‘반 토막’이 났다. 이제 한류 스타가 나오는 드라마조차 회당 20만 달러(약 2억2000만 원)를 넘기지 못한다. 일본의 한국 드라마 수입 업체인 어크로스 박태규 대표는 “한일관계 악화로 한국 드라마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예전엔 한국 드라마가 나오는 즉시 판권을 샀지만 요즘에는 많이 고르는 편”이라고 전했다. 중국 한류는 일본 시장의 대안으로 부상했다. SBS ‘별에서 온 그대’ 덕분에 올 한 해는 반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회당 3만∼4만 달러에 팔렸던 한국 드라마의 인터넷 동영상 전송권은 ‘별그대’ 열풍을 거치며 1년 새 5∼6배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최근 SBS ‘피노키오’는 중국 동영상 사이트 유쿠, 투더우에 28만 달러(약 3억 원)에 선판매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 수출 특수도 ‘끝물’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최근 중국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방영되는 해외 드라마와 영화의 편수를 전체 동영상의 30%로 제한하고, 이에 대한 사전심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는 중국 정부 심의와 쿼터 제한이 없는 온라인을 통해 인기를 얻었지만 내년 4월 이후 방송되는 드라마는 이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드라마 제작사인 그룹에이트 송병준 대표는 “한국에서 먼저 방송이 되고 사전심의 기간이 길어질 경우 해적판이 돌 확률이 높다.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규제에 따른 시장의 불확실성은 드라마 가격이나 간접광고(PPL) 등에 영향을 준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의 온라인 사전심의 계획이 발표된 직후인 올 9월에 판매된 KBS ‘아이언맨’의 동영상 전송권은 ‘별그대’ 이전 수준인 2만 달러(약 2000만 원)에 불과했다. 윤재식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은 “온라인 동영상에 대한 중국 정부의 사전심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가 관건인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전반적으로 일본 시장 불안과 중국의 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드라마 수출 시장의 전망은 밝지 않다”고 분석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오랫동안 봐온 배우의 인기가 40대에 접어들며 반등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20대 초반 ‘꽃미남’ 청춘 스타였다면 더욱 그렇다. 대중은 스타의 주름에 혹독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정재(41)의 인기는 이례적이다. ‘도둑들’(2012년·1298만 명) ‘신세계’(2012년·468만 명) ‘관상’(2013년·913만 명) 등 최근 출연작마다 좋은 성과를 올린 그는 ‘늘그막’에 충무로 대세가 됐다. 그는 26일 개봉하는 ‘빅매치’에서 형(이성민)을 구하기 위해 의문의 악당 에이스(신하균)가 제안한 게임에 휘말리게 된 이종격투기 선수 최익호로 나온다. ―40대가 소화하기엔 버거워 보이는 액션이 많던데…. “맞다. 다들 ‘네가 할 역이 아니지 않냐’며 말렸다. 그런데 지금 안 하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액션 영화는 마지막일 것 같다.” ―카메라가 식스팩을 훑더라. “그게 내 최선이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는 두세 달 운동하면 (근육이) 금방금방 올라왔다. 이번 영화에선 5개월 정도 주말 빼고 매일 오전 2시간, 오후 4시간씩 운동했는데도 잘 안 올라오더라. 77kg까지 늘렸는데 요즘 최동훈 감독의 ‘암살’ 찍으면서 15kg을 다시 뺐다. 독립군으로 나오는데 너무 근육질이면 안 되니까.” ―‘빅매치’의 익호는 단순무식하다. 이런 역할은 처음 아닌가. “하긴 했는데 흥행이 안됐지. 색깔이 분명하고 남성적인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관상’을 하면서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 수양대군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한편으로 놀랍고, 반가웠다.” ―‘도둑들’ 이전까진 슬럼프도 겪지 않았나. 이후 줄줄이 흥행했다. “내 분량이 적어도 작품이 좋으면 했다. ‘신세계’ 찍을 땐 최민식과 황정민 사이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었는데 도전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빅매치에서 형수로 출연한 라미란이 대종상 시상식에서 “이정재와 진한 키스신이 목표”라고 했다. 변함없는 섹시 아이콘이다. 관리를 하나. “별거 없다. 워낙 잘 붓는 편이라 일할 땐 과식이나 음주를 하지 않는다. 거기에 운동 좀 간간이 한다.” ―현대미술관 홍보대사다. 유명 컬렉터라는 소문도 있던데 좋아하는 작가는…. “많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정상화 씨. 뿜어져 나온 에너지를 단순화시킨 게 좋다. 그런데 그림을 많이 샀다는 건 오해다. 그냥 맛집 다니고 작은 갤러리 전시 다니는 거 좋아한다. 옷이 엄청 많다는 소문도 있던데 양복도 네 벌뿐이다.” ―방송에 안 나오는 이유가 있나. 그래도 광고는 꾸준히 찍던데…. “내가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나가면 재미있을까. 불안해서 못 나간다. 방송을 안 하다 보니 광고를 통해 이미지를 노출하는 건 일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엔 햄버거 광고가 들어와서 놀랐다. 어린 친구들이 패스트푸드점에서 내 얼굴이 그려진 전단에 케첩으로 낙서하는 게 재밌었다. 대중적으로 이미지가 친근하게 바뀐 거 같은데 낯설면서도 고마운 일이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물려 입은 아버지의 양복이 버거워 보일 만큼 왜소하다. 남성적이라기보단 선이 곱다. 눈빛은 착하고 목소리는 여리다. 화제의 드라마인 tvN ‘미생’ 속 장그래(임시완)의 외모에선 20대 남성 주인공들이 풍기던 ‘수컷 냄새’나 반항적인 이미지를 찾기 어렵다. ‘미생’의 이재문 tvN 기획 PD는 장그래 역 캐스팅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이 ‘착한 이미지’라고 했다. 그는 “키 크고 조각 같은 미남이 아닌, 지금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얼굴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의 남자 주인공들과 달리 순응적이다. 프로 바둑 기사 입단에 실패한 고졸 출신 주인공은 대기업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숱한 차별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과거에도 청춘을 대변하는 20대 남성 캐릭터 중엔 스펙이 변변찮은 사례가 많았지만 대부분은 통쾌한 반전을 보여줬다. 반면 장그래는 “자존심과 오기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차이는 존재한다”면서 “부끄럽지만 내일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묵묵히 버텨낸다. 기성 체제의 전복보다는 대기업에 입사해 살아남는 게 더 절박하다는 점에서 27세의 장그래는 ‘88만원 세대’의 처지를 대변한다. 2014년의 장그래처럼 드라마에는 세대를 상징하는 청춘들이 등장한다. SBS 드라마 ‘모래시계’(1995년) 속 태수(최민수)는 민주화운동 세대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한국의 1970,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시민군으로 참여한 경력을 가진 조직폭력배다. 세상을 바꾸길 꿈꾸다 부조리한 시대의 희생양으로 사형당하는 그는 남겨진 이들의 부채의식을 자극한다. 태수는 광주에서 계엄군이었다고 고백하는 검사 친구 우석(박상원)에게 말한다. “그 다음이 문제야.” 다른 세상을 꿈꿨던 태수와 달리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트렌디 드라마의 20대 청춘은 사랑에만 몰두하는 개인주의자였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생인 이들은 경제 호황기에 성장한 X세대다.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년)의 강풍호(차인표)는 미국 유학파로 아버지의 백화점 사업을 물려받은 재벌2세다. 유창한 영어실력에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색소폰을 즐겨 부는 그의 모습은 당시 언론이 보도한 X세대의 이미지와도 일치한다. 강풍호류의 캐릭터들은 현재까지 여러 드라마에서 다양한 ‘실장님’과 ‘이사님’으로 변주돼 나오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친 후엔 이와 상극을 이루는 비주류 캐릭터들도 부상하기 시작했다. ‘네 멋대로 해라’(2002년) 속 소매치기 전과자 출신인 고복수(양동근)는 당시 20대 청춘의 얼굴로 사랑받았다. 배경도 외모도 변변찮은 그는 ‘루저’이다. 세상에 대한 불만도 없고 자신의 처지를 바꾸는 데도 관심이 없다. 극 초반에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 그는 미래보다는 현재에 몰두한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 현재를 중시하는 태도는 X세대 이후 Y세대, 밀레니엄세대 등의 다양한 별칭으로 주목받았던 에코세대의 특징으로 꼽힌다. 2014년의 장그래도 고복수와 같은 비주류다. 하지만 주류 진입을 꿈꾼다는 점에서 앞 세대의 선배 캐릭터들과 선을 긋는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고 채찍질한다. 이 때문에 장그래 캐릭터의 부상이 기성 시스템에 대해 젊은 세대가 가지는 또 다른 무기력함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장그래는 기존 시스템에서 버티는 것에 몰두하는 캐릭터이며, ‘미생’은 그가 버텨내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드라마”라며 “이 드라마가 대중에게 위로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뭘 해도 안 바뀌는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적인 요소를 빼면 낙관적인 미래관이 지배했던 과거와 달리 2000년대 이후부터는 더이상 낙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이런 변화가 드라마 속 캐릭터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TV를 바꿀 1억 원짜리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케이블·위성채널 KBSN이 30일까지 프로그램 기획안을 공모한다. 공모 분야는 드라마 예능 여성 어린이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이다. 1차 심사에서 약 30개의 기획안을 선발한 뒤 다음 달 6일부터 19일까지 2주 동안 시청자 온라인 투표를 거쳐 최종 당선작을 선정한다. KBSN 최철호 대표는 “시청자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시청자가 직접 뽑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1등 상금은 1억 원이다. 1등 당선작을 포함한 우수 기획안은 내년 초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방송할 예정이다. 당선작은 다음 달 23일 KBSN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다. 공모 방법 및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kbsn.co.kr) 참조.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트로트 가수들에게 ‘가요무대’는 ‘나가수’죠. ‘전국노래자랑’은 ‘슈스케’쯤 될까요.” 얼마 전 취재차 만난 한 트로트 가수의 절묘한 비유를 듣고 무릎을 쳤다. 장윤정 홍진영류의 핫한 트로트 스타부터 이미자 남진 같은 거물급까지 한자리에 모으는 KBS1 가요무대의 섭외력은 MBC ‘나는 가수다’ 못지않다. 전국을 돌며 숨은 노래꾼을 발굴하는 KBS1 전국노래자랑은 Mnet ‘슈퍼스타K’의 원조다. 순수하게 시청률만 보면 29년 된 가요무대와 34년 된 전국노래자랑은 나가수나 슈스케 이상이다. 최근 한 달간 두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각각 13%와 11%가 넘는다(닐슨코리아 자료). 2012년 방영된 ‘나가수2’는 한 번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현재 방영 중인 ‘슈스케6’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본방 사수를 하는 대다수 시청자가 중장년층인 현실을 무시하고 시청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한 평론가는 “KBS1 채널을 습관적으로 틀어놓는 중장년층 시청자가 6∼7%는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중장년층이라도 재미없으면 외면한다.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의 인기는 습관의 결과라기보다는 프로와 시청자 사이의 ‘의리’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싶다(혹 의리라는 말이 거슬리면 프로그램 충성도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끈끈한 의리의 비결은 뭘까. 진행자 김동건과 송해의 역할이 한몫했다. 수십 년 지기 같은 이들은 매주 오프닝 혹은 클로징에서 전국의 시청자는 물론이고 ‘타지에서 고생하시는 해외 동포와 해외 근로자 여러분’까지 살뜰히 챙긴다. 딸뻘 되는 참가자로부터 “귀엽다”는 추파와 온갖 특산물 공세를 받는 여든 일곱의 송해는 휴일 정오에도 TV를 벗삼아야 하는 누군가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 잠자리가 편해질 것”이라는 김동건의 인사는 연로한 시청자에게 자식 못지않은 위안이 될 것이다. 한결같음의 미덕, 장년 타깃은 두 프로가 비슷하지만 새 시청자 영입 전략 면에서는 가요무대가 한 수 위인 것 같다. 가요무대의 선곡은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채롭다. 최근에는 재즈뮤지션 웅산과 윈터플레이, 인디 걸그룹 바버렛츠가 나와 각각 ‘밤안개’ ‘세월이 가면’ ‘노란셔츠의 사나이’를 불렀다. 정체된 전국노래자랑과 달리 가요무대의 시청률은 최근 1년간 상승했다. 17일 방송된 가요무대 1394회는 15.1%였다. 가장 최근에 방송된 KBS2 ‘개그콘서트’(14.5%)보다 높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트로트 가수들에게 '가요무대'는 '나가수'죠. '전국노래자랑'은 '슈스케' 쯤 될까요." 얼마 전 취재차 만난 한 트로트 가수의 절묘한 비유를 듣고 무릎을 쳤다. 장윤정, 홍진영 류의 핫한 트로트 스타부터 이미자, 남진 같은 거물급까지 한자리에 모으는 KBS1 가요무대의 섭외력은 MBC '나는 가수다' 못지않다. 전국을 돌며 숨은 노래꾼을 발굴하는 KBS1 전국노래자랑은 Mnet '슈퍼스타K'의 원조다. 순수하게 시청률만 보면 29년 된 가요무대와 34년 된 전국노래자랑은 나가수나 슈스케 이상이다. 최근 한 달 간 두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각각 13%와 11%가 넘는다(닐슨코리아 자료). 2012년 방영된 '나가수2'는 한번도 두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현재 방영중인 '슈스케6'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본방사수를 하는 대다수 시청자가 중장년층인 현실을 무시하고 시청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한 평론가는 "KBS1 채널을 습관적으로 틀어놓는 중장년층 시청자가 6~7%는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중장년층이라도 재미없으면 외면한다.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의 인기는 습관의 결과라기 보단 프로와 시청자 사이의 '의리'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싶다.(혹 의리라는 말이 거슬리면 프로그램 충성도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끈끈한 의리의 비결은 뭘까. 진행자 김동건과 송해의 역할이 한 몫 했다. 수십 년 지기 친구 같은 이들은 매주 오프닝 혹은 클로징에서 전국의 시청자는 물론 "타지에서 고생하시는 해외 동포와 해외 근로자 여러분"까지 살뜰히 챙긴다. 딸 뻘 되는 참가자로부터 "귀엽다"는 추파와 온갖 특산물 공세를 받는 여든 일곱의 송해는 휴일 정오에도 TV를 벗삼아야하는 누군가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 잠자리가 편해질 것"이라는 김동건의 인사는 연로한 시청자에게 자식 못지않은 위안이 될 것이다. 한결같음의 미덕, 장년 타깃은 두 프로가 비슷하지만 새 시청자 영입 전략 면에서는 가요무대가 한 수 위 같다. 가요무대의 선곡은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채롭다. 최근에는 재즈뮤지션 웅산과 윈터플레이, 인디 걸그룹 바버렛츠가 나와 각각 '밤안개' '세월이 가면' '노란셔츠의 사나이'를 불렀다. 정체된 전국노래자랑과 달리 가요무대의 시청률은 최근 1년간 상승했다. 17일 방송된 가요무대 1394회는 15.1%였다. 가장 최근에 방송된 KBS2 '개그콘서트'(14.5%)보다 높다.구가인기자 comedy9@donga.com}

등장인물이 ‘고3’이지만 아무도 성적을 걱정하지 않는다. 관심사는 오로지 패션뿐. 최근 개봉한 ‘패션왕’ 속 주인공 우기명(주원)은 ‘빵셔틀’(강요에 의해 빵 심부름을 하는 학생) 출신. 늘 주눅 들어 지내던 그를 구원하는 건 이른바 ‘간지’(느낌이라는 뜻의 일본어) 나는 패션이다. 영화에서 간지란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자, 기명이 과거 학교 폭력의 상처를 극복하는 치료제가 된다. 패션왕처럼 요즘 학원물에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빠지지 않는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해졌고 대응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13일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레디액션 청춘’의 첫 번째 에피소드 ‘소문’에서 주인공(이동해)은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위기에 처한다. 학교에는 여자친구의 섹스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퍼뜨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린다. 올 상반기 개봉한 ‘한공주’의 주인공은 성폭력의 피해자이고, 7월 개봉한 ‘소녀괴담’의 귀신은 ‘왕따’로 폭력에 시달렸던 과거가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학원물의 주된 갈등 요인은 성적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년)처럼 치열한 대입 경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인기를 끌었다. 성적 걱정을 하던 영화 속 주인공들이 폭력에 시달리게 된 것은 학교 폭력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1998년 첫선을 보인 후 5편까지 이어진 공포영화 ‘여고괴담’ 시리즈 속 학교는 성폭력부터 살인까지 극단적 폭력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방과 후 옥상’(2005년)과 ‘싸움의 기술’(2006년)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자구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요즘 학원물에는 교사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도 특징. 예전에는 비인간적인 교육제도를 개선해 보려는 주연급 교사 배역이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이 같은 ‘선한’ 교사를 찾기 어렵다. 패션왕에서 주인공의 멘토는 교사가 아닌 ‘짝퉁’ 판매업자다. ‘레디액션…’의 교사는 섹스 동영상의 상대로 의심받는 존재다. ‘한공주’나 ‘소녀괴담’에서 교사는 문제 해결을 회피하고, 9월에 나온 공포영화 ‘좀비스쿨’에선 좀비가 돼 학생을 위협한다. 교실 내 권력관계도 바뀌었다. 요즘 학원물에선 집이 좀 살거나, 주먹이 세거나, 뛰어난 외모를 가진 인물이 짱이다. 패션왕의 여주인공 은진(설리)은 전교 1등으로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뿔테 안경을 벗기 전까진 무시당하는 비주류였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학원물도 사회 변화상을 반영한다. 입시 경쟁은 고질적인 데다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 데 비해 학교 폭력은 사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어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등장인물이 '고3'이지만 아무도 성적을 걱정하지 않는다. 관심사는 오로지 패션 뿐. 최근 개봉한 '패션왕' 속 주인공 우기명(주원)은 '빵셔틀'(강요에 의해 빵 심부름을 하는 학생) 출신. 늘 주눅 들어 지내던 그를 구원하는 건 이른바 '간지'(느낌이라는 뜻의 일본어) 나는 패션이다. 영화에서 간지란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자, 기명이 과거 학교 폭력의 상처를 극복하는 치료제가 된다. 패션왕처럼 요즘 학원물에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빠지지 않는다. 폭력의 형태는 다양해졌고 대응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13일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레디액션 청춘'의 첫 번째 에피소드 '소문'에서 주인공(이동해)은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위기에 처한다. 학교에는 여자친구의 섹스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퍼뜨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린다. 올 상반기 개봉한 '한공주'의 주인공은 성폭력의 피해자이고, 7월 개봉한 '소녀괴담'의 귀신은 '왕따'로 폭력에 시달렸던 과거가 있다.1990년대 중반까지 학원물의 주된 갈등 요인은 성적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년)처럼 치열한 대입 경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인기를 끌었다.성적 걱정을 하던 영화 속 주인공들이 폭력에 시달리게 된 것은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1998년 첫 선을 보인 후 5편까지 이어진 공포영화 '여고괴담' 시리즈 속 학교는 성폭력부터 살인까지 극단적 폭력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방과 후 옥상'(2005년)과 '싸움의 기술'(2006년)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자구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요즘 학원물에는 교사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도 특징. 예전에는 비인간적인 교육제도를 개선해보려는 주연급 교사 배역이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이 같은 '선한' 교사를 찾기 어렵다. 패션왕에서 주인공의 멘토는 교사가 아닌 '짝퉁' 판매업자다. '레디액션…'의 교사는 섹스 동영상의 상대로 의심받는 존재다. '한공주'나 '소녀괴담'에서 교사는 문제 해결을 회피하고, 9월에 나온 공포영화 '좀비스쿨'에서 좀비가 돼 학생을 위협한다. 교실 내 권력관계도 바뀌었다. 요즘 학원물에선 집이 좀 살거나, 주먹이 세거나, 뛰어난 외모를 가진 인물이 짱이다. 패션왕의 여주인공 은진(설리)은 전교 1등으로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뿔테 안경을 벗기 전까진 무시당하는 비주류였다.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학원물도 사회 변화상을 반영한다. 입시 경쟁은 고질적인데다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데 비해 학교 폭력은 사회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어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 지났다. 독일의 통일은 분단국가의 성공적인 재결합 사례로 꼽힌다. ‘통일 대박론’을 외치는 박근혜 대통령도 올 3월 독일 방문 당시 독일 통일을 일컬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이상형”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과거 동서독 분단과 통일을 모두 겪었던 독일인 24명의 통일 경험기를 모았다. 정치인, 경찰, 언론인, 사회복지사, 의사, 예술가 등 동독과 서독의 다른 체제에서 성장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시각으로 통일 이전과 이후 달라진 삶에 대해 들려주는 점이 흥미롭다. 통일에 대해 “독일 역사상 최고로 위대한 순간”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지만 “통일 이후 동독인의 70%가 자신을 2류 독일인이라고 여긴다”는 증언도 공존한다. 동독에서 사회 지도층이던 아버지가 통일 후 재판을 받고 실직과 명예 실추의 과정을 겪는 모습을 지켜본 당시 10대였던 딸은 “법이 늘 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동독 출신의 또 다른 엔지니어는 “통일 직후 처음에는 반기던 서독의 친지들이 시간이 지나며 더이상의 교류를 원하지 않았다”며 씁쓸해한다.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이 많지만 한국과 비교해 분단 기간이 짧고 상호 접촉의 기회가 많았던 독일조차 통일 이후 통합 과정은 쉽지 않았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독일은 ‘전환’에 대비한 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한국은 어쩌면 독일이 필요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 모른다”는 독일 사회학자의 조언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20일 개봉하는 ‘헝거게임: 모킹제이’(헝거게임3)는 게임이 아닌 진짜 전쟁을 다룬다. 전편이 전쟁 같은 게임이라면 이번엔 게임 같은 전쟁이다. 2편에서 독재국가 판엠이 체제 유지를 위해 홍보수단으로 삼던 서바이벌 게임(헝거게임)의 무대를 무너뜨린 캣니스(제니퍼 로런스). 3편에선 반정부 세력이 모여 있는 13구역에 합류한다. 그곳에서 그는 13구역 대통령 알마 코인(줄리앤 무어)에게서 혁명의 아이콘이 돼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가족과 친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움터에 나섰던 소녀가 실제 혁명의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이 3편의 핵심이다. 전편과 비교하면 액션이나 판타지물 특유의 시각적 자극은 줄었다. 3편의 주요 배경인 13구역은 지하 요새와 같은 황량한 모습으로 1, 2편의 배경이던 ‘캐피톨’의 화려함과 대조를 이룬다. 캣니스가 활을 들고 싸우는 장면보다 내면적인 갈등이 더 부각되는 것도 특징이다. 캣니스는 판엠 내 혁명군을 모으기 위한 선전 영상 ‘프로포’에 출연하지만 혁명을 위한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1, 2편이 그렇듯 3편 역시 미디어가 중요한 소재로 활용됐다. 지배세력은 지배세력대로, 반군은 반군대로 미디어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애쓴다. 캣니스가 전장으로 나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 것도 선전 영상에 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담기 위한 미디어 전략을 따른 결과였다. 엄밀히 말해 헝거게임3는 속편을 위한 전초전의 성격이 강하다. 앞서 두 편을 통해 1조5000억 원의 흥행수익을 올린 ‘헝거게임’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 ‘트와일라잇 브레이킹 던 파트1’이 그랬던 것처럼 원작 시리즈의 마지막 권을 두 편으로 쪼개 팬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45분짜리 이야기를 몇 시간에 걸쳐 느긋하게 묘사한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내면 연기까지 보여주는 제니퍼 로런스는 더욱 매력적이다. 줄리앤 무어와 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연기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미덕이다. 15세 이상.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사단법인 한국방송작가협회(이사장 이금림)는 방송 평론가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 '한국방송평론상'을 제정해 공모한다.방송작가협회는 "'한국방송평론상'은 관련 직능단체가 만든 최초의 방송관련 평론상으로 올바른 방송평론의 확산을 통해 방송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제정했다"고 밝혔다.제1회 한국방송평론상은 누구나 응모 가능하며 접수 기간은 다음달 10일부터 20일까지다. 지상파와 케이블에 방송된 TV, 라디오 프로그램(보도, 스포츠부문 제외)을 대상으로 한 미발표 평론이면 된다.당선작은 2015년 2월 발표할 예정으로 최우수상 1편에 1000만 원, 우수상 2편에 각각 500만 원의 고료가 지급된다. 자세한 문의는 한국방송작가협회 총무부 02-782-1696.구가인기자 comedy9@donga.com}

tvN 드라마 ‘미생’의 성공에는 캐스팅도 한몫했다. 20부작 미니시리즈인 미생에는 엑스트라급 단역을 제외하고도 50명이 넘는 배우가 등장한다. 웬만한 사극보다 많다. 주연급 배우를 정한 뒤 필요할 때마다 조연을 뽑는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미생은 올 4월 본격 캐스팅을 할 때 조연 배우를 함께 선발했다. 연출자인 김원석 PD는 캐스팅에서 연기력은 물론이고 ‘원작 만화와 최대한 닮을 것’ ‘배우가 아닌 진짜 회사원 같을 것’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고, 미생의 최길홍 캐스팅 디렉터는 이 조건을 맞추느라 “스트레스성 원형탈모가 생겼다”고 했다.○ ‘맞춤 캐스팅’ 김 대리와 한석율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 김 대리 역의 김대명(34)과 장그래의 동기 한석율로 나오는 변요한(28)은 특히 캐스팅에 공을 들인 배우다. “시청자가 신선해할 만한 얼굴을 찾던” 제작진에게 대중적으로 낯설지만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고 원작 캐릭터와 닮은 이들은 조건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극 중 원인터내셔널의 모델이 된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로부터 “거래처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소름 돋을 만큼 회사원 같다”는 평가를 받는 김대명은 임시완보다 먼저 캐스팅됐다. 주인공 오상식 과장 역의 이성민이 주연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조연으로 나왔던 그는 이 영화의 시사회에서 제작진의 레이더망에 잡혔다.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김 대리의 넉넉한 풍채와 대비돼 “반전매력을 풍기는 점”도 가산점을 받았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테러범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다. 한석율 역의 배우 캐스팅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20대 중후반 배우군을 샅샅이 훑었지만 코믹하고 가볍고 대기업 신입사원 같아 보이면서 위화감을 주지 않는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변요한은 수백 명의 배우 오디션 끝에 발굴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으로 영화 ‘감시자들’과 ‘우는 남자’ 등 1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미생이 그의 첫 드라마이다.○ ‘말없이’ 연기하는 다른 팀 직원들 드라마의 배경은 직원 수 2000∼3000명인 대기업 상사. 제작진은 조직도를 짜고 필요한 인물을 추렸다. 드라마에는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 외에도 여주인공 안영이(강소라)가 근무하는 자원팀, 장백기(강하늘)의 철강팀, 한석율의 섬유팀은 물론 다채로운 팀의 조직원들이 출연한다. 이들 중엔 연극계와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가 많다. 단 한 회만 출연하는 배우도 원작 그림과 프로필 사진을 일일이 대조해 캐스팅한 덕분에 드라마에는 원작과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가 자주 나온다. 6회에 출연한 IT영업팀 박 대리 역의 최귀화(36)는 드라마가 끝난 후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을 찍고 있어 스케줄 조절이 어려웠지만, 제작진은 원작 캐릭터와 꼭 닮은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드라마 촬영 일정을 조정했다. ‘말없이’ 고생하는 배우들도 많다. 영업3팀 옆에 있는 영업2팀 배우들이 그렇다. 이재문 tvN PD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별 대사 없이 하루 종일 키보드를 치거나 전화를 받는 역할도 엑스트라가 아닌 실제 배우를 썼다”면서 “영업3팀을 찍을 때마다 자연스레 영업2팀이 드러나다 보니 촬영 때마다 2팀 배우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연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tvN 드라마 '미생'의 성공에는 캐스팅도 한몫했다. 20부작 미니시리즈인 미생에는 엑스트라급 단역을 제외하고도 50명이 넘는 배우가 등장한다. 웬만한 사극보다 많다. 주연급 배우를 정한 뒤 필요할 때마다 조연을 뽑는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미생은 올 4월 본격 캐스팅을 할 때 조연 배우를 함께 선발했다. 연출자인 김원석 PD는 캐스팅에서 연기력은 물론 '원작 만화와 최대한 닮을 것' '배우가 아닌 진짜 회사원 같을 것'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고, 미생의 최길홍 캐스팅 디렉터는 이 조건을 맞추느라 "스트레스성 원형탈모가 생겼다"고 했다. ●'신의 한수' 캐스팅-김대리와 한석율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 김 대리 역의 김대명(34)과 장그래의 동기 한석율로 나오는 변요한(28)은 특히 캐스팅에 공을 들인 배우다. "시청자가 신선해할만한 얼굴을 찾던" 제작진에게 대중적으로 낯설지만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고 원작 캐릭터와 닮은 이들은 조건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극중 원인터내셔널의 모델이 된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로부터 "거래처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소름 돋을 만큼 회사원 같다"는 평가를 받는 김대명은 임시완보다 먼저 캐스팅 됐다. 이성민이 주연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조연으로 나왔던 그는 이 영화의 시사회에서 제작진의 레이더망에 잡혔다.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김 대리의 넉넉한 풍채와 대비돼 "반전매력을 풍기는 점"도 가산점을 받았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테러범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다. 한석율 역의 배우 캐스팅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20대 중후반 배우군을 샅샅이 훑었지만 코믹하고 가볍고 대기업 신입사원 같아 보이면서 위화감을 주지 않는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변요한은 수백 명의 배우 오디션 끝에 발굴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으로 영화 '감시자들'과 30편이 넘는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미생이 그의 첫 드라마이다. ●'말없이' 연기하는 다른 팀 직원들 드라마의 배경은 직원 수 2000~3000명인 대기업 상사. 제작진은 조직도를 짜고 필요한 인물을 추렸다. 드라마에는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 외에도 여주인공 안영이(강소라)가 근무하는 자원팀, 장백기(강하늘)의 철강팀, 한석율의 섬유팀은 물론 다채로운 팀의 조직원들이 출연한다. 이들 중엔 연극계와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가 많다. 단 한 회만 출연하는 배우도 원작 그림과 프로필 사진을 일일이 대조해 캐스팅한 덕분에 드라마에는 원작과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가 자주 나온다. 6회에 출연한 IT영업팀 박 대리 역의 최귀화(36)는 드라마가 끝난 후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을 찍고 있어 스케줄 조절이 어려웠지만, 제작진은 원작 캐릭터와 꼭 닮은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드라마 촬영 일정을 조정했다. '말없이' 고생하는 배우들도 많다. 영업3팀 옆 팀인 영업2팀 배우들이 그렇다. 이재문 tvN PD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별 대사 없이 하루 종일 키보드를 치거나 전화를 받는 역할도 엑스트라가 아닌 실제 배우를 썼다"면서 "영업3팀을 찍을 때마다 자연스레 영업2팀이 드러나다 보니 매 촬영마다 2팀 배우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연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구가인기자 comedy9@donga.com}

“담배 못 피우고 담뱃갑만 만지작거리다니, 오 과장님 담배에 불 붙여 드리고 싶네요.” tvN 드라마 ‘미생’에는 오상식 과장(이성민)이나 김동식 대리(김대명)가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들고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들은 담배를 만지작거리거나 입에 물지만 절대 불을 붙이는 법은 없다. ‘흡연을 다룰 때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방송심의규정 28조 때문이다. 온라인에는 “담배만 피울 수 있어도 미생의 작품성은 배가됐을 것” “담배를 담배라고 부르지 못하다니, 홍길동도 아니고…”라며 안타까워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연출자인 김원석 감독은 “회사 건물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기 전이 드라마의 배경이어서 직장인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담배 장면이 불가피했다”면서 “오 과장은 담배를 끊었지만 냄새를 맡으며 참고, 김 대리는 담배 냄새만 맡고 버리는 설정”이라고 설명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검찰청 배경의 MBC ‘오만과 편견’과 SBS 농촌드라마 ‘모던 파머’를 보면서 의상에 대한 여배우의 고뇌(?)를 느꼈다. 특정 직업군을 부각한 드라마에서는 예쁘게 보여야 하는 여배우의 숙명(!)과 극 중 캐릭터가 충돌하기 마련. 배우들은 옷차림 때문에 배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난을 사기 십상이다. ‘오만과 편견’ 시청자 게시판에는 “검사가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현장검증을 다니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글도 올라왔다. 현직 여검사들과 여성 농부들에게 패션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수습검사 한열무(백진희)-“현장수사에선 바지 정장을” SBS ‘검사 프린세스’ 속 공주풍 의상에 비하면 ‘오만과 편견’에서 모노톤으로 나오는 백진희 의상은 평이하기 짝이 없다. 다만 미니스커트는 (백진희의 작은 체구에는 어울리지만) 검찰청에서는 희귀한 차림이다. 현직 여검사는 “후배가 백진희처럼 입고 출근했다면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것”이라면서 “현장을 지휘할 때 그런 차림으로 신뢰감과 권위, 기동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하이힐에 대해선 “남성들과의 ‘기 싸움’에서 하이힐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며 관대했다. 여검사의 패션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채색 계열의 일명 ‘유관순 복장’이 대부분이었으나 여자 검사가 늘면서 색깔이 다채로워지고 액세서리도 화려해졌다. 한 여성 검사는 “현장검증 갈 때 핑크색 하이힐을 신은 적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 부장검사는 “여검사의 개성을 살린 의상이 경직된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마을 이장 강윤희(이하늬)-“몸뻬보단 등산바지를” ‘모던 파머’에서 이하늬는 민무늬 티셔츠에 몸뻬, 혹은 ‘꽃가라’ 셔츠에 샛노란 7분 바지를 입고 고무신이나 장화를 신는다. ‘예쁜 척 안하려는’ 노력은 가상하나(물론 미스코리아 출신인 그는 이 의상들조차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한다) 실제 농부들은 “시대착오적이거나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혹평했다. 한 농촌 여성은 “이하늬 옷은 색상이 너무 밝아 농사를 지을 때 입긴 어렵다”면서 “출연자들이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은 모습도 보이는데 벌레 물리기 십상”이라고 귀띔했다. 수년째 주말 농사를 짓는 30대 직장인 여성은 “요즘 농부들은 몸뻬보단 울트라 스트레치진이나 기능성이 좋은 등산바지를 선호한다”고 했다. 그는 “몸뻬는 통기성이 좋아 여름에 더러 입긴 하지만 얇고 펄럭거려서 모기에게 쉽게 물린다”면서 “드라마에선 배추 농사를 짓는데 장화보다는 등산화나 운동화가 더 편하다”고 조언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배우는 크게 둘로 나뉜다. 맡은 캐릭터를 자기화하는 배우, 배역에 온전히 흡수돼 버리는 배우. 설경구(46)는 후자다. ‘박하사탕’(1999년) ‘오아시스’(2002년) ‘실미도’(2003년) 같은 작품에서 그는 메소드 연기(극중인물과 동일시하는 극사실주의 연기)의 극치를 보여줬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나의 독재자’는 주인공 김성근 역을 맡은 설경구 연기의 진가를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72년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으로 뽑힌 성근은 배역에 몰입하다 진짜 김일성이라고 믿어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회담이 무산되고 노인이 돼서까지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는 아들(박해일)에게 골칫거리다. 메소드 배우가 ‘메소드적인 인생’을 연기한 셈이다. 설경구는 “배우보다 아버지에 주목했다”고 했다. “(김일성 배역에서) 못 빠져 나온 건지, 안 빠져 나온 건지. 난 일부러 안 빠져 나온 거라고 봐요. 일종의 고집인 거지. 그런데 노인이 된 성근이 아들 태식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아요. 그건 미안함 때문이죠. 그렇게 살게 된 것에 대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이 다 그렇잖아요.”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믿으며 닮아가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김일성을 연기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북한 선전영화를 보며 김일성의 손동작을 따라하고 사투리 지도를 받았지만 “맡은 배역이 김성근인 만큼 김일성을 닮으려고 애쓰진 않았다”고 했다. 다만 특수 분장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노인이 된 성근을 연기하기 위해 촬영 때마다 다섯 시간씩 분장을 했다. “분장 선생님이 영화 ‘은교’(2012년) 때 하신 분인데, 저 분장 해줄 때마다 해일이는 전례가 없어 이 짓을 10시간씩 했다면서 ‘불쌍한 해일이’ 얘기만 했어요.” 박해일은 ‘은교’에서 노교수 이적요로 나왔다. 영화 속 김성근만큼은 아니지만 그에게도 잔상이 오래 남았던 작품은 있다. ‘박하사탕’ 땐 촬영장 밖에서도 주인공처럼 살다 보니 주변사람들이 불편해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아시스’에선 살을 20kg 가까이 빼고 ‘역도산’(2004년)에서는 반대로 그만큼 늘렸다. 이번엔 김일성 식 풍채를 갖기 위해 살을 7∼8kg 찌웠다. 최근에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서부전선’ 촬영을 하느라 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딸과 동갑인”인 여진구와 연기호흡을 맞춘다. “나는 그런 옷(군복) 입고 하는 게 편해. 그런데 살은 지금보다 더 빼야 해요. 또 굶어야지 뭐….”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누군가 어느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쿠엔틴 타란티노는 괜찮은 선택지다. B급 감수성과 유머를 사랑하는 ‘쿨한 영화 애호가’라는 인상을 주기에 적격이기 때문이다. 혹시 상대가 ‘그의 영화는 너무 폭력적이지 않냐’고 되묻는다면 이 책을 인용해도 좋다. “쿠엔틴이 말했죠. 폭력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의 일부라고. 영화 속 폭력이란 취향의 문제죠.”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1992년)로 데뷔했을 당시부터 흑인 장고를 등장시켜 화제가 된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년) 직후 인터뷰까지 20년간 기자, 영화평론가, 교수 등과 진행한 24번의 인터뷰를 모았다. 28세에 선댄스 영화제에서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타란티노는 “스티븐 스필버그 이래 가장 강력한 원투 펀치를 날린 감독”(평론가 짐 호버먼)이 됐다. 많은 인터뷰는 그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배우를 꿈꾸며 중학교를 중퇴하고 5년간 비디오 가게에서 일했던 이력을 주목한다. 실제로 “비디오 가게가 대학이었다”고 표현한 타란티노는 “백인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지냈던 시절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끊임없이 사기를 치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감옥에 갔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늙은 감독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60대에는 영화를 만들지 않고 소설을 쓰거나 영화관을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힌다(2003년 인터뷰라 생각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수다스러운 자신의 영화처럼 감독 역시 입담이 좋다. 타란티노의 팬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자영업을 하는 박모 씨(32)는 tvN 드라마 ‘미생’의 열렬한 팬이다. 프로 바둑기사 입단에 실패한 젊은이가 대기업 무역상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후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를 그는 매주 ‘본방 사수’한다. 박 씨는 “취업난, 비정규직의 설움을 겪어봐서 남의 일 같지 않다. 대기업 경험이 없어서인지 세밀하게 그리는 조직 이야기도 흥미롭다”고 했다. 1% 남짓한 시청률에서 시작한 ‘미생’은 방영 3회 만에 3%대(닐슨코리아)를 돌파했다. 지난해 히트작 ‘응답하라 1994’보다 가파른 상승세다. 직장생활은 요즘 대중문화가 가장 주목하는 소재다. KBS2 ‘개그콘서트’의 ‘렛잇비’나 tvN ‘코미디 빅 리그’의 ‘리액션 스쿨’은 직장생활을 풍자한 내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상 결혼과 가상 육아에 이어 가상 취업을 다룬 프로도 나왔다. tvN ‘오늘부터 출근’은 로이킴 봉태규 은지원 등 연예인의 가상 입사기를 보여주는 관찰 예능이다. 다음 달 13일 개봉하는 영화 ‘카트’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명한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직장 소재 대중문화 콘텐츠는 일자리에 관한 관심이 그만큼 높고 절실함을 입증한다. 예전엔 직장생활이 누구나 하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결혼과 육아가 그렇듯 판타지와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오늘부터 출근’을 기획한 김석현 CJ E&M 부국장은 “기업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다. 시청자들이 직장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이 높다는 생각에서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졸 출신이 대기업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멋지게 성장하는 이야기(‘미생’)가 어느 영웅담 못지않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유도 그만큼 현실에서 실현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취업은 젊은층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12일부터 4부작 파일럿으로 방송 중인 KBS ‘나 출근합니다’는 중장년층이 재취업을 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남기 KBS PD는 “일반인들의 재취업 과정이 관심을 모을 수 있을지 우려했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정규 편성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직장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는 예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과거 대중문화 속 직장이, 여직원이 그룹 오너의 아들과 연애하는 공간이거나 소소한 갈등이 존재하는 곳이었다면 요즘의 직장은 훨씬 드라마틱하고 살벌해졌다. 대표적인 ‘오피스물’인 KBS ‘TV 손자병법’(1987∼1993년 방영)과 요즘의 ‘미생’을 비교해보자. 경제성장률이 두 자릿수에 가깝던 시절 제작된 ‘TV 손자병법’은 직장인인 등장인물끼리 소소한 오해와 갈등을 겪지만 금세 화해하는 가족극에 가까웠다. 반면 ‘미생’ 속 직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턴 등 계급이 다른 사람들 간 차별과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영업 경쟁, 사내 정치가 살벌하게 오고가는 전쟁터에 가깝다. 비정규직 처우와 같은 노동 문제가 진지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미생’의 주인공은 인턴 면접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도 신분증 색깔이 다른 2년 계약직으로 입사한다. ‘카트’는 비정규직 해고 문제를 모른 척하는 정규직의 이기심을 꼬집는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같은 공간에서 하는 일이 같더라도 신분이나 소속이 다른 사례가 늘다 보니 직장에서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의 갈등이 더 정교해지고 늘어났다. 대중문화 콘텐츠 역시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구가인 comedy9@donga.com·이새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