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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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29~2025-12-29
문화 일반52%
문학/출판23%
연극13%
교육3%
무용3%
산업3%
학술3%
  • [책의 향기]‘비우면 비로소…’ 최인호가 전하는 행복론

    저자의 5주기인 올해, 포근하고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동화 같은 작품을 만났다. 1981년 ‘문학사상’에 연재했던 연작소설 3개를 묶어 냈다. 오직 집 한 채를 가지길 소망하는 이(‘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 높이 뛰어올라 사라져 버리려는 높이뛰기 선수(‘포플러나무’), 갑자기 말을 하지 않는 남성(‘침묵은 금이다’)은 생의 의미를 다각도로 비춘다. ‘이 지상에서…’의 아이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꿈꾸던 집을 갖게 된다. 한데 일대가 공원이 되면서 집은 철거된다. 할아버지는 집이 있던 자리의 풀밭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 살다 공원관리사무소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할아버지가 머물던 곳에는 토끼풀이 살고 비, 바람이 지나가며 생명이 이어진다. 소년은 이를 보며 생각한다. 이 우주가 모두 할아버지의 집이라고. 평생 높이뛰기 연습을 하다 하늘로 솟구쳐 오른 뒤 나타나지 않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깨닫는다. 이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던 저 먼 곳에서부터 높이뛰기해서 잠시 머물다 가는 허공이며, 우리가 돌아가서 착지하는 곳이야말로 지친 영혼을 영원히 받아주는 지상의 세계라고. 어떤 말에도 진실이 깃들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된 후 입을 닫은 남성은 말을 하지 않는 동안 행복했다. 그때야 비로소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말하려 애쓰지만 혀가 굳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직장을 잃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다. 그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남이 신다 해진 신발을 꿰매고 나서부터다. 가장 낮은 곳의 때 묻고 낡은 것을 고쳐줄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 것. 말은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는 ‘나’에게 말해준다. 자신이 뱉은 말이 ‘말빚’임을, 자신이 쓴 글이 ‘글빚’임을 잊지 않는다면 삶은 그만큼 충만하고 진실해질 수 있음을 정제된 문장으로 써내려갔다. 그리고 비우고 낮춰야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넌지시 일러준다. 저자가 마음을 깊이 담아 남기고 간 선물을 조금 늦게 발견하고 풀어본 기분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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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전쟁의 시작… 일본은 왜 세계를 적으로 돌렸나

    “인간의 상식을 넘어서, 학문적인 판단도 넘어서, 전쟁은 벌어졌다. 일본은 세계를 적으로 돌렸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과 영국에 대한 기습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날, 정치학자 난바라 시게루는 이렇게 탄식했다. 당시 미국은 국민총생산(GNP)이 일본의 12배에 가까웠다. 이런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전쟁을 감행한 이유는 뭘까. 중일전쟁 후 미국이 중국에서 손을 떼지 않자 미국 세력을 몰아내기로 한 것이다. 중일전쟁을 위해 조성해 둔 군비로 군사력을 급격히 끌어올린 일본 정부는 단기전은 승산이 있다고 오판했다.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일본의 근대 침략전쟁의 원인과 특징을 세계 역사 속에서 짚었다. 중고생 대상 특강을 정리한 책으로, 쉽고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성인 독자가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일본 중국 한국 미국 등의 내부 상황은 물론이고 국제관계를 조명해 세부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넓은 시야로 당시 정세를 이해할 수 있다. 근대 일본이 강대국과 벌인 첫 전쟁인 청일전쟁(1894∼1895년)은 중국 중심의 화이질서가 무너지자 조선을 두고 경쟁하며 벌어졌다. 청은 러시아를, 일본은 영국을 각각 대리해 나선 제국주의 전쟁의 대리전이기도 했다. 청일전쟁 결과 일본은 화이질서에서 벗어났다. 러일전쟁으로 일본은 서구 열강에 대등한 지위를 인정받음으로써 식민지 질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본은 영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산둥반도의 독일 영역을 공격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하지만 전후 일본은 산둥반도 이권, 조선 통치 등에 대해 미국 영국으로부터 비판을 받자 고립감을 느끼고 더 넓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일본이 벌인 전쟁의 속성을 현대 전쟁과도 연결시킨다. 9·11테러 후 미국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시각으로 이라크전쟁에 나섰다. 중일전쟁(1937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당시 베이징 교외에서 중국군과 일본군이 충돌해 전면전으로 확대되자 일본 정부는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의 불법 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해 실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로, 이라크전쟁을 벌인 미국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의 원인과 의미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판적 입장도 적극 소개한다. 해군 미즈노 히로노리의 일갈(1929년)이 대표적이다. “주요 물자의 8할을 외국에 의존하는 섬나라 일본의 생명줄은 통상이다. 일본은 무력전에서는 이겨도 현대의 전쟁인 지구전, 경제전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일본은 전쟁할 자격이 없다.” 이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은 다른 선택을 했다. 현재 일본은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저자는 천황을 포함해 당시의 내각, 군 지도자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답한 이가 절반을 넘었다는 설문 결과(요미우리신문·2005년)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전쟁을 둘러싼 판단 과정과 파장, 책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며 읽는 이를 사유의 세계로 초대하는 노련하고 힘찬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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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조… 정호승… 신달자…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담은 詩心

    ‘고래는/요동치는 섬이며 숲이다/창과 작살이 그 몸에 박혀/피와 녹물이 흘러도/그는 죽지 않는다/천하제일의/장엄한 고독이여/지축도 흔드는 무적의 힘이여//….’ 김남조 시인의 ‘고래’다. 김 시인을 비롯해 정호승 신달자 나태주 윤후명 오탁번 등 36명의 시인이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얻어 육필로 쓴 시를 전시하는 ‘대곡천 암각화 육필 화시전’이 울산 울주군 반구대교육문화센터에서 16일까지 열린다. 이후 작품들은 울산문화예술회관, KTX울산역을 비롯해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을 순회하며 전시된다. 반구대 포럼은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이번 화시전(畵詩展)을 기획했다. 암각화의 보존을 촉구하고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의미도 있다. 윤후명 시인은 ‘바위 위의 얼굴’을 쓰고 직접 그림도 그렸다. ‘고래를 따라/나는 오랜 세월 바다를/떠돌았다// …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하여/얼굴을 비춰보는 이 바위에/그려진 모습이여/바위 깊이 새겨진 내 삶이여’ 허영자 시인은 ‘누구였을까’에서 시대를 초월한 모정을 노래했다. ‘새끼를 등에 업은/고래나/애기를 등에 업은/사람이나/엄마 마음은 매한가지// … 이 마음 이 사랑을/곱게 헤아려/돌에 새긴 그 이는/누구였을까’ 화시전에 참가한 시인 가운데 많은 이들은 과거에 이미 개인적으로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행사의 공동추진위원장인 이건청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 땅의 선사인들이 창작한 암각화가 현대 시인들에 의해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됐다”며 “멸절 위기에 처한 암각화의 소중한 가치를 널리 알리고 근본적인 보존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관람료는 무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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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석제·은희경·윤흥길… 그들이 온다

    성석제, 은희경, 무라카미 하루키, 유발 하라리, 스티븐 핑커….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그들이 온다. 향기로운 새 책을 손에 들고서.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독자들을 만나는 작가도 많다. ○역사, 미스터리, 페미니즘 성석제 작가는 4년 만의 장편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를 상반기에 펴낸다. 조선 숙종 시대, 왕과 의형제를 맺게 된 주인공이 격랑 속에서 왕을 지키기 위해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모험담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윤흥길 작가는 20년 만에 대하소설 ‘문신’(전 5권)을 하반기에 출간한다. 일제강점기 열강의 이권 다툼에 휩싸인 한반도를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가족의 삶이 펼쳐진다. 은희경 작가는 학창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1970년대 여자대학 기숙사 이야기를 쓴 장편소설을 하반기에 낸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각기 다른 기억을 지닌 이들을 비춘다. 상반기에 나오는 이기호 작가의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는 페미니즘 장편소설을 10월경 선보인다. 정이현 작가도 장편소설 ‘아무도 죽지 않는 밤’을, 최은영 작가는 두 번째 소설집을 각각 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최신작 ‘버스데이 걸’은 2분기에 출간된다.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소녀가 수수께끼의 노인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르한 파무크의 장편소설 ‘빨간 머리 여인’(4월), 전쟁으로 황폐해진 파리에서 인간과 고양이가 생존을 위해 힘을 합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5월)도 나온다. 창간 준비를 하며 화제가 되는 스캔들을 찾으려는 신문사를 그린 움베르트 에코의 ‘제0호’는 상반기에 만날 수 있다.○ 세계 변화, 노화, 인간 본성 고찰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의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8월 내놓는다. 민주주의의 위기, 종교의 부흥, 세계대전의 위협, 서구 패권의 몰락에 이은 중국과 이슬람의 득세에 대해 기술했다. 3월 출간될 영국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의 ‘여성과 힘’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여성들이 자신의 힘에 대한 부당한 시각에 어떻게 맞서왔는지에 대한 책이다. ‘카오스’의 미국 작가 제임스 글릭이 쓴 ‘시간여행의 역사’(7월)는 시간여행 가설의 과학적 원리와 아울러 문학, 영화, 철학 영역에서 연구된 이 전복적 관념의 변천사를 짚었다. 마사 너스바움 미국 시카고대 윤리학 석좌교수와 같은 대학 로스쿨 학장 사울 레브모어가 쓴 ‘Aging Thoughtfully(사려 깊게 나이 들기)’는 은퇴, 노년의 우정, 불평등과 빈곤, 건강 등 폭넓은 고민을 다뤘다. 11월경 나온다. 스벤 베커트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의 ‘면화의 제국’(3월)은 자본주의의 기원을 면화라는 물품을 통해 살폈다. 자본주의와 전쟁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이다. 상반기에 나오는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생각거리’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봤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비망록을 바탕으로 쓴 ‘이국종 에세이’(가제)도 상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외상센터 수술실에서 매일 벌인 사투, 한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고뇌, 의사로서의 소명에 대한 사색을 정리했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손택균 기자}

    • 201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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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중편소설 당선작]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 줄거리

    1. 인터뷰 장맛비가 오는 저녁, 나는 학위 논문에 쓸 인터뷰를 수정하기 위해 국제난민기구의 한국 대표부를 향했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와 에어컨 냉기가 사라지자 안경 렌즈가 삽시간에 부옇게 변했다. 나는 손을 뒤로 뻗어 가방 안쪽을 뒤적거렸다. 안경집이 깊숙이 처박혔는지 손에 걸리지 않았고 등에는 금방 땀이 솟았다. 그때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했고 한 장소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바람이나 냄새를 동반하기도 했다. 아주 흐릿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나는 기억의 늪 위로 떠오르려는 것들의 실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실체를 마주하기 전에 알아차려지기 마련이고, 그게 두려움이나 공포라면 반응 속도는 훨씬 빠르니까. 난민기구를 찾은 건 학위 논문에 쓸 인터뷰를 최신 것으로 수정하라는 지도교수의 조언 때문이었다. 제네바 국제개발대학의 저명한 노학자인 내 지도교수는 내후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논문을 끌어오던 몇몇 학생들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것으로 그가 갖고 있던 부채감을 덜어내는 의식을 치렀다. 그는 내게 보낸 메일의 말미에 용기의 의미에 대해 썼다. 용기란 주어진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품고 가는 것이라네. 그 문장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나는 다시 인터뷰를 해볼 용기를 냈다. 5년 전 그리스에서 진행하던 사례 연구를 중도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계약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내게 이번 기회는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었다. 물론 내게는 난민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남아 있었다. 이 모든 이유들이 넝쿨처럼 단단하고 질퍽하게 뒤엉켜 나를 옭아맸다. 인터뷰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나는 무하마드의 비정상적인 관심에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운동화 끈을 묶으며 섬뜩하게 웃는 무하마드의 표정은 강렬한 데다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마지막까지 무하마드가 아술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도리어 무하마드의 사례가 내 논문을 돋보이게 해 줄 거라고 확신했다. 일주일 뒤, 나는 인터뷰이들과 다시 만났다. 아이들이 들려준 난민캠프는 전쟁터나 다름이 없었다. 일순간 일터와 학교가 폭파되고 집과 가족을 잃고 일상이 무너진 그들에게 삶은 이미 지옥이었다. 소요 사태와 총기 난사는 잠잠하다 싶으면 일어났고 늘 부족하던 구호품은 도난당하기 일쑤였으며 아이든 어른이든 여성은 늘 극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무하마드는 화재로 죽은 누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와 해변에 나갔다 돌아왔을 때 텐트는 화염에 휩싸인 채 타오르고 있었다고 했다. 누나와 남자는 텐트 안에 갇혀 죽은 채 발견되었다. 누나는 나체였고 남자는 하의를 탈의한 상태였다. 텐트에는 발화의 원인이 된 촛불만 덩그러니 바닥을 굴러다녔다. 남자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지만 무하마드는 그가 누군지 금방 알아보았다. 남자의 팔 한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가 ‘아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 레스보스 5년 전 겨울, 나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난민캠프에서 봉사단원으로 일했다. 내가 맡은 임무는 구호 물품을 정리하는 것이었지만 비상 상황으로 나 역시 구조 작업에 합류했다. 라일라와 아술은 그날 내가 구조선에서 처음 목격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난민 보트 위에 비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라일라는 아이들을 살리려다 죽어간 어머니의 손을 새벽 내내 붙들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연민과 애정의 마음으로 라일라에게 각별히 정성을 쏟았다. 라일라는 피난길에 안경을 잃어버려 생활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었고 그것을 눈여겨봐 온 나는 어느 저녁 산책길에 내 안경을 라일라에게 선물했다. 빛이 충만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라일라가 말했다. “어떤 책에서 봤는데요. 달의 빛은 태양에 반사되어 나온대요. 그래서 육안으로 태양의 빛은 볼 수 없어도 달의 빛은 볼 수 있대요.” 라일라가 나를 슬쩍 보더니 말을 이었다. “언니에게는 따뜻한 빛이 흘러요.” 그때 저편에서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어둠 속 희미한 실루엣은 물류 팀 팀장과 선배 린이었다. 나는 라일라와 나를 향한 그들의 불편한 기운을 감지했다. 마침 캠프의 문제아 하싼이 일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와 팀장, 린은 그 길로 현장을 찾았다. 하싼의 패거리는 새로 온 난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싼은 결국 그리스 경찰에 호송됐다. 나는 경찰차에 억지로 호송되는 하싼을 바라봤다. 하싼이 입은 티셔츠 오른쪽 팔이 나풀거렸다. 내전 중에 거리에 떨어진 수류탄이 터져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하싼은 난민캠프에 들어와서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깨어난 하싼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고 했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싼의 가족들은 그때까지도 시리아에 남아 있었고 어린 여동생은 폭파된 집에서 잿더미로 변한 채 꺼내졌다고 했다. 나는 경찰차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얼마 안 가 그가 다시 난민캠프로 들어올 거라는 건 하싼도 우리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그리스 정부에 난민캠프는 골칫덩어리였다. 일이 터져도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 경찰은 캠프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 사이 난민캠프는 유서 깊은 고대 유적지 그리스의 한쪽 땅에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었다. 새로운 폭력이 탄생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갔다. 세상이 그곳에서 종말을 고했고 다시 해가 뜨면 종말 속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고개를 돌린 나는 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았다. 이 모든 상황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라일라의 뒷모습이 현장으로부터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팀장의 질책을 들으며 나는 린이 나를 모함한 거라고 확신했다. 팀장과 서먹하게 인사를 나눈 후 나는 린을 찾아가 항변했다. 린은 오히려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로 라일라와의 관계에서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는 그녀의 오해에 엉겁결에 큰 소리를 치고 창고를 나왔다. 정작 밖으로 나와 나는 한참 머뭇거렸다. 정황상 무슨 행동이라도 취하지 않을 수 없어진 나는 사무실에 가서 난민 입양 절차를 물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내가 깨달은 사실은 봉사단원들이 그동안 나를 사례 관찰이나 하러 온 뜨내기로 치부해 왔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며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왔다. 더는 레스보스에 남고 싶지 않았다. 3. 한국행 결국 나는 이주 후 퇴소 처리를 했다. 학교가 있는 제네바가 아니라 한국행을 택했다. 마지막까지 라일라가 마음에 걸려 한국에 가더라도 라일라를 돕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나 역시 월세 난민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그 사이 시리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 간 내전이 주변 국가와 국제 사회의 무력 전쟁으로 변질되었고 난민들은 매년 수천 명씩 불어났다. 내 앞에 산적한 일상의 문제들도 규칙적이고 끈질기게 나를 흔들어댔다. 그토록 절박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기억의 세계에서마저 익사당하는 현실, 나로서도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가끔 라일라가 생각날 때면 나는 라일라를 입양하겠다고 소리를 질러대던 나의 한때의 충동을 아프게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일라가 그 사실을 알기라도 했다면 나의 그 돌이킬 수 없는 치기와 감상이 라일라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캠프의 봉사단원들과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른가, 그들은 적어도 여전히 그곳에 있지 않은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답이 없는 시간 속에 파묻혀 나는 깊이 침잠했다. 아이들이 죽었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도 끈덕지게 꼬리를 물었다. 그곳은 죽음이 무력한 곳, 죽음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타인의 죽음을 가벼이 여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곳이었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평범으로서의 악에 익숙해져 버리는 곳이었다. 나는 내가 아이들을 버려두고 도피했다는 자책감으로부터 끝끝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연락이 닿은 린을 통해 라일라의 소식을 접했다. 린은 라일라가 하싼에게 성폭행을 당하다 자의일지 모를 화재로 텐트 안에서 처참하게 죽어갔다고 전했다. 4. 내가 만든 사례 아술을 잘 이용하라는 지도교수의 조언에 따라 나는 힘들게 아술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아술의 인터뷰 내용은 다행히 논문의 얼개에 맞춘 방향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라일라에 대한 질문을 의식적으로 기피했다. 다섯 번째 인터뷰에서 아술은 하싼에 얽힌 자신과 라일라의 이야기를 꺼냈다. 막 캠프에 들어온 남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던, 왼팔 한가득 담요와 간식거리를 챙겨다 주던, 저녁마다 찾아와 자신을 보호해준 나쁜 새끼, 하싼에 대해.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집에 돌아온 나는 아술에 대한 나의 마음을 굳혔다. 나는 아술이 내 삶에 들어와 버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술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끌어안아 줄 사람은 이곳에서 내가 유일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아술이 한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려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아술은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인터뷰가 끝나고 아술의 숙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아술이 인터뷰 첫날 내게 보낸 일종의 신호였던 운동화를 발견했다. 캠프를 나오던 마지막 날 아침 내가 아술을 위해 따로 준비해 뒀던, 아술이 그토록 원했던 하얀 운동화였다. 아술은 내게 라일라의 유품인 안경을 건넸다. 안경이 라일라를 마지막까지 지킨 희망이었다고 말하며. 아술은 달빛이 태양의 빛에서 반사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내게 상기시켰다. “모든 행성이 태양처럼 빛날 필요는 없어요. 태양은 달을 통해 달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수성이나 목성을 통해 그것들의 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하는 빛이 되기도 하죠. 사람은 모두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봐요. 상황은 시선에 따라 이렇게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이기도 해요. 힘든 상황이 주어지면 곧 죽을 것같이 힘들지만 그 상황을 견디게 하는 게 때로는 하나의 물건, 한 사람, 하나의 희망일 수 있어요.” 아술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천천히 낮게 읊조렸다. “그 희망이 라일라에게는 안경이었어요. 당신에게는 논문이었겠지만…….” 5. 그래도 남는 것 일 년 후, 나는 학생 대표의 영광을 안으며 졸업장을 받았고 졸업식 후에는 유엔난민기구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할 기회를 얻으며 성공적으로 학위 후 과정에 진입했다. 그 후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한국개발학회 20주년 포럼의 발표자로 초청되었다. 이번 포럼 참석은 학계와 각국 정부에 내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였다. 포럼 전날 저녁에 나는 리허설 중인 회의장을 찾았다. 회의장을 둘러보다 우연히 다시 만난 난민기구의 직원에게서 아술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직원은 몇 달 전 아술이 난민캠프의 봉사단원 숙소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아술은 마지막까지 숙소를 지킨 봉사단원이었고 피격당한 그의 품에는 갓 태어난 예멘 출신의 남자아이가 아술의 손을 잡은 채 밭은 숨을 쉬고 있었다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발표 예행연습을 하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의식이 아뜩해지곤 했다. 다음 날, 포럼에서의 주제 발표는 순조롭게 끝났다. 폐회 후 만찬장에서 지도교수는 내게 중요한 인사들을 소개시켰다. 그들은 내 발표가 인상적이었다며 아술의 뒷이야기를 물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아술은 난민캠프의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고 내년 봄 다시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거짓말했다. 사람들은 내 사례가 시종일관 감동적이라며 흥분했다. 나는 만찬 내내 태연을 가장한 채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다. 현실에서 아술은 죽었지만 사례 안에서 그는 불멸의 지위를 얻었다고, 내가 만든 사례는 그렇게 굳혀져야 한다고 나는 내 자신에게 항변하고 읍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레스보스가, 라일라가, 아술이 점점 더 생생하게 되살아나 나는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술을 몇 잔이나 거푸 마셨지만 허물어진 마음의 중심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뛰듯이 호텔 밖으로 달려 나가 먹은 것을 모조리 게워 냈다. 그러곤 주저앉아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았다. 멀리 호텔 경사면 사이에 둥근 달이 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술은 그날 밤 달을 보며 희망에 대해 말했다. 그가 말하던 희망이 지금 나에게는 참담한 절망의 사례가 되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내가 만든 사례 안에서, 이제는 아술이 아닌, 나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사례가 되어 있었다. 벽을 손으로 짚었지만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주저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호텔 경사면 사이에 떠 있던 달이 사라졌다. 태양의 빛에서 반사되어 나온다는 빛마저 스러진 시간, 누군가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 당선소감 - 최유안 씨글과 세상에 조용히 스며들어 가겠습니다 세 살 때 오른쪽 발목이 자전거 바퀴에 말려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으면 평생 발을 쓰지 못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그 순간이 제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쓰는 삶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후 언제 어디서든 어느 형태로든 소설을 쓰고 또 썼습니다. 그동안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소설을 짓는 동안 소설이 저를 짓는다는 사실, 글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글을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 부족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정과 애정으로 채워나가겠습니다. 아버지, 엄마, 동생들, 투병 중인 고모, 친척들, 친구들 사랑합니다. 장정희 선생님, 고등학교 문예부를 기억하는 건 꿈을 잃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어요. 소행성B612 문우님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고맙습니다. 박상우 선생님, 소설을 쓰는 기술보다 인간과 인생을 중시하시던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우연히 발목의 상처가 없어진 걸 발견했습니다. 새살이 돋아 상처를 이겨내도록 몰랐다니 놀라웠습니다. 글 쓰며 살겠다 다짐한 순간의 기억이 무뎌지고 쓰는 순간이 오롯해질 때까지 조용히 글과 세상에 스며들어 가겠습니다. 고통과 근심이 따르겠지만 배우는 과정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쓰겠습니다. 인간과 인생을 탐구하며, 늘 질문하며 작가로 행복한 삶을 살겠습니다. △1984년 광주 출생 △전남대 독어독문학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 ● 심사평 찬찬한 화법으로 곡진한 문제제기 훌륭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7편이었다. 4편은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였고 3편이 ‘밑도 끝도 있는 이야기’였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라는 표현이 소설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기존의 서사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소설답지 않다는 평을 받을 수 없다. 소설을 포함해 예술은 생물처럼 변하는 개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질서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질서 자체에 혐의를 두기 때문이다. 질서 사회에서는 질서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예술의 세계에서는 억압일 수 있다. 그래서 질서의 세 축인 시간, 공간, 인간을 왜곡하고 이탈한다. 이는 얼핏 혼돈처럼 보이지만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질서를 지킨 작품과 거부한 작품별로 그것을 이루어 낸 솜씨에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연자 씨’는 세계와 현상을 독특한 감성으로 바라보는데, 그 시선이 낱낱하고 집요해서 읽는 내내 무서울 정도였다. 다 읽고 났을 때 그려지는 인상이 문장의 섬세함과 날카로움에 버금간다면 분명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실러캔스 또는 속도에 관한 농담’에서는 통 큰 패기가 느껴졌다. 3억5000만 년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아무리 먼 장소와 관계의 거리까지도 한 번에 건너뛰려는 시도가 그것이었다. 성공적인 사태와 문장으로 조직되었더라면 정말 통쾌한 소설이 될 뻔했다.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는 잘 읽히고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거니챌 수 있을 만큼 짜임새가 눈에 익었다. 찬찬한 화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와 양심 선언하듯 난민의 현실과 그 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 난민의 사례를 연구하는 학자의 소회를 밝힌다. 세계인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할 문제를 곡진한 방식을 빌려 제기하는 소설이, 오랜만인 듯 반가웠던 것은 물론 작가의 훌륭한 이야기 솜씨 덕분이었다. 구효서·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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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글을 쓴다는 건 내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유”

    전화를 끊고 나자 손이 덜덜 떨렸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동기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강석희 씨(32·단편소설 부문)는 대학원 동기들과 경기 양평군으로 졸업 여행을 가던 중 당선 전화를 받았다. 강 씨는 “다 같이 소리 지르며 기쁨을 나눈 후에는 사흘 동안 진짜인지 의심했다. 동아일보에 가면 ‘당선자가 아니니 돌아가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제야 실감이 난다”며 웃었다.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자는 전년보다 25%나 껑충 뛴 2260명. 이 가운데 9명이 당선됐다. 12월 2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인 이들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웃었다. 이들은 당선 연락을 받은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5년간 글을 써 온 최유안 씨(34·중편소설 부문)는 “소설이 너에게 뭐니”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난 소설가로 죽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당선 전화가 왔고 참았던 울음을 꺽꺽 토해냈다. 변선우 씨(25·시 부문)는 서점 화장실에서 연락을 받은 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변 씨는 “믿기지 않아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 입덧하는 것처럼 헛구역질이 계속 나왔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쓰라림을 맛봤기에 등단 소식은 ‘벅차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이가 많다. 10년간 신춘문예에 응모한 신준희 씨(63·시조 부문)는 “매년 원고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면 직원들이 알아보고는 ‘부럽습니다’라고 격려해줘 고마우면서도 민망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오래된 나무도 새 잎을 항상 틔운다’는 말을 부여잡고 버텼다. 신춘문예는 ‘연말의 숙제’ 같았는데, 이제 그 숙제를 해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4년 가까이 평론을 준비한 김정현 씨(39·문학평론 부문)는 최종 심사에서 연거푸 탈락하자 좌절감이 커져만 갔다. 김 씨는 “내 능력은 딱 거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에 넘지 못할 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아득하게만 여겨졌던 문단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출을 전공한 이수진 씨(40·희곡 부문)는 글쓰기에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고 털어놓았다. 희곡 공모전에 숱하게 도전했지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이 씨는 “내가 쓴 희곡으로 졸업 공연을 올리고 연출도 했는데 글이 엉성하다 보니 배우들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새롭게 써서 다시 공연을 잘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강석희 씨는 5년간 소설을 쓰면서 참 외로웠다고 했다. 강 씨는 “내가 소설 쓰는 걸 어머니가 싫어하셨다. 다큐멘터리에서 이외수 소설가가 철창 안에 들어가 글 쓰는 모습을 보신 후 ‘저렇게 힘든 일을 꼭 해야겠느냐’며 걱정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선 소식을 듣고 “내가 더 고맙다”고 한 어머니의 말에 코끝이 찡해졌단다. 이들에게 글을 쓴다는 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작가’라는 말은 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힘을 줬다. 김정현 씨는 환한 표정으로 “글쓰기는 나 자신을 증명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아홉 살 때부터 소설가를 꿈꾼 최유안 씨는 1년간 혹독한 슬럼프를 겪고 난 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최 씨는 “회사 업무상 해외 출장을 자주 가는데 모스크바, 카자흐스탄, 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호텔방에서도 소설을 쓰는 나를 발견하고는 ‘너 미쳤구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끝까지 하고 싶은 게 소설 쓰기라는 것만은 또렷하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중학생인 두 자녀를 둔 유지영 씨(48·동화 부문)는 새벽 5시부터 한두 시간씩 글을 썼다. 집안일을 마치고 가족들이 잠든 늦은 밤에 다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유 씨는 “내 안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쓸 때는 피곤한 줄 모르겠다. 그저 즐겁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당선 후 남편과 아이들은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청하며 유 씨에게 글을 쓰라고 격려해 준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걸 이들은 잘 안다. 김경원 씨(43·시나리오 부문)는 “시나리오는 영상화되어야 완성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꾸준히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예솔비 씨(23·영화평론 부문)는 “문학평론 수업을 듣다 평론의 매력을 발견했다. 더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작업을 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당선작들은 새해 첫 지면과 동아닷컴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모습의 작가를 그리고 있을까. “누구나 와서 쉬어가는 동네 어귀의 늙은 느티나무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신준희 씨)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아이들이 신나게 읽을 수 있고, 마음의 상처도 어루만져 주는 동화를 자아내면 좋겠어요.”(유지영 씨) “김수영 시인은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고 했죠. 그 말 그대로 우직하게 쓸 겁니다. 진심을 다해서요.”(변선우 씨)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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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영화평론]불가능의 미메시스: 무수한 ‘지금’들의 투사

    ● 당선소감 - 김예솔비 씨직시하고 관조하며 넋 놓고 바라봅니다마감일에 원고를 부치고 극장에 갔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봉한다는 대만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어떤 일이 막막하게 끝나 버릴 수도 있다는 게 무서워서 결말을 유예하는 쪽을 택했다. 내 세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해프닝들과는 무관하게, 나는 습관처럼 수첩과 펜을 들고 극장에 갈 거라고. 많은 영화들에 빚을 지고 있다. 비밀처럼 꺼내어 보던 영화들. 스무 살에는 무의식적인 척력으로 사람들을 많이 밀어냈고 필연적으로, 자주 낮아졌다. 바닥을 가늠하기 위해 영화를 틀었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혼잣말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용기 내어 던지는 대화에의 암시가 아니었을까. 응답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평론 강의를 해 주셨던 정한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탈속만이 본질이라고 믿으며 글을 멀리했던 내게, 글과 나 사이의 소중한 접점 같은 것도 있다고 평론과 들뢰즈라는 세계를 통해 알려 주셨다. 꿈결 같았던 수업 이후 일 년 동안 잔상 속에서 읽고 보고 쓰면서 지냈다. 당선 소식을 들은 날에는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의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함께 기뻐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다시 모호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밀이 일상처럼 흐르는 암실 안으로.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섬광처럼 스치는 진실을 믿는다. 찰나를 기다리는 사진가의 근력으로 써 나가겠다. 직시하면서 관조하면서 때로는 방관에 가까운 방식으로 넋 놓고 바라보면서.△1995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 심사평 남한산성속 ‘삶과 죽음’ 치밀한 논리로 풀어 영화평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화이론 및 미학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문학적 지식도 겸비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 판단력도 있어야 한다. 평론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문장력은 기본이다. 올해 응모작은 38편이었다. 문제적 사극 ‘남한산성’과 실화에 바탕을 둔 ‘택시운전사’를 다룬 글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문도 있었다. 눈에 띄는 응모작은 5편이었다. ‘택시운전사’를 다룬 ‘역사는 어떻게 집단기억이 되는가’는 적절한 인용을 통해 설득력 있게 논지를 전개했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을 초창기 영화의 이미지에 빗대어 다룬 ‘0과 1이 된 링컨과 릴리안 기쉬’는 응모자의 전문성이 엿보이는 글이다. 서사가 거의 없는 독립영화 ‘더 테이블’을 짐작의 사유로 분석한 ‘언어보다 강한 침묵’은 그만큼 분석력이 돋보였다.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예술을 사유하는 법’은 문제의식은 좋았지만 다소 산만한 게 흠이었다. 그리고 남한산성을 시간의 관점에서 분석한 ‘불가능의 미메시스: 무수한 지금들의 투사-황동혁의 ‘남한산성’이 시간을 은유하는 방식’까지 이들 5편은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최종적으로 ‘불가능의 미메시스: 무수한 지금들의 투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남한산성’을 오늘날 정치적 상황 및 현실에 빗대어 분석하는 글들은 많이 있었지만, 시간을 화두로 삼아 극한 상황 속 삶과 죽음의 문제를 치밀한 논리로 풀어가고 있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매우 안정적인 문장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어 평론가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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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시 당선작]복도

    복도 - 변선우 나는 기나긴 몸짓이다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고 그렇담 액체인걸까 어딘가로 흐르고 있고 흐른다는 건 결국인 걸까 힘을 다해 펼쳐져 있다 그렇담 일기인 걸까 저 두 발은 두 눈을 써내려가는 걸까 드러낼 자신이 없고 드러낼 문장이 없다 나는 손이 있었다면 총을 쏘아보았을 것이다 꽝! 하는 소리와 살아나는 사람들, 나는 기뻐할 수 있을까 그렇담 사람인 걸까 질투는 씹어 삼키는 걸까 살아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까 고래가 나를 건너간다 고래의 두 발은 내 아래에서 자유롭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래의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으며 채식을 시작한 고래가 있다 저 끝에 과수원이 있다 고래는 풀밭에 매달려 나를 읽어내린다 나의 미래는 거기에 적혀있을까 나의 몸이 다시 시작되고 잘려지고 이어지는데 과일들은 입을 지우지 않는다 고래의 고향이 싱싱해지는 신호인 걸까 멀어지는 장면에서 검정이 튀어 오른다 내가 저걸 건너간다면… 복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과일이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 당선소감 시 - 변선우 씨잠들기 전 다시, 시를 쓰러 떠나겠습니다나를 잡아먹는, 한없이 살아있는 밤 속으로어둡고 축축한 시간을 지나오다 당선 소식을 들은 건, 서점 화장실이었습니다. 그만, 맨바닥에 널브러졌습니다. 오래 달린 사람처럼 다리가 무거웠습니다. 영혼을 거울 속에 박제해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거기에 두고 왔을까’ 질문을 업고 방에 들어왔는데, 책상에 엎질러진 진통제 상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 모서리들이 나를 지나다니는 것 같은 기분. 자꾸만 아팠습니다. ‘더 쓸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진통제를 깨물어 먹으며 빈 몸으로 책상에 앉았습니다. 이게 내 전부인 것처럼. 내 몸을 횡단하는 무수한 알약과 슬픔을 사랑할 각오를 했습니다. 아, 책 몇 권과 영혼을 데리러 어느 날 서점에 가볼 작정입니다. 부족한 시를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시의 전부인 김완하 선생님, 제 앎의 전부인 조해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수없이 깨지고 무너져도 시 속에서 버틸 수 있던 건 손미 선생님 덕분이었어요. 제 롤모델인 박송이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리 소고기 공동체, 응원해 준 연구실 식구들, 고마워요. 나의 친구들, 덕분에 웃을 수 있었어. 대학원 원우님들, 끝까지 함께 가요. 나의 전부인 김종중 집사님, 변진순 집사님. 첫 독자, 선미 누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잠들기 전 다시, 시를 쓰러 떠나겠습니다. 알약이 내리는 책상 앞으로. 나를 잡아먹는, 한없이 살아있는 밤 속으로.△1993년 대전 출생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동대학원 석사 재학 ● 심사평 시다층적 은유에 의한 소재의 확장흥미로운 시적 사유의 전개 보여줘 본심에 올라온 23명의 작품들은 대체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도를 보였다. ‘저격수’ 외 5편은 시적 발상에 있어 독특함과 힘을 보여줬지만 상식적 진술과 지나치게 평이한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띄어 아쉬웠다. ‘저격수’ 이외 작품들이 수준의 편차를 지닌 것도 최종 결정을 유보하게 만들었다. 이는 시적 묘사의 힘을 보여주는 ‘골목의 흉터’와 같은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서 문장의 탄성이 떨어지고 이 작품 이외의 작품들에서 이를 만회할 만한 신뢰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오렌지 저장소’ 외 5편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유가 참신하고 소재를 시적으로 묘사하는 역량 역시 돋보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더불어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더러 지나치게 설명적인 문장들이 눈에 띄었기에 조금만 덜 친절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런 점들을 세세히 검토하며 변선우 씨의 ‘복도’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우선 응모한 작품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역량에 대한 신뢰감을 주었다. ‘복도’는 소재를 다층적 은유에 의해 능란하게 확장함으로써 흥미로운 시적 사유의 전개를 보여줬다. 시가 감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과장으로 치닫거나 지적 퍼즐로 스스로를 축소시키는 현상이 빈번하게 목도되는 이즈음에 소재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힘과 다층적 사유를 전개하는 역량을 지닌 신인에게 출발의 즐거움과 불쾌하지 않은 부담감을 함께 안겨주는 것이 제법 그럴듯한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변선우 씨에게 축하의 악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김혜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조강석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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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동화 당선작]편의점에 온 저승사자

    지갑을 탈탈 털어보니 3600원. 새로 나온 다섯 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다 사기엔 부족한 돈이다. 하지만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하니까 일단 편의점으로 향했다. 우리 동네엔 편의점이 세 군데다. 아직 나를 후원해주는 곳은 없지만 곧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러면 제일 멋진 조건을 거는 가게와 친구 맺기를 할 거다. 매일 공짜 아이스크림 두 개. 친구를 데리고 갈 거니까. 거기다 신제품이 나오면 몽땅 시식하고, 화이트데이나 빼빼로데이같이 특별한 날에는 기프티콘을 팡팡 날려줘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하니 몸이 붕붕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어느새 드림 25시 편의점 앞.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와락 반겨 주었다. 예닐곱 명의 손님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와! 쟤 유튜브에서 봤어. 사인이라도 받을까.’ 이런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아 머리랑 옷을 한 번 더 매만지고 당당하게 아이스크림 코너로 걸어갔다. 신제품은 역시 비쌌다. 내 돈으로는 두 개도 살 수가 없었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 있는 식빵이랑 블루베리 잼을 이용해 새로운 맛을 만들 궁리를 해보았다. 그때 누가 어깨를 툭 쳤다. ‘드디어’라고 생각하며 모델 같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야, 박준. 오랜만이다. 나 해리.” 꽃무늬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쓴 까무잡잡한 아이, 3년간 나랑 짝꿍을 했던 해리였다. “아, 안녕. 너 하와이 갔었잖아.” “여기서 중학교 다니려고 다시 왔어.” “그래? 난 네가 참 부러웠는데.” “아이스크림 골랐니? 내가 사줄게. 짝꿍의 귀국 선물이라 생각해줘.” 안 그래도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사 가서 맛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해리가 사준다니 속으로 콧노래가 나왔다. “야, 너 그동안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니? 얘기 좀 해줘.” “난 하와이 얘기가 더 궁금한데.” 우린 편의점 앞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야금야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너 뭐 재미있는 일 없니? 학원 레벨이나 수학 진도 얘기는 하도 들어 이젠 질려. 어쩜 한국 아이들은 다 똑같아? 내가 이러려고 한국 온 건 아닌데. 넌 원래 좀 특이했잖아?” “그렇지. 내가 좀 반짝하지? 난 요즘 키즈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느라 정신없다.” “우아. 멋지다. 역시 너다워. 그런데 그게 뭐야? 아직 이곳에 적응이 덜 돼서. 스마트폰도 담달에 아빠가 사주기로 하셨거든.” “유튜브는 알지?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 말이야. 거기다 내가 만든 영상을 올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구독할 수도 있고, 댓글도 달 수 있어. 1인 방송이지.” “그럼 혼자 PD와 앵커, 카메라맨 같은 걸 다 한다고? 힘들지 않아?”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 아이디어만 있으면 영상 만드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 또 댓글 달리는 걸 보면 힘이 나.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 “해외 다녀온 건 난데, 네가 더 글로벌하다. 그럼 여기도 촬영 때문에 온 거야?” 촬영?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기분이 폭신한 구름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응, 사실 요즘 구독자 수가 늘지 않아 걱정이야. 먹방이나 초딩 일상을 찍는 건 누구나 하는 거고, 주머니 사정도 팍팍해서 뭔가를 하려 해도 힘들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해.”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음, 그럼 이런 건 어때? 핼러윈 때처럼 귀신 코스프레를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거야. 하와이에서 정말 재미있었거든.” 해리는 지나가는 말로 툭 던졌지만 난 너무 반가워 눈물이 솟아날 것만 같았다. “그래. 그거야. 무더위를 날려버릴 무섭고도 재미있는 것. 여긴 한국이니까 한국 귀신으로 해 봐야지. 정말 고마워.” 그렇게 나와 해리의 작전은 시작되었다. 드디어 D-데이. 저녁밥을 든든히 먹고, 의상과 스마트폰을 챙겨 나갔다. 캠코더와 화장품은 해리가 가져오기로 했다. 촬영을 할 때마다 두근거렸지만 오늘은 정말 심장이 팔딱대서 가슴에 손을 얹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치솟는 구독자 수와 감탄사 가득한 댓글들…….’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행복했다. 아파트 벤치에서 해리가 내 얼굴에 화장을 해 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릴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꼭 연예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보니 정말 그럴싸했다. 짙고 검은 눈썹과 입술, 창백한 하얀 얼굴……. 내 등골이 다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해리가 장거리 촬영을 위해 캠코더를 맞추고 있는 동안 나는 재빨리 검은 도포를 입고 갓을 썼다. 나만큼 어린 저승사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바람처럼 스르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고등학생 누나 둘과 눈이 마주쳤다. “꺄!” 두 누나는 공포 영화 한 장면을 본 듯 기겁해서 바깥으로 도망쳐 버렸다. 대화 좀 하려고 했는데 저 누나들은 담력이 너무 약했다. 갓을 슬쩍 올리며 가게 안을 둘러봤다.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카운터 형이 눈에 들어왔다. 난 목에 힘을 주고 묵직한 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같이 가시지요.” “무슨 때? 난 매일 샤워해서 때는 없는데요.” 뭔가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더 배에 힘을 주었다. “지금 당장 나와 함께 가야 하는데 혹 마지막 소원이 있나요? 내가 급이 좀 높은 사자라 청을 들어 줄 수도 있는데…….” “지금 소원은 사자 나으리와 함께 노는 것입니다.” 이런! 별 이상한 형을 다 보았나? ‘주니랑 TV’ 구독자 수가 곤두박질치는 게 훤히 보였다. 땀이 난 손으로 검은 도포 자락을 꽉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대사를 준비해야 했는데, 이제 후회한들 어쩌란 말인가! 그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니 누가 내 가게 손님을 내쫓았어? 너니? 참 요즘 초딩은 못 말린다니까.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이런 장난 할 정신이 어디 있어!” 편의점 주인 대머리 아저씨였다. 아까 누나 둘이 물건도 못 사고 도망간 걸 아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전 저승사자예요. 이 점원 대신 아저씰 데려갈 수도 있어요. 절 방해하지 마세요!”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세게 나가야 했다. 물러서면 지는 거니까. “그래. 너 말 잘했다. 누가 누굴 방해했다는 거야. 너 영업방해죄로 고소당해 볼래? 아직 미성년자라고 봐줄 것 같아? 대신 너희 부모님이 배상을 하든지, 철창신세를 질 수도 있어.” 부모님! 배상! 철창! 그만 내 심장은 쪼그라들어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아저씨. 손님들을 놀라게 한 건 맞지만 쫓아낸 건 아니에요. 창밖을 보세요.” 점원 형의 말에 모두 창밖을 보았다. 아까 도망 나갔던 누나 둘이 핸드폰으로 열심히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너그럽게 봐주세요. 물건 서리한 것도 아니고 힘겹게 의상까지 입고 와서 재밌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잖아요.” 구세주 같은 형의 말에 나는 겨우 숨을 들이켤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래. 하기야 요즘 아이들 놀 만한 게 없지. 아저씨가 생각이 짧았다.” “저승사자님, 이렇게 먼 길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마지막 소원은 알바 시급이 올라 여친에게 멋진 선물을 사 주는 것입니다.” 훤칠한 키의 점원 형이 허리를 굽실거리며 말했다. “저승사자님, 제 마지막 소원은 가족 여행을 가보는 것입니다.” 아저씨도 제대로 해 볼 마음인지 소매를 둥둥 걷으며 말했다. “어디 보자. 흠. 좋은 방법이 있긴 한데.” 나는 턱 밑 수염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굴렸다. “저승사자 나으리, 그럼 얼른 알려 주셔야죠.” 아저씨는 잔뜩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천진스러운 눈빛으로 날 보았다. “아저씨가 알바 형에게 가게를 맡기고 여행을 가는 거예요. 그럼 형은 시급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죠. 뭐 기분 좋으면 아저씨가 보너스를 줄 수도 있지요. 그럼 여친 누나에게 멋진 선물을 사줄 수 있을 거예요. 아저씨도 가족 여행 맘 편하게 다녀올 수 있잖아요.” 갑자기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라 주저 없이 말해 버렸다. 두 사람 다 표정이 환해졌다. “저승사자님! 고맙습니다. 그럼 제 목숨 한 달 더 연장해 주는 거지요?” “물론이지요. 제가 염라대왕 오른팔인걸요.” 내 말에 점원 형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이때다 싶어 나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며 해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 여기까지 ‘주니랑 TV’였습니다.” 촬영 종료 버튼을 누른 해리도, 밖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누나 둘도 키득거리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야, 너희들 뭐니? 완전 대박인걸. 아깐 진짜 놀라서 뛰쳐나갔는데 뭔가 재미있는 일 같아서 다시 와서 동영상을 찍었지.” 긴 머리 누나가 가까이서 내 얼굴을 한 번 더 찍었다. “사실 제가 유튜브 키즈 크리에이터예요. ‘주니랑 TV’라고 검색하면 제 채널이 나와요. 오늘 영상도 올릴 거고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불편한 갓을 벗고 한껏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내 애교가 통한다면 이 자리에서 구독자 넷은 확보한 거다. “그럼 우리 가게도 유명해지겠구나. 종종 우리 가게에서 깜짝쇼를 하렴. 물론 손님들을 내쫓거나 물건 부수지는 말고.” 아저씨가 캔 음료를 쟁반에 가득 담아 오셨다. “마지막 소원이라는 아이디어 아주 좋았어. 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하잖아. 해결책도 아주 멋졌어. 그런데 아저씨, 정말 가족 여행 가실 건가요?” 점원 형이 음료수 캔을 시원스레 따며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 스크루지가 꿈에서 죽어 보고야 깨달았지만 난 오늘 네 덕에 진짜 중요한 걸 발견했다.” “어머, 참 재미있어요. 우리도 마지막 소원 생각해 봐야겠어요.” 안경 쓴 누나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너무 띄워주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사실 ‘주니랑 TV’ 구독자 수가 줄고 있어서 좀 무리를 했는데, 의외로 잘되었어요. 하지만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걱정이 돼요.” “왜 그렇게 구독자 수에 신경을 쓰니? 그냥 네가 좋아서 하는 거 아니었니? 너의 톡톡 튀는 모습만 보여 줘도 충분할 것 같아. 즐기다 보면 구독자 수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지.” 형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맞아요. 처음 키즈 크리에이터를 시작하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서 재미있게 해볼게요. 오늘 저승사자도 큰 선물을 받아 가네요. 고맙습니다.” 난 도포 자락을 모아서 넙죽 큰절을 올렸다. 그때 점원 형이 선반 뒤에 가려져 있던 캠코더 버튼에 손을 얹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네. 여기까지 BJ 김아담이었습니다.” ● 당선소감 - 유지영 씨작은 희망의 씨앗 선물하고파어느 날 문득 눈을 떠보니 제가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더군요. 마치 쓰기 중독인 것처럼…. 어렸을 적부터 네모난 것들을 참 좋아했지요. 동화책, 위인전, 백과사전, 신문…. 읽기 중독이었던 제가 두 아이를 키우며 소원대로 방 하나를 책으로 가득 채웠어요.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갈 때는 장바구니 카트기를 끌고 다녔고요. 아이들과 함께 그렇게 책을 읽어대며 저도 모르게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나 봅니다. 1년 전 대구 혜암아동문학회에서 처음으로 동화와 동시를 공부했습니다. 그때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을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가슴속에 눌려 있던 이야기들이 ‘펑’ 하고 터져 나오자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가 되어 반짝였습니다. 도서관에서, 학교에서 봉사를 하며 만나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그 발랄함을 잃지 않도록 동화라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 순간 너무 설레고 행복합니다. 아동문학의 길을 열어주신 최춘해 선생님, 정곡을 콕콕 짚어주시는 김영란 선생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합평해 준 혜암아동문학회원 모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드리며 앞으로 좋은 동화로 보답하겠습니다.△1970년 대구 출생 △영남대 가정관리학과 ● 심사평 허를 찌르는 반전 돋보여전반적으로 전통적인 동화 형식인 생활동화나 의인동화가 응모작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작품이 휴머노이드 로봇(인간의 형태를 한 로봇), 스마트폰, 유튜브 등 변화된 테크놀로지 상황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완성도, 참신성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논의한 작품은 4편이었다. 부모의 불화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을 그린 ‘도돌이표 심부름’은 따뜻한 시선으로 무거운 주제를 재치 있게 풀어나갔다. 다만, 느닷없는 해피엔딩 식의 마무리가 공감을 얻기에는 약했다. TV 출연을 미끼로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어른들에 대한 저항을 썰매타기로 그려낸 ‘완벽한 하루’는 언론의 기획성으로 의미를 확대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요즘 아이들의 열망을 그린 ‘편의점에 온 저승사자’는 잘 읽히는 문장과 구성, 허를 찌르는 반전이 돋보였다. ‘완벽한 하루’와 ‘편의점에 온 저승사자’를 놓고 거듭 논의한 끝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대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더 흥미롭게 이끌어낸 ‘편의점에 온 저승사자’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나머지 응모자들에게는 격려를 전한다. 송재찬 동화작가·김경연 아동문학평론가}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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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문학평론]너는 이제 ‘미지’의 즐거움일 것이다…황인찬 시 읽기

    ● 당선소감 - 김정현 씨늘 패배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지속될 것 지금까지 나는 어두웠다. 한 인간으로서 혹은 일상을 견디던 나와는 또 다른 나에게, 세상은 무채색이었다. 그 균열은 타인에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 텍스트는 스스로를 확인시켜 준 유일한 고유함이었다. 눈 오던 날 들려온 믿기 어려운 소식에 과거의 기억들이 꿈결처럼 밀려왔다. 한동안 접어둔 일기를 펴보니 ‘나에겐 생을 살아가기 위한 분노와 힘이 필요해’라는 구절이 손에 잡혔다. 나는 나약함을 견딜 수 없었고,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 공부와 음악은 스스로를 지탱할 이유가 되었다. “우리의 말이 참이라면, 불행히도 결코 끝내 이해되지 못하리라는 것도 참이다”라던 니체처럼, 늘 패배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아둔한 제자를 격려해주시는 신범순 조영복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같이 음악하는 팀원들과 오랜 친구인 성우가 기뻐해주었다. 문학을 공부한답시고 아등바등하는 자식을 걱정하시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면피한 느낌이다. 헤매던 글을 붙잡아주신 김영찬 신수정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여전히 내 글은 머물 곳 없이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끝나지 않던 기나긴 터널에서 조금은 벗어난 느낌이다. 약간 운이 좋았을 뿐이란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단지 읽고 또한 쓰며, 오롯이 불행하여 사랑하기에. 나에게는 오직 ‘그것’뿐이니까.△1979년 대전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 심사평활달한 문체-비평적 자의식 기억할 만해 전반적인 풍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경향의 작품이 등장하고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새롭게 그리고자 하는 의욕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판단도 든다. ‘‘희재’가 이룬 것과 ‘김지영’이 묻는 것-‘외딴방’과 ‘82년생 김지영’이 그리고 있는 파국의 지도’와 ‘비규정적 장소 위에서 울리는 언어-배음(倍音)-김행숙, 안태운, 한인준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이전과 구분되는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징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를 통해 우리 문학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자 하는 의욕이 돋보였다. 반면 다소 거친 범주화나 이론에 대한 기계적인 적용이 아쉬웠다. 최정화의 소설에 나타나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통해 우리 시대의 신경증을 분석하고 있는 ‘집 없는 시대의 파라노이아, 손님의 건축술’은 독창적이고 미시적인 텍스트 분석력이 눈에 띄었으나 하나의 키워드를 일관되게 밀고나가는 응집된 논리력이 약했다. 결국 당선은 ‘너는 이제 ‘미지’의 즐거움일 것이다’에 돌아갔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황인찬의 시에 대한 매혹과 활달한 문체, 비평적 자의식은 기억할 만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때로 드러나는 공허한 수사와 감당할 수 없는 과장에 유의한다면 한국 비평계의 큰 자산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깝게 고배를 마신 응모자들에게는 아쉬움을,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신수정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김영찬 계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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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시나리오]행복설계사무소

    ● 당선소감 - 김경원 씨제 글로 만든 영상이 따뜻한 감동 안겨줄 날 기대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습니다. 반하고 설레고 두들겨보다 낙심하고 그런데도 다시 보게 되는…. 그것은 저에게 늘 인색하기만 합니다.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나 봅니다. 세상 무엇보다 예뻐 보이고 너무 소중합니다. 보기 싫게 튀어나온 부분도 다듬고 다듬다 그것마저도 품게 됩니다. 그런데도 살가운 말 한 번 건네지 않습니다. 무심함에 지쳐 뻥 차버리려고 하니, 그 안에 지난날 나의 시간들이 빼곡히 담겨 그게 제가 돼버렸습니다. 글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마감에 쫓겨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순간에 당선 연락을 받았습니다. 캐릭터는 울고 있는데 ‘배시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잠깐 글쓰기를 중단했네요. 정말 오랜만에 마음껏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으로 옮겨져야 하는 글이기에,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 안에 들어갈 많은 사람의 노력을 감안하면 책임감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그래도 제가 쓰는 글이 언젠가는 많은 이들을 웃게 하고, 따뜻한 감동을 안겨 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는 않겠습니다. 때로는 지지자로, 때로는 냉정한 관객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과 가족, 친구들,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계속해서 달려갈 힘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1975년 서울 출생 △성신여대 일어일문학과 ● 심사평소재-전개 신선하고 재치 만점… 완성도 높아 커플 매니저에서 이혼 플래너가 된 여성을 그린 ‘행복설계사무소’, 미제 사건을 15년 전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형사 앞에 진범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나는 ‘철수삼촌’, 출산은 인생의 늪이라고 여기는 정치부 여기자가 쌍둥이를 낳고 베이비시터계의 신과 같은 이모님을 만나는 ‘육아의 신’을 놓고 고민했다. 졸혼, 휴혼 등 이혼 관련 단어들이 만들어지는 요즘, 아이러니한 설정의 인물을 내세워 행복과 사랑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행복설계사무소’를 망설임 없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소재가 신선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다 재치 있고 완성도도 높았기 때문이다. ‘철수삼촌’은 초반 설정이 강렬했지만 진범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다소 힘이 빠졌다. ‘육아의 신’은 정치권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를 진부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이 쌍둥이를 낳고 육아의 신을 만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코미디로 접근하면 좋을 듯하다. ‘프롬, 안드로메다’도 따뜻한 여운이 남지만 갈등이 약하고 작은 이야기였다.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이정향 영화감독}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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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시조 당선작]이중섭의 팔레트

    이중섭의 팔레트 - 신준희알코올이 이끄는 대로너무 멀리 와버렸다내려야 할 정거장을나는 자주 까먹었다날마다다닌 이 길은처음 보는 사막이었다 ● 당선소감 - 신준희 씨길도 없는 흰종이 위 맴돌아나를 누른 깜깜한 압력에 감사 섭씨 1000도가 넘는 불길 속에서 세 시간만 지나면 깨진 백자항아리 같은 흰 뼈로 환원되는 삶. 그토록 고달프고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던 삶은 눈물겨워 촉촉이 젖어 있는 함초롬한 꽃이었다. 길 끝의 낭떠러지, 나를 짓누르던 두려움, 떨어지거나 날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써야 한다는 그 막막하고 깜깜한 압력에 감사한다. 나만의 밀도를 얻고 싶었다. 깡통처럼 짜부라지던 리듬은 괴로웠다. 단어와 문장들이 서로 할퀴고 싸우는 하얀 감옥. 얼어붙은 털신에 달라붙는 눈덩이처럼 아름답고 무서운 눈길에 갇혀 더는 어찌해 볼 수가 없는 그런 때, 푹푹 꺼지는 눈길, 길도 없는 흰 종이 위를 365일 맴돌았다. 조금만 더 걷자. 연필을 새로 깎고 낯선 기차를 타고 사연 많은 사람 속에 섞여 또다시 떠나야겠다. 가끔 언니들이 묻는다. 어디 있어? 밥은? 그 소리가 나를 웃음 짓게 한다. 나의 시조도 누군가에게 그 정도였으면 참 고맙겠다. 거울도 볼 줄 모르고 자기만의 향기에 몰두하는 꽃. 오늘은 장미에게 거울을 보여 주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 오랜 친구들, 늘 응원해 준 박공수 시인, 문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강기옥 선생님, 김대규 시인님, 이지엽 교수님, 윤금초 교수님, 꿈속에서도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라고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민족의 횃불을 지켜온 동아일보에도 감사드립니다. 꾸지람 듣지 않도록 부지런히 뒤따라가겠습니다.△1955년 전북 고창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 심사평응모작 늘어 심사과정 흐믓연시조 유행속 단시조 눈길 응모작이 크게 늘었다. 감사한 일이다. 시조에 매력을 느끼는 지망생의 수가 그만큼 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형식을 운용해내는 능력도 대부분 수준 이상이어서 쉽게 제외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몇 번을 거듭 읽은 뒤 ‘구름평전’, ‘블랙커피 자서전’, ‘모감주나무 문법’, ‘봄의 온도’, ‘이중섭의 팔레트’가 남았다.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작품이었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을 살피며 개성 있고 참신한 작품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다 최근 당선작 유형으로 굳어져 버린 안이한 연시조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기본형인 단시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중섭의 팔레트’를 뽑기로 했다. 물론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선자의 다른 작품인 ‘개성댁’, ‘개심사 석탑’ 등 연시조에서 받은 신뢰 때문이기도 했다. 이중섭이란 이름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소재로는 식상하다. 그러나 화가의 아내가 서귀포시에 기증한 팔레트에는 아직도 물기가 마르지 않아서 이렇게 섬뜩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놓았다. 알코올이 환기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 정거장이 은유하는 생의 여러 고비를 어느 날 이중섭은 사막처럼 느꼈을까. 이러한 상상은 화자 한 사람만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가파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의 풍경이다. ‘날마다/다닌 이 길은//처음 보는 사막이었다’의 극적인 비약은 얼마간의 난해성이 시의 매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절창이 아닐 수 없다. 당선자가 오랜 연마를 통해 얻은 결실을 읽으며 그 이상의 작품으로 시조시단의 내일을 열어갈 것이라 확신하며 축하를 보낸다. 이우걸·이근배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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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단편소설 당선작]우따

    우따는 우따였다. 제임스 T 우드(James Thompson wood)를 왜 우따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방과 후의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다가 문득, 저 아이를 우따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까지가 내 기억의 전부다. 그날도 나는 언제나처럼 그를 우따라고 불렀다. 그의 집에서 비디오와 만화책을 보고, 함께 피자를 시켜 먹고, 마지막 조각 하나를 서로 먹겠다고 투닥거렸다. 그러니까, ‘지각의 현상학’과 ‘존재와 시간’을 베고 누워 아기 같은 얼굴로 낮잠을 자던,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 줄기에 얼굴을 찡그리던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를 죽이려는 생각이 들어있었다는 건 아무래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따가 경찰차에 실려 떠난 지 정확히 1년이 지나자 그를 만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의 내 인생에서는 가장 큰 용기를 낸 결정이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교도소에 가는 동안, 몇 번이나 발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우따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나를 앞으로 걷게 했다. 교도소에 도착해서 우따를 기다리는 동안 온몸이 떨렸다. 왼손을 붙잡으면 오른 다리가 떨리고, 오른 다리를 붙잡으면 어깨가 말썽이었다. 내가 알던 우따가 더 이상 세상에 없을까 봐. 그날의 우따만이 남아서 나와 마주보게 될까 봐. 그런 것이 두려웠다.우따를 처음 만난 건 2000년도의 일이었다. 뉴 밀레니엄이라는 말에 전 세계가 묘한 흥분 상태에 빠져 있던 때였다. 내가 살았던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근 1년 동안 지구 종말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에 사로잡혀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적그리스도가 파나마에 강림해 온 세상을 불바다로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건 내가 어떻게 막아볼 도리가 없는 일이니까 매일 밤 공포에 떨며 잠을 설쳤다. 새해가 되고 겨울 방학이 끝날 때까지 밀레니엄 버그도, 그랜드 크로스도, 가장 무서웠던 적그리스도의 출현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이 세상 사람들도, 조금 더 살아도 되나 보다. 교회에서 듣던 구원이라는 것을 받은 것 같았다. 우따가 전학을 온 건 그 무렵이었다. 영국 리버풀에서 온 제임스 T 우드라고 짤막한 소개 인사를 마친 우따는 성큼성큼 걸어와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기 전에 반 아이들은 우리를 한 무리로 묶었다. 반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나와 유일한 아프리카계였던 우따를 ‘아아아미(AAAmi)’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개미가 등산을 갔는데 알고 보니 거기가 아기 엉덩이였다더라 하는 내용의 동요에서 따온 멜로디까지 붙여 불렀다. 묘한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왠지 싫지가 않았다. 우따가 좋았기 때문이다. 우따는 좋은 향기를 내며 간결하게 움직였다. 그 몸동작들이 아주 매력적이어서 단 하루, 아니, 고작 몇 시간 나란히 앉았을 뿐인데도 거부할 수 없이 우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따가 나와 ‘아아아미’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게 싫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반 아이들이 우리 옆을 지나며 노래를 부를 때 우따는 빙긋 웃을 뿐 딱히 반응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꽤 조급한 마음이 되었지만 우따의 생각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우따가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따는 혼자 살고 있었는데 파리에 온 첫날부터 혼자 저녁을 먹기는 싫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기쁜 마음이 되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따라나섰다. “파리에는 왜 혼자 온 거야?”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가 보내 주셨어.” 우따는 그렇게 말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우따가 지은 미소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 얼굴은 아주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우따가 갑자기 크게 보였다. 현관문에 열쇠를 꽂는 모습, 가방을 책상 의자에 걸어두는 모습, 냉동실에서 감자튀김을 꺼내는 모습, 하나의 팬에 계란과 베이컨을 동시에 굽는 모습, 내가 앉을 자리에 방석을 깔아주는 모습,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나 따위는 가늠할 수 없는 그릇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우따와 친해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시무룩해졌다. 저녁 식사는 조용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우따는 내 컵에 물을 채워 주고, 호밀빵과 튀긴 감자를 더 가져다주었다. 우따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책장을 구경했다. 꽂혀 있는 책들은 하나 같이 두껍고 무거워 보였다. 그 책들을 보고 있자니 시무룩해지다 못해 기가 눌리는 기분이었다. 나의 15년과 저 아이의 15년은 왜 이렇게 다른가. “재밌는 거 많지? 빌려가도 돼.” 설거지를 마친 우따가 내 옆에 와서 말했다. 우따는 나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던 책장 세 번째 칸 바로 아래에서 드래곤볼, 슬램덩크, 스누피, 도널드덕 같은 것들을 잡히는 대로 꺼냈다. 그때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아아미’에는 ‘우리 교실의 유색인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점점 조심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우리 뒤에서 웃었지만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었고 장난은 딱 그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하거나 화나지 않았다. 우따의 태도도 비슷했다. 법을 전공했다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따는 학교의 암묵적인 룰에 대해 금세 이해한 것 같았다. 우리가 따르던 룰은 학교의 인종 구성에 그 기원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백인 학생이 많았는데, 학생들의 부모가 다국적 기업의 주재원이거나 경제규모가 큰 나라의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안 사정이 유복한 아이들만 모여 있어서인지 눈에 띄는 차별이나 따돌림은 없었다. 그렇다 해도 왠지 모르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아이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그들의 커뮤니티에 속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쪽이 마음 편했다. 겉으로는 모두가 웃으며 지냈지만 백인과 유색인이 교문을 함께 통과하는 일이 없었고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도 없었다. 그런 사정으로 내가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마음 편히 속할 자리를 찾아내는 방법이었다. 가끔 한국에 들어갈 때면 친척들의 부러움을 받는 유학생이었지만 학교 안에서는 조용히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없었고, 그건 다행이었지만 외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와 우따는 아주 친해졌다. 나의 15년과 우따의 15년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컸다. 학교를 마치면 우리는 골목에서 공을 차거나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무언가를 보냈을 때 돌려주는 사람이 있는 놀이가 즐거웠다. 집에서 놀 때면 각자 한국과 영국에서 봤던 코미디 쇼의 유행어를 가르쳐 주며 웃었다. 손을 대는 순간 엄청난 좌절을 안겨줄 것 같던 책들은 펼쳐본 적이 없었고 만화책만 보며 마냥 뒹굴거렸다. 걱정이 없는 날들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책들은 사실 우따의 아버지 것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펼쳐보고 나서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관한 수업에서 언급된 책이어서 눈길이 갔다. 책의 속지에는 ‘zu Stephen T Wood, 1972.07.21.’이라고 적혀 있었다. “1972년 7월 21일은 대학생이던 아버지가 한나 아렌트를 직접 만난 날이었어.” 거기까지만 말하고 우따는 내 손에서 책을 가져갔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받아간 책을 양손바닥으로 누르듯이 덮었다. 그 모습이 처음 만난 날의 옅은 미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미소에서 느껴졌던 위화감도 함께 기억났다. 그 위화감의 정체는 쓸쓸함이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는 감추는 것이 자연스러울 쓸쓸함, 그러나 도저히 감출 수 없었던 쓸쓸함이었다. 우따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기분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말아야겠다, 그러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면회소에 나온 우따는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짧은 면회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나를 봐주지 않는 그를 우따라고 불러야 할지 우드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부를 수 없게 된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를 부르지 못해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창을 두드렸다. 그는 가만히 있었다. 다시 한 번 유리창을 두드렸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뒤에 앉아 있던 간수가 내 쪽을 힐끗 보았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간신히 입이 떨어졌다. “우따.”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오래전에 잊었던 기억을 되찾은 사람의 얼굴 같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우따! 우따 맞지? 응?” 면회소 내에 버저가 울렸다. 신경질적인 기계음이었다. 마이크의 불이 꺼지고 간수가 일어나 우따의 옆으로 다가왔다. “우따. 우따 맞지? 맞는 거지?” 간수의 손에 이끌려 우따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평소의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간수가 문을 열기 위해 잠깐 멈추었을 때 우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딱 한 번이었지만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 너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9월이 되고 새로운 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여름까지 같이 학교를 다녔던 마리엘(Mariel)이라는 여학생이 실종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소문을 듣고 나서야 그런 아이가 있었음을 알게 된 나와는 달리 우따는 마리엘에 대해 제법 자세히 알고 있었다. 마리엘은 필리핀 출신이었고 어머니가 모토로라 프랑스 지사의 전산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리엘이 어릴 적 돌아가셨고 오빠와 남동생이 파리 7구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질투가 나는 것을 최대한 숨기며 우따에게 물었다. “그냥. 우리 학교에 동양인 여자애는 걔뿐이었잖아.” 나는 그게 이유가 되나 싶었지만 우따의 표정이 또 쓸쓸해 보여서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내가 우따에게 더 많은 것을 물어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이가 되었을까, 마리엘에게 조금은 다른 선택이 주어질 수도 있었을까, 그때 그 일들의 사이에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었을까, 여러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생각들이 후회나 반성이길 바라지만 확신할 수가 없다. 그때 나는 알고 싶은 것만 알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모르는 사이, 그러려고 애쓰는 사이에도 우따는 마리엘을 찾고 있었다. 그때 우따는 쓸쓸했을 것 같다. 그 느낌을 생각하면, 싫다고 해도 더 묻고 더 옆에 있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리엘은 11월이 넘어가도록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마리엘의 어머니가 회사의 공금을 횡령해서 가족이 모두 달아났다는 말이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마리엘이 빈민가에서 필로폰을 하다가 경찰에 잡혔다는 말도 퍼져 나왔다. 또 한편에서는 그녀가 임신을 했기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도 인기를 끌었다. 대놓고 흉흉한 이야기들이 학교의 곳곳을 잘도 누볐다. 그런 이야기들은 10월을 지나면서 차츰 사라졌다. 더 이상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아직 어린 나이들이었고, 11월 초에 있을 축제가 아이들의 관심을 끈 탓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리엘이 아니라 자기 옆의 누군가의 눈에 드는 일이었다. 우따만이 마리엘을 잊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 마리엘에 관한 소문들을 해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께 받은 마리엘의 집 주소로 여러 번 찾아가기도 했다. 경찰서를 찾아가 마리엘의 실종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우따가 그런 일들을 하는 동안 나는 우따와 함께 있거나 혼자 있었다. 처음에는 우따가 마리엘을 짝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질투가 연민으로 바뀌었다. 우따의 감정이 우정이 아닌 연정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따의 마음은 우정도 연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보다 고차원적인 것으로 보였다. 우따는 난민을 구제하는 자원봉사자처럼 마리엘을 걱정하고 그녀의 무사와 안전을 기원했다. 엄청나게 강하고 지속적인 감정이었다. 나는 우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마리엘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없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근거도 없었다. 마리엘이 정말 형편없는 아이라서 형편없는 짓을 하고 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우따에게 말했다. 우따의 반응은 격했다. “마리엘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말은 절대 할 수 없어!” 우따가 화를 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당황스럽고 분해서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이후로 우따와 나는 조금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여전히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그것은 수업 시간일 때뿐이었고 대화는 깊이와 폭이 모두 어정쩡했다. 내가 어떻게 화해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도 우따는 마리엘에게만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응답 없는 마음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이 없음을 배우게 될 즈음, 마리엘이 학교에 나타났다. 축제날이었다. 무대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축제는 한껏 달아올랐다. 공연이 끝나면 곧이어 댄스파티가 열릴 것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하나같이 기대감으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 우따와 화해하지 못한 나는 댄스파티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었다. 마리엘이 강당 2층을 통해 메인 무대로 내려가는 것을 발견한 건 우따였다. 무대에 오른 피터(Peter)가 독창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우따가 내 어깨를 잡고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몸집이 작은 여자아이가 모자를 쓰고 책가방을 멘 채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우따의 눈에서 긴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무대를 향해 뛰었다. 관람석 중앙에 있던 우리가 촘촘한 의자 사이를 헤치고 무대 근처까지 갔을 때 선생님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그 사이 마리엘은 가방에서 작은 병을 꺼내며 피터에게 걸어갔다. 무대 아래가 소란스러운 것을 본 피터가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때 마리엘이 병에 든 액체를 피터에게 뿌렸다. 액체는 염산이었다. 피터의 얼굴을 겨냥하고 뿌렸으나 피터가 일찍 몸을 돌린 덕분에 맞은 곳은 어깨였다. 피터의 새된 비명이 마이크를 타고 강당을 울렸다. 공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선생님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갔다. 우따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무릎을 꿇었다. 손 틈새로 눈물이 번져 나왔다. 마리엘은 경찰에 연행되었고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피터는 어깨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지만 고급 의료시설에서 회복되어 갔다. 신문과 TV 뉴스에 의해 사건이 알려지고 파리 전역이 마리엘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찼다. 우따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학교에 나왔다가 조용히 집에 갔다. 나는 마리엘이 원망스러운 한편 우따에게도 마음이 상해서 줄곧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마리엘 염산 테러 사건’의 여운이 남은 학교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 역시 학교는 물론 파리, 그리고 프랑스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제임스 T 우드의 학교장 살인 미수’였다. 목에 심한 자상을 입은 교장은 9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우따가 휘두른 칼날이 동맥을 비켜갔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성대와 기도에 심한 손상이 와서 호흡기와 소형 마이크를 부착한 상태로 남은 생을 살게 되었지만 그것도 그가 받아야 할 몫의 기적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다. 일생을 교육에 바쳐온 것에 대한 보답 운운. 그럴수록 우따는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 되어 갔다. 우따는 그 어떤 항변도 하지 않았다. 우따가 교장을 공격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면회를 가기 시작하고 7개월이 흐른 뒤였다. 우따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도 많이 옅어진 때였다. 그즈음 나는 우따를 찾아가는 일 자체에 어떤 보람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뜨거운 우정의 주인공이자, 숭고한 정신의 실천자가 된 것 같았다. 그런 것이 기뻤다. 면회는 우따가 아닌 나를 위해서 한 일이었던 셈이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우따가 저지른, 아니, 우따에게 일어난 일은 나의 철없는 사춘기의 감정놀음에 사용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은 건 마리엘의 유서 때문이었다. 피터를 공격한 죄로 복역 중이던 마리엘은 감춰둔 면도칼을 삼키고 자살했다. 유서는 모두 네 장이었는데 각각 주인이 달랐다. 편지의 주인은 그녀의 가족, 피터, 교장, 그리고 우따였다. 생전에 마리엘은 우따와 몇 통의 메일을 주고받았다. 먼저 메일을 보낸 건 마리엘 쪽이었다. 마리엘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학교의 룰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상호평가에서 백인 아이들끼리 좋은 점수를 나누어 갖는 것부터 식당에서 유색인종 아이들이 출입구 가까이에 앉는 것까지 모든 일에 문제를 제기하려 했고, 우따에게 함께 행동할 것을 요청했다. 우따는 섣부른 행동은 도리어 역효과를 낼 수 있으니 자중하자는 입장이었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감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음을 근거 삼아 마리엘을 설득하려고 했다. “겁쟁이. 도망자!” 마리엘은 우따를 비난하고 연락을 끊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모르게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학교 내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알리기 시작했다. 백인과 유색인종의 그랑제콜(Grandes ´Ecoles) 입학률 차이를 그래프로 정리했다. 여름방학 중에는 거리에서 인종차별 개선을 위한 서명 운동도 펼쳤다. 마리엘은 개학 일주일 전에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들고 교장실을 찾아갔다. 교장은 마리엘을 칭찬하고 너그럽게 웃으며 내가 조금 더 잘하겠다는 말로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런 마리엘을 눈여겨본 사람이 피터였다. 우리 학년의 대표였던 피터는 마리엘의 집에 직접 찾아가 자신이 도울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피터와 마리엘은 저녁을 같이 먹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리엘은 정신을 잃었고 근처 공원에서 하혈을 한 채로 깨어났다. “살던 대로 살아. 조용하게.” 깨어난 마리엘에게 피터는 그 말을 남기고 가 버렸다. 마리엘은 흔들리는 몸과 마음을 붙들고 자신이 당한 일을 어머니에게 알렸다. 차고 넘치는 증거가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경찰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고 마리엘의 집으로 험악한 사내들이 찾아오거나 한밤중에 아무 말도 없이 숨소리만 들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모든 일의 뒤에 피터와 그의 부모, 그리고 교장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던 마리엘의 유서가 또 한 번 파리를 들끓게 할 것 같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문의 사회면 마지막 장에 ‘염산 테러 사건의 주인공 자살’이라는 짤막한 기사 하나가 실렸을 뿐이었다. 모두가 마리엘과 그녀의 일을 잊어갔다. 교도소에서 우따가 나에게 딱 한 번 무언가를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마리엘의 유서를 읽고 나서의 일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이었다. 면회를 마치고 곧장 우따의 집으로 가서 책을 챙겼다. 오랜만에 간 김에 환기를 하고 묵은 먼지를 털었다. 먼지를 털고 집을 정리할수록 마음이 왠지 허전해졌다. 냉동실에 들어 있던 감자를 꺼내 튀겨 먹어 보았지만 우따가 만든 것처럼 되지가 않았다. 어둠이 깔릴 때까지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집이 자꾸만 나를 붙잡는 기분이었다. 다음 면회에서 책을 받은 우따는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속지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다가 빨간색 펜으로 표시된 몇 개의 페이지를 읽더니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책 위로 굵은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이내 소나기처럼 책장을 덮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우따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었다. 그를 감동시킨 것은 한나 아렌트가 아니라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인간성의 자리에 관료의식만이 남은 평범한 악, 그렇기에 지닐 수 있었던 법정에서의 당당함, 스테판 T 우드의 인생에 큰 영감을 준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빈민가 출신의 흑인 고아였던 우드 씨는 하늘이 주신 총명함과 뼈를 깎는 노력의 힘입어 영국 중앙법원의 판사가 된 기념비적 인물이었다. 우드 씨를 보살폈던 고아원에서는 그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조금 무리를 하면서까지 제법 큰 파티를 열었지만 정작 그는 파티의 초대장을 잘게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린 우따에게 그 모습은 큰 충격으로 남았다.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은 우따가 조금 더 자랐을 때 일어나는데, 우드 씨가 자랐던 빈민가 출신의 흑인 청년의 손에 그와 그의 아내가 살해당한 것이었다. 우따의 부모를 죽인 사람은 흑인 처우 개선과 근로 차별 금지 운동을 주도하던 활동가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시위가 벌어졌던 어느 날 경찰 폭행 혐의로 연행되었고 곧바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실 그는 폭력 시위를 기획하지도 않았고, 뜻밖의 소요 사태에서 쓰러진 경찰을 공격하려는 다른 참가자들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증거는 충분했고 변호인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우따의 아버지는 그에게 11년형을 선고했다. 판결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인종 차별 관련 재판의 대다수가 그에게 넘어갔고 그는 일관된 판결을 내렸다. 그가 사망한 것은 우따의 생일 전날이었고, 아내와 우따의 선물을 사서 나오던 길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우따를 찾아간 건 월드컵을 앞둔 평가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프랑스 대표팀을 집요하게 몰아붙였다는 뉴스를 본 날이었다. 그 경기에서 한국은 3 대 2로 졌지만 경기 내용만큼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쓸쓸한 위로 같다,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파견근무가 끝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 면회 날에 우따는 개운한 얼굴로 나타났다.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굴지 말자는 것이 우따의 첫마디였다. 그 말 이후로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나를 보는 우따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우따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들자 우따가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를 건네는 손과 받는 손이 봉투의 양끝을 쥐고 한참 그 자리에 머물렀다. 편지가 나의 손으로 넘어온 다음 우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명하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빛이 드는 문 너머로 들어갔다. 막 귀국했을 때 한국은 절대 꺼지지 않을 불길에 휩싸인 것 같았다. 온 나라가 그랬다. 어디를 가나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그런 옷을 입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당할 것 같아서 우리 가족도 붉은 티셔츠를 입고 시청과 광화문 앞으로 갔다. 하지만 온 세상을 불태울 것 같던 기세는 생각보다 금세 꺾였다. “프랑스에 있지 왜 들어왔어.” 선생님들이 나에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악의는 없었고 수업이 안 풀릴 때 던지는 농담이었다. 나는 그 말이 재미있지 않았다. 대통령의 탄핵을 놓고 국회의원들이 몸싸움을 하는 장면을 TV 생중계로 보았던 날에는 그 말이 어쩌면 농담보다 더 악질인 종류의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파리와 서울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겁함이 영리함이고 침묵이 성숙이라는 것은 8960km를 날아와도 변하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우따와의 만남이 후회스러웠다. 그날들에서 등을 돌려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우따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탁 트인 길을, 누군가가 그런 길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는 길을, 빠르게 달릴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빛나는 어떤 것을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그 정도의 인간이 되었다는 확신이 없다. 다만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고 그것에 기대었다. 누군가를 짓밟으면 무엇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따에게서 온 편지들을 읽었다. 우따가 보낸 편지는 언제나 같은 문장으로 끝났다. ‘더 나은 무엇이 되자. 그때 만나자.’ 편지를 읽고 나면 그 위로 우따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 얼굴은 우는 얼굴이기도, 찌푸린 얼굴이기도, 잠든 얼굴이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내 기억에서 가장 선명한 우따의 얼굴은 웃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냈다. 내가 우따를 왜 우따라고 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 당선소감 - 강석희 씨사방에 달린 물음표, 하나씩 따라가고 싶어 당선 연락을 받은 날 밤, 좋은 사람들과 꽤 많은 술을 마시고 말았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모인 자리였지만 자연스럽게 당선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속수무책으로 기뻤습니다. 침대에 누웠을 때 머리가 어지러웠고 딸꾹질과 함께 쓴물이 올라왔는데도 ‘아, 좋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머릿속이 궁금해서 쓰다 보니 이제는 온 세계가 궁금해져 버렸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라 당선이라는 말에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사방에 달린 물음표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정말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감도 갖게 됩니다. 겁과 기대 사이에서 꾸준히 쓰겠습니다. 제 삶의 첫 어른이신 김신선 선생님, 용기와 조언을 주신 ‘소설만세’의 정용준 작가님, 시를 읽는 감동을 나누어 주신 임수만 교수님과 대학원 선생님들,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부터 응원해 준 창용 종률, 청춘을 함께 보내고 있는 운석 형택 소현 치웅 아람 성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갈수록 이상해지고 복잡해지는 저를 늘 사랑해주는 부모님과 누나, 고맙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쓰던 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글을 꼼꼼히 읽어주고 히스테리를 받아준 지혜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열심히 읽고 쓰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1986년 경남 진주 출생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동대학원 석사 재학 △충북 청주 흥덕고 국어교사 ● 심사평 다루기 힘든 재료, 흡인력 있게 요리 본심에 올라온 9편을 통독하면서 새삼 ‘소설은 소통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技術)’이든 ‘기술(記述)’이든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는 대전제 없이 소설은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작가와 독자는 대화를 시도하며 작가와 시대가 소통하고 작품과 현실, 상상의 세계가 서로의 경계, 세포벽을 넘나들게 된다.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결국 작품의 완성도, 온축의 흔적이 평가를 다르게 만들었다. ‘영지’는 경주로 여행을 간 두 사람의 이야기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정교한 세부 묘사가 돋보인다. 하지만 화자 내면의 목소리가 경주라는 외경과 시각장애인과 동반하는 데 따른 쉽지 않은 여정에 종속되어 입체적이라기보다는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키친 트렁크’는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의 내면과 피폐한 일상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다. 묘사가 핍진하나 이미 익숙하고 많은 사람에 의해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뒤로 미뤄졌다. 당선작인 ‘우따’는 흠잡을 데 없이 완성도가 높다는 점에서 압도적이다. 인종차별과 사법적 정의처럼 다루기 쉽지 않은 재료를 능숙하게 요리해 내면서도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신선한 패기가 넘치면서 오랜 수공을 거친 장인의 손놀림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작품이 새로운 소설 문학을 이끌어 가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하게 된 분들의 분발을 바란다. 오정희·성석제 소설가}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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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희곡]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

    ● 당선소감 - 이수진 씨하품만 늘던 삶에 새로운 원동력 찾았습니다 “무언가 되려 했으나 끝내 되지 못했다”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속 쏘린의 한탄처럼, ‘미생(未生)인 채로 삶이 끝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의 끝에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삶이 니나의 재기발랄함보다는 쏘린의 하품을 더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아직도 당선 소식을 보이스피싱 전화가 아니냐며 어리둥절할 만큼 부족한 저에게 좋은 평가를 해주신 심사위원님들 감사합니다. 김석만 선생님, 이상우 선생님, 박근형 선생님 고맙습니다.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선생님들의 조언이 되살아나 한밤중의 등불처럼 한 발 한 발 앞을 비춰주는 좋은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음악극 ‘러브(LOVE)’를 함께했던 ‘모멘텀 프로젝트’팀 덕분에 나른한 삶에서 탈출해서 신춘문예 접수 마지막 날 원고를 넣을 수 있었습니다. 전환과 도약, 추진력을 뜻하는 ‘모멘텀’이라는 단어처럼 팀원들 모두 좋은 기운을 받아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삶은 ‘갈매기’의 4막처럼 여전히 춥고 나른하겠지만, 그래도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동아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리지 않은 딸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살뜰히 돌봐주시는 어머니, 고맙습니다. △1978년 대구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 심사평변화된 사회현상 집약적으로 드러낸 수작젠트리피케이션, 사이비 종교집단, 남자 임신 등 소재가 다양해졌다. 로봇, 대리기사, 고양이도 등장했다. 멈춰버린 지하철, 개 경매장, 수중도시도 나왔다. 이런 변화를 환영한다. 그 다음은 말하려는 바를 알고 썼는지 묻게 된다. 경험을 포함해 ‘그것’을 껴안고 뒹굴며 사유를 전진시켰는지,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발견한 현실이 있는가. 발로 뛰어다니며 썼으되 핵심을 짚은 작품, 자기객관화가 되어 있는 작품을 기다렸다. 그러나 다양한 소재에 비해 압도적인 새로운 발견은 없었다.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는 고등학교의 학년 교무실을 배경으로 각각 50대, 30대, 20대인 여교사를 등장시켜 변화된 교육 환경을 경험해 본 것처럼 써나갔다. 다만 후반부가 약했다. 그럼에도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를 당선작으로 결정한 건 새로운 소재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줬고, 문제적 인물이라 할 만한 ‘에이미 선생’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변화된 사회 현상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철리 연출가·장우재 극작가 겸 연출가}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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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소설과 현실의 경계, 그 가깝고도 먼 어딘가

    원하는 곳으로 단숨에 떠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책을 읽는 것. 한데 책 속에 완전히 빠져 사는 삶은 어떨까. 탐독가라면 벌써부터 군침을 꼴깍 삼킬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그런 인생을 실감 나고 천연덕스럽게 그렸다. 미노루는 부모가 남긴 막대한 유산 덕분에 책에 파묻혀 산다. 재산 관리는 세무사 친구에게 맡겼다. 미노루에게 삶의 중심은 책이다. 시작부터 미노루가 읽고 있는 북유럽 미스터리가 등장한다. 가족과 친구, 지인들은 불쑥불쑥 들이닥쳐 책 읽기를 멈추게 만들 뿐이다. 책 속 배경인 하얀 눈이 가득한 겨울을 사는 미노루는 현실의 계절인 여름을 문득문득 덥다고 느낄 정도다. 미노루에게는 딸이 있지만 아이의 엄마인 나기사는 책만 읽는 그에게 질려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 이야기는 현실과 소설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책의 내용이 한참 펼쳐지다가 인터폰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며 지인과 누나가 찾아오는 식이다.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소설 속 세계와 평범한 현실이 또렷이 대비된다. 미노루와 함께 책을 읽다가 중간 중간 일상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공유하는 기분이다. 이혼했다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찾아온 친구에게 미노루는 이렇게 말한다. “아, 그런데 잠깐 기다려야겠다. 지금 좀 긴박한 장면이라서, 이 장이 끝나는 데까지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안 될 것 같아.” 정말 강적이다. 작가는 ‘이렇게 살아보는 거 어때?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니?’라며 장난스럽게 물어보는 것 같다. 유쾌하고 신선한 구성의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한편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견뎌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현실을 까맣게 잊은 채 정신없이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꼽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강렬한 경험을 선사할 책들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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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생을 걷다 유년의 기억을 만난다면

    유년의 기억은 때로 불쑥 튀어나와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그 기억 속에는 지금 자신 안에 담긴 것들의 원형이 존재한다. ‘해변빌라’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이 장편소설에서 저자는 존재를 지탱시키는 기억과 관계에 대한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야기는 ‘나애’가 보낸 1970년대 유년기와 2010년대의 현재가 교차된다. 동생들이 연이어 태어나는 바람에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나애는 친구 도이, 상과 유년의 시간을 채워나간다. 함께 사는 종려할매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한다. 2010년대의 나애에게는 10년 동안 만났던 강, 3년간 동거한 희도가 있다. 나애는 연인과 가족으로 묶이는 것을 피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손에 쥐었을 때가 아니라 기억 속에 온전히 존재할 때 자기의 것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안에는 그런 장소가 있다. 한번 일어난 일은 영원히 복기되는 곳,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애에게 소유는 이런 의미다. 화자는 나애지만 중간 중간 나애의 오랜 친구 연태의 시선에서도 이야기를 풀어간다. 매력적이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나애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 삶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애는 자신을 밀어냈던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고백한다. 이제는 늙어 바스라질 것 같은 어머니에게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나애의 절규는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마음이 다 찢어지면, 그 다음엔 자기 마음의 바깥에서 살게 돼요. 자기 마음의 바깥이 어딘지 알아요? 거긴 세상의 밖이에요. 나 혼자뿐인 것 같은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등불을 안고 걸어가는 거예요.’ 어린 시절 늘 의아했던 어머니의 행동과 마음, 지인들이 처한 상황과 진실을 모두 알게 된 나애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떠나보냈던 희도에게 향한다.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곱씹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서서히 스며들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유년의 기억 역시 돌아보게 만든다. 기억과 마음을 찬찬히 음미하게 하는 한 잔의 차 같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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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 작가 속속 귀환 ‘이름값’… 페미니즘 도서 거센 열풍

    문학과 출판계는 페미니즘과 정치 관련 서적에 대한 관심 급증, 노벨 문학상 특수와 국내외 스타 작가의 잇따른 신작 출간으로 알찬 한 해를 보냈다. 과학을 주제로 한 책과 작고 예쁜 문고본의 강세도 도드라졌다.○ ‘페미니즘을 읽자’…장르 불문 신간 줄이어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을 필두로 ‘현남 오빠에게’(조남주 최은영 등), ‘다른 사람’(강화길), ‘아내들의 학교’(박민정)처럼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 현실을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본 소설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지난해 10월 출간된 ‘82년생…’은 지난 주말 판매량 50만 부를 돌파했다. 이 중 49만 부가 올해 판매되며 ‘82년생…’은 한국의 여성 문제를 집약한 대명사가 됐다. 8월 내한한 페미니즘 사회운동가 리베카 솔닛의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도 화제를 모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출간된 페미니즘 관련서는 78종으로 지난해의 2배를 웃돌았다.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집계한 페미니즘 관련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의 8배를 넘었다.○ 노벨상 신드롬과 스타 작가의 귀환 10월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그의 작품 판매량이 급증했다. 특히 ‘남아 있는 나날’(1989년), ‘나를 보내지 마’(2005년)가 인기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작품을 포함해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의 소설 8종 가운데 7종을 낸 민음사에 따르면 최근 8년간 총 판매량은 4만 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 뒤부터 단 두 달 만에 그 4배에 육박하는 15만 부가 판매돼 노벨상의 힘을 실감하게 했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잠’, 댄 브라운 ‘오리진’, 황석영 ‘수인’, 김훈 ‘공터에서’, 김영하 ‘오직 두 사람’, 김애란 ‘바깥은 여름’ 등 국내외 스타 작가들이 새 작품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이들 책은 모두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작가의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입증했다. 하지만 ‘선인세 30억 원 설’로 이목을 끈 ‘기사단장…’은 하루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 실패와 아울러 작품성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주 동아일보가 출판 관계자 48명에게 청한 ‘올해의 책 베스트 5’ 설문에서도 1표를 받는 데 그쳤다.○ 정치와 과학을 읽는다…대선과 인공지능 이슈 대선이 5월로 앞당겨지면서 정치 관련 서적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이 눈에 띄게 커졌다. 교보문고는 2017년 정치 분야 도서의 판매 부수가 지난해보다 21.5% 늘었다고 밝혔다.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판매량이 급증한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은 이 서점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1위,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는 3위에 올랐다. ‘지금 다시, 헌법’ 등 탄핵 관련 주제를 다룬 책들, 문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읽고 추천한 ‘명견만리’ 시리즈도 인기를 끌었다. 예스24 집계에서는 문 대통령을 표지 모델로 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5월 15일자가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인공지능 이슈로 힘을 얻은 과학책 붐도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4년부터 해마다 2∼4%씩 늘어난 과학서적 판매액은 올해 8.6%로 증가 폭을 키웠다. 9월에는 국내 최초 과학비평 전문지 ‘에피’와 만들기 키트를 부록으로 함께 증정하는 과학 잡지 ‘메이커스: 어른의 과학’이 출간됐다.○ 더 얇고 가볍게…대세로 자리 잡은 ‘문고본’ 서점가에서는 무겁고 두툼한 양장본보다는 가벼운 외형의 문고본 책이 주력 상품으로 발돋움했다. 먼저 4월 초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가 미리 주문한 독자에게 출판사가 추천하는 문고본 책을 정성껏 선물 포장해 발송하는 ‘개봉열독’ 이벤트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뒤이어 인터넷과 대형서점이 아닌 중소 규모 동네서점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한 민음사의 ‘쏜살문고 동네서점 에디션’, 위고 등 3개 출판사가 의기투합해 내놓은 ‘아무튼’ 시리즈가 등장했다. 이들 문고본 책은 박리다매가 목표였던 수십 년 전 문고본과 달리 세련되고 경쾌한 디자인을 앞세운 휴대용 아이템 상품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손택균 sohn@donga.com·손효림 기자}

    • 201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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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한 자 한 자 성실하게 채워나가다

    “어쩌죠? 강연을 다섯 번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원고를 네 개밖에 못 썼어요….”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에게 걱정스럽게 말한 이가 있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였다. 과거 이 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을 때 일이란다. 강연 대상이 달라 같은 내용을 말해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그는 듣는 이에 맞춰 각각 원고를 쓴 것. 강연별로 원고를 준비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정석은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제 명사의 강연을 듣다 보면 출간한 책이나 다른 곳에서 했던 내용과 똑같아 실망하기도 한다. 이들은 여러 나라에서 강연하기에 내용의 차별화는 전적으로 본인의 양심에 달렸다. 르 클레지오는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의 소설 ‘폭풍우’와 ‘빛나: 서울 하늘 아래’에는 제주 우도와 서울 곳곳을 발로 뛴 흔적이 담겨 있다. 명성에 취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채워 나가는 그는 진정 빛나는 사람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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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하!東亞] 국내 신춘문예 첫 페이지 열다

    해마다 문학청년들을 ‘몹쓸 열병으로 겨울 들판을 헤매게’(안도현 시인) 만들지만 ‘아무 인맥도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할 수 있는’(은희경 소설가) 것. 바로 신춘문예다. 동아일보는 1925년 국내 최초로 신춘문예를 시작했다. ‘임꺽정’으로 유명한 홍명희 당시 편집국장 겸 학예부장이 주도했다. 1925년 1월 2일자 ‘신춘문예모집’은 “종래의 문예란, 부인란, 소년란을 힘이 자라는 데까지 보다 충실하고 보람 있게 하여 보려고 한다”라며 신진 작가의 작품을 모집하는 배경을 밝혔다. 이어 “어떻게 해 나가는지는 장차 보여 드리겠다”며 “많이 투고하여 이 세 가지 난을 금상첨화의 꽃밭을 이루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모집 부문은 △문예계는 단편소설과 신시(新詩) △부인계는 가정소설 △소년계는 동화 가극 동요로 구성됐다. 1등 상금은 부문별로 50원, 신시와 동요는 10원이었다. 당시 쌀 한 가마니(80kg 기준) 가격이 20원 안팎이었다. 훨씬 뒤인 1943년 남성 기준으로 본 조선인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53원임을 감안하면 당시 1등 상금은 한 달 월급 혹은 그 이상이다. 부문별 원고지 분량을 정한 지금과 달리 원고량은 무제한이었다. 신춘문예는 도입 첫해부터 거목을 발굴했다. 동요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의 가사를 쓴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동화 ‘올빼미의 눈’으로 당선된 것. 1933년 황순원(시), 1936년 서정주(시) 김동리 정비석(이상 소설)을 한꺼번에 배출했다. 한편 1935년 상금 500원을 내건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는 심훈의 ‘상록수’가 당선됐다. ‘상록수’는 그해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며 농촌계몽운동의 등불이 됐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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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력 자극하는 서울… 이야기 만들게 했죠”

    가난한 여대생 빛나가 죽음을 앞둔 40대 여성 살로메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북한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비둘기를 키우는 아파트 수위 조 씨, 버려진 아이 나오미와 그를 키우는 한나, 탐욕에 희생되는 아이돌 가수 나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7)가 서울 곳곳을 조명하며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을 통찰한 장편소설 ‘빛나: 서울 하늘 아래’(서울셀렉션)다. ‘빛나’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했다. 제주 우도가 나오는 소설 ‘폭풍우’에 이어 르 클레지오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두 번째 작품이다. ‘빛나’ 영어판은 다음 주, 프랑스어판은 내년 3월에 각각 나온다. 우리말을 능숙하게 읽고 쓰는 그는 14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어를 나날이 배워요”라며 우리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2001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후 문화적 풍요로움에 매료돼 수차례 한국을 찾은 그는 대중교통으로 서울 곳곳을 누볐다.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움직이는 도시이자 오래된 문화가 함께 있는 서울은 상상력을 한껏 자극해요. 서울이 내게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했죠.” 빛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는 남북 분단, 한국 현대사와 전통, 음식을 풀어냈다. 신촌, 이화여대 앞, 서울역, 우이동, 안국동, 영등포, 북한산 등 서울 구석구석도 세밀하게 묘사했다. 남산도서관 벽에 붙어 있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구절이 등장할 정도로 발품을 판 흔적이 선명하다. 동요 ‘섬집 아기’ 악보를 실었고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난다’는 속담도 나온다. “서울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첨단 기술의 발달로 인간성이 상실된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작은 집과 사찰, 카페가 남아 있어요. 무엇보다 집 앞마당에 채소를 키우고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좋아요.” 서울을 이상적인 도시로만 그리지는 않았다. 스토커를 등장시킨 건 서울에 똬리를 튼 위험을 상징한다. ‘폭풍우’에 이어 ‘빛나’에서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많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소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20대인 두 딸도 그가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빛나’를 쓰는 동안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긍정적으로 사는 이들을 그린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와 한강 소설가가 많이 떠올랐다고 했다. “현대 한국 여성이 처한 문제와 심리를 탁월하게 풀어낸 작가들이에요. 한강 작가는 위대한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는 관심과 애정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새벽 6시 무렵 신촌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봤어요.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이화여대 근처에서 만났던 점쟁이 여인, 서울의 택시 운전사에 대한 소설도 써 보고 싶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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