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2일부터 등하교 시간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교통경찰이 대거 배치된다. 내년 1월부터는 사고가 잦은 스쿨존 앞뒤 600m의 최고 제한속도를 시속 40km로 낮추고 무인 과속 단속 장비를 확대 설치한다. 1일 경찰청은 이런 내용이 담긴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국회 ‘필리버스터 충돌’로 일명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어린이 안전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자 법을 고치지 않고도 가능한 대책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우선 2일부터는 출근길 교통관리를 하던 경찰관 1558명 중 620명(40%)을 스쿨존으로 전환 배치한다. 특히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거나 무인 과속 단속 장비 등 폐쇄회로(CC)TV가 없어 사고 우려가 높은 스쿨존 4705곳에는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까지 끌어 모아 등하교 시간에 교통안전 관리를 한다. 교통경찰이 자리를 비우는 출근길 혼잡 교차로에는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소속 회원들을 둘 방침이다. 내년 1월부터 최고 제한속도가 시속 40km 이상인 스쿨존 중 일부는 제한속도를 시속 30km으로 낮춘다. 현재 전국 스쿨존 1만6789곳 중 1만6201곳이 제한속도가 시속 30km로 운영되고 있지만 나머지 588곳은 차량 흐름을 위한다는 이유로 제한속도가 시속 40km 이상이다. 이 중 사고가 잦은 일부 스쿨존부터 먼저 제한속도를 시속 30km로 낮춰본 뒤 다른 지역으로까지 차츰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다만 도심 제한속도에 따라 시속 50∼60km로 달리던 차량들이 스쿨존 앞에서 갑자기 속도를 낮추거나 스쿨존을 벗어나자마자 급가속하면 위험하다고 보고 스쿨존 앞뒤로 600m를 이른바 ‘완충지대’로 설정해 제한속도를 시속 40km로 낮춘다. 스쿨존 주변에서의 ‘반칙운전’ 차량에 대한 단속도 강화된다. 경찰은 이달 중순부턴 어린이 시야를 가리는 불법 주정차 차량을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집중 단속한다. 특히 어린이 통학버스와 학부모의 차량이 뒤섞이는 오후 2시부터 6시 사이엔 캠코더 단속을 벌인다. 최근 3년간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의 53.2%가 이 시간대에 발생했다.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 과태료를 일반도로의 2∼3배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내년 1월에 스쿨존 CCTV 예산이 늘어나면 곧장 설치할 수 있도록 이달 중순까지 녹색어머니회 등과 함께 취약 스쿨존에 대한 선정을 마칠 계획이다. 올해 9월 처음으로 실시했던 어린이 통학버스에 대한 부처 합동점검을 내년부터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정례적으로 실시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수사를 무리하게 지휘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돼 수사를 받고 있는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의 명예퇴직 신청이 반려됐다. 황 청장은 김 전 시장 주변에 대한 수사가 검찰의 방해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특검을 제안했다. 황 청장은 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찰청으로부터 명예퇴직 불가 통보를 받았다. 사유는 검찰이 ‘수사 중’임을 통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은 지난달 18일 황 청장이 낸 명예퇴직원을 같은 달 29일 반려했다. 공무원 비위사건 처리규정에 따르면 비위로 수사를 받는 공무원의 의원면직은 허용할 수 없다. 황 청장은 명예퇴직 신청이 반려된 것과 관련해 “헌법상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받았다. 분통터지는 일이다”라며 “변호인과 상의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가 고발에 의해 수사할 때는 고발을 수리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해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검찰은 고발장 접수 후 지금까지 1년 6개월이 넘도록 나를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라며 “(검찰은) 어떤 사건은 군사작전 하듯 신속하게 진행하고 어떤 사건은 오랜 기간 묵혀두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끄집어내는지 그 기준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황 청장은 자신이 울산경찰청장으로 근무할 당시 김 전 시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의혹에 대해 거꾸로 “지난해 7월 송인택 울산지검장이 부임한 이후 노골적인 수사방해로 이른바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 건지, 검찰이 불순한 의도로 무리한 불기소 결정을 한 건지 따져봐야 한다”라며 “특검을 제안하고 특검이 어렵다면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는 제3의 조사기구를 제안한다”고 했다. 자신이 지난해 1월 울산의 한 장어집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울산시장 후보였던 송철호 울산시장을 만났다는 지난달 30일 한 언론 보도에 대해 황 청장은 페이스북에 “명백한 허위보도”라고 밝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5년 전 가을, 모처럼 일군 330㎡(약 100평) 넓이 고구마 밭이 온통 난장판이 됐다. 멧돼지의 짓이었다. 강원 강릉경찰서 이장원 경위(44)는 쉬는 날마다 고구마를 돌본 게 떠올라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같은 경찰서 박재동 경위(54)는 사정이 더 나빴다. 멧돼지들이 옥수수 밭만 짓밟아놓은 게 아니라 조상 묘까지 파헤쳐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경찰 최초로 출범한 멧돼지 전담 사냥팀인 ‘멧돼지 신고 대응 전담경찰관팀’에 이 경위와 박 경위가 기꺼이 합류한 이유다.● 복수심에 불타는 총잡이들사냥팀은 멧돼지가 주택가나 농장에 침입했다는 신고를 받으면 현장으로 출동해 주민 피해를 막고 멧돼지를 포획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는 이달 11일부터 강릉경찰서와 경기 남양주경찰서에 우선적으로 사냥팀을 1개팀(팀당 3명)씩 배치했다. 이곳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를 지닌 멧돼지가 남하할 가능성이 높은 길목이다.경찰이 특정 동물을 전담해 대응하는 팀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 태종 16년(1416년) 생겨난 호랑이 사냥 특수부대인 ‘착호갑사(捉虎甲士)’처럼 이번 멧돼지 사냥팀도 정예로 구성됐다. 이 경위는 멧돼지의 횡포에 직접 대응하기 위해 2015년 수렵 면허와 엽총 소지 허가를 받은 베테랑 총잡이다. 쉬는 날엔 민간 자원봉사단체인 야생생물관리협회 강릉시지회에서 활동하며 멧돼지를 쫓는다. 이 경위는 올 들어서만 40마리가 넘는 멧돼지를 잡았다고 한다.박 경위도 지난해 6월 수렵 면허를 받아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격 활동 전에 선배 엽사를 따라다니며 6개월간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박 경위는 이 경위한테서 사수(師授)했다. 강릉경찰서 사냥팀의 또 다른 팀원인 조용승 경위(50)는 경찰 청와대 경비대(101단) 출신의 권총마스터로 사격술이 뛰어나 발탁됐고, 엽총 훈련을 받았다.엽총을 다룰 줄 아는 경찰관들로 사냥팀을 구성한 이유는 평소 순찰 때 차고 다니는 38구경 권총으론 겨울철을 앞두고 두꺼워진 멧돼지의 가죽을 뚫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광주 서구에선 한 경찰관이 멧돼지에게 권총 실탄 3발을 맞혔지만 멧돼지가 치명상을 입기는커녕 오히려 흥분해 경찰관의 종아리를 물었고, 실탄 7발을 더 맞힌 후에야 사살할 수 있었다. 해당 경찰관은 종아리가 20㎝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엽총은 권총보다 위력이 3배 이상으로 강하다.● 엽총 사격과 빠른 출동이 생명사냥팀은 멧돼지 출몰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날에도 발자국이나 분변 등 멧돼지 흔적을 찾아다닌다. 자주 다니는 길목을 알아둬야 ‘잠복 포획’을 시도할 수 있고, 멧돼지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달 8일 오후 강릉시 성산면의 한 묘목장에서 만난 강릉경찰서 멧돼지 사냥팀은 ‘POLICE(경찰)’라고 적힌 검은색 방검복을 입고 어깨에 엽총을 맨 채 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릎 높이 수풀 사이에서 멧돼지가 땅을 파헤친 흔적을 찾기 위해 허리를 굽힌 채였다. 오후 3시 40분경 훈련을 돕던 야생생물관리협회 강릉시지회 소속 민간 엽사 김현구 씨(45)가 “이거 멧돼지 발(자국)이네!”라고 소리치자 사냥팀이 모여들었다. 땅엔 약 5㎝ 깊이의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김 씨는 “이 정도면 무게가 80~90㎏은 나가는 녀석”이라고 말했다.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멧돼지들이 주둥이로 땅을 파헤쳐놓은 흔적이 여러 개 발견됐다. 민간 엽사 박승완 씨(45)는 “(파헤쳐진) 흙이 아직 촉촉한 것으로 봐서 어제 저녁에 멧돼지가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농장도 아닌 공터에 이런 흔적이 남은 이유는, 추수철이 지나 먹을 농작물이 없어지면 멧돼지들이 지렁이 등을 잡아먹기 위해 땅을 파헤치기 때문이다.사냥팀은 시속 50㎞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멧돼지를 정확히 맞힐 수 있도록 엽총 사격 훈련도 했다. 박 씨가 조 경위에게 “개머리는 쇄골과 어깨선 사이에 들어가야 하고, 개머리판은 뺨에 붙여야 한다”라며 사격 자세를 상세히 알려줬다.경찰청은 사냥팀 덕분에 전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엔 112나 119로 멧돼지 신고가 들어오면 민간 수렵단체 소속 엽사가 출동할 때까지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실제로 사냥팀 출범 전인 이달 5일에도 남양주시 별내면에선 멧돼지가 나타났지만 민간 엽사가 부상으로 출동하지 못해 멧돼지를 놓쳤다. 경찰 사냥팀은 출동 시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시킬 수 있다.김항곤 경찰청 범죄예방정책과장은 “시민 피해를 예방하는데 주력해 다음달 31일까지 사냥팀을 시범 운영한 뒤 확대 운영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강릉=김소영기자 ksy@donga.com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19일 인천 계양구에서 일가족을 포함한 4명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빚에 시달리던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지 17일 만이다. ‘인천 일가족’ 중엔 ‘성북구 네 모녀’처럼 한창 일할 나이인 20∼40대 구성원이 있었다. 신체질환으로 장애등급 판정을 받은 구성원은 없었다. 대다수의 정부 지원금 제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복지서비스의 기준선 밖에 있는 저소득층에게 ‘찾아가는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계양구 동양동의 한 임대아파트 복도엔 출입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붙어 있었다. 이 아파트에선 이틀 전 A 씨(49·여)와 아들(24), 딸(20) 등 두 자녀, 그리고 딸의 친구 B 양(19)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 가족을 잘 아는 인근의 한 상점 주인은 “A 씨는 가게에 들를 때마다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고 했다. 계양구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8월 커피숍에서 일하다가 손떨림 증상으로 실직했다. 같은 해 10월 주민센터에 들러 기초생활 주거급여(월 24만 원)와 한시적 긴급복지 지원금(월 93만6500원)을 신청해 받게 됐다. 긴급복지 지원금은 3개월 만에 끊겼다. 당시 주민센터 관계자는 기초생활 생계급여 제도도 안내했지만 A 씨는 “생각해보겠다”고만 하고 신청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A 씨와 두 자녀가 모두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부양의무자’인 전남편과 친정 부모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면 주민센터의 제안을 받아들여 월 최대 112만8010원(3인 가구 기준)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도 있었다. A 씨는 어지럼증으로 한의원을 종종 찾았고 그의 아들은 제대 후 직장에 다니다가 몸이 안 좋아 실직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장애등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복지부는 ‘송파 세 모녀 사건’(2014년 2월)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A 씨 가족은 이미 한부모 가정으로 지원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발굴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다. 실제로 관할 주민센터는 A 씨 가족을 사례 관리 대상에 포함시켜 성금이나 기부 물품, 장학금 등을 전달해왔고 A 씨의 딸도 주민센터에 직접 들러 통신요금 감면을 신청하곤 했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A 씨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엔 신체질환이나 생계곤란 못지않게 정신적 어려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따르면 A 씨 가족이 우울증 상담을 받거나 서비스 대상으로 등록된 적은 없다. 이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업무가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226곳(2017년 말 기준) 가운데 중증 정신질환을 관리하는 곳은 218군데이지만 자활사업을 수행하는 센터는 81곳에 불과했다. 이런 경향은 올 4월 경남 진주시에서 중증 정신질환을 앓던 안인득이 방화, 살인을 저지른 뒤로 더 심해졌다. 홍정익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A 씨 가족처럼 생계가 어려워 긴급복지 지원금을 받다가 끊기면 ‘정신건강 위기가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상담사가 찾아갔으면 좋았겠지만, 현재는 그런 제도가 미비하다”라며 “내년엔 관련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1일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인근엔 ‘성북구 네 모녀’를 위한 시민분향소가 차려져 조화를 바치고 향을 피우려는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인천=김소영 ksy@donga.com / 조건희·위은지 기자}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선 여성과 다문화 가정,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을 호소하고 대책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여중생 최인화 양은 “우리나라는 성별 임금 격차가 커 여성 청소년으로서 암울하다”라며 해결책을 물었다. 문 대통령은 “현 정부 들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라든지 이런 건 좋아졌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에 비하면 까마득하다”며 “유럽 국가를 보면 여성 고용률이 높아질수록 출산율이 좋아졌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때 비로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다문화 가정에 대해 “이제 우리 사회의 소수가 아닌 중요한 구성원”이라며 “권리도 의무도 차등 없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문화 부부가 “무슬림인 아들이 입대하면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는 등의 이유로 차별을 겪게 될까 걱정된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차별이 없다는 것은 각기 다른 조건을 갖고 있을 때 그에 맞게 갖춰주는 것”이라며 “음식(문화)이 특별하면 그에 맞는 식단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노력도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최근 7대 종단 지도자와의 간담회에서 ‘동성혼은 시기상조’라는 취지로 말한 것은 동성애자 차별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소수자 차별 (철폐) 문제는 원론적으로는 찬성하지만 동성혼 문제는 합법화하기엔 우리 사회가 합의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며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휠체어를 탄 한 장애인 패널이 “장애인 활동 지원 인력이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지원을 받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자 문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TV 방송 종료 후 유튜브에서 약 4분간 이어진 생중계를 마무리하며 “독도 헬기 추락사고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조건희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지금 사면 대박이에요. 10억 원까진 무리 없이 가요(올라요).” 18일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사가 전용면적 59m²인 7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공인중개사는 “주변 시세보다 저렴해 없어서 못 살 정도이니 서두르라”고 채근했다. 하지만 이어진 설명은 일반적인 아파트 매매 방식과는 달랐다. 이 아파트는 2009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공급된 ‘10년 공공임대주택’으로, 올 9월 분양 전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임차인(세입자)이 목돈을 마련하지 못해 아직 분양을 받지 못했으니 그 값을 대신 치러주면 나중에 소유권을 넘겨주겠다는 게 공인중개사의 설명이었다. 집주인은 LH인데 집값은 임차인에게 먼저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지 묻자 이 공인중개사는 “법적으로 애매해 100% 안전하다고는 못 한다”면서도 “이미 여러 채가 이런 식으로 계약이 이뤄졌다”고 했다. 2009년 5월 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해 처음 공급된 판교신도시의 10년 공공임대주택 5644가구가 최근 집값 폭등으로 ‘위험한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10년 전 임차인이 내야 했던 임대보증금은 1억5000만∼2억1000만 원이었지만 그간 인근 지역 집값이 2배 이상으로 크게 오르며 ‘주변 시세의 90%’로 책정된 분양 전환가가 5억∼6억 원으로 뛰었다. 이 때문에 당장 분양 전환을 할 형편이 못 되는 일부 임차인이 프리미엄(웃돈)이라도 건지기 위해 소유권 이전 등기도 되지 않은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거래가 중간에 어그러져도 매입자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광교 변호사(IBS 법률사무소)는 “민법상 부동산 처분은 소유권자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분양 전환이 안 된 아파트를 두고 개인끼리 맺은 매매 계약은 나중에 아예 무효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만약 임차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입자에게서 받은) 돈을 분양 전환하는 데 쓰지 않고 다른 데 써버렸어도 매입자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판교신도시 말고도 앞으로 분양 전환 시점이 돌아올 10년 공공임대주택은 전국에 10만 가구가 넘는다. 내년엔 경기 오산시에서, 2021년엔 경기 파주시 운정신도시에서 각각 1000가구가 넘는 10년 공공임대주택이 분양 전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당국은 실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10년 공공임대주택의 분양 전환이 이뤄지기 전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거래 유형이라서 적법성을 판단 중”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14일 법제처에 10년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이 소유권 이전 등기 전에 주택을 거래하는 게 적법한지를 검토해 달라고 의뢰했다. LH 관계자는 “규제 방안이 있는지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조건희 기자}

시민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으슥한 거리를 신고하면 해당 지역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치안 사각지대 해소에 힘쓴 광주 광산경찰서가 경찰청 ‘지역공동체치안 협의체(치안 협의체)’ 경진대회 대상을 받았다. 경찰청은 올 4월부터 전국 255개 경찰서에서 치안 협의체를 운영해 4818건의 치안 문제를 논의했고, 이 중 10건을 우수 사례로 시상했다고 17일 밝혔다. 광산경찰서는 ‘맘편한 광산’ 앱을 통해 접수한 1139건의 의견을 치안 강화에 적극 활용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여성 1인 가구가 많은 원룸촌을 대학생들과 함께 순찰한 뒤 비상벨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 환경을 정비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무허가 포장마차촌을 정비한 대전 둔산경찰서 등 8곳은 우수상을 받았다.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은 광산경찰서의 김태연 경장과 중부경찰서 강경령 경장은 각각 경사로 한 계급 특진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 ‘윤창호 씨(당시 22세) 사망사고’가 발생한 장소에서 불과 2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만취 운전자의 차량이 인도를 덮쳐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 운전자는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오전에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윤창호법’ 시행 후에도 오전 시간대의 음주운전은 크게 줄지 않고 있어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엔 오전 주택가에서 참변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17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 치사상 혐의로 A 씨(65)를 구속했다. A 씨는 전날 오전 11시 20분경 해운대구 좌동 대동사거리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95%의 만취 상태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 4명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B 씨(65·여)가 숨지고 C 씨(43·여)와 D 군(7), E 양(14)은 중경상을 입었다. C 씨와 D 군은 모자 관계다. 사고가 난 곳은 아파트가 밀집한 주택가로, 사고 당시 A 씨는 신호를 어기고 사거리에서 직진하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인도에 서 있던 B 씨 등을 향해 돌진했다. 사고의 충격으로 차로와 인도 경계 부분의 차단봉과 울타리가 통째로 뽑혀나갔다. 미처 피하지 못한 B 씨와 E 양은 A 씨 차량 아래에 깔렸다. 이를 본 시민 20여 명이 달려들어 차량을 들어올렸다. 이윽고 119구급대가 도착해 B 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E 양은 발목을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았다. A 씨는 사고 후 차량에서 내린 뒤 비틀거리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경찰에 연행된 후에도 5시간가량 횡설수설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전날 밤부터 집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 (사고 당일) 새벽에도 집에서 혼자 더 마셔 소주를 총 3병 정도 마신 것 같고, 볼일이 있어 차를 몰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 씨는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9월 25일 오전 2시 반경 윤창호 씨가 만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인 해운대구 중동 미포오거리에서 직선거리로 약 2k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사고 장소엔 17일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서 이웃이 허망하게 떠났다’라고 적힌 추모 쪽지와 꽃다발 등이 놓였다.○ 윤창호법 시행됐지만 ‘오전 음주운전’ 여전 경찰청에 따르면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시행된 올 6월 25일 이후 8월 24일까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건수는 1만931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2만7935건)보다 30.9% 줄었다. 단속 강화로 인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A 씨처럼 오전 시간대에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되는 건수는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작았다. 경찰청이 같은 기간 음주운전 적발 건수를 시간대별로 분석해 보니 오전 6시∼낮 12시엔 적발 건수가 지난해 2953건에서 올해 2738건으로 7.3%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음주운전 적발이 33.6%나 줄어든 다른 시간대와는 차이가 많이 난다. 전날 술기운이 아침까지 남아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아직 운전자들 사이에서 자리 잡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다음 달 27일까지 음주운전을 집중 단속할 예정이다. 음주 측정을 거부하거나 인명 사고를 낸 운전자는 현행범 체포를 원칙으로 하고 관련 지침을 이달 5일 일선에 내려 보냈다. 부산=강성명 smkang@donga.com / 조건희 기자}

노인 40명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223쪽 자서전이 18일 출간된다.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책이다. 참여자들이 유명 인사여서가 아니다. 장차관이나 대기업 사장, 대학 교수를 지낸 인물은 한 명도 없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어르신이 많아 구술작가가 듣고 옮기는 식으로 1년에 걸쳐 집필했다. 그런데도 이 자서전이 특별한 이유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의향서)로 연명의료를 거부한 이들이 인생을 돌아본 기록이기 때문이다. 사전의향서 공식 상담기관인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이 만난 노인 40명이 ‘존엄한 죽음’을 미리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이들의 자서전엔 한결같이 “미안하다”, “고맙다”는 표현이 담겼다.○ 죽음 문턱에서 ‘미리 준비하자’ 다짐 김상연 씨(79·여)는 6년 전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더니 쓰러졌다.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심장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지만 얼마 후 재발했다. 그제야 ‘나는 이제 자다가도 죽을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다. 갑자기 쓰러진 뒤 의식을 찾지 못하고 2년 넘게 연명의료를 받다가 숨진 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죽는 것보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수명만 연장하는 게 더 두려워졌다. 6일 서울 도봉구 창동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난 김 씨는 “몇 년 동안 코 줄로 깡통(유동식)만 먹고, 가족들이 오줌똥 다 받아줘야 하고…. 그러느니 미리 준비하자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사전의향서를 썼다. 자서전 제안을 받았을 땐 ‘대단치 않은 인생인데 무슨 자서전까지 쓰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술작가에게 살아온 얘기를 하다보니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숨진 첫딸에 대한 미안함 등 평생 응어리졌던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김 씨는 “이제야 삶과 작별할 준비가 됐다.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살자고 다짐하니 남은 날이 더 소중해졌다”고 말했다. 조현아 씨(66·여)는 사전의향서를 쓰기 전엔 김 씨와 정반대로 하루 종일 죽음만을 생각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사기로 집을 잃고 남편과 이혼한 뒤부터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다. 어떻게 해야 ‘실수로’ 살아남지 않을지 궁리했다. 하지만 자서전 구술작가를 만나는 과정이 치유의 시간이 됐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구질구질한 인생 얘기’를 다 털어놓으니 오히려 후련해졌다. 그는 “자서전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엔 ‘힘들 때 손 내밀어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생 처음으로 표현하는 고마움과 미안함 조규열 씨(81·여)는 몇 해 전 노인복지센터에서 ‘죽음 교육’을 받았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 사후 안구기증 서약도 했다. 세상을 떠날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서전을 쓰면서 평생 다섯 자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게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큰딸이 졸업장을 못 받은 일, 젖먹이였던 둘째딸이 울며 보챌 때 안아주지 못한 일…. 그래서 조 씨의 자서전은 “미안하다, 얘들아”라는 말로 시작한다. 5쪽 분량 자서전에는 마흔한 살이었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형편이 어려워져 주워온 콩나물로 주린 배를 채운 일, 삶을 포기하려 방에 연탄불을 피웠던 일, 어렵게 기른 자녀들이 결혼할 때 뿌듯함에 눈물 흘린 일이 담담하게 적혀 있다. 한 번도 말로는 전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는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평생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자서전에 비로소 털어놓은 건 조 씨만이 아니다. 손석주 씨(78)는 아내가 갑상샘암 수술을 하는 날에도 회사 일이 바쁘다며 병원에 가보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지금껏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어떤 이들에겐 이번 자서전이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할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높다. 치매 증상이 시작된 이춘자 씨(99·여)가 그렇다. 이 씨는 ‘집에 가야지’라고 생각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가 자신이 이미 집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간 버팀목이 되어준 자녀들에게 더 늦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며 자서전에 참여했다. ○ 사고로 두 다리 못 써도 “고마운 내 인생” 어르신들의 말을 옮겨 적는 재능 기부에 나선 구술작가들은 모두 사전의향서 상담교육을 받은 전문 상담가다. 어르신이 사는 곳마다 최소한 세 차례씩 찾아가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내가 무슨 자서전이냐’며 손사래 치다가 면담이 뜻밖에 길어진 경우도 많았다.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구술작가들이 접촉한 가족들은 원고를 받아 읽어보고 난생 처음 알게 된 가족의 면모에 놀랐다고 한다. 오연순 씨(78·여)의 딸은 오 씨가 남편과 사별한 뒤 양로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는 글을 읽고 “우리 어머니에게 이런 꿈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자서전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6·25전쟁 등 근현대사의 굴곡뿐 아니라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도 “그래도 살 만한 삶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신애자 씨(76·여)의 아픔은 깊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나흘 만에 수류탄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까지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자 숨도 못 쉴 정도로 답답했다. 하지만 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운 뒤 글짓기 대회에 나갈 정도로 실력을 키우며 행복을 되찾고 있다. 이하재 씨(66)는 어릴 적 큰 병을 앓고 7년 전엔 대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겪었지만 시를 쓰며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씨는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마지막 소원은 ‘평온한 죽음’” 자서전 참여자들의 버킷리스트는 다양했다. 신동근 씨(69)는 이혼한 아내를 다시 한번 마주해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적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따뜻한 저녁상을 한 번 차려주고 싶다는, 이승에서는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적은 노인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자주 언급된 소망은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떠나는 것’이었다. 오랜 병치레 끝에 고통 속에서 삶을 마치는 지인들을 수없이 보며 ‘존엄한 마무리’가 절실한 화두가 된 것이다. 김현한 씨(73·여)는 죽기 전에 5일만 준비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 자서전에 참여한 노인 40명은 1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모여 출판기념회를 열고 축하 파티를 한다.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대표는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도서관 한 채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생을 마감하기 전 주변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4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달 31일까지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43만457명이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가까운 상담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나 전화로 확인할 수 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노인 40명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223쪽 자서전이 18일 출간된다.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책이다. 참여자들이 유명 인사여서가 아니다. 장차관이나 대기업 사장, 대학 교수를 지낸 인물은 한 명도 없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어르신이 많아 구술작가가 듣고 옮기는 식으로 1년에 걸쳐 집필했다. 그런데도 이 자서전이 특별한 이유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의향서)로 연명의료를 거부한 이들이 인생을 돌아본 기록이기 때문이다. 사전의향서 공식 상담기관인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이 만난 노인 40명이 ‘존엄한 죽음’을 미리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이들의 자서전엔 한결같이 “미안하다”, “고맙다”는 표현이 담겼다.》● 죽음 문턱에서 ‘미리 준비하자’ 다짐 김상연 씨(79·여)는 6년 전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더니 쓰러졌다.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심장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지만 얼마 후 재발했다. 그제야 ‘나는 이제 자다가도 죽을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다. 갑자기 쓰러진 뒤 의식을 찾지 못하고 2년 넘게 연명의료를 받다가 숨진 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죽는 것보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수명만 연장하는 게 더 두려워졌다. 6일 서울 도봉구 창동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난 김 씨는 “몇 년 동안 콧줄로 깡통(유동식)만 먹고, 가족들이 오줌똥 다 받아줘야 하고…. 그러느니 미리 준비하자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사전의향서를 썼다. 자서전 제안을 받았을 땐 ‘대단치 않은 인생인데 무슨 자서전까지 쓰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술작가에게 살아온 얘기를 하다보니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숨진 첫 딸에 대한 미안함 등 평생 응어리졌던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김 씨는 “이제야 삶과 작별할 준비가 됐다.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살자고 다짐하니 남은 날이 더 소중해졌다”고 말했다. 조현아 씨(66·여)는 사전의향서를 쓰기 전엔 김 씨와 정반대로 하루 종일 죽음만을 생각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사기로 집을 잃고 남편과 이혼한 뒤부터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다. 어떻게 해야 ‘실수로’ 살아남지 않을지 궁리했다. 하지만 자서전 구술작가를 만나는 과정이 치유의 시간이 됐다.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옷장에 있는 옷 중 가장 예쁜 것을 꺼내 입고 나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구질구질한 인생 얘기’를 다 털어놓으니 오히려 후련해졌다. 그는 “자서전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엔 ‘힘들 때 손 내밀어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생 처음으로 표현하는 고마움과 미안함 조규열 씨(81·여)는 몇 해 전 노인복지센터에서 ‘죽음 교육’을 받았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 사후 안구기증 서약도 했다. 세상을 떠날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서전을 쓰면서 평생 다섯 자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게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큰 딸이 졸업장을 못 받은 일, 젖먹이였던 둘째 딸이 울며 보챌 때 안아주지 못한 일…. 조 씨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그런데 미안하단 말이 (입을 가리키며) 여기까지 나오다가 도로 들어가”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래서 조 씨의 자서전은 “미안하다, 얘들아”라는 말로 시작한다. 5쪽 분량 자서전에는 마흔 한 살이었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형편이 어려워져 주워온 콩나물로 주린 배를 채운 일, 삶을 포기하려 방에 연탄불을 피웠던 일, 어렵게 기른 자녀들이 결혼할 때 뿌듯함에 눈물 흘린 일이 담담하게 적혀있다. 한번도 말로는 전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는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평생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자서전에 비로소 털어놓은 건 조 씨만이 아니다. 손석주 씨(78)는 아내가 갑상선암 수술을 하는 날에도 회사 일이 바쁘다며 병원에 가보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지금껏 한번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12년 전 네팔 히말라야에 등반했다가 고산병 후유증으로 실어증에 걸려 말 그대로 ‘말을 잃은’ 권창준 씨(74)는 “아내에게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꼭 남기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이들에겐 이번 자서전이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할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높다. 치매 증상이 시작된 이춘자 씨(99·여)가 그렇다. 이 씨는 ‘집에 가야지’라고 생각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가 자신이 이미 집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간 버팀목이 되어준 자녀들에게 더 늦기 전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며 자서전에 참여했다. ● 사고로 두 다리 못 써도 “고마운 내 인생” 어르신들의 말을 옮겨 적는 재능 기부에 나선 구술작가들은 모두 사전의향서 상담교육을 받은 전문 상담가다. 어르신이 사는 곳마다 최소한 세 차례씩 찾아가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엔 ‘내가 무슨 자서전이냐’며 손사래 치다가 면담이 뜻밖에 길어진 경우도 많았다. 구술작가 유명숙 씨(73·여)는 “어르신들의 배움은 짧아도 삶의 지혜나 의지는 우리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구술작가들이 접촉한 가족들은 원고를 받아 읽어보고 난생 처음 알게 된 가족의 면모에 놀랐다고 한다. 오연순 씨(78·여)의 딸은 오 씨가 남편과 사별한 뒤 양로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는 글을 읽고 “우리 어머니에게 이런 꿈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구술작가 박재연 씨(55·여)는 “가족이 보기엔 ‘엄마’나 ‘아빠’였던 그 분들도 한 명분의 인생을 고스란히 살아오셨다는 데서 가족들이 놀라곤 했다”고 전했다. 자서전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6·25전쟁 등 근현대사의 굴곡뿐 아니라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도 “그래도 살만한 삶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 중에서도 신애자 씨(76·여)의 아픔은 깊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나흘 만에 수류탄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까지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자 숨도 못 쉴 정도로 답답했다. 하지만 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운 뒤 글짓기 대회에 나갈 정도로 실력을 키우며 행복을 되찾고 있다. 이하재 씨(66)는 어릴 적 큰 병을 앓고 7년 전엔 대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겪었지만 시를 쓰며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씨는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마지막 소원은 ‘평온한 죽음’” 자서전 참여자들의 버킷리스트는 다양했다. 신동근 씨(69)는 이혼한 아내를 다시 한번 마주해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적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따뜻한 저녁상을 한 번 차려주고 싶다는, 이승에서는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적은 노인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자주 언급된 소망은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떠나는 것’이었다. 오랜 병치레 끝에 고통 속에서 삶을 마치는 지인들을 수없이 보며 ‘존엄한 마무리’가 절실한 화두가 된 것이다. 김현한 씨(73·여)는 죽기 전에 5일만 준비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 자서전에 참여한 노인 40명은 1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모여 출판기념회를 열고 축하 파티를 한다.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대표는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도서관 한 채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생을 마감하기 전 주변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4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달 31일까지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43만457명이다. 사전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가까운 상담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lst.go.kr)나 전화(1855-0075)로 확인할 수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매크로 프로그램(매크로)을 이용해 유명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나 팬미팅 티켓을 대량으로 예매한 뒤 이를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서 되팔아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티켓 값을 최고 10배 이상 올려 되팔기도 했다. 매크로는 특정 작업을 반복하게 만드는 소프트웨어로, 온라인 티켓 예매를 위한 클릭 작업이 자동으로 반복되도록 한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매크로를 이용해 대량으로 사들인 공연 티켓을 되팔아온 일당 22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이 중 총책인 A 씨(29)와 매크로 제작자 B 씨(29)를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 판매조직이 붙잡힌 건 처음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올 1월 열린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콘서트 티켓 595장을 매크로를 이용해 예매한 뒤 값을 얹어 인터넷을 통해 재판매하는 등 2016년 5월부터 올 8월까지 같은 방법으로 9137장의 티켓을 팔아 7억 원가량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13만 원짜리 티켓을 10배 이상 비싼 150만 원에 되팔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A 씨 일당은 티켓 예매를 위해 필요한 예매 사이트 계정(ID) 2000여 개를 사들였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대량으로 예매한 티켓은 여러 주소지로 나눠 배송 받았다. 이렇게 배송된 티켓은 ‘수거책’이 일일이 돌며 찾아왔다. 경찰은 이들이 중국 팬들에게 티켓을 팔기 위해 현지에도 판매책을 뒀던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상 단속을 위해 내년 1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온라인 암표 신고 게시판을 운영할 계획이다.김은지 eunji@donga.com·조건희 기자}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 씨(39)는 최근 대만 여행을 마치고 여객기로 귀국하면서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국제공항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직접 운전해 귀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맥주를 거의 그대로 남긴 채 공항에 도착해서도 몇 시간 서성이며 술이 완전히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운전대를 잡았다. 김 씨처럼 여객기나 공항 라운지에서 제공되는 맥주와 와인 등을 즐기는 여행객이 늘고 있지만 ‘기내 음주 후 운전’에 대한 단속은 사실상 사각에 놓여 있다. 교통 전문가들은 공항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찾거나 렌터카를 빌려 운전하는 이들이 전체 항공승객 중 약 10%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공항 인근에서는 음주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경찰단과 김포공항경찰대의 교통 인력이 각 8명, 5명뿐이고 나머지 공항은 지역 경찰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전국 공항 중 유일하게 공항 구역에서 음주단속이 이뤄지는 인천국제공항에서조차 휴가철 등 특정 기간에만 경찰이 부정기적으로 단속에 나선다. 비행 시간이 2시간 정도인 노선은 이륙 후 1시간 정도 지나 술이 제공된다. 몸무게가 70kg인 성인 남성이 맥주를 한 잔 반 마실 경우 1시간이 지난 후에도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정지 기준인 0.03%로 유지된다. 하지만 항공사가 술을 제공하면서 “비행 후 운전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은 전국 공항에서 경찰과 항공사, 공항 운영사가 수시로 음주운전 근절 캠페인을 벌인다. 매년 9월엔 이들이 합동으로 ‘전국 교통안전운동’을 실시한다. 경찰관과 승무원이 함께 음주운전 근절 홍보물과 기념품을 승객들에게 나눠준다. 공항 측은 술을 마신 승객에게는 귀가를 위해 공항 내의 대리운전 업체까지 연결해준다. 여객터미널과 주차장 주변, 공항 연결 고속도로 나들목에서는 과적·난폭운전뿐 아니라 음주운전 단속이 수시로 벌어진다. 2017년 9월에는 59세 남성이 오키나와에서 오사카로 돌아가던 중 공항과 기내에서 350mL 맥주를 2캔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경찰 단속에 적발됐다. 안성준 손해보험협회 공익사업부 사고예방팀장은 “전국의 공항 주차장에서 나가는 모든 차량에 대해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계도조차 하지 않는 건 문제”라며 “공항과 항공사가 술을 제공할 때부터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조건희 기자}

지난달 31일 경북 울릉군 독도 인근 바다에 추락한 중앙119구조본부 ‘영남1호’ 헬기는 이륙 직후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며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침몰한 기체를 인양해 블랙박스를 확인해야 정확한 추락 원인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당시 기상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점에 비춰 기체의 조종 계통에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조종간 오작동 가능성” 국내에서 응급환자 구조를 위해 출동한 헬기가 추락한 것은 2015년 3월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해경 헬기(4명 사망) 이후 처음이다. 2015년 사고 땐 짙은 해무(海霧)가 원인이었다. 반면 영남1호가 추락한 지난달 31일 오후 11시 26분경 독도 하늘은 맑았고 인근 해역의 바람은 초속 8.3∼10.9m였다. 황대식 전 한국해양구조협회 구조본부장은 “초속 10m 안팎은 헬기가 충분히 운항할 수 있는 조건”이라며 “급작스러운 기상 악화가 사고의 원인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추락을 목격한 독도경비대에 따르면 헬기는 오후 11시 24분 이륙해 고도를 높일 땐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지상과의 마지막 교신 시각은 11시 25분 15초였다. 하지만 이후 헬기는 진행 방향의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이 있는 서쪽(대구 방향)을 향해 고도를 서서히 높여야 하는데 정남향으로 비스듬히 고도가 낮아지다가 바다로 떨어진 것이다. 신정범 독도경비대장은 “헬기가 남쪽으로 가기에 이상해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이륙한 지 약 2분 만에 어두운 바닷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헬기가 뜨자마자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가장 먼저 조종 계통의 이상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헬기가 이륙한 뒤 해발 450m 높이에 이르기 전까진 동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종간(핸들)과 프로펠러를 연결해주는 유압 장치에 전력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면 헬기가 수평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승용차에 비유하면 ‘파워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최쌍용 구미대 헬기정비과 교수는 “헬기가 높이 떠오른 상태에선 유압 장치에 이상이 생겨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지만 이륙 직후엔 속수무책이다”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해당 헬기가 최근 안전점검을 통과했고 사고 전 경미한 이상 징후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영남119특수구조대에 따르면 이 헬기는 2016년 3월 국내에 도입된 뒤 최근 누적 운항시간이 1000시간을 넘자 올 9월 25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제조사 에어버스헬리콥터스의 안전점검을 받고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점검 후에는 총 16차례 운항했다. 사고 전날인 지난달 30일에도 1시간 20분가량 대구 인근 상공을 운항했다. 성호선 영남119특수구조대장은 “기체가 안정적이지 않거나 소리가 나는 등의 이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비상부주 작동 안 한 듯 헬기가 물에 빠지면 자동으로 펴져 구조될 시간을 벌게 해주는 비상부주는 추락 직후에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고 헬기엔 앞뒤에 납작하게 접힌 부주가 총 4개 장착돼 있었다. 펴지면 11t이 넘는 기체와 승객의 무게를 약 30분간 지탱하며 물 위에 떠 있도록 설계됐다. 만약 비상부주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헬기가 추락한 직후 독도경비대가 수색에 나섰을 때 탑승자들이 발견됐을 수도 있다. 조사단은 비상부주가 원래 불량이었는지, 아니면 충격 탓에 파손된 건지 등을 밝힐 계획이다. 1일 침몰 헬기와 실종자 수색에는 배 14척과 항공기 8대 등이 동원됐다. 2일엔 잠수대원을 76명 규모로 늘리고 청해진함과 무인잠수정(수중 드론)을 수색에 투입하기로 했다. 당국은 수색 상황에 따라 침몰 헬기 인양이 가능한지도 파악할 계획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재희 기자}

지난달 31일 경북 울릉군 독도 인근 바다에 추락한 중앙119구조본부 ‘영남1호’ 헬기는 이륙 직후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며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침몰한 기체를 인양해 블랙박스를 확인해야 정확한 추락 원인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당시 기상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점에 비춰 기체의 조종 계통에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 “조종간 오작동 가능성” 국내에서 응급환자 구조를 위해 출동한 헬기가 추락한 것은 2008년 2월 경기 양평군 용문산 육군 헬기(7명 사망) 이후 처음이다. 2008년 사고 땐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가 원인이었다. 반면 영남1호가 추락한 지난달 31일 오후 11시 26분경 독도 인근 해역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초속 8.3∼10.9m였다. 황대식 전 한국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은 “초속 10m 안팎은 헬기가 충분히 운항할 수 있는 조건”이라며 “급작스러운 기상 악화가 사고의 원인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추락을 목격한 독도경비대에 따르면 헬기는 오후 11시 24분 이륙해 고도를 높일 땐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지상과의 마지막 교신은 11시 25분 15초에 “이륙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후 헬기는 진행 방향의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이 있는 서쪽(대구 방향)을 향해 고도를 서서히 높여야 하는데 정남향으로 비스듬히 고도가 낮아지다가 바다로 떨어진 것이다. 신정범 독도경비대장은 “헬기가 남쪽으로 가기에 이상해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이륙한 지 약 2분 만에 어두운 바닷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헬기가 뜨자마자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가장 먼저 조종 계통의 이상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헬기가 이륙한 뒤 해발 450m에 접어들기 전까진 동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종간(핸들)과 프로펠러를 연결해주는 유압 장치에 전력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면 헬기가 수평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승용차에 비유하면 ‘파워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최쌍용 구미대 헬기정비과 교수는 “헬기가 높이 떠오른 상태에선 유압 장치에 이상이 생겨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지만 이륙 직후엔 속수무책이다”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해당 헬기가 최근 안전점검을 통과했고 사고 전 경미한 이상 징후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영남119특수구조대에 따르면 이 헬기는 2016년 3월 국내에 도입된 뒤 최근 누적 운항시간이 1000시간을 넘자 올 9월 25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제조사 에어버스헬리콥터스의 안전점검을 받아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점검 후에는 총 16차례 운항했다. 사고 전날인 지난달 30일에도 1시간 20분가량 대구 인근 상공을 운항했다. 성호선 영남119특수구조대장은 “기체가 안정적이지 않거나 소리가 나는 등의 이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비상부주 작동 안 한 듯 헬기가 물에 빠지면 자동으로 펴져 구조될 시간을 벌게 해주는 비상부주는 추락 직후에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고 헬기엔 앞뒤에 납작하게 접힌 부주가 총 4개 장착돼 있었다. 펴지면 11t이 넘는 기체와 승객의 무게를 약 30분간 지탱하며 물 위에 떠 있도록 설계됐다. 만약 비상부주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헬기가 추락한 직후 독도경비대가 수색에 나섰을 때 탑승자들이 구조됐을 수도 있다. 조사단은 비상부주가 원래 불량이었는지, 아니면 충격 탓에 파손된 건지 등을 밝힐 계획이다. 헬기에 탔던 구조대와 환자의 가족 43명은 1일 오전 사고 소식을 듣고 사고수습대책본부가 설치된 경북 포항시 포항남부소방서에 모여들었다. 이 중 28명은 정기 여객선을 타고 울릉도와 독도로 이동했다. 실종자 수색을 위한 잠수인력이 이날 오후 1시가 넘어 현장에 투입되자 일부 실종자 가족은 “수색에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며 항의했다.조건희 becom@donga.com·김재희 기자}

올 4월 대구의 한 주택에 마약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필로폰을 직접 제조해 ‘무료 샘플’이라며 다른 사람에게 건넨 20대 A 씨(무직)를 검거하기 위해서였다. A 씨의 집엔 필로폰 제조에 사용된 재료들이 널려 있었다.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매한 일반 의약품과 건전지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A 씨는 특정 브라우저(인터넷 검색 프로그램)를 이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의 마약 정보 사이트에서 ‘셰이크 앤드 베이크’(서로 다른 원료를 병에 넣고 흔들어 섞는 것)라는 제조법을 읽고 그대로 따라한 것으로 파악됐다. A 씨 사례처럼 국내에서 제조돼 적발된 필로폰 양이 최근 크게 늘면서 한국이 20여 년 만에 ‘마약 제조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수사기관에 적발돼 압수된 국내 제조 필로폰은 2016년 200g에서 2017년 513g, 지난해 660g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31일 현재까지 3601g이 적발됐다. 대부분은 전문 기술자가 아닌 일반인이 자택이나 호텔 객실 등의 ‘키친랩’(소규모 개인 작업장)에서 만든 것이었다. 이는 1990년 10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 제조 조직을 대대적으로 단속할 때와 다른 양상이다. 당시엔 ‘필로폰 동원 목장파’, ‘필로폰 유한 농장파’ 등 마약 이름을 버젓이 내건 폭력조직이 농촌에 공장을 차리고 한번에 수십 kg의 마약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엔 폭력조직과 무관한 키친랩이 마약 제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검경은 접속자 정보를 암호화하는 탓에 불법 정보를 공유해도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의 등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31일 본보 취재팀이 다크웹에서 ‘범죄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H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필로폰 제조법만 5가지가 상세히 나와 있었다. 제조 정보 자체가 흥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 이용자는 “구글에서 얻을 수 있는 제조법보다 더 쉽고 성공 확률이 높은 ‘고급 레시피’가 있다”면서 “알고 싶으면 ○○에서 활동하는 나를 찾으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키친랩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마약 제조를 단속하려면 원료 성분이 든 의약품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거래되는지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마약의 원료 물질을 “마약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이 아닌 ‘사용되는’ 것으로만 좁게 규정하고 있다. 마약을 만들 의도가 뚜렷해도 의약품에서 마약 성분을 추출하기 전이라면 적발해도 처벌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5년 필로폰의 원료 성분이 포함된 알약 1876만 정을 가루 내어 멕시코로 밀수한 임모 씨(56) 등에 대해 마약 원료 물질 밀수죄가 아닌 일반 의약품 밀수죄만 인정했다. 대검찰청은 이를 보완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청은 다크웹 내 마약 거래를 감시하는 전담 인력을 늘리고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을 양성할 계획이다. 일부 지방경찰청에서만 운영 중인 다크웹 내 마약 감시 전담팀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신아형 abro@donga.com·조건희 기자}

“핼러윈 이벤트! 국산 ‘떨(대마의 은어)’ 최저가!” 핼러윈데이를 하루 앞둔 30일 국내 한 사이트에 올라온 대마 판매 글이다. 이 사이트엔 이와 유사한 마약 판매 글이 하루에 수십 건씩 올라왔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의료용으로 따로 허가받지 않은 대마 등 마약류를 인터넷에서 사고팔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이트에선 마약 관련 정보가 삭제되지도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쉴 새 없이 서버를 옮겨 다니며 접속자 정보를 암호화해 불법 정보를 삭제하기도, 이용자를 추적하기도 어려운 ‘다크웹’ 사이트이기 때문이다.○ 배달앱처럼 ‘우수 마약상’엔 평판 후기도 본보 취재팀은 이날 다크웹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몰리는 대표적인 마약 사이트 3곳에 접속했다. 수사기관이 감시하기 어렵게 숫자와 문자를 무작위로 섞어서 만든 사이트 주소는 전부 ‘.com’이 아닌 ‘.onion’으로 끝났다. 다크웹의 정보가 양파(onion)처럼 겹겹이 암호화돼 있다는 의미이다. 주소를 입력하자 대마뿐 아니라 필로폰과 엑스터시 등 온갖 마약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H사이트와 M사이트는 마약 거래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판에 ‘대마약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약 구매자는 ‘환우’로, 우수 판매자는 ‘메딕’(위생병)으로 지칭했다. 마치 환자가 약국에서 처방약을 정상적으로 사가는 것처럼 상황극을 벌이는 것이다. 판매자들은 구매자의 아이디와 함께 ‘처방 차트’라고 적은 글을 여러 건 게재해뒀다. ‘김○○(구매자의 아이디), 5월 13일 액상(대마) 6포드(카트리지) 구매!’ 등 누가 무슨 마약을 언제 얼마나 구매했는지 일일이 적어둔 일종의 거래 일지다. 다크웹 내 마약상이 거래 기록을 일일이 공개하는 이유는 ‘이만큼 많은 양의 마약을 수사기관에 들키지 않고 매매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마약을 수령한 구매자는 해당 글에 “항상 거래할 때 잘 챙겨주시던 ×××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라며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여러 차례 마약을 주문해 검증된 구매자는 회원 등급이 올라가 다음 거래 때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별점과 후기처럼 마약 사이트에도 이미 자체적인 평판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뜻이다. 국내 마약상들의 자유게시판 격인 C사이트에서는 거래가 더 적나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한 구매자가 “메스(필로폰)를 파는 딜러 없냐”는 글을 올리자 10분도 안 돼 다른 마약상이 자신의 비밀 채팅방 주소를 댓글로 달았다. “형편이 어려우면 가격을 50% 할인해주겠다”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해외 마약 사이트에선 “무료 샘플을 전 세계로 배송한다”며 새 고객을 유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탐지견 피하는 법” 등 단속 정보까지 공유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한 노하우도 공유되고 있었다. 주로 항공 수하물이나 국제우편으로 마약을 들여올 때 마약 탐지견을 피하는 방법 등이었다. “특정한 향이 나는 다른 짐과 섞어두면 된다”거나 “○○공항이 단속이 느슨하다”는 등 상세한 조언도 오고갔다. 마약을 직접 제조하거나 재배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한 이용자가 “시골 읍내 약국 가서 특정 약만 구하면 필로폰 성분을 추출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자 구체적인 방법을 묻는 댓글이 달렸다. 실제로 전남 함평군에서 축산농장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지난해 10월 조립식 창고에서 대마를 재배해 팔다가 적발돼 올 9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다크웹에서 이뤄지는 마약 거래를 추적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금 송금과 배송이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이트에서 거래 의사를 밝히면 암호화된 메신저로 옮겨 구체적인 가격을 흥정하고, 결제도 가상화폐로 한다. 대금이 입금되면 한적한 아파트의 가스계량기 등에 물건을 놓아두고 위치만 알려주는 일명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주고받는다. 2010년대 초 퀵서비스나 택배로 마약을 주고받던 마약상들이 줄줄이 검거되자 새로 생겨난 방식이다. 경찰청은 마약 거래 등 다크웹을 통해 벌어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12월까지 ‘다크넷 불법정보 수집·추적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수천 개가 넘는 불법 사이트를 망라하는 ‘다크웹 지도’를 그리고 그 안에서 주고받는 범죄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해 기록해두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도입돼도 다크웹 접속자의 인터넷주소(IP주소)를 곧바로 추적하는 건 어렵다. 다만 축적된 데이터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등과 연동해 분석하면 마약상 등 범죄자를 특정할 만한 패턴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신아형 abro@donga.com·조건희 기자}

“다크웹에선 900종이 넘는 신종 마약이 국경도 없이 거래됩니다. 한국도 공항만 지켜선 안 됩니다.” 저스티스 테티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실험과학실장(52·사진)은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다크웹의 등장으로 인해 달라진 마약 거래 환경을 따라잡아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테티 실장은 UNODC에서 11년째 국제 마약범죄 감시와 마약 성분 분석을 맡고 있는 전문가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다. 테티 실장은 “다양한 마약이 과거와 달리 kg이 아닌 g 단위로 거래돼 적발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선 공항 수하물에서 마약이 든 소포를 찾는 옛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각국 수사기관이 다크웹에서 활동하는 마약상에 대한 첩보를 교환하고 근원지를 함께 차단하는 방식이다. 올 4월 미국과 독일, 네덜란드 등의 수사기관이 연합해 대형 마약 판매 사이트인 ‘월 스트리트 마켓’을 폐쇄한 게 그 예다. 테티 실장은 한국에서 최근 수년간 필로폰 시세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필로폰 도매가는 2011년 이후 g당 300만 원 안팎으로 일정하다. 테티 실장은 “마약 단속이 강력하게 이뤄지는 나라에선 위험 부담 때문에 마약상이 가격을 올리게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면 가격 경쟁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제 마약상들이 ‘신흥 시장’인 한국을 공략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는 뜻이다.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우려가 높아진 ‘물뽕’에 대해선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압수된 (물뽕의) 총량은 전 세계에서 압수된 것의 0.1%도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경각심을 풀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물뽕은 복용 후 체내에서 빠르게 사라져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수사기관이 ‘빙산의 일각’만을 찾아낸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테티 실장은 마약상을 단속하는 것 못지않게 마약 중독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재활 및 치료시설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신아형 abro@donga.com·조건희 기자}
“출소 날 시간 되면 꼭 참석하겠습니다.” 2008년 12월 8세의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범죄로 복역 중인 조두순(67)의 얼굴이 26일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공개되자 한 시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조두순이 출소하는 2020년 12월 13일에 교도소 앞에서 ‘환영행사’를 열자”며 올 초 개설된 이 SNS엔 140여 명이 참여 중이다. 참가자들은 환영행사 준비물로 방망이나 멍키 스패너를 거론해 이날 조두순을 집단 습격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조두순은 사건 발생 이듬해인 2009년 1월 재판에 넘겨졌고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징역 1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조두순의 얼굴을 본 시민들은 “출소하면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것 같다”라며 불안감을 표했다. 조두순의 얼굴과 키, 몸무게, 주소지 등 신상정보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지만 이는 출소한 뒤 5년간 만이다. 2세 딸을 둔 회사원 최모 씨(35·여)는 “나이가 들어 얼굴이 바뀌면 집 근처에 살아도 알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고유정(36·여)처럼 조두순에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신상공개 결정은 기소되기 전의 ‘피의자’를 대상으로만 내려진다. 미국에선 주요 범죄자가 이감될 때 교정당국이 머그샷(범죄자 인상착의 기록 사진)을 새로 찍어 공개한다. 지난해 8월 아내와 두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크리스토퍼 와츠(34)는 같은 해 11월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되며 새로 찍은 머그샷이 공개됐고, 언론은 와츠의 얼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상세히 보도했다. 조두순은 지난해 포항교도소로 이감돼 400시간이 넘는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재범위험이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은지 기자}
“출소 날 시간되면 꼭 참석하겠습니다.” 2008년 12월 8세 여자 초등학생을 성폭행해 복역 중인 조두순(67)의 얼굴이 26일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공개되자 한 시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조두순이 출소하는 2020년 12월 13일에 교도소 앞에서 ‘환영행사’를 열자”며 올 초 개설된 이 SNS엔 140여 명이 참여 중이다. 참가자들은 환영행사 준비물로 방망이나 멍키 스패너를 거론해 이날 조두순을 집단 습격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조두순은 사건 발생 이듬해인 2009년 1월 재판에 넘겨졌고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징역 1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조두순의 얼굴을 본 시민들은 “출소하면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것 같다”라며 불안감을 표했다. 조두순의 얼굴과 키, “무게, 주소지 등 신상정보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지만 이는 출소한 뒤 5년간 만이다. 2세 딸을 둔 회사원 최모 씨(35·여)는 ”나이가 들어 얼굴이 바뀌면 집 근처에 살아도 알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고유정(36·여)처럼 조두순에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신상공개 결정은 기소되기 전의 ‘피의자’를 대상으로만 내려진다. 미국에선 주요 범죄자가 이감될 때 교정당국이 머그샷(범죄자 인상착의 기록 사진)을 새로 찍어 공개한다. 지난해 8월 아내와 두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크리스토퍼 와츠(34)는 같은 해 11월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되며 새로 찍은 머그샷이 공개됐고, 언론은 와츠의 얼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상세히 보도했다. 조두순은 지난해 포항교도소로 이감돼 400시간이 넘는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재범위험이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의 한 정신건강임상심리사는 ”조두순 같은 반사회적인격장애(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심리치료가 거의 듣지 않고, 오히려 치료 기법을 흡수해 다른 사람을 다루는 능력만 키운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24일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선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의 주한 미국대사관저 침입 농성을 막지 못한 경찰을 질타했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 국감장에서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은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대진연 회원 19명이 대사관저 침입 전 (월담을 위해) 사다리까지 들고 왔다 갔다 했는데 검문검색이 되지 않았다”며 “경비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당 안상수 의원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을 향해 “중동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질책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의원은 “미국 대사관저 난입 사건은 1989년 전대협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라며 “경찰청장은 책임지고 물러날 생각이 없느냐”고 따져 물었다. 여당 의원들도 우려를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은 “사건 이후 (주한 미국)대사를 만났는데, 섭섭함을 전하더라”라며 “(침입) 과정에서 대사관 직원 2명이 다쳤는데 우리 정부 누구도 미안함을 표명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사과가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도 “외교적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감찰 결과에 따라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 청장은 “사건 당일(18일) 거리 문화 축제 인파와 (시위대가) 섞여 있어서 감지하지 못했다”며 “(경비) 책임자 등을 감찰 조사하고 있다”고 답했다. 민 청장은 서울 성동구에 있는 ‘평화이음’ 사무실을 22일 압수수색할 당시 경찰관에게 “양아치” 등 폭언을 하며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가로막은 대진연 회원들을 추가로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대사관저 침입에 가담한 대진연 회원 19명 중 4명을 구속했고 나머지 15명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 중이다. 피의자들이 전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대면 조사보다는 압수한 PC 드라이브 분석 등을 통해 대사관저 침입을 공모했거나 배후에서 조종한 세력이 있는지를 살펴볼 계획이다.조건희 becom@donga.com·한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