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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서명한 북한과 러시아, 이란을 한꺼번에 제재하는 통합제재법에 서명했다. 이번 제재안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과거 대북제재와 달리 과연 북한에 실질적 압박을 미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가 없이는 이번 제재도 큰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통합제재법에서 북한 제재안은 3항에 배치됐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대북 원유 및 석유제품 판매 금지 △북한 노동자 고용금지 △북한과의 온라인 상품 거래 금지 △북한 도박 사이트 차단 △북한 선박이나 유엔제재를 거부하는 국가 선박의 미국 영해 운항금지 등이 담겨 있다. 또 북한이나 북한을 대리하는 대표자와 외환결제 계좌를 유지하고 있는 모든 은행들은 미국 금융기관들과 거래하지 못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자산동결 등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된다. 북한 교역과 금융거래의 90% 이상이 중국 은행과 회사, 개인들과의 거래인 것만큼 이번 조치가 실행될 경우 중국 회사들이 세컨더리 보이콧의 핵심 제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대북 압박에 있어 사상 초강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원유나 석유를 수입하지 못하면 경제가 고사될 수밖에 없으며, 10만 명 이상의 해외 노동자를 운용하지 못하면 외화 소득에 막대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과 거래하는 금융기관들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은 북한의 해외 결제 시스템을 사실상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재가 어느 정도 먹힐 지는 미지수이다. 일단 북한은 군수용 원유의 대다수를 중국에서, 민생용 원유의 대다수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까지 어떤 압력에도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미국의 압력을 거부하고 있다. 원유 공급은 특정 기업이 아니라 중국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전면 경제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를 막기는 사실상 어렵다. 러시아에서 수출되는 석유는 싱가포르 등 해외 차명 업체를 경유하기 때문에 파악이 어렵다. 또 러시아 역시 이번 제재에 통합제재법의 대상이 돼 강력히 반발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협조할 가능성도 낮다. 북한 노동자 고용금지 조항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북한 해외 노동자의 절대 다수는 중국과 러시아에 체류하고 있는데 이들의 고용실태는 파악하기 어렵다. 또 파악했다고 해도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업체는 대다수 영세업체여서 미국과의 교역중단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 노동자 고용금지 조항이 발효되는 경우 개성공단을 다시 정상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구상은 사실상 실행되기 어렵다. 북한과의 온라인 상품 거래 금지나 북한 도박 사이트 차단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은 해외에서 구매하는 상품 대다수를 직거래가 아닌 중국에 위장업체를 만들어 구입하고 있어 파악이 불가능하다. 도박 사이트는 지금도 차단대상일 뿐만 아니라 적발돼도 북한이 운용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다. 북한 선박의 미국 영해 운항 금지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다. 북한 국적의 선박이 미국 영해에 들어가는 일은 지금도 없다. 금융제재 역시 사정은 비슷한데,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우려되는 대형은행은 이미 북한과의 거래가 없다. 또 지방 소규모 은행이 북한과 거래한다는 사실 자체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이번 통합제재법안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자발적 참여가 없는 한 북한을 압박하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없으며 유엔 대북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 수십 년 동안 제재 속에서 살고 있는 북한의 적응력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제재를 하던지 북한은 이에 적응해 왔고,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오늘 칼럼엔 김정은 체제를 이해하는 핵심 포인트가 담겨 있다. 사상 최강의 대북 제재 와중인 올해 4월 김정은이 평양에 호화로운 여명거리를 준공했을 때 북한 연구자들은 수수께끼에 직면했다. 재작년 11월 호화 미래과학자거리가 건설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은이 호화거리를 지을 막대한 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북 제재는 정말 북한의 주장대로 무용한 것 아닐까.” 하지만 이 칼럼을 읽고 나면, 이런 거리 건설에 김정은은 1원도 쓰지 않았으며 다른 호화거리 건설이 또 시작될 것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평양 ‘건설주’들의 활약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건설주는 아파트를 지어 파는 부동산 개발업자를 부르는 말이다. 어느 요지에 아파트 몇 동을 짓기 위해 건설주는 우선 투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은행이 유명무실해 담보 대출 같은 것은 없다. 북한 고위 권력층이 저축한 뇌물 자금과 무역으로 벌어들인 ‘돈주’의 달러를 끌어내야 한다. 어느 레벨의 권력과 돈주를 끼우는지가 곧 건설주의 능력이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고위간부 정도를 끼우면 최상위 건설주에 속한다. 권력층 역시 돈을 불리기 위해 건설주라는 하수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권력층은 직접 나서는 대신 아내나 자녀를 대신 내세운다. 투자금을 약속받으면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내각 국토성, 인민위원회 등 7∼9개 부서의 승인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매번 투자한 권력자의 힘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소 수만 달러의 뇌물도 써야 한다. 이후 인력은 건설기업이나 군 건설부대에 아파트 몇 채를 주기로 하고 끌어오고 건축자재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180m²(약 55평) 이상 대형평수가 대세인데, 보통 20층 이상에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2대 이상 설치된다. 입주자들에게 매달 돈을 거둬 24시간 전기 공급도 가능하다. 이 돈을 배전소와 발전소에 배급 및 석탄구입비 명목으로 주고 전기공급 우선권을 받는다. 이는 전력 생산 같은 국가 기간산업까지 개인들이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가 완공되면 투자금과 기여도에 비례해 이익을 나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건설 기획 단계에선 최종 분양가의 10분의 1만 투자해도 아파트 한 채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평양에 존재하는 ‘강자의 룰’이다. 권력 없는 돈주처럼 ‘송사리’들은 정보를 알아도 초기 분양에 참여할 수도 없고, 중간 단계에서나 분양가 절반 이상을 투자하고 낄 수 있다. 약삭빠른 건설주는 무조건 잡아야 할 권력층에 약속한 것 이상을 보상한다. 가령 이익을 절반씩 나누기로 약속해도 다 지은 뒤에는 간부 아내에게 6할을 주며 정말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면 권력층의 눈에 들어 돈을 재투자받을 수 있다. 북한의 대다수 아파트 건설은 이런 식이다. 큰돈이 있다면 누구나 부동산 개발에 뛰어들려고 하지 절대 자식에게도 빌려주지 않는다. 민사법도 제대로 없어 북한에선 “빌려준 돈 찾는 것은 나라 찾기 다음으로 힘들다”란 말이 있다. “돈 빌린 사람은 노력영웅이고, 빌려준 돈 받은 사람은 공화국영웅”이란 말도 있다. 이런 메커니즘이 이해됐다면 김정은이 호화판 거리를 세우는 방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뒤봐주는 권력층 자리에 김정은을 갈아 끼우면 된다. 김정은이 나서서 어떤 목 좋은 자리를 둘러보고 신도시를 세우라고 지시한다. 이 지시 하나로 승인 도장이 필요 없는 엄청난 부지와 건설 인력이 확보되며 철거 저항도 사라진다. 그 다음부턴 구획을 떼어 갖기 위한 보위성, 무역성 등 권력기관의 암투가 벌어진다. 공공건물도 지어야 좋은 구획이 차려진다. 이후 기관은 투자금을 모으는데, 이때 하수인을 내세워 세탁된 권력자의 돈이 대거 유입된다. 김정은이 지시한 공사판은 빠른 완공이 확실해 위험 부담도 매우 적다. 거리가 완공되면 김정은이 나타나 교수나 예술인 등 자기가 생색 낼 수 있는 수혜 계층을 지목한다. 자기 몫은 확실히 챙기는 것이다. 김정은이 먼저 먹고 나면, 투자자가 달려들어 지분에 따른 분양 파티를 마무리한다. 아파트 한 채가 수십만 달러에 팔려 나간다. 지금 평양 부동산은 돈과 권력이 황금알을 낳는 거대한 투자판이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의 복제판을 보는 듯하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막대한 돈이 부동산에 몰려들어 거품을 만드는 것도 남북이 닮았다. 미래과학자거리와 여명거리로 한몫을 챙긴 평양의 권력층과 이에 유착한 돈주들은 지금 김정은이 다시 개발할 곳을 찍길 손꼽아 기다린다. 김정은에겐 나쁘지 않은 거래다. 제재가 무용하다는 대외 선전은 물론이고 체제 유지에 꼭 필요한 이들과의 공생 관계도 다질 수 있다. 핵미사일 개발로 어떠한 대북 제재가 시작돼도 김정은과 권력자들이 의기투합한 신도시 개발이란 투기판은 계속될 것이다. 탐욕에 들뜬 눈들이 평양에서 번뜩이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자국에 대한 미국의 추가 제재 추진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외교관 755명을 추방할 뜻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전러시아TV·라디오방송사(VGTRK)’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에서 1000여 명의 미국 외교관과 기술직 요원 등이 일하고 있다”면서 “이 중 755명이 9월 1일까지 러시아 내에서의 활동을 중단해야 할 것이며 이는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기다려왔지만 여러 정황을 볼 때 변화가 있더라도 조만간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래서 나는 우리도 아무런 대응 없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대응제재 조치를 취한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러시아 외교부는 지난달 28일 미국 의회가 대러 추가 제재안을 통과시킨 데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 외교관의 무더기 추방과 별장 등 미국 외교자산 압류 조치를 발표했다. 755명을 추방하면 러시아와 미국에 주재하는 양국 외교관 및 기술요원 수가 같아진다는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다. 이 조치는 미국 하원과 상원이 지난달 25일과 27일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을 응징하기 위해 취한 기존 대러 제재를 한층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한 보복이다. 하지만 외신들은 러시아에 있는 미국 국적 외교 관련 종사자는 2013년 자료 기준 333명에 불과하다며 추방될 수 있는 외교관 수는 훨씬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주재 미국 공관에 1279명이 일하고 있지만 이 중 934명은 현지 러시아인 고용인이라는 것. 이 때문에 이번 조치는 추가 대러 제재안에 최종 서명을 앞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 많다.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7일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예정된 회담시간 35분을 훌쩍 넘겨 2시간 16분이나 회담한 뒤 유익한 회담을 나누었다고 서로 자평했지만 보름도 안 돼 앙숙으로 다시 돌아섰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해군의 날’을 맞아 옛 소련 붕괴 이후 최대 규모의 해상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며 군사력을 과시했다.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해 서부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크림반도 인근 수역에서 동시에 진행된 퍼레이드에는 핵추진 순양함과 핵잠수함 등 러시아의 해군 함대 거의 전체가 참가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상위 1%에 속하는 부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몇 달 동안 추적했다. 그러다 해외에 나온 북한의 진짜 부자를 찾아냈다. 그의 부친도 북한 최고위층 간부였다. 이 글은 그와 여러 차례 통화하고 이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으로 취재한 평양 최고 부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평양 최고 부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요. 전 고위 간부 아버지를 둔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살고 있고, 해외 여러 나라도 다녔죠. 남쪽에선 나 같은 사람을 ‘금수저’라고 한다면서요? 그런데 제 말 듣고 놀라지 않을까요.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탈북자 증언을 적잖게 봤지만, 딴 나라 얘기 같아요. 제 말을 아랫동네(한국) 사람들이 정말이냐며 믿지 않을 수도 있겠죠. 뭐부터 말할까요. 먹고 마시는 것부터요? 음, 제가 주말에 친구들과 단골로 가는 곳은 고려호텔 길 건너에 있는 ‘창광숙소’라는 곳이죠. 점심때쯤 3명 정도 가면 1000유로(약 130만 원) 정도로 새벽까지 빛낼 수(즐길 수) 있죠. 가끔 기분 내킬 때면 1500유로 쓸 때도 있고….여기가 좋은 건 먹고 마시고 자는 것까지 한꺼번에 가능하다는 거예요. 지상 2층과 반지하 주차장이 있는 이곳은 째끼(조총련 북송자인 재일귀국동포의 줄임말인 ‘재귀’가 변형된 말)가 운영하는 곳인데, 원래는 외국인 전용이죠. 하지만 외국인은 별로 없고 주로 금수저나 외화벌이 사장 같은 사람들로 붐벼요. 1층에 사우나와 안마받는 곳, 그리고 바가 있어요. 모든 가격은 달러가 아닌 유로로 책정돼 있는데, 달러도 받아요. 일단 사우나는 3유로, 안마는 20유로 정도로 크게 비싸지 않죠. 술은 위스키, 브랜디, 코냑 등등 별게 다 있죠. 전 보통 ‘산토리 올드’나 ‘스카치’를 마시는데 대략 50유로 전후죠. 제일 싼 것은 러시아 보드카인데 15∼30유로 정도. ‘에네시 XO’ 같은 900유로짜리 양주도 있어요. 전 맥주는 네덜란드 바바리아나 하이네켄을 좋아하는데, 한 병에 각각 5유로, 3유로 정도 해요. 뭐 요리는 보통 5∼10유로 정도인데 30유로짜리도 있고요.○ 외국인에게도 비싼 평양 최고급 식당 여기서 양주 마시다 취기가 오르면 2층에서 당구를 쳐요. 시간당 7유로죠. 2층에 침대방도 있는데, 애인과 가기 좋죠. 규정에는 외국인만 허용되지만 ‘그란트’ 한 장(50달러) 찔러 주면 체크인 없이 방을 빌릴 수 있어요. 단골 대우 받으려면 1층 남자 ‘접수원(서비스맨)’들에게 외제담배 한 보루나 맥주 5병 정도에 ‘탈피(명태를 말린 짝태)’까지 안주하라고 줘요. 이걸 북에선 ‘매너’라고 해요. 매너란 말, 북에서도 잘 써요. 우린 외국물 먹은 사람들이니까. 창광숙소나 제가 자주 가는 서성구역 ‘북성식당’은 만족도가 높으나 제일 비싼 곳은 아니에요. 4년 전에 장성택이 건설한 대동강구역의 ‘해당화관’은 진짜 비싸요. 중앙당 간부나 군부 장령(장성)급들은 여기에 가요. 물론 사복 차림에 차는 1km쯤 떨어진 곳에 세워놓고 걸어가죠. 해당화관은 보위성이나 보안성이 주시하기 때문에 공무용 차를 끌고 자주 다니면 보고가 들어가요. 여긴 3명이 가면 아무리 적게 먹어도 ‘벤자민’ 다섯 장(500달러)은 써요. 제 친구는 생일 저녁에 가족 7명을 데리고 가 5000달러를 썼어요. 일반 노동자 월급 얼마냐고요. 3000∼4000원. 암시장 환율로 0.5달러 안 돼요. 1년 월급 모아야 5달러 정도 될 텐데, 요즘 그따위 월급 신경 쓰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전 식당 갈 때 숨길 게 없으니 차를 끌고 가는데 해당화관은 아마 북에서 유일하게 지하주차장이 있는 건물일 거예요. 입출구가 한 통로라 늘 차로 막혀 붐벼요. 가끔 구경 온 외국 관광객들도 보이는데 정작 음식 사먹는 외국인은 못 봤어요. 1층 명품관 좀 둘러보고, 4층까지 구경 갔다가 그냥 가요. 자기들도 너무 가격이 비싸다고 기겁하는 거죠. 해당화관도 제일 비싼 곳은 아니에요. 청류관 옆 ‘은반식당’ 같은 곳에 가서 사시미 좀 시키고 캐비아나 샥스핀까지 시키면 셋이 1000달러는 넘게 나와요.○ 명품을 휘감고 나타나는 아가씨들의 정체 이런 고급 식당에 가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미니스커트 입고, 온몸에 명품으로 휘감은 고운 여자애들이 서너 명씩 보이죠. 보안원도 “일본인인가 싱가포르인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단속도 하지 않을 정도죠. 이런 애들을 우리끼리 ‘마약’이라 불러요. 음악대학생이거나 가수 후보생 신분인데 대방 작업(스폰서 찾는다는 뜻) 하러 온 겁니다. 내키면 “같이 한잔할까요” 하고 불러선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놀죠. 평양 고급식당은 거의 예외 없이 가라오케(노래방) 시설을 갖춘 단독 방으로 돼 있어요. 대중홀 있는 경우도 다 칸막이가 높게 쳐져 있죠. 여자애가 마음에 들어 새벽에 술 잔뜩 먹고 바다 간다고 차로 2시간 만에 원산에 간 일도 있어요. C클래스 벤츠면 다 먹혀요. S클래스는 비싸서 못 타는 게 아니라 중앙당 비서 이상급 관용차라서 소문이 잘못 나면 골치 아프죠. 돌아오다 여자애에게 명품 좀 사주고 그러는 거죠.○ 최고 외화상점은 ‘낙원백화점’ 참, 이번에 싱가포르 회사가 평양에서 운영한다는 명품 상점 사진 보여주며 최고급 상점이냐 물었죠? 노(No). ‘북새상점’ ‘보통강 류경상점’ 거긴 잘 안 가요. 진품이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요. 다른 외화상점이나 평양에서 제일 크고 상품이 많은 통일거리 시장에서 똑같은 진품 싸게 살 수 있다고요. 밍크코트도 장마당에서 파는데 뭐. 명품 파는 상점은 평양에 정말 많아요. 싱가포르에서 암만 사치품 들어가야 고작 상점 두 개뿐인데 빙산의 일각이죠. 그리고 그 상점들은 식품 사려면 카트 몰고 다니는 곳인데, 입구에 감시원 세워놓고 사람을 샅샅이 수색해요. (수색)당하고 나면 기분 되게 나빠요. 인민들의 의식이 발달하지 못해 도둑이 엄청 많으니까 CCTV로 감시도 하죠. 그 정도 레벨 외화상점은 엄청 많은데, 그중에서 그래도 ‘낙원백화점’이 제일 나아요. 북에서 제일 먼저 생긴 외화상점이고 건물이 좀 낡았지만 상품이 다 믿을 만하고 비싸지도 않아요.○ 평양 부자들의 샤넬 사랑 진짜 부자들은 샤넬을 좋아해요. 리설주도 샤넬 좋아하던데요. 제 아내는 가방, 화장품은 물론 잠옷까지 샤넬이죠. 짝퉁 아니에요. 촉감으로도 딱 알아요. 아내가 사파이어 보석이 박힌 목걸이나 반지를 좋아해 저는 열두 달 탄생석 이름 다 외우고 있다고요. 하하. 신발은 ‘나이키’나 ‘휠라’ ‘미즈노’ 같은 게 제일 인기가 좋아요. 아이들은 아디다스 추리닝 좋아하고. 선글라스는 무조건 구치죠. 화장품은 샤넬이 제일 좋긴 하지만 가성비는 시세이도가 최고죠. 수천 달러씩 하는 시계 이름은 솔직히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저도 롤렉스 차고 다니지만 그거 알아보는 사람 얼마 없어요. 평양엔 없는 명품이 거의 없는데, 의외로 루이뷔통은 적어요. 아, 짝퉁은 많아요. 외국 식품도 상점에서 다 팔아요. 전 일본 자바카레를 좋아해요. 매운맛, 순한 맛 다 있어요. 돈 없는 사람은 장마당에서 한국 오뚜기카레 사 먹죠. 라면도 북에선 일본산 라면이 최고 인기고, 돈 없으면 한국산 쇠고기맛 라면이나 맵시면, 신라면 이런 걸 사 먹고, 가난한 사람은 ‘떼놈 라면’(중국산 라면) 사 먹죠. 참 간장은 오뚜기 간장이 좋더라고요. 우리 엄마는 남쪽 초코파이를 좋아했는데, 2013년 10월에 정은이가 ‘괴뢰 상품은 팔지 말라’고 지시를 하는 바람에 한꺼번에 가격이 두 배로 뛰었는데, 지금은 개성공단조차 사라졌으니 어머니한텐 안 된 일이죠.○ 전·월세가 존재하는 평양 부동산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부자의 상징은 비싼 집 아니겠어요? 요즘 평양에 짓는 아파트는 거의 다 200m²(약 60평) 넘는 대형 평수죠. 위치에 따라 40만 달러까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10만 달러는 다 넘어요. 중구역은 지을 자리조차 없고, 모란봉 보통강 서성 평천 쪽에 새 아파트 많이 짓는데, 안 팔리는 거 못 봤어요. 다 팔려요. 부자들이 초기에 투자해 월세 놓고, 전세 놓고 해요. 월세 전세 있냐고요. 평양 부동산 시장은 남조선과 똑같아요. 은행 대출은 없고 자기 돈으로 짓는 게 다를 뿐이죠.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들도 따져보면 다 중앙당 고위 간부들이죠. 헌데 자기가 못 나서니 아내가 움직이죠. 아내는 또 똑똑한 놈 하나 내세워요. 아파트 하나 지으려면 승인 도장 7개 받아야 하는데 그거 하나하나에 뇌물이 어마어마해요. 권력자가 끼지 않으면 좋은 부지는 확보할 수 없죠. 이런 걸 돈 대는 간부들이 뒤에서 다 해결해주죠. 건설 인력은 건설업체나 군 건설부대에서 1, 2개 대대쯤 빌려오는데 대신 아파트 몇 채 주면 돼요. 이젠 부자들이 택시회사나 운송사업 같은 너덜거리는 지폐 받는 시시한 건 안 해요. 돈 있음 다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죠. 좀 사는 집이란 소리 들으려면 치는 사람이 없어도 피아노는 한 대 무조건 사놔야 해요. 일본 야마하 피아노가 2만 달러, 중고는 7000∼8000달러 정도면 사요. 가구도 다 일본산을 최고로 쳐줘요. 한류 그런 거 몰라요. 물론 TV는 삼성과 LG를 최고로 쳐요. 3000달러 정도에 팔리는데 중국 TV는 같은 크기가 500달러밖에 안 해요. 밥솥도 한국산을 알아주고. 그 외는 다 일본제가 최고죠. 요즘은 금고가 엄청 잘 팔려요. 은행이 있으나 마나이니 부자들은 달러 뭉치를 집에 두고 있는데 무겁고, 뜯어가지도 못하는 금고는 부자의 필수품이죠. 좀 사는 아파트 단지 주변엔 ‘컴퓨터교육실’ ‘정보봉사소’ 따위 간판 내건 PC방이 있는데 부잣집 애들은 거기서 살아요. 이런 곳은 방 안에 컴퓨터 20∼30대 있는데 같은 PC방 컴퓨터하고만 서버가 연결돼 있어요. 게임하다 죽으면 “‘드래건’ 이름 쓰는 자식이 누구야” 하며 찾아다니기도 하죠(다른 PC방과는 연결돼 있지 않으니 게임 상대가 같은 방에 있다는 뜻). 그래서 PC방에서 애들 싸움 많이 나요. 근데 미군이 주인공인 ‘콜 오브 듀티’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007게임’이 PC방에서 제일 인기죠. 웃기지 않아요?○ 북한 최고의 부자는 중앙당 간부들 요즘 최고 부자는 중앙당 간부죠. 예전에는 중앙당에서 일하면 검소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전혀 달라요. 그들이 잘사는 건 인사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죠. 괜찮은 직업 얻으려 해도 가격이 딱 정해져 있어요. 내각 성 부원(지도원) 자리 정도가 뇌물이 1만 달러 정도. 그보다 높으면 몇만 달러씩. 평양은 전국의 뇌물이 다 모이니 당연히 부자가 많은 거죠. 군 장령 인사를 하는 중앙당 61부나 그 아래 군관 인사를 맡은 군 총정치국 간부부에서 일하면 조직지도부 부부장보다 더 잘살아요. 일반 병사를 좋은 부대로 빼주는 게 500달러. 입대한 아들을 장령 운전기사쯤으로 넣으려고 해도 1만 달러 줘야 해요. 그러니 본인이 장령이 되려면 10만 달러 아래론 어림도 없죠. 간부사업 하는 자리에 있으면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돼요. 우리 사회는 뇌물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돼요. 김대(김일성대) 입학은 3000달러 뇌물 줘야 한다는 기사도 봤는데, 그건 옛날이고, 지금은 1만 달러 이상이죠. 저번에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어느 학급은 30명 중 29명이 중앙당 간부 자녀라서 말이 났어요. 근데 돈은 다 중앙당 간부들이 쥐고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유흥가는 없어도 정부(情婦)는 많아 돈 많으면 또 유흥을 즐기는 게 남자 마음인데 평양에서 아쉬운 건 여자가 나오는 술집이 없다는 거죠. 그러나 진짜 부자로 인정받으려면 숨겨둔 애인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해요. 예쁘고 젊은 애인 두려면 10만 달러 정도 아파트 한 채는 기본으로 사줘야죠. 그리고 명품도 당연히 사주고. 그래도 애인이 시집가겠다고 하면 또 보내주는 게 예의죠. 예전엔 보통 25세에 시집을 갔는데 요즘 평양에선 30세 전에 시집가면 ‘미물’(변변치 못한 사람), ‘반넘’(모자라는 사람)이라고 해요. 시집가서 애 낳고 남편 뒷바라지해 봤자 별거 있나요. 그냥 부자의 정부로, 애까지 낳고 혼자서 흥청망청 사는 삶을 선택하는 애들도 많아요. 단골 술집도 있긴 있어요. 그런데 그냥 아파트죠. 예술인 출신의 예쁜 처녀들이 자기 집에서 신분이 확실한 고정 VIP만 받는 곳인데 (술과 잠자리를 포함해) 하룻밤에 보통 100달러. 그런 곳도 소개로 알아두면 나쁘지 않죠. 부자들은 이 더운 여름에 어디에 피서를 가냐고요. 여름에야 무조건 동해죠. 원산이 제일 가깝긴 한데 거기는 물이 더러워요. 남쪽으로 딱 80km만 더 내려오면 통천에 시중호가 있어요. 주변 바다도 깨끗하고 호수도 잔잔해서 최고. 낚시도 하고, 갓 잡은 신선한 해산물도 먹고 휘발유로 조개를 냄새 안 나게 기술적으로 구워 먹기도 하고요. 해수욕은 원산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북쪽에 있는 마전해수욕장이 최고. 물이 정말 맑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린 마전을 ‘빠넬’이라고 불러요. 시중호나 마전 모두 호텔들이 있어 숙소도 좋아요. 부자가 살긴 평양도 괜찮죠. 저도 예전에 남조선으로 튈 생각 했지만, 먼저 간 사람들 보니 별거 없더군요. 나 정도 가면 몇 푼 안 주고 연구소 같은 데 있게 하는 것 같던데 거기보단 아직은 여기 그냥 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 고쳐먹었어요.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자국민 여행을 금지하는 조치를 확정했다고 AP통신이 21일 보도했다. 북한을 방문했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1년 반 동안 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귀환했다가 지난달 사망한 데 따른 직접적 조치다. 익명의 미 관리들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에 대한 ‘지리적 여행금지’ 조치를 도입하기로 했다”면서 “이는 미국 여권을 갖고 북한에 들어가는 것을 불법화하는 방안”이라고 AP에 설명했다. 이들은 이 조치가 관보 게재 후 30일 후에 발효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관보 게재 시점은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영국 BBC 방송은 북한 여행객을 모집하는 중국 여행사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와 ‘고려여행’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에 대한 여행금지 명령이 27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라고 가장 먼저 보도했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는 이날 자사 트위터에서 “우리 여행사는 미국 당국이 이달 27일 북한 여행 금지명령을 발표한다는 것을 통보받았다”며 “이 명령은 발표 당일부터 30일 이후에 발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는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가 지난달 의식불명 상태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온 뒤 1주일 만에 숨진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의 북한 여행을 주선한 여행사다. 미국인 북한 여행금지 조치가 공식적으로 확정, 발표되면 이는 웜비어 사망 사건에 대한 미 정부의 단순한 보복 대응을 넘어 대북압박을 전방위로 강화하는 의미도 있어 주목된다. 특히 미국 국적의 관광객 방문 금지 외에도 기독교계가 평양에서 운영하는 평양과학기술대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평양과기대엔 미국 국적의 교수진이 파견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들이 철수할 경우 이 대학은 ‘제2의 개성공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관의 미국 국적 종사자의 방문도 금지될 수 있다. 이밖에 주기적으로 평양을 방문해 여행기를 SNS 등에 올리는 신은미 씨 등 재미교포들의 방북도 전면 중단될 예정이다. 미 조야에서는 현재 외국인의 북한 여행이 결국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고 인권을 유린하는 김정은 정권의 돈주머니만 불려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그동안 정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여행 경보에 발령해왔으나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인의 북한 여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왔다. 미 의회도 향후 5년간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상정해 논의하는 등 행정부를 상대로 북한 여행금지 조치를 조속히 시행할 것을 압박해 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마이크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 제거도 검토하고 있다는 듯한 발언을 했다. 폼페이 국장은 20일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아스펜 안보 포럼에서 “김정은을 핵무기에서 떼어놓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CNN 등 외신들이 이날 전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고,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진다면 좋겠지만 가장 위험한 문제는 이 무기들을 통제할 권한을 가진 인물에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 정부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핵 개발 능력과 핵 개발 의도가 있는 인물을 분리해 떼어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5월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이 북한의 정권 교체나 정권 붕괴를 원치 않는다고 한 발언과 대조된다. 폼페오 국장은 이날 미 정보기관과 국방부가 북한 핵 위협과 관련해 ‘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계획 초안을 짜고 있다고 소개한 뒤 “정보위원회가 대통령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야 할지 다양한 선택 범위를 제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폼페오 국장은 질의응답 시간에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북한) 정권에 관해 말하자면, 우린 이러한 (핵 보유) 시스템에서 그 정권을 분리해 낼 방법을 찾기를 기대한다”며 “북한 사람들도 그가 없어지는 것을 보기를 원할 것이다. 알다시피 북한 사람들이 잘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북한의 정권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꼭 그런 뜻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는 정권 교체 후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김정은 정권의 축출이 미국에 전적으로 좋은 일은 아니라고 전재한 뒤 “3번째 문 뒤에 무엇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덧붙였다. 폼페오 국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폼페오 국장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마음속 최우선 사안은 북한”이라며 “대통령이 평소 북한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며 나를 만날 때면 북한에 관한 질문을 빼놓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로 취임 6개월을 맞았다. 그의 반년간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미국 CNN방송은 20일 ‘숫자로 보는 트럼프 6개월’이란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최근 지지율은 36%로 지난 70년간 취임 6개월 차 대통령 지지율로는 최저”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율뿐 아니라 각종 국정운영 지표에서도 합격점을 받긴 어려워 보인다. 일단 그는 취임 후 법안 42건에 서명했으나 인프라, 세제 개혁, 오바마케어(전 국민 건강보험법·ACA) 폐기와 대체 등에 관한 주요 법안은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취임 뒤 지금까지 기자회견은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전임 대통령의 취임 첫해 기자회견 횟수를 보면 버락 오바마 11회, 조지 W 부시 5회, 빌 클린턴 12회로 트럼프보다 월등히 많았다. 그 대신 트위터를 통한 의견 표명은 활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일부터 지금까지 그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트윗은 모두 991건이다. 하루 평균 5.5회나 트위터에 글을 올린 셈이다. 트윗에 자주 언급한 단어는 ‘가짜 뉴스’로 82회나 됐다. 이 단어는 자기가 피해자라는 불평을 할 때 주로 언급됐다. 이 외에 많이 언급된 단어는 ‘일자리’ 46회, ‘오바마케어’ 45회, ‘버락 오바마’ 36회, ‘힐러리 클린턴’ 22회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장도 매우 사랑했다. 6개월간 주말 26회 가운데 21회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등 본인 소유 별장에서 지냈으며, 골프장에서는 총 40일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골프만 친다고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대선에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준 플로리다, 테네시, 켄터키, 펜실베이니아, 아이오와 등 5개 주에서 선거 유세를 방불케 하는 지지자 집회를 열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J 집사님께. 집사님이 보내신 “북한에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김정욱 목사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하자”는 카카오톡 단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지난달 사망한 뒤 북에 억류된 한국인 선교사 3명의 귀환이 다시 관심사가 됐지요. 정부 당국자도 “남북 당국 간 대화 채널이 복원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억류된 우리 국민의 안위를 확인하는 일”이라고 말했죠.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는 함께 기도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악한 것일까요. 제 말도 한번 들어보십시오. 저는 김 목사가 2014년 평양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범죄자라고 지칭한 그는 “국가정보원의 지시에 따라 북쪽 사람들을 첩자로 소개하고 중개했다”며 “제가 저지른 반국가 범죄 혐의에 대해 북한에 사과한다”고 하더군요. “가족에게 건강하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선 김 목사 지시로 간첩 활동을 했다는 북한 주민들의 자백 영상도 상영됐습니다. 그들은 이미 국정원 간첩으로 몰려 죽었겠죠. 한 북한 소식통은 그 사건으로 평양에서 최소 30명, 많게는 100명 넘게 체포됐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선 기독교를 믿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하물며 국정원 간첩 혐의까지 썼는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들에겐 가족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기회조차 없습니다. 김 목사가 선고받았다는 무기형이 그들에겐 간절한 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죄라곤 중국 단둥에서 한국 선교사를 만났던 것밖에 없습니다. 몰래 성경 좀 읽고 용돈을 받아 쓰자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단둥의 그 선교사가 무책임하게 제 발로 평양에 올 줄은, 보위부에 체포돼 자신들을 스파이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고문당해 어쩔 수 없이 불었다고 자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저만 해도 북-중 국경에 너무 가고 싶지만 가지 않습니다. 제 목숨도 소중하지만, 혹 제가 체포돼 수많은 사람이 연쇄 피해를 볼 것이 더 두렵기 때문입니다. 독약을 삼킬 각오가 돼 있어도 가기 싫습니다. 지난달 중국에 가서 가족과 접촉하려던 탈북자 6명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제가 자다가 보위부에 납치돼 아는 사람들을 줄줄이 불어 죽게 하고는 기자회견장에 나와 “제발 나를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은 상상조차 끔찍합니다. 한때 북-중 국경엔 탈북자 선교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탈북자들을 모아놓고 비밀리에 성경을 가르치는 ‘통독반’들도 즐비했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순교하자고 가르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처소가 공안에 발각되면 일어나는 일은 비슷했습니다. 선교사는 한국으로 추방되고, 탈북자들만 북한에 끌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저는 북에서 기독교를 믿었다고 고문받다 죽는 탈북자들을 직접 보았습니다. 왜 순교의 피는 탈북자만의 몫인가요. 물론 납치되거나 테러당한 선교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개는 탈북자만 죽고 선교사는 살았습니다. 김 목사가 무사 귀환하면 선교 대상이 됐던 북한 주민들만 죽고 한국 선교사는 살아 돌아오는 기록이 또 하나 생길 겁니다. 저는 자신이 순교할 각오가 됐을 때 탈북자에게 그리 가르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을 위해 독약을 삼킬 각오가 됐을 때 북한 선교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선교보다 열 배 이상의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이 북한 선교입니다. 하지만 그런 각오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이해할 수 없는 선교사들도 적잖게 봤습니다. 예전에 위험한 북-중 국경에서 탈북 고아들을 키우는 선교사에게 애들을 안전한 한국으로 무사히 오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단칼에 거절당했죠. 얼마 전 러시아에서 탈북한 북한 노동자는 도움을 주는 한국 선교사가 성경 공부만 계속시킬 뿐 한국으로 가는 데 도움 줄 생각조차 없다고 제게 연락해 왔습니다. 중국에서 탈북 고아를 키우면, 탈북 노동자를 개종하면 선교사는 후원자 앞에 면목이 서겠죠. 그러나 그게 고아와 탈북민을 위한 일인가요. 그들에겐 안전하게 살 한국행이 우선입니다. 이 글로 열악한 사역 현장에서 고생하는 많은 선교사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물론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역자도 사소한 부주의로 한순간에 사람을 죽이는 사역자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북한의 한국 선교사 억류에만 분개하고 당장 구출해야 한다고 할 때, 누군가는 그들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탈북 기자인 제가 아니면 누가 또 하겠습니까. 집사님, 제 이야기를 이해하실 수 있으십니까.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일본 야마하사의 간부들은 최근 북한 평양의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자사의 드럼과 색소폰, 키보드 등이 팔리고 있는 사진이 북한 뉴스 전문 사이트인 ‘NK뉴스’의 프리미엄 서비스인 ‘NK프로’에 공개되자 깜짝 놀랐다. 일본 정부가 2012년 대북 수출을 전면 금지한 뒤 직접 수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 금수 물품을 공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싱가포르의 A사와도 거래한 적이 없어 어떤 경위로 자사 제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 갔는지 조사하고 있다. NK프로가 17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제품의 북한 수출이 금지된 후 일부 화물선들이 홍콩이나 중국 톈진(天津)을 거쳐 평양과 가까운 남포에 도착했다고 북한 노동당 외화벌이 기구인 39호실의 전 관리는 말했다. 이 관리는 또 홍콩과 톈진에서 컨테이너를 교체하는 방법으로 ‘화물 세탁’을 했다고 증언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화물을 취급하는 데 직접 개입하지 않고 중국인 등 대리인을 고용하며, 제3국을 거치는 등 핵과 미사일에 관계된 전략 물자를 들여올 때 쓰는 수법을 사치품 수입에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화물 세탁 과정은 해당 제품을 공급한 회사들도 모르게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A사가 평양에서 운영하는 두 개의 호화 상점 중 한 곳인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고가의 자사 시계가 팔리고 있는 것에 대해 몽블랑의 싱가포르 법인 ‘리치몬트 럭셔리’ 관계자는 “A사와 어떤 거래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법인 관계자는 NK프로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에서는 몽블랑뿐 아니라 어떤 제품도 판매하지 않는다”며 “평양에서 노출된 제품은 ‘회색 시장’을 거쳤거나 모조품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일본 ‘아메리카야’사의 신발이 팔리고 있는 것은 A사가 수출 전문 자회사인 T사를 통해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T사와 거래해 온 회사들 중에는 T사가 A사의 자회사인 것을 몰랐거나 간접적으로 북한과 관계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A사가 평양에서 설립해 운영해 온 류경상업은행이 올해 3월 유엔이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대동은행과 거래 관계가 있는 것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대동은행은 유엔 제재 대상 기관과 거래하고 중국을 통한 무기 거래를 지원해 온 것으로 유엔 전문가 패널이 확인했다. 싱가포르의 한 북한 전문가는 “싱가포르는 중국, 말레이시아와 함께 북한이 금수 품목 등을 들여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구자룡 bonhong@donga.com·주성하 기자}
미국에서 14일 하원 본회의를 통과한 ‘2018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중국 기업에 한해 미국 정부 조달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배제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사실상 모든 중국 기업이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 및 기업 제재)’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해 큰 파장이 예상된다. 법안 통과 당일 외신들은 “법안에 북한 사이버 공격에 조력하는 중국 통신 기업이 미 국방부와 사업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고 보도했지만 실제 밝혀진 제재 범위는 특정 기업을 한정하지 않았다. 국방수권법안에 따르면 “국방장관은 국무장관, 재무장관, 그리고 국가정보국장과 협의해 북-중 간 교역에 관해 조사한 뒤 법 시행 180일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명시돼 있다. 조사 범위에는 제품뿐 아니라 용역(서비스)까지 북-중 간 모든 교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양국 간 무역에 관해 사실상 전수조사토록 명시한 것이다. 또한 북한의 불법행위를 지원해온 중국 기업을 색출한 뒤 해당 업체가 미국 정부가 발주한 공공사업에 물품 또는 용역을 제공한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토록 했다. 해당 중국 기업이 미 국방부가 발주한 사업에 참여했을 경우 그 명단을 의회에 제출토록 했다. 국방장관에게는 해당 중국 기업과 맺은 기존 조달 계약을 해지하거나 향후 국방부가 발주하는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봉쇄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했으며 처리 결과를 상하원 군사위원회와 외교위원회에 통보토록 의무화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해당 법안이 미 정부가 발주하는 전체 공공사업으로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법 적용 범위도 ‘북한의 불법 행위를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교역에 참가한 모든 중국의 상업기관’으로 규정해 중국의 대북 교역 전면 차단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드러냈다. 미국의 국방수권법안은 해당 회계연도에 한해 미국의 안보와 국방 정책, 국방 예산과 지출을 총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법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싱가포르의 한 무역회사가 북한 노동당의 외화벌이 기관인 ‘노동당 39호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유엔이 대북 금수조치를 내린 사치품을 북한에서 판매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훙샹(鴻祥)그룹이 지난해 북한에 전략 금수 물자를 수출하다가 적발된 것처럼 유엔의 제재를 무력화하는 불법 거래가 드러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의 북한 뉴스 전문 사이트인 ‘NK뉴스’의 프리미엄 서비스인 ‘NK프로’는 17일 보고서에서 싱가포르의 무역업체 A사가 평양 시내 고급 매장에서 서양 고급 브랜드 술과 화장품, 가방 등을 판매해 온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탈북한 39호실 관리와 서방의 평양 주재 외교관의 증언, 위성사진 자료 및 공개된 자료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 등을 토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1718호(2006년 첫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사치품 수출 금지)에서 금지하는 품목이 싱가포르를 통해 북한에 흘러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북한도 대북 제재로 사치생활을 하지 못한 부유층의 불만을 달래는 동시에 개인의 외화를 흡수하기 위해 사치품 판매를 장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CNN 방송도 17일 NK프로의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과 싱가포르의 비밀 커넥션을 보도했다. 방송은 “모두가 북한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에 관심을 가질 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러시아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역 통로도 존재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A사가 평양에서 운영하는 명품 상점은 두 곳이라며 모란봉구역의 ‘북새상점’과 류경호텔 부근의 ‘보통강 류경상점’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외제 명품 가방과 화장품, 보석, 주류 등이 즐비한 여러 장의 상점 내부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사진 속 상품들이 금수 품목에 해당되거나 유엔 제재 대상 기관인 39호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에 A사는 유엔 결의 1718호 위반으로 ‘제2의 훙샹그룹’이 돼 자산동결 및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고 유엔 대북 전문가패널의 전 위원인 윌리엄 뉴컴 씨가 말했다. 39호실은 2016년 3월에는 제재 대상 기관으로도 지정됐다. 동시에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이행에 허점이 크다는 논쟁도 이어질 수 있다. NK프로 취재팀이 가족기업인 A사 대표의 딸로 지목한 B 씨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A사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결혼 및 케이터링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라고 부인했다.구자룡 bonhong@donga.com·주성하·조은아 기자}

북한 평양에서 근무한 한 서방 국가의 전직 외교관은 모란봉 구역에 있는 ‘북새상점’에 들어간 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고급 브랜드의 가방과 화장품, 주류 등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평양 부유층 시민들이 100달러짜리 지폐 뭉치를 들고 와 척척 꺼내 계산을 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 평양에 달러로 수입품을 살 수 있는 곳이 또 있지만 이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격이 다른 데보다 두 배 이상 비싸고 달러 위조지폐 감별에 유난히 신경 쓰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그는 부인과 함께 쇼핑하러 갔다가 위조지폐가 자외선 감별기를 통과하지 못해 거부되는 장면도 여러 차례 봤다. NK프로가 17일 폭로한 북한 명품 및 사치품 전문매장 풍경은 ‘여기가 평양이 맞나’ 싶을 정도다. 싱가포르 무역회사인 A사는 평양에서 금수품을 판매하는 두 개의 상점을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중 한 곳인 북새상점의 ‘고급 화장품’이라는 안내판이 붙은 매장에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 코너가 마련돼 있다. 매장 곳곳에는 ‘사진 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샤넬 구치 프라다 버버리 몽블랑 등 서방 브랜드와 소니 파나소닉 야마하 세이코 포카 등 일본 브랜드도 있었으며 외제 캔커피도 팔았다. 랑콤 로레알 비달사순 등의 화장품과 평면 TV, 노트북 컴퓨터, 보석류, 카메라 등의 전용 매장도 있었다. 북새상점에는 유럽산 및 일본산 최고급 주류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 금수품이다. 지난해 ‘보통강 류경상점’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싱가포르에서 사용되는 ‘세 구멍 콘센트’도 있었다. 북새상점은 큰길에서 벗어난 눈에 덜 띄는 곳에 있다. 또 다른 명품 매장인 보통강 류경상점은 105층 류경호텔 부근에 있으며 평양 시민들에게는 ‘싱가포르 가게’로만 알려져 있다. 두 곳 모두 평양을 관광하는 외국인들이 다니는 동선에서는 빠져 있고 여행 가이드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한 고위 탈북자는 당국이 상류의 핵심 ‘로열 계층’의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이 같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사는 두 상점 외에도 평양의 고려호텔과 양각도호텔의 상점과 바에도 물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상점 운영 방식이나 이윤 배분 등 해당 회사와 북한의 자세한 거래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A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활동했으며 2006년 북한 관영 매체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 대표는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하기 6개월 전인 2006년 4월 김정일에게 최고의 찬사를 건네기도 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싱가포르에서 온 물품은 평양 만경대 구역의 보관창고에 있다가 상점으로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사진을 검토한 바에 따르면 이 창고는 2006년경 지어진 후 2009년 규모가 확대됐다. A사 관련 의혹에 대해 싱가포르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CNN에 “우리는 유엔 결의에 따라 2010년 대북 금수 사치품 품목을 대폭 확대했으며 지금도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거부했다.구자룡 bonhong@donga.com·주성하 기자}
북한은 세계적인 물류와 해운의 중심지 싱가포르에 오래전부터 큰 공을 들여 끈끈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런 이유로 A사 외에도 여러 싱가포르 회사가 대북 제재를 우회하는 창구로 활용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 사례는 무기 프로그램에 사용될 수 있는 자원과 자금을 북한에 보낸 혐의로 2015년 싱가포르 법원에서 18만 싱가포르달러(약 1억48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친포 시핑(Chinpo Shipping)’이다. 2013년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쿠바에서 미그-21 전투기 2대와 관련 부품, 미사일 레이더시스템 2개 등을 싣고 가다 파나마 운하에서 적발돼 억류된 사건 당시에도 친포 시핑이 환적 등의 편의를 봐준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싱가포르 기업 ‘팬시스템스’의 평양지사 간판을 활용해 말레이시아에 ‘글로콤’이란 회사를 세운 뒤 군사용 통신장비 등을 외국에 수출해 오던 사실도 최근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을 통해 적발됐다. 또 싱가포르는 오래전부터 북한 통치자금의 경유지이자 돈세탁 경로로 의심받아 왔다. 3년 전 탈북한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간부 이정호 씨는 지난달 미국에서 “북한이 1990년대부터 ‘싱가포르 라인’을 운용했고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특히 이 씨는 북한이 휘발유 등 민수용 연료는 대부분 러시아에서 들여오는데, 수입물량은 매년 20만∼30만 t이며 이때 신용도가 높은 싱가포르 회사를 중개자로 내세운다고 증언했다. 북한이 싱가포르 회사와 계약을 하면 이 회사가 다시 러시아 석유회사들과 재계약을 한다는 것. 이 경우 러시아는 아시아 석유 거래의 중심지인 싱가포르에 연료를 수출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북한이 러시아에서 연료를 들여온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다. 이 씨는 자신이 직접 유조선 3척을 일본에서 사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싱가포르의 중개로 확보한 러시아 연료를 북한으로 운송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싱가포르는 북한 로열패밀리와 고위 간부들의 각종 편의를 돌봐주는 동남아 허브로도 활용돼 왔다. 과거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이 싱가포르에서 지병을 치료했다. 김정은의 형 김정철은 2011년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팝가수 에릭 클랩턴의 공연에 20여 명의 일행을 거느리고 나타나기도 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억눌려 있는 곳이다. 그런 땅에서 ‘세계 미술사의 새로운 장르’를 발견했다는 화가가 나타났다. 미국 조지타운대 문범강 교수(사진)가 주인공이다. 한국 대표적 여류화가 고(故) 천경자 화백의 둘째 사위이기도 하다. 천 화백의 사위가 북한 미술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궁금해 방한한 그를 12일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공부를 시작한 뒤 8년 만에 대학 정교수가 됐다. 문 교수는 북한 미술을 ‘세계 미술계의 갈라파고스’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동양화의 패권은 북한에 있다”고까지 했다. 현대미술과 동떨어져 70년 넘게 한 우물만 판 결과, 종이와 먹을 사용하는 동양화 영역에서 ‘조선화’라는 독특한 장르가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서방에선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이 1930년부터 소련이 붕괴한 1990년까지 존재한 미술장르라고 가르치지만, 북한의 존재로 미술사를 새로 써야 합니다.” 그는 젊은 김일성을 묘사한 그림을 우연히 보고 화법에 놀랐다고 했다. 그렇게 북한 미술이 궁금해져 2011년 평양행 비행기를 탔고 지금까지 9차례나 방북해 최고 작가들과 교류했다. 북한 화가들의 기량은 동양화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다. “북한의 몰골 기법은 깊이 있고 대담한 표현법, 과감한 붓질, 세밀한 표현에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호랑이 눈동자 하나 그리는 데만 7시간 꼬박 작업하더군요.” 문 교수는 북한의 미술작품이 최근 중국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수십만 달러씩에 거래되고 있고, 북한의 영향을 받은 새 미술 사조가 중국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꼽은 최고의 북한 작품은 1980년에 일제 제철소 노동자들을 그린 ‘지난날의 용해공들’이다. 그림을 그린 김성민(67)은 현재 만수대창작사 부사장 겸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장이다. 그는 또 1973년 창작된 ‘강선의 저녁노을’도 강렬한 붉은 색채로 동양화의 새로운 경지를 쌓은 작품으로 선정했다. 지금까지 북한의 미술작품은 남쪽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문 교수는 “한국에 유통된 북한 작품은 실제로 질이 높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평양에서 본 또 하나의 놀라움은 최고지도자 찬양 일색인 북한에서도 최근 화가들 사이에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눈 위에 두 발로 서 있는 빨간 호랑이를 그리는가 하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산수화도 있습니다. 체제 비판만 하지 않으면 그냥 동료들 사이에서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정도로만 취급될 뿐 배척되진 않더군요.” 최근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에 파견되는 화가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 작품을 팔아 돈을 벌려는 북한 화가들의 욕구도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의 신용이 걸림돌이다. 문 교수는 “지난해 미국에서 북한 미술전을 열었는데, 북한에서 그림만 보내주고 돈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먹튀’를 당할까 봐 비싼 미술작품은 보내주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미술에 대한 북한 주민의 관심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운봉 이재현이라는 유명한 미술사 학자가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사망했다고 소문나는 바람에 이웃들이 그림 한 점이라도 차지하겠다고 몰려온 일도 있다고 한다. 문 교수는 ‘평양, 동시대 미술을 통해 그녀를 보다’란 제목으로 방북 경험을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주성하 zsh75@donga.com·조윤경 기자}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영국 맨체스터에서 자선공연을 펼친 미국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24·사진)가 맨체스터의 첫 명예시민이 됐다. 5월 22일 그란데의 맨체스터 공연장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22명이 숨지고 59명이 부상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란데는 6월 5일 맨체스터를 다시 찾아가 다른 팝스타들과 함께 ‘원 러브 맨체스터’라는 이름의 자선공연을 열었다. 자신의 공연장에서 다친 어린이들을 문병하고,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을 위해 세워진 자선 단체의 첫 후원자가 됐다. 이에 감동한 맨체스터 시의회는 12일(현지 시간) 그란데를 명예시민으로 선정해달라는 리처드 리스 시의회 의장의 제안을 표결에 부쳐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리스 의장은 “그란데가 맨체스터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이곳에 다시 와서 수만 명을 환호하게 하고 수백만 달러를 모금하게 했다”며 “맨체스터의 첫 명예시민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에서 가정용 인공지능(AI) 비서가 주인을 폭행하는 남성을 긴급신고시스템 911에 연락해 경찰이 체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2일(현지 시간)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인근 마을에서 에두아르도 바로스 씨가 여자친구와 그의 딸을 권총으로 때리고 쏠 것처럼 위협하다 체포됐다. 경찰 특수기동대(SWAT)가 출동하도록 911 가정폭력센터에 문자를 발송한 것은 가정용 AI 도우미였다. 경찰은 당초 “‘아마존 에코’(사진)에 탑재된 AI 음성인식 비서 ‘알렉사(Alexa)’가 신고했다”고 발표했다. 아마존 에코는 가정용 음성인식 도우미 장치로 2014년 11월 출시된 이래 1000만 대 이상 팔린 히트 상품이다. 가격은 180달러(약 20만7000원). 하지만 아마존 측이 “알렉사에는 911에 직접 연락하는 기능이 없다”고 설명하자, 경찰은 “알렉사인지 확정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 비서가 연락한 것은 사실”이라고 발표 내용을 정정했다. 전문가들은 에코가 애플의 인공지능 비서 ‘시리(Siri)’ 또는 구글의 모바일 메신저인 ‘그룹미(GroupME)’ 등에 연동돼 있을 경우 911에 연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피해자가 방에 설치된 에코를 향해 “알렉사, 911에 신고해”라고 외치자 경찰 신고 기능이 없는 알렉사는 다시 시리에게 연락해 신고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시리에는 범죄 신고 기능이 있다. 미국에서 AI의 활용도는 매년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는 지난달부터 ‘공정한’ AI 면접관을 도입했다. AI는 수십만 건의 입사 지원서를 검토해 후보자를 추려내고 면접 때엔 지원자가 대답하는 모습을 관찰해 적합한 사원을 뽑아낸다. 하지만 AI가 인사까지 좌우하면 머지않아 사원들의 실적을 면밀히 분석해 자동으로 해고 통보를 날리는 ‘냉혹한’ AI도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우려를 감안한 듯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은 인간 친화적인 AI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10일 밝혔다. 그동안 AI 개발이 기술적 진보에 치중됐지만 앞으론 사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의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오던 러시아의 유명 블로거 안톤 노시크(사진)가 9일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영국 BBC방송이 10일 보도했다. 향년 51세. 노시크는 뉴스루와 렌타루, 가제타루 등 러시아의 유명 인터넷 매체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하는 등 러시아 인터넷의 대부로 꼽혀왔다. 특히 2012년 공연 중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가 투옥된 록 그룹 ‘푸시 라이엇’을 옹호하는 글을 줄기차게 게재해 왔다. 정부가 모든 언론매체를 장악한 러시아에서 인터넷 블로그는 푸틴 정부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표현의 자유’ 성역이었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2014년 ‘블로그 내 실명공개 및 정보 정확성 입증, 연령 제한’ 등 각종 항목을 만들고 이를 어기면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 ‘블로그법’을 제정해 블로거들의 입을 막으려 시도했다. 당시에도 노시크는 “블로그법은 빅브러더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 이중국적자인 그는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을 환영하며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국가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초래되는 민간인 희생은 치러야 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외국 정상들과 나란히 앉았다가 비난에 휩싸였다. 논란은 8일 양자 회담 일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트럼프 대통령의 자리에 이방카가 앉아있는 사진을 러시아 정부 관계자가 찍어 트위터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방카 양옆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앉았고, 같은 테이블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앉아 있었다. 사진이 공개되자 백악관 선임고문에 불과한 이방카가 ‘대통령의 딸’이란 이유로 정상 외교 무대에 나서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공보국장과 선임고문을 지냈던 댄 파이퍼 CNN 정치평론가는 “미국은 정부의 권위가 혈통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부여된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백악관은 “다른 나라 정상들도 자리를 비웠을 때 다른 누군가가 잠시 대신 앉아 있었다”고 해명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정상은 자리를 비울 때 대리 출석할 사람을 결정할 수 있으니 미국 대표단 소속이자 백악관 고문인 이방카는 문제가 없다”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6일 “북한은 매우, 매우 위험한 태도(very, very dangerous manner)를 보이고 있으며, 이런 행동엔 반드시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폴란드를 방문해 “우리는 꽤 엄중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수주, 수개월 동안 벌어지는 일을 지켜볼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그는 ‘엄중한 조치’와 관련해 “우리가 꼭 그런 조치를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단행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나는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북한에 대해 ‘레드라인’을 긋지는 않았다”면서 “하지만 북한이 이처럼 위험하게 행동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며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모든 국가가 북한의 이러한 위협에 강력하게 맞설 것을 촉구한다. 북한에 그들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반드시 결과가 있을 것임을 공개적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독일을 방문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5일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ICBM 발사 문제를 논의했다. 런민왕(人民網) 등 중국 언론들은 “양국 지도자가 베를린에서 만나 시리아와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 및 국제 문제에 대한 견해도 교환했다”고 전했다. 두 정상이 나눈 한반도 관련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시 주석이 중국의 북핵 해법인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북한과의 평화협정 협상)과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제안에 대한 독일의 지지를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후 기자들에게 “이번 회담은 매우 생산적이었으며 정치적 신뢰와 상호 협력, 국제 문제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많은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의 대북 정책으론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를 막을 수 없다. 북한의 의도는 명백하다. 핵미사일로 미국과 협상해 정권의 장기적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즉, 올해 33세인 김정은이 늙어 죽을 때까지 북한을 통치하는 걸 보장받겠다는 의미이다. 북한 모든 정책의 시작과 끝은 김정은의 생존이며, 핵미사일은 김정은이 가진 최후의 카드다. 그러니 끝까지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만 살 수 있다면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는 북한이니 제재와 압박이 잘 먹혀들 리도 만무하다. 김정은은 “이거 받고 나 살려줄 거냐”며 미국을 향해 핵미사일 카드를 내밀었다. “핵문제는 미국과 풀 문제이니 남조선은 끼어들지 말라”는 말은 김정은의 본심이다. 그의 눈에 한국은 주제 파악 못하고 끼어드는 성가신 불청객이다. “제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괴뢰들이 그 무슨 ‘군사적 대응’을 떠들어대고 있는 것은 가소롭기 그지없다”고 한 4일자 노동신문 기사가 곧 김정은의 의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서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영토에 포탄이 쏟아져도 미국의 승인이 없으면 원점 폭격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비장하게 쏟아내도 “가소롭다”는 반응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지금 김정은은 미국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늙고 병든 김정일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흥정하는 척하며 시간이나 끌자”는 생각이 강했다면, 살날이 긴 김정은은 “시간 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젊을 때 큰 도박 한 번으로 평생 편히 살겠다는 속셈이다. 상대가 승부사 기질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협상이 통하겠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정작 트럼프는 북한의 첫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에 “한국과 일본이 이것을 더 견뎌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중국이 북한을 더 압박해 이 난센스 같은 상황을 끝내야 할 것”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남의 일인 듯 한가하게 딴청이다. 북한은 이런 미국에 눈 한번 떼지 않고 “나 좀 봐줘”라며 계속 어필하고, 한국은 그 북한에 매달려 “제발 나랑 말 좀 해줘”라고 구애하고…. 이 우스꽝스러운 관계를 끝장내는 길은 “이거 받고 나 살려줘” 하는 김정은에게 “너 죽을 거냐, 저거 버릴 거냐”라고 역으로 제안하는 길뿐이다. 사실 김정은 제거는 어렵지도 않다. 미국은 물론, 한국도 결심만 하면 언제든 가능하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벌어질 일이다. 김정은이 제거된 북한에서 펼쳐질 혼란은 주변 국가들엔 대재앙이다. 이 대재앙을 막거나 수습하는 데 드는 대가야말로 김정은이 들고 있는 비싼 생명보험이라 할 수 있다. 이 보험금을 지불할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김정은에게 계속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핵 실전 배치가 끝나면 김정은이 할 짓이 뻔하지 않은가. 한국을 향해 걸핏하면 “핵 한 방 맞아볼래”라고 으름장을 놓을 게 분명하다. 우리는 협박을 받아들이며 살지, 아니면 이 관계를 끝낼지를 선택해야 한다. 자존심 있는 국가라면, 분노를 느끼는 인간이라면 협박을 참고 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너무 비싸 엄두도 내지 않았던 보험금 계산을 시작할 때가 온 듯하다. 이 계산이야말로 우리가 주체가 돼야 한다. 왜냐하면, 김정은의 생명보험금은 한국과 중국이 대부분을 부담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직함이 잔뜩 붙은 나이 많은 명사들을 모아 위원회나 구성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미래를 읽고, 냉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젊은 인재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중국을 어떻게 설득할지다. 중국은 누가 강요해도 북한 붕괴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대안 리더십이 부재한 북한에서 김정은이 제거되면 혼란은 필연적이며, 이어 쏟아지는 난민은 중국 동북지역의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중국은 수천 년 역사에서 동북이 혼란스러웠을 때 늘 중원이 무너졌다. 가뜩이나 약화되는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가 동북 혼란이란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중국에 북한은 터지면 내게 파편이 쏟아지는 폭탄과 같은 존재다. 이런 중국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파편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자면 그게 가능한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 계산부터 해야 한다. 물론 우리 역시 북한 붕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이 북한의 붕괴를 감수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한 끝까지 막 나갈 것이다. 그 계산이 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답이 나올 때까지 계산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정은의 핵도박은 “북한 붕괴를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서를 보여줄 때에만 끝낼 수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