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한국인 최초로 스타워즈 시리즈에 입성한 배우 이정재(52)가 이번엔 디자이너 가구 전시를 연다. SF 고전인 ‘스타트렉’과 제임스 본드 시리즈, ‘아이언맨’ 등 다수 영화에 디자인 제품이 등장했고, 프랑수아 미테랑 등 여러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 실내 인테리어를 맡은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폴랭(1927∼2009)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선 것. 폴랭의 아들 뱅자맹 폴랭(46)과 협업한 전시 ‘Starring Pierre Paulin(주연 피에르 폴랭)’이 개막한 9일 두 사람을 만났다. 이번 전시는 폴랭의 아내 마이아, 아들 뱅자맹, 며느리 알리스가 설립한 회사 ‘폴랭, 폴랭, 폴랭’이 주최했다. 자신의 회사인 아티스트컴퍼니의 서울 강남구 사옥 1층과 지하 1층을 전시 공간으로 내준 이정재는 “지난해 가을 첫 제안을 받고 영상 통화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전시를 만들었다”며 “잡지나 영화로 유명 작품은 봤지만, 다른 디자인도 실제로 어떨지 굉장히 궁금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1층에서는 ‘그루비 체어’(1964년), ‘텅 체어’(1963년) 등 폴랭이 1960년대에 만든 의자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다. 뱅자맹은 “튜브 모양의 구조 위에 신축성 있는 천을 양말처럼 씌워 의자의 뼈대가 보이지 않는다”며 “어떻게 만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공상과학 영화에 자주 사용된다”고 했다. 폴랭의 디자인은 최근에도 영화 ‘바비’나 ‘어벤져스’처럼 상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등장했다. 폴랭이 198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집무실 인테리어를 맡았을 때 만든 의자도 전시됐다. 뱅자맹은 “폴랭이 60세가 넘은 나이에 디자인한 것으로, 과거에는 곡선적인 형태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프랑스의 육각형 지형을 본떠 각진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라며 “국가에 헌신한다는 마음이 담긴 특별한 디자인”이라고 했다. 지하 1층으로 가면 모래 언덕에서 영감을 얻은 ‘듄 앙상블’, 필요에 따라 등받이를 접었다 펼 수 있는 ‘타피 시에주’ 등 최근 생산되는 디자인 제품이 전시됐다. 이정재는 다음 달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 공개를 앞두고 전 세계로 홍보 행사를 다니고 있다. 그는 “영화 역사상 가장 오래 이어진 시리즈에 참여해 감격스러운 일이고 ‘오징어 게임 2’도 촬영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데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를 연 것에 대해서는 “사실 이전에도 기업과 협업해 디지털 아트 전시를 했고 이번이 두 번째”라며 “앞으로도 (사옥 공간을) 서울의 다양한 전시 문화를 즐기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정재는 배우가 되기 전에 공간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꿨을 정도로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그는 폴랭의 디자인에 대해 “전통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에서 1960년대부터 현대적인 디자인에 새로운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이 놀라웠다”며 “특히 이렇게나 많은 영화나 드라마 장면에 나온 디자인이 있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에도 이렇게 세계적 디자이너를 비롯한 더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98년 8월 영국 브리스틀. 주말 이틀간 유럽의 그라피티(상가나 담벼락에 몰래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빨리 완성하는 그림) 예술가들이 모여 365m 길이의 벽면에 마음껏 예술 활동을 펼쳤다. 그라피티는 통상 불법인 경우가 많지만 이날 행사는 시청 승인을 받아 치러진 공식 행사였다. 이 행사를 주최한 예술가는 바로 뱅크시. 영국 최대 규모의 합법 그라피티 행사였던 ‘월스 온 파이어’를 연 1998년부터 최근까지 20여 년간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 ‘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가 10일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옛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에선 2019년 소더비 경매로 유명해진 ‘풍선을 든 소녀’(2004∼2005년)의 파쇄되지 않은 버전은 물론 ‘꽃 던지는 소년’(Love is in the air·2003년), ‘몽키 퀸’(2003년) 등 대표작을 선보인다. ‘디즈멀랜드’(2015년), ‘월드 오프 호텔’(2017년)처럼 뱅크시가 주도한 대규모 프로젝트도 영상과 기록으로 만날 수 있다. 또 브리스틀 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 포스터, 1995년과 2000년대 초에 진행된 뱅크시 인터뷰 영상도 전시됐다.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지하 4층에서 뱅크시의 작품 활동을 다룬 연표로 시작한다. ‘월스 온 파이어’부터 브리스틀 수상 레스토랑에서의 첫 개인전(1999년), 소더비 첫 경매(2007년),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개봉(2010년), 영국 글래스고 미술관 개인전 ‘컷 앤드 런’(2023년)까지 뱅크시의 주요 작품 활동을 짚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뱅크시가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운 ‘월드 오프 호텔(Walled Off Hotel·벽에 가로막힌 호텔)’ 영상과 영국에 만든 ‘디즈멀랜드’ 영상을 볼 수 있다. ‘월드 오프 호텔’은 가자지구의 분리 장벽 바로 옆에 뱅크시가 세운 숙박시설로 ‘세상 최악의 뷰를 자랑하는 호텔’이라고 홍보하며 지난해까지 운영됐다. ‘디즈멀랜드’는 뱅크시가 만든 놀이공원으로 파파라치에게 둘러싸인 신데렐라, 아름다운 호수 위 난민 보트 등을 설치해 디즈니랜드를 풍자했다. 두 작품은 세계적 분쟁에 뛰어들어 폭력과 권위, 차별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4섹션에서도 사진과 판화, 영상을 중심으로 뱅크시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전시는 2022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뱅크시, 하늘에 성을 쌓다(Banksy, Building Castles in the Sky)’전을 한국 관객에게 맞게 변형한 것도 특징이다. 기존 전시가 뱅크시의 활동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작품을 모은 것이라면, 한국 전시는 그라운드서울의 거대한 공간에 맞게 각종 조형물이나 포토존을 추가했다. 지하 4층의 개방된 공간에 14m 높이로 디즈멀랜드 드로잉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 회전목마가 설치됐다. 회전목마는 뱅크시의 작품이 아닌 디즈멀랜드의 분위기에 맞춰 전시팀이 특별 제작한 조형물이다. 이 밖에 전시장을 오가는 계단에도 뱅크시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벽화와 그라피티가 장식돼 있다. 윤재갑 그라운드서울 관장은 “예술이 불안한 이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자들을 방해해야 한다는 뱅크시즘과 늘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1만5000∼2만 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주에 이어 프란시스 모리스 전 테이트모던 관장 인터뷰를 소개합니다.모리스 관장의 학창 시절과 젊은 큐레이터였을 때 일화,그리고 테이트 모던 터빈홀을 커다란 거미로 채운 루이스 부르주아와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준비되어있습니다.오늘 평소보다 분량이 약 1.5배 정도 되는데요. 궁금할 독자분들이 분명히 계실 것 같아 자세히 소개드립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금지를 금지한다”68혁명과 저항의 시대가 낳은 변화제가 대학을 다녔던 1970년대 캠퍼스에서는 세계를 향해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쳤어요. 학자들도 미술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죠.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담론을 비롯해 인문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캐논’을 의심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지난 뉴스레터에서 모리스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2000년대 초반 처음 문을 열 때,시대와 사조에 따라 이뤄지는 큐레이팅 방법론을 버리게 된 과정을 전해드렸는데요.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이어지는 문답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미술기관이 반응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관장님은 1980년대부터 큐레이터로 일을 해오셨잖아요?“네. 더 정확히 말하면 1980년대 후반부터 일을 했죠.”- 그렇다면 당연히 전통 아카데믹 미술사 교육을 받았을 텐데, 그렇게 배워 온 프레임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제가 대학을 다녔던 1970년대 캠퍼스에서는 세계를 향해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쳤어요. 학자들도 미술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죠.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담론을 비롯해 인문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캐논’을 의심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제가 이 답변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입니다.조금만 생각을 더 해본다면, 이 때는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로 반권위주의, 반제국주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환경운동 등 실로 다양한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온 시기였습니다.‘68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이 운동을 대표하는 구호는 바로‘금지를 금지한다 (Il est interdit d‘interdire)이런 분위기에 푹 젖어 있는 대학 분위기를 상상해보면, 전통 미술사를 버린다는 귀결은 당연한 선택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물론 그것이 현실로 오기까지는 1968년에서 테이트모던이 문을 연 2000년까지, 30년이 걸린 셈입니다. 계속해서 모리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1970년대에는 존 버거의 ‘다르게 보기’ 같은 중요한 책들이 있었어요. 이 내용을 BBC 다큐멘터리로 처음 봤을 때 저도 충격을 받았죠.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굉장히 편협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러니까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는 (존 버거와 같은) 인문학적 성취들이었어요.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는 영국의 흑인 지성인들도 눈부신 결과를 내며 문화를 확장하는 데 힘썼습니다.”(특강에서 모리스는 존 버거의 ‘다르게 보기’ 외에도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 등의 저서를 언급했고, 스튜어트 홀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학자로 꼽았습니다.)- 학계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많았죠?“흑인뿐 아니라 비백인 예술가들, 여성 예술가들 등등 미술기관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예술가들이 많았습니다.그 경계에는 특히 젠더와 인종이 작용했는데요.두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두 명의 훌륭한 여성 예술가가 있었어요.한 명은 40대에 세상을 떠난 헬렌 채드윅이에요. 페미니스트이자 영리한 예술가였고, 제 기억에는 그녀가 했던 미니멀한 조각 연작이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채드윅의 작업은 미니멀리즘과 분명한 연결점이 있었는데, 미니멀리즘은 미국 남성 예술가들의 영역이었거든요. 채드윅은 이런 조각을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구를 재료로 했어요.채드윅의 예술 작업을 구성하는 또 다른 줄기 하나는 사진이었는데요.제가 테이트에서 일하기 전부터 저는 채드윅을 알았고, 그녀의 작업 세계가 훌륭하다고 생각했었죠.그래서 테이트에 채드윅의 작품을 소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당시 시니어 큐레이터가 바로 ‘No!’라고 하는거에요. 그 이유는? 우리는 ‘사진’을 소장하지 않는다는 거였죠!그런데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이제 25년 30년이 되었나요? 이제서야 내년 런던 화이트채플 미술관에서 그녀의 첫 회고전이 열린답니다.또 다른 예술가는 소니아 보이스에요. 작년에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황금사자상을 받았죠.사회 구조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그걸 아주 훌륭한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작가에요. 테이트는 보이스의 작품을 소장했지만, 그녀 역시 알려지기 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죠.그러니까 이렇게 채드윅, 보이스 같은 작가들을 1970년대에 만난 것이 또 제가 프레임을 깰 수 있었던 계기에요.여기에 휘트니 비엔날레와 파리 퐁피두센터의 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 같은 전시를 보고. 이렇게 캐논 밖에서 훌륭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이미 보고 듣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테이트 모던을 준비할 때 한 일은 그냥 미술 기관이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던 문을 활짝 열고, 그 시대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네요?맞아요. 게다가 유럽뿐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동유럽 같은 곳에서 뛰어난 현대미술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있었죠.그런 다양한 곳을 방문하면서, ‘아 이건 새로운 역사가 아니라 각 지역마다 고유의 훌륭한 역사가 존재하고 있는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캐논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요.루이스 부르주아,내겐 늘 두려웠던 존재부르주아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보물을 캐내듯 계속해서 끄집어내면서 작업을 했고. 정신분석학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저는 부르주아가 그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되짚어보고 고민하고 곱씹는 과정 자체가 그녀에겐 아주 중요했던 거죠.이런 가운데 모리스는 루이스 부르주아, 야요이 쿠사마, 힐마 아프 클린트 처럼 미술사에서 배제된 여성 예술가를 재조명 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그 중에서도 루이스 부르주아는 테이트 모던이 개관할 때 터빈홀에 대형 거미 설치 작품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그래서 부르주아와 함께 일한 경험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우선 1995년에 부르주아와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이 때 그녀의 작품 일부도 테이트 소장품이 되었고요.부르주아가 초현실주의부터 추상표현주의 등등 20세기 수많은 사조와 연결 고리를 맺고 있으며 당시 나이가 많았음에도 왕성하게, 신선한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터빈홀 커미션에 그녀를 초청했죠.또 회고전을 같이 준비하며 그녀가 머무르던 뉴욕을 정말 여러 차례 오가면서 만났어요.- 직접 만나 일할 때 부르주아는 어떤 사람이었나요?아. 무서운,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어떤 점에서요?아주 까다로운 사람이었거든요. 당신이 원하는 바를 늘 구체적으로 말했고 또 반대 의견도 서슴지 않고 말했어요.제 질문을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무서웠어요. 제가 하자는 거의 모든 일에 항상 ‘노’라고 했고, 1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거든요.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당장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죠.그러다가 갑자기 돌변해 아주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제가 선물로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영국 딸기잼을 사갔을 때의 일이에요.그 잼을 보고 부르주아가 어시스턴트를 불러요. ‘제리, 숟가락 좀 가져와 봐’ 하고요. 그러면 저와 부르주아, 제리 이렇게 세명이 작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나란히 잼을 스푼으로 떠서 나눠 먹었어요. (웃음)-아니, 빵도 없이 그냥 잼을?빵도 뭣도 없이 그냥 잼을요. 이상하죠. (웃음).그러니까 부르주아는 항상 제게 두려운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꿋꿋이 20년 동안 뉴욕에 갈 때마다 부르주아를 만났어요. 마치 명절에 꼭 해야할 일을 하는 것처럼요.그 결과 부르주아의 회고전뿐 아니라 첫 번째 패브릭 작품 전시도 할 수 있었으니 아주 보람찬 노력이었죠.제 커리어에서 부르주아를 만난 건 손에 꼽을 만큼 멋진 일이고, 저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힘든. 곤혹스러운 경험이기도 했어요. -그랬겠어요. 그런데, 예술 작품을 보면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이겠다, 이런 상상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관장님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부르주아의 모습을 작품에서 찾는 다면 어떤 측면이 있을지도 궁금해지네요.음. 부르주아가 거미를 보고 자기 엄마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그 커다랗고 무서운 거미가 부르주아 그녀 자신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네요. 때로는 연약하지만 때로는 강철만큼 단단한 그런…그렇죠. 물론 그것뿐 아니라 패브릭 작업도 있고, 또 부르주아가 같은 주제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그러면서 실마리를 풀어가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부르주아는 아주 강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런 측면이 작품에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부르주아가 자신의 유년기가 보물 창고라고 했잖아요. 그 때의 기억을 계속해서 다시 곱씹으며 작업을 했기도 하고…네 그 때의 기억을 보물을 캐내듯 계속해서 끄집어내면서 작업을 했고. 정신분석학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했잖아요.그런데 저는 부르주아가 그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되짚어보고 고민하고 곱씹는 과정 자체가 그녀에겐 아주 중요했던 거죠.-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부르주아에겐 그런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의 단위였어요. 그녀가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말이 아니라 복잡하게 꼬인 문제들. 그것을 이리저리 상징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예술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죠.-모리스와의 이날 대화는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예정된 아그네스 마틴 개인전, 또 이화여대에서 9월 열릴 예정인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이마프(EMAP)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아그네스 마틴 개인전에 관한 내용은 링크된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의 작품 130여 점이 한국을 찾는다. 영국 출신 화가 뱅크시는 정체를 숨기며 활동하기 때문에 작가가 직접 참여한 전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뱅크시가 설립한 인증기관인 ‘페스트 컨트롤’을 통해 진품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페스트 컨트롤의 공식 인증을 받은 뱅크시 작품 29점을 선보인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열린 뱅크시 전시 중 최대 규모다. 10일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에서 개막하는 ‘리얼 뱅크시’전의 큐레이터 피에르니콜라 디로리오를 8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디로리오는 “뱅크시의 대다수 작품은 스프레이 벽화인데, 이 중 일부를 뱅크시가 승인한 기관을 통해 석판화 작품으로 만든다”며 “페스트 컨트롤은 이러한 판화의 진위를 판명하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인증받은 작품에는 ‘풍선을 든 소녀’(2004∼2005년), ‘꽃 던지는 소년’(Love is in the air·2003년), ‘펄프 픽션’(2004년), ‘몽키 퀸’(2003년) 등 대중적인 작품도 있다. ‘풍선을 든 소녀’는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된 직후 저절로 파쇄된 버전의 작품이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는 찢어지지 않은 다른 에디션 작품이 전시된다. ‘파쇄기가 설치돼 있는지 확인해 봤느냐’란 질문에 디로리오는 “아직까지 그런 정황은 없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디로리오는 “뱅크시가 활동한 지 30년 정도 됐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그가 보여준 작품에 대해 연구하고 다양한 시리즈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며 “정치부터 사회문제까지 많은 사람이 처한 상황을 표현하며 소통하는 작가로서 뱅크시를 조명하고자 했다”고 했다. 디로리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으로 ‘네이팜’(2003년)을 꼽았다. 그는 ‘네이팜’에 대해 “베트남전쟁 피해자인 9세 소녀 판티킴푹의 팔을 맥도널드의 대표 마스코트인 로널드와 미키마우스가 붙잡고 있는 장면”이라며 “내가 아홉 살 소년일 때 디즈니 영화를 보고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와 미국 문화를 즐겼는데 그 돈이 다른 한쪽에서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했다. 또 “뱅크시가 동시대 작가로서 우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모든 관객이 저마다의 해석을 갖고 바라보면 더욱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고국에서도 여러 차례 뱅크시 전시를 기획하고 관련 저서도 출간했다. 그런 그는 뱅크시의 정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디로리오는 “안경을 끼고 후드티를 걸쳤으며 평범하게 생긴, 거리에서 흔히 보는 50대 남자가 아닐까 추측해본 적은 있다”라면서도 “뱅크시를 만난 적은 없고, 또 그가 종교나 정치 등 성역을 넘나들며 풍자하기 때문에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파이더맨의 얼굴이 알려지면 재미가 없는 것처럼, 뱅크시의 정체는 지금처럼 신비로운 곳에 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번 전시가 열리는 그라운드서울은 6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감독, 2016년 부산 비엔날레 전시 감독을 맡았던 윤재갑 큐레이터가 관장을 맡았다. 윤 관장은 “뱅크시는 1980년대 말 이후 상업화된 문화 예술에 가장 큰 반작용을 보여준 작가 중 한 명이므로 개관전에 소개하고 싶었다”라면서 “작가와 큐레이터부터 컬렉터와 대중이 모두 모이는 마당(그라운드)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0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솔로 2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7일 소셜미디어에 신곡 ‘Come back to me’의 포스터(사진)를 공개했다. ‘Come back to me’는 24일 발매 예정인 솔로 2집 ‘Right Place, Wrong Person’의 수록곡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이성진 감독이 ‘Come back to me’ 뮤직비디오의 연출, 제작, 극본을 맡아 눈길을 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암살’에 참여한 류성희 미술감독과 영화 ‘1987’, ‘만추’의 김우형 촬영감독도 참여했다. 배우 김민하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RM과 호흡을 맞췄다. 곡 작업에는 밴드 혁오의 오혁이 프로듀싱을 맡았고, 대만의 5인조 밴드 선셋롤러코스터의 멤버 궈궈가 기타, 베이스 세션으로 참여했다. 10일 오후 1시 ‘Come back to me’가 선공개되는 데 이어 24일 총 11곡이 수록된 2집이 발표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해임안을 법정에서 다투게 됐다. 하이브는 앞서 민 대표 해임안 등의 안건을 다루는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을 법원에 냈는데, 민 대표 측이 이에 대해 해임안을 의결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7일 민 대표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하이브가 민 대표 해임 안건에 대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한 것은 주주간계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하이브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민 대표는 “하이브의 배임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어도어 소속 아티스트와 기업 가치를 지키고자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신청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어도어는 10일 이사회를 열고 이달 말 경 임시주총을 소집할 예정이었다. 다만 이번 가처분 신청으로 민 대표 해임안은 임시주총이 열리기 전 법원에서 먼저 다뤄질 전망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나는 착한 동생을 잃은/그 친구의 슬픔이 버거웠습니다. (중략) 상가를 돌아 나오면서/내 마음이 깊어졌습니다./일상인 죽음이 편안해졌습니다./참/소중한 하루였습니다.’(‘어제 이른 아침 전화 한 통 받았습니다…’) ‘이유도 없이, 혹은 이유가 있듯이/언제나 바쁜/당신 (중략) 너무나 바빠서/자기 몸이 어디 있는지도 잊어버렸다.//슬프구나/잊은 몸이 더 바쁘다.’(‘토요일 저녁 6시 50분’)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볼 수 있는 윤석남(85)의 드로잉 속 글귀다. 흔히 드로잉이라고 하면 작품을 제작하기 전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스케치를 생각한다. 그런데 윤석남의 드로잉은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느꼈는지 그 내밀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기에 가깝다. ‘어제 이른 아침…’은 가까운 친구의 동생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 상가에 갔다가 느낀 점을, 또 ‘토요일 저녁 6시 50분’은 바쁜 일상에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누군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외할머니’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자식을 키워 온 모든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전시된 작품들은 윤석남이 2000∼2003년 그린 드로잉 700여 점 중 96점을 선별한 것이다. ‘여성주의 작가’라고 불리는 그답게 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도 있지만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았다. 그 가운데서 느껴지는 건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 생명에 대한 존중, 자매애 같은 가치를 작가가 보편적 영역으로 확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항상 지상에서 20cm 정도 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세태에 흔들리지 않고 사랑과 평화 같은,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온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윤석남의 동생인 윤석구(77)의 신작 조각 15점도 함께 소개한다. 버려진 나무를 알록달록한 천으로 감싸며 지금의 소비 행태가 올바른 것인지 되묻는다. 2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크린에서 보이는 것과 눈앞에서 보고 만지는 것의 차이를 조각, 설치 작품으로 표현한 작가 장효주의 개인전 ‘육안으로는 관찰하기 어렵습니다’가 11일까지 서울 강남구 지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장 속 작품들은 실리콘, 지퍼, 폴리우레탄 같은 산업용 재료를 주로 사용해 삭막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가까이 가면 얇은 막 아래로 솜이 욱여넣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매끈한 모니터 너머로 무언가를 볼 수는 있지만, 복슬복슬하거나 울퉁불퉁한 것 등 여러 가지 촉감은 느낄 수 없는 답답한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촉감에 더 강조점을 두기 위해 일부러 색을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장효주는 국민대 입체미술 전공 후 독일 뮌헨조형미술대에서 공부했다. 2021년(독일 뮌헨), 2022년(서울)에 이어 세 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지갤러리의 신진 작가 육성 프로그램인 ‘그레이트 엑시비션’ 공모전으로 선정된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년 열리는 ‘그레이트 엑시비션’은 앞서 이현우, 김상소, 조재, 허수연 등의 작품을 소개했다. 정승진 지갤러리 대표는 “향후 공모 프로그램은 신진 기획자를 선정해 전시를 선보이도록 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화가 아그네스 마틴(1912∼2004)은 가까운 친구였던 안 글림셔 페이스갤러리 회장의 손녀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정원에서 장미꽃을 꺾어 보여준다. “이 장미꽃이 아름답니?”라고 묻는 마틴에게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이어 마틴은 장미꽃을 등 뒤로 가져가 감춘 뒤 다시 물었다. “그 장미꽃이 여전히 아름답니?” 글림셔 회장은 생전 마틴과의 일화를 그의 전기에 털어놓으며 “마틴은 아름다움이 외부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장미꽃을 비롯한 대상은 마음속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장치임을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감정을 추상 회화로 캔버스에 풀어놓은 화가 마틴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2월 14일 개관한 강원 강릉 솔올미술관의 두 번째 기획전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을 통해서다.● 객원 큐레이터로 나선 모리스 4일 개막한 ‘아그네스 마틴’전은 1955년 초기 작품부터 1990년대 마틴이 양로원에서 지낼 때 그린 말년의 작품까지 총 54점을 소개한다. 마틴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으로, 프랜시스 모리스 전 영국 테이트모던 관장이 객원 큐레이터를 맡아 미술계의 관심을 모았다. 3일 기자간담회에서 모리스 전 관장은 “2년 전 큐레이터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마틴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다고 해 놀랐다”며 “새로운 관객에게 처음으로 소개할 수 있어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틴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회고전을 할 수는 없어 중요한 순간들을 선별해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다”며 “이 때문에 전시 제목을 ‘완벽의 순간들’이라고 붙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미술관 내 두 갤러리, 전시실 2, 3에서 열리는 소규모 전시인 만큼 마틴의 작업 세계 변화를 ‘맛보기’할 수 있는 전시다.● ‘세상을 등지고’ 다큐멘터리 눈길 전시장에 들어서면 1955년과 1957년 작품 ‘무제’가 관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마틴은 기하학적 추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들은 대표작과 달리 마크 로스코나 아실 고르키 등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리스는 “추상표현주의나 앵포르멜 같은 추상 작업의 기원을 탐구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1964년 ‘나무’, 1973년 ‘어느 맑은 날에’ 같은 작품에 이르면 곡선이 완전히 사라지고 수직, 수평선만 나타나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변한다. 이후 전시실 2의 가장 넓은 공간에는 회색으로만 이뤄진 단색 작품 8점이 걸려 있다. 마지막 전시실 3에서는 양로원에 머물며 고요하게 명상하는 가운데 떠오른 이미지를 그린 ‘순수한 사랑’ 연작 8점이 소개된다. 모리스는 “마틴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를 다니며 예술을 할 때 선불교와 도교 철학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고독하고 조용한 가운데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절제된 색채와 선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이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던 마틴은 풍부한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다.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맥시멀리스트’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마틴의 생전 모습은 세미나실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등지고’에서 더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메리 랜스 감독이 그의 작업실을 찾아 만든 것으로, 그림을 그리는 마틴의 모습과 그의 생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마틴의 전시와 함께 전시실 1에서는 한국 작가 정상화의 개인전도 열린다. 8월 2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24년 한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고 할 때, 사람들은 무슨 기준을 떠올릴까? 대부분이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 무역수지, 아파트 매매가 같은 숫자 데이터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몇 위이며, 서울 아파트 거래와 가격 추이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은퇴하고 걱정 없이 살려면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숫자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절대적 기준이라는 생각은 착시 효과다.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돌아보면 ‘숫자’를 위한 밥벌이를 하는 가운데 온갖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그렇기에 원하는 ‘숫자’를 채운다고 해도, ‘희로애락’의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삶은 여전히 혼란 속에 놓이기도 한다. 이렇게 ‘숫자’에 가려진 현실의 복잡다단한 양상을 사실적으로 기록해 보자는 문학동인 ‘월급사실주의’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두 번째 책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월급사실주의 2024)’이 출간됐다.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의 글을 모았다. 작가들은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 어린이 공부방을 운영하는 사람, 화장품 프랜차이즈 본사 영업부 직원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드라마를 그린다. 그런 가운데 숫자와 직업이라는 타이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직업 생활의 부조리함,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 등이 드러나며 ‘2024년 한국’의 여러 단면들이 이야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산문으로 사랑받았던 남궁인, 천현우의 첫 단편소설과 소설 ‘아몬드’로 잘 알려진 손원평의 최신작이 수록돼 눈길을 끈다. 문학동인 ‘월급사실주의’는 지금 여기(5년 이내), 한국 사회의 먹고사는 문제를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쓰자는 규칙을 갖고 있다. 이 동인을 시작한 소설가 장강명은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관념의 세계로 도피하며 ‘문학의 힘은 무력함이다’라고 하는 이야기에 “문학은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 있는 문학이 줄어들었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다”며 “그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강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 미술을 접할 때 많은 사람들은 미술에 대한 ‘지식’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내가 아는 것이 없어” 작품을 볼 줄 모르고, 그래서 “현대 미술은 어렵고 난해하다”고 겁을 먹기도 하죠.이때 흔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다다,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용어들, 또 그 사조가 갖는 의미일 것입니다.그런데 요즘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나 영국 테이트 모던 같은 미술관에 가면 이런 사조를 지우거나 감추고 있다는 걸 아시나요?그 ‘사조 지우기’가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라면 어떨까요?국제 미술사를 이끄는 미술 기관들의 움직이는 방향을 보면 미술은 이제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아니라 ‘보이는 만큼 안다’를 표방하고 있습니다.그런 태도를 강력하게 실천해 온 기관 중 하나인 영국 테이트 모던의 개관 멤버이자, 명예 관장인 프랜시스 모리스를 만났습니다.요즘 미술관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모리스와 인터뷰를 통해 소개합니다.전통적 미술사를 버린 미술관“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입체파, 추상표현주의 같은 단선적인 흐름의 미술사로는 미국, 유럽, 남성 예술가의 작품만을 다룰 수밖에 없었어요.(20세기 미술사를 기준으로 움직였을 때) 테이트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100점을 꼽았는데 이중 여성 예술가의 작품은 단 3점이었죠. 그리고 백인이 아닌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었고요.그러니 21세기 동시대 미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전통적 미술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걸 당시 테이트 모던 개관을 준비하던 멤버들은 느끼고 있었습니다.”2000년 오래된 화력 발전소를 리모델링한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이 개관했을 때. 커다란 발전기가 있었던 ‘터빈 홀’을 예술 작품으로 채운 미술관 건물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그런데 미술관 내부의 큐레이팅은 영국 언론의 비판을 받았는데요.그 이유는 미술관이 예술 작품들을 ‘시간순’이나 ‘사조 순’으로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즉 전문가들이 흔히 기대했던 순서. 인상주의 – 후기 인상주의 – 입체파 –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전통적인 미술사의 흐름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왜 그랬을까? 프랜시스 모리스의 답입니다.“21세기 런던에 생길 미술관에는 전통적인 미술사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입체파, 추상표현주의 같은 단선적인 흐름의 미술사로는 미국, 유럽, 남성 예술가의 작품만을 다룰 수밖에 없었어요.(20세기 미술사를 기준으로 움직였을 때) 테이트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100점을 꼽았는데 이중 여성 예술가의 작품은 단 3점이었죠. 그리고 백인이 아닌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었고요.그러니 21세기 동시대 미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전통적 미술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걸 당시 테이트 모던 개관을 준비하던 멤버들은 느끼고 있었습니다.”모리스 관장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3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먼저 건물을 짓고, 그다음 무엇을 채우고 일할 사람을 뽑는 순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죠.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내부의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할지 또 그것을 주어진 건축물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미리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이 ‘최소 3년’이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했습니다.그럼 그 기간 동안 어떤 것을 논의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우리에게 주어진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는 4개 층의 전시장이 있었습니다.그러니까 이 4개 전시장에서 4가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었어요.이를 전제로 준비팀이 수개월간 리서치를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21세기 미술관 모델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그다음 결론을 내렸죠. 전통 미술사의 사조 순서가 아니라 4개의 다른 테마를 중심으로 소장품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미술사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작품을 배치했을까?‘테마’를 중심으로. 즉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추상화, 누드 등 작품들을 주제별로 분류해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미술관이 다룰 수 있는 작가 풀을 넓혀주는 역할을 했습니다.즉 전통 미술사를 기준으로 ‘초현실주의’를 배치한다면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 르네 마그리트, 이브 탕기… 놀랍게도 모두 유럽 남성 작가입니다. 이들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하고 그룹을 지어 전면에서 활동했던 작가이기 때문이죠.그런데 ‘사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한 예술 작품을 보여준다면 어떨까요?루이스 부르주아, 프리다 칼로 등 여성과 남미 작가는 물론 한국의 시인 ‘이상’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초현실주의를 ‘1930년대 유럽에서 나타난 미술사조’가 아니라 ‘무의식의 영역을 표현한 예술’이라고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리스는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그러니까 20세기를 기준으로 ‘초현실주의’를 본다면 테이트 모던에서는 그것을 ‘초현실주의 사조’가 아니라 ‘기묘한’(uncanny) 예술 작품들이라고 그룹 짓고 보여주었습니다.이렇게 되면 1930년대가 아니라 더 넓은 시간대를 다룰 수 있게 되죠. 물론 전시장 중심에는 달리의 랍스터 전화기가 놓여있겠지만, 유럽 미술 외에 더 많은 시대와 지역의 작품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그리고 이 전략은 너무나 성공적인 방식이 되었어요. 최근 미술 시장에서 초현실주의가 가장 주목 받는 경향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말이죠.”‘아는 만큼 보인다’ X‘보이는 만큼 안다’ O과거의 미술관은 특정 시기 뉴욕이 중심이 되어 썼던 미술사를 ‘맞다’고 규정하고 관객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곳이라면, 테이트 모던이 보여준 21세기 미술관은 작품을 그냥 주제별로 분류해놓고, 관객이 와서 알아서 ‘느끼라’고 열어주는 아주 개방적인 장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테이트 모던의 ‘주제’별 큐레이팅 방식은 처음엔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평론가들은 이 방식을 낯설고 효과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모리스는 회고했습니다.“미술사가들은 이 전시 순서가 전통적인 미술사를 흩트린다고 느껴서 싫어했어요. 그런데 관객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식이었죠.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전통적인 미술사는 1930년대 뉴욕 현대미술관장(MoMA)이었던 알프레드 바를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스토리이고, 그것을 전 세계 갤러리와 딜러들이 추종하면서 일종의 권위가 생긴 것이에요.그런데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이 그걸 일일이 다 알고 있을까? 그걸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그러니까 과거의 미술관은 특정 시기 뉴욕이 중심이 되어 썼던 미술사를 ‘맞다’고 규정하고 관객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곳이라면, 테이트 모던이 보여준 21세기 미술관은 작품을 그냥 주제별로 분류해놓고, 관객이 와서 알아서 ‘느끼라’고 열어주는 아주 개방적인 장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렇게 미술관이 권위를 내려놓는 것은 아주 겸손한 태도이면서도, 미술관을 찾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모리스에게 ‘관객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가졌냐’고 물었습니다.“정말 다양한 사회적 배경과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스스로 예술 작품을 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지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미술관이 제공한 최소한의 기준은 모든 사람이 가장 익숙할 ‘주제’. 그러니까 풍경, 누드, 정물 같은 것들이었죠.”그러니까 ‘아는 만큼 보이는’게 아니라 ‘보이는 만큼 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는 것입니다.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야~’, ‘이건 다다야~’라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작가들이 삶과 시대에서 어떤 맥락으로 무슨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했는지 그 풍부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저에게 재밌는 것은 이러한 방식이 미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공식과 정반대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서 ‘안다’는 것이 전통 미술사라는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라면 말이죠.오히려 그런 정보에서 벗어나 작품의 시각 언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그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저도 오래전부터 느껴오고 있는데요.그러니까 ‘아는 만큼 보이는’게 아니라 ‘보이는 만큼 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는 것입니다.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야~’, ‘이건 다다야~’라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작가들이 삶과 시대에서 어떤 맥락으로 무슨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했는지 그 풍부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 메시지를 읽는 데에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시를 읽을 때처럼 지식은 물론 감각을 동원해 은유와 상징을 읽어내는, 감각과 지성이 합쳐진 ‘감성’이 필요합니다.또한 그 해석에는 정답이 없고, 다만 해석을 제시하는 사람 나름의 논리가 있고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공명’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지금 미술관의 방식은 포스트모더니즘, 그 이후 세상이 펼쳐지는 양상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이렇게 ‘보이는 만큼 안다’의 방식은 테이트 모던뿐 아니라 최근 개관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권위 있는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은 물론 올해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그런데 모리스와의 대화에서 이러한 전시 방식은 단순히 방법론적 고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상적 뿌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 주 뉴스레터에서 이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내 최대 음반기획사 하이브의 자회사이자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 레이블인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사진) 측이 ‘풋옵션 과다 요구’ 논란에 대해 “차후 보이그룹 제작 가치를 반영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민 대표가 하이브에 본인이 소유한 어도어 지분 처분과 관련해 주주 간 계약 개정을 요구하며 어도어 지분 가치 책정 기준을 영업이익의 13배에서 30배로 요구했고, 이대로라면 민 대표의 지분 가치가 약 1000억 원에서 약 2700억 원으로 뛴다는 사실이 알려져 ‘과다 요구’ 논란이 일었다. 이날 민 대표 측은 30배수 요구에 대해 “주주 간 계약 변경 과정에서의 제안 중 하나일 뿐, 협상 우선순위도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하이브가 지난해 3월 민 대표에게 어도어 지분 10%를 스톡옵션으로 주기로 약속했으나 법률 자문 결과 상법상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 (상호) 신뢰 문제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 대표 측은 하이브가 ‘경영권 탈취 시도’ 증거로 제시한 문건의 작성자인 어도어 A 부대표는 정작 피고발인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올해 2월 민 대표 측은 대표이사 단독으로 ‘뉴진스의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하는 권한’을 요구했다가 하이브로부터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폐막식을 담은 영상. 이 영상에선 올림픽 마스코트인 곰 ‘미샤’가 색색 풍선에 매달려 허공으로 떠오른다. 공산권 첫 올림픽이었던 모스크바 올림픽은 냉전 갈등으로 60여 개국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반쪽짜리 올림픽’이 됐다. 때문에 영상 속 폐막식은 세계 평화와 화합이 돼야 할 축제가 쓸쓸하게 막을 내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영상의 배경 음악은 미국 가수 노라 존스의 ‘선라이즈’(2004년)다. 해당 영상의 작가는 “오래된 헤어진 연인을 기리기 위해 이 곡을 썼다”고 설명한다. 러시아에서는 구소련 시대에 대한 향수인 ‘소비에트 노스탤지어’를 상징하는 곰돌이 ‘미샤’가 작가에겐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바뀌는 현장.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한 ‘포에버리즘: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에서 볼 수 있는 캐나다 출신 작가 스티브 비숍의 작품 ‘스탠더드 발라드’의 내용이다. 일민미술관의 전시 ‘포에버리즘’은 비숍의 영상 작품처럼 ‘그리움’을 주제로 동시대 미술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기획의 글에서 윤율리 일민미술관 학예팀장은 “소셜미디어에서는 과거의 ‘하이라이트’를 모아 클릭 수를 높이고, 아이돌 그룹은 옛 대중문화를 끊임없이 리바이벌 한다”며 “그리움이 현재를 지배하는 유력한 감정이자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 전술이 되었다”고 밝힌다. 이런 맥락에서 전시는 박민하, 송세진, 윤영빈, 이유성, 정연두, 정 말러 등 국내외 작가 12팀의 작품 8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장 1층에서 비숍의 영상 다음으로 볼 수 있는 전다화의 대형 캔버스 작품 ‘나 같은 여자’(2024년)는 화장실 바닥에 지푸라기가 가득하고, 황새가 어리둥절한 듯 서 있는 풍경을 묘사한다. 작품의 원본은 2016년 미국 남부를 허리케인 매슈가 강타했을 때, 공중화장실로 숨어든 아프리카대머리황새를 촬영한 사진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커다란 캔버스에 그려 넣고 ‘나 같은 여자’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작가는 재난 현장 사진 속 황새를 자신의 일상 속 감정에 대한 은유로 바꾼다. 또 전시장 2층에서 볼 수 있는 이유성의 조각 ‘약사여래입상’은 작가 자신과 가까운 지인들의 몸을 석고로 뜬 다음 표면에 동료가 그린 드로잉을 덧붙였다. 역시 ‘약사여래입상’이라는 이미지가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 온 역사적인 의미는 제거한 채 껍데기만 가져와 차용한 형태다. 일련의 작품을 통해 전시는 현대 사회가 느끼는 ‘노스탤지어’에 실체가 있는 것인지를 되묻는다. 비숍이 그리움의 상징으로 내세운 ‘미샤’와 전다화가 감정 이입한 ‘아프리카대머리황새’가 작품과 현실에서 전혀 다른 맥락의 의미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현실보다 더 친밀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리워하는 현상을 문화비평가 그래프턴 태너는 ‘영원주의’라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의 포에버리즘, ‘영원주의’는 여기서 차용했다. 2023년 태너가 출간한 단행본 ‘포에버리즘’은 6월 중 한국어 번역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일민미술관은 이 책을 토대로 같은 달 번역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교육 프로그램 ‘역자후기30’을 개최한다. ‘포에버리즘’을 번역한 작가 김괜저가 참여한다. 5월에는 참여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아티스트 토크’도 열린다. 6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34)가 2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으로 팝의 역사를 새로 썼다.29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지에 따르면 스위프트의 새 앨범 ‘더 토처드 포이츠 디파트먼트‘(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수록곡 전곡(14곡)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크 ‘핫 100’에서 1위부터 14위까지 순위를 싹쓸이했다. 앞서 스위프트는 직전 앨범인 ‘미드나이츠(Midnights)’로 팝 역사상 첫 ‘핫 100’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휩쓰는 유일한 기록을 세운 바 있는데, 이번 앨범을 통해 또 한 번 새 기록을 쓰게 됐다. 스위프트는 자신이 세운 기록행진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스위프트는 빌보드 핫100 차트 기록이 발표된 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해당 기사를 링크하며 “너는 너 스스로를 뛰어넘었다, 이것은 믿기지 않는다”고 썼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하이브와 자회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 간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까지 치달으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양측 간에 ‘노예 계약’ ‘경영권 찬탈’ ‘표절 시비’ 등 자극적인 단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최근까지 이어진 갈등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결국 ‘돈’, 보상 문제가 문제의 씨앗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민희진 갈등 원인은 ‘보상 문제’ 29일 엔터테인먼트와 법조계에 따르면 하이브와 민 대표는 지난달까지 대리인을 통해 주주 간 재계약 협상을 진행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하이브는 김앤장, 민 대표는 세종을 선임해 협상을 펼쳐왔다. 이 과정에서 어도어의 지분 가치 산정을 두고 양측에서 팽팽하게 대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브는 지난해 3월 어도어 지분 20%를 약 35억 원에 민 대표 측에 양도하는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민 대표는 2% 지분을 어도어 직원들에게 배분하면서 지분이 18%로 줄었다. 매매 계약 때만 해도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민 대표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등 협력 관계가 유지됐다. 하지만 민 대표가 지난해 12월 어도어 지분 처분과 관련한 주주 간 계약 개정을 요구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시작됐다. 계약서상 민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 13.5%를 풋옵션을 통해 하이브에 넘길 수 있었는데, 이때 어도어 기업 가치를 책정하는 기준을 상향해줄 것을 요청했다. 최초 계약은 영업이익의 13배가 기업 가치 책정 기준이었지만, 이를 영업이익의 30배로 바꿔 달라고 한 것이다. 이 같은 요구대로 개정될 경우 1000억 원 안팎이던 민 대표의 지분 가치는 2700억 원가량으로 불어나게 된다. 민 대표는 또 남은 4.5%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할 때 반드시 하이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어도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창업할 수 없는 ‘경업(競業) 금지’ 조항을 근거로 노예계약과 다름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하이브 측은 4.5% 지분 처분에 대해서는 풋옵션 행사가 가능하도록 개정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기업 가치 책정 기준 상향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면서 양측의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민희진, 어도어 이사회 소집 불응 이달 초 민 대표가 하이브 산하 레이블 사이의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내부 고발에 나섰고, 이후 양측의 분쟁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하이브는 22일 민 대표가 경영권 찬탈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정황을 확보했다면서 자체 감사에 돌입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이에 민 대표는 즉각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반박에 나서는 등 양측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날 하이브에서 요청한 어도어의 이사회 개최가 무산되면서 양측의 공방은 법정 분쟁으로까지 번지게 됐다. 하이브는 민 대표 측에 30일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민 대표는 거절했다. 이사회를 통해 민 대표 해임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반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브는 25일 어도어 이사회 소집 무산에 대비해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을 법원에 접수시킨 상태다. 하이브는 민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르면 6월 말 임시 주총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두 달간 양측의 공방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 대표 측도 하이브와 관련한 폭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분쟁을 통해 하이브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주주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양측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하이브의 주가는 10% 넘게 빠졌다. 다만 29일 하이브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74% 오른 20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주주 간 계약주주들 사이에 체결하는 계약으로 주식 매매 조건, 가격, 향후 처분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풋옵션주식 등 자산을 시장 가격에 상관없이 특정 시기에 특정한 조건에서 팔 수 있는 권리.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사진)가 19일(현지 시간) 발표한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가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28일 빌보드에 따르면 스위프트의 11번째 앨범인 ‘The Tortured…’는 일주일 동안 앨범 261만 장에 해당하는 유닛이 소비됐다. 빌보드 200은 실물 앨범 판매량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SEA),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TEA)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The Tortured…’의 실물 앨범 판매량은 191만4000장으로 비욘세의 ‘카우보이 카터’(22만8000장)를 제치고 올해 최다 판매 앨범에 올랐다. 스위프트는 이번 앨범까지 총 14장을 ‘빌보드 200’ 1위에 올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하이브와 자회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 간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까지 치달으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양측 간에 ‘노예 계약’, ‘경영권 찬탈’, ‘표절 시비’ 등 자극적인 단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최근까지 이어진 갈등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결국 ‘돈’, 보상 문제가 문제의 씨앗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민희진 갈등 원인은 ‘보상 문제’29일 엔터테인먼트와 법조계에 따르면 하이브와 민 대표는 지난달까지 대리인을 통해 주주간 재계약 협상을 진행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하이브는 김앤장, 민 대표는 세종을 선임해 협상을 펼쳐왔다. 이 과정에서 어도어의 지분 가치 산정을 두고 양측에서 팽팽하게 대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브는 지난해 3월 어도어 지분 20%를 약 35억 원에 민 대표 측에 양도하는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다. 민 대표는 2% 지분을 어도어 직원들에게 배분하면서 지분율이 18%로 줄었다. 매매 계약 때만 해도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민 대표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등 협력 관계가 유지됐다. 하지만 민 대표가 지난해 12월 어도어 지분 처분과 관련한 주주간 계약 개정을 요구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시작됐다. 계약서상 민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 13.5%를 풋백옵션을 통해 하이브에 넘길 수 있었는데, 이때 어도어 기업 가치를 책정하는 기준을 상향해줄 것을 요청했다. 최초 계약은 영업이익의 13배가 기업 가치 책정 기준이었지만, 이를 영업이익의 30배로 바꿔 달라고 한 것이다. 이 같은 요구대로 개정될 경우 1000억 원 안팎이던 민 대표의 지분 가치는 2700억 원가량으로 불어나게 된다.민 대표는 또 남은 4.5%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할 때 반드시 하이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어도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창업할 수 없는 ‘경업(競業)금지’ 조항을 근거로 노예계약과 다름없다고 주장한 것이다.이에 대해 하이브 측은 4.5% 지분 처분에 대해서는 풋백옵션 행사가 가능하도록 개정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기업 가치 책정 기준 상향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면서 양측의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 민희진, 어도어 이사회 소집 불응이달 초 민 대표가 하이브 산하 레이블 사이의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내부 고발에 나섰고, 이후 양측의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이브는 22일 민 대표가 경영권 찬탈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정황을 확보했다면서 자체 감사에 돌입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이에 민 대표는 즉각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반박에 나서는 등 양측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이날 하이브에서 요청한 어도어의 이사회 개최가 무산되면서 양측의 공방은 법정 분쟁으로 까지 번지게 됐다. 하이브는 민 대표 측에 오는 30일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민 대표는 거절했다. 이사회를 통해 민 대표 해임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반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브는 25일 어도어 이사회 무산에 대비해 임시 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을 법원에 접수한 상태다. 하이브는 민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르면 6월 말 임시 주총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두 달 간 양측의 공방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 대표 측도 하이브와 관련한 폭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분쟁을 통해 하이브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주주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양측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하이브의 주가는 10% 넘게 빠졌다. 다만 29일 하이브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74% 오른 20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태어나서 직업은 딱 하나 가수였다.서운해할 때 떠난다. 진짜 고마웠다”“노래하는 동안 대통령 11번 바뀌었다. 이젠 뉴스 안 본다 (정치인) 하는 짓거리가 가당찮다.”“북쪽(북한)은 이상한 집단이지나라가 아니다 (북한이) 치고 싶어도칠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 나훈아 27일 인천 콘서트 중에서》 “안 가본 데, 가볼 기다. 안 묵어 본 거, 묵어 볼 기다. 다리 멀쩡할 때, 내 하고 싶은 거 다 할 깁니다.” ‘가황’ 나훈아(77)가 데뷔 58년 만의 은퇴를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공식화했다.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전국 투어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에서였다. 그는 “(은퇴 이후엔) 피아노 앞에 앉지도, 기타도 만지지 않을 것”이라며 “살짝 옆눈으로도 연예계 쪽은 쳐다도 안 볼 것”이라고 했다. 이곳저곳에서 “안 돼∼”라는 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훈아는 초대 가수 없이 혼자서 2시간 40분 동안 22곡을 열창하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 ‘日건강검진표’ 공개, 건강이상설 일축도 앞서 나훈아는 2월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편지와 함께 전국 투어 일정을 공개했다. 다만 은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어 ‘은퇴 시사’라는 추측도 있었다. 나훈아는 이날 “은퇴라는 말은 밀려가는 것 같아 싫어 쓰지 않았다”며 “아직 할 수 있지만 마이크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나훈아는 ‘고향역’과 ‘18세 순이’ 등 여섯 곡을 부르며 매번 옷을 갈아입었다. ‘18세 순이’를 부를 때는 분홍색 망사 상의와 주름치마라는 파격적 의상을 입었다. 무대 위에서 반투명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탈의하는 ‘퍼포먼스’에는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오늘 여러분이 본전 생각나지 않도록 옷을 15번 갈아입겠다. 노래도 흘리지 않고 한 소절 또박또박 지키며 하겠다”고 했다. ‘체인지’ ‘홍시’ ‘무시로’ ‘테스형’ 등 히트곡과 최신곡을 번갈아 열창했다. 그는 1997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끌어안고 노래했던 위문 공연은 “가장 기억에 남는 가슴 뭉클한 공연”이라고 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쳐 협박을 받았던 1996년 일본 오사카에서 연 슈퍼콘서트는 “목을 걸어 놓고 했던 공연”이라고 했다. 또 ‘앙코르’ 대신 우리말인 ‘또!’를 외쳐 달라, ‘트로트’라는 일본식 표현 대신 ‘전통 가요’라고 하자고도 했다. 나훈아는 건강 이상설을 의식한 듯 “2월 스물다섯 가지 피검사를 했다. (너무 건강해) 의사가 깜짝 놀랐다”며 일본어로 된 건강검진표를 공개하기도 했다. ●‘훈아답게 살다가 간다’ 팬들의 아쉬움은 짙었다. 객석에는 ‘기장 갈매기는 날아야 한다’ ‘은퇴는 국민 투표로’ ‘은퇴 빠꾸다’라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나훈아는 후렴구인 ‘띠리’가 나올 때마다 만담을 하는 노래 ‘공’을 부르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요새 정치하는 것들 짓거리가 가당찮으니 국회의사당을 향해 ‘띠리’를 외치자”거나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혼자서 결정하는 이상한 집단인 북한을 향해 ‘띠리’를 외치자”며 세태 풍자도 잊지 않았다. 피날레를 장식한 곡 ‘사내’를 부르기 전에는 팬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며 북받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진짜!”라고 한 다음 눈물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사내’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말미의 ‘사내’를 ‘훈아’로 바꿔 “훈아답게 살다가/훈아답게”라고 바꿔 부르더니 관객에게 다음 소절인 “갈 거다”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드론에 마이크를 띄워 보냈다. 그는 무릎 꿇고 관객에게 절을 올린 뒤 퇴장했다. 나훈아는 7월까지 전국 투어를 이어간다. 올 하반기에도 추가 공연이 예정돼 있다. ‘진짜 마지막 공연’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인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사진)가 2년여에 걸친 친부와의 법적 분쟁을 마무리했다. 2021년 아버지의 후견인 자격을 박탈한 데 이어 그동안의 소송 비용을 최근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27일(현지 시간) 외신 보도들에 따르면 스피어스가 친부와의 소송에 따른 변호사 비용으로 약 200만 달러를 아버지 측에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14년간 지속된 친부의 후견인 역할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끝났다. 앞서 스피어스가 약물 중독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2008년부터 법정 후견인으로 지명된 친부 제이미가 딸의 재산과 의료, 세금 문제 등을 관리해왔다. 이후 스피어스는 2021년 6월 “난 노예가 아니고 내 삶을 되찾고 싶다”며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 박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스피어스는 법원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통제하며 피임이나 정신질환 치료제 복용 등을 강제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법원은 2021년 11월 스피어스에 대한 후견인 제도 적용을 종료하는 결정을 내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안 가본 데, 가볼 기다. 안 묵어 본 거, 묵어 볼 기다. 다리 멀쩡할 때, 내 하고 싶은 거 다 할 깁니다.” ‘가황’ 나훈아(77)가 데뷔 58년 만의 은퇴를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공식화했다. 27일 인천 연수구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전국투어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에서 였다. 그는 “(은퇴 이후엔) 피아노 앞에 앉지도, 기타도 만지지 않을 것”이라며 “살짝 옆 눈으로도 연예계 쪽은 쳐다도 안 볼 것”이라고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안돼~”라는 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훈아는 초대 가수 없이 혼자서 2시간 40분 동안 22곡을 열창하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日건강검진표’ 공개, 건강이상설 일축도 앞서 나훈아는 2월 ‘마이크를 내려 놓는다’는 편지와 함께 전국 투어 일정을 공개했다. 다만 은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어 ‘은퇴 시사’라는 추측도 있었다. 나훈아는 이날 “은퇴라는 말은 밀려가는 것 같아 싫어 쓰지 않았다”며 “아직 할 수 있지만 마이크를 내려 놓는 것”이라고 했다. 나훈아는 ‘고향역’과 ‘18세 순이’ 등 여섯 곡을 부르며 매번 옷을 갈아 입었다. ‘18세 순이’를 부를 때는 분홍색 망사 상의와 주름치마라는 파격적 의상을 했다. 무대 위에서 반투명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탈의하는 ‘퍼포먼스’에는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오늘 여러분이 본전 생각나지 않도록 옷을 15번 갈아입겠다. 노래도 흘리지 않고 한 소절 또박또박 지키며 하겠다”고 했다. ‘체인지’, ‘홍시’, ‘무시로’, ‘테스형’ 등 히트곡과 최신곡을 번갈아 열창했다. 그는 1997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끌어안고 노래했던 위문 공연은 “가장 기억에 남는 가슴 뭉클한 공연”이라고 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쳐 협박을 받았던 1996년 일본 오사카에서 연 슈퍼콘서트는 “목을 걸어 놓고 했던 공연”이라고 했다. 또 ‘앵콜’ 대신 우리말인 ‘또!’를 외쳐 달라, ‘트로트’라는 일본식 표현 대신 ‘전통 가요’라고 하자고도 했다. 나훈아는 건강 이상설을 논란을 의식한 듯 “2월 스물다섯 가지 피검사를 했다. (너무 건강해) 의사가 깜짝 놀랐다”며 일본어로 된 건강검진표를 공개하기도 했다. ●‘훈아답게 살다가 간다’ 팬들의 아쉬움은 짙었다. 객석에는 ‘기장 갈매기는 날아야 한다’ ‘은퇴는 국민 투표로’ ‘은퇴 빠꾸다’라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나훈아는 후렴구인 ‘띠리’가 나올 때마다 만담을 하는 노래 ‘공’을 부르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요새 정치하는 것들 짓거리가 가당찮으니 국회의사당을 향해 ‘띠리’를 외치자”거나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혼자서 결정하는 이상한 집단인 북한을 향해 ‘띠리’를 외치자”며 세태 풍자도 잊지 않았다. 피날레를 장식한 곡 ‘사내’를 부르기 전에는 팬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며 북받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진짜!”라고 한 다음 눈물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사내’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말미의 ‘사내’를 ‘훈아’로 바꿔 “훈아답게 살다가/훈아답게” 바꿔 부르더니 관객에게 다음 소절인 “갈 거다”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드론에 마이크를 띄워 보냈다. 그는 무릎 꿇고 관객에 절을 올린 뒤 퇴장했다. 나훈아는 7월까지 전국투어를 이어간다. 올 하반기에도 추가 공연이 예정돼 있다. ‘진짜 마지막 공연’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