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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축구국가대표 최성국 등을 협박해 국내 프로축구 사상 최대 파문을 일으켰던 2010년 프로축구 승부 조작 사건의 주범이 이에 앞서 국내 축구단을 인수해 승부 조작에 이용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사설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던 A 씨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성국의 승부 조작 사건을 일으켰던 브로커 J 씨와 중국인 H 씨가 한국 프로축구 N리그 소속 S구단을 인수해 승부 조작으로 돈을 벌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투자를 권유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또 “당시 J 씨가 S구단 선수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승부 조작을 지시했다고 말했다”며 “J 씨는 H 씨와 함께 중국에 있는 베팅 사이트에서 경기 결과를 놓고 베팅을 해 큰돈을 벌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N리그는 국내 프로축구 3부 리그에 해당하는 리그로 S구단은 2010년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N리그에서 퇴출됐다. 이에 대해 2009년 S구단의 단장 겸 감독이었던 최모 씨는 “실제 구단 인수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J 씨가 여러 차례 구단 인수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H 씨와 J 씨는 이어 2010년 중국인 W 씨 등과 함께 당시 상무 소속이었던 최성국에게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패할 것을 지시했지만 무승부가 되자 최성국을 찾아가 “자살골이라도 넣으라”고 협박해 결국 다음 경기에서 상무가 0-2로 패하도록 승부를 조작했다. 중국 자금이 한국의 승부 조작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최근 스포츠도박 사이트들이 중국에 서버를 두고 활동하면서 이들과 중국 자금의 결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또한 승부 조작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스포츠도박단에 관여하고 있는 B 씨는 “요즘에는 전문직, 연예인 등이 전주 노릇을 하는데 이들은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마치 주식 매매를 대신하는 펀드 매니저를 고용하는 것처럼 도박사들에게 5억∼10억 원을 맡기고 뒤에서 수익을 얻는다”며 “전주들이 직접 선수들에게 협박까지 했던 몇 년 전과는 180도 다르다”고 전했다. 유재영 elegant@donga.com·이원홍 기자}

가슴에 죄인의 낙인처럼 새겨진 주홍글씨는 지울 수 없는 것일까. 수많은 빛과 그림자를 남긴 채 올림픽이 끝났다.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빛나는 조명과 환호 속에 무대를 내려온 선수가 있는가 하면 출전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거나 패배의 어둠 속에 퇴장한 선수도 있다. 그 강렬한 명암의 대비 한가운데 박태환이 있다. 8년 전 8월 10일 베이징 하늘엔 간간이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몸이 무거워지는 박태환은 경기에 대한 긴장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였다. 1시간 정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태환은 이날 생애 최고의 역영을 펼치며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수영 사상 최초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따내며 역사적 영웅이 되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를 보던 부모는 감격에 목이 메었다. 2년 뒤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또 다른 전설이 될 김연아도 박태환의 미니홈피에 ‘오빠 대박’이라는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기자회견장에서 박태환에 대한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일본 기자가 푸념하던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국민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박태환은 경기를 중도 포기하고 귀국했다.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와 200m 예선에서의 성적은 최하위에 가까웠으며 예정됐던 1500m에는 출전조차 하지 않았다. 한 차례 약물 파동을 일으켰던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뒤 어렵게 올림픽에 출전한 상태였다. 그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약물 관련 전과를 비난하는 내용과 함께 경기를 포기한 투혼의 상실을 지적한 내용이 많았다. 그와 관련한 뉴스에는 ‘약해지지 말자’ ‘약한 사람 아니야’ 등의 ‘약’자가 들어가는 댓글이 유행했다.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하면서 ‘약’이라는 말을 넣어 교묘하게 조롱한 것이다. 누군가의 몰락을 보는 건 운명의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운명은 자비롭지도 잔인하지도 않고 그저 무심할 뿐이며 그 몰락과 성패의 원인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성공의 가능성뿐 아니라 참혹한 실패의 가능성이 똑같이 열려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분명 등골이 시린 일이다. 우리는 모두 실패할 수 있다. 팬들이 박태환에게 강한 비난을 쏟아낸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망가진 공정성에 대한 강한 욕구 때문일 거라고 본다. 공정한 경쟁이 생명인 스포츠에서마저도 약물 등의 편법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데 대한 거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경위야 어찌 됐든 박태환이 약물을 사용했던 사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고의든 아니었든 부주의한 약물 사용은 그의 운명을 처참하게 망가뜨렸다. 그러나 선수가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그는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 한 명의 젊은이일 뿐이다. 선수로서의 과오가 크다 하더라도 그에게 남은 인간적인 삶까지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약물 파동 이전에 그가 열악한 한국 수영계의 환경을 딛고 세웠던 공로는 지워지지 않는다. 박태환이 언제 다시 팬들의 가슴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가 팬들의 가슴속에 돌아오려면 팬들이 분노했던 바로 그 부분에 대한 진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약물과 편법이 아닌 진정한 땀의 가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 가장 괴로울 사람은 박태환 본인이다. 고통을 통과해 본 자는 진실을 느낄 수 있다. 삶의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이면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받은 자의 진정성으로 진심을 다한다면 그의 마음도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그것이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올림픽에서는 엽기적인 사건도 많이 발생했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려고 속임수를 쓰다 일어난 사건이 많았다. 1960년 로마 올림픽 근대5종 단체전 경기에서였다. 근대5종은 수영 승마 펜싱 사격 크로스컨트리(육상)를 함께 치르는 종목이다. 튀니지 대표팀과 상대하던 선수들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펜싱 경기에 나선 튀니지 선수들의 경기가 너무 똑같았던 것이다. 알고 보니 튀니지 대표팀 선수 3명 중 1명이 다른 2명을 대신해 경기를 했다. 펜싱 경기에는 마스크를 쓰고 나서는 점을 이용했다.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들켰고 실격 처리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 1600m 계주에 나설 예정이던 푸에르토리코의 마델리네 데 헤수스는 대회 도중 부상으로 경기를 하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자신을 응원하러 온 쌍둥이 자매를 몰래 경기에 내보냈다. 푸에르토리코 여자 대표팀은 결선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코치가 상황을 알아채고 사태가 커지기 전에 팀을 결선에서 철수시켰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여자 높이뛰기에 출전했던 독일의 도라 라트옌은 4위를 한 뒤 2년 뒤에는 세계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였다. ‘그녀’를 수상하게 여긴 동료들로 인해 그의 정체가 밝혀졌고 기록은 삭제됐다. 경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벌어진 사건도 많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태권도 80kg 초과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쿠바의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킥을 날려 쓰러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외적인 이유로 올림픽을 이용하려 한 사건도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마라톤 선두를 달리던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가 결승점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37km 지점에서 닐 호런이라는 괴한의 습격을 받아 쓰러졌다. 호런은 “세상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다 같이 춤을 추자”고 주장해 왔다. 호런은 춤이야말로 사람들을 평화로 이끌 수 있다며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호런은 올림픽 이전에도 시속 250km가 넘는 자동차 경주장에 뛰어들어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호런 자신은 세계 평화를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이런 사건을 일으켰지만 자신의 주장을 위해 올림픽을 방해했다. 리마는 결국 3위에 그쳤고 브라질은 금메달을 도둑맞았다며 분노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의 올림픽이 마주한 현실에 비하면 과거의 이런 사건들은 어쩌면 소극(笑劇)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성적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자매를 대신 출전시키거나 다른 선수를 대리 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러시아의 예에서처럼 국가가 개입하는 대규모 도핑 사태로 번졌다.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신선한 피를 새로 수혈받거나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는 기괴한 행위들이 적발되고 있다. 춤으로 세계 평화를 이끌어내자는 주장은 돌이켜 보면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은 대규모 테러의 공포 아래 놓여 있다. 테러는 합리적인 소통을 거부한 채 일방적인 메시지만을 강요하는 가장 야만적인 형태의 폭력이다. 올림픽에 대한 다양한 위협은 역설적으로 올림픽의 광대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은 “올림픽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위한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올림픽 참가자는 성실성과 도덕성, 그리고 타락한 욕망의 유혹을 물리칠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요소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이런 점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전사들이기도 하다. 6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개막한다. 당당히 싸우고 돌아오라.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9년 전 크리스마스에 형은 쓰러졌다.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거나 선물을 주고받던 그날, 형은 경기에 나섰다. 생의 도전이 멈추게 될 줄 모른 채. 그 순간 동생이 곁에 있었다. 형의 이름을 빛내고 기억하기 위한 동생의 오랜 노력이 이어졌다. 형의 뜻을 이은 동생에 의해 형제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는 승화되어 새로운 의미를 남기고 있다. 2007년 12월 25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털 플라이급 타이틀 매치에서 챔피언 최요삼은 마지막 12라운드 종료 10초를 남기고 도전자 헤리 아몰(인도네시아)의 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최요삼은 일어섰다. 두 주먹을 들어올리며 경기를 계속할 뜻을 밝혔다. 주심은 경기 재개를 선언했고 종이 울려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최요삼은 경기가 끝나자 다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마치 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투혼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를 붙잡고 있었던 것처럼. 경기에서는 판정승했지만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 한 차례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내려 온 뒤 다시 챔피언이 되기 위해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극한의 훈련을 계속했던 그였다. 최요삼은 2008년 1월 6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많은 국민을 울렸다. 한편으로는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최요삼이 세계복싱평의회(WB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실이 국내에 뒤늦게 알려졌다. 최요삼은 WBO 챔피언이 되기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라 3차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 선수가 WB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WBC 라이트 플라이급 15차 방어에 성공했던 장정구에 이어 두 번째다. WBC에 따르면 최요삼이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것은 2009년이다. 그런데 왜 국내에는 이제야 알려졌을까. 최요삼이 WB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실을 국내에서 처음 밝힌 사람은 최요삼의 친동생이자 매니저였던 최경호 Y3복싱클럽 대표(40)다. 그는 형이 쓰러질 당시 매니저로서 형의 곁에 있었다. 그는 어머니 오순이 씨(72)와 함께 형의 뇌사 판정을 받아들이고 사망에 동의하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었다.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평소 WBC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왠지 들어가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예의 전당 코너 초기 화면에는 형의 이름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상세 검색을 해 보니 형이 이미 명예의 전당 회원으로 되어 있었어요. 정말 기뻤죠.” WBC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최요삼에게 명예의 전당 회원 자격을 주었지만 관리 소홀로 정작 관련 사이트에는 그의 이름이 게재되지 않으면서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알아내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알아냈겠죠. 하지만 이 사실이 더 늦게 알려졌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내년쯤 아시아 지역에서 WBC 총회가 열리게 되면 형의 명예의 전당 입회 기념행사를 할 생각입니다. WBC 측에서도 총회 기간에는 언제든 기념행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갑자기 명예의 전당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된 것에 대해 “형이 암시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형이 죽은 후 복싱계를 떠났다가 복귀한 그는 “내가 복싱 관련 일을 다시 하게 된 것도 형의 영향 때문이었다. 사고 후 몇 년이 지났을 때인데, 꿈에 형이 나타나서 ‘너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래. 복싱 관련 일을 해라. 네가 갈 길은 복싱이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꿈에서 형의 말을 들은 그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고 했다. 형이 죽은 후 쇼핑몰 관련 회사에 다니던 그는 복싱계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꿈에서 형을 만난 후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고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정말로 복싱 관련 일을 해야 하나. 침체기에 있는 복싱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했어요. 반면 당시 직장에서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고 있었지요. 현실에 안주해야 하나….” 부인이 큰아들을 낳고 둘째 아들을 임신했을 때였다. 그러나 결국 형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제 나이 30대 후반이었어요. 더 늦으면 다시는 제가 좋아했던 복싱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심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눈에 밟히는 사람이 아내와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는 퇴직금 등으로 마련한 돈으로 아내에게 1년 치 생활비를 주고 난 뒤 복싱계에 뛰어들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번 해보고 싶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처자식이 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중에 돈도 없었어요. 하지만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삼이 형이 나를 보고 있다면 도와줄 것이라 믿었어요.” 그는 전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이었던 유명우 한국권투연맹(KBF) 실무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해 주신다면 같이 프로복싱을 위해 노력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 부회장이 이끌던 버팔로프로모션에 합류해 본부장으로 일하게 된 그는 “별다른 월급은 받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제2의 유명우 장정구 최요삼을 키우려는 꿈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다. 버팔로프로모션은 국제복싱연맹(IBF) 슈퍼밴텀급 아시아 챔피언인 김예준을 비롯해 국내 유망주들을 발굴해 육성하고 있다. 최 씨는 버팔로프로모션에서 복싱 관련 활동을 재개한 데 이어 많은 노력 끝에 2014년 12월 형의 이름을 딴 Y3복싱클럽을 개관했다. 요즘은 관원들에게 직접 스파링을 해주고 있다. 많을 때는 연이어 20명의 스파링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날은 온몸이 녹초가 된다. 그럴 때면 땀범벅 속에서도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입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형 생각 때문이다. “스파링 도중 맞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형 이렇게 힘들었구나. 이렇게 힘들었을 텐데 왜 말리지 못했을까…. 형은 스파링 훈련을 할 때 아무리 힘들어도 ‘야 괜찮아 괜찮아 올라와’라고 했어요. 계속 링 위에 올라 자신과 스파링을 해달라고 했어요. 그 기억이 날 때면 ‘나도 여기서 한번 죽어보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스파링 대기자가 줄을 서 있어도 전부 올라오라고 합니다.” 생전의 최요삼은 쇼맨십도 강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풍겼지만 그의 내면에도 고독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가 사경을 헤맬 때 공개된 그의 일기에는 “이제는 끝내고 싶다 권투를…. 맞는 게 두렵다”고 적혀 있었다. 1999년 WBC 챔피언에 올랐지만 경기 침체와 복싱 인기의 하락으로 인해 방어전 일정을 잡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일기에는 “나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 생각난다. 권투도 나를 버릴까” “외로움이 너무나 무섭다. 너무나. 더 외로워야 할까”라는 구절도 있었다. “벼랑 끝 승부라고 생각하겠다. 나는 밀리면 죽는다”며 경기에 대한 각오와 절박함을 드러냈던 그였지만 “저 푸른 초원 위에 예쁜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제는 피 냄새가 싫다… 내일이 두렵다”고 적었었다. 35세로 사망한 최요삼은 미혼이었다. 최 씨는 “요즘도 형과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듣던 음반을 가끔 듣는다. 가사가 참 슬픈 게 많다. 그때는 형에게 ‘왜 이렇게 슬픈 노래를 듣느냐’고 했지만 이제는 형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최 씨 자신도 삶이 힘들어 소주 한잔 마시고 혼자 눈물 흘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건 어쩌면 모든 가장(家長)들에게 공통된 게 아닐까. 링 위냐 링 밖이냐의 문제일 뿐 외롭고 치열하게 싸우는 건 모두 비슷할 거라고 본다”고 했다. 형은 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형님이 24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세 살 터울인 요삼이 형과 저는 6남매 중의 다섯째와 여섯째였어요. 어릴 때 형에게 맞은 기억이 많아요. 아버지 돌아가신 후 형과 더 친해졌지요.” 최요삼은 권투를 해서 번 돈으로 프로골퍼 지망생이었던 동생을 뒷바라지했다. “나는 (매)맞는 운동을 하지만 너는 좋은 운동을 해라”던 형이었다. 최요삼은 집안의 기둥이었다. 최요삼은 세계챔피언에 도전하기 위해 합숙훈련을 하면서 동생에게 매니저 역할을 부탁했다. 이후 형제는 링 안팎의 고락을 함께했다. 형이 “신발 좀 화려하게 만들어 봐라”고 하면 동생이 동대문시장에서 각종 재료를 구해 신발에 꿰매어 꾸미기도 했다. 옷감을 끊어다 경기에 입고 나갈 형의 옷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최요삼이 체력훈련과 체중 감량의 고통에 힘겨워하며 잠을 못 이룰 때면 함께 밤을 새웠던 동생이었다. 최 씨가 매니저 역할을 맡았지만 주요 결정은 최요삼이 많이 내렸다. “형은 갈까 말까 망설일 바에는 가는 게 낫다는 스타일이었어요. 형의 결정을 따르면서 저도 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습니다. 형은 오늘의 저를 만들어준 존재입니다.” Y3복싱클럽은 서울에 3곳, 경남 김해에 1곳이 있다. 그는 “이 체육관 모두를 내가 출자해서 만든 건 아니다. 4곳 중 2곳은 같이 운동했던 후배들이 Y3라는 이름으로 체육관을 내고 싶다고 해서 개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Y3복싱클럽 본관 벽에는 최요삼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그의 꿈은 Y3복싱클럽을 10개 정도로 확장해 전국에서 문을 여는 것이다. “저는 없어질 수 있지만 Y3복싱클럽은 계속 남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저는 기억하지 못해도 요삼 형은 오랫동안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Y3복싱클럽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국내 복싱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결국 복싱 인구가 많아져야 복싱이 부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체육관에서 복싱을 익히는 사람들 중에는 의사 판사 등 엘리트 인사들도 많다고 했다. 최근 복싱클럽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다이어트와 건강증진 효과를 보려는 이들이 많다. 그는 “복싱이 더 이상 헝그리 스포츠로만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요삼이 떠난 이후 최요삼 추모 복싱대회를 2년 전까지 개최했다. 이제는 최요삼의 정신을 이어받은 선수들을 배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최요삼 정신’에 대해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이겨야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 수백 km의 로드워크와 함께 혹독한 체력훈련을 했던 최요삼의 모습이 떠올랐다. 형의 죽음 이후 동생의 많은 활동은 형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생은 다시 형이 쓰러지던 그날을 회상했다. “경기를 정리하고 형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뇌사’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형 이렇게 가려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은 저를 강하게 키웠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형 내가 멋있게 보내주고, 내가 살아 있는 한 형 이름이 영원히 남을 수 있게 그렇게 한번 해볼게’라고요. 내가 안 해도 누군가 그런 활동을 했겠지요. 하지만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존경하는 형이었기 때문에 형을 잊지 않고 살려는 것이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최 씨는 덧붙였다. “언젠가 형을 만나겠지요. 사후세계에서든 꿈에서든. 이제는 형을 다시 만나도 떳떳할 거 같아요.”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마라도나 기원(紀元) 56년 7월 11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포르투갈)는 그라운드 위에 주저앉아 울었다. 마라도나 기원은 아르헨티나의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를 신(神)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들은 마라도나의 출생 연도인 1960년을 원년으로 삼고 있다. 2016년인 올해는 마라도나 기원 56년이 되는 셈이다. 축구광들을 중심으로 1998년 아르헨티나에서 창시된 ‘마라도나교’의 신도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마라도나야말로 신이 인간의 육체를 빌려 태어난 존재라고 여긴다. 호날두가 눈물을 흘린 것은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우승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전반전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자 안타까워 울었고 경기가 끝난 뒤엔 우승 감격 때문에 울었다. 이날은 76세의 축구황제 펠레(브라질)가 34세 연하의 일본계 브라질 여인과 생애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이었다. 호날두의 눈물 위에는 어쩔 수 없이 마라도나와 펠레의 모습이 짙게 떠오른다. 호날두가 그토록 원했던 메이저 대회(월드컵과 대륙선수권) 트로피는 그로 하여금 마라도나와 펠레로 상징되는 축구계의 ‘신’과 ‘황제’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167cm의 단신이었던 마라도나는 신체의 무게중심이 낮았다. 이를 이용한 안정적인 드리블이 장점이었고 강한 슈팅과 패스 능력을 겸비했다. 펠레는 양발 사용 능력 및 점프력을 비롯한 전체적인 운동 능력이 뛰어났다. 기술적인 면으로만 보면 호날두의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29·아르헨티나)가 마라도나와 펠레보다 낫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메시는 드리블 능력과 좁은 공간에서의 볼 컨트롤 능력이 높이 평가받는다. 호날두(185cm)는 메시(170cm)보다 큰 키를 이용한 제공권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보여 왔다. 팬들이 마라도나와 펠레를 추앙한 것은 혼자의 힘으로 경기의 흐름과 상황을 바꾸며 대회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 때문이었다. 과감함, 직관력과 창의력, 카리스마가 결합되어 나타난 이 능력은 마라도나에게 1986년 월드컵 우승컵을 안겨 주었고 펠레에게는 1958년, 1962년, 1970년 3차례의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호날두와 메시에게는 바로 이러한 능력이 마라도나와 펠레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고 그들의 국가대표팀을 한 번도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이끈 적이 없었다는 점이 그 증거로 거론됐다. 팬들은 이들을 비교하며 누가 가장 위대한 선수인가를 놓고 자주 격론을 벌인다. 그러나 기록과 업적으로만 선수를 평가하고 응원해야 하는가. 축구를 보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즐겁기 위해서다. 축구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주자는 것은 세계 각국의 축구협회가 내건 목표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계기에 따라 각자 응원하는 선수는 다를 수 있다. 이러한 계기는 승패를 떠나 다양하게 존재한다. 우리의 마음은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와 희생의 과정에서도 움직인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마라도나와 펠레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패배 속에 있던 주변의 많은 선수를 응원할 수 있다. 그것은 축구라는 무대를 떠난 인생극장 속에서도 우리가 업적과 재력 혹은 그 어떤 권력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때로는 감동과 애정이 그 어떤 위업을 나타내는 수치보다 소중할 때가 있다. 아무리 배운 것 없고 지위가 낮아도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것처럼. 혹은 아무리 고난에 처해 있어도 우리가 우리의 친구들을 응원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생의 어떤 순간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선수는 우리를 감동시킨 선수, 혹은 우리가 응원하는 선수이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무적함대’ 스페인에 당한 1-6 참패의 여운이 짙게 남아 있던 2일. 평가전 2차전을 위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공항에서 체코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일순 긴장에 휩싸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갑자기 선수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날 경기 후 믹스트존(자유 인터뷰 구역)에서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은 손을 들라’며 조사에 나섰다. 쭈뼛쭈뼛 손을 들었던 선수들은 슈틸리케 감독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꾸지람의 요지는 이랬다. ‘성원해준 팬들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소통해야 한다.’ 한 마디로 팬들에 대한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믹스트존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감독이 선수들을 혼내는 건 이례적이다. 특히 개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는 외국인 감독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에겐 믹스트존 인터뷰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수 십 년간 유럽 무대를 누벼온 슈틸리케 감독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선수들의 태도는 슈틸리케 감독을 참을 수 없게 했다. 기본을 중시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철학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체코로 건너간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1시간 반 동안 쌓였던 말을 털어놨다. 선수들의 실력이나 정신력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한국축구 전반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유럽 원정 소집 때 이청용(28ㆍ크리스털팰리스)과 박주호(29ㆍ도르트문트), 김진수(24ㆍ호펜하임) 등 핵심 유럽파를 제외했다. 소속팀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 못 하는 선수들은 뽑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당연한 내용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던 이 원칙은 이제 슈틸리케호의 기본이 됐다. 대신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의 발탁은 늘어났다. K리그 경기장을 꾸준히 찾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임 초기, 슈틸리케 감독이 K리그 챌린지(2부) 안산 경기장을 찾았을 때 일이다. 당시 함께 갔던 축구협회 관계자는 “대표급 선수들이 없어 이용래(30ㆍ수원) 등 예전에 국가대표였던 선수들을 지목해 소개했더니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백지상태에서 선수들을 골고루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축구계는 한 때 대표팀 감독의 권위를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파벌을 조성해 위기를 겪었다. 원칙이 존중되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들이었다. 대표팀의 16경기 연속 무패 기록은 깨졌고, 세계 수준과의 격차는 뼈저릴 만큼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아직 슈틸리케호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기본이 지켜지는 팀의 발전 여력은 충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치혁 채널A 기자 jangta@donga.com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몇 초 만에 승부가 결정되는 마당에 0.1초라도 빨리 기어를 바꿀 수 있다면 대단한 거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있는 조호성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은 자전거 기어를 바꾸는 ‘찰나의 순간’마저도 무한한 변수를 지닌 승부처라고 여긴다. 250km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사이클 개인도로 출전이 유력한 김옥철(서울시청)은 무선 장치를 이용해 기어를 바꿀 수 있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미국 스램사의 변속장치는 레버와 기어가 암호화된 무선 신호를 주고받아 자동으로 기어를 바꾼다. 예전의 자전거는 케이블로 연결된 변속장치를 사용했다. 기어를 바꾸는 데 힘이 들고 케이블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버튼만 누르면 작동하는 이 변속기는 그럴 염려 없이 더 빨리 기어를 바꿀 수 있다. 선수들은 달리면서 자신의 몸에 지닌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자신의 속도 및 소모된 열량, 맥박 수 등을 점검하는 한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남은 거리와 코스를 측정한다. 자전거가 최근의 정보기술(IT)에 힘입어 ‘스마트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이원홍 bluesky@donga.com·이승건 기자 ▼ 방탄복만큼 강한 펜싱복… 철강 100배 강도 ‘울트라 활’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체격 조건에 맞추어 부품을 따로 구입해 재조립하며 장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김옥철의 경우 자전거 프레임(뼈대)은 독일의 펠트, 타이어는 미국의 지프, 안장은 이탈리아의 산마르코, 브레이크와 체인 및 변속기 등 구동장치는 미국 스램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조 감독은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프레임이다. 최근에는 카본 소재가 대세이지만 같은 카본 소재라도 제조 공법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카본 소재를 몇 겹이나 입혔는지, 얼마나 압축이 잘됐는지 등에 따라 다르다. 좋은 프레임으로 만든 자전거는 시속 50km 이상의 고속 주행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벤츠와 다른 자동차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초창기 프레임의 무게는 1.5kg까지 나갔지만 최근에는 900g까지 감소했다. 타이어의 무게는 200∼250g 정도다. 길이 다소 평탄하면 가벼운 타이어를 쓰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좀 더 무거운 타이어를 쓴다. 안장은 주로 딱딱한 재질을 사용하는데 선수들의 체형과 골반 사이즈에 맞게 골라 쓴다. 안장이 푹신하면 편하기는 하지만 페달을 밟을 때 힘의 손실이 많다. 무게는 250g 안팎이 주류였지만 최근엔 135g짜리도 나왔다. 이렇게 여러 부품을 재조립했을 때 드는 비용은 보통 1000만∼2000만 원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자전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15만∼70만 원 선이다. 일반 자전거의 무게는 17kg 안팎이다. 산악자전거(MTB)는 산에서 들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가볍다. 14kg 정도다. 촌각을 다투는 경주용 자전거는 이보다 훨씬 가볍다. 6.8∼10kg이다. 선수들은 일반 자전거의 넓적한 페달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이클화 바닥에 페달을 끼워 고정시킨다. 넘어질 때 발이 빠지지 않아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위험하다. 선수들은 또 일반인보다 훨씬 큰 크랭크를 사용한다. 자전거 개발의 역사는 공기 및 무게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대표적인 자전거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영국의 크리스 보드먼이 타고 나왔던 ‘로터스 슈퍼바이크’가 꼽힌다. 그는 이 자전거를 타고 영국에 72년 만의 올림픽 사이클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보드먼이 타고 나온 자전거는 기존의 자전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뒤에는 바퀴살이 없는 원반형 바퀴를 달았다. 앞바퀴에는 칼날처럼 얇고 넓적한 바퀴살 3개가 달려 있었다. ‘윈드 치타’로도 불린 이 자전거는 포뮬러원(F1) 경주용 자동차 생산으로도 유명한 자동차 제조업체 로터스에서 제작했다. 공기와의 마찰을 줄여주는 원반형 바퀴는 이전부터 유행했다. 하지만 옆에서 바람이 불면 자전거를 제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보드먼의 자전거는 이를 개량했다. 뒷바퀴에만 원반형 바퀴를 사용하고 앞바퀴에는 바퀴살이 달린 바퀴를 달았다. 그 대신 바퀴살에 대한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바퀴살을 얇게 만들고 개수를 줄인 것이다. 또 기존 자전거의 뼈대는 삼각형 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 자전거는 공기역학과 선수의 움직임을 고려해 삼각형 구조를 버렸다. 주 소재는 탄소섬유였다. 이 자전거에 가장 큰 자극을 받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사이클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던 미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이클에서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하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유치한 미국은 자국에서의 승리를 위해 ‘프로젝트 96’이라는 슈퍼바이크 개발 계획을 추진했고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연구비를 들여 ‘슈퍼바이크Ⅱ’를 만들었다. 미국 선수들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한 대에 3만 달러(약 3500만 원)∼4만5000달러(약 53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출전했다. 우주항공 기술자까지 동원해 개발한 이 슈퍼바이크Ⅱ에는 방탄조끼로 사용되는 가볍고 튼튼한 케블라 섬유를 사용했다. 체인도 종이처럼 얇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또다시 실패했다.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에 그쳤다. 미국 여자 사이클 스타 레베카 트위그는 “코치들이 개개인의 의견과 특징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슈퍼바이크Ⅱ를 타라고 강요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선수들은 이 자전거가 빠르기는 했지만 튼튼하지 않고 다루기 어렵다고 평했다. 미국은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이때부터 첨단 자전거 개발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본격화됐다.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첨단 자전거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고가의 최첨단 자전거를 소유한 나라와 이를 갖지 못한 나라의 불균형이 거론됐다. 올림픽이 선수의 능력을 겨루는 무대가 아니라 장비의 성능을 겨루는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국제사이클연맹(UCI)은 1996년 ‘루가노 헌장’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헌장은 ‘사이클 경기가 선수의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선수와 기계의 조화에 더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비밀리에 개발된 급진적인 형태의 자전거가 등장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자전거 개발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점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UCI는 이후 자전거의 기본 프레임을 전통적인 삼각형 구조로 제한하고, 무게를 6.8kg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규정했다. 급격한 형태 변화를 막아 개발 경쟁을 억제하고 지나치게 가벼운 자전거를 만들어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적용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UCI는 올해 1월 경기용 자전거에 대한 각종 규정을 보완했다. 한편에서는 최근의 발달된 자전거 제조기술을 반영하기 위해 UCI가 그동안 경기용 자전거의 개량 범위를 제한해 온 일부 핵심 규정을 없앨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UCI는 이러한 규정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강화했다. 김성주 전 대한자전거연맹 사무국장은 “루가노 헌장의 기본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사이클 경기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에서 장비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수영에서도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맹위를 떨친 전신 수영복이 발단이었다. 전신 수영복은 1990년대 말 개발됐다. 상어의 피부에 나 있는 작은 돌기들이 물과의 마찰을 줄이는 데서 착안해 수영복 표면에 작은 돌기와 홈을 만들었다. 선수들의 근육을 압착해 피로물질인 젖산의 축적을 막아주기도 했다. 전신 수영복의 효과는 대단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수영 금메달 33개 가운데 25개를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가져갔다. 그러나 이로 인한 기록 단축 효과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사이클의 경우와 같은 고민을 했던 국제수영연맹(FINA)은 2010년 전신 수영복 착용을 금지했다. 현재 FINA는 남자의 경우 수영복이 배꼽 위나 무릎 아래를 덮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자 수영복은 어깨부터 무릎까지만 덮을 수 있다. 수영복 표면은 평평해야 하고 수영복 두께의 최대 얇은 부분이 최대 두꺼운 부분의 50% 이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 수영복은 0.5뉴턴(N) 이상의 부력을 지닐 수 없게 하고 있다. FINA는 매년 대회에서 입을 수 있도록 허가한 수영복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수영 유망주 안세현 등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은 올해 국내 수영복 업체 동인스포츠 아레나가 제작한 아쿠아포스 라이트닝을 지원받는다. 이 수영복에는 폴리우레탄이 기존의 2배인 63% 정도 함유돼 있다. 이 수영복은 허리와 허벅지 부분의 신축성을 강화해 킥할 때 다리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사이클과 수영 등에서의 논란이 있었지만 많은 종목에서 올림픽 장비의 진화는 장비 자체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기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더욱 돋보이도록 도왔다. 양궁에서는 경기에서 선수의 의도가 정확하게 반영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주된 노력은 화살의 속도를 높이고 슈팅 순간의 충격과 진동이 화살에 나쁜 영향을 주는 활의 ‘불량운동’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핸들(손잡이 부분)과 날개가 정확한 정렬을 이루고 있어야 좋은 활이다. 날개가 틀어져 있을 경우에 활을 당기면 슈팅할 때 불량운동의 원인이 된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 및 감독 출신인 박경래 대표가 세운 한국의 윈엔윈은 세계 최초로 활에 최적화된 나노카본 소재를 개발하여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윈엔윈 측은 “철강보다 100배 뛰어난 강도를 지닌 소재로 튼튼하고 비틀림이 적은 날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활의 날개와 핸들 등을 분리 구입해 각자 자신의 특성에 맞게 조립할 수 있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부분 국산 활 제조업체 윈엔윈이 만든 날개를 사용한다. 핸들은 미국의 호이트 제품을 쓰는 경우도 있다. 선수들이 어떤 제품을 조립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활에 드는 비용은 보통 300만 원 정도이다. 장비 발달 덕에 기록이 크게 향상된 대표적인 종목으로는 장대높이뛰기가 꼽힌다. 초창기 선수들은 대나무 장대를 사용했다. 대나무 장대는 이후 섬유유리로 만든 장대로 대체됐고 탄소화합물로 구성된 장대도 등장했다. 새로운 장대의 뛰어난 탄력성 덕분에 장대높이뛰기 최고 기록은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장대높이뛰기에서 섬유유리로 만든 장대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건 1960년대부터다. 현재 장대높이뛰기 최고 기록은 2014년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가 세운 6m16이다. 1957년 당시의 세계기록이 4m78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장비의 발달은 올림픽을 더욱 안전한 무대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펜싱에서는 경기 도중 선수가 부러진 칼에 찔려 사망한 적도 있다. 펜싱계는 이에 따라 장비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경기 중 칼이 부러져 다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탄소강철보다 훨씬 강한 마레이징 강철로 칼을 만들고 있다. 마레이징 강철은 제트 전투기에 사용하는 합금강철이다. 선수 보호용 재킷은 방탄조끼 재료인 케블라 섬유를 사용해 만든다. 보통 선수들은 3∼5자루의 칼을 가지고 다니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한 자루만 사용할 수 있다. 칼의 가격은 사브르의 경우 4만∼5만 원, 플뢰레 12만∼13만 원, 에페 13만∼15만 원이다. 이렇듯 현재 올림픽에서는 장비가 인간 본연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규제하려는 움직임과 장비의 발달을 더욱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섞여 있다. 스포츠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홍식 한국체육대 교수는 “과학의 발달은 계속해서 올림픽에서 사용될 장비의 수준에 대한 논란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경기방식 자체를 바꾸거나 새로운 종목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렇다면 순수한 인간의 육체를 단련하고자 하는 올림픽의 기본 정신은 사라지고 말 것인가. 김 교수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능력을 겨루고자 하는 올림픽 정신을 살리고 한편으로는 과학의 성과를 접목하기 위해 미래에는 올림픽이 분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고 말했다. 순수한 인간끼리 겨루는 ‘자연인의 올림픽’, 웨어러블 로봇이나 첨단 기구를 착용한 ‘개조인간의 올림픽’, 그리고 순수한 ‘로봇들의 올림픽’이 등장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이 어떤 형태가 되어가든 그 속에는 일관된 인간의 의지가 들어 있다. 그것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도약과 발전을 향한 의지이다. 이종석 wing@donga.com·유재영·황규인 기자}

“올림픽 떠나는 길에 6월 14일 밤 연락선 안에서 술 취한 경관에게 맞았다.… 너무도 몹시 때리므로 올림픽이 지나기까지는 어찌 되었든 중대한 책임이 있으니 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아아 ‘올림픽’이다.… 영문도 모를 매를 실컷 맞고 또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안 되는 자는 권태하 한 사람뿐일까?”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권태하(1906∼1971·사진)가 1932년 6월 24일자 동아일보에 보낸 글이다. 일제하에서 올림픽 대표로 나섰으나 불심검문에 응하는 태도가 불량하다고 일본 경관에게 얻어맞은 조선인으로서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경관 3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경기에서의 선전만을 굳게 다짐했다. 그 무대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다. 그는 동료 김은배(1907∼1980)와 함께 마라톤에 출전했다. 그의 올림픽 경험은 4년 후 손기정(1912~2002)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권태하는 연습 때 교통신호를 위반했다며 경관에게 구타를 당하고 감기로 인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다. 이러한 정신력은 올림픽에서도 발휘됐다. 그는 결승선 4m를 앞두고 탈진해 쓰러졌지만 주위의 도움을 뿌리치고 기어서 골인해 9위를 기록했다. 9만 관중은 두 번의 기립박수로 그를 기렸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손기정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손기정은 동아일보 기고에서 “내 마라톤 인생은 권 선배의 격려와 충고에 큰 자극을 받았다. 권 선배는 베를린 올림픽을 내 인생 최대의 결전장으로 설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그의 고향인 충북 충주시(시장 조길형)는 2일 충주시청 탄금홀에서 잊혀졌던 권태하의 마라톤 인생을 재조명하는 ‘권태하 선생 탄생 11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연다. 내년 충주 전국체전 성공 기원을 겸해 열리는 이번 세미나에는 1950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함기용 씨, 권오륜 부산대 교수, 박귀순 영산대 교수, 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간사, 김형목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남중웅 한국교통대 교수가 참석한다. 동아일보는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출전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종세 전 동아일보 체육부장이 권태하와 동아일보 및 한국마라톤에 대한 주제 발표를 한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산행 도중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발병해 죽음에 이르는 산악 돌연사가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 21개 국립공원에서 접수한 산악사고 141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돌연사가 이 기간에 발생한 산악 사망사고 133건의 57.1%인 76건을 차지했다. 산악 돌연사는 평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의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하는데, 평소 별다른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 올랐다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발병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산악 돌연사의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산악 돌연사의 경우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에 집중됐고 5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비만, 고지혈증 등 위험인자를 많이 지닌 중장년층 남성에게서 돌연사가 많다. 아무리 가벼운 산행이라도 등산을 시작하면 심장에 무리가 가기 쉬운데, 특히 산행을 시작하고 하산할 무렵에 체력 소진으로 인해 돌연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국 국립공원 코스별로 보면 북한산 지리산 한라산 등지에서의 돌연사가 많았다. 또한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접수된 월별 사고 현황을 보면 1∼4월 월평균 56.7건이었던 사고 건수(사망 및 탈진, 골절)가 5월에 109건, 6월에 116건으로 급증했다. ▼ 북한산서 한해 6명꼴 숨져… 인수봉-노적봉 가장 위험 ▼인수봉에서의 사고가 많았다. 부상자 41명을 비롯해 추락사 3명, 낙석으로 인한 사망도 1명 있었다. 인수봉에는 초보자부터 노련한 등반가까지 즐겨 찾는 80여 개의 길고 짧은 다양한 암벽 루트가 있다. 휴일이면 많게는 200∼300명의 등반가가 몰려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다. 윤재학 코오롱 등산학교장은 “누구든지 암벽 등반에 입문을 하고 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인수봉이다. 한국 암벽 등반의 역사를 대표하는 상징적 지역이기 때문이다. 초보자들도 그만큼 많이 몰리기 때문에 사고도 잦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일부 코스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기 때문에 바위가 닳아 미끄러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난도가 높아진 구간들이 있다. 미끄러운 데다 사람들까지 많이 몰리니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 인수 대피소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강균석 반장은 “길이 미끄러운 것도 문제지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더 문제다. 사람들이 몰리면 길을 비켜주기 위해 등반을 서두르게 되고 서두르다 보면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인수봉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그 대안으로 눈길을 끌었던 노적봉에서도 사고가 빈발했다. 윤 교장은 “인수봉에 비해 대체로 완만한 노적봉은 산악인들이 즐겨 찾던 곳은 아니었다. 인수봉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새로운 곳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최근 10여 년 전부터 20여 개의 코스가 개척됐다. 이 중에는 자연스러운 바윗길을 따라 개척된 코스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부자연스럽게 만든 코스가 있어 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백운대 염초봉 숨은벽 등의 바위능선 구간(리지)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수직 암벽에 비해 옆으로 이동하는 구간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방심 탓에 등산 장비를 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 관계자는 “수직 암벽에 비해 옆으로 이동하는 구간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도 ‘이까짓 거쯤이야’ 하는 방심 때문에, 혹은 귀찮아서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지리산 종주 세석평전-장터목서 3명 돌연사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향해 오르는 대표적 코스인 오색∼대청봉과 한계령∼대청봉 구간에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특히 오색∼대청 구간은 부상 22명과 돌연사 2건이 발생해 설악산 내 최다 사고지로 분석됐다. 이 구간은 다른 곳보다 코스가 짧은 대신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김기창 계장은 “한계령 휴게소 쪽에서 대청봉에 오른 뒤 코스가 짧은 오색 쪽으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력을 이미 많이 소진한 상태에서 급경사 지역을 내려오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단풍 관광객과 불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흘림골과 봉정암에서도 사고가 빈발했다. 국도변에 있는 흘림골은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빼어난 계곡미와 주변 풍경을 지녀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오르막 구간이 많다. 봉정암은 국내 5대 적멸보궁(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 중 하나로 나이 지긋한 불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지만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해발 1244m)인 데다 등산로도 쉽지 않은 곳이라 주의를 요한다. 설악산에서도 특히 위험한 곳으로 꼽히는 곳은 용아장성이다. 높이 수십 m의 바윗길이 좁게 이어지는 이곳은 사고 위험이 높아 전면 출입금지 지역이다. 지난 5년간 이곳에서 부상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3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모두 사망(추락사) 사고뿐이었다. 천불동계곡과 공룡능선 사이를 이어주는 바위 능선 지대인 천화대, 길게 이어지는 너덜바위 지대가 있는 서북능선과 대승령 일대의 장수대 일원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희운각 대피소는 공룡능선과 소청봉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있다. 힘들여 대청봉을 오른 뒤 소청봉을 지나 희운각 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급격한 내리막길이다. 이때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 이미 체력을 많이 쓴 상태에서 난도가 높은 공룡능선이 시작된다. 시간과 체력을 적절하게 안배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기 쉽다. 지리산에선 세석평전과 장터목 일대에서의 사고가 많았다. 세석평전과 장터목은 약 25km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코스(노고단∼임걸령∼벽소령∼세석평전∼장터목∼천왕봉)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공단 최수원 과장은 “지리산 종주 코스의 인기가 높은데, 이러한 코스의 끝부분에서 지친 등산객들이 사고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종주를 하지 않을 때에도 세석평전과 장터목은 상당한 체력을 쓴 뒤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보통 당일 코스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평전과 장터목을 지나 천왕봉에 오르는 등산객이 많다. 지리산의 계곡미와 능선의 장엄함을 느끼며 빠른 시간에 천왕봉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코스를 이용할 때도 급경사의 산기슭을 오른 뒤에야 세석평전과 장터목에 닿는다. 특히 한신계곡에서 세석평전에 이르기까지의 기슭 후반부는 매우 가파르다. 세석평전 일대에서는 부상 6건과 돌연사 3건이 발생해 부상자 대비 사망 비율이 높았다. 종주를 시작한 등산객들이 대개 1박을 하고 가는 중간 지점인 벽소령에서도 하루 산행이 끝날 때쯤 지친 등산객의 사고가 많았다. 천왕봉과 중산리를 잇는 중산리 코스(약 5.4km)의 개선문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중산리 코스는 짧아서 종주를 마친 사람들이 하산 코스로 많이 이용하지만 지리산에서도 손꼽히는 급경사 지역이어서 체력과 심장이 약한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 한라산 최장구간 성판악 코스 탈진사고 많아백록담으로 이어지는 두 코스인 성판악 탐방로와 관음사 탐방로에서 사고가 많았다. 성판악 탐방로는 9.6km로 한라산에서 가장 긴 코스다.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속밭 대피소, 사라오름 입구, 진달래밭 대피소를 거쳐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5∼8월에는 오후 1시부터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길이 통제된다. 하산 길에서의 일몰 등을 고려한 것이다.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통과하기 까지는 보통 3시간이 걸린다. 체력과 산행 속도를 고려하여 오전 일찍 넉넉하게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라산 국립공원 관계자는 “오전 늦게 입산하신 분들이 서둘러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통과하려고 욕심을 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초반부터 체력을 급격히 소진하기 때문에 탈진 가능성이 높아진다. 속리산 월출산 월악산에서는 사망 사고 비율이 높았다. 북한산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등에서는 전체 사고 중 사망 사고 비율이 7.1∼15.8%였으나 속리산은 30%, 월출산은 26.6%, 월악산은 25.8%에 달했다. 속리산은 계곡에서 익사 사고, 문장대 등에서 돌연사가 발생했고, 급경사 지역이 많은 월출산과 월악산에서는 돌연사와 추락사가 모두 발생했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서는 지난 5년간 2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모두 전남 고흥의 팔영산(해발 608m) 일대에서 발생했으며 2건 모두 돌연사였다. 팔영산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봉우리가 잇달아 있어 주의를 요한다. ○ 등산중 심장마비 막으려면산에 오르기전 충분한 준비운동 필수… 가슴 뻐근한 통증 느끼면 즉시 중단을돌연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병이다. 돌연사 관련 전문가인 인제대 상계백병원 심장내과 이혜영 교수는 “‘급사’ 혹은 ‘급성 심장사’라고도 불리는 돌연사로부터 생존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 통계로 보았을 때 1% 미만이다. 응급체계가 잘 확립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생존율이 5% 정도로 낮게 보고될 정도로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다”고 설명했다. 돌연사의 원인으로는 심장세포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혀서 산소와 영양소 부족으로 심장근육세포가 죽어가는 ‘심근경색증’이 먼저 꼽힌다. 돌연사 원인의 70∼8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돌연사가 발생하기 수일 또는 수개월 전부터 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흉통, 호흡곤란, 피로감 등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바쁜 일상에 쫓겨 미리 진찰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또 “25% 정도의 환자는 아무런 조짐이 없다가 첫 증상이 나타났을 때 돌연사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관상동맥 질환은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당뇨병, 비만, 과도한 스트레스, 운동 부족 등에 의해 가속화된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인자를 지니고 있으면서 갑자기 무리한 산행 등을 하는 경우에는 돌연사의 위험이 높다. 대한산악연맹 등산의학위원장을 지낸 윤현구 제일병원 내과 교수는 “갑작스러운 산행은 심근의 산소 요구량을 증가시켜 더 많은 혈액 공급을 필요로 한다”며 “심혈관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부하는 심장 기능의 이상을 불러올 수 있다. 평소의 건강 관리 및 산행 전 워밍업과 스트레칭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산에서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무협 영화에서는 종종 혈기 넘치는 젊은 무술인이 주름지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넘어뜨리지 못해 당황하는 장면이 나오고는 한다. 젊은이는 땀을 뻘뻘 흘릴 뿐 자신보다 힘이 약해 보이는 노인을 쉽게 제압하지 못한다. 어찌 된 일일까. 이런 질문을 받자 이찬 사단법인 대한태극권협회 명예회장(61)은 자신의 손목을 내밀며 말했다. “한번 밀어 보시지요.” 그의 손목에 손을 대고 밀어내려 하자 그가 그 속도에 맞추어 자신의 손목을 쓱 뒤로 뺐다. 태극권 고수의 손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허공만을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의 손목에 아무런 힘도 가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간단히 설명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힘쓸 곳이 없게 하는 것이지요.”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 상대방의 주먹도 그에 맞서거나 맞아 주는 대상이 있어야 파괴력을 발휘한다. 천하장사가 벽을 밀더라도 벽이 그 미는 만큼 뒤로 물러난다면 천하장사의 힘은 허공에 머물 뿐 벽에 미치지 못한다. 힘이 넘치는 젊은 무술인이 노인을 넘어뜨리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영화 속의 장면은 젊은이가 힘과 주먹을 쓰려고 하는 방향과 속도에 맞추어 몸을 젖히거나 물러서면서 노인이 그 젊은이의 힘과 주먹을 받아 주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스승인 국홍빈 선생과 처음 마주했을 때 젊고 패기만만했던 무술인이었던 자신이 그분을 제대로 밀어내지 못했던 순간을 자신의 글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스승을 밀어내려고 하면 마치 허공 중의 수건을 미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오랜 시간 태극권을 수련해 온 이 회장은 이렇게 ‘덜어냄’과 ‘맞서지 않음’으로 상대방의 힘을 무력화하는 이치를 설명했다. 그가 수련해 온 태극권은 부드러움과 온유함으로 강함과 거침을 상대하고자 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위협과 모욕에 맞서는 마음의 자세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국내에 태극권을 본격적으로 보급한 사람이다. 태극권은 중국 송나라 말 장삼봉이 창안한 무예로 청나라 때 양(楊)씨 가문을 통해 궁중의 호위무사들에게 전수되다가 청나라 몰락 이후 일반인들에게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이 이른 아침 곳곳에 모여서 천천히 체조하듯 수련하는 것이 바로 태극권이다. 영어권에서는 타이치(Taichi)라고 한다. 이 회장의 저서에 따르면 태극권은 부드러운 동작 위주의 양식(楊式), 강한 동작 위주의 진식(陳式)이 있고 양식과 진식에서 파생된 오식(吳式) 무식(武式) 손식(孫式) 등이 있다. 이 회장은 양식 태극권을 개량한 정자(鄭子) 태극권을 수련했고 몸이 허약한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치유태극권(테라피 타이치)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태극권의 목적을 “부드러움에 이르는 데 있다”라고 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고요함으로 격렬함을 누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친절하게 웃으며 태극권의 유래를 설명해 준 이 회장이지만 거친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경기 양평군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10세 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동네 이장이 인근 군부대 태권도 교관에게 마을 청소년들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 계기였다. 마을회관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그러다 18세 때 중국 무술로 전향했다. 소림권 당랑권 등을 익혔다. 젊은 시절 사소한 이유로 싸움도 많이 했고 ‘누가 시비 좀 안 걸어 주나’ 하고 바라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배운 것을 실전에서 활용해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고 했다. 극장과 영화사에서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는 영화 개봉관이 몇 개 없었어요. 영화가 개봉되면 사람들이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섰지요. 암표 장수들이 극성이었어요. ‘외팔이와 맹협’이라는 무협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암표 장수는 3개월 동안 암표를 팔아 집을 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죠.” 그는 극장에서 이런 암표 장수들을 단속하고 공짜로 극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도 막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영화사 제작부장도 했다고 한다. 지방에 촬영을 가면 지역 건달들이 시비를 걸곤 했는데 이를 막아 주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아는 형’들이 나이트클럽 이권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질 듯하니 좀 와서 도와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거칠게 지내던 그는 중국 무술 도장을 차렸다. 자신의 도장 인근에 다른 무술 도장이 생길 때면 찾아가서 실력 대결을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침 그가 찾아간 도장의 관장이 그에게서 중국 무술 심사를 받은 사람이어서 소주를 마시며 화해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고 했다. 동네 건달들이 도장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스님이 찾아와 대결을 청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몇 차례 신체 접촉을 해 보면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초반 몇 번의 동작을 취해 보고는 금방 승패를 인정했다고 했다. 당시의 자신에 대해 그는 “눈빛이 살벌했고 주변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고 했다. 무술 고수가 되기로 결심한 뒤 머리와 눈썹을 밀고 두문불출하기도 한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속의 각오와 결의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되지 꼭 삭발까지 했어야 하느냐는 겁니다. 하하. 젊은 혈기로 차 있던 때죠.” 이러한 모습의 그는 이후 변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 태극권을 수련하며 온화함과 여유로움을 추구하면서 생긴 변화였다고 그는 자평한다. 태극권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고 회고했다. “저에게 중국 무술을 가르쳐 준 한국인 스승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승님에게는 또 중국인 스승님이 계셨고요. 중국인 스승님이 한국인 스승님에게 기회가 되면 태극권을 배워 보라고 권하셨는데 인연이 닿지 않아 배우지 못하셨어요. 그 한국인 스승님이 저에게 본인은 태극권을 배우지 못했지만 저보고 기회가 있으면 배워 보라고 하셨어요. 스승님의 스승님으로부터 내려온 태극권 입문 권유였지요.” 처음에는 친구가 구입해 온 태극권 서적을 화교학교에 다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가며 독학으로 태극권을 익혔다. 그러던 중 1988년 대만으로 중국 무술 심판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태극권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대만의 태극권 고수인 국홍빈에게 본격적으로 태극권을 배웠다. 몇 개월씩 스승 댁에 머물며 태극권을 익히고 돌아와서는 다시 찾아가 배우는 등 스승이 3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배우고 익혔다고 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태극권을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에 전무하다시피 했던 국내 태극권 인구는 현재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평생 수련해 온 태극권의 특징에 대해 그는 ‘움직이는 선(禪)’과 같다고 설명했다. 태극권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수련하므로 이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관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게 된다는 것이다. 또 격렬하지 않고 부드러움과 온유함을 지향하기 때문에 성격도 차분해진다고 했다. 천천히 내장을 움직이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수련을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노년층에서도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는 태극권을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10년간 매일 기본 수련인 권가(拳架)를 10번씩 반복하고 잠들었다고 한다. 권가를 한 번 하는데 7∼8분이 걸린다. 국내에 생소한 무술을 보급하느라 초창기에는 생활고에도 시달렸다. 부인이 조그만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지금은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의 삶은 이렇듯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운동하면 깡패가 된다는 주위의 시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가족을 풍족하게 부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등에 힘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수십 년 동안 무도인의 길을 걸었다. 격투에 필요한 기술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무술(武術)’이 되고 신체의 아름다움을 펼치는 측면을 강조하면 ‘무예(武藝)’가 되며 신체의 건강을 바탕으로 정신적인 고양을 추구하는 측면을 강조하면 ‘무도(武道)’가 된다. 그는 “결국엔 다 같은 말이지만 태극권에는 무도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동양의 전통 무술 속에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하고자 하는 오랜 꿈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현대에 있어서 이러한 무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두뇌와 몸을 대신하려는 시대가 아닌가. 이에 대해 그는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을 거론하며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제가 볼 때 인공지능은 아직까지는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을 지니지 못했으므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그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아무리 편리함을 가져다주더라도 인간 스스로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고 칩시다. 맛있는 음식을 로봇이 직접 가져다준다고 하면 그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여 찾아가는 과정의 고단함을 모릅니다. 고단함이나 슬픔이 있어야 그 뒤의 편리함이나 기쁨을 더 잘 알게 되는 겁니다. 기쁨과 슬픔은 상대적입니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있는 겁니다. 편리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가 모든 것을 다 해 주어서 이 세상에 고단함은 없고 편리함만 있다고 하면 과연 편리할까요. 그때는 편리함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겁니다.” 그의 말이 이어질 때 서울 서초구 법원로에 있는 그의 도장에서는 초로의 여성들이 서서히 몸을 풀며 태극권을 익히고 있었다. 그는 그 수련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저렇게 수련하는 과정은 힘이 듭니다. 땀을 흘리는 거죠. 땀을 흘리며 태극권을 수련하면서 어느 경지에 오르게 되면 삼매경에 빠지며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이는 직접 자기 몸을 움직여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했을 때의 성취감, 고통을 극복한 뒤의 행복감, 직접 노력해서 얻은 것의 소중함 등과 맞닿아 있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편리함을 주더라도 인간이 ‘땀 흘리며 얻는 보람’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생 자체가 땀을 흘리며 많은 난관을 극복해 온 과정이었다. 또 기계가 아무리 편리함을 주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해 주더라도 건강 없는 수명 연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폴로 신에게 무한에 가깝도록 오랜 생명을 달라고 했던 무녀(巫女)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깜빡하고 무한한 젊음을 함께 부탁하는 것을 잊은 그 무녀는 영원히 늙어 가며 쪼그라들어 괴로워한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것이 이후 그녀의 소망이었다. 신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과 건강을 지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첨단 기계 문명 속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수련하는 노력은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또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한 계산을 대신해 준다 해도 인간의 정신을 높이는 것은 역시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렸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고자 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중요하다.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하는 무도는 그래서 계속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하는 것은 비단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武道)일 뿐만 아니라 보통의 인간들이 모두 추구해야 하는 ‘인간의 길’인 것처럼 들렸다. 고요한 도장에서 명상에 잠기듯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진지해 보였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체육특기자 입학 비리에 연루된 선수와 지도자는 앞으로 한 번만 적발돼도 스포츠계에서 영구 퇴출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5일 발표한 입학 비리 재발 방지책에 따르면 입학 비리에 연루된 선수와 지도자는 대학은 물론이고 프로에서도 활동이 금지된다. 또 입학 비리가 발생한 대학 운동부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가 주최하는 전국 규모의 리그 및 토너먼트 대회, 스포츠총장협의회 주최 리그 대회에 일정 기간 출전이 금지된다. 또 사안에 따라 해당 대학 운동부 입학 정원의 10% 내에서 모집이 정지되고 정부 지원 예산이 삭감된다. 이와 함께 학생을 뽑는 과정에서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평상시 학생들의 주요 경기 동영상을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대학이 면접과 미니 게임 등을 실시할 경우 타 대학 교수 등 외부인사가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호주와 독일 미국 등 스포츠 강국들은 일찍부터 선수들의 은퇴 이후 삶을 돕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선수 개인이 운동과 직업 훈련의 이중 부담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 아래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 왔다.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은퇴 이후 삶과 관련된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는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최근의 국제적인 흐름은 고등학교 시절을 비롯한 선수 생활 초기부터 일반 직업인으로서의 경력을 준비하도록 조기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대한체육회의 해외 사례 연구에 따르면 호주는 1995년부터 엘리트 선수 직업교육(ACE·Athlete Career and Education)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고등학교 엘리트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수 은퇴 후 진로를 미리 설계하도록 했다. 이에 맞추어 선수들은 공대 경영대 법대 등 다양한 학과로 진학하고 있으며 스포츠 관련 학과 진학률은 오히려 낮은 편이다. 39개의 협력 대학에서는 이들이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취업할 수 있도록 보충수업과 과외 수업 등을 실시한다. ACE 프로그램은 운동 학업 취업 준비를 병행하기 위한 시간 관리, 심리 및 재정 상담, 면접 교육 등을 실시한다. 호주는 최근 ACE를 PE(Personal Excellence)로 발전시켜 대중의 관심을 받는 선수들이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영향력 있고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리더십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엘리트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전국의 19개 올림픽훈련센터마다 경력상담사를 배치해 선수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각종 기업과 연계해 일찍부터 직업훈련을 시키고 있다. 독일은 기부금 및 복권 이익금 등으로 스포츠지원재단을 만들어 이 같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ACP)을 운영해 왔다. 국내 은퇴 선수를 위한 복지제도로는 입상 실적에 따라 매월 일정액 또는 일시금을 지급하는 ‘경기력향상연구연금제도’가 대표적이다. 국제대회에서 입상할 경우 평가 점수에 따라 월 30만∼100만 원의 연금을 받는다. 일시금으로 받기도 한다. 올림픽 금메달의 경우 일시금은 6720만 원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현재 월정액을 받고 있는 사람은 장애인체육 포함 1252명이다. 일시금 및 특별 장려금을 받은 사람은 지난해 56명이다. 체육인들은 현금 위주의 이러한 지원 제도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데 비해 수혜 대상자가 제한돼 있고 실질적인 직업훈련이나 경력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또 대한체육회 체육인복지부에서 은퇴 체육인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3명의 직업상담사를 고용해 선수들의 취업을 돕고 있으나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해외와 비교하면 인력과 시스템을 확대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체육인들은 외국처럼 체육인들을 위한 재단 또는 공제회를 만들어 이 기금으로 은퇴 체육인들을 위한 취업 교육 및 취업 관련 서비스를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체육인 출신인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은 이러한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 체육인복지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기관을 계속 늘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은퇴 선수의 재취업을 도와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새 재단을 설립하기보다는 현행 체육인 복지 규정을 통해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톨릭관동대 박종훈 교수는 “현재의 체육인 복지제도는 소수의 선수 및 지도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전체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적다. 현재의 체육인 복지 사업을 재검토해서 은퇴 선수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이원홍 bluesky@donga.com·강홍구 기자}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 겸 아시아산악연맹회장이 6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황금피켈상 시상식에서 일본의 타다오 간자키 아시아산악연맹 고문과 함께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이 회장은 대한산악연맹과 아시아산악연맹을 이끌면서 산악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타다오 고문은 1970년 일본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지원하는 등 일본 산악계에 남긴 업적으로 수상자가 됐다. 산악전문지 ‘사람과 산’이 개최하는 ‘아시아 황금피켈상’은 신루트 개척 및 초등 정 등 고난도 등반 업적을 남기거나 진보적이고 친환경적인 등반을 펼친 산악인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산악전문가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한다. 10회 째인 올해 ‘아시아 황금피켈상’ 후보로는 중국과 일본의 등반대가 추천을 받았으나 등반도중의 사고와 낮은 등반 난도 등의 이유로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대한산악연맹(회장 이인정)은 20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 세종호텔에서 2015 국제산악연맹(UIAA) 총회를 개최한다. 1932년 설립된 국제산악연맹은 전 세계 산악환경보호와 산악문화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수립해 실천하고 있다. UIAA에는 63개국 85개 단체가 등록되어 있으며, 산하단체 개인회원은 약 300만 명에 이른다. 이번 총회엔 프릿츠 브라이란트(네덜란드) 회장을 비롯해 40여 개국 110여명의 대표단이 참가한다.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상임이사회의와 집행위원회가 열린다. 22일에는 속초 국립산악박물관에서 히말라야 8000미터 14개봉을 모두 무산소 등정한 대한산악연맹 김창호 등반기술 이사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 영상이 상영되고, 오영훈 대한산악연맹 국제교류위원(캘리포니아대 인류학 박사과정)의 ‘동아시아 관점에서 본 한국등반의 역사와 철학’이란 강연이 열린다. 또한 각 국 대표들은 자국의 산악관련 물품들을 산악박물관에 기증하고 이를 기념하는 식수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산악박물관에선 총회 기간 전후로 ‘산에 들다’라는 주제의 기획전시전을 개최해 우리 선조들이 산에 올랐던 기록과 자료들을 전시한다. 23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세종호텔 세종홀에서 열리는 총회에서는 국제산악연맹이 제정한 마운틴 프로텍션 어워드(Mountain Protection Award) 제 1회 시상식이 열린다. 영광의 첫 수상자로는 에티오피아 북부 고원지대에 위치한 멘즈 구아싸 커뮤니티 보호구역(MENZ-Guassa Community Conservation Area· GCCA)이 선정됐다. GCCA는 에티오피아 산악 지역의 자연경관과 문화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인정받았다. 총회에서는 김정행 대한체육회장과 성기학 (주)영원아웃도어 회장 축사, 이인정 회장의 환영사를 비롯해 프릿츠 브라이란트 국제산악연맹 회장 보고 등에 이어 주요 의제에 대한 의결 및 토론이 실시된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내년 문대성 선수위원의 임기 만료로 한국 출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앞으로 IOC 위원은 새로운 방식으로 뽑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바흐 위원장은 한국이 새로운 IOC 위원을 배출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 한국에는 2명의 IOC 위원이 있다. 저의 고국인 독일과 같은 숫자다. 이는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이 얼마나 자신의 입장을 잘 대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바흐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IOC 위원 선정 절차는 지난해 마련된 IOC 개혁안 ‘어젠다 2020’에 포함된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개인이 직접 IOC 위원 후보로 나서거나 각국 올림픽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IOC 위원 후보로 나섰다. IOC는 앞으로 기존의 방법에 덧붙여 의료계, 법조계, 정·재계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IOC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인물을 직접 IOC 위원 후보로 초빙할 방침이다. 이날 조양호 평창겨울올림픽조직위원장 등과 오찬을 한 바흐 위원장은 오후에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난 뒤 세계태권도연맹(WTF) 서울본부에서 조정원 WTF 총재로부터 태권도 명예 10단 단증을 받았다. 바흐 위원장은 “10단 단증을 받아 힘이 더 세졌으니 앞으로 제게 더 잘 보여야 할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해 바흐 위원장은 “준비 상황이 지난번 방문과 비교해 큰 진전이 있다. 테스트 이벤트부터 성공적으로 열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바흐 위원장은 이날 저녁에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귀빈식당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2시간여 동안 만찬을 하며 평창 겨울올림픽 지원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바흐 위원장은 병상에 있는 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쾌유를 빈 것으로 알려졌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내년 문대성 선수 위원의 임기만료로 한국 출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앞으로 IOC 위원은 새로운 방식으로 뽑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이 말했다. 그러나 바흐 위원장은 한국이 새로운 IOC 위원을 배출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 한국에는 2명의 IOC 위원이 있다. 저의 고국인 독일과 같은 숫자다. 이는 국제스포츠무대에서 한국이 얼마나 자신의 입장을 잘 대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바흐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IOC 위원 선정 절차는 지난해 마련된 IOC 개혁안 ‘어젠다 2020’에 포함된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개인이 직접 IOC 위원 후보로 나서거나 각국 올림픽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IOC 위원 후보로 나섰다. IOC는 앞으로 기존의 방법에 덧붙여 의료계, 법조계, 정재계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IOC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인물을 직접 IOC 위원 후보로 초빙할 방침이다. 이날 조양호 평창 겨울올림픽조직위원장 등과 오찬을 한 바흐 위원장은 오후에 청와대에서 박대통령을 만난 뒤 세계태권도연맹(WTF) 서울본부에서 조정원 WTF 총재로부터 태권도 명예 10단 단증을 받았다. 바흐 위원장은 “10단 단증을 받아 힘이 더 세졌으니 앞으로 제게 더 잘 보여야할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해 바흐 위원장은 “준비 상황이 지난번 방문과 비교해 큰 진전이 있다. 테스트 이벤트부터 성공적으로 열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대회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의지와 약속을 들었던 것이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피겨 여왕’ 김연아(25·사진)가 자선활동을 많이 한 스포츠스타 4위에 뽑혔다. 젊은이들의 기부 및 봉사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비영리기관 ‘두섬싱’(DoSomething.org)은 16일 운동선수 선행 순위를 발표하며 김연아를 4위에 올렸다. 유엔아동기금(UNICEF) 국제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연아는 올해 네팔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한 것을 비롯해 각종 단체에 20억 원이 넘는 기부활동을 해왔다. 1위에는 포르투갈의 암센터에 꾸준히 기부하고 어린이 기아대책을 위해 힘쓴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0·레알 마드리드)가 뽑혔다. 2위는 프로레슬러 존 시나, 3위는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가 선정됐다. 이번 순위는 대중 투표와 선수들의 영향력, 선정위원회의 평가 등을 종합해 이루어졌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탁구스타 유승민(33·삼성생명 코치·사진)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후보로 선정됐다. 대한체육회는 1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선수위원회를 열고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을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 이번 IOC 선수위원 후보에는 유승민 외에도 역도 스타 장미란, 사격 스타 진종오 등이 지원했다. 선수위원회는 이들의 외국어 수준, 올림픽 참가경력 등을 고려해 유승민과 진종오를 복수 후보자로 선정한 뒤 김정행 대한체육회장과 문대성 선수위원장의 논의를 거쳐 유승민을 최종 후보자로 정했다. IOC는 각국 후보자들을 심사한 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개월 전에 최종 투표 대상자들을 정한다. 이후 올림픽 기간에 각국 선수들의 투표로 4명의 IOC 선수위원을 선정한다. IOC 선수위원은 8년의 임기 동안 선수들의 권익과 올림픽 정신 고취를 위해 활동한다. 올림픽 개최지 투표권을 행사는 등 IOC 위원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문대성 현 IOC 선수위원의 임기는 내년에 끝난다. ‘탁구 신동’으로 불렸던 유승민은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체전 동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단체전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탁구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오랫동안 해외 경기에 참가하며 다져온 뛰어난 외국어 실력이 이번 후보 선정에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이름을 얻었지만 그 대신 눈을 잃었다고나 할까요.” 소나무 숲길에서 그가 말했다. ‘궁예’로 이름을 떨쳤던 배우 김영철 씨(62·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 2000년 ‘태조왕건’의 궁예 역으로 KBS 연기대상을 받았던 김 씨는 당시 한쪽 눈을 가리고 연기했다. 한쪽 눈만으로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낸 그의 연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시력이 떨어졌다. 촬영 당시 가렸던 왼쪽 눈은 0.8에서 0.2까지 떨어졌고 오른쪽 눈의 시력도 함께 나빠졌다. 일시적인 현상일 줄 알았으나 이후 10여 년간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안경을 쓰고 지내다 최근 라식수술을 받았고 그때서야 시력이 회복됐다.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는 법이지요.” 지난달 28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일원 ‘봉곡사 천년의 숲길’에서 그는 함께 걷던 산악인 엄홍길 대장(55)의 절뚝이는 오른발을 보며 덧붙였다. 엄 대장의 종아리에는 커다란 수술자국이 남아 있다. 1998년 안나푸르나(해발 8091m)에서 추락하는 셰르파를 구하려다 줄에 감겨 엄 대장의 오른 발목이 돌아갔다. 엄 대장은 지금까지도 오른발을 잘 쓰지 못한다. 엄 대장은 이 발로 8000m 16좌 등정의 위업을 달성했다. 발을 다친 이후 최근까지 오른 8000m급 봉우리만 11개에 이른다. 숱하게 좌절했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엄 대장은 “발목이 아프다”며 오른발을 보여줬다. 발목은 부어오르고 있었다. 》‘봉곡사 천년의 숲길’은 봉곡사 주변 우거진 소나무 숲길을 시작으로 인근의 갈매봉, 장군봉 등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능선으로 된 길이다. 김 씨와 엄 대장은 완만한 능선 길을 두 시간여 동안 함께 걸었다. 김 씨의 눈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님이 ‘맞고 다니지 말라’며 권해 복싱을 시작했어요. 그 즈음 김기수 씨가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이 됐습니다. 한국 최초의 세계 챔피언이었죠. 당시 복싱 열기가 대단했어요. 그를 보면서 저도 복싱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는 전국체전 출전을 목표로 강훈련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연습 경기를 할 때였다. 3회전 공이 울려 경기는 끝났다. 그러나 경기가 끝났음을 미처 몰랐는지 상대의 펀치가 날아들었고 그는 그 펀치에 맞아 10초간 정신을 잃었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며 코를 푸는 순간 왼쪽 눈이 크게 튀어 나왔다. 훗날 ‘궁예’ 역을 하면서 가렸던 그 왼쪽 눈이었다. 놀란 선배들과 함께 수건으로 눈을 싸매고 집으로 간 뒤 1주일을 입원했다. 퇴원한 후 곧바로 다시 복싱을 하겠다며 훈련에 매달릴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전국체전 출전은 결국 무산됐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는 유도를 했다. “공부를 너무 안 했어요. 맨날 싸움만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서울 명동서 연극을 한 편 보았는데 그 순간이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했다.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극적인 무대 분위기 등이 그를 사로잡았다. “아, 이게 내가 할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배우가 될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요. 다음 날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1973년 민예극단에 입단했다. “최불암, 이대근 씨 등이 출연한 ‘고려인 떡쇠’라는 연극에서 엑스트라 역할을 했어요. 죽었다가 옷 갈아입고 나와서 또 죽고 하는 역이었어요. 하하. 이 작품이 저의 데뷔작인 셈이죠.” 허규 민예극단 대표가 연출한 이 작품은 고려 말 왜구에 맞서 군사를 일으키는 척하면서 사실은 왕위를 찬탈하려는 세력에 떡쇠와 백성들이 저항하는 내용이다. 그는 돌아가신 허 대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허 선생님께서 저보고 무대 위에서 로봇처럼 몸이 딱딱하다며 현대무용을 배워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당시 육완순 선생님에게서 6개월간 현대무용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후 1977년 TBC 탤런트 공채에 응모해 방송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배우 인생 40여 년이다. 수많은 방송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기억나는 작품으로 TV 드라마 ‘태조왕건(궁예 역)’ ‘아이리스(백산 역)’, 영화 ‘달콤한 인생(강 사장 역)’을 꼽았다. “다 내 작품이지만, 그래도 이 작품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났으니까….” ‘달콤한 인생’에서 극 중 이병헌에게 던진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나 ‘태조왕건’에서의 ‘관심법’ ‘옴마니 반메홈’ 등은 유행어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저에게는 그래도 ‘궁예’가 중요했죠 뭐. 여전히 사람들이 저를 보면 궁예, 궁예 합니다. 그런데 저는 또 이게 슬픕니다. 궁예라는 틀에서 저를 풀어주고 싶어요.” ‘궁예’를 비롯해 ‘백산’ ‘강 사장’ 등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광기와 폭력을 내면에 감추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악역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아우라(독특한 기운이나 분위기)가 있는 악역’이라고 표현했다. “성격과 인물에 따라 다르지만 악역은 악역대로 빛나는 역할입니다. 선한 인물은 선한 대로, 악한 인물은 악한 대로 역할에 따라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노숙자든 대통령이든 그런 고유의 분위기들을 배우가 다 만들어 내야죠.” 하지만 그가 보여준 남달리 강렬한 연기들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혹시 그에게도 그런 인물들의 성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에 대해 그는 “아마 그런 게 내 안에 잠재돼 있겠지요”라며 허허 웃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로 그의 연기 수련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런 인물들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배웁니다. 또 살아오면서 다양한 인물들하고 부딪쳤을 때 겪는 경험을 내 안에 축적해 놓습니다. 그런 것들을 꼭 써먹어야지 하고 마음먹지 않더라도 인생의 그런 여러 가지 달고 쓰고 맵고 하는 여러 경험을 내 안에 담아두면 그게 연기를 통해서 나오더라고요.” 결국 분노와 광기 등 특정 감정에 대한 몰입이나 이해보다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이해를 추구하고, 이런 많은 감정들이 내면에서 소화되어 자연스럽게 연기가 배어 나오게 한다는 설명으로 들렸다. 삶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이해가 그의 연기의 밑바탕이라는 설명이었다. 캐릭터에 대한 정밀한 분석도 병행한다. “요즘도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그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선후배들에게 연락합니다. 그러면서 그 인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인물에 대한 내 생각의 빈 곳을 발견하게 되고 빈틈을 메우게 됩니다.” 그는 “배우가 인물을 창조한다고 하지만 결국 모방입니다. 저 사람에게는 저런 성격이 있구나 하고 관찰하고 그런 인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여러 가지를 좇을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한 가지를 추구해야 합니다”라며 다시 엄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엄 대장님도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말하자 엄 대장은 “당연하신 말씀”이라고 동의하며 말을 이었다. “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연과의 사투라고 하는데 사실은 자기 자신과의 사투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자신과 사투를 벌일 때까지 몰두하게 하고 또 자신과의 사투에서 승리하게 하는 것인가. 김 씨의 말에 따르면, 또 엄 대장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열정이었다. 그 열정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애정이었다. 여기까지 듣자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애정에서 비롯된 열정은 인생의 많은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힘겨운 오늘을 사는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다. 김 씨는 말했다. “누군가가 끌어주어서 정상에 설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해내야 합니다.” 돌이켜 보면 김 씨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열정이 아니던가. 한순간에 연기자로서의 운명을 직감한 뒤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다시피 그 길을 걸어 왔다. 눈이 나빠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고 후배들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 점은 엄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신을 던지면서 살아온 이들이었다. 열정에 따라 인생의 방향을 정했으되 세밀한 노력으로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내리막에 접어들었지만 엄 대장의 발걸음은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 구부러지지 않는 발목을 스틱에 의지해 걸었다. 코스를 마치고 내려오니 봉곡사 입구의 시원한 약수가 반겼다. 김 씨도 엄 대장도 시원한 물맛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김 씨는 “예전에 (승려 출신인) 궁예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전국의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주지 스님들이 밥 먹고 가라고 했었지요. 허허”라고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다시 봉곡사 입구의 오래된 소나무 숲길에 두 사람이 섰다. 전국의 명산을 많이 다녀본 엄 대장도 “이곳에 정말 소나무가 많다”며 감탄했다. 그러나 그 잘 자란 소나무 중에는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로 줄기에 생채기를 안고 있는 소나무가 많았다. 그곳에 땀 흘려 산을 넘어온 두 남자가 섰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다. 정상에 서 본,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많은 것을 걸었던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상처를 딛고 오래오래 더 크게 자란 소나무들이 그들을 축복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여름에도 비 맞으면 저체온증… 땀 배출 잘되는 기능성 우의 준비▼ 여름철에는 날씨 예보를 확인하고 산에 오른다 해도 국지성 호우로 인해 갑작스레 비를 만날 수 있다. 여름철에도 몸이 비에 젖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 이에 대비해 간단한 우의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기능성 방수 소재를 사용한 우의는 습기와 열기가 내부에 머물지 않게끔 도와주기 때문에 쾌적하게 착용할 수 있다. 배낭까지 덮을 수 있는 품이 넉넉한 판초형 우의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모자가 없는 우의는 빗물이 목을 타고 스며들기 쉽기 때문에 후드가 달린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여기에 비에 젖어도 모양이 처지지 않는 넓은 차양의 모자를 덧쓰면 비가 내려도 수월하게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밀레 레인 판초는 방수 기능성 원단에 심실링(Seam Sealing) 처리를 통해 솔기와 바늘구멍을 밀봉해 빗물이 새어들 틈을 한 번 더 차단한 것이 특징이다. 투습 기능도 우수해 수증기 형태의 땀을 바로 배출시키기 때문에 한여름에 착용해도 후덥지근하지 않다. 입지 않을 때는 작게 접어 간단히 휴대할 수 있다. 東亞日報와 밀레가 함께하는 열두 길 트레킹아산=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